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와 그리스도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요 1:7).
목사가 누구일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습니다. 그의 직무는 정말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그 일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될 사실은 아무리 많은 종류의 일이 목사에게 혹은 목회하는 중에 있을 지라도 가장 본래적인 사명은 하나다 하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에요 오늘날 목회라고 하는 말은 아주 애매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불려 교회를 짓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환자를 심방하고 교인들을 돌보고 교육하고 심지어는 교회 평화를 위해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놀아 주는 일까지도 목회라는 범주 속에 들어가게 되니 그 한 없이 많은 일들인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모두 부차적인 일들이에요 그 일들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를 미뤄놓을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그 한가지가 설교하는 일이에요 16세기부터 시작된 영국 청교도들의 목사에 대한 자기 인식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의 인식은 확고했습니다 우리 목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피뿌리고 죽어간 선지자들과 신약에서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다가 순교한 사도들의 후예다 여러분은 뷔폐에 가서 무순을 먹어본 적이 있을 거에요 무순은 무와 비슷하지도 않아요 근데 신기하게 그것을 씹으면 무맛이 나요 만약에 목사인 제가 무라면 여러분들은 무순이야 근데 종자는 같아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비록 목사로서의 모양은 못갖췄고 지식이나 경험이 미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을 씹어보면 그 속에서 목사의 즙이 나와야 해요 그 목사를 목사로 만들게 하는 그 즙이 뭐냐 그거를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시대는 점점 어려워지고 저는 여러분들을 볼 때 참 가엽습니다
(예화) 제가 알고 있는 형제 한 사람이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왔고 그리고 교회 개척을 용감하게 시작을 했습니다 돈도 많이 있어서 건물도 사서 그렇게 교회를 시작을했습니다 한 2년 후에 만났습니다 굉장히 많이 겸손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회 2년에 배운 것이 무어냐 그러고 그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인상깊은 말을 남겼어요 “김목사님 나는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다 목회가 안되는 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행정을 저렇게 하니 교회가 될 일이 있나 설교를 저렇게 못하니 교회가 모일일이 없지 교역자 생활이 저렇게 도덕적이지를 못하니 교회가 성장할 리 없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 “2년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교회는 원래 안되는 거다 되는 것만 이유가 있고 안되는 건 이유가 없다 ” 근데 여러분들이 나가서 이제 교회를 할 시기는 그 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울 시기에요 제가 열린교회를 개척한 지 17년이 지났는데 제가 단연코 얘기할 수 있어요 17년 사이에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까 참 마음에 걱정이 너무 많이 되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이야기해주고 싶은게 있어요 사람들은 꿈타령을 해요 비전타령을 해요 꿈을 가지고 목회를 해보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근데 사실은 꿈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성경적으로 보면 꿈을 버려야 해요 다메섹 가는 길에서 사도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깨뜨려졌을 때 뭔 꿈이 있었겠어요 살아오던 자신의 모든 것들이 다 부정되었는데 무슨 꿈이 있겠어요 단지 중요한 것은 다메섹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확고한 것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이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신학적인 커다란 충격이었잖아요 예수는 나무에 매달아 죽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건데 지금 살아나서 자기 앞에 계신 거에요 사람을 살리는 건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거고 하나님이 살리신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거에요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인정해주실 사람이라면 왜 저주 하셨으며, 저주를 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다시 인정해주셔서 살리실 수 있었을까 그것이 신학적인 고민이었죠 그래서 내린 해결이 뭐에요 그분이 죽으신 것도 사실이고 다시 사신 것도 사실인데 그렇다면 그의 죽음의 의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의미가 아니라 거죠 거기에서 대신적 죽음 아 그분이 죽으셨지만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형벌 받을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거구나 그걸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자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위격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의 위격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이 구약의 모든 성경의 이해가 한 번에 열리면서 폭포수처럼 그의 인격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던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외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이 된 거에요 내가 몇 달 전에도 총신에 가서 학생들에게 얘기했어요 졸업을 하고 복음 사역을 한다 그러는데 그대들의 마음 속에 외치지 않으면 안될 그 무엇이 있느냐 이거에요 내가 단언코 이야기 하는데 이제 교회가 안되는 시대에요 내가 어제도 젊은 목회자 만나서 목회 접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는데 지금이 그런 시대에요 그런데 바보같이 꿈만 따라가는 거야 꿈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고 비전을 가진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이런이런 계획을... 그게 지가 세운 인생의 목표고 자기 실현의 계획이지 그게 하나님의 뜻하고 뭔 상관이 있어요 그거는 후발적인 거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증언이 이 안에서 불타고 있어야 된다 이거에요 그것을 확 쏟아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 자체가 자기의 설교 사역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되야 되는 거에요 그것을 통해서 효과가 나타났냐 안나타났냐 사람들에게 그거를 인정을 받았냐 못받았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때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목소리를 외치실 적이 있는 거에요 그러한 불이 이 가슴 속에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세례요한은 ‘하나님께로 보냄 받은 사람이 났나니 이름이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이 확실하게 해야 될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복음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 있어서 다양한 특성들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복음주의는 설교를 믿어요 설교를 믿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설교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을 믿는다 이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의 말씀의 종들을 통해서 주님을 알고 그 깨달은 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토해 놓을 때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고 그래서 교회가 형성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은 이사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을 때 그 제단의 숯불로 그 입술을 정결케 한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소명하셨을 때에 그는 아마 어린아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소명을 받았을 때 제일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떤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모릅니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설교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이 자체가 영적인 일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이 설교의 영광이 조국의 교회 뿐 만 아니라 세계의 교회 속에서 점차 쇠퇴하고 있어요 그리고는 목회의 방법들만이 강조되고 성공이 유난히 강조되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목회를 잘해서 교회를 크게 만들고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를 원해요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정을 받고 그리고 경계를 넓히고자 해요 이것은 사실은 바벨론적인 생각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많은 수와 그리고 커다란 규모를 가지고 하나님을 알리는 나라가 아니에요 만약에 하나님이 그런 백성을 택하시고 싶었으면은 중국 같은 나라를 택하셨어요 했어요 그런데 왜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두 줄 밖에 안나오는 그 손톱만한 나라를 택하셨겠어요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어두운 밤바다에 수천개의 조명탄을 쏘아야지만 비로소 풍랑을 만난 배들이 항구에 피하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등대 하나만 제자리에서 깜박이고 있어도 수백 척의 배들이 풍랑을 피해서 항구로 안전하게 대피하는 거에요
그러면 바로 교회의 설교의 사명이 바로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설교자가 그래 중요한 거에요 그래 내가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거에요 여러분들이 지금은 비록 전도사님으로 봉사하지만은 혹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 있지만 가슴속에서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불타고 있어야 되요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들을 씹어보고 선지자의 싹이 보인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요 사도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요 그게 학벌입니까? 외국에서 받은 학위입니까? 그게 무슨 이 세상의 지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영적으로 뛰어난 거인들에게는 학벌을 묻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웨슬리가 무슨 학위까지 공부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위대한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가 박사학위가 없는 것도 기억하십니까? 칼빈이 여러분 어디에서 학위를 받았는지 기억하는 분들이 여러분 가운데 기억하는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요? 우리는 그런 거 상관없이 그 분들을 존경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이에요
신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 였어요 채플 시간이 됐는데 굉장히 학식이 깊으신 젊은 교수였어요 올라갔어요 설교를 하는거에요 본문을 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 본문을 읽으신 다음에 설교를 했어요 설교를 시작하나 했더니 그 다음에 예화를 들기 시작했어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분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대학에 다니는데 집에 와서 인사를 하고 그리고 겨울에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즉사를 해버렸어요 슬픔을 딛고 일어난 뒤에 아들이 받은 거액의 보상금을 대학의 장학금으로 내어놓았다 설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그 고결한 자기 희생과 그리고 그 많은 돈을 학교에 내놨다는 거 이걸 계속 자랑하는 거에요 그건 설교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여기에서 ‘그는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그랬는데 희랍어 성경에는 ‘페립투토포스’ 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그거는 뭐냐하면 ‘그 빛에 관하여’ 에요 아까 말씀드린 그러한 설교는 한 빛에 관한 설교에요 한 빛은 이 세상에 많아요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이 있어요 그거는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이 없어요 오늘날 여러분 조국 교회에서 거의 회심이 사라져 가고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은혜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만날지 모르지만은 자기의 죄에 대해서 심오하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게 되었다는 회심의 경우를 그렇게 자주 보고 있습니까? 그런 회심의 경험이 사라지는 이유가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요한은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온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그 사명을 오늘날 우리도 계승하고 있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과연 그 빛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까 윤리적인 설교는 영혼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감동을 주어서 그래서 그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태도는 바꾸게 할 수 없습니다 또 태도가 약간 바뀌었다고 할찌라도 그것이 진정한 영혼의 변화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보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종교입니다 신학은 바로 인간을 부분적으로 고치고 죄의 증상들을 겉모양만 치료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죄의 뿌리 자체를 드러내어서 그것을 완전하게 고치는 그것이 바로 신학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놀랍게도 조국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설교가 놀랍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스스로 설교자가 되었거나 혹은 회중이 되었을 때에 회개하라는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그런 장중한 설교의 외침을 스스로 토하거나 혹은 여러분들이 심각하게 그러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시대정신입니다 우리가 신학의 정통 그리고 보수주의 혹은 성경중심주의를 아무리 말해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정통은 죽은 정통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 받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도 절박하게 설교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는 절박한 마음 저희의 인생의 고통이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분의 하나님 되심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일 그것을 통해서 인생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현저히 부족하지 않습니까
세례요한은 그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질대해서 증거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증거한다는 이 말은 법정적 용어인 것을 알고 계시죠 증언입니다 법정에서 증언 할 수 있는 자격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해 전에 저는 재판의 과정 중 네 살짜리 아이의 증언이 채택이 되어서 그래서 판결을 뒤집는 재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 살짜리는 독립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나이인데 이 아이의 증언이 법정에 채택이 되어서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증인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변호사의 자격과는 다릅니다 변호사는 법을 많이 공부해서 지식을 갖추면 누구도 변호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사건의 현장에 있다가 온 사람이어야 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사건 현장에 있었습니까
제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우연히 어느 학생의 책을 이렇게 넘겨보니까 이런 글씨가 써있었어요 나는 이 세상의 법정에 서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내 일평생 그 분의 누명을 벗겨드리리라
현장에 계셨습니까 그것이 22:30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저에게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목사님 그게 뭡니까 도대체 현장이 뭡니까 우리도 기독론을 배웠고 성경을 읽었고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그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에게 속죄의 효과를 가져오는지 정도는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증인으로서 충분한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조지 위필드라고 하는 18세기 전설적인 영국의 설교자가 자기의 설교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들이 칼빈 주의자든 알미니언 주의자건 마귀는 그런 것에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여러분이 무엇을 믿고 경험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미니우스 주의자에서 사상적으로 세뇌가 되어서 칼빈주의자로 넘어온들 마귀는 그것이 자신의 왕국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을 알 뿐입니다.
또 다른 말쟁이들이 생겨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체험된 칼빈 주의자에요 저는 그렇게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은 일본의 바둑의 역사에 보면은 토혈국이라는 게 있어요 그 기보가 아직 전해 내려와요 둘이 바둑을 두다가 고수들이 둘이 바둑을 두다가 한사람이 지게 되었어요 너무 억울하니까 으아 하다가 확 하고 피를 토하고 그 반상에 엎드려 죽어버렸어요 오락도 그렇게 하는데 오락도 그렇게 하는데 그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설교 할 때는 어때야 겠어요
1740년 스코틀랜드 캄버스 랭이라는 곳에서 커다란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때에 한 젊은 설교자의 십자가 설교를 들으면서 노인네 한 분이 앞자리에서 한없이 울고 계셨어요 머리가 하얀 노인이 그 지방에 있는 신학교의 교리학 선생님이었어요 그러면서 그 분이 그런 말을 남겼어요 “나는 신학교에서 일평생 그리스도의 속죄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속죄하시는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
(찬양)마지막 피한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한국 교회를 이끌어온 두 개의 신앙의 기둥이 있어요 하나는 종말신앙이고 하나는 십자가 신앙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이제는 그 사랑을 입은 우리가 그 분을 위해서 죽을 차례입니다 하는 고백이에요 요새 절대 안불르는 찬양 한 장이 찬송가 속에 있는 거 알고 계십니까
(찬양) 복음들고 나선 이몸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니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소돔같은 거리에도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나는 아무 모임에서도 한 번도 불리워 지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최근 십년동안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한국 교회의 영적인 근육이던 가장 중요한 그 한 뿌리를 오늘날 잊어가고 있는 것이에요 풍족한 물질생활과 여유가 있는 선교환경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마치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는 부자라 풍부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던 그런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물질 생활이나 이런 면에 있어서는 옛날과 다를 꺼에요 아마 여러분 개척을 한다고 할 때 ‘아 그러면 굶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 거의 없을 꺼에요 옛날에는 사실 이었어요 제 전도사 때만 해도 나 신학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잊혀지지도 않는데 소고기하고 돼지고기의 맛을 완벽하게 잊어버렸어요 교인이 소고기를 하나 댓돌위에다 놓고 갔어요 교회 안에서 사찰처럼 살았는데 그그거를 고추장으로 볶아서 먹었어요 제가 고기 사준 거 잡수셨나 그래서 아 고추장에 볶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까 그 좋은 한우를 왜 고추장에 볶아 먹냐 그러는데 먹을 때까지도 나는 그게 돼지고긴 줄 알았어요 지금 여러분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 때보다 훨씬 더 힘든 세상이되었어요 이말이 얼마나 진실인지는 여러분들이 오늘 당장 수업끝나고 성경책 들고 아파트를 누비면서 두드리면서 “예수를 믿으십시오” 라고 한 이십집만 두드려보라 이거에요 현실이 밀려올 꺼에요 그러니까 개척을 안하고 어디 돌아가시는 목사님 있는 교회 없나 하고 다녀요
간절히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되야 해요 그런 그리스도 예수를 이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만나게 해주시는 분은 성령이에요 성령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신학 위에 성령의 깊은 은혜가 부어져야 되요 그리고 절대로 여러분들이 정말 영적인 사람들로서 능력있게 목회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친구들하고 여러분 기준을 맞추지 마 상관이 없어요 너무나 기준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맞추면 안돼 나처럼 한 4백년을 뛰어서 존 오웬 같은 영적인 거목을 딱 만나고 거기에 자기를 비춰 그러면서 치열하도록 온전한 삶을 살고 그리스도와 합일을 이루는 삶을 사는 거 온전히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이에요 이런 치열한 삶 속에서 가슴을 찢는 기도가 나오는 거에요 그리고 그 속에서 그 말씀을 자기의 삶 속에 적용하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사는 가운데에 비로소 거기에서 피묻은 설교가 나오는 거에요 어느 잡지사에서 설교가 뭐냐 그래서 한 사발의 피다 그게 설교다 이거에요 한 사발에 울컥하고 나오는 피다 그것이 설교에요 그리고 이 안에 그러한 그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증언이 이기기 피처럼 맺혀 있어야 해요 한처럼 그래서 그걸 피처럼 확 쏟아놀 때에 하나님과 자신이 온전히 하나 된 가운데 진리의 말씀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이되요 그럴 만한 조짐이 지금 여러분들이 큰 교회당이 아니라 주일학교 학생들 2,30명 모아놓고 거기 세워놔도 그 냄새가 벌써 나기 시작해야 한다 라는 거에요 기도 많이 하세요 난 그게 제일 안타까워 여러분 같은 때 하루에 세 시간은 기도해야 되요 그 젊은 나이에 밤새도 그 다음날은 까딱 없는데 산이고 올라가서 간절히 하나님한테 매달려야 해요 이 세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선지자의 심정이 되야 해요
(찬양)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혼 탄식 소리가 들려와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