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와 소떼를 살피는 유익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잠27:23,26-27)
녹취자: 박영미
오늘 우리가 읽은 26절, 27절은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는 구절로 시작되는 23절부터 마지막까지의 한 단락 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지혜자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합니다.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겠느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한 마음이 듭니다만, 제 생각에는 아마도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그러면서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고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겠느냐’ 하는 말씀이 단지 목축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대대에 전해 내려오는 유업에 대한 사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한 순간에 영화를 누리고, 어느 한 순간에 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의 인생을 영원히 안전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시는 자신들의 삶의 가업, 유업, 이것들을 통해서 가족들이 먹고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으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고 말합니다. 풀은 재물과 대조됩니다. 재물은 써버리면 없고 영광은 날아가 버리면 다시 오지 않는데, 풀은 베어서 짐승에게 먹여도 그 다음 날 가보면 다시 풀이 자라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상 대대로 하나님께로 물려받은 유업의 충실함 가운데 살아가는 삶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으로 적용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많은 양떼들을 돌보고 살피는 것과 이 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목축업 속에서 양떼와 소떼를 살피는 것 사이에 아주 유사한 면들이 많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혜자는 양떼와 소떼를 살피면서 살아야 될 이유와 그 축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어린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될 것이다’고 말입니다. 목축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어린양을 잘 길러 가을에 털을 깎으면 그것을 가지고 이불을 만들고, 누비솜이 들어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옷도 만든다는 뜻입니다. 또 염소를 잘 길러서 새끼를 많이 낳아 번식하게 되면 그것을 팔아 밭을 산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신약시대에 교회에서 어린 양을 살피는 목양사역과 관련지어서 본다면, 여전히 훌륭한 하나의 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양들의 털이 자랍니다. 그러면 그 양의 털을 벗겨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양의 털을 빨리 벗기는 대회를 엽니다. 그들은 정말 달인이었습니다. 길게 자란 털을 깎아내면 홀딱 벗은 양이 됩니다. 많이 하는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200마리 양의 털을 깎습니다. 한 마리를 깎는데 10달러 정도를 주니, 숙달된 사람들은 물량이 많은 때에는 하루에 2000만 원 정도의 돈을 받습니다. 그렇게 깎아낸 털로 수많은 옷을 지어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돌봅니다. 이 영혼들을 잘 돌보아서 잘 성장하고, 털도 잘 나고, 발육도 잘 되면 이것은 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속상한 일이 있고 굉장히 힘들거나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면 백색 수염이 납니다. 그러다가 며칠 쉬고 잘 먹고 기운을 회복하면 수염이 다시 검은 색으로 변합니다. 머리카락도 가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서 성분을 분석하면 이 사람이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안에 언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인지를 찾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털은 이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내적인 감정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들을 잘 먹이고, 잘 자란 양의 털을 깎아 옷을 만듭니다. 그것과 같이 양떼들이 정말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잘 자라면 사실 그 양떼들은 그 영혼들을 돌본 사람들에게는 옷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옷은 수치를 가리는 것, 좋은 행실, 선한 행동․마음․ 몸가짐, 심지어는 영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영광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잘 돌보고 이끌고 가꾸면서 그 영혼들을 주님의 말씀 안에 굳게 세울 때, 그 영혼들의 올바른 행실과 삶은 목양하는 우리들에게 영광과 기쁨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만한 섬김이 됩니다.
‘염소는 밭을 사는 데 값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목축업의 측면에서 보면 염소를 팔아서 밭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 보면 영혼들을 잘 목양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들면 그들은 많이 헌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아주 요긴한 일꾼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을 넉넉히 쏟아 부어서 주님의 교회를 힘에 지나도록 섬기는 일꾼들이 되게끔 만들어주십니다.
27절에 보면,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선교를 하던 선교의 원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할 수 있는 한 성도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자비량하여 자신의 선교사역을 수행하겠노라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변화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애쓰는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을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간이라도 떼어서 사도바울에게 주고 싶어 할 정도로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잘 돌보게 되면, 그 영혼들은 그 지체들을 잘 돌보아 그 지체들이 은혜가 충만하고 진리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이로써 그 영혼들은 우리로부터 계속해서 섬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한 은혜로써 젖을 먹이듯이 어린아이처럼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목양이 잘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양떼들이 또 어린 양떼들을 돌보고 젖을 먹이며 그들이 바치는 헌신을 통해서 교회가 넉넉히 유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이러한 영적인 축복들로 가득 찬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선교사업도 하고, 전도도 해야 하고,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의무들을 행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양’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샘솟듯 솟아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삼손도 블레셋과 싸울 때에 일천 명을 나귀의 턱뼈로 때려죽인 후에는 주저앉아 낙심하면서 ‘이제 내가 저 짐승처럼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자신의 목마름을 하나님 앞에 한탄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위대한 것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을 때에는 훌륭하게 쓰임을 받지만, 이렇게 연약하여져서 주저앉고 싶은 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불러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게 하실 때에 당신의 교회 속에서 좋은 목양을 받게 하시고 또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희생하여 양떼들을 돌보고 먹이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를 연약한 인간들을 통해서 북돋게 하사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찬 공동체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힘과 유익을 얻은 후에 우리들이 이렇게 저렇게 봉사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요, 믿음 생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매 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를 따라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고 북돋으셔서 당신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목회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진실하고 풍요로운 목양이 있을 때 우리의 사역도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우면 뭐합니까? 누가 그 일을 위해서 수고하겠습니까?
(예화) 오래전에 제가 미국 뉴욕에 있는 어느 교회에 갔습니다. 그 교회에는 강사영접위원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위원장이 공항으로 영접하러 나와서 ‘영접위원장입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저는 그런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위원장에게 우리 교회엔 그런 게 없다고 하니, 그 위원장은 자기 교회에 강사가 워낙 자주 오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관성 있게 섬겨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워 놓은 차는 suv차량으로 엄청난 큰 차량이었습니다. 차에 타보니, 안락한 느낌은 안 드는데, 절벽에서 굴러도 웬만하면 안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차량이 몇 CC인지 물었고, 그 위원장은 6500CC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굉장히 비경제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름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더니, 기름 1ℓ넣어봐야 4~5km 밖에 못 간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강사 영접 위원장이기 때문에 이런 차를 샀다고 합니다. 귀하신 목사님들을 모시고 오는데 다치기라도 하면 모든 원망이 자신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차가 얼마인지 물었더니, 6500만원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6500만원이면 6만 불인데 그렇게 싼 차가 아닙니다.
그걸 보면서 사실 저는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차를 태워줘서가 아닙니다. 그 차 아니고 작은 차 탔어도 안 죽습니다. 내가 더 살아야 되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일에 대해서 자신을 재편하는 점이었습니다. 대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여건입니다. ‘제가 이런 이유 때문에 할 수 없고 불편합니다.’라고 하는데, 무제한의 사고방식을 가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 옆으로 이사 오시면 되지요’ 라고 하면 ‘그러려면, 아이들 학교가 멀고, 두 번 갈아타고 직장에 가야 합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무엇이 우선순위인가에 따라서 그게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화) 제가 방배동에 있는 신학교에서 강의를 열심히 할 때, 어떤 수강하고 있던 집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게 와서 ‘교수님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이 서울로 오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 물었더니, 자신이 밤마다 숲속에서 늘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 길거리에서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학교 가까이 와서 학교를 섬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리를 옮기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생전 처음으로 27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매일 지하실, 단칸방에서 지내다가 넓은 곳으로 오니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방배동으로 이사를 오려다 보니 그 집을 팔아도 여기에 오면 반 지하 집 밖에 못 얻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시커먼 집을 얻었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안한고 안락한 것만 생각하면 이렇게 못하겠다고 말입니다. 옛날에 우리 교인들이 방배동에 있을 때, 저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교회 가까이 이사 오라고 하였습니다. 봄에 한 번 심방하고 나면 열 댓 가정씩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도봉동, 방학동, 군포 등 이런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32평 아파트에서 사는데, 교회 근처로 오면 반 지하 집 밖에는 못 얻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방배동은 우리나라 1%로가 사는 동네인데 어떻게 거기에 비교 하냐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 가까이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있으면 다른 것을 접을 수 있는 것, 그게 신앙이고 그게 선교의 동기, 목양의 동기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렇게 양떼들이 잘 되고 주님의 말씀아래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자라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목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우선순위, 우선가치가 되면 그들 때문에 우리의 목회사역에 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목회 사역이 정말 행복하고 보람 있을 때는 영혼들이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하게 살아갈 때입니다. 어떻게 보면 목양 할 게 없어요. 가르쳐주기만 하면 되고 시키기만 하면 그대로 하니 얼마나 행복하고 기쁩니까. 그런 복을 주님의 교회에 가득 채우는 것이 여러분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