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영적부흥 5
목숨을 버리는 목양(요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고등학교 다닐 때 그 사람이 이 테입을 들으면 곤란한데 매일 뒷자리에 앉아서 공부 시간에 무협지만 읽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부시간에 무협지를 읽고 공부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젓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드럼 연습을 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조선일보에서 가끔 나오는데 그것도 한번은 특집으로 크게 반면에 났습니다. 아니 이 녀석 아니야. 도대체 네가 뭔데 조선일보에 나오나. 보자. 그랬더니 역시 학교에 다닐 때만 괴짜가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괴짜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22-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에 뭘 했는가 했나 했더니 전국방방곡곡을 쫓아다니면서 아리랑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흩어져있는 모든 아리랑 연구에 국내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말고 어느 나라에서 아리랑을 연구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세계 권위자입니다. 참 나! 그러더니 며칠 전에 또 나왔습니다. 얼굴도 잊혀지지 않는 게 시커먼 점이 여기 돌쇠처럼 박혀있었습니다. 벌써 그 친구가 또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거창한데 전국에 을릉도까지 퍼져있는 모든 아리랑, 아리랑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서너 가지뿐이고 수백 가지라는 것입니다. 참 대단하지 그것을 전국을 20여년을 돌아다니면서 다 녹취를 해서 아리랑 학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더니 강원도 정선 땅에 20억 원을 들여서 아리랑 박물관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폰서도 나왔다고 합니다. 자기는 거기에 관장으로 취임하겠지. 그리고 이제 아리랑 연구에 그야말로, 전에도 그런 아리랑 연구에 대가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고 동양에도 없고 서양에도 없는 진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거 왜 그렇습니까? 그거 하라고 월급을 주었을까요? 누가 시집 왔을지 모르지만 고생 꽤나 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 때문에 월급도 안 주고 상도 안 주는 아리랑을 찾아서 자기 돈을 들여서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이북이 통일되면 또 가서 아리랑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죽을 것입니다. 평생 아리랑, 아리랑 찾으러 다니다가, 그거 왜 그렇습니까? 그게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대학이나 석사나 박사나 회사에서 부장이 되고 차장이 되고 이런 것보다 최고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삶이 그쪽 방향으로 재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예전에 우체국에 다닐 때 그렇게 우표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방을 두 개 쓰고 살았습니다. 애들 방 하나 주고 부부가 방을 하나 쓰고 그런데 애들 방을 전세로 주고 그래서 애들과 같이 넷이서 방을 하나 쓰는데 그 이유는 방을 전세 놓고 전세금을 받아서 일제 금고를 사서 우표를 보관하려고 아이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왜 그러나 했더니 국산금고에 보관하니까 10년이 되니까 살살 습기가 스며들어서 유표가 변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까짓 우표가 뭡니까? 침 발라서 편지지에 붙이면 없어지는 것인데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생활합니다. 그게 그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애들은 하루에 한 번씩 안 보고 살아도 금고를 아침에 한 번씩 열어보면서 문안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안녕하시옵나이까? 우표마마! 하고 처음서부터 한 번씩 만져본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목양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은 가치관에 대해 변형을 경험해본 사람이 목양의 길을 들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삯군의 문제는 그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형이 안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이것, 이것조차고 양떼에 생명을 주는 것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한 가치관의 변혁이 일어나야합니다. 목사의 이야기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좀 해야지 저도 좀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영혼을 돌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은 가치가 재편되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이 일이 결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 생명을 건 사역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힘들지 않고 죽음의 정신이 없이 목양을 하는 사람들의 목양의 현장에는 승리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각 교회마다 교사생활을 아르바이트를 하듯이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영혼의 축복이 없습니다. 목양의 현장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현장은 누군가 하면 생명을 내놓고도 지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진정한 영혼을 돌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그곳에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초월해서 당신의 구원의 능력을 보이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 회복시키시고 그리고 교회를 맡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내 양을 먹이라 그것이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교회의 교인들 사이에서 베드로가 그 예루살렘 교회에 가장 으뜸가는 지도자가 된 것을 모두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한이 베드로보다 낫습니다. 요한은 그래도 막판에 도망갔다 왔습니다. 뭐 오십 보, 백 보지만 그래도 왔습니다. 그 사람이 제자들 중에서는 그대로 유일하게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도망갔는데 나중에는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물과 피가 쏟아지는 광경을 다 보고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대화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래도 물론 오십 보 백 보지만 그래도 요한이 좀 낫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오셔서 양떼를 먹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이제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견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물어본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양떼를 맡아라. 그런데 너 교회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교회와 함께 생명을 바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물어보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었습니다. 네,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내 양을 치라. 그렇게 똑같이 세 번을 반복하셨습니다. 뭐 느끼는 것이 없습니까?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 가문이 어디냐, 율법을 몇 번 읽었느냐? 그렇게 물어보시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니까 목양이라고 하는 것은 양떼를 사랑하는 것이 동기가 되어서 목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때문에 붙잡혀서 목양을 하는 것입니다. 양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목회자들에게 붙잡힌 사람들이 되어서 그까짓 것 무엇에 쓰겠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나중에 여기 젊은 분들 중에 지도자가 될 분들도 있겠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좀 통이 큰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다 자기 손안에서 넣어서 자기한테 인격적으로 붙들어서 그렇게 수하를 만들려고 하는 그런 소인배적인 발상을 버려야 합니다. 어디서든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가 내 말씀을 듣고 혹은 나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가 나를 통해서 알았던 하나님의 참된 지식과 은혜로 말미암아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아름답게 섬기고 살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일이라도 너 이제 그만두고 천국으로 올라와라. 그러면 안녕하고 가야지 될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어느 날 부르셔서 너는 이제 열린교회에 그만 다니고 내가 너에게 특별히 사명을 주니 아무 교회에 가서 특별히 봉사해라. 그러면 떠날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떠나야 합니다. 그 이상의 애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질문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네가 양떼를 사랑하느냐? 쉽게 얘기해서 양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인가? 네가 나를 사랑하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거기에서 비롯된 양떼를 향한 사랑, 이것이 바로 진정한 목양의 기초가 되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를 하건, 전도사를 하건, 교사를 하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목장에 대한 사랑이 식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을 위한 사랑과 목양의 현장에 대한 사랑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습니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이 목양의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베드로를 통해서 보여준 이 대답과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돌보는 이 사역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목양하고 있는 목양의 현장, 그리고 또 그가 돌보고 있는 그 양떼들, 그 모습은 바로 수시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맡고 있는 어린 영혼들이나 여러분들이 돌보고 있는 구역이 지금 어떤 모양이 되었는지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마음이 떠나가고 그리고 어느 날 불현 듯 내가 왜 이렇게 대가도 별로 없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남다른 교회생활을 해야지 되는가. 하는 속삭임이 밀려오기 시작할 때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미 금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가? 할 때 아멘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주님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마음으로 양떼를 돌보고 그 양떼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이 사실이 하나님의 무한한 특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교사를 맡겨보면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나아가는 기회도 되게 하고 혹은 물러가서 침륜에 빠지는 그런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영혼은 그 사람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영혼을 섬기든지 일주일에 한번 나와서 섬기든지 일주일에 몇 번을 나와 섬기든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온 마음으로 영혼을 섬기지 않은 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떼들을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돌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하나님의 칭찬이 없습니다. 선한 일이 없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대한 사랑이나 그리고 이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이나 영혼에 대한 사랑이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나 나를 붙잡고 계신 그 주님이 나에게 목양을 하라고 명하시는 그 하나님의 분부를 내 안에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거슬리게 할 수 없는 이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부르심,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든 인격을 지배하고 그 양떼들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이끄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혼을 돌보는 이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정말 갚아주십니다. 제가 깊이 영혼을 섬기면서 깨닫게 된 사실 하나는 자신 개인에 대한 문제와 영혼을 섬기는 이 일이 정말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섬기기를 소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생명을 다해서 유년주일 학교 하나를 하고, 중등부 하나를 해도 내가 궁극적으로 내가 이 영혼들을 위해서 생명을 주어야 할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으로 목양하면 주님이 그 섬김을 통해서 그 자신을 놀랍게 변화시키십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한없이 많이 듣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수강료를 많이 내고 공부를 많이 해도 교회에서 차돌처럼 반질반질하게 어떤 봉사도 안 하려고 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신앙의 성장은 없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성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받은 그 은혜,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섬김을 위한 계획, 그래서 영혼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려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영혼들을 돌보기 위해서 힘쓰고 애쓰고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 때 그것은 정말 힘든 삶입니다. 대충 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든 삶, 최고의 가치를 한곳에 두고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외롭고 한없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여러 번의 아주 결정적인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결국은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만들어주신 것, 혹은 결단하고 매달리면 안 되었던 것, 또 그 속에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그 모든 것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영혼을 섬기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수백이나 수천 명의 사람을 모아놓고 목양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명을 놓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전도하는 영혼을 전도하는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을 때는 자신이 영적으로 영혼들의 필요와 영혼들이 느끼는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떨어지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안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항상 차고 넘칠 때면 주일이 지나면 또 기다려집니다. 이제 주일이 지났으니 언제 또 양떼들을 만나나. 그런데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면 토요일이 두려워집니다. 또 주일날 나가야되는구나. 누구도 안 나오고 누구도 안 나왔을 텐데 그렇게 가서 한없는 무게와 부담을 가지고 그 영혼들을 섬기는데 섬기기는 뭘 섬겨, 가서 때우는 것이지. 결론은 뭐라고 내는가 하면 ‘내 신앙생활의 모든 곤고함과 무거운 짐은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능력도 없으면서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그 순간 주님의 마음이 주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맛이 간 것입니다. 그게 바로 다음 주 수요일 날부터 설교하려고 하는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낚시 바늘에 완전히 코가 꿰어서 어찌할 수 없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두 번 간증하는 것도 죄송한 일이지만 나는 예수를 믿고도 3년인가 몇 년을 술 먹고 담배를 피고 할 것 다 했습니다. 술하고 담배 먹는 것만 잘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날 술을 잔뜩 먹고 집에 들어와서 인사불성이 되어서 잠을 잤는데도 새벽이면 눈이 딱 뜨면 가야지 됩니다. 어디에 설교하러, 그때는 전도사가 없으니까. 교회가 작으니까 전도사가 없어서 그러니까 목사님이 대권을 위임한 것입니다. 총각집사, 김 집사에게 대권을 위임한 것입니다. 다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매일 하는 말이 집사님은 우리 전도사보다 설교를 더 잘해. 그래서 그 소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설교만 아니면 내가 진즉 그 교회를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그만 두었으면 아마 지금쯤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거기를 왜 나가겠습니까. 나갈 이유가 없는데. 그런데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뭘? 네가 가서 강단에 서지 않으면 그 예배가 무너지는데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보면 무너지거나 말거나 내 집 무너지는 건가. 도망가면 되는데 마지막 거미줄 같은 희망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비록 어제 밤에는 술집에 가서 술을 퍼마시고 친구들과 유행가를 불렀지만 그러나 주일 새벽이면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빨 닦고 그리고 성경 찬송을 들고 가서 설교를 해야지 됩니다. 설교는 무슨 설교겠습니까. 하여튼 그러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는 그런 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하나님이 그런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깨트리시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는 게 그런 죄악과 속박이 무겁다고 내가 집어던지고 도망 나왔으면 정말 오래도록 변화가 안 되었을 사람입니다. 얼마나 아집이 강하고 자기가 강한 사람인데. 정말 변화되지 않았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이 변화를 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생명을 내놓고자 할 때 거기에 위대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최소한 무엇을 얻는가 하면 생명을 다 내놓고 하면 폭발적인 부흥은 못 보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낙망하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열매를 주시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변화시키십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제자가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막 대들고 그래서 처음에는 심장병에 걸릴 뻔 했습니다. 수업을 하는데 어쩌고, 저저고 하는데 처음에는 가슴이 벌렁벌렁 하고 우황청심환 생각이 나고 그랬는데 어떤 때는 똑똑한 애들이 대드는 것은 그래도 논리가 있습니다. 예의는 없어도 논리가 있습니다. 교수님의 이러이러한 점은 잘못하셨습니다. 그리고 대드는데 무식하고 교양도 없는 애들은 그냥 막 대듭니다. 몇 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들었습니다. 몇 번 경험한 다음이었는데 한번은 그런 일을 경험했는데 정말 가슴이 아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섭섭한 적은 없는데 왜 그랬는가 하면 제가 수업시간에 다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남북 상황이 묘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똑바로 해야지 된다고 부흥회를 했는데 공부를 안 하고 부흥회를 하냐고 대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갈라디아서를 읽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1장에서 화가 났습니다. 4장으로 넘어가서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거기서 내 마음이 완전히 녹아졌습니다. 다음에 가서 내가 다 용서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들던 형제가 벌써 얼굴에 이렇게 핏발이 서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서 은혜의 소금물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이 핏발과 힘줄이 주로 빠져서 보들보들한 사람으로 변하는데 완전히 핏발이 서있는 게 셀롯 당원입니다.(?) 데모를 해도 그냥 빗발치게 하는,
그런데 참 놀라웠습니다. 몇 년 뒤에 만났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도대체 하늘에서 성도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칠 일이지 저 사람이 변화되니 웬일인가. 목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해보니까 옛날에 혈기, 그리고 투쟁 이런 것이 씨도 안 먹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강적들을 수없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가 한 마디를 하면 교회 문을 발길로 차는 사람이 없나. 그렇게 강적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죽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시키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걸고 목양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변화시키십니다. 믿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일 우리 유년주일 수련회도 한다고 해서 내가 잠깐 와본다고 했는데 여러분 교사생활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깊이 가치의 변화를 가지고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부르셨고 그리고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부르신 은혜대로 눈물을 뿌리며 마음에 그 심령의 귀한 것을 하나님 앞에 짜 바치면서 충성을 하는 사람이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와서 주여, 내 영혼이 주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 뵙기를 원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처럼 갈망하기를 원합니다. 그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도가 되지, 삶으로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으면 말만 입으로 내 영혼이 주 뵙기를 원합니다. 속사람이 나는 보기 원하지 않아. 속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속사람의 부르짖음과 겉 사람의 입바른 말을 주님께서는 기가 막히게 분별하십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모두 영적으로 가난한 세상 속에서 불꽃과 같은 신앙의 체험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면했던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그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아갈 각오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서 오는 놀라운 특권을 우리는 잠시 후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목숨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목양의 일이 결코 이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파트타임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는 믿을 수 없다 한 어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도 교육전도사였으니까 참 껄끄러웠습니다. 밥 조금 먹여주더니 앉혀놓고 교육전도사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해서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손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1년이나 2년 있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제 있으면서 이야기한 게 그것입니다. 옆에 있던 한 교육전도사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생각이다. 교육전도사로서 정년퇴직하는 사람을 아직 나는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 못 봤다. 그 말은 맞다. 2-3년 후에 떠나지만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교회를 섬기면서 2-3년 후에 떠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섬겨본 적이 없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온다고 투덜대지만 그러나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도 6일 동안 비록 내가 떨어져서 시골에 있지만 한 번도 교회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표내고 내가 나가기 전까지는 밀려오는 끊임없는 이 영적인 부담, 영혼을 향한 이 부담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것이 영혼을 섬기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영혼을 돌보는 이 사역은 결코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때 변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변화됩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거기에 실려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과 더불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영적인 한계를 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며 간절히 몸부림치는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때로는 사역을 하다가 깊은 한계에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한계에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어떻게 하는가하면 자기로 하여금 정상적인 사역이 불가능하도록 밀려오는 그 고통과 죄악보다 더 큰 강수를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우리에게 두 번째 진리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목양을 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뭐라고 그러셨는가 하면 목숨을 버리는데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까?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고 그리고 다시 영광을 받으시는 소망입니다.
우리도 물론 그와 함께 부활할 것을 압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그가 다시 부활하셔서 주님의 나라에 이르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던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런 영원한 언약과 축복의 약속이 깃들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서게 될 때 내 면류관이 무엇이냐. 황금이나 아니면 다이아몬드로 꾸며 쓴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날라다 내 머리위에 쓰여 지는 그것이 내 면류관이 아니다. 무엇인가 하면 내 면류관은 너희다. 주님께서 너는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물을 때 주여 내가 돌보던 양들이 여기에 함께 있나이다. 이것이 면류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섬기는 사역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섬김의 대가를 이 세상에서 얍삽하게 보상을 받으려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그런 기복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내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이 영혼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그리고 나는 이 영혼들을 돌보는 이 상을 하나님 앞에 잃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옥중에 있는 자들을 돌아보고 가난한 자들을 공궤하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은 원리로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가 이 땅에서 영혼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깊이 애쓰고 사랑하는 이 마음 주님께서는 결코 상을 잊지 않으십니다. 어떤 상을 우리에게 주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상을 주실 것이고 내세에서도 우리에게 상을 분명히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상으로 갚아주시든지 간에 우리가 상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우리는 이 영혼을 섬기는 이 일이 허무하거나 허망하거나 아니면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일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이 가지고 계신 아름다운 은혜와 선을 베푸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찾아가서 영혼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간절히 애쓰면서 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몇 달 되었습니다. 우리 김종철 집사님을 통해서 중공에다 우리 교회 설교 테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녹화 테입을 좀 보내달라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그랬더니 6백 명이 교회에 모이는데 목회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지 않습니까?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면서 매주, 매주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다른 나라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입을 틀어놓고 그런 예배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목자가 그립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이렇게 목양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격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감사가 여러분들 속에 넘친다면 여러분들은 그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감사를 어떤 식으로 고백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을 필요로 하는 영혼에 돌보는 자가 되어서 그들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목자를 위해서 자신을 소진하시고 사랑을 받은 이 세상에 목자들이 여러분들의 신앙만큼 자라기까지 자신을 소진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참 사랑을 보여주고 그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에 자유와 누림에 자유에 이르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이번에는 여러분 자신이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목양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런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집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들은 한번 부모 없는데 보내서 죽도록 고생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 음성이 얼마나 그리운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면 망나니들이 변합니다. 요즘 군대는 나일롱입니다. 옛날 군대는 가면 도끼 자루로 막 두들겨 맞고 반 죽는데 그런 군대에 가서 망나니들이 완전히 변화됩니다. 개망나니같이 굴던 형제가 하나 있었는데 군대 가더니 완전히 변해서 군인 월급이 한 달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것을 갖다 2년 넘게 모아서 개망나니가 엄마를 드리려고 반지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완전히 개가천선입니다. 뭐라고 그랬는지 국방부장관에게 수업료를 내고 싶다고 부모가 말합니다. 병역에 의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가봐야 압니다. 비바람을 맞아보고 고난을 당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문간에 서서 손목을 붙들고 다음 주 수요일에는 꼭 나오십시오. 이렇게 귀 따갑게 귀찮게 말해주는 목사가 있는 것을 그 중공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그리워할까요? 한번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시를 한번 보내왔는데 울었습니다. 그 시를 사랑하는 주님 앞에 붙여서 써내려갔는데 자신들의 형편을 그 시로 노래한 것입니다.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님 한분을 바라보며 살아가노라. 그러면서 목자 잃은 양들이 서로 볼을 비비며 서로의 체온으로 의지 삼으며 그 외로운 광야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유리하는 양떼들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셔야 할 모본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스겔서 34장에서 그 목자의 직분을 망각하고 양들을 방황하고 유리하게 내버려둔 사악한 목자들이 받을 불같이 치열한 심판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영혼들이 유리하고 맷부리를 돌아다니며 고생하고 고통을 당할 때 자기의 배만 불리고 자기의 인생의 문제만 가지고 씨름하며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지 않았던 목자들이 받을 그 치열한 심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간절하고 뜨거운 어조로 그 시대에 사악한 종교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이와 같이 양떼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는데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고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지금 이 양떼를 위해서 내 생명을 버리리라. 주님은 나에게 더 새로운 생명을 나에게 입혀주셨습니다.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사는데 그때 우리가 누리게 될 생명은 우리가 누리게 될 생명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한번 깊이 죽어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죽이고 깊이 죽어지면 그러면 그렇게 죽어진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생명의 역사는 이전에 내가 간신히 붙들고 살아가던 이 생명의 역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런 영광스러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을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 죄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느끼고 체험하고 깨닫고 또 알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양떼들을 섬겨야 할 사람들의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보람된 일은 정말 이 영혼을 목양하는 길입니다. 누구나 갈수 있는 길은 아니지만 그러나 참 훌륭한 길,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우리 자신 속에 배워가고 알아가는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나는 이 교회에 속한 여러분들이 부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신실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목자 잃어 양같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목회자도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중국과 그리고 만주와 그리고 수많은 시골과 그리고 이 조국의 교회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남미와 회교도 국가에 이르기까지 넘치도록 가서 그리스도 예수의 이 마음을 가지고 영혼들을 세우고 그 영혼들을 눈물과 땀과 피로 지킬 수 있는 신실한 목자들이 여러분들 속에 수없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그것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 속에서 여러분들은 이 교회에서 혹은 교사로 혹은 구역의 인도자나 혹은 구역장으로 이렇게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로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속에서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설교하는 것을 한 번도 의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특권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난 내가 사례금을 받을 때 여러분들에게 사례를 해야 할 입장입니다. 정말 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 말씀을 증거 하는 일을 통해서 배웁니다. 목양의 현장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불안전하고 그리고 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아집과 교만과 이기심으로 뭉쳐진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나는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주여 내가 깨트려지기 전에는 저 영혼이 안 깨트려질 것입니다. 주님, 나를 먼저 부수십시오. 배웁니다. 정말입니다. 그래도 알만큼 은혜를 받았겠다. 그래도 썼겠다. 제가 교만해지면 한없이 교만해질 사람인데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열린교회 앞에만 서면 나는 왜 그렇게 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작아집니다.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읽을 때면 심취해서 나도 한번 그런 현장에 한번 서볼 날이 오겠지. 그러나 교회를 볼 때 변하지 않는 양떼를 바라보면서 역시 변하지 않는 양떼인 나를 발견합니다.
중고등부를 다닐 때 저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시집가서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 전도사님 저예요. 야, 전도사 사표 낸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목사다. 아, 목사님 되셨나요. 왜 전화했나. 자기 교회에 어느 자매가 꼴 보기 싫어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아니 네 교회에 자매가 꼴 보기 싫은데 왜 나에게 전화를 하니. 그랬더니 교회만 가면 그 애가 자기는 누구, 누구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잘 안다고 매일 자랑하는데 어느 날 잡지책을 보니까 내 사진하고 글이 나와서 이때가 기회다 싶어 나도 전화해서 유명한 사람하고 한번 통화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그래서 즘 어떠냐고 그랬더니 너무 곤고한데 애가 둘인데 하나는 괜찮은데 두 번째 애가 16개월이 되었는데 완전히 난리를 치는 애라서 힘들다고 해서 기도를 하지 그랬더니 제가 석 달인가 몇 달 동안을 이 아이가 정말 양순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애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어떠니 그랬더니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해주셨다고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순종하는지를 하나님이 생생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내 아들이 절대 순종하지 않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 나가게 하신다고 합니다.
똑같은 심정을 봅니다. 변화되지 않은 지체를 향해서 누가 비난을 하거나 그런 사람도 없지만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맡고 있는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여러분들이 변화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안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얼마나 개판인지를 그 양떼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그것을 보여주면 이 사악한 양들이 집어치우니까 가끔 가다가 이제는 내가 체질이 아니야. 이렇게 한계 상황에 올 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는 사건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에고, 떠나지 못하고 또 섬기면서 살다 보니까 영혼을 가르치기 시작한지 23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말 깨트려지고 변하면 이 일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상급으로 주십니다. 새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나에게는 생명을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 많은 영혼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또 다른 생명을 주셔서 그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끔 만들어주십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 사람들은 우리를 다 잊어버렸어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리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영혼을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했던 주님의 귀한 도구들이 되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것입니다. 그러니까 갈짝 갈짝 하는 것 가지고는 목양이 안 됩니다. 생명을 내놓아도 될까 말까 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교사로 쓰든지 아니면 교역자로 쓰고 싶으면 학벌도 보지 말고 다른 것 보지 말고 하나면 됩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정말 그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영혼을 변화시키는데 힘이 있습니다. 정말, 그리고 그 변화시킨 힘이 영혼들에게 나타나서 그 영혼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 속에 나타나서 죽었던 자신의 심령을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아멘!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정말 영혼을 위한 이일들을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그 일 말고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교회가 굴러가는 이 일은 교회니까 굴러가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행정이 교회는 좋은 것입니다. 꼭 은혜를 못 받는 사람들이 목회자하고 행정적인 일로 부딪히는 것인데 깊이 개입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영혼들이 변화되어서 새 사람이 되고 역사가 일어나고 그 속에서 자기가 변화됩니다.
바울이 어떤 과정에서 나는 매일 죽노라. 삼층천에 올라가서 “나는 매일 죽노라.” 그랬습니까?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도다.” 어디서 그랬습니까? 사우나 목욕탕에 누워서 그 말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어디서? 피비린내 나는 목양의 현장에서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세우는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귀한 것을 다 드리며 살아가는 그 현장에서 자기가 죽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오기 충만하고 젊은 혈기가 충만하던 사람이 성자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주님의 나라에 가서 주님을 뵈올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모되었습니다. 뭐가? 다메섹의 체험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런 체험도 은혜를 받은 그 사람의 삶의 과정 그 자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있으니까 그런 놀라운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믿습니까?
또 한 번의 은혜는 그런 목양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그렇게 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기 어려운 그 가치에 자신의 온 생명을 걸고 거기에 모든 꿈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의 그러면 이 세상에서 받는 참 위로는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그러니까 주님이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훌륭하게 이 세상에서 목양의 사명을 감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을 버려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삶을 살아가셨지만 그러나 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던 원동력은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보다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가 축복과 사랑을 이 세상에서 경험한 것입니다. 미래의 상급과 미래에 받을 훌륭한 축복만 가지고는 이 세상에 목양을 하며 부딪치는 그 치열한 도전과 거기에서 오는 뼈를 깎는 것과 같은 갈등과 그 영혼을 섬기는 사이에서 오는 극심한 고통과 압박을 다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재적으로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십니다.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게 하십니다.
제가 신학교 들어오기 전서부터 시작해서 교회에서 거의 전도사처럼 섬겼습니다. 유혹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돈을 더 준다고 하는 곳도 있었고 어떤 때는 너는 교수가 될 사람이니까 공부를 더 많이 해야지. 그래도 내 마음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한 교회에서 5년 한 교회에서 8년 한 교회에서 7년 그러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된 하나의 깊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지고 영혼들을 돌보는 이 일에 매어서 씨름을 하다보면 하나님이 매일매일 우리에게 그런 사명을 감당해나갈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사랑과 위로를 우리의 마음속에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이런 신비로운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잠시 교회를 쉬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안 되었습니다. 5,6,7,8개월 한 넉 달 정도 교회를 옮기면서 이제 공부를 하기 위해서 교회를 쉬었습니다. 그것도 기도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뒤에 연결이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넉 달 동안 교회를 쉬는데 기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절박한 기도제목이 사라지고 추상적인 기도제목만 남습니다. 자, 내가 모나고 못된 인간이라는 것을 부딪치지 않고 가만히 골방에서 생각한 것과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섬기다보니까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이 시대의 교회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시대의 교회를 위해서 뭘 하는 게 있어야지 가슴 아픈 기도가 나오지, 누구말대로 이제 교회 봉사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공부 좀 열심히 하려고 교회를 섬기는 일을 났더니 느는 것은 TV프로 아는 것밖에 없었다고 그러는데 간절한 것이 없는데 무슨 간절한 기도가 있겠습니까.
그 전에는 신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눈물로 다닙니다. 왜 직장에 다닐 때는 공부하고 싶어서 울면서 다니고 교회에 다닐 때는 교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그러십니다. 그런 속에서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큰 위로와 사랑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렇게 영혼들을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기도를 배우게 되고 그리고 참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인격적으로 영혼들을 돌보는 방법들을 배우게 되고 주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과 마음이 어떠한지를 배우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교회에 돌 던지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 깰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눈물로 이 시대의 상처를 씻겨줄 수 있는 목양의 마음을 가진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목자의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주님의 넘치는 위로를 이 목양의 현장에서 충만하게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이 만들어주십니다. 믿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정말 세상에서 월급 많이 받는, 월급 많이 받아본 적도 없지만 교수라고 돌아다닐 때는 잘못된 게 없습니다. 원래 학교 선생의 마인드 자체가 분석적이고 비평적이어야지만 먹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그러면 그것은 붙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지 봐도 다른 사람이 넘어가는 것을 흰 것을 검다고 말하고,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할 수 있는 독특한 시야를 가진 분석적이고 비평적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살아가다가 그때 중등부인가 고등부할 때 안 나옵니다.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해요. 계속 줄어듭니다. 막판에 선생님들은 다 퍼졌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책가방 들고 밤이 캄캄하도록 산동네부터 뒤집어 돌아다니면서 그 문을 두드릴 때 사람은 안 나오고 개만 뛰어나오고 그렇게 다닐 때 거기서 문도 안 열어주고 부모라는 사람이 자꾸 와서 우리 애를 괴롭히지 말라고 우리 애는 3학년이니까 공부를 해야지 된다고 하면서 문 삐끗 열고 쾅! 닫을 때 정말 겸손해집니다.
아! 정말 우리와 같은 인생을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구원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것이고 그리고 내가 바로 저렇게 목자 없는 양같이 불순종하며 살아가던 인생을 내가 무엇이관데 나를 하나님이 구원하셨는가. 그러면서 골목을 이렇게 내려올 때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이제는 막 세상에서는 무슨 사람이고 내가 뭐 이론을 많이 가지고 그래도 다 소용없습니다. 한없이 겸비해집니다. 그러면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할 때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왜 내 현실 속에서 거절당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내가 체험했습니다. 복음을 싫어하는 영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영혼들을 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영혼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나의 무능에 기이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겸비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이 기도, 나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때 영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나가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이런 넘치는 위로를 신실한 목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이렇게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그 참다운 사랑을 깨닫게 하고 당신이 가지고 계신 그 무한한 생명과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고 그런 놀라운 축복들을 누리며 변화된 삶을 살고 어두운 세상을 찬란한 불꽃처럼 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중심이 우리에게 맡겨진 그 양들을 향하고 그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이 일이 우리의 삶에 최고의 가치가 되어 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제목 따로, 우리의 삶 따로, 응답 따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위로는 주를 위해서 고난을 받아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어지는 것입니다. 눈물을 씻기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은 주를 위해 흘리는 눈물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싸매시고 치료하셔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주를 위해 마음이 찢어져본 사람, 영혼을 위해서 가슴이 아파본 사람,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께 직접 버림을 받으시기를 자청하셨던 그리스도 예수의 넣어주신 사랑을 인하여 상처를 받아보았던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변화와 위로와 그리고 함께 하시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말 영혼을 올바로 목양하는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도전과 얼마나 많은 시련과 다른 길을 걸어가면 지지 않았을 무거운 부담과 그리고 가슴에이는 무거운 짐들과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이 길을 걸어가시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지지 않아도 될 그 쓰라린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가 왜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그 동족들에게 버림을 받으셨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왜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했습니까? 왜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가 만약에 갈릴리에서 문짝이나 짜고 집이나 지으면서 그렇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건축업에 종사하면서 그렇게 사셨더라면 그분은 아마 동리에서 환영받고 그분의 인품이 온 유다와 갈릴리에까지 알려져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한 시대에 선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독특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특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그 양떼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목양하고 그 영혼들을 하나님의 그 모든 풍성함과 은혜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받으시고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나가는 일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세상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동생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동족이 그를 버렸고 그가 사랑한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없이 이 목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쓰라진 아픔과 그리고 고통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왜 만약에 이 길이 눈물이 없이 걸어가고 고통이 걸어가고 영광과 대접을 받으며 걸어가는 길이라면 이 목양의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진실하게 이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그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지 되기 때문에 목양의 현장에서 더더욱 그리스도만이 교회에 진정한 보배요, 나의 참 친구시고 이 세상에서 부모와 내 가족과 내 친구와 내 사랑하는 교인들이 내 양떼들이 다 내 마음을 몰라주어도 오직,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구원했네
주의 사랑은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목양을 해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성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목양의 길에서 자신의 신앙을 모두 팔아버리고 파산한 자와 같이 되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목장을 더럽힌 사악한 삯군으로 평판을 하나님 앞에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서 주께서 나를 구원한 그 목자의 사랑이 오늘도 나 같은 죄인을 감화시키시고 이 길을 걸어가게 한다고 믿으며 오직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아니하고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고 목자의 마음으로 당신의 뒤를 이어 양떼를 위해 자신을 버리기를 소망하며 걸어가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을 때가 있는가 하면 쓸데없는 오해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갑옷 속에 든 칼과 같아서 깊이 묻혀있지만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양떼를 섬기려고 할 때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많은 고통과 고난과 아픔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목양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난 울어야 될 일이 없습니다. 웃다가 죽어도 다 못 죽을 세상인데 슬퍼해야 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영혼을 섬기면서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의 아픔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을 섬기며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걸어가는 그 사람을 사단은 가장 미워합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간에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대부분 물러가서 침륜에 빠지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혹은 보태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고 우리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 위에 공중으로 띄어 보기도 하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좌절시킵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저 개인으로도 이런 목양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있습니다. 걸어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수많은 내 마음의 가시들을 발견합니다. 그 속에서 견뎌내며 살아갈 수 있는 그 이유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망아 나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원수야 너의 울부짖음이 누구에게 있느냐. 원수야 너의 부르짖음이 누구를 향한 부르짖음이냐. 왜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 시련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그리고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풍성하고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살아가는 가운데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목양을 대신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특별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은 그 인격 안에 우리에게 생생하게 계시 되었지만 그 사랑이 놀랍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며 그 속에서 감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인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그래서 인생을 다 산 다음에도 나의 나 된 것이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알고 보니까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해나가면서 이 풍진 가시밭길과 같은 사역의 길, 섬김의 모든 길, 신앙의 모든 길을 걸어온 그 모든 비결이 내 결심과 그리고 내 힘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에게 베푸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이런 목양의 길에 들어서서 영혼들을 섬기는 이 일을 감당해나가게 하였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주님이 능하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와 권세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목숨에 관해 말씀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버린다.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지만 그러나 나는 스스로 버린다. 이게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어 가시는 모양은 이 세상에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죽어가셨지만 그러나 그 죽음이 이 세상의 죄인들의 죽음과는 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으나 그것은 사단의 세력에 그 생명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즐겁게 주님의 손에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헬라어 성경은 말하기를 내 목숨을 버린다는 이 말을 나는 내 생명을 내려놓노라. 그것이 가장 존귀한 것으로 그에게 부여받고 있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하나님 안에 있는 영혼들에게서 발견하자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그 영혼들을 위해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몸을 낙헌제로 드리신 이것 때문에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이렇게 생명과 구원을 얻고 누리며 오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께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무엇으로 쓰시든지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이미 주님의 것이므로 주 홀로 우리를 쓰시고 주 홀로 우리의 인생을 마음껏 주님을 위해 소비해주시도록 그렇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한 이유와 원동력을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목자와 양의 시리즈를 마치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우리를 이어두운 세상에서 목자 잃은 양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같이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셔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던 그리스도 예수의 그 고귀한 목자의 사랑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한없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삼아서 어찌하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목양 아래서 살아가는 이외에는 이 세상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우리를 손짓하고 유혹하는 모든 유혹에 대해서 귀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허락하시고 우리가 이 속에서 목자의 지도를 받으며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연약할 때 함께 양떼를 돌보며 볼을 맞대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이 거칠고 어두운 세상에서 참 하나님의 양떼를 사랑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배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그 하나님과 교회를 세워주신 그 주님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교회 안에서 밖에서 목자로서 섬김을 필요로 하는 그런 연약하고 길 잃은 수많은 양떼들을 기억하면서 그런 지역과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목자 잃은 양이 아니면서도 목자 잃은 양 같은 사람들, 불쌍한 심령들을 부여안고 그들을 참된 사랑과 올바른 길로 인도해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고통 많고 연약함에 둘러싸여있는 신앙생활이 모두 끝날 때 이 세상에서 목자였던 사람들, 양이었던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붙잡고 자기와 또 자기의 양떼들과 함께 완전한 목자이신 어린양 예수를 주님의 나라에서 한 없이 찬송하며 그리고 모두 한 양떼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모순이 많고 어려움이 많고 고통과 슬픔이 많은 이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게 보전하는 길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목양 아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한 교회의 목자의 목양 아래서 살아가는 것임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목양의 정신을 가지고 교회의 영혼들을 섬기고 흩어진 영혼들을 다시 모으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리즈가 여러분들에게 던져준 마지막 교훈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