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완덕의 삶(2)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5-17)
녹취자: 김경애
이제 모두 끝나는 어수선한 시간인데 지금 또 다른 것을 가지고 하면 여러분이 머리를 쓰시게 하는 것 같아서 ‘완덕의 삶’, 어제 저녁때 설교 중에 다 못 다한 내용을 ‘완덕의 삶 2’로 해서 말씀을 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악기를 아시는 분들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사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644년에서 1737년까지 살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은 현악기 제조를 전공하는 이태리의 장인이었습니다. 그의 라틴어식 이름을 따서 붙인 스트라디바리 혹은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바이올린 제작자로 잘 알려졌는데 이 사람은 바이올린만 제작한 것이 아니라 첼로, 비올라, 하프, 기타, 만도린 등 약 1100여점의 악기를 평생 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바이올린만 약 600여점 정도가 남아있는데 지금 현재 실제로 연주에 사용될 수 있는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는 바이올린이 50점정도 된답니다. 우리 교인중 하나가 여기 영국에서 옥스퍼드에서 유학을 하면서 아주 재능 있게 잘 성장을 잘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한국에 올 때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가지고 와서 교회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45억짜리입니다. 그 아이의 집안이 그것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안 되고 영국은 배려심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콩쿠르를 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한 2년 정도 그것을 대여해줍니다. 그것을 대여 받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연주를 합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최근에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지고 커피를 먹던 자매가 내려놓고 커피를 먹는데 누가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이 친구가 100달러인가 150달러에 팔았다는데 나중에 그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것을 알았고 다시 주인을 찾아준 일이 있었다는데 그렇습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이태리에서도 당시에 스트라디바리우스 유일한 명기는 아니고 그 외에 다른 악기들도 있지만 실제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악기들이 제작되었는데 어떻게 스트라디바리우스만 그것을 비롯해서 몇몇의 악기만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는 나무의 선정이 악기의 성능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아주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견디면서 오랫동안 조금밖에 자라지 못해서 안으로 안으로 옹골지고 차지게 성장한 나무를 갖다가 그 나무를 충분히 말리고 그 다음에 소금에 절이고 해서 그것을 악기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용되는 나무 자체가 이미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모두 평탄하고 좋은 길을 걸어갈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섭리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 중에 평탄하고 안이한 길을 걸어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기에는 그 삶의 부러워 보이는 요소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사람들 보기에 사람들 앞에 영광을 받는 것 같은 그런 긍정적인 모습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어마어마한 연단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만 모세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이었습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연단의 삶을 살았습니까? 첫날 언급했던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연단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상품 같은 인생이 있고 작품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상품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나오면 아무 가치가 없어집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잘 안 나옵니다. 그래서 직원에게 가지고가서 손 좀 봐오라고 했습니다.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만년필을 고치는데 200,000만원이 든답니다.’ 그 만년필은 280,000짜리였습니다. ‘그것을 고치시는 것보다 새로 사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는데 그냥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몽블랑 중에서 제일 싼 만년필인데 동생한테 14년 전에 선물을 받은 것인데 이것을 280,000원을 주고 바꾸면 동생의 그 따뜻한 사랑의 흔적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200,000원을 주고 고쳤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컴퓨터였다면 안 그랬을 것입니다. 컴퓨터였다면 사정을 보지 않고 팔아버리고 새것을 샀을 것입니다. 컴퓨터는 그렇게 가지고 있으면서 옛날에 제가 처음 교수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노트북을 샀는데 우리 지도교수님이 자기네 집으로 불러서 식사 대접을 하면서 당신이 새로 산 컴퓨터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 좋아 보이는데요!’ ‘말 마 이것 굉장히 비싼 거야!’ ‘그래요?’ ‘용량이 상상할 수 없어 어마어마해!’ ‘얼마에요?’ ‘80메가야!’ 요즘 메모리스틱 하나도 30기가바이트가 나오는 세상인데 그때 제가 가지고 있는 노트북은 20메가 짜리였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며 15분을 쓰면 다 썼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묻고 싶은 것은 그때 그 교수님이 그렇게 감탄하던 노트북 컴퓨터를 아직 가지고 있겠습니까? 그것이 상품입니다. 더 좋은 상품이 나오면 쓰레기처럼 아낌없이 버림을 받는 것이 상품입니다. 그런데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 한번 유럽을 여행하면서 뭉크의 절규를 본적이 있습니다. 새카맣게 줄을 서있습니다. 그 미술관에 30유로를 내고 들어갔는데 그 작품 하나에만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 작품이 1,100억짜리라고 그랬습니다. 나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1,100억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뭉크는 어떻습니까?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과 비슷한 모작이 나오면 나올수록 진품의 가치는 한없이 치솟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품입니다. Masterpiece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 그냥 새로운 목회의 방법이라든지 선교의 효과적인 수단이라든지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면 우리들은 쓰레기처럼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작품과 같은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남들을 따라하는 인생이 아니라 작품과 같은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에게 주신 독특한 길을 존재의 울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존재의 울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사람이 행한 어떤 일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따라갈 수 없는 존재의 격차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커다란 울림이 되어서 비록 그가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왠지 그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자신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룩한 울림을 주는 그런 삶이 바로 작품과 같은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그런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승려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분도 나이가 칠십이 넘으셨는데 참 진솔하게 쭉 써내려갔습니다.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시골에 갔다가 절에 들렀습니다. 절에 가서 잠시 앉아있는데 젊은 스님이 오더니 ‘너는 누구냐?’ ‘저는 서울에서 고등학교2학년에 다니는 학생인데 시골집에 다니러왔다가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 얘야 사람이 산다는 것이 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러면서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집으로 가서 엄마 아빠한데 무릎을 꿇고 출가하겠다고 말을 했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가톨릭집안이었습니다. 너무 황당하니까 ‘무슨 소리냐?’ 하니까 ‘어떻게 잠깐 대화를 나누고 그럴 수 있느냐? 감정적인 것이 아니냐?’ 사촌형님이 마침 와있었는데 일본에서 유학을 하는 중인데 일본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으니까 ‘자신에 대한 자각이 생겨서 그러는데 갈 길을 가게 버려두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하고 칠십이 넘도록 스님의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때 자기한테 와서 몇 마디 말을 건네준 그 젊은 스님이 성철 스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깊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좋아하는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를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내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하려하심이라는 말인데 존재론적인 선포입니다. 그러니까 입을 열어서 말을 하는 것은 언어적인 선포지만 우리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선포되는 것입니다. 어제 가톨릭 사람들이 칼빈 선생에게 와서 종인 줄 알고 불렀다가 머리를 숙이고 돌아가게 만들었던 그런 존재론적인 선포, 울림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들이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존재론적인 커다란 울림이었습니다. 학우들은 강의를 들으면서 저 노인네 말귀도 못 알아듣겠다고 하는데 그분 곁에 오래 있으면 그런 존재론적인 울림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번 들었습니다. 아주 웅장한 울림입니다. 그런 존재론적인 울림이 있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그러진 세상에 우리를 두신 삶의 이유입니다. 세상이 타락했고 현실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공짜로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이 언제 우리를 도와준 적이 있습니까? 역사 속에서 진리가 대중적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까? 어둡지 않고 빛이 말하자면 대중화되어서 어둠이 거의 물러간 시대가 있었습니까? 그런 시대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연단 속에서 존재론적인 울림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Art for Suffering', ‘고난을 받는 기술’입니다. 고난의 기술입니다. 그 고난이 아침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그런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그것들을 극복해내는 소위 이야기하는 ‘크로스 베어링’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그것 때문에 우리의 인간성이 파괴되고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많이 했는데 그것을 신앙으로 승화시켜내지 못한 사람들은 인성이 아주 망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주 거칠고 원한에 맺혀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본인은 잘 모르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잘 받으면서 신앙으로 소화해낸 사람들은 이런 존재론적인 울림이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회를 잘 못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병든 교회, 한 맺힌 인생, 망가진 목회자의 영혼, 깨어진 목회자부부의 관계입니다. 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버지나 엄마가 목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고통을 받고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애들이 보고 자라면 애들이 목회사역이나 선교, 신앙의 가치에 대해서 아주 왜곡된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도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존재론적인 울림이 있는 사람들의 고난의 양이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며 사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목회의 소명을 받고 그리고 목회자로 준비되고 혹은 목회를 하는 모든 과정을 가는 동안에 반드시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만 목회가 수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위 이야기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이 여기에 이미 성취된 고난이 있고 미성취된 고난이 있습니다. 이미 성취된 고난은 인류의 구속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이미 성취되었고 그리고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는 성취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인간은 여기에 보탤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미성취된 고난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깜짝 놀랄만한 표현을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고난을’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의 무슨 남은 고난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고난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가톨릭에서 찢어져 나온 사람들인데 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는 그렇게 찢어져 나왔습니다. 항상 교회론에 대한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을 이렇게 보면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목회자의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목회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잘되고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잘 듣고 따라줄 때 그래서 열심히 교회를 하면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업하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뭐냐 하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정말 지저분합니다. 예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이 여러분도 아마 목회를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당장 목회를 그만두고 싶으신 분이 여러분 중에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일생이 아닙니까? 그런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전부 다 추한 것들 밖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그 교회와 관계를 맺고 계신 그리스도 그분이 성취한 고난은 이미 성취하셨지만 미성취된 고난을 교회에 남겨두셨고 성도들과 목회자가 그 고난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그 일을 뒤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박해와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자기 자신도 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참여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주관적으로 이 고난에 참여해야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죽도록 고생을 하는데 마음속에서는 미움이 부글부글 끓고 한이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진정으로 주관적인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관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Faith', ‘신앙’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눈에 보이는 환경들이 헌신의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 너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의 이유와 원인과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참고, 예수 때문에 사랑하고, 예수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때 제가 늘 마음속으로 경멸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냐 하면 만날 모여앉아서 공부는 하지 않고 노닥거리고 기숙사에서도 사다리타기를 하고 먹을 것을 사먹고 모여 앉으면 왜 그렇게 담임목사 욕을 합니까? 저는 그 모임에 거의 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10m 이상의 거리는 항상 뛰어다녔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학부 4년, 대학원 3년, 7년 동안을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살라고 기회를 주셔도 더 이상은 잘 살 수 없습니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여서 친구들이 과자를 먹으면서 놀아요. 그 모임에 끼지 않으려고 하는데 ‘형 이리 와 봐!’ 앉았습니다. 또 돌아가면서 자기네 담임목사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아무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에게 ‘형!’ ‘왜?’ ‘정말 어떻게 그렇게 설교를 하고 밥을 먹어? 우리 담임목사 말이야! 아 진짜 설교 죽여줘! 그것을 설교라고 할까!’ ‘그래?’ ‘형 나는 말이지 교회에서 매달 30만원씩 사례금을 받는데 내가 정말 진심으로 존경할만한 목사님이 있다면 내가 그 교회에 전도사로 가서 봉사하고 싶어! 내가 그런 담임목사 밑에서 일한다면 30만원 받지 않고 알바를 해서라도 갖다 바칠 용의가 있어!’ 애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이야기했습니다. ‘얘, 아무개야 그런데 만약에 그런 훌륭한 담임목사님이 있다면 왜 너를 전도사로 쓰겠냐?’ 다 뒤집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잠시 후에 우울해졌습니다. 이 친구는 소문났습니다. 뭐가 되겠습니까? 지도자가 이 세상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태어날 이유는 없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어쩌고저쩌고 뭐 좋은 것입니다. 우리 집안은 그런 집안이 아니니까 뭐 그런데 자기는 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과 돈이 있는 장로님 집안으로 장가가고 싶다고 그러는데 우리같이 불신자 집안을 처갓집으로 둔 사람들은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그래도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들을 다 전도해서 예수 믿게 만들고 그리고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외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오래도록 목회하던 목사님이 심방을 가던 중에 길가에서 큰 고목나무를 보았답니다. 갑자기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말고 고목나무 곁에서 고목나무를 이렇게 만져보며 ‘얘야, 너는 목회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에 큰 구멍이 났느냐? 주여!’ 그랬답니다. 어느 해 가을에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 그때도 어느 후배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생명력 있는 목회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왜 어느 교회는 부흥하고 어느 교회는 생명력이 있는데 목회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죽는 것이다. 죽음이다.’ ‘네?’ 자기 죽음 그것이 생명이 있는 목회의 비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타일렀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옛날 개혁성경의 번역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번역을 바로 잡았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사는 것 그것이 오늘 아침에 설명한 2000년에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Actualize'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죽음을 짊어지면서 그때에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몸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오래도록 10년 넘게 하고 있는 사역이 있는데 국내와 국외에 있는 신학교를 방문해서 제가 가서 말씀을 전해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설교 혹은 긴 강연을 하거나 아무튼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책을 한 권씩 주고 그리고 밥한 끼를 따뜻하게 대접해주고 장학금도 줍니다. 저희들이 총신에만 갖다 준 장학금이 6억 정도 됩니다. 바라지도 않지만 'Thank You Letter'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목사님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가서 학생들한테 밥을 사줍니까?’ 그러는데 신학대학 2학년 봄이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너무 가난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학교식당에 갔는데 500원을 내고 식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밥을 주는데 평소와 달랐습니다. 평소에 주는 반찬과 밥에 돼지고기를 맛있게 볶아서 이만큼을 쌓아놓고 아줌마가 그것을 퍼주고 상추도 주고 그랬습니다. ‘아줌마 이게 웬일이에요?’ 20년 전에 총신을 졸업한 선배들이 20년 만에 'Home Coming day'를 하면서 너희들에게 드리는 것이랍니다. 그날 혼자 창가에 앉아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이렇게 나도 이다음에 교회를 하면 형편이 된다면 이렇게 나처럼 곤궁한 신학생들에게 와서 이렇게 대접을 해주겠다고 결심한 것이 실행이 되어서 이제까지 하고 있습니다. 죽기 전까지는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당신이 훌륭하게 쓰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평탄한 길을 걸어오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학문에 있어서 업적을 이루고 혹은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업적을 이루거나 아니면 어떤 인격이 있어서 업적을 이루어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으면 그 시간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혹은 질투하기도 하고 혹은 자기와 비교하면서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사람의 목회자가 똑같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탁월한 존재적인 울림을 지금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을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설교자가 짧은 한마디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깊이 울릴 수 있는 순간적인 감화를 끼칠 수 있기 위해서는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자기가 선포하고자하는 말대로 살아온 가슴 아픈 날들이 있어야지만 그 길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쓰고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평탄한 길로 인도하셔서 안일하게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지금 신학교 졸업하신지 10년, 20년 혹은 30년의 세월이 지났을 것입니다. 신학교 때도 뺀질거리고 살았던 사람들은 그렇게 신학교를 졸업하면 머리는 있어서 공부는 한다고 하고 재능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존재론적인 울림이 없습니다. 뭐냐 하면 사람들이 바보입니까? 설교를 하면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고 인격 속에서 소화된 내용인지 아니면 어디서 베껴온 내용인지 아니면 그 설교하는 순간만 열정에 사로잡힌 것인지 평소에 그 열정을 따라 살아온 것인지는 사람들이 한두 번이야 모를 수 있겠지만 그것을 1년, 2년, 3년씩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모두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연단되어가는 가운데 목회라는 것이 결국 자기완성과 함께 가는 것이 목회의 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시간을 드려야합니다.
저는 신대원 다닐 때의 일이었는데 신대원 다니기 직전 학부에 있을 때였는데 목사님이 전도사로 써주셨습니다.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예’ 그러고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목사님 입장에서는 너무 좋으신 것입니다. 사찰은 사찰입니다. 교역자가 교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시키기도 좋고 교회 청소도 잘되고 말입니다. 석 달 만이라고 해놓고는 사찰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례비도 한몫만 주는데 70,000원인가 80,000원 받던 시절입니다. 얼마나 환경이 안 좋은지 공장을 하나 사서 대충 수리를 해서 예배당으로 쓰고 직원들 기숙사가 있던 방이 여름에는 얼마나 덥던지 루핑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코타르를 먹인 종이로 바른 집이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는데 아무것도 없고 마당하고 우리 방을 가른 창호지 붙인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었습니다. 어느 겨울이었는데 신장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밤중에는 언제나 조갈이 나서 물을 먹고는 했습니다. 머리맡에 사발에 미리 물을 떠놓고 자는데 견딜 수 없는 목마름 때문에 밤중에 눈이 떠졌습니다. 손을 뻗어서 물그릇을 잡고 물을 먹는데 물이 없어진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하고 들여다보니까 얼음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옆의 아내를 보니까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불을 여기까지 덮고 여기가 새빨간 것입니다. 콧김만 계속 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눈이 하얗게 내린 교회 마당을 걸어서 우리 사택으로 가는데 까만 비닐봉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열어보니까 고기였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고기를 지금도 일체 먹지 않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아닌데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요즘은 절제하고 잘 먹지 않습니다. 그것을 고추장에 재워서 볶아서 앉은 자리에서 한 근을 다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어느 집사님이 그러시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제가 댓돌에 고기를 놨는데 잘 드셨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집사님이 놓고 가셨군요. 고추장에 양념을 해서 한자리에서 모두 먹었습니다.’ ‘아니 그 좋은 한우를 고추장에 비비셨어요?’ 그런데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구별할 수 있는 미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몇 해 전에 모교를 방문했을 때 학생회 간부들이 이야기를 해주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학생들이 점심시간마다 150명 정도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하러 올라간다는 줄 알았습니다. 밥을 사먹을 돈이 없는데 그것을 사람들 앞에 너무 누추해 보이니까 그냥 물 한컵 마시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때 마침 통장에 인세로 들어온 돈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학생들이 150명인데 1년을 전부다 합치면 얼마가 되느냐 그러니까 계산을 해보니까 연인원이 8000명 정도 되는 숫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만장을 사주마. 그러고 식권 만장을 사서 학교로 보냈습니다. 그랬는데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이야기를 해주고 와서 가지고 가라고해도 이 학생들이 자존심 때문에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지혜가 없느냐?’ 미국에는 제도가 있는데 아이들이 가난해서 밥을 못 먹으면 학교에서 조용히 학부모를 부릅니다. 선생님이 서랍에서 20매, 30매, 혹은 50매씩 식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것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커다랗게 써 붙여 놓고 ‘식권 없는 사람은 가져가시오 단, 진짜 가난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그것을 가져갑니까?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학교시절에 정말 가난하고 배고팠었습니다. 저는 신학교 다니던 신대원 시절에 80년대 후반에 민주화 운동하던 시절에 매일 데모를 하고 매일 휴교를 했는데 저는 그때 하루에 15시간씩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쓰러졌습니다. 공부하고 일어나면 갑자기 바닥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툭 소리가 나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은 사택에 앉아있는데 비가 옵니다. 비가 와서 빨리 와서 바가지를 하나 갖다놓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니까 저기에 또 떨어집니다. 또 갖다놓았습니다. 바가지가 9개를 갖다놓았습니다. 9개가 완전 숫자인지 9개를 갖다놓으니까 안 떨어집니다. 똑 똑 똑 밤새도록 떨어졌습니다. 그때 마음에 깊이 새긴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일평생 목회자가 되어서 나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동역자들을 사랑하자 그리고 이렇게 내버려두지는 말자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도 맞겠지만 그렇게 실천하면서 살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그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에 생각하니까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참 고생했구나! 그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질생활에 초연하고 신앙이 탁월 했다기보다는 고난 길을 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목회자로 빚으시는 길이라고 그렇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즐겨 부르던 찬송가가 그것이었습니다. ‘세상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즐겨 고난 길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을 다가도록 나와 동해하소서’ 오늘날 교회는 물질에 관한 추문으로 얼룩져있습니다. 목회자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 심할 정도로 물질에 관한 추문으로 얼룩져있습니다. 최근에도 어느 교회의 재정을 맡아서 관리하는 장로님이 2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통장이 800억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이드에 있는 자금이랍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했는데 돈이 많은 장로들과 교인들이 명절이면 들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목사님이 가지고계시면 더 좋은 일에 쓰실 것이라고 두고 갔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20년이 넘게 목회를 해오면서도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정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누가 와서 한 100억쯤 가지고와서 ‘목사님!’ 그러면 내가 획 던지면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신앙생활이나 열심히 하게!’ 그러고 싶은데 누가 박자를 맞춰줘야지 그러지 말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한때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복음에 매여서 이 길에 들어섰는데 인간이라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부패한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면 그가 거룩해져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도 상상을 초월할 수 있지만 그런 일에 있어서 부패해지는 것도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나는 이미 섰다. 나는 이미 온전케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을 때에만 주님의 사람이지 주님이 손을 놓으시면 결코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바로 목회자의 진정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신대원 시절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4년 동안 야간신학교에 다니는 시절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3년 반 동안을 직장을 다니면서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매일 매일 눈물이 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공부를 하고 싶은데 이 가정생활을 책임지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우체국장을 했는데 집에서 6시간동안 차를 타고 새벽기도 끝나고 직장으로 직장에서 다시 학교로 도는데 6시간이 걸렸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생각해보면 그때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신앙공부를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방법을 터득했고 밤중에는 10시 10분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가서 문 닫을 11시 10분까지 공부하고 그리고는 전도지를 들고 내려와서 전철을 타고 전철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몇 번을 맞을 뻔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면 그중에 어떤 사람은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진지하게 신앙을 묻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직장으로 가서 직장에서는 모범적으로 일하고 싶어 했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온 가운데 항상 마음속에는 눈물이 가득 찼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니까 ‘야 이제 공부의 길이 열리겠구나!’ 그랬는데 웬걸 사역이 눈앞에 있습니다. 학교도 야간에 다니겠다. 직장도 다니지 않겠다. 교회에서는 만만한 것입니다. 월급은 파트타임으로 주고 일은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설교준비를 하다가 신학대학원시절에 읽었던 구약교과서를 참고할 일이 있어서 서재에 있는 서가에 서서 그 책을 펼쳤습니다. 김희보 교수님이 쓰신 구약이스라엘이라는 책이었는데 펼치니까 여러 페이지 밑에 똑같은 히브리어로 한 문장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야다 엘로힘’ 그때는 히브리어에 깊이 빠져있었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뭐냐 하면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심경이 괴로웠으면 수업을 할 때마다 그것을 썼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그때 7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한참이었습니다. 신학교는 다른 학교와 함께 휴교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공직생활해서 남은 퇴직금으로 전세를 얻었는데 이것을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집주인이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간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매일 와서 방을 비워달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을 소개해준 복덕방 사람들이 너무 세입자들에게 고통을 받으니까 스트레스로 죽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냥 괴로워하지 않고 주님의 주권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우리 집사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는 시간에는 마음이 맑아지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끝나면 가서 하루 종일 공부만 했습니다. 그리고 4시 반쯤 되면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학교 신관 5층 채플실로 올라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학생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지만 하여튼 쥐어짜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짧으면 한 시간 반 길면 두시간반을 기도했는데 여름이었는데 온 몸이 땀으로 흠씬 젖었습니다. 옷을 벗어서 짜면 한 컵씩 물이 나올 정도로 땀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선하심과 대조되는 나의 악함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말 'I am sorry for I am.' ‘내가 나여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부르짖어 탈진하게 될 때까지 매달리는 날에는 뱃속내장 구석구석까지 남아있는 나태와 불결함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기도했더니 아들은 덜컥 최루탄 가스를 맡고 기관지염에 걸렸습니다. 결혼하고 7년 만에 낳은 아들입니다. 신 대원 3학년 때인데 병원에 가는데 수입이 전혀 없었습니다. 조그만 신학교에 가서 히브리어를 강의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거기에서 주는 십만 원, 십오만 원이 생활비의 전부였습니다. 한번 갈 때마다 치료비가 15,000이었습니다. 잊히지도 않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저녁시간에 되니까 가방을 메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다시 은혜가 밀려오면서 찬송을 했습니다.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니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또 계단에 주저앉아서 울고 그러면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비밀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말 안합니다. 그것은 아주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제 생애 두 번째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제게 주신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날 개인적인 깊은 기도시간에 하나님이 당신의 위엄과 영광, 초월적인 사랑과 은혜, 이런 것들을 제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신학의 새로운 빛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제 생애 첫 번째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난 날이었습니다. 저의 흑백사진과 같았던 나의 신학지식이 총천연색 동영상으로 바뀐 순간이 엇습니다. 그런 초월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이 제 생애에 서너 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깊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초월적인 생명을 경험하면서 그날 이후의 나의 기도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일평생을 고난의 벼랑 끝에서 가시나무에 붙은 밥을 혀로 발라먹다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아름다움을 증언할 수 있다면, 내가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티끌만큼이라도 아름답게 이바지할 수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기도의 사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를 읽어보셨습니까? 나는 그 책을 8권을 구했고 6권은 한국어 서적이었고 두 권은 영어로 된 원서였는데 두 권 중 한권은 샀고 한권은 선물로 받아서 6번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한 번씩 읽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 사람은 18세기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선교하던 젊은이였습니다. 예일대학 출신이고 21살에 회심하고 24살에 선교사로 헌신해서 29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간 선교사였습니다. 나는 그의 생애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나 나나 똑같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나는 이렇게 짐승처럼 살고 저 사람은 하나님의 종처럼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정말 순결한 삶을 산 젊은이였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읽으시면 눈물이 나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결국은 수십만 명을 전도한 위대한 선교사가 아니라 소수의 인디언들을 찾아서 구석구석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은 폐결핵으로 죽을 때 에드워즈의 딸의 간호를 받으면서 죽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에드워즈의 끈질긴 설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한도 안에서 그의 일기 중 일부를 출판하도록 허락을 받았고 이게 영국에서 출판되었을 때에 수많은 젊은이들을 깨웠습니다. 그때 깨어난 젊은이가 누구냐 하면 윌리엄 캐리, 헨리 마틴, 로버트 모리슨,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했던 존 닐스, 독일의 크리스천 프리비슈와르츠, 이런 사람들이 그 일기를 읽으면서 불타는 선교의 가슴을 안고 세계의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결핵 4기의 몸을 이끌고 기도하러 동산에 올랐고 눈 덮인 언덕에 엎드려서 잃어버린 인디언들의 영혼을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난 언덕위에는 각혈해서 남긴 붉은 선혈이 하얀 눈 위에 가득하고는 했습니다. 그 사람의 일기 중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오늘은 내가 생각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지 하면서 새벽의 별을 보며 숲으로 기도하러 들어갔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 기억이 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하늘의 별들이 총총하였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가운데 4월 20일에 이렇게 썼습니다. ‘금식과 기도를 위해 오늘을 떼어둔다.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특별히 나의 영적인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이 나를 거룩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했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기에 지난 한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나였기에 지금까지 살았고 이제 스물다섯 살의 나이가 되었다. 나의 헐벗음과 죽어있음에, 내가 조금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였음에, 내 영혼은 너무나 괴로웠다. 나는 숲속에서 홀로 이 날을 보냈고 하나님께 나의 영혼을 쏟아 부었다. 오, 하나님! 이제부터라도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 라고 썼습니다.
강의를 맺겠습니다. 설교하고자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의 영광을 위해서 빚어지는 것입니다. 한번이 아니라 일생을 사는 동안 그래야하는 것입니다.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힘은 뭐니 뭐니 해도 군인들에게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최고였습니다. 유대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가 쓴 책에 유대전쟁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록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있어서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투이고, 전투는 피 흘리는 훈련이었다고 말해도 잘못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인간이 만든 이 세상 나라를 위해서도 군인들이 그렇게 헌신하는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회자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 어떻게 나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걷고 있는 이 목회의 길이 고난의 행군 같을지라도 이 연단을 잘 감당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은 우리를 정금 같게 나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자꾸 주위를 돌아보지 말아야합니다. 경주하는 말에게 가리개를 씌우는 것을 아십니까? 옆의 말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너는 네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얼마 전에는 원하는 대로 띠를 띠고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가 죽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띠를 띄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것은 전부 다 순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서너 살 먹은 아이들도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너는 나를 따르라.’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일까? 자기의 길을 가라고 하시는데 무엇일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제 말씀드린 하나님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면서 며칠도 눈물 흘림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