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에 영광이 가득할 때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 7:1-3)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오늘 우리들이 읽은 이 본문은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역사상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교적인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아버지 다윗이 성전을 지을 모든 준비를 끝내었고,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하나님의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 솔로몬 성전의 이 극치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그리고 그 웅장함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신약의 교회가 본받도록 부르는 그런 종류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약의 교회가 영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가 될 것인지를 예표로서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의 교회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이 교회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머리가 되셨고 그로써 이 모든 교회를 당신께 연합시켜 영적으로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영광을 이 세상에 비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성전 완공식 때 하나님이 행하셨던 한 위대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이 세상에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가득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II. 성전에 영광이 가득할 때
A. 하늘의 불이 내림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영광을 당신의 새로 지은 그 성전에 가득하게 하셨을까요? 첫째는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보이시고, 당신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불은 소멸과 변화를 상징합니다. 하늘은 속된 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곳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킬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이 땅에 있으므로 거룩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구별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경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다운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 놀라운 경험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구별된 민족임을 확인했습니다. 물리적인 크기로는 무시해도 좋을만한 작은 나라였지만 자신들의 소명이 온 땅과 열방에까지 미칠 위대한 것임을 자각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고 열방의 빛으로 부름을 받은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핏줄을 가진 단일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사실이 아니고 우리 한민족에게도 사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애굽에서 출발할 때에 많은 피가 섞인 중다한 잡족들이 함께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에는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중다한 잡족들이 애굽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앙 고백과 할례로서 이스라엘의 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문화와 생활습관, 많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체를 이루며 살 수가 있었던 공동체적 특징은 그들이 바로 함께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통신이 아무리 발달하였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한 곳에서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임으로 우리는 비록 다양한 다른 점들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 부름 받은 한 백성이라는 공동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이 나오고 일체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모이기에 힘쓰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 번째는 바로 이렇게 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 한분이심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영광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회에 충만히 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으며 어두운 세상 한복판을 지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B. 영광이 가득함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라고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영광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되는데 하나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본질적 영광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그 하나님이 당신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위대한 성품을 보여주시면 사람들은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효과적 영광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느 한 장소에서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충만하게 드러내 보여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입니다.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고 모든 인간과 사물은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9-10)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때에 특별한 장소에서 당신이 살아계신 놀라운 효과를 발산하듯이 보여주십니다. 가시나무 떨기 사이에서 소명을 받을 때에 모세가 보았던 하나님의 임재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에 성막 위에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던 하나님의 임재가 바로 그러한 발산적 영광을 보여줍니다. 신약 시대에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함으로 이런 영광을 보여주셨고, 또 그 이후 신약 성경에서 여러 차례 이런 발산적인 영광이 장소와 더불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발산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볼 때에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을 갖게 됩니다. 구약 시대 때에는 이렇게 하나님이 가시나무 떨기에서 그리고 당신의 큰 영광을 성막 위에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밧모섬에서 당신의 발산하는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이런 충만한 영광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된 이 말씀의 시대에는 우리가 이 발산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 광야를 헤매며 다시 가시나무 떨기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락방까지 올라가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하나님의 교회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당신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고 살 때에 교만하고 나태했던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위대하고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절대적인 필요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 영광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 차는 것, 이것이야 말로 신약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우리가 이것을 위해 하나님 앞에 핏빛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교회의 영광을 가득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교회가 어떻게 이 위대한 영광을, 당신의 충만한 영광을 사모해야 할지를 오늘 이 솔로몬의 성전의 완공식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C. 백성들이 엎드림
세 번째는 백성들이 엎드린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라고 말합니다. 땅에 엎드렸다고 하는 의미는 그 인간이 땅과 동일한 가치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땅은 많은 소산을 낸다는 점에서는 어머니와 같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제때에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는 하늘의 축복이 있을 때에 땅은 어머니와 같이 수많은 소산을 냅니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보면 땅은 가치 없는 것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단지 너희의 육체는 티끌뿐인 줄을 알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육체는 우리들이 미워하고 버려야할 그런 육체가 아니라 그 육체에 하나님이 존귀한 영혼을 담으셔서 육체와 함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생각할 때에 항상 둘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지금 이 불완전한 육체는 시간과 함께 공간 속에서 소멸되어 가야 할 정말 무가치한 것들이라고 하는 겸비한 인식과 이 가치 없는 육체가 하나님의 존귀한 영혼과 함께 만나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면에서 우리의 육체는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이 엄연한 성경의 사실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완공식 때에 돌을 깐 땅에 엎드리는 것은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함의합니다. 첫째는 철저한 자기 비하입니다. 그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떨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위대하신 분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경외심의 표현입니다. 자신들은 단지 티끌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온 땅과 만물위에 높으신 위대하고 거룩하신 분임을 고백하고, 그 분 앞에서 부복하여 경외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 위대한 영광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자신이 얼마나 티끌인줄 알고 그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인간에게 그렇게 경배의 염원을 올리는 사람들은 그의 노예가 되지만 사람들은 참으로 그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배의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전적인 순종입니다. 황제가 왕 앞에 첫 번째 예례가 무엇입니까? 좋은 기념품이나 선물을 바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예는 신하와 백성들이 땅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왕과 황제만이 온 땅과 만물위에 가장 높고 자신은 그의 소유이며 그 분의 통치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표입니다. 교회가 목표가 무엇입니까? 왜 교회가 존재합니까? 이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온 땅과 만물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드러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에 그 특징적인 그림이 무엇일까요? 먹고 마시고 인간들이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선적인 모습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높이고,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통치에 복종하기를 기뻐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티끌만한 것 하나,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고 그의 거룩한 이름에 도전하는 피조물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세상을 꿈꿉니다. 눈을 뜨면 이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현실들은 하나님의 이 거룩한 통치에 반역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끊임없이 불행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삶의 마지막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그 분을 사랑하고 경배하도록 살며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을 깨우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공부하지만 말로서 이것들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애쓰지만 그 노력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들은 모두 도구일 뿐입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충만한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위대한 여호와의 권능이 그 모든 사람들 앞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만한 그들을 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방황하던 그들을 돌이켜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영광인 것입니다.
인간의 넘치는 교만과 그 결과인 인간의 불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동장치 없이 달리는 기차처럼 그렇게 자신을 주인 삼으며 진리를 자신의 상식으로 파괴하며 달려가는 불행한 삶의 끝이 어디입니까? 그리고 누가 그것을 막아설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바로 진리의 말씀으로 이러한 세상에 빨간 깃발을 흔들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몸을 던져 그 세상과 부딪혀 장렬하게 산화하며 살아도 과연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름 받은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겸손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할 때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앞에 부복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복합니까?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히 높여 그 분 앞에 부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II. 응답하시는 하나님
A.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전에 충만한 영광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어떤 응답으로써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이런 응답을 하셨을까요? 1절은 말합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라고 말입니다. 솔로몬 홀로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수많은 제사장과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대표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긴 기도가 열왕기하에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언약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고 모든 백성은 솔로몬의 이 기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가 마쳤을 때에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일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이 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이으며 전개되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속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하감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구했을 때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충만한 영광을 이 성전에 비춰주신 것도 솔로몬과 그 백성들의 기도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기도하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 것을 가르쳐 주셨고, 기도하는 다니엘을 통해 그 포로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에스라와 스룹바벨, 느헤미야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을 통해서 기도하게 하셨고,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도하며 밤낮을 기도하던 안나와 시므온 같은 경건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첫 번째 모습을 성전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죽으신 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약속을 기억하고 기도할 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위대한 이방의 선교도 결국은 기도하는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해서 열렸고 이방 선교의 아버지, 사도 바울은 기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사도인 요한은 밧모섬 외로운 곳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위대한 마지막 날의 계시를 보며 당신의 영광을 이 세상에 알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도 지울 수 없는 아주 확고한 사실입니다. 결국은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 차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티끌만한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사람의 냄새를 풍겨 이 세상에 빛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을 어두움으로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렇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간절히 교회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에 충만한 영광을 보여주셨고, 이 영광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가 마쳤을 때에 임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로 주님의 교회에 이 영적인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게 하시도록 그렇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B. 헌신할 때
마지막 두 번째는 헌신할 때 응답하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성전 완공식을 열왕기상 8장이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니까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그 불이 번제물과 제물을 살랐는데 그것이 불이 내려와서 이 모든 것을 사르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번제물과 제물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불붙는 기도는 자신을 먼저 드린 헌신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헌신은 단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하는 것은 이 세상의 품삯을 받는 사람들도 하는 일입니다. 헌신은 영적인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섬기는 모든 동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체의 자기 영광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대신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을 가리고 이 세상에 가득차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헌신입니다. 그러니 이 헌신이 영혼의 진정한 변화 없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IV. 적용과 결론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으로 교회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영혼이 변화되고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껏 깨달은 말씀도 귀하지만 그 말씀에 더 오묘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껏 받은 은혜도 소중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은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의미를 다시 가슴에 새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에 당신의 영광을 충만하게 하셨던 것처럼 신약의 교회가 영적인 영광으로 충만해지도록 그렇게 여러분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인 영광이 솔로몬의 성전보다도 더 찬란하도록 그렇게 빈다면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 어찌 의미 없는 일생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