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적합한 일꾼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느 7:2)
녹취자: 김경애
바벨론 포로귀환은 꿈같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로 된지 70년 정도 지난 후에 세 번의 포로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제일 먼저 스룹바벨에 의한 귀환이 이루어지고, 에스라에 의한 귀환이 이루어지고, 3차 지도자로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람이 느헤미아였습니다. 느헤미아는 여기에 와서 성을 재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독립된 국가가 되지 못한 마당에서 이스라엘을 시기하는 민족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사왕 고레스왕의 칙령은 자기가 다스리는 모든 나라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관용정책이 시작되면서 이루어진 조치입니다. 왕의 궁은 멀리 있고 폭력은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방해공작들이 이루어지고 저항들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망치를 들고 한편으로는 말씀을 들고 그 어려움에 고통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결국은 성벽이 건축되었습니다. 문짝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문지기들을 두었고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이 섰습니다. 당연히 고라의 자손들과 레위의 자손들이 배치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지나가지만 그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우리가 옛날에 어떤 노망난 사람이 불을 질러서 남대문이 불타서 무너졌을 때 온 나라사람들의 마음이 우울하고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또 수리를 해놓고 온갖 사기를 쳐서 욕을 먹고 우리 마음속에는 옛날의 남대문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더군다나 젊은 세대들은 모르겠지만 나이 많아서 그 예루살렘을 보고 갔던 사람들은 무너진 것과 그것이 다시 세워진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격을 했겠습니까?
거기에 느헤미아의 아우 하나니와 하나냐 두 사람을 세웁니다. 아마도 이 이름의 뜻은 ‘나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 그런 정도일 것입니다. 아니면 ‘그가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여호와가 내게 은혜를 베푸신다.’ 정도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도 여기에 같이 나오는데 두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굳이 하나냐를 거론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거론합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고 합니다. 나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니는 안 그렇게 하나냐만 그랬겠느냐 그것은 아마도 느헤미아의 입장에서는 하나니는 자기 동생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그랬는지 어쨌든 이렇게 놓았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 하나는 느헤미아 같은 지도자가 동생이라는 혈육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냐만 뽑았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매우 특별한 특징을 가진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둘을 복수의 지도자로 세워서 그 성을 예루살렘에 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게 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특징이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냥 얼마나 많은 이 정도의 지도자가 되려면 정치적인 식견이나 정신의 강인함이나 판단력이 얼마나 좋은 자질들이 많겠지만 싹 치우고 단 하나를 놓은데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좀 몰라도 충성스러우면 아주 놀랍게 배울 기회를 주십니다. 사람이 조금 실수를 해도 그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충성스러우면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그의 과실을 하나님이 덮어주십니다. 충성스러우면 그가 때로는 잘못 판단할 때도 있는데 그것은 조금 문제가 되게 하시고 잘 판단했을 때는 그것이 큰 성과를 거두게 만드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저 사람과 특별히 함께 하시는구나!’ 그것을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다른 모든 것 보다도 더 탁월한 가치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알아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당장 쓰기 좋은 사람은 똘똘하고, 눈치 빠르고, 약간 정치력이 있는 그런 사람들은 빨리 쓰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충성스러운 사람은 오래 두고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해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충성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을 어떻게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어두운 벨벳 위에서 사랑이라는 다이아몬드는 반짝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여기저기 연락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서 어장관리를 하는 그것이 목회의 능력입니까? 아는 사람은 그런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압니다.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사람을 설득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은 목회의 능력이 많은 것이고 그것이 적은 사람은 목회의 능력이 적은 것입니다. 그럴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소명에 불타는 사람이고 그런 의욕이 거의 없는 사람은 소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잠깐 일하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는 모릅니다.
어제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설득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 아버지가 목회의 꽃길을 깔아주어도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더 어마어마한 것을 물려주어도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못갑니다. 어디서 들으니까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 이 교회에서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바보 같은 소리를 누가 그렇게 하고 돌아다닙니까? 나는 이 교회를 우리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을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고 그랬는지 아십니까? ‘아빠는 너를 추천하지도 않는다. 공부할 때도 네 힘으로 헤쳐서 가라.’ 더글러스 스위니 교수가 나와 그렇게 친한 교수인데 전화 한통 할 수 없겠습니까? 일체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조국사태에서 보지 않습니까? 공정하게 가야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나는 이다음에 열린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은 되지도 않는 이야기이고 내가 제일 먼저 반대하고 온 교인이 그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안 된다고 자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네가 공부를 끝내고 학교를 지원하든 교회를 지원하든 나는 너를 추천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펄전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왜? 자기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헤쳐서 가는 것이지 자기 역량만큼 가는 것이지 ‘나를 누가 밀어 주었는데……. 어떤 아버지가 나를 추천해주고 나를 밀어주었는데…….’ 나는 아무 추천받지 않고 열린 교회에 세웁니다. 자기 분량만큼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한 마지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200평 짓다가 죽는 것이고 일만 마지기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일만 마지기를 자기가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결국은 얼마나 큰 땅덩어리 농사를 지었느냐에 인생의 크기와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농부였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가 한마지기 땅을 가꾸었으니 당연히 한마지기 땅을 가꾸니까 그저 강냉이에 조밥을 먹으면서 힘겹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어낸 마음이 아니라 아주 Absolute한 마음입니다. 이번에 만나서도 그랬습니다. ‘나는 너를 추천하지도 않을 것이며, 너의 길을 물론 열어주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은 너 혼자 하나님 앞에 씨름하며 네 길을 개척해가라. 그렇지만 기도제목을 주면 기도는 해주겠다. 후광도 없지만 내 후광을 빌릴 생각도 하지마라. 그것은 네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남을 설득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보십시오. 그 능력이 평신도 때에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고, 구역장을 시키면 조금 차이가 나고, 교역자를 시키면 차이가 더 나고, 부교역자 때는 또 더 차이가 나고, 확 던져져서 벌판에서 깃발을 꽂고 개척을 하면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남의 덕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자기 덕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을 하다가 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도 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직원으로서 있는 동안 그냥 그렇게 지냈는지, 정말 충성스러웠는지, 그리고 충성스러워 보인 것인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았는지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성경은 그것을 본인에게 갚으시고 후손에게까지 갚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다 모릅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 앞에 내 길을 가기도 바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길을 가야합니다. 각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그만큼 충성스럽게 살다가 어떤 사람은 힘겹게 힘겹게 살다가 거치는 돌처럼 살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더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덜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 그렇게 충성스럽게 섬긴 날들은 회고할 때에 마음에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