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을 기대하심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녹취자: 원수연
이 아주 짧은 성경구절이 최소한 네 가지의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시작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고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려서 이 세상에서 이런저런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기대, 미래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전망, 그 다음 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물질, 이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혹은 내가 그것을 하고 싶으니까, 자기 성취를 위해서, 이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 세상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직업의 기반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오늘 성경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아주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에게 감격적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구원 사건을 통해서.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급료를 받고 하든지 급료를 받지 않고 하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동기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구원의 감격이 기초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고 또 그런 일의 순수성,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우리 안에 넘쳐야 합니다. 바닷가에서도 우리가 잠깐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교회가 이만큼까지 오는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일하셨습니다. 정말 불꽃같이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가 급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역을 돌아보면 급료를 많이 준다고 절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 아닙니다. 적게 준다고?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죠?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가 동기가 되어서 그 기쁨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이 쓰임 받는 것이 구속의 은혜에 너무 감사할 때 그 때 충성스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예전에 교역자들, 직원들, 충성스러운 사람들 많이 있었는데 성격이 유별난 사람도 많았습니다. 나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련회를 오면 모두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왜? 모두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 그 은혜가 나를 구원하여 교역자가 되게 하고 직원이 되게 하고 그런 것입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이렇게 단순한 구도를 가지고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는 어디로든지 목적이 있게끔 인도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생을 너무 길게 보면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겨울에 살얼음이 살살살살 얼어있는 징검다리를 기억해보십시오. 멀리 바라보고 걸으면 반드시 미끄러져 물에 빠집니다. 그냥 한걸음 한걸음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밟고 순수한 동기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길을 보이시면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그것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에 대한 고백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능하게 하신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랬습니다. 무슨 뜻이죠? 사도 바울이 다메섹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거꾸러졌을 때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의 초석을 놓는 사람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런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알건 모르건 섬기는 삶의 동기나 방식을 바꿔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이것이 순교가 가까워졌을 때 쓴 것입니다. 인생 말년에. 그런 순교가 가까운 인생의 말년의 지점에서 자신을 생각해보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능하게 하신 겁니다. 능하게 하셨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내버려두셨으면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뎠고, 무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유능하게 하셨고, 그 다음에 이길 수 없는 것들을 이기게 하셨고, 그래서 자기보다 훨씬 더, 자신이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하나님이 변모시킨 것입니다.
내가 말하자고 하는 것은 충성된 삶을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유능하게 하십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의 교회가 사람이 조금 능력이 모자란다고 괴롭히고 쫓아내고 그리고 조금 유능하다고 너무 사람을 눈에 티가 나도록 차별대우를 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이 좌절을 느끼게 하고 그러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라고 하는 존재가 한 인간으로 한 그리스도인으로 공동체 안에 속해있는데 내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성도들이 내 인생이 불쌍해서 사랑으로 나를 품어줘서 그냥 여기 얹혀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한 인간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체성 있는 삶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든지, 심지어 친구들이 모여서 노닥거리면서 선술집에서 밥을 먹어도 그 모임에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입니다.
내가 회심하기 전야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느 철학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슴에 다가왔던 강한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인생의 바탕이 무엇이냐? 내가 누구냐? 세계는 누구냐?” 이런 질문도 중요하지만 가르침이 아주 크리티컬했습니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네 앞에 맞닥뜨린 삶을 살면서 이웃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너 자신을 발견하는 길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동네에 집들이 이렇게 있었습니다. 골목이 이렇게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철거되어 가지고 저 서울 변두리에, 지금은 변두리가 아니고 중심이 되었습니다. 변두리에 땅을 주니까 집을 쭉 지은 겁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습니다. 당연히. 수도가 안 나오니까 집집마다 펌프를 놓는 겁니다. 공동우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펌프로 물을 긷는데 하수도가 없습니다. 하수도가 없으니까 하수도를 어떻게 만드냐면 저쪽 집에서 하수도를 관로를 뺍니다. 가운데다 길 한 가운데를 파가지고 이 정도 되는 놋관이라고 하는 관을 묻습니다. 그러면 생각을 해보십시오. 온갖 밥풀, 찌꺼기, 하수도에 부을 것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막히겠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면 한 10m쯤 간 다음에 웅덩이를 팝니다. 사람 한길 정도 되는 웅덩이를 팝니다. 그러면 물이 밥알 찌꺼기랑 내려오면 10m마다 하나씩 큰 웅덩이가 있는 겁니다. 거기에 가라앉는 겁니다. 가라앉으면서 물은 스며들고 찌꺼기는 가라앉고 그 위로 물이 흐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하수도가 내려가서 저 아래에서 물을 그냥 건천으로 길가로 빼서 동네바깥으로 흘러가게 두는 겁니다. 냄새가 악취가 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그것을 1년에 한번 씩 다 뜯어내고 청소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관이 비가 와서 흙 같은 것으로 막히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수도가 집으로 막 올라오는 겁니다. 그럴라치면 온 동네에서 한 가구당 한 사람씩 사람을 보내야합니다. 못 보내는 사람은 일당을 보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모여서 땅을 다 파고 관로를, 한길 되는 더러운 슬러지를 다 꺼내고 거기 들어가서 철사를 집어넣고 10m 바깥에 맨홀에서 다시 넣고 돌리면서 흙을 밀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깨끗이 청소하고 다시 뚜껑을 두고 흙을 덮는 작업입니다.
나는 우리 집 대표로 나갔습니다. 나갔는데 그 철학자의 글을 읽은 생각이 또렷이 나는 겁니다. ‘내가 정말 여태까지 가족에게도 별로 쓸모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내 인생의 무게만을 생각했지 누구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살았구나.’ 그리고 사람들이 제일 들어가기 싫어하는 그 슬러지에 여기까지 들어갔습니다. 상상을 한번 해보십시오. 냄새가 일주일 가더라구요. 온몸에 배어서. 동네 사람들이 젊은이가 들어가서 슬러지에 빠지면서 일을 하니까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온몸에 나중에 두드러기 같은 것도 나고 얼마나 안 좋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우리는 자칫하면 우리 인생의 많은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너무 짊어진 나머지 유능하게 살아가야 할 에너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자기에게 집중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 보세요. 그래서 살면서 생각 없이 살아도 안 되지만 고민하는 것과 실제적인 삶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것이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이 생각이 있는 삶을 사는 거지 이것을 짊어지고 그냥 고민 속에 한없이 맨홀에 빠져들듯이 빠져 들어가서 자의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마귀에게 눌린바 되어서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우울증 걸리고 그러는 겁니다. 도움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인생을 말년에 돌아보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능하게 해주신 겁니다. 자기가 유능하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정말 유능하게 해주셨구나. 능력 있게 해주셨구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발전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박희천 목사님 우리 교회 처음 오셔서 직원 예배 인도하셨죠? 스승의 날 그 때 즈음이었을 것입니다. 일부러 모셨는데 예배시간에 내가 당신 교회를 섬겼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울먹거리셨습니다. 내가 왜 이런 뜻으로 이야기 하냐면 하나님은 그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진짜 몹쓸 인간이라고 그랬는데 정말 훌륭한 사람도 있고 사람이 정말 훌륭하다고 그랬는데 쓰레기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통합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내가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가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내가 이렇게 눈물이 고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있든지 없든지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그게 뭐냐면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섬겨야지만 우리가 계속 유능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이야기합니다. 충성된 사람만이 자기를 능력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내가 힘이 모자라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천천히 걸을 때는 못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아주 파워있게 걷든지 뛰면 자기 체력이 정말 형편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능하게 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이 사람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리더로서의 신념이 있습니다. 뭐냐면 ‘마음이 떠난 유능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붙어있는 유능하지 않은 사람이 더 쓸모 있다.’ 나는 사람에게 막 매달린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한두 번 매달려보다가 아니다 생각되면 과감하게 딱 끝냅니다. 우리 집사람 보고 내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의지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런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께 자기가 맡은 직분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교회를 세우실 때 하나님은 다양한 직분을 주셔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보석처럼 빛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매우 어려운 내용이 여기 나옵니다. 그게 뭐냐면 “나를 충성되어 여겨” 그랬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직분을 맡기신 것은 다메섹 가는 도상에서 거꾸러졌을 때 맡기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임금들과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이방인들과 이방인들의 임금들을 위해 복음 전하는 자로 너를 세우고 너는 내가 택한 그릇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충성되이 산 것은 그 다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논리적으로 충성되게 여기셔서 직분을 주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처음에 평신도였다가 서서히 서서히 승진해서 마지막에 죽을 각오로 순교하려고 하니까 누가 그를 사도로 임명해주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KJV에는 이게 ‘counted’ 이렇게 나오고 NIV에는 ‘considered’ 이렇게 나옵니다. count는 뭐죠? 계산한 겁니다. consider는 뭡니까? 간주하는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세우실 때 충성이 대가라는 뜻이 아니라 충성할 것으로 간주하시면서, 충성할 것으로 믿으시면서, 충성할 것으로 계산하시면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직분을 맡기신 것이 충성의 대가가 아니라 직분을 맡기실 때에 충성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고린도서에도 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럽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직분을 맡은 자들은 충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충성된 것이다.’ 똑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사로 교사로 장로로 여러 가지 간사로 일꾼으로 불러주셨을 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능력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너무 잘 아십니다. 그리고 똑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왜 필요하겠어요? 누군가는 기계를 고치고 만지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은 기름을 묻히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런 거 전혀 필요 없이 깨끗한 방에 혼자 앉아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고, 말하자면 인터넷을 해야 될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할 일들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맡았든지 간에 하나님이 그에게 직분을 주셨을 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는 충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랑의 동기가 되어서 그분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충성,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게 기대하시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충성되게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생각할 수 없었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결코 그 인생을 부자로 만드신다고 약속할 수는 없지만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영광을 얻게 하시고 기쁨과 삶의 보람을 느끼게끔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사실 기독교 텔레비전에 대해서 별로 좋은 인상을 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CGN TV에 가서 몇 번 강의를 하고 직원 수련회가 있어서 갔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알싸했습니다. 직원이 120명이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운영해 가냐고 그랬더니 우리 직원들 모두 선교에 헌신된 사람들이랍니다. 팀장쯤 되어가지고 월급을 아주 많이 받는 사람이 190만원이랍니다. 그러면 가족들하고 어떻게 생활하냐고 그랬더니, 그래서 이 형제들은 직장 취업하자마자 결혼을 위해서 기도할 때 직업을 가진 아내를 구한답니다. 그러고 나서 직원들 수련회 가서 보면서 마음이 알싸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결국은 떠난답니다. 퇴사를 하고 다른 곳에 스카우트 되서 가기도 하고 방송국에 가기도 하고 그런답니다. 그런데 남아있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굉장하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맨 처음 교회를 해오던 생각을 하면서 지금도 그런 정신이 남아있지만 우리를 그렇게 정말 미친 듯이 일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바로 그런 것이었는데 하나님을 섬긴다는 생각, 우리가 만들어내는 신문 하나, 책 하나, 그리고 녹취 하나, 이것이 많은 사람에게 선교가 된다는 것, 그런 보람으로 우리가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를 하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실 때 충성되이 일할 것을 기대하시면서 맡기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렇게 잘 충성하면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자신도 아주 유능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쓸모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