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7_센터 위원회 일꾼 연합 새벽기도회 2차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자세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들을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9-12)
녹취자: 박나리
로마 교인들에게 유장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한 후에, 오늘 마음과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영적 예배를 권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크게 네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동료들과 우애하고 어린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어른을 존경하는 원동력은 결국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우리가 신앙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할 텐데, 매일 매일 낙심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얼마나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앞에 모자라는 인간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볼 때, 아무리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강요당한 사랑이라는 것도 매우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을 긍정하고 지금은 비록 우리가 많은 사람들과 힘들어 하지만, 은혜를 주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동참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여러분 자신도 보면, 결코 한 번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여러분 자신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나님이 은혜를 통해서 주십니다. 예배 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경건한 삶을 살면서 사람을 향해서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이 생겨납니다. 사랑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열심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 열심을 품는 목표는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입니다. 우리들의 젊음이 얼마나 속히 지나가는지 보십시오. 텔레비전을 비롯해서 매스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화면은 예쁘게 생긴 사람들, 결코 가난해보이지 않는 사람들, 넉넉하게 가진 사람들, 육체에 많은 힘이 남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젊고 아름답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으로 사용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이 태어나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인생의 날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이가 들면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고자 해도 갈 수 있는 힘이 없고, 예전에 늘 산책하는 것처럼 다녔던 길도 나이가 들면 장거리 여행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인간은 그렇게 유한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젊은 마음이 들뜨고 이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변함없이 우리가 추구하며 살도록 주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나에게 사랑의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곧 쓰러져 죽을 나 같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셔서 부지하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향한 우리 인생의 의미는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섬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게으르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 게으름이라고 하는 것은 게으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몸을 바이러스처럼 파고드는 것이지만, 열심은 우리의 마음에 지속적으로 품어야할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없습니다. 게으른 삶의 한복판에는 자기 사랑과 나태가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 열렬히 열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한복판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제가 묻고 싶습니다. 목사가 되었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었으면 못 된 사람들 보지 말고 정말 하나님의 교회를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었던 사람과 같이 장로, 집사로 살다가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심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열심은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열심은 무슨 일이라도 시작하게 만들고, 하고 있는 어떤 일도 무겁게 느끼지 않게 만들고, 감당해보지 않은 일들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자신을 헌신하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옛날에 스펄전 목사님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교회가 보이면 마차 안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우리 모두 저 교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교회가 나왔겠습니까. 늘 기도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서울 시내를 지나갈 때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2층, 3층의 교회들, 심지어는 지하에 있는 교회들, 도심에 세워진 교회들과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여기저기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열심을 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고 살아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황무지와 같은 그곳에서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그것이 동기가 되어 수없이 죽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거기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열심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 존재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흔적은 더더욱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우리의 마음의 허물을 벗고 교회의 수많은 심령들을 불태운 숯불들을 심령의 화로에 가득 담아 갑니다. 집에서 드리는 기도와 말씀, 가족들과 드리는 예배와 교제는 그것을 잘 덮어서 오라는 것입니다. 그 화로의 불 속에서 부모인 우리의 회심이 유지되고 어린 아이들의 회심이 유지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열심을 유지하는 이유입니다. 한 사람으로나 그리스도인으로나 열렬한 마음이 없는 것은 정말 힘차게 살아있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열렬히 열심을 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것을 가지고 소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망은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지금 누리면서 사는 데에 이 소망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괴로운 일이 많아서 자살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너무 커서 자살하지 않습니다. 모든 소망이 끊어질 때, 인간은 자신이 붙들고 있었던 인생의 끈도 함께 놓게 됩니다. 인간이 깊은 절망에 처했을 때, 두 가지 선택을 합니다. 쾌락에 빠지거나, 혹은 자기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 이유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계속되는 고통을 누구에게 확실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고백 받은 사람 중 누가 자신의 고통을 모두 이해하겠으며, 그 사람이 이해한 것이 나에게 힘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가족도 같은 병으로 여러 번 병원에 다니면, 병원에 다녀온 줄도 모르고 무슨 병인지도 잊어버립니다. 어차피 인간은 그렇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위로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고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런 것 없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 속에 있는 모든 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을 해야지만 사람에게 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인생이 내가 비록 여기에서 많은 일들을 겪고 때로는 고통이 있고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내가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고 나의 영원한 운명은 그 분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거기에는 지금 보다 훨씬 탁월한 기쁨과 영광이 기다릴 것이라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있는 현실은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들이 남의 인생처럼 느껴지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 무조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 중에서 인내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을 좀 더 확장시키실 때도 항상 인격이 확장되는 팽창의 고통을 느끼게 하십니다. 우리의 체력이 지금의 한계를 넘어설 때에도 항상 그 한계를 넘을 때 고통을 받게 하셔서 더 나은 체력을 갖게 하십니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껏 자기가 알던 세계 바깥에 지식들을 섭취할 때, 머리가 터지고 무력해지는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건드리지 말고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 할 만큼만 하고 끝낸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매번 닥치는 새로운 현실들을 신앙으로 녹여내고, 그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언가 열렬하게 자기 자신을 변화된 상황 속에 이바지 시켜보려고 할 때, 고통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잘 참아야 됩니다.
성경에서 사랑이 보여주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특징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 가장 뛰어난 특징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정말 사도냐고 묻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서 ‘내가 사도가 맞다. 내가 이렇게 참은 것을 보면 예수께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냐. 만약에 내가 사도가 아니라면 참을 수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것은 오히려 두 번째 증거이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특히 너희같이 못된 사람들을 향해 참은 것을 보면 내가 예수의 제자가 맞지 않느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약 25년 전에 그 구절을 읽으면서 생애 동안 잊히지 않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참음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참 부름 받은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참음이 동반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좋아서 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강권합니다. 말도 안 되는 현실, 때로는 울분이 터지는 현실, 가슴이 아픈 현실을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정신상태가 모두 헝클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서 조용히 쏟아놓고 하나님 밖에 의지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이 깨뜨려지게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목회자도, 훌륭한 일꾼도, 천재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꺾여 비참하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세계가 없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을 보여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랑, 열심, 기도 세 가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을 섬기는 삶입니다. 특히 물질적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누군가가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떠한 방법이든지 자신은 감추고 그 도움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봉사가 바로 섬김입니다. 누가 어떻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 중심에서 물질로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지체들부터 시작해서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해보십시오. 이 다른 대륙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까지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중 일부를 그들을 위해서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고 지금도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어떤 깊은 감동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날 지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35년 전에 제가 야간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이미 직장도 그만두고 가난한 전도사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6개월 월급을 하나도 안 쓰고 모으면 학교 등록금에서 3만원이 모자랐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 당연히 순산을 할 줄 알았는데 24시간 난산 끝에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아내가 비밀통장에 돈을 저금해 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 때 병문안을 온 어느 집사님이 기도를 간절히 해주고 봉투를 놓고 갔습니다. 그 안에는 4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봉투를 들고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교회를 떠나온 지 약 25년쯤 되었을 때, 제가 마침 그 교회 근처에 있는 대학교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그 집사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안 만나고 집사님은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인사드렸습니다. 너무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이제껏 기억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돈을 돌려주면 집사님이 받을 리가 없으니 받은 가격만큼 오렌지를 사가지고 가서 드렸습니다. 역시 그 날도 중고등부 수련회에 가져다줄 거라고 열심히 닭을 튀기고 계셨습니다. 비록 신앙의 길은 그 사이에 많이 달라졌고 그 분도 이제 하나님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연세가 되었지만,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오래도록 끈으로 묶어주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조금이라도 착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그런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신 은혜 말고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섬기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슴처럼 기대면서 추운 겨울날 같은 인생의 때를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주 엄청나게 감동적이고 신문사회면에 나올 것 같이 자기를 드러내는 그 무엇이 아니라, 그 연약한 지체들과 나누며 사는 기쁨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은혜를 느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열심을 품고, 기도하고, 섬기십시오. 사랑을 품고, 열심을 품고, 기도하고, 섬기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께 큰 칭찬을 받는 은혜로운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