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녹취자: 허혜숙
사자는 왕 혹은 주인의 명령을 받들고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최고의 사명이 주인이 자기에게 준 뜻을 잘 전달해서 주인의 의도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가장 최고의 사명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사자입니다. 당연히 이 일은 카페트를 밟고 출발을 해서 카페트를 밟고 일을 마치고 꽃가마를 타고 오는 그런 길은 아닙니다. 당연히 많은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이 사자로 보내지를 않습니다. 지혜 자는 이런 사자들을 수없이 거느려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충성스러웠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충성스러운 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경험해서 나온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합니다. 그 사자는 우선 충성스러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충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첫째는 자기에게 이 일을 맡긴 사람에게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복종한다는 말하고는 다릅니다. 그런 것은 사자가 아니라 노예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 아주 심한 매질이 무섭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스럽다는 말은 단지 순종한다는 그 의미가 아닙니다. 충성스럽다는 것은 사명을 받은 사람의 인격이 그 사명을 맡은 사람의 인격과 결합되어 인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이 충성의 대상이 아닙니다. 때로는 의리의 대상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대상은 아닙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충성은 어떤 환경에 그가 놓여있는 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 그가 충성한 사람인가 충성하지 않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판별이 나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부교역자 생활도 해 봤고 남의 밑에도 있어봤고 또 많은 직원도 거닐어 봤습니다. 물론 윗사람에게 인정도 잘 받고 사랑을 받고 적절한 보상도 받으면 매우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만큼 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사람은 그런 일에 걸려 넘어질 때 크게 자기 자신이 실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종종 그런 환경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충성스럽게 사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인정이나 보상 때문에 충성스럽게 사는지 하나님은 그 무게를 달아보시기 위해서 종종 그런 환경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고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님의 사자입니다. 너무 고상하게 말하지 말고 주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도록 심부름을 받았고 나는 여러분의 심부름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서 한 교회를 잘 세우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일의 종류가 다른 것이지 사람의 존귀함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이는 충성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충성은 반드시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이 없는 충성은 공포심에서 나온 헌신이거나 혹은 두려움에서 나온 자기 처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이 일을 맡기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질서 안에서 우리에게 각자 합당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사도 바울이 죽는 순간조차도 자기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말한 이유는 그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충분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충성과 함께 짝을 이루며 따라다니는 낱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충성과 함께 따라다니는 짝을 이루는 낱말이 무엇입니까? 충성스럽고 또 어떤 사람이 되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것은 충성스러운 사람이 따로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라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이란 말이 하나인데 하나를 이쪽 측면에서 보고 저쪽 측면에서 볼 때 한 쪽은 ‘충성’이라는 말로 또 한 쪽은 ‘지혜롭다’는 말로 나오는 것입니다. 지혜는 충성스러운 데서 나옵니다. 어떻게 지혜가 충성스러운 데서 나오느냐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모든 발명은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입니다. 필요를 느끼고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발명은 촉진되는 것입니다.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 결코 발명에 이르지 못합니다. 필요를 느낄 때 엄청난 발명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우디가 공격을 당하면서 전 세계 강대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그들은 탄도 미사일을 유격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거나 킬 체인을 만들고,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아이언 돔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적국의 공격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은 거의 완벽한 아이언 돔이 되어 있습니다. 아이언 돔이라는 것은 쇠 장벽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미국처럼 150km 꼭대기에서 탄도 미사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랍 쪽이나 시리아에서 날라 오는 미사일을, 우리로 말하면 서울 전체를 방탄유리로 막는 것 같은 그물 같은 반공 요격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사일이 아직 한 번도 이스라엘 안에 떨어지지 못했습니다. 다 격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드론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드론은 한없이 낮게 땅 위에서 날아갈 수 있고 거기에 폭탄을 탑재해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드론을 이용하여 몇 방 떨어뜨렸는데 그 후 전 세계 석유 값이 출렁거릴 정도로 충격을 가한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약 58만 배럴의 생산량이 차질이 생겼는데 그것을 복구하는데 1년이 걸린다고 하고 그렇게 복구시켜 놓는다고 해도 또 드론을 날리면 또 절반이상 폭파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미사일은 한 발에 수억 원이 듭니다. 이삼년 이후 미국에서 들여오려고 하는 미사일은 약 250억 정도 됩니다. 그런데 드론은 천만 원밖에 안 됩니다. 약소국에 있어서 이 드론은 엄청난 대형무기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LG에서 무기를 발명해서 내 놨는데 사우디에서 약 3조원 정도를 구매할 것으로 예상이 되고 대기상태라고 합니다. 이것은 탱크보다 더 조그맣고 캐터필러가 달려있어서 진흙 밭 같은 곳도 어디든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5km 까지는 1분에 600발 이상 발사할 수 있는 발칸포 같은 것을 달아서 공격을 하는데 이것이 맞을 것 같으면 드론이 위로 뜨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정거리를 벗어납니다. 옆에 미사일이 장착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레이더로 탐지를 해서 사격을 하다가 사정거리를 벗어나면 스위치를 눌러서 미사일이 날아와서 맞추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AM2기 같은 것들, 공기 부양전 같은 것은 우리에게 위협이었습니다. AM2기 같은 것들은 그런 것들을 서울 옥상에 다수 비치해 놓으면 어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레이더로 조정해서 전자식으로 발사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발명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충성스럽다고 하는 말은 단지 그 주인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위에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는 당신을 충심으로 사랑할 뿐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지혜를 촉진합니다. 왜? 하나님을 조금 사랑하면 열심히 하다가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지, 그렇지만 주님을 정말 사랑하면 꼭 그 일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발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깡 소주라고 해서 소주를 사이다처럼 이빨로 소주병을 따서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한 술꾼이 그것을 계속하다가 이빨이 상했습니다. 한 소주꾼이 이것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돌려서 따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개발하고 지적 소유권을 등록해서 한 개당 1원씩을 받았답니다. 그것이 40-50년 전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필요는 뭔가 꼭 필요한데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적으면, 하다가 힘이 들면 그만두지만 사랑이 워낙 크면, 애착이 워낙 크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결국은 만들어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충성입니다. 그래서 충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의리의 사나이 돌쇠 같은 사람은 이 축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돌쇠는 충성스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의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혜가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요동하지 않고 불변하지만 지혜가 뛰어나서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는 한 가지 일이라도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충성스럽게 하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워치만 니(Watchman Nee)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우리 미혼 때까지만 해도 한국 출판계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도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은 아직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상적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경건주의 말기에 나왔었던 다아비파 학설입니다. 매우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 있는데 그런 것을 누가 압니까? 엄청나게 많이 읽혔는데 그 사람은 젊은 시절 투옥되어서 결국은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 속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놀랍게 그 시절에 영어를 익혀서 영어로 된 경건서적을 독파해서 자기만의 신앙의 세계를 쌓아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한창 때 대륙을 행진하는 전도를 합니다. 국공이 대립하기 이전의 일입니다. 횡단하면서 전도를 하면 믿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많을 때는 1500명이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 이래 그런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업적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누가 그 전도의 비결을 물었더니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경험도 없고 이런 시도를 해 본 적도 없었는데 기도해 보니까 할 마음을 주시고 최선을 다해서 잘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함께 주셔서 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충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주인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앙케이트 조사에서 직장생활을 대상으로 상사의 리더십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최악의 상사로 ‘멍부형’으로 뽑았습니다.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리더들. 이런 사람들을 회사를 망쳐놓는다고 보았습니다. 멍게(멍청한데 게으른)는 오히려 조금 낫다고 합니다. 멍부는 멍청한데 매우 부지런합니다. 회사의 체계를 망가뜨린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물의 이치에 뛰어나고 지혜에 밝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 모든 것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반대로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만약에 내가 지혜롭지 못한다면 이 사랑은 아름답게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그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성스러운 사자는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원하다’ 라고 하는 것은 불만이 있고 뭔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답답하던 일들이 사태가 해결됐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시원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시원하다는 것이 어떻게 시원하냐 했더니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 번 농어촌 돕기를 나가보면 어떨까? 가을에 추수할 때 동원을 해서 나가보면 추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농토도 트랙터로 일을 하지만 예전에는 죽 서서 낫으로 벼를 벴습니다. 위에서 바라볼 때는 그림 같은 풍경인데 쪼그리고 앉아서 한 시간씩 또는 한 시간 반씩 벼이삭을 후려잡고 낫으로 베어내는데 똑같이 줄을 맞춰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낫으로 벼를 휘어잡는 것을 200번 정도 하면 물집이 생기기 시작하고 낫을 잡은 손에도 물집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어쩌다가 나에게 배당된 낫이 잘 갈리지 않고 들지 않는 낫이면 배로 힘이 듭니다. 한 시간 반쯤 일을 하면 휴식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오는 것이 얼음집에서 얼음을 사가지고 바늘로 꿰서 물에 넣어 간식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추수는 흐린 날은 안합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한 시간 두 시간씩 그 일을 하다가 물을 마시면 비할 수 없이 시원해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일할 사람은 많은데 시킨 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은 아주 소수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충성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시원해 본 적이 없을 때 서로의 평가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일일이 모두 당신의 마음에 기억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똑 같습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목회하면서 아랫사람들을 써보면 퇴사했는데도 데려다가 다시 쓰고 싶은 사람이 있고, 도저히 올 수가 없다 하는데도 사정을 해서 쓰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 결정할까요? 일을 시킨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이면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고 감독할 필요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다른 일들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라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좋은 삶을 살고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이 두 개는 마치 꽈배기처럼 서로 얽혀서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보면 “선한 사람은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은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선함과 행위의 선함은 결코 찢어지지 않고 마음의 악과 행위의 악은 그 사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신 것은 당연히 일을 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일을 하니까 우리는 생활에 필요한 대가도 받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넓은 뜻에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 것은 이 일을 하면서 사람이 되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통해서 사람을 만드시는 법은 항상 갈등을 통해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꽃길만 걸으면서 꽃 같은 사람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꽃길만 걸으면서 가시넝쿨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두 가지 하나님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이 일을 하는 동기가 되고 또 이 일을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더 없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교회 일을 하면서 이 말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만나는 모든 일,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삶,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먹어도 주를 위해 먹고 마셔도 주를 위해 마시고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입어도 주를 위해 입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일상의 모든 삶이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런 모든 섬김 속에서 여러분들은 스스로 여러분들의 마음을 수시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모자라는 구나”, 또 일이 된 결과를 보면서 “아, 내가 생각 없이 일을 처리했구나”, 그리고 이루어진 결과를 보면서 “아, 결국은 나의 인격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완성되어가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많은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면 그는 선한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반성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나에게는 참 이런 결점과 약점이 있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거울처럼 자기를 보면서 바꿔나가고 반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자기에게 뭐라고 한 마디 했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뿌리 채 흔들려버리고 방황을 하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자기가 살아온 삶을 인정 하면서도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자신이 어떤 점이 모자라고 부족한가 하는 것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깊이 깨닫고 거기에서 반성하면서 자기 자신을 하루하루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과 거의 이런 반성의 작용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3년만 지나고 나면 막 살아가는 사람과 성도의 차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나 자신이 완성되고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함께 완성되어가는 그런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 큰 계획인 것입니다. 이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어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셔서 주님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시고 예배에서 은혜를 많이 받으시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착념하고 그래서 어떤 상황이 오든지 하나님 앞에 꿋꿋이 서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지혜로운 마음으로 현실을 극복해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