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할 때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7:1-3)
녹취자: 박효준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이 성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은 솔로몬보다는 다윗의 마음에 가득했고 그래서 다윗은 살아 있을 때에 이 솔로몬 정선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헌물들을 준비 하였습니다. 저는 직접 계산해 본적이 없지만 어느 목사님이 이 솔로몬 성전을 들어간 금을 계산을 했더니 금 한 돈에 5만원을 할 당시에 금값만 90조원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따지면 약 340조 원 정도. 4배 올랐으니까. 그 이외에 금뿐만 아니라 은, 동을 비롯해서 각종 진귀한 건축 자제를 다윗이 모두 준비했고 그 준비된 것을 갖고 하나님께 성전을 받히려고 했지만 그 손에 피가 너무 많이 묻었다고 말씀 하시면서 다윗이 아닌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솔로몬 성전은 솔로몬 당대 때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이미 다윗 때에 계획된 것이고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성소를 약속하시고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겠다고 미리 언약해 주신 그 위대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러니 이 성전이 완공 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으며 또 솔로몬 마음속에는 얼마나 커다란 신앙의 부응이 일어났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성전이 아름답게 지어진 이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신약 시대의 교회와 신학적으로 연결되는 측면과 연결되지 않는 측면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하나님 앞에 동물을 죽여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사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는 구약의 성전을 신학적으로 되풀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당신의 구속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런 제사의 의무 없이 다시 우리를 위해 피 흘리는 짐승의 제사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받은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육체를 찢어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고 용서해 주심으로 이제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그것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께 우리를 의롭다 함을 얻게 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와 공로가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를 믿는 언약의 보증을 통해서 보혈의 보좌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성전은 이제 어떤 면에서는 신약에서는 계승되고 어떤 면에서는 신약으로 계승되지 않는 신학적인 단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약 시대의 솔로몬의 이 금으로 치장한 아주 아름다운 이 성전은 결국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고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 교회를 통해 성취될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영적인 축복과 영광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그 화려한 금과 은, 아름다운 보석과 그 모든 소중한 기명들. 그리고 성전의 아름다운 그 제도와 그 찬란한 양식들은 미래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실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는 특별히 아름다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 건물보다 아름다운 미학적이고 건축학적으로 설계가 잘된 건물들이 아주 많고요. 여기에서 성도들이 좋아하는 것보다도 더 아름다운 내용들을 갖은 사교적인 모임들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 중 가장 탁월하신 분이시고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과 인간의 참다운 본성이 함께 만나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가 되었고 교회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그 희생의 보혈 위에 세워진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살아 계셨을 때에 갖고 계셨던 그 성품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아직도 살아 계셨다면 하셨을 그 일의 그 일들을 이어서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성경과 복음을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이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이 교회의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더하면 온 땅과 만물에 교회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교회를 아주 아름답게 건축하셨지만 이 교회의 아름다움을 하나님은 이 교회를 구성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어떤 신앙을 갖고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경회 하느냐에 따라서 이 교회의 영광이 이 세상 속에 찬란하게 드러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게끔 가변적인 공통체로 이 세상에 남겨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교회는 모두 아름답고 교회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지만 그러나 그 교회가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 차서 이 세상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여주는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정 반대의 교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많은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던 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 하는 많은 내용들 중에는 사실은 타당하지 않는 비난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실이 아닌 것들에 대한 비난. 또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교회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학과 그리고 인간을 하나님 앞에 복종해야 할 연약한 피조물로 보는 이러한 견해에 대한 오늘날 현대주의적인 비판 같은 것들은 사실은 교회를 비방하는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죠. 그런가 하면 어떤 면들은 이 세상에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면도 교회가 갖고 있죠. 교회가 갖고 있는 도덕적인 결함들.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것.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너무 이 세상에 대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 신앙과 삶 자체가 불리 되어서 신앙 따로 삶 따로 이 세상 사람들이 배울 것이 별로 없는 그런 손가락질 받는 삶. 이런 것들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 어떤 이유로든지 간에 결국 이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비난을 받을 때 결국 교회는 교회로서 온전 해져야할 필요를 매일매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향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정말 성경이 가르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그리스도인을 보고 인생의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올바로 서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저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저 교회에 소속되어서 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고 싶다.'라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이 세상과 꼭 같아 져야만 선교가 이뤄진다는 생각은 신학적으로도 잘못된 것이고 심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의 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결심 했을 때에는 이 교회 안에는 나와 같이 방황하는 똑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는 훨씬 더 훌륭하고 확신을 갖고 인생을 살고 있고 선하고 그리고 무엇인가 이 세계와 하나님에 대한 더 온전한 신념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들이 나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는 믿음 때문에 사실 우리의 상식을 포기하고 교회에 들어온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교회는 맨 처음 우리를 들어오게 만들었던 그 아름다운 것들을 간직하고 유지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로 관계를 맺을 때 아주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신앙으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워요. 그런데 한 사람이 반대의 삶을 살 때에 그가 미치는 나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전도하다가 여러분, ‘잘 안 믿어져요. 잘 모르겠습니다.’이러는 사람 말고 "싫습니다! 제가 안 믿을 거거든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날 귀찮게 굴지 말고 당신들이나 잘 믿어!"라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누구냐면 한때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서 예수를 안 믿겠다고 굳게 뜻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누가 그런 일을 만들었지요?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강퍅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지 못했더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커다란 실망감을 주고 그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향한, 복음을 향한 강력한 대적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러분 교회에도 그런 예들이 많겠습니다마는 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가족들에게도 박해를 많이 받다가 그러면서 하나님 의지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 바라보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순종하니까 그 가족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자녀들도 인도하고 구역에 보내주면 구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고 어쨌든 그 사람과 만나는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게 만들어 주시고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신앙으로 세워져서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몰라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는 그런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주님이 세우시려고 뜻했던 온전한 교회가 된다면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커다란 영광을 받으실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원리를 오는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완공 되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냐하면 그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성전에 임하였고 그때에 그 돌을 깐 땅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엎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우리 인간이 다만 티끌인줄을 알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그분 앞에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을 하는 그 순간에 인간은 참다운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가 이 모든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의 행복이 이 모든 우주에서 최고의 높은 가치를 갖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인간의 불행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바로 죄의 정의입니다. 이 죄는 결국은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고 그리고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질서를 망가트리고 우그러트려서 자기에게 봉사하도록 만들고 하나님 대신 자기를 경배하고 사랑하도록 만드는데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맨 처음부터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사는 그것이야 말로 죄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씩씩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씩씩하게 사는 것. 하나님이 없이 씩씩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줄 아십니까? 기도는 누가하느냐면,
(찬양)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 없이 살 수 없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는 정말 비천한 존재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새벽기도 나와서 마음을 쏟아 부으며 눈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공부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깨뜨려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죄에 대해서 회개 할 때에는 항상 우리의 교만을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온 땅과 만물에 높고 뛰어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위대한 의무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큰 영광은 아름다운 건물이나 돈 많은 장로님들이나 공부 많이 한 교회의 일꾼들이 있는 것이 교회의 영광이 아닙니다. 교회의 영광은 온 땅과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그 교회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것. 그리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 나는 그분을 경배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 그것이 바로 교회의 영광입니다.
(예화) 제가 21살에 회심을 했고 그때 회심한 교회가 바로 이 도봉구에 있는. 제가 이 도봉구와 인연이 깊습니다. 왜냐면 도봉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는 성북구였습니다. 태어나고 거기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고 거기서 결혼을 하고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첫 회심도 도봉구였습니다. 그때 간 교회가 이 예배당의 한 1/8쯤 되는. 1/8이 뭐에요? 한 1/10 쯤 되는 교인 한 30명 모여서 예배 들이는 손바닥만 한 예배당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피아노도 없어서 풍금을 삐거덕거리고 치고 난로는 돈이 없어서 톱밥 난로를 해서 톱밥을 때워서 누덕누덕 기운 방석을 두껍게 놓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비닐 장판 한 장 깔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제가 회심하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한 번도 그 교회보다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가 더 훌륭한 교회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그 교회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 동기는 예쁜 교회당의 모습이나 가구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우리 주님을 깊이 만나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될 때 그때 그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것까지도 이 교회는 너무 좋아요. 천장이 높아서. 우리 교회는 천장이 이래요. 예배당 길이가 72m입니다. 천장이 항상 낮아요. 그래서 평생소원이 한번 이렇게 위에 뚫린 천장에서 한번 설교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몇 백억, 몇 천억씩 들여서 지은 교회당에 가서 웅장하게 설교 할 때도 한 번도 그 교회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의 영광은 다른 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와서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깨닫고 그 앞에서 깊이 엎드려져,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나는 주님 앞에 가장 티끌과 같은 피조물입니다. 그 앞에 엎드려 경배를 할 때에 이 사람의 마음에는 2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무제한의 순종, 하나님을 향한 무제한의 헌신. 그래서 자기 자신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싶은 소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교회가 그런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17세기에 위대한 설교자 가운데 조지 위필드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전설적인 설교가 였습니다. 이 사람이 위대한 설교가로서 하나님을 훌륭하게 섬겼는데 가끔 마음의 은혜가 식는다고 느껴질 적마다 그는 자기가 회심한 교회를 찾아 갔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앉아서 처음 주님을 영접하던 그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입을 맞췄데요. 여기서 주님을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땅과 모든 세계 위에 높으신 하나님을 내가 만났지. 그리고 하나님이 이 비참한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지. 그 감격을 갖고 새 출발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교회에 매 주일 자기가 회심한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입 맞출 사람들이 늘어난 다면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 얼마나 커다란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교회가 박 목사님과 함께 이러한 영광을 보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에 영광이 가득하게 되었을까? 그 시점을 오늘 성경은 ‘솔로몬이 기도를 맞혔을 때에’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의 위대한 영광과 부흥이 얼마나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기도를 먼저 앞서게 하신 이후에 당신의 일을 행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심으로 교회에게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의 나타남을 위하여 얼마나 필수적인 지를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에게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겼다고 칩시다. 좋은 일이.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럼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어떤 태도를 갖게 될까요?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사람의 그동안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놀던 사람에게 놀라운 일이 생겨. 그럼 뭐라고 하는지 알아? ‘운이 정말 좋았다. 재수가 너무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일을 얼마든지 당신 혼자 할 수 있지만 기도가 먼저 지나가게 하신 후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밟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기차가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먼저 철로를 깔고 기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그 철로가 물위에 깔리면 물 위를 지나가고 바다 속에 깔리면 바다를 지나가고 공중에 깔리면 공중으로 기차가 날아가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 길 없이 기차는 안 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박 목사님은 이 교회에 보냄을 받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정말 이 교회를 위한 훌륭한 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떤 사람을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추천하거나 칭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야박한 사람입니다. 왜냐면 하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박 목사님은 내가 처음 만난게 제가 34살 때 신학 대학에서 교수로 가서 36살 때에 박 목사님이 그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학년 학생으로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제 박 목사님이 40대 초반이 지났으니까 정말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박 목사님은 이제까지 그랬듯이 이 교회를 목회할 때 꼭 기도의 사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맞혔을 때 하나님의 큰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어찌 이 기도가 목회자 한 사람만의 의무이겠습니까? 오늘도 3부 예배를 맞히면서 눈물로 호소를 했습니다. 제발 기도 좀 하라고. 무슨 교회에서 큰 일이 일어나서 그랬을까봐. 또 걱정을 할까봐. 교회에 아무 일 없는데. 사실은 교회에 아무 일 없는 게 그게 걱정 아니에요? 교회에 뭔가 자꾸 일이 일어나서 ‘어떤 사람이 회심을 했습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불순종과 불신앙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뭐 이런 일들이 자꾸만 생겨야 나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온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 이처럼 당신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도록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기도하는 박 목사에 이 기도에 여러분의 기도를 보태어서 이 교회가 하나님의 큰 기도의 은혜 속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빌어야 합니다. 20여 년 동안 20년 가까이 교회를 개척해서 해 오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한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 삼으실 때에 그 영혼 하나에는 성도들의 눈물방울에 떠내려 온 사람입니다. 그 영혼을 위해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울고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눈물로 그를 위해 불어줄때 그 성도들의 눈물방울 위에 떠있는 사람이 바로 구원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교회의 장로들, 교회의 지도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영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많을 때에는 그 눈물이 교회의 밑바닥에 스며들어 그 눈물을 머금고 성도들이 거기에서 변화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요. 쓴 뿌리들은 그 눈물을 먹고 말라 죽고 주님이 심으신 알곡들은 그 눈물을 머금으면서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람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교회. 이 교회에 붙여 주신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께 젓 붙여진 영혼들을 위해서 여러분은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목회자가 이 강단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오늘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갖고 이 교회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위대한 영광이 나타나면 나는 내일 아침 사라져도 좋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에 눈물을 보태는 성도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기도로서 주님의 교회에 영광을 회복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마지막 세 번째에 보니까 기도를 맞혔을 때 불이 내려왔는데 그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번제물과 제물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목회자와 성도들의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번제물은 불태워드리는 제사에 소용된 제물이었고 이 번제는 우리 자신을 모두 불살라 주님께 드리는 헌신을 일차적으로 의미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만약에 교회에 대한 이 교회를 생각하고 이 교회를 향해 많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자신을 제단 앞에 받히는 번제의 희생이 없으면 불이 내려와도 태울 제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자익의 유익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실제적이고 실체적인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서 무엇인가 덕을 보려고 하고 유익을 얻으려고 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교회로 장사를 해서 이익이나 챙기려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아름다운 한 지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를 온전히 드려서 헌신하는 곳입니다. 자기를 드리고 자기를 포기하여 온전히 헌신하는 곳. 이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말이 많은 곳에 당신의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없이 당신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 그 위에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의 시몬 문둥이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식사하기 위해 초대를 받으신 것 같았고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고 그리고 바리세인인 시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식사 하실 때에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부었고 그것은 300데나리온이나 나가는 것이었고 오늘날 시가로 환산하면 3,000만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의 향유였습니다. 제자들은 푼수 없는 여편네가 돈을 낭비한다고 욕했고 그것을 팔아서 만약에 돈으로 바꾼다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연한 논리로 이 여자를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이 여자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저 행동으로 조용히 옥합을 깨뜨려 예수께 붓고 눈물로 예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감사와 고백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제자들의 논리는 예수님께 무시당했지만 말없이 섬긴 이 여자의 희생적인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께 칭찬 받기를 "이 여자의 행한 것은 나의 장사됨을 위함이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이 여자의 행한 일도 기념이 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이 아름다웠던 여인, 자신의 전 제산을 갖고 와 깨뜨려 식사하시는 예수께 부었던 그 희생과 헌신의 삶을 자신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고 이뤄지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교회에서 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무어냐면 추호도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여러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예수님이 물으시면 나의 사명은 이것이고 그래서 나는 여기서 이 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봉사 하고 싶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마음을 다하여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있는 근무지가 있어야해! 그것이 주일 학교 교사이든지, 장로이든지, 권사로서 한 구역을 돌보든지, 밤마다 교회에서 기도로 밤을 새우든지, 화장실을 치우든지. 어린 아이들의 코를 닦이며 복음을 가르치든지, 근무 중인 곳이 있어야 된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을 받히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에게는 불이 임해도 태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태울 곳이 없는 곳에 하나님께 드릴 헌물이 없는 그곳에 어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항상 주님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에 마지막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예수와 함께 낙원에 갔던 한 강도를 기억할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를 함께 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뵈오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분이 구주인 것과 자기가 죄인인 것과 그리고 죽음 이 후에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분 앞에 고백했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해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일평생 강도짓으로 이웃을 불행하게 하고 하나님께 죄만 짓고 살아온 그 인간을 구원하여 낙원에 이르는 첫 열매를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착한 행실로 말미암아 되지 않는다는 위대한 증거를 이 만물에 찢기 같은 이 죄인을 구원함으로서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그가 십자가에서 마지막 죽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올라갈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일평생 어둠 속에 살아서 인생이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도 모르던 인간이었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복음의 빛이 들어왔고 이제 누구를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깨달았는데 더 이상 이 세상에서의 삶이 허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도 크겠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은 더 큽니다. 천국에서 여러분이 박수 하나 찬송 한마디 보태지 않아도 거기서는 하나님이 절로 영광을 받으시지마는 이 세상은 여전히 죄와 슬픔이 많은 세상이고 무지한 사람들이 하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기에 때문에 여러분이 올바로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만 하면 여기에서 섬기는 섬김을 통해 하나님은 더 많은 영광을 여러분을 통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머무는 동안에 하나님이 여기에서 주님을 섬기도록 불러주셨습니다. 아직 우리의 혈관에 피가 흐를 때 우리의 입술에 아직 혀가 움직이고 있을 때 아직도 우리의 코에 호흡이 남아 있을 그 때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때입니다. 이때에 여러분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좋으신 주님을 위해 여러분 자신을 헌제 제물로 받히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큰 영광 교회에 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이 땅에 가득하게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