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하는 자의 섬김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왕상 18:12-13)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솔로몬 이후에 나라는 남북왕국으로 분열이 되었습니다. 남쪽은 유다고 북쪽은 이스라엘이었는데 남쪽은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왕조에서 왕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북쪽은 이미 그것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힘센 사람이 나와서 정권을 탈취하면 새로운 왕조가 서고 또 무너지면서 북왕국의 역사는 이어왔던 것입니다.
II. 경외하는 자의 섬김
바로 그때 오므리 왕조의 아합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과 대조되는 대표적인 악한 임금으로 꼽힙니다. 원래 이 사람은 그래도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세벨이라고 하는 아내를 만나면서 이제 불신앙으로 가득 찬 정치를 펼치게 됩니다. 이세벨이라고 하는 이 여자는 시돈 왕의 딸인데 이 여자는 처음부터 바알을 숭배하는 신앙으로 철저히 무장된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시집을 올 때에 이스라엘에 바알교를 선교해야 되겠다는 깊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벨은 이제 이 이스라엘에 시집을 와서 철저하게 남아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말살하는 정책에 앞장을 섰습니다. 이스라엘을 죄에 빠지게 만들었고, 우상 숭배로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영악한 여자였고, 여호와를 믿는 이 신앙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서는 결국 마지막에 문제가 되는 것이 왕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선지자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지자들을 말살하고 마지막에 당대에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야까지 죽이고자 하였던 내용이 열왕기상 19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 엘리야는 피해 다니고 있었고, 그때에 그 아합의 시대에 왕궁에서 일을 맡은 자 가운데 오바댜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번역을 하면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에벳 야훼’의 준말입니다. 이 사람은 오늘 성경이 기록하는 바와 같이 여호와를 그냥 경외하는 자가 아니라 지극히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만약에 아합이 자기의 불신앙을 따라 바알을 섬기지 않는 자는 공직자가 될 수 없다든지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공직에 나아올 수 없다는 규칙을 세웠다면 오바댜의 신앙으로 볼 때에 공직에 나아갔을 리가 없습니다. 배교의 시대에도 문은 열려 있었고 그래서 이 오바댜는 왕궁에서 일을 맡은 유능한 공직자로서 아합과도 개인적인 교분을 나눌 정도로 그렇게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시대에 살면서 오늘날 시대가 악하고 어지럽다고 생각을 하면서 비판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이 시대와 사회를 변화시키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본문을 택하여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오바댜가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지극한 경외심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섬김을 다하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거룩한 선지자를 박멸하는 것이 이스라엘에게서 여호와의 종교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는 마지막 방법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로 많은 선지자를 살해하여 그 손에 피를 묻혔고 마지막에 당대에 선지자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엘리야까지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이 지명 수배가 되어 이세벨의 자객에 목숨을 잃는 위기를 당하게 되었으니 그 밑에 있는 자잘한 선지자들이야 그 안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이세벨의 명령 한마디면 추풍낙엽처럼 칼 아래 떨어져 목숨을 잃어버리는 그런 무서운 시대를 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A. 선지자들을 숨겨줌
그때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 오바댜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합의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혁명군을 결성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 일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객을 훈련 시켜서 이세벨을 암살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였고 그리고 자기의 시대뿐만 아니라 오고가는 자신의 자녀들의 시대에까지 오직 여호와의 종교가 보존되기를 어린 아이처럼 간절히 갈망하였습니다. 그 단순한 마음이 이 오바댜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선지자들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선지자들을 숨겨준 일이었습니다. 선지자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비’, ‘로에’, ‘호제’ 등 다양한 표현으로 쓰이고 아마 그것을 설명하려면 여러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은 이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호와 신앙을 보존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아는 바와 같이 구약 이스라엘 시대에는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시는 신정 통치를 구현해 가는 세 개의 직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직접 다스리는 일을 맡았다면 제사장들은 불결한 죄인이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또 인도하는 사람들이었고,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어서 잊어버리기 쉬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살면서 이해하도록 그 하늘의 이치를 따라 이 땅에 삶을 구현해 나가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선지자라고 하면 예언자를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선지자들이 사역한 내용 가운데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이었고, 하나님이 꼭 필요한 범위 안에서 그들에게 제한적으로만 미래를 보여주셨지 선지자도 자기가 원하는 미래의 모든 일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선지자의 고유한 일은 모세의 율법을 그 시대에 맞도록 해석해서 모세가 지금 살았더라면 어떻게 그 율법의 정신을 따라서 모세의 시대와는 다른 때를 살아갔을까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선지자의 주된 일이었고 그래서 선지자는 바로 오늘날 설교자들이 하는 일과 매우 유사한 직무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모두 똑같은 등급의 선지자가 아니라 아주 탁월한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만 못한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보다 아주 못한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보다도 더 못한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각각 그가 하나님을 만난 그 영적인 체험의 깊이,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지자의 영,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 또 그가 가지고 있는 말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격, 그의 삶, 이런 모든 것을 망라함으로써 그 선지자의 지위를 매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제 이스라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여호와의 종교를 계승해 오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특별히 걸출한 선지자들이 목숨을 걸고 예언함으로써 당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고 여호와의 신앙이 든든히 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이 각기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시대의 말씀을 전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소명을 받고 예언의 영을 받은 선지자들의 수가 그 시대가 필요 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시대 때부터 직임적 선지자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걸출한 선지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훈련 받고 그리고 선지자들의 전통을 따라 설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넓은 의미에서 그들 모두를 오늘 선지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라고 하는 주석가에 따르면 아마도 이 선지자 학교를 통하여 등장한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까지는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어쨌든 선지자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설교하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학교를 통하여 그들이 양산되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와 같은 걸출한 설교자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이 배교의 때에 그런 선지자 학교를 나오고 선지자의 역할을 했던 이 설교자들이 위험 아래 놓여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고,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세벨과 아합은 서슬이 퍼래서 이제 이런 선지자들의 잔당들을 찾기 위해서 온 이스라엘 땅에 포고령을 내렸고, 이제 이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런 사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선지자들 중 100명을 이 오바댜가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50명씩 나누어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굴에 보호하고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었습니다. 살해의 위협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에 이 선지자를 도와주는 것은 공직자로서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오바댜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선지자들을 숨겨주었습니다. 목숨을 건 모험이었고 그리고 아주 커다란, 말하자면 위험한 커다란 위험을 무릅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 대한 지극한 경외심이 이 오바댜로 하여금 선지자들을 불쌍히 여기도록 만들어 주었고 이들을 보호하지 않고는 다음 세대에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신앙의 뿌리를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꺼져가는 이스라엘 나라에 여호와의 종교에 심지를 돋우는 마음으로 선지자들을 목숨을 걸고 굴에 숨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던 오바댜의 행동이었습니다.
B. 선지자들을 먹여줌
어디 그뿐입니까? 선지자를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성경에 보면 선지자들을 먹여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니까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선지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흡혈귀같이 살인하고자 하는 의도에 불타고 있는 이 아합과 이세벨의 감시의 눈을 피해 100명의 사람들을 매일매일 떡과 물을 공급해서 먹이는 이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리고 아마 얼마나 많은 오랜 기간 동안 이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높은 지위였다고 해도 매우 큰 재정적인 부담을 무릅쓴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목숨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들여서 이 100명의 선지자들을 먹이고 또 마시게 하기 위해서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섬겼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세벨과 정반대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이 땅에서 여호와의 종교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는 그 선지자들을 모두 죽여 버려야 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일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선교자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씨를 말려 버리면 여호와의 종교는 뿌리가 마를 것이라고 이세벨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바댜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여호와의 종교를 보존하는 길은 악을 타도하고 이세벨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당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이 선지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돌보는 것, 그래서 어느 시대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때에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을 걸고 증거하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것만이 미래에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신앙이 유지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너무나,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그 선지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공직자로서 높은 지위를 걸고 이세벨과 아합의 반역자가 되어서 처형을 받을 각오를 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서 이 선지자를 돌보았습니다.
자, 하나님이 이 땅을 내려다보실 때에 그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당신의 백성들이 타락해서 나라가 찢어지고 찢어진 그 나라가 또 더욱 불순종해서 아합과 이세벨 같은 짐승 같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고 모든 선지자들을 죽여서 백성들의 귀를 막아버리고 마음을 닫아버려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이방 나라 백성으로 만들어 가고 계실 때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선지자의 무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그들을 숨겨주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공급하며 미래의 하나님을 믿는 여호와의 종교가 다시 창성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하였던 이 오바댜를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선지자를 보호하는 것이 미래의 이스라엘에게서 여호와의 말씀을 보존하는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오바댜는 오직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을 다 드려 목숨을 걸고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30년 전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때에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 복음에 대해 사회가 이렇게 냉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더욱 냉담하게 되었고, 기독교에 대해 더욱 많은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헤치고 살아갈 수 있는 시원한 그 무엇을 발견했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곤고하면서도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고, 그리고 절대적인 도덕의 기준들을 거부하고 진리를 부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버리면 진리가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떠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현실화 되어서 이제는 사람들이 조금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감각적인 사물들에 매달리고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까지 무엇인가 마음이 밖으로 향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한번 미래의 30년 후를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변이 없는 한 우리는 그때에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살게 될 것이고 사회는 훨씬 풍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과 마음까지도 풍족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방황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즐거움을 썩어져 가는 이 세상 것들에 매달기 위해서 몸부림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때에 우리에게 대안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가 아직 가난하고 어려울 때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네 이웃을 물질로 섬기는 것으로 많은 모본을 끼칩니다. 그러나 나라가 북유럽처럼 아주 잘살게 되면 도와줄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 마지막 무덤에 이를 때까지 나라가 모든 일을 도와주기 때문에 타인이 도와주어야 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외쳐서 그들을 자신들의 영혼의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부름 받은 기관입니다. 물론 교회는 도덕적으로 올바라야 하고 한 시대에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고, 정의로워야 하고, 사랑에 넘쳐야 하고 그리고 그 시대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나는 담대히 말합니다. 미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된 사람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할 것이 없다고 나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붙들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우리 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오바댜처럼 살고자 하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 이외에 무엇이 그 시대를 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준비된 하나님의 말씀의 일꾼들 이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무서운 핍박의 시대가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학생들을 돕고 그들이 선지자로서 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로 한 교회가 세워져서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재능과 소명을 따라서 그 일에 헌신하며 살듯이 교회도 마찬가지로 모든 일을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소명과 재능을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국내에서 해외에서 신학교를 돕고 신학교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이 땅의 많은 자원들을 그 신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일군들에게 투자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을 잘 보존하고 그들을 돌보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도록 그리고 자기와 우리와 그리고 그 다음 시대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파할 수 있도록 그렇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도움을 주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하는 것 이외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함께 전파되고 그 모든 지식이 전파되는 그 물결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의 종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정말 그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고 깊이가 있어서 진심으로 자신이 먼저 그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그 말씀을 가르침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주의 종들을 길러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역사의 원리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저는 중국에 갈 때마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런 꿈을 꿉니다. 지금 이 한 학생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가난한 선지자 생도로서 이곳에 와서 훈련을 받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훌륭하게 사용하셔서 그 사람의 소명 안에서 한 교회를 맡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깃들게 할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35년 전 저는 이름 없는 신학교 야간 학교에 다니는 아주 가난한 학생이었고, 누구의 눈에 띌 이유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연약한 청년이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러갔고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셔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만드셨고, 또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목회의 소명을 받아 어디선가 선교사로 목회자로 주님을 섬기고 있고 그들의 제자들도 수없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사용하셔서 그렇게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이 말씀이 없어서 기갈 하는 이 땅, 그리고 이 복음의 황폐한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에 의해서 울려 퍼진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벌판에서 외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도록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죽고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 있으리니 그들을 통해 그 말씀이 전해지고 그 신앙이 또 그 다음 세대에 전해져서 우리가 꿈꾸지 못한 위대한 일들을 그 나라에서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 가슴이 벅찹니다.
미래에 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다음 시대가 변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보존하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한 진리는 울려 퍼질 것이고, 진리가 울려 퍼지는 한 그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은 어디선가 그 진리를 붙들고 하나님을 찾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신학생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한 그런 선지자의 후예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고 공부하는 일에 매진하도록 신실하게 그들을 돕고, 그들을 사랑하고, 오늘 오바댜처럼 섬긴다면 미래에 반드시 어떠한 배교의 시대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은 보존될 것이고, 또 그 보존된 말씀은 온 세계에 확장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한 20년 전에 읽은 글인데 오랫동안 마음을 울렸습니다. 2차 대전이 한참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연합군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영국의 윈스터 처칠이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플레밍이라는 사람이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해서 그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그 일이 있기 아주 오래 전 어느 가난한 학생 하나가 처칠 집안의 문을 두드렸고 간절히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처칠은 기쁘게 그 어려움에 처한 학생을 도와주었고 그 사람이 바로 닥터 플레밍이었습니다. 우연히 등록금 한번 도와준 그 학생의 도움으로 자기가 죽음의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리라고 하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 기울여서 그래서 주님의 종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고 다음 시대에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입니다. 큰 교회, 큰 지도자 없는 큰 교회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극히 그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말씀의 종들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모든 결실들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그런 어려움에 처한 신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눈물로 기도하고 도와야 합니다. 세계 가는 곳마다 저는 그런 꿈을 꿉니다. 지금은 비록 자원이 모자라서 못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노쇠해 가는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간절히 그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 교회에 대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장중하게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지 그 일을 위해서 잘 훈련된 하나님의 일군들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했기 때문에 위기의 시대에 선지자들을 숨기고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보여주었던 오바댜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아끼고 그들을 위해서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