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택 임직자 교육
녹취자: 배미라
저는 목회하면서 중보기도의 힘을 사실 중보기도라는 말을 신학적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예수님에게만 사용되는 거라서 제가 조심스러워서 항상 섬김기도라고 얘기하는데 사람들이 저를 기도로 섬겨주는 그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느꼈을 때가 언제냐면 항상 1월이었습니다. 1월은 사경회가 있잖습니까. 사경회는 제가 다른 교회 갈 때는 사실 부담이 잘 안됩니다. 물론 가서 은혜를 끼쳐야 되니까 부담은 되지만 그러나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하고 오면 저는 그다음 그 교회가 어떻게 되는지 면밀히 관찰할 것도 아니고 오잖습니까. 교회는 사경회를 하고나면 그 결과가 그대로 목회로 돌아오잖습니까. 사경회가 잘 되면 교구에서 너무 목회가 쉬워지는 겁니다. 말도 안 듣고 구역모임도 안 나오고 그러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전화해서 구역모임도 참석하고 기도회도 나오고 이러니까 너무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면 너무 힘들잖습니까.
그런데 이제 말씀을 준비하러 갑니다. 그러면 그때나 이제나 늘 바쁘잖습니까. 몇 달 전에 미리 다 준비해놓고 기다리면 좋겠지만 몇 달 전에는 몇 달 전 일이 있으니까, 생각은 겨울사경회 한다 그러면 가을사경회 끝나고 나서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은 합니다. 무슨 말씀을 전할까 기도도 하고. 그런데 어느 해에는 큰일 난 것입니다. 일주일 뒤 사경회를 삼일정도 시간을 내서 말씀을 준비하러 갔는데 이틀이 지나갔는데도 막막한 겁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데 어떤 느낌이 드냐 하면 돛단배가 돛을 활짝 펼치고 가는데 바람이 안 불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배가 앞으로 쏴악∼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겁니다. 이제 내일 아침에는 토요일 날 일이 있으니까 내려와야 되는데 밤중이 다 됐는데도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되니까 말씀이 풀리는 것입니다. 단숨에 설교가 쫘악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진짜 성도들이 엄청나게 많이 기도를 하고 있구나!’ 그런 것들이 어느 한 순간에 확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마철에 우리는 개울 옆에 살았습니다. 지금도 중량천이었는데, 장마철이 되면 동네사람들이 모두 다 채 같은 것, 삼태기 같은 것을 가지고 다 냇가로 나갑니다. 물이 막 쏟아질 때 바구니를 거꾸로 놓습니다. 신기하게 물고기들이 물을 거슬러서 막 올라옵니다. 바구니에 바글바글 모여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바르게 놓으면 하나도 안 잡힙니다. 거꾸로 놓고 물이 흘러가면 물고기들이 막 올라와서 바구니 속에 들어와서 더 앞으로 가려고 하나씩 둘씩 모입니다. 어떨 땐 한 바가지 될 정도로 물고기들이 모입니다. 그걸 걷어가지고 와서 사람들이 매운탕도 끓여먹고 그랬습니다. ‘전투적으로 산다’라는 것이 꼭 싸움한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우리자신과 타협하다보면 계속해서 떠내려가니까 우리가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기도하기 좋을 때는 한 번도 없습니다. 결국은 이때는 기도할 때다 생각하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우리의 영의 생각이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고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현실을 거스르면서 싸우는데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로 육체를 가지고 계신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섬김기도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새도 제가 파스칼의 팡세를 쓰고 있는데 거의 1년 가까이 성도들이 기도했습니다. 기도카드 만들어서, 저도 요새 여러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 카드를 가지고 기도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책 쓰느라 바쁘고 구성도 잘 안되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요새 생각을 바꾸니까 변화가 보입니다. 이렇게 1년 동안이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분명히 도와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해나가는데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가지고 현실과 이기면서, 현실을 거스르면서 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발표를 한 번씩 다 했습니다. 결국 1989년도였습니다. 벌써 33년 되었습니다. 88년도에 제가 34살에 교수가 되고 그 다음해였는데 안양대학교 연구실에서 오후에 성경을 폈는데 이 구절이 쭉 떠올랐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절을 3시간을 읽었습니다. 그때의 저의 어떤 기도생활의 한 이정표를 긋는 획기적인 깨달음이었습니다. 11장 1절을 3시간을 읽고 한 달을 걸쳐서 설교를 했습니다. 결론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말씀에 관한 지식의 수준이 뒤로 물러가기는 쉽지는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은혜가 떨어져도 사람들이 높아진 귀는 안내려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워낙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그 음악 아니면 그 이상의 음악이 아니면 감동이 안 되듯이 말씀에 대한 지식도 그런데 기도는 안 그렇습니다. 기도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주던 선생님이 신앙생활이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림이 서로 매치가 안 되잖습니까.
우리 인간은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자기 기도생활을 자랑 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됩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 중에서는 신앙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붙들지 않는 일 만 마디의 말씀보다는 마음으로 붙들고 있는 한 마디의 말씀이 그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기도생활을 여러분들이 하시고 이제 교회일꾼이 되면서 그런 기도의 짐을 많이 느끼면서 자기의 기도의 영육을 넓혀가라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겁니다. 우리 같이 한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