우리의 필요를 아심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8)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2주간에 걸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금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기도에서 동떨어진 것을 금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은밀한 분이시므로 은밀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물을 긷듯이 언어를 길어 올리는 것입니다.
II. 우리의 필요를 아심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서는 그렇게 드리는 기도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자의 신뢰를 뜻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삶의 상황 보다 훨씬 확실하게 믿으며 그 분을 신뢰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A. 우리의 필요를 아심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제일 먼저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필요, 영혼의 필요까지 모두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연약한 육신이 매일매일 지상의 자원을 소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배가 고플지, 우리가 언제 헐벗을지 우리에게 언제 입고 마셔야 할 것들이 필요할지 모두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육체의 필요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그러한 성품을 깊이 신뢰하고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염려와 근심 속에 우리의 마음을 태우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 속에서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문제까지 주님께 맡기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단지 육신의 필요만을 가지고는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정신에도 양식이 필요합니다. 즉, 따뜻한 교제, 나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음악과 문학, 예술, 그리고 기타 필요한 우리의 정신적인 자원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인간다운 삶은 이렇게 우리의 육신의 필요뿐 아니라 정신이 필요까지 활용하면서 살 수 있을 때 그것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육신과 정신이 아무리 좋은 것을 누리며 산다 할지라도 영혼의 지도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육신과 정신의 필요뿐만 아니라 영혼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분을 만나고 기도를 통해 그분과 교제하고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그 마음이 새로워지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필요 아래 놓여있고 이 중 어느 것 하나만 결핍해도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신앙이 없었을 때에는 우리가 꿈지럭거리고 돈을 벌며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채운다고 생각했지만 신앙을 갖고 난 후에는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나 그 수고의 열매를 얻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참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성도들이 모이는 이 아름다운 교제는 그 속에서 나누는 사랑의 교제는 우리의 마음에 이런 필요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필요를 향해 눈을 뜨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동체 속에서 이런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혹시 남의 형편을 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그 남을 아는 사랑은 전능한 사랑이 아닙니다. 알기는 알지만 전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알아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실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당신이 원하는 도움을 우리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니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이외에 당신의 손으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그렇지 않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당신께 모두 알려졌으니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지만 당신에게 모르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더욱이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자녀이시기 때문에 잘 아십니다. 당신이 낳으셨고, 당신이 창조하셨고, 당신이 선택하셨고, 당신이 낳으셨고, 당신이 돌보신 자녀들이기 때문에 숨소리 하나에도 하나님은 감각을 갖고 계십니다.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자녀의 모든 것을 알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안다’라고 하는 것은 단지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들을 적극적으로 돌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염려와 근심 속에 요동칩니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현실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염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큰 풍랑에 요동치는 배처럼 우리의 마음이 출렁거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그것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렇게 늘 요동치며 산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셨는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죄악으로 고통하고 방황하던 우리를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건져내셔서 우리를 다시 살리셨는지를 생각합니다. 구원 받은 그 이후에도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여기에까지 나를 인도하셨는지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생각합니다. 그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 그리고 그 분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라는 믿음, 그 안에서 우리는 요동치는 마음에 잠잠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염려와 근심은 종종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신뢰를 끊어버리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러한 근심과 염려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근심과 염려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의 정신이 거기에 따라가게 하지 말고 거기에 맞서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일이 있고, 이런 저런 일이 나를 염려스럽게 하지만 그 일은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니고 실제로 발생한 것도 아니고, 나의 인생은 우리 하나님 수중에 있으니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어찌하여 내 안에서 탄식하는고” 이렇게 타일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처한 이 모든 처지를 알고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니 내가 그 주님을 의지하리로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는 먼 이웃이나 친척처럼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기를 마치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아버지로서 그 필요를 채워주시기까지 하면서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염려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으니 깊은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동치는 마음을 잔잔하게 하기 전에는 기도가 나올 수 없고, 또 요동치는 마음이 간절한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잠잠해질 수 없으니 이렇게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모두 아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리스도 예수께 회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를 따라 그의 교회에 가서 수요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설교는 솔직히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설교 전에 불렀던 한 젊은 자매의 찬송가가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찬송을 들으면서 깊은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이 당신에게 잘 하는 사람을 예뻐하시고, 당신에게 잘못하는 사람을 싫어하시는 분이라고만 막연하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부른 찬송은 내가 성령 충만하고 은혜에 넘칠 때만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약하고 지쳐 있을 때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찬송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찬양)
비참한 눈물을 흘릴 때나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그때도 주께서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시시때때로 주 만 생각합니다
라는 찬송이었습니다.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는 분이시니 염려와 근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썩여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말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좋으신 우리 아버지
마지막 두 번째는 좋으신 우리 아버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의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무한히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높고 위대하기만 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높고 위대하시면서 동시에 우리를 낳으신 친아버지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또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가정을 살뜰하게 돌보지 못한 무관심한 그런 아버지가 아니라 완전한 아버지로서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기에 당신의 유산을 빼앗아 멀리 방탕한 길을 떠났는데도 동구 밖에서 눈이 짓무르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그런 완전한 아버지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우리는 그 하늘 아버지를 우리의 완전한 아버지로서 깊이 신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라고 할 때 따로 하나님 어머님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그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돌보시되 분업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엄마처럼 아빠처럼 모든 것을 알고 세심하게 사랑하시며 엄하게 우리를 꾸짖기도 하시는 그러면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아버지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에 그 아버지가 우리의 마음에 함께 계신다면 기도는 숨을 쉬는 것처럼 쉽게 여겨지겠지만 만약에 그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우리 마음에 없을 때에는 우리가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의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에 관한 심오한 교훈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먼저 그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또 너희를 구원해 내신 아버지이시며, 그 하나님은 너희에게 좋으신 아버지이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은 단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실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종종 우리는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만나고 시련에 시련이 겹쳐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그 속에서 그들을 건져내 줄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사랑이고 우리의 사랑은 유한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며 눈물을 흘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이 사람을 사랑하고 이 사람의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밖에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눈물을 보시며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방면으로 길을 열어주셔서 이 사람을 살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능히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기도하게 하신 후에 그것을 주십니다. 물론 어떤 것들은 우리가 그렇게 애절하게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주시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가슴 저미도록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종종 어떤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한 후에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오직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이 좋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이 약합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서 훈련되어집니다. 내게 없는 것도 주님께 구하면 있는 것이며,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도 우리 주님은 오히려 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나의 인생을 이끄신다는 깊은 믿음을 갖도록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와는 구별되는 높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서 이 모든 만물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만드신 이 세계와 구별되시는 하나님이 또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관계를 맺으십니다. 우리를 서로 사랑하도록 도우시고, 그 사랑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알도록 이끄십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은 온 땅과 하늘 위에 높고 비할 데 없이 위대하신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 특히 당신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들에 대해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찬송의 제목이 되었고 살아갈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시편 52편 9절에서는 시인은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시 52:9)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요, 선하시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향해 결코 악을 행하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식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신약 성경에서 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노래했던 선함은 더 구체적으로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요한복음 16장 2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7)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불변하는 사랑으로 온 인류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피조물들을 선대하시는 하나님의 좋으심은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서 또한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게끔 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라면 우리도 선한 것을 원하실 것이고, 우리가 선한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또한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선하게 대할 것을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심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게시해 주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시는 동안 우리에게 보여진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불같이 뜨거운 사랑으로 나타나서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셨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이미 우리를 위해 아까운 것이 없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런 선하신 하나님, 한없이 좋으신 아버지를 의뢰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신자의 생활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없으면 없는 것이었고,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했으면 결핍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갖기까지는 늘 안절부절못하고 안타까워하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갖고 계신 하나님, 모든 것을 소유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압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자신까지 십자가에 못 박으신 예수님이 바로 온 우주를 지금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죽게 하셨으니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아까워하시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에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맨 처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그 분을 믿게 되었을 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인생이라고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을 오직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렸고,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제 그분의 수중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찬양) 주 내 안에 늘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저 포도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근심이 엄습할 때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내 맘이 불안할 때마다 나는 묵상해야 합니다. 나의 인생이 그 분의 수중 안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 인생은 모두 주님의 인생이고 주님의 인생은 내 인생인 것을 기억하고 우리 둘이 하나인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인생이 우리 주님의 수중에 있으니 내게 아무것도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시련을 만날 것입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해야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물질이 궁핍할 때도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순간들은 항상 가슴이 아플 때는 행복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이별의 슬픔으로 마음이 찢어질 때에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줍니다. 물질의 결핍으로 고통 받을 때에는 만유의 주로서 모든 것을 갖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깊이 신뢰하십시오.
만약에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결핍을 느껴 염려하고 근심한다면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가 모든 것을 갖고 계셔서 그것들 중 일부를 우리에게 나눠 주신들 가난해지실 수 없는 하나님이 나를 왜 이런 결핍 속에 두셨을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종종 결핍 속에서 우리가 다른 마음으로 당신을 찾을 것임을 알고 계시기에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종종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대신 고요히 우리가 당신께 매달려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어리석게 뒤로 물러서 하나님 원망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소외감을 느끼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이 이제껏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셔서 여기까지 데려오셨는지를 생각하고, 가슴 저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인생 살아온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주님의 이런 사랑을 내가 배신할 수 없다고 마음에 다짐 하십시오. ‘세상 사람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눈에 보이는 상황이 나에게 무엇을 외치든지 나는 나를 붙들고 계신 우리 하나님만을 신뢰하겠노라.’ 다짐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믿으십시오. 그 마음을 기도에 실으십시오. 요동치는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십시오. 그리고 생사 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할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기도의 두레박을 던집니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길어 올립니다. 닫혔던 기도의 문은 열릴 것이고, 잠자는 여러분들의 영혼은 신랑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기쁨 속에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그 선하신 지혜와 사랑의 손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의 그 선하심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핏방울 끝에 매달려 있는 존재입니다. 그 분의 보혈의 공로 없이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올리는 눈물의 기도 없이 우리는 주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들이니 우리의 모든 존재가 그 분의 핏방울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던 자신을 십자가에 내려놓으십시오. 조용히 요동치며 소란한 마음을 떨치고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우리 주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의 가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