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택 임직자 교육
녹취자: 장미연
(21:01)사정을 다 모르니까 한마디만 듣고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주위에서 보면 이렇게 단순한 인간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본인은 인정 안 하지요.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이 문맥은 사실 교회 안에서 어떻게 성도들이 사랑을 이루어갈 것인가?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데까지 감당하십시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그게 성화의 수단이 되지만 도가 지나치면 자기에게 독약도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많은 사랑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그 사람을 극복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극복하고 넘어서면 사실 상처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면 그것도 불쌍한 거거든요. 솔직히 얘기해서.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니까 그것을 극복하면서 사람이 하는 이야기도 자녀를 기르면서 잘하잖아요. 자녀가 하는 이야기를 다 상처를 받으면 아마 부모가 그 가슴을 도려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그런 것을 다 해석해서 받아들이잖아요. ‘쟤가 지금 기말고사 때문에 짜증이 나서 나한테 저렇게 반응하는 거지.’ 이렇게 하잖아요. 해석을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사랑입니다. 잘 타일러서 가족도 있을 것 아닙니까? 잘 타일러서 정신과 진료부터 받아봐라. 그렇게 하면 조금만 약 먹으면 많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일수록 인정을 안 합니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주님께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그것을 정상적이지 않다 라는 것을 생각을 하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좀 떨어놓고 생각하면 사실 저 사람이 보이는 이상한 행동이 저 사람도 어쩔 수 없어서 정신이 망가져서 나오는 거려니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가 덜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잘 아는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하는 것과 정신 나간 사람이 욕을 하는 것 중 우리가 똑같을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정신 나갔으니까 그럴 수도 있으려니 우리는 생각하는 겁니다. 치매 걸린 노인네가 나를 욕한다면 내가 상처를 받겠습니까? 그런 기술도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감당할 수 있는 데까지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내가 힘이 닿는 것만큼만 돕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사랑하는 것이지 자기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절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잘 타일러서 치료도 좀 받고 신앙도 갖고 그렇게 하면서 살게끔 해야지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길을 또 열어주십니다.
(51:01)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렇지요? 2006년도에 했던 설교니까 벌써 16년 전입니다. 최근에 듣고 있는 설교하고 한 번 이걸 연결을 시켜보십시오. 내일 설교가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설교 준비만 했는데 써야 될 책도 많고 그런데. 한 30시간 설교 준비만 한 것 같습니다. 내일 설교 제목이 ‘사랑하면서도 외로운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겁니다. 비슷한 건데. 무슨 얘기냐면 아까 집사님도 말씀하시고 여러분이 말씀하셨는데 사랑하는데 자꾸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 경우 있잖아요. 그렇지요? 자식들한테도 상처를 받고. 인간이 부족하니까 사랑하면서 상처를 안 받을 수는 없겠지만 덜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기대는 게 사랑이 아니라 자기로서 굳건히 선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청년들보고 늘 하는 이야기인데 집안 꼴 보기 싫고 되는 것도 없고 그러면 자매들이 얼른 시집가고 싶어 하잖아요. 늘 하는 이야기가 너희 혼자서 행복하게 못 사는 사람은 시집가서 절대 행복하지 않다.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결혼할 때 행복한 거지 혼자서 살 수 없는 사람이 둘이 하면 서로 기대서 서로 잘 산다고 하는데 둘 다 넘어지는 사람이 뭘 만나가지고 한쪽으로 더 쓰러지지. 혼자 쓰러지는데 결혼하고 나면 한 사람이 올라 타가지고 누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가 우뚝 굳건히 서서 남을 사랑하는 것 자체도 자기를 완성해가는 한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사랑에 있어서 패착입니다. 기대를 안 하면 상처를 안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겁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이렇게 기대를 하니까 항상 자기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항상 이 속에서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대가가 나한테 주어져야 된다. 메아리처럼 울려서 퍼져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 희생하는 거다.’ 이런 생각이 너무 강한 겁니다. 그러지 말고 자기가 이렇게 굳건히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남편 있고 아내가 있지만 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한 날, 한 시에 죽게 해달라는데 사고밖에 없습니다. 그건. 왜 그렇게 끔찍한 기도를 해요?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시간에 태어났으니까 각자 가는 겁니다. 자기 인생을 누가 같이 살아준다. 그런 생각을 많이 버려야 합니다. 독립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사랑에 의연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가 두 발로 대지위에 서 있는 사람이 손을 내미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마주 잡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 게 사랑인데 결국은 자기 자신이 굳건히 서지 못하니까 남의 사랑에 의해서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면서 사랑의 관계가 끊임없이 상처를 남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동네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 이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북한 사람한테 상처받은 사람 없습니다. 대게 뭐냐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식들 이런 관계 속에서 상처가 나머지 상처를 온 인류가 준 상처도 그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받은 상처보다 크지 않습니다. 상처 받았다라고 하는 게 뭐냐 하면 그런 말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그를 더욱 상처 속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예를들어보면 이런 것입니다. 부부의 기술을 하나 가르쳐주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뭘 기대하겠느냐?’ 이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도 참 감사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가정을 지키고 이렇게 사는 것도. 이것도 다 박살나고 깨지는 가정도 많잖아요. 사는 것도 참 감사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 안 해줘도 나는 상관없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살 거다.’ 이렇게 쿨하게 관계를 딱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면 그 은혜가 자기를 더욱 굳건히 서게 합니다. 벼랑 끝에 위태롭게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은 누가 손 붙들면 손 안 붙들면 그 사람만 그 사람만 떨어질 텐데 손 붙들면 같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자기가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은 누군가 손을 내밀어서 붙들어서 끌어올려줄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을 이제 신앙적으로 자신들이 누가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은 자기 자신 안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게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화) 안재영 집사 언니가 있습니다. 안영주 집사인데 지하실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남편이 부산 학교로 가서 이사를 갔는데. 하루는 그러는 겁니다. 교리반 공부를 하는데 자기는 열 받아서 죽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남편이 월급을 타서 월급이 들어오잖아요. 직접 줬는지 통장으로 받는지 모르겠는데 통장으로 들어왔겠지요. “여보 나 이번에는 월급에서 30만 원만 줘.” 그러더래요. 그때 30만 원이 작은 돈이 아니고 꽤 큰 돈 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내가 월급 100만 원 받을 땐데 30만 원이니까 꽤 많은 돈입니다. “당신 30만 원씩이나 뭐하게?” 친구 한 사람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이혼을 해서 위자료를 물어줘야 되는데 친구들이 30만 원씩 모아서 300만 원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겁니다. 자매가 “그래, 정말 불쌍하네.” 그러겠어요? 지들이 잘못해서 이혼을 했는데 왜 그걸 친구들한테 각출을 해서 그걸 위자료로 쓰냐 그러면서 안영주 자매가 뿔이 이렇게 난 겁니다. 그러고 씩씩 그러는데 교리반 공부를 하는데 속죄의 교리를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그 죄 값을 지불하는 건 그리스도다. 거기에서 자기가 큰 깨달음이 오면서 이게 결국은 우리가 속죄라고 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30만 원을 줬다하는 썰이 있습니다. 썰이 아니라 내가 직접 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을 때 우리들이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하나님께로 받아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을 가지고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 힘을 가지고 자기의 모든 곳으로 구제할 수도 있고 자기를 불사르게 내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하나님 사랑이 아닙니다. 항상 그것은 마지막에 무엇인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상처를 가져오고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점점 더 외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자기도 서지 못하는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그런 종류의 사랑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얘기하는 건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실수 하는게 자기도 서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냥 굴러다니는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굳게 서고 자기 자신이 굳게 선 가운데 누구를 사랑하려고 하는 관계를 가져야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사랑으로 어려움들을 함께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