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영적생활
녹취자: 이재호
반갑습니다. 이번에 제직되시는 분들은 별명을 코로나 제직이라고 붙여야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왕관이라는 뜻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제직들이 되셨으니까 매우 특별한 매우 특별한 제직들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하는 강의는 제직의 영적생활입니다.
똑같이 살아있는 사물인데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보잘 것 없어집니다. 호랑이가 그렇게 숲속에 왕으로 군림을 해도 나이가 들면 대공원같은데서도 안락사를 시킵니다. 음식을 씹지도 못하고 서서히 병들어가서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안락사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일본의 7500년된 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3300년된 나무는 보았는데 ‘늙었다. 병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둘레가 남자 9사람 정도 둘러쌓아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가 잎이 푸르러서 막 번성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이런저런 굴곡을 만나게 되지만 금방 실증이 나고 금방 병드는 사람이 있고 오래도록 교회생활을 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을 간직한 채 자라는 나무같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의 굴곡이 없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동물과 같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나무와 같은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늙어서도 점점 더 잎이 푸르고 번성하는 나무와 같이 그런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영적생활입니다. 제일 첫 번째는 예배생활입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를 많이 받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배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 생활만 되면 잘못했던 사람은 그 예배속에서 돌이켜 회개하게 되고 힘이 없는 사람은 그 예배속에서 힘을 얻게 되고 인생에 있어서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은 예배속에서 선포되는 말씀으로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공적인 예배에서 은혜를 받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린교회에 와서 은혜를 많이 받으신 분들로 선발이 되어서 제직들이 되었을텐데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던 때의 예배생활을 잃어버리지 말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예배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서 몇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은 일주일의 삶이 예배를 고대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예배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과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시간에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어지는 것은 흔들리는 잉크병에 펜을 꽂는 것처럼 힘든 것입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지만 펜을 꽂아서 잉크를 찍을텐데 끊임없이 움직이면 그 펜을 잉크를 찍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시간에 특히 설교시간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졸고 다른 생각으로 가득차 있고 태만하게 보내는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거의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올 때는 성경을 펼치고 예배에서 설교를 들을 때에는 설교를 듣는 일에 집중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단어, 이런 것들은 노트나 성경 구석에다가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셔야 합니다. 처음 몇 주 해서는 그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기록이 1년, 10년 쌓이게 되면 굉장한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보면서 그 때에 어떤 말씀에 은혜를 받았는지를 생각하는 아주 좋은 학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어쨌든 공적인 예배에서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처음 곤고할 때 와서 은혜를 받았던 처음 예배에 감격에 빠졌던 그 때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기도 생활입니다. 여기서 기도생활이라는 것은 개인 기도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 모여서 하는 기도, 집 안에서 드리는 가정예배, 이런 것들보다 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풍부하게 할 때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샘물과 같은 것이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변치 않고 계속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서 무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 같이 그렇게 마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기도생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나와서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을 기도의 발동기를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시간에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고 기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아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한 그 시간과 장소를 지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겠다고 자기 자신이 뜻을 세우는 일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 곳이 교회라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나온다던지, 퇴근하고 갈 때 밤기도를 한다던지, 아이들 학교 다 보내 놓고 낮에 기도하러 온다던지 최고입니다. 아무리 여러 곳에서 기도해 보아도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집중이 잘 되고 가장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집이 너무 멀리 있어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집에 빈 방이라던지 자기 방이라던지 어디든지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얼마큼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까지도 갖고 그렇게 할려고 애를 쓸 때에 어떤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몸과 마음이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뒤로 물러납니다. 그것이 개인규범이라고 하는데 개인생활에 규칙이 없으면 아주 쉽게 물러나고 자기가 물러 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을 정해 놓고 장소를 정해 놓으면 그 때에 거기서 기도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분명해지면서 자기를 채찍질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말씀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을 말씀생활보다 앞에 두는 이유는 충만한 기도생활이 있을 때 말씀생활을 통해서 사람이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사도들이 자신의 삶을 반성하면서 과부들을 돕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이 일을 집사들에게 맡기기 위해서 7집사를 세우는데 그 때에 하던 이야기가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세우는 이유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했던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에 몰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풍부한 기도생활이 있을 때 말씀생활도 아주 풍부해지게 되고 말씀을 통해 깨닫고 은혜받는 것이 있을 때 기도할 마음도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생활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고 은혜를 많이 받고 거기서 기도생활을 발견하고 일주일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보면 ‘욕망이 그 사람을 죽이나니 이는 그가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내 안에 어떤 게으름이 있는지, 그 게으름이 내 영혼의 생명을 죽이지는 않는지, 내가 태만한 적은 없는지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제목으로 삼고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누가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면 안되고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말씀생활의 첫걸음입니다.
말씀생활의 두 번째는 그 말씀을 주일날 들은 말씀만 아니라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그것도 우리가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하루에 얼마씩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닌 한 꼬박꼬박 그 시간을 지켜서 그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맥체인 성경읽기표를 사용합니다. 영국의 청교도인데 이 사람이 성경 전체를 통일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진도표를 만들었습니다. 신약 2군데, 구약 2군데, 이렇게 4군데에서 성경 읽기를 시작하는데 일년내내 그 표를 따라서 읽으면 신약은 두 번 읽고 구약은 한 번 읽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 표를 체크를 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뜻을 세우고 1월달부터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읽는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정하기 나름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은혜를 받습니까?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그 읽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QT라고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내가 오전에 한 장의 성경을 읽었습니다. 한 장을 모두 묵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 장을 읽으면서 깊이 마음에 와닿았던 한 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거기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노트에 기록해도 좋고 요즘 같은 시대에 폰에 기록해도 좋습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읽기를 꾸준히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요즘에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ESV라는 성경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이 책을 나왔을 때 아주 기뻐하면서 1억1만원어치를 팔았습니다. 가격이 조금 나가기는 합니다. 여기는 수십명의 학자들이 이 성경을 밑에 주석을 달아가면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이 성경 밑에 있는 주석을 읽으면서 꾸준히 읽어나가면 한 번 읽는데 2년반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만약에 10년동안 4번정도, 20년동안 8번정도 읽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서는 안되고 즐겁고 가슴 설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면 그의 영혼에는 어두움이 깃들게 마련이고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식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꾸준히 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묵상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생활의 세번째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열린교회에 오셔서 제직까지 되셨으니까 새가족반, 성장반 공부도 하시고 구역공부도 하셨을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10년정도 다니면 많은 책을 읽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 공과이기 때문에 억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즐겨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가지 질문에 항상 대답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요새 성경을 어디를 읽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에스라 4장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볼 때 ‘매일 매일 눈물로 기도하는 제목은 이것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에 ‘요즘 읽는 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그 책의 이름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생활입니다.
도서관에 방문해 보신 분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은 항상 제직이 되면 거치는 것이 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것입니다. 도서관에 가서 제직임명 받기 전에 빌리는 것입니다. 코로나 있기 전에는 교육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봤습니다. 우리 교회정도 사이즈에서 평신도를 위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아이들 도서관도 따로 있고 6천권정도 책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확인해서 산 책입니다. 읽으면 위험한 책은 없습니다. 모두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방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읽으셔야 합니다. 책은 그냥 자기가 보다가 필요해서 읽을 수도 있고 성경을 읽다가 순종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어서 순종에 대해서 읽을 수도 있고 요즘에 선교에 대한 소명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항상 세가지는 묻고 깊이 반성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반찬과 같습니다. 밥이 성경이라면 책은 반찬입니다. 그래서 밥맛이 매우 좋으면 물만 말아서 김치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밥맛이 없어도 반찬이 너무 맛있으면 엉겹결에 밥까지 많이 먹습니다. 그래서 좋은 책은 읽고 나서 성경을 알고 싶은 책, 성경을 알고 나면 책을 읽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이 열린신문에 글을 썼습니다. 열린 교회를 오기 전에도 신앙생활을 했는데 누가 비교를 해보라고 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열린 교회를 오기 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트로트 신앙이었고, 열린 교회에 와서 클래식 신앙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클래식이 좋은지 트로트가 좋은지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이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꼭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책은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하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험들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읽으면 안되는 쓰레기 같은 책들이 넘칩니다. 그렇게 해서 잘못 길을 들게 되면 신앙이 매우 망가지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엄선된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고양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봉사생활입니다. 교회에 와서 집사 직분을 받게 됩니다. 제직이 됩니다. 그 이야기는 집사라는 말이 결국은 그리스어로 ‘디아코니아’에서 오는데 섬김이라는 말입니다. 밥상을 차리는 섬김을 가리키는 말로 사도행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제직이 되는 이유는 하나의 명칭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삶이 전체가 물론 섬김이지만 제직이 되어서 특별히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제직이 됨으로서 교회와 많은 사람이 유익을 얻고 내가 제직이 안되는 것 보다는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게끔 하려고 내가 제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수로 있는 제직은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교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일에 쓰임을 받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하나 늘어납니다. ‘당신이 심열을 기울이는 교회의 섬김이 무엇입니까?’ 입니다. ‘전 새가족반을 위해서 섬깁니다. 내가 맨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너무 어설프고 낯설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친절하고 따뜻하게 도와주어서 교회에 정착하는데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나처럼 그렇게 낯설어 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해서 새가족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새가족을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새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입니다. 새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격려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육이 끝날 때쯤 되면 교회의 섬김 리스트가 나옵니다. 그래서 ‘당신은 교회의 제직으로써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할 때 ‘하나님이 저에게 세워주신 자리는 여기이고 이 사역을 위해서 내가 봉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전도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가 출산 절벽에 있는데 OECD 중에서 꼴지입니다. 출산장려를 위해서 20년동안 200조 넘는 돈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산율을 계속 뒷걸음질입니다. 이 상태로 530년이 지나면 한국이라는 민족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얼마나 커다란 위기입니까?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일본은 오래 전부터 인구부를 만들어서 이미 출산을 장려하고 독려하는 일을 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서 출산율을 높이는데 이바지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어떨까요? 똑같습니다.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그러면 기독교 인구는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교인이 이백명이 모이는데도 주일학교를 없앤 교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엄마, 아빠 이혼해서 할머니 집에 맡겨 놓은 아이들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전도사님 한 사람을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방법은 둘 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많이 나아서 그 아이에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쳐서 신실한 신자가 되게 하는 것, 이것을 생물학적 전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안 낳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안 믿는 불신자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아십니까? 지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사회적으로 많이 퍼졌습니다. 언론의 영향도 있지만 기독교가 잘못한 것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시대가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자기가 그 아래 굴복하는 그런 사상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나쁜 환경입니다. 전도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전도의 필요성도 함께 감소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곤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복음을 전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이 숨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숨어있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은 예전 30년 전보다 훨씬 더 팍팍하고 물질적으로는 잘 살게 되겠지만 빈부의 격차,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허무감,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이 매우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종교를 필요로 합니다. 그 종교가 못 채워주니까 사람들이 쾌락으로 분출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이것입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좋겠지만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우정과 사랑으로 접근해서 그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든든한 삶을 살아가는지 어떻게 평안을 누리고 행복한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기독교 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염려라는 책이 나왔는데 교인이 불신자에게 선물했는데 다 읽고 나서 신앙에 대해서 매우 새롭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전도하기 전까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마음으로 정해 놓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기의 물질 중 일부를 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같이 초청도 하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산책도 하고 그러면서 진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직이 되는 순간 올해 내가 새해를 맞아서 내 마음에 품고 전도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간절히 마음에 가지고 누군가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것이 여러분들이 영혼이 사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전도의 기회로 삼아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직이 되고 1년안에 한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에 나와서 그 사람이 모든 인생에 불안과 고통을 씻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 교회는 전도되어서 교회에 왔다가 한 번에 예수 믿은 교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결국 열심히 교인들이 전도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열린 교회는 27년전에 7명이서 시작했습니다. 이 곳보다 10분의 1밖에 안되는 공간에서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캄캄한 지하실에서 형광등 켜 놓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이 전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올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누군가에게 권함을 받아서 열린교회에 오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복음의 빚을 갚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생활입니다. 생활이라는 것은 믿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마지막 열매는 내 인생입니다. 내 인생이 예수를 믿고 이 교회에 다님으로써 그렇게 예수를 안 믿고 이 교회를 안 다녔더라면 전개되었을 나의 인생관은 사뭇 다른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나 자신 앞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잘 깨닫고 기도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교회에서 섬기고 전도하고 이러는 생활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서 내가 하나님 앞에 창조된 한 사람으로서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하고 사랑이 있는 인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사회적인 지위, 소유 이런 것들은 모두 껍데기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어도 노인네가 되어서 지팡이 집고 다니면 모두 똑같은 노인네들뿐입니다. 꽃같이 아름다웠던 사람도 청년 때 그렇게 만나도 한 30년 지나고 그 아줌마가 그 아줌마입니다. 한 40년, 50년 지나면 다 그 할머니입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잠시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인생의 소망으로 삼고 선하고 자비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삶입니다. 매일매일의 삶을 잘 살아서 예술작품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값싸고 천박하고 죄로 물든 그런 생활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 자신이 아주 고상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인격과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 분의 형상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주님을 닮기를 간절히 원하네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살든지 상관없이 마지막에 가족들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으며 가족들을 사랑하며 가족들에 에워싸여서 눈을 감을 수 있으면 훌륭한 삶을 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품 안에서 내가 잠시는 대통령도 되고, 큰 사업도 하고, 학자가 되고 했어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분의 품에서 태어날 때 핏덩이였듯이 그 분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마지막 순간에도 인생내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내가 괴로우나 슬프나 사랑했던 하나님, 그 분의 품안에서 ‘내가 당신께로 갑니다’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 생활이 신앙과 일치할 때 그 사람이 점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예배, 기도, 말씀, 섬김, 전도, 생활. 여러분들이 꼭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 앞에 정말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제직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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