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롬 16:12)
녹취자 : 박나리
교사를 한다는 것은 한 영혼에 운명을 책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교사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일생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영혼들을 섬겨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말씀을 전합니다. 로마서를 쓴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고린도에서 썼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도인 모두를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가 없었더라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가르침을 종합해서 기독교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가르쳐준 책이 로마서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크게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 1~11장까지는 대체로 기독교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가르치고 12장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론적인 동시에 또한 매우 실제적인 책이기도 합니다.
2부에 걸쳐서 로마서를 마무리하며 부록처럼 적은 것이 16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약 16명 정도의 사람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문안하도록 로마에 있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12절입니다.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고 하고,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하반절에서 특별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한 번 나오고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버시라는 사람도 이곳 이외에 다른 곳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언급을 보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 배울 것은 ‘사랑하는’ 버시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보면 ‘사랑받는 사람 버시’라고 나옵니다. 이것으로 보아 언젠가 사도 바울이 버시와 함께 사역을 했고, 버시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에게 사랑받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학원 강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인터넷에 들어가서 배우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교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뿐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젠가 교사가 아니었던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 교사가 되셨습니까? 누가 시켜서 되었습니까? 누가 시켰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언젠가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동이 되어 교사가 되기로 자원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하나님 사랑의 감동으로 교사를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들은 또한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한마음으로 흐르는 연대가 있습니다. 서로 그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맨 처음 교사가 되어서 열심히 기도하고 처음 학생들 앞에 섰던 때를 기억해보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어린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이들도 사랑하게 해야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그 결심이 변치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고 동시에 사람에게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버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성도들의 사랑을 온몸으로 듬뿍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열심히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종종 열심은 있지만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선적이고 자만하고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기 때문에 열심은 있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못 받습니다. 그런데 버시는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았고 사람에게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사가 되어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서 모든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는 교사들이 된다면 그 자체가 학생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재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많이 수고한 것입니다. 비교하기에는 그렇지만 앞에 사도 바울은 두루배나와 두루보사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그냥 그 사람들은 주 안에서 수고한다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버시에게는 많이 수고한다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매우 특별하게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기억이 될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하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교사 직분을 맡기셨을 때 바라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충성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직분을 맡은 사람은 충성된 자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당신이 맡겨주시는 일을 맡은 우리가 충성되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21살 때 회심을 하고, 그해에 세례를 받고, 이듬해부터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교사로서도 여러 해로 섬겼고, 지도자가 된 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사들을 만났습니다. 그 교사들 중에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은 재능이 있었던 사람, 사람들을 웃겼던 사람, 많은 것을 먹여준 사람이 아니라, 충성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그렇게 충성스럽게 섬겼던 교사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주님이 보실 때에 조금 수고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거의 수고라고는 안 하는 교사입니까? 아니면 오늘 버시처럼 많이 수고한 사람입니까? 수고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을까요?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이 변화되기를 위해 애를 쓰니까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제가 6백 명 모이는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를 했었습니다. 거기에 부장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중학교 아이들인데, 교회를 안 나오려고 했습니다. 부장 집사님이 9시 예배 전에 8시쯤에 동네를 돌기 시작합니다. “아무개야, 교회 갈 시간이다. 같이 교회에 가자”라고 부릅니다. 이 아이는 엄마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사정해서 옷을 입혀 중등부 예배에 데리고 오는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이 집사님이 엄청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고 예배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꾸물거리니, 집사님이 보자고 아이를 불렀습니다. 교회 가자고 하지 않을테니 나와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출석부를 보여줬습니다. “내가 너를 매 주일 마다 일 년 넘게 데리러 왔다. 하나님이 보셔도 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을 것이다”라고 하며 빨간펜을 꺼내서 그 아이 이름에 줄을 그었습니다. 이제 이 교회 학생이 아니라고 다니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다음 주부터는 절대로 데리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만큼 했다고 접고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주에 이 아이가 교회에 자기 발로 걸어서 나왔습니다. 학생 앞에 가서 빨간 줄을 그으며 나는 할 만큼 했고 너는 이제 이 교회에서 잘렸다고 하며 다음 주부터 오지 않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양심의 가책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 가자고 할 때는 핑계를 대고 뺀질대고 안 나오던 아이가 그 다음 주에는 데리러 가지 않았는데도 이러면 안 되겠다며 나온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 집사님으로 하여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너는 잘렸다고 빨간 줄을 그은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많이 수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생님이 그 아이를 버렸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고도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왔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섬길 때 정말 열심 있는 교사를 여러 명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뺀질거려서 심방을 갔는데 그 주에 교회를 안 나오면 그 동네 심방을 오후부터 저녁까지 돌았습니다. 집에 있는 아이들도 있고 학원 간 아이들도 있고 도서관에 간 아이들도 있습니다. 정보를 입수해서 그 아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선생님이 심방을 갔는데 벨을 누르니 누구냐고 대답을 하는데 그 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교회 안 와서 심방 왔다고 보자 하니,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부터는 인기척이 안 들렸습니다. 여선생님이 청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남의 집 담을 넘었습니다. 마당을 넘어서 그 아이 방문 문고리를 잡아당겼더니 아이가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딸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너, 주일인데 교회 안 나오고 뭐했니?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니?”라고 말하고 아이에게 전도하고 기도해주었습니다.
많이 수고한 교사에게 많은 열매가 있습니다, 수고해도 열매가 많이 안 맺히는 적은 있으나, 수고하지 않았는데도 열매다 맺히는 일은 없습니다, 맡겨 주신 주일 학교 교사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수고하면 수고할수록 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아이의 일생에 여러분들은 너무나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그 아이를 만난 것입니다. 많이 수고하십시오.
요새 코로나 상황입니다, 모이지도 못하는데 심방은 꿈도 못 꿉니다, 그런데 요새 유행하는 심방이 있습니다, 문고리 심방입니다. 못 만날 것을 알면서도 가서 부르지도 않을 것이면서도 정성껏 그 아이를 위해 쓴 편지를 가지고 집에 찾아가서 문고리에 걸어놓고 그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알아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지금도 영혼을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많이 수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주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아주 신비한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이 ’주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입니다. 주 안에서 생활합시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예수와 접붙여서 우리가 그분 안에 그분이 우리 안에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연합을 ‘주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주 안에서 연합하는 것의 핵심이 실제적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지만, 구원받은 사람이 기도 안 하고 말씀에 은혜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주께 충성하지 않으면 그는 구원받기는 했지만 주님의 사랑을 자신이 많이 받고 있는 것에 감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분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자신은 땅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고 열렬히 기도하고 진리를 많이 깨닫고 충성스럽게 섬기면, 주님이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신 것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아이들을 불러서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셨는데 지금은 자기 마음 안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그것이 바로 연합입니다. 예수를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를 기억하면 감격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고 싶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영혼들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 안에 있는 생활입니다. 버시는 사도 바울을 이단의 교주처럼 생각하며 따라다닌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버시는 로마의 오빠부대가 아니었습니다. 버시가 사도 바울과 함께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겼던 것은 바울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버시도 그리스도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경건 생활 하십니까. 코로나 상황이죠? 심방할 수 없죠? 그러나 심방의 필요성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외롭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심방 하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최고의 적기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무섭다고요? 그런데 극장 구경은 어떻게 가세요? 쇼핑은 어떻게 다니세요? 어제도 친구랑 같이 밥 먹었잖아요. 우리를 위해서 코로나 상황인데도 할 일을 다하고, 영혼을 위해서는 코로나라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할 때, 과연 그 사람이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만약에 만날 수 없으면 문고리에다가 편지를 걸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겠죠. 2~3미터 떨어져서 아이에게 안부를 묻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는데 누가 그것을 못한다고 합니까. 한 번 심방해 보십시오. 아마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만큼 외롭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방역을 철저히 준수하시고 절대로 아이와 함께 먹고 큰 소리로 찬양하거나 대화하지 마시고, 멀리 떨어져서 마스크를 쓰고 그 아이의 고민도 듣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말씀도 가르쳐보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하면 결국은 그 영혼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버시는 누구일까요? 아무도 누구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주석가들은 버시가 페르시아라는 말에서 온 사람 이름이라고 봅니다. 페르시아 사람인데 기독교인에 되었던 사람이거나, 페르시아에 살았었는데 예수를 믿게 되어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된 사람이라고 봅니다. 아마 여성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서 남한에 살면서 연변에서 누가 와서 오래 살다보니 그 사람이 조선족이라고 하는 명칭과도 같습니다. 그는 유대인도 아니었고 로마 명망가의 사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민과 비슷하게 온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도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많이 수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주님과의 연합 안에서 충성스럽게 섬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냥 페르시아 출신의 이름 없는 사람이 알 수 없지만, 노예였다가 로마로 와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 되었는지도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대단한 명망가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존귀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영혼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런 사람으로 써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당장 그 자리에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교사들이 되도록 주님이 자신을 사랑한 것처럼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많이 수고한 교사가 되기를 힘쓰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