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1
녹취자: 장미연
이미 우리 교회 안에서만 6천부가 찍힐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책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2006년도 말씀 사경회에서 책이 두 번 정도 설교 되었습니다. 있었던 일을 말씀 드리면 그때 제가 말씀 준비하러 광림 수목원에를 자주 가는 편인데요. 별로 사실은 좋지 않고 불편하고 오래 되서 냄새도 나고 겨울에는 대개 춥습니다. 그런데 거기를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씀 준비가 잘 될 거 같은 그런 예감도 들어서 올 겨울에도 거기다 예약을 해놨습니다. 그때 거기에 예약을 해놓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처음 가지고 계시던 그 책이 제가 거기서 3일 만에 썼습니다. 하루에 원고지 한 350페이지씩 한 번에 1,000페이지를 썼습니다. 전 타이프를 못 하기 때문에 그 때 우리 목사님 한 분이 같이 가셔서 목차는 만들어서 갔고 제가 부르면 입력을 해서 나온 책이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여러분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는데 ‘그 책 집에 있을 테니까 이번에 그 책으로 쓰면 안 될까?’ 그러는데 집에 가서 대조해 보시면 3문장도 똑같은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3천원 주고 그걸 또 살까?’ 그러지 마시고 사시는 게 좋습니다. 전면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고 이미 제가 발표한 내용을 추호도 바꿀 의향이 없지만 좀 더 물 흘러가듯이 다듬고 보충을 해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한 번 더 손을 보아서 이번에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완전히 비교해 놓고 보시면 다른 책이라는 느낌을 받으실 것입니다. 페이지가 다른 건 물론이고 첫 번째 책은 6과로 되어 있어서 호흡이 길게 되어 있습니다. 호흡이 긴 책들은 잘 못 읽습니다. 한 과가 50쪽 읽어야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 쪼개서 작게 만들어서 전체 내용을 포괄하게 했습니다. 그럼 한 번 보겠습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오늘은 워밍업입니다. 책을 열며 우리가 공부하게 되는데 서론격인 내용입니다.
1번. 교회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부족은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우리가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하고 살아가니까 이런데서 어떤 어려움이 오게 되느냐 보자는 것입니다. 뭐하는 거지요?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인데 여기 나오는 사람은 싸우는 거 같지요?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열 받았다는 뜻이고요. 이 사람은 보따리를 쌉니다. 열을 받아서 씩씩 거리면서 보따리를 싸고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 새 교회를 찾을 거고 잠시 후에 또 보따리를 쌀 것입니다. 밑에 있는 사람은 굉장히 신사적인 사람입니다. 혼자 열 받아서 조용히 혼자 떠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람은 모여서 갑론을박하고 이러는데 이 사람은 혼란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뭔가?’ 그러면서 얘기를 하는데 작대기가 쭉 그어져 있는 것은 이러면서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아, 교회는 필요가 없구나.’ 그러면서 한때 1980년대 90년대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모 교회 주의가 굉장히 지성인들 사이에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그 역사가 오래됩니다. 성경도 믿고 그리스도도 믿지만 교회는 필요하지 않다 생각하고 자기 개인이 주님을 믿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분열, 개인주의 이런 것에 있어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앎이 없으니까 상식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이런 많은 것들로 미루어볼 때 교회에는 별로 그렇게 필요한 곳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2번.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교회의 설립의 목적 그리고 나의 인생의 목적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이 책에서는 이 세 가지의 목적이 어떻게 연결된다고 말합니까?
여기 잘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이게 나방이나 이런 게 아니고 갈비뼈입니다. 그 중에 하나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이 굉장히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수준이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냥 사람을 둘을 만드시지 왜 둘을 만드시면서 또 한사람의 뼈를 취하셨을까?’ 한 몸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몸인데도 둘이 한 덩어리가 아니고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사실은 두 사람이 연합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연합은 결국 사랑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래전에 말씀을 읽고 깨달으면서 깊은 은혜를 받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전에 제가 쓴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책도 역시 이걸 펼친 것입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들이 태어났잖습니까? 가인이. 그러면 두 사람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야기 하고 “너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고 결국은 그 자녀까지 똑같은 고백을 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동생이 태어납니다. 똑같은 고백입니다. 그 자손에 또 자손이 태어납니다. 똑같은 고백입니다. 우리가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예화) 저는 사실 그런 정도는 아닌데 친구 목사 한 사람은 그러더군요. 딸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아서 아들을 낳았는데 품에 안으니까 너무 기쁘더랍니다. 아들이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아서 품에 안았더니 눈물이 나더랍니다. “개혁주의 목사가 그러면 안 되지. 아니, 똑같은 손자인데 딸이 낳은 건 그냥 그렇고 아들이 낳은 건 왜 눈물이 나냐?” 그게 인간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라는 고백이 아직까지 흔적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족을 보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이 원래 좋은 인간성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동양 철학에서 맹자 같은 사람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는데 나쁜 본보기를 보고 올바른 스승이 없어서 망가진 인간이 되는 거라 보지만 순자나 혹은 홉스 같은 사람은 반대로 봅니다. 결국은 이런 죄와 인간의 악함이 이런 관계들을 다 깨뜨리면서 사랑해야할 관계들이 서로 미워하고 치열하게 이렇게 되는 증오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에 대해서 언급을 해서 원래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온통 뒤집어 놨는데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려고 그랬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지도자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인류에 이상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서로가 다 나누어서 극단적으로 말해서 죄와 타락이 전혀 없이 60억의 인구로 증가되었다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사랑하면서 사는 그런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결국은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런 사회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중간에 만드시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이상을 먼저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1번, 그 다음에 두 번째 교회를 세우신 목적 2번, 하나님이 세계를 완성하시는 목적 3번 이게 전부 다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들이 예수를 믿다 보니까 필요에 의해서 만든 그런 단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에 경륜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여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흘러들어가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회가 되기를 원하셨는데 죄로 말미암아 깨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사람들을 창조의 목적으로 다시 돌아가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크게 보면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인류를 왜 창조하셨나? 결국 하나님이 만드시려고 하는 마지막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 세상이 되도록 교회는 이바지하기 위해 선택받은 공동체인데 그러면 그렇게 미래의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그 사랑의 나라를 어떻게 죄와 갈등이 가득한 이 세상에 살면서 교회 속에서 그것을 실현할 것인가?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그 전부입니다.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조의 목적을 선취적으로 구현하는 곳입니다.
이 사람은 넘어진 사람입니다. 지난 공과에서도 자주 나왔잖습니까? 어떻게 됩니까? 넘어졌는데 자기의 죄 때문에 넘어져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탈했는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기엔 무능합니다. 불가능합니다. 무능하니까 결국 불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접붙이십니다. 접붙이셔서 교회에 일원이 되게 하신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명과 사랑을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생명과 사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그것이 곧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 자원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면서 교회 속에서 살아가서 거꾸로는 인류의 원래의 죄가 들어오기 전에 모습을 앞으로는 하나님의 세계를 완성하실 때 어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인가를 먼저 이 안에서 누리면서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3번. 하나님의 은혜는 곧, 하늘 생명과 사랑을 누림으로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때 어떠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최근에 미성년자들에 의해서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그 성인들도 저지르기 힘든 흉악한 범죄가 일어납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청소년들을 가혹하게 처벌해야 된다. 필요하면 청소년도 사형을 언도 받게 한다든지 사형이 어려우면 무기징역이라도 살게 해서 사회로부터 영영 격리시켜야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러한 일들을 공자에게 물어보면 우선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건 안 된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그 아이 때문만은 아니고 부모답지 않은 부모를 만났기 때문이고 좋게 말하면 좋은 부모를 못 만났기 때문이고 옆에 좋은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고 보면서 자신에게 감화를 줄 인생의 스승을 못 만났기 때문에 어둠속에서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다.” 그런 의미에서 그 아이가 망가진 것은 사실은 가정과 사회의 책임이 매우 크다. 그런데 그가 범죄를 했을 때 마치 자기 사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온전히 이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모두 이 사람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은 왜 그 아이가 그렇게 예도 모르고 의도 모르고 측은지심도 없는 무도한 아이가 되어 버렸느냐? 그것은 주변에 책임도 크다고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무기징역까지라고 하셨는데 상당히 우리 장로님들은 너그러우신 분들입니다. 사형은 안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는 사형 안 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가 그 책임을 공유해야 된다고 봅니다. 사회에서 그런 문제아들이나 장애를 가진 분들 이런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야하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여기 달라붙었구나.’ 생각하면 안 되고 내 몸에 있는 어떤 약한 부분이나 장애의 경우, 혹은 범죄의 경우도 내 몸에 난 부스럼이나 상처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같이 다루어야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에게 아무리 흉악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어른과 똑같이 중형을 내려서 그 한 사건 때문에 그 아이의 인생이 제기할 기회를 완전히 일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은 개인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근거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것들이 본보기가 없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생명과 사랑입니다. 청소년들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극적으로 회심하고 예수 믿어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그 사람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결국은 생명과 사랑입니다. 불후하고 정말 어려운 가정에 태어났는데도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렇게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은 생명과 사랑.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자신도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유익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4번. 우리가 이 교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떠한 교리를 깊이 알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경험이 있습니까? 교리가 주는 유익이 무엇일지 생각해 봅시다.
이게 파일인 모양입니다. 파일에 서류들이 들어가잖습니까? 지금은 거의 다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이런 게 별로 없지만 저도 연구실에 파일 통이 쭉 있어서 파일 통에 넣습니다. 그럼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그것을 서류 통에 탁 탁 넣어 놓으면 너무 일하기가 편합니다. 컴퓨터도 활용을 잘하는 사람들은 컴퓨터 안에 잘 분류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대체로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쏟아놓고 그 다음에 ‘내거 어디 있나? 자료실에 부탁해서 찾는 양인데 또 그런 것까지 시간을 모두 보내면 시간이 모자라겠지요? 어쨌든 이렇게 잘 정리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어떤 진리들을 잘 정돈합니다. 정돈해주는 게 바로 교리입니다. 교리가 이렇게 정리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리를 하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올바른 세계관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때는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 이런 건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지 않습니까? 물론 살인이 성경에서는 “살인하지 말라”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런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분노에 의해서 그렇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정당화 되고 혹은 이웃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거의 정당방위를 하는 것들은 법에서도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여지가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약간의 폭이 있게끔 우리에게 제시를 하는 적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올바르게 세계를 볼 수 있는 일관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모든 사물과 상황에 대해서 확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방해하는 가장 커다란 것이 이념입니다. 성경에서 온 게 아니라 자기가 어디서 좌파 혹은 우파 공산주의 이론, 자유주의 이론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에 깊이 그것에 의해서 잠식 되어서 거기다가 성경의 진리들을 덧입혀서 그것을 신앙의 확신으로 붙들 때 매우 위험한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지식을 가지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 정리된 교리, 여기에서 세상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만 이겠습니까? 인간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또 앞으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심지어 역사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교리를 배우는 목적은 일곱 개로 보는데 우선 첫째 위에 그림이 나타나 있잖습니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서로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의 모상을 교회에 구현하십니다. 이 교회가 서로 사랑하며 살게끔 해주셨고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이 함께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그림으로 요약을 한 것입니다. 첫 째는 삼위하나님의 교통의 본질은 사랑이다. 어떻게 삼위 교통의 본질이 사랑인가? 이것은 책에 들어가면 설명을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교통의 모상. 본보기입니다. 아파트를 큰 걸 지어서 분양하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만듭니다. 모델하우스를 만들면 사람들이 와서 보면서 ‘아파트 32평 한 채가 이렇게 생겼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걸 보게 되니까 아직 아파트가 여기 지어진 게 아니고 저기 농어촌 공사 그 옆에 짓고 있는데도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견본 주택에 들어가 보면서 ‘아, 이렇게 집이 나오겠구나. 괜찮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바로 모상입니다. 본보기로 한 번 만들어 본 것입니다. 본보기와 나중에 시공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더 좋습니까? 일반적으로 모델하우스가 훨씬 더 좋습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좀 더 예쁘게 만들겠지요. 견본으로 내놨는데 찐빵을 내 놔도 예쁘게 잘 빚은걸 내놔야 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을 구현해도 항상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뛰어난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세 번째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드러내는 곳. 사회가 둘이 있는데 하나님 안에서의 사회, 하나님 밖에서의 사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이 모두 다 궁극적으로 똑같습니다. 서로 처음에는 약간씩 갈리는데 다양하게 갈리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처럼 엮어져서 마지막에 하나로 달려갑니다. 끝이 결국 창조의 목적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모든 성도들이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살면 교회는 질서 정연하게 하나님 당신의 인생의 목적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에 연장선상에 있으니까. 그렇게 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 세상에 드러내고 세상들이 그 사회를 보면서 ‘매우 특별한 사회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교회의 본질은 사랑의 교통이다. 교회는 일치를 이루어야한다. 이 일치는 그냥 뭉치는 것이 일치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저희를 하나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일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눈에 보이는 교회에 모든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야함. 이게 토투스 크리스투스의 개념입니다. 몸 전체가 예수의 한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가짜 신자도 섞여있고 또 상태가 매우 나쁜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배교자도 있습니다. 교회 믿다가 이단으로 가는 사람들, 무신론으로 돌아간 사람들, 불교에 가서 승려가 된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 속하지 않은 자임을 드러낼 때까지는 한 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드러났을 때 어떻게 할까요? “이 사람은 교회 속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하고 딱 끊어내는 것이 excommunication. 출교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출교를 너무 남발합니다. 출교는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지체가 아니다.” 라는 선언입니다. 그것은 세상 법적으로 말하자면 사형 선고입니다. 그것을 마구 남발하니까 사람들이 판결에 대한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사랑으로 확장되는 교회의 영광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선교,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장해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전도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 일곱 번째 교회론 적으로 이해하는 성화론. 이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서 이미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했고 지난번에 공부한 『부활, 세 번째 지평』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만은 이런 내용들을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 안에서 다루게 됩니다.
5번. 저자는 진리에 대한 탐구 위에 성령의 은혜가 부어질 때 쪽배와 같던 우리의 삶은 항공모함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느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큰 풍랑을 만납니다. 요즘은 워낙 GPS가 발달하고 기상이 발달해서 시간 단위로 만들어 찾아내기 때문에 배가 큰 풍랑을 만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런 큰 풍랑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자 한 사람이 1만 5천 톤 짜리 배를 몰았는데 17미터 파도를 태평양에서 만나봤다고 합니다. 만약에 30미터의 풍랑이면 무시무시하겠지요? 그런 큰 풍랑을 만날 때 작은 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옛날에 “퍼펙트 스톰” 이라는 영화 보셨지요? 참치 잡이를 나갔던 사람이 풍랑을 만났는데 파도 하나가 쳤는데 그 배가 작지 않은 배인데 막 통통하고 올라갔는데 하나의 파도에 걸쳐 있는 것입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어마어마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는 파도가 일어나는데 쪽배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 3미터 파도만 쳐도 충분히 실종 되는 것입니다. 13미터 파도가 치더라도 군함 같은 것은 끄떡없고 더군다나 15,000천 톤 짜리 항공모함일 경우에는 그까짓 파도 쯤은 상관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똑바로 바다를 가르며 항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쪽이 되고 싶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답변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