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 이의 아름다운 모습
녹취자: 김경애
권사님들께 다섯 개의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말을 대신할까 합니다.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첫 번째 그림은 무엇입니까? 나무입니다. 나무인데 사람이 요만하니까 이 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큰 나무입니다. 그래서 큰 나무 같은 권사님들이 되십시오. 작은 나무는 그것을 심으면 사람 손을 엄청 탑니다. 왜? 바람이 불면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물을 부어주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들이 자랐지만 이제는 큰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느티나무는 식물학자들이 쟀는데 하루에 물을 12드럼을 먹는답니다. 큰 나무는 봄이 되면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청진기를 대고 들으면 콸콸하고 수도 소리처럼 납니다.
나무가 어렸을 때는 사람들의 신세를 지지만 큰 나무가 되면 거기서 어마어마한 양의 낙엽이 떨어지면서 주위는 기름진 땅이 되고, 여기에 벌레들이 자라고, 새들이 그 벌레를 먹겠다고 오고, 이것들이 생태계를 이루면서 큰 숲을 이룹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들은 나이가 들면 모두 추해집니다. 모양 자체는 추하지 않습니다. 어린 손녀딸이 있는데 우리 집 식구 중에 누구를 좋아하나 했더니 식구 중에 젊은 순서대로 좋아합니다. 엄마는 젖을 먹여주니까 당연히 엄마를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제일 오래 무릎에 앉아있는 사람이 고모입니다. 어린애들은 어린애들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할아버지 저리 가!’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동물도 보면 나이가 들면 예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의 오류가 무엇인가 생각했더니 자매들은 자기가 영원히 싱싱하게 예쁠 줄 아는 것이고, 형제들은 그 힘이 늙어도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 저는 힘이 없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정신이 힘을 발휘하면 힘이 나는 것이지 어떻게 힘이 없을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렇습니다. 육체는 노쇠해져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늙어갈수록 큰 나무 같은 권사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무라고 비유했지만 이는 신앙과 인격과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중요한 것은 자기 때문에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뭐 하러 그렇게 잘해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모든 사람들에게 큰 나무처럼 되어서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그러면서 젊은 사람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그런 매력과 영향력을 나이가 흘러도 사람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큰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큰 나무 같은 권사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실 때에도 쭉 서서 사진을 찍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삽시다
두 번째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림은 잘 못 그렸지만 사자입니다. 왜 사자일까요?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맞고 마음에 감동되면 그 일에 헌신합니다. 그런데 모든 의미 있는 일에는 항상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그랬습니다. ‘선한 일을 오늘 저녁에 결심해 보십시오. 금방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운동을 해야지!’하고 나면 그 다음날 이상하게 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공부를 해야지’라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든지 핑계를 댈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듯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애견과 같은 신앙생활입니다. 쪼그만 강아지들은 항상 달랑달랑 와서 주인이 무엇이나 하나 줄까 하고 바랍니다. 그러나 사자는 어떠합니까? 누가 사자를 놀라게 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사자 옆에 있는데 ‘어흥’거리면 모두 놀랄 것입니다.
사자는 그런 소리에 놀라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자기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자매들이 여기에 와서 은혜를 받고 지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왔습니다. 강한 사람만 여기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섬기면서 권사님들 정도 되었다면 ‘시험에 들었다. 누가 내 마음을 상하게 해서 뭘 못하겠다.’와 같은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니까 그런 약함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애견과 같은 사람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사자와 같은 사람으로 부름 받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표현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살면 그 자체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기쁘고 감사하고 보람되게 사십시오.
어떤 지체의 결혼식에 갔는데 제가 주례를 하지 않으면서 가는 결혼식이 극히 드무니까 아마도 주례를 서기 위해서 갔을 것입니다. 나는 이 집에 주례를 서기 위해서 갔는데 바로 옆집의 접수대가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접수대에서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 결혼식에 온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야, 이게 몇 년 만이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데 ‘너 왜 이렇게 돼지같이 살이 쪘니?’하는 것입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저는 그 사람의 정신구조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습니까? 그것은 결국 사람이 미성숙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당연히 자기는 이 사자처럼 밀림의 세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꽃길만 걷고 싶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 밀림 속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밀림이라고 해서 항상 피가 튀는 전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화롭고 강물이 흐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디선가는 ‘어흥’하고 나타나는 위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사자의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나무가 인격과 같은 것이라면 사자의 심장은 영적인 힘입니다. 몇 사람이 막 까불고 떠들지만 기도로 무장되어 영적으로 그들보다 더 굳건한 힘과 용기로 서있어야 합니다. 사자의 심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의 마음으로 주님이 주신 그 사명의 세계를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삽시다
그 다음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사십시오. 강물이 흐른다는 말은 변화를 말합니다. 물 자체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막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막에서는 식물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물만 있으면 사막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습니다. 제가 도하에 있는 한인교회에 집회를 갔는데 두바이에 들렀다가 가게 되었습니다. 두바이에서 깜짝 놀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허허벌판, 완전 사막의 땅에 잔디밭이 온 시내에 파랗게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아래에 파이프 시설이 되어서 24시간 물이 나오게 만든 겁니다. 사막 한복판에도 사람이 굳이 씨를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사람이 물만 틀면 거기서 물이 나오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아시스 근처에는 사막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이 자라고 그늘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나옵니다. 이런 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강물이 지나갔다고 해서 내일 숲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물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계속 흘러갑니다. 그러면 주위가 물기를 머금으면서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고, 풀이 자라면 벌레들이 생기고,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새들이 모이고, 새들이 모이고 생태가 형성되면서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고, 뿌리를 내리고 아래까지 풀이 나면서 이것을 뜯어먹기 위해서 물고기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 흐르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지나갔는데도 내일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물속에 흘러가는 것입니다. 나는 한 방울의 물로서 흘러갔지만, 그리고 그 한 방울이 강은 아니지만 그 한 방울 없이는 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 강의 일부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품고 흘러가고, 태어나고, 변하고, 늙고, 죽고, 땅에 묻힙니다. 나라는 하나의 물방울에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물방울이 합쳐져 강을 이루고 흘러갑니다. 누구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그것이 강을 이루어 지면을 적시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마다 어떤 때는 가슴에 눈물이 꽉 찹니다. 2002년도에 평촌으로 이사 왔을 때 목사가 된 이후로 돈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열린빌딩을 매입했던 2004년에도 그랬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19년, 혹은 20년 후에 이런 교회가 되리라고 꿈을 꾼 것도 아니고 또 20년째 여기 계속 남아있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수없는 간증을 남기면서 흘러갔더니 이 결과를 남긴 것입니다. 현재 여기에 있는 우리는 그때에 그들의 헌신을 다 알지도 못하고 찾아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교사로서 자기 퇴직금을 정산해서 헌금하고, 살던 집을 팔아서 헌금하였던 그들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똑같이 20년 후에도 여러분들의 후손은 여러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물론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물처럼 흘러가면서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를 믿는 이유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삽시다
여기 강가에 큰 바위가 서있습니다. 사자는 용맹스럽기는 하지만 이 사자도 언젠가는 변합니다. 늙어서 이빨이 다 빠져서 도저히 고기를 씹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포수들이 허가를 받고 우리에 넣고 사살해서 죽입니다. 요즘은 안락사를 시킬 수 있습니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위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아파트 앞에 가면 큰 바위가 허나 덜렁 놓여있는데 청동기시대 때의 바위랍니다. 그러면 최소한 오천년은 지난 것인데 오천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새것입니다. 그런 세월은 바위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침묵 속에 흘러가는 세월에 비하면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는 하지만, 게다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보십시오. 꽃 같던 청년 자매들이 집사가 되고, 집사 같았던 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권사가 되고, 얼마되지 않아 은퇴를 하는데 이 바위 앞에서 보면 이 시간은 한 점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50세에 권사가 되었다고 하면 아직도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고 그래서 교역자들도 좋아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70세까지 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70세까지 기회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50세가 아니라 55세쯤 권사가 되었다고 하면 10년에서 길어야 12년 정도 화끈하게 봉사하고 결국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입니다. 그래서 어느 권사님이 그랬습니다. ‘이번에 구역장 하지 말까봐!’ 그랬더니 다른 구역장이 이야기하기를 ‘그러지 마. 다음부터는 안 불러 줄 거야.’라고 하면서 내려놓지 말라고 했답니다.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온 이 바위 앞에서 나의 견디는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으며, 순식간에 지나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삽시다. 열린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에 가입했을 때 제 나이 마흔 다섯이었습니다. 만으로는 마흔 셋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마흔 다섯이라! 야, 진짜 좋은 나이다!’ 저분이 왜 그러시나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그분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던 것입니다. 그분이라고 마흔다섯 살인 적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지나갑니다. 젊었을 때에는 나이도 젊고 기력도 좋고 열정도 넘쳐서 마치 칼집에 넣지 않은 칼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내면서 살지만 나이가 들고나니까 지혜는 생겼는데 힘이 없습니다. 생선 앞 토막을 자르고 뒤꼬리 자르고 내장을 발라내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잠깐 동안입니다. 그것을 내가 못 참으랴? 생각하면서 바위처럼 수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바위 앞에 그까짓 10여년이랴 마음먹는 권사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에 혜택을 주는 비처럼 삽시다
마지막 다섯 번째입니다. 무엇입니까? 비가 옵니다. 맞추는 것을 보니 잘 그렸습니다. 예쁜 꽃들과 풀들이 막 피어납니다. 비는 이 꽃에만 내리지 않고 모든 초목에 내립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왜 없겠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권사는 내림표와 같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평화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비처럼 이렇게 은택을 내려서 그들이 여러분들 때문에 사랑을 받고 이득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 독초도 있고, 몸에 좋은 풀도 있고, 예쁜 것도 있고, 예쁘지 않은 것도 있고, 향기로운 국화나 백합화 같은 꽃도 있고, 똥냄새 나는 애기똥풀 같은 것도 있습니다. 다 있는데 비는 꽃과 풀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내려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권사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일 먼저 무엇입니까? 나무같이, 사자같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모든 것에 혜택을 주는 비처럼 되십시오. 여러분들은 천재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