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경주
(2001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01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끝나지 않은 경주(빌3:13上) 2001. 12. 30 주일오전 1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푯대(빌3:13下-14上) 2001. 12. 30 주일오후 14
3. 부르심의 상을 바라며(빌3:14下) 2001. 12. 31 송구영신예배 22
1.끝나지 않은 경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3:13上)
사도가 다메섹으로 간 것은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을 때 그 만남은 사도 바울의 인생 전체를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어놓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는 반드시 붙잡힘이 있었습니다. 그 붙잡힘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에 붙잡힌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 예수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신 사명에 붙잡힌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사울은 유대 종교 지도자로서 길을 걸어가던 촉망받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인생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매시야 일 수 없다고 생각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 자로 이 세상에 오신 구주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자 그의 인생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나서 그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전에 자랑거리들이 이제는 자랑이 아니었으며 예전에 사랑하던 것들을 이제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모르던 때에 어떤 것들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의 간증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히브리인중에서도 특별히 엄격한 율법을 따르는 베냐민의 지파요 그리고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것,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던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있어서는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자랑스러운 자랑거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랑거리는 또한 사랑거리였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서부터는 자기가 일평생 추구해오던 것들이 헛된 것이었으며 자기가 자랑으로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자기가 이전에 유익하게 여기던 것들을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바 된 그것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정말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태어나서 정통 유대인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그 하나님은 결코 사람일 수 없으며 그리고 자신은 이 땅에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단의 괴수로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이제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가 살아났다고 허망한 풍설을 외치며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그는 다메섹으로 달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의 공문을 청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 앞에 자기가 죽었다고 분명히 믿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다시 살아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찬란한 빛으로 그것도 찬란한 영광 가운데 사울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번에 나타나심 앞에 엎드려져버렸고 그는 거꾸러져서 죽은 자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던 그 많은 사람들의 경험처럼 그렇게 그는 엎드려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엎드려져서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빛으로 오신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구주이시며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자기와 자기 동족들, 그리고 이 세상 인류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알량한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토대로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삶에 대한 견해들이 쌓여가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도 이해될 수 없는 것인데 그분을 믿는 그 순간에 이번에 사울에게는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이신 그분이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 사신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신앙의 경험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더더욱 여러분보다도 더 복음을 아는 지식이 더 없었기 때문에 경험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어마어마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으며 사람으로 오신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분을 믿을 때 그분이 이번에는 영으로 자기 안에 계시다는 것들을 경험했을 때 그 신비함을 무엇으로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이후로부터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알면 알수록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신실하게 하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죽으신 그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자기를 변화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예수를 더 많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어서 그 고상한 지식 때문에 자신의 삶에 코페니쿠스적인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으로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비밀은 그리스도 예수께 있다고 믿었으며 그분을 아는 지식에 그 모든 성패가 달렸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을 최고의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메섹에서 그는 만나주셨을 때에 붙잡혔던 첫 번째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에 갇히기까지 그리스도 예수께서 누구인지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건 삶의 목표였고 더욱이 그런 그리스도와의 친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삶에 가치요 보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해서 그는 전심으로 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계속 축적되었고 그리고 그 축적되는 지식 속에서 사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군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의 신자로서 영적 성장을 거듭했고 그래서 겉 사람은 후패해 갔지만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그의 진보는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체험이 충격적이고 어마어마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서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알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아라비아에서 혹은 이방인들의 복음전도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군으로서 교회를 세워놓은 목회자로서 그 교회를 돌보는 감독으로서 자기를 드리는 철저한 삶을 일생동안 살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 점점 완숙해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완숙된 신앙과 신학의 결정체들이 대부분 신약을 이루는 내용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만 만나주신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두운 가운데서 빛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 앞에 좋은 신앙생활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진실한 소원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도 하나님께서 지난 일년 전에는 여러분들이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과 지옥도 모르고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인지도 더더욱 모르던 사람들이었지만 일년 동안에 주님을 만나는 생애 적인 변화를 통해서 신자가 된 지체들이 여기에 여럿 있습니다.
또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어지기는 했지만 스스로 신자의 정체성을 갖고 생활하지 못하던 사실상 형식적인 신자에 지나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일년 동안에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어둠 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애타고 불붙는 마음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고 살아가는데 그런 사람들의 간증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모릅니다.
지난 한해동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각자 각자마다 주님은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일년 전에는 거리를 헤매는 부랑아와 같은 자요 하나님의 나라에 외인과 같았으나 일년이 지난 후에는 아버지의 집에 사랑 받는 자녀가 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포도 원만 더럽히는 들 포도와 같았던 지체들이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최상품 포도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그런 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주님을 아는 지식이 현저히 부족해서 가슴속에 온갖 가시나무들이 가득해서 찔리고 찔림을 받는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 이외에 아무 보람이 없었지만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그 가시나무를 모두 불태우고 그 마음속에 주님을 모셔들인 이후에는 하나님의 집에 귀한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 그 기름으로, 그 열매로, 그 향기로 하나님과 지체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훌륭한 사람이 된 지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처럼 예전에는 하나님의 교회에 걱정거리요 근심거리였지만 일년 동안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서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훌륭한 일군이오 주님의 종들의 귀한 섬기는 자가 되어서 지체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그런 단정한 일군으로 바뀐 지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이 그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들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들을 여러분들 속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의 생애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과 숙명처럼 살아가던 그 죄악의 무지 가운데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가장 좋으신 분으로 알고 그리고 자기를 향한 그 예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을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 효도하면서 살수 있게 된 여러분들을 보는 것은 정말 천국의 위로를 이 세상에서 앞당겨서 맛보는 것처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같이 무지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 볼 때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속에서 자라 가는 여러분들의 신앙의 진보가 이렇게 기쁘고 감사할진대 여러분들을 위해서 자기 몸을 버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서 여러분들을 구속하게 하신 그 위대하신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들을 바라보실 때 오랜 세월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여러분들이 정말 온전한 신자로 예수를 아는 신앙생활을 하기로 원하셨던 성령님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보실 때 그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대견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합니다.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감람나무의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일년 동안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산, 예수 더 알게 된 이 놀라운 은혜, 주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죄악 된 세상에서 무지하게 살아갔을 이 비천한 인간에게 베푸신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 나의 의, 그리고 나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기쁘신 은혜를 따라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을 아는 지식, 이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제물이나 그리고 명예, 잘 나가는 사업체 한 두개를 주고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제물이나 삶의 환경은 여러분들의 내면의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 없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신자의 마음을 여는 열쇠, 혹은 그의 심령 안에 두신 보화와 같아서 그 사람을 값지게 하고 그 사람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전 재산을 들여서 밭을 산 농부의 비유가 있습니다. 소작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땅을 갈다가 보니까 그 속에서 큰 보물이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땅을 샀고 그 땅을 산 것과 함께 보물도 자기의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겉 사람은 일년 전보다 후패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름도 많이 늘어나고 그리고 흰머리도 나고 흰머리만 나도 괜찮은데 또 머리가 자꾸 빠집니다. 그래서 자꾸 썰렁해지고 무릎에도 자꾸 바람도 들고 그래서 계단을 올라갈 때는 욱신욱신해서 자꾸 발도 아프고 이렇게 겉 사람이 후패해져 가도 그래도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우리를 자라가게 하셔서 우리의 속 사람은 일년동안 하나님이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금년에 사업이 마음에 가졌던 것처럼 잘 되지 않아서 노심초사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승진을 해야될 텐데 직장에서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가정에 여러 가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안 주신 것은 조금이고 주님이 주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어두운 가운데서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주시고 예수를 아는 지식을 아직까지도 몰라서 사실상 불신자처럼 불행하게 살아가는 육적인 신자들이 많은데 주님을 아는 신령한 지식을 우리의 마음속에 주셔서 주님을 섬기며 사랑하며 살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주님을 아는 지식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억만 금을 주어도 옛 생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영화와 그리고 기쁨의 영광이 기다린다고 할지라도 차라리 주님을 아는 지식에 빛 속에서 잠시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며 사는 것이 낫지 주님을 아는 지식,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고귀한 지식을 우리들이 무엇과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어두움 뿌리치고 빛 가운데 살겠네
찬양하리 구주 예수 놀라운 구원의 능력
노래하리 갈보리에서 이루신 주님의 사랑
주님 말씀 따라 생활하며 주의 사랑 안에 하나되어
내 마음에 주님 오시기를 간절히 원하네
그렇습니다. 원래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 주님을 아는 지식을 많이 받으면 이렇게 세상 적으로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에 넘치는 사람들의 삶은 끊임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에 안락하고 그리고 편안하기보다는 그것보다 더 소중한 삶을 살기에 가치 있는 삶을 삽니다. 값있는 삶을 삽니다. 일년 동안도 하나님이 그런 지식의 성장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일년 전에 짐승과 같은 신자가 변해서 신자 같은 사람이 된 것을 이렇게 볼 때 정말 만 입이 다 있어도 주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정말 그 은혜가 크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이루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모두 도달했다.’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으로서 충분하고 ‘그리스도 예수 그분은 내가 이제 다 파악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사도 바울의 생각입니다.
다메섹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 그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에 굳게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쓸 때까지 그는 오로지 예수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전 삶을 걸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했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배워가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전심으로 전력해서 원하고 추구하고 깊이 몸부림치면서 그렇게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오늘 고백하기를 그리스도 예수께 잡은 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가는데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잡은 줄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분들은 지난 한해동안에 어두움 가운데서 빛으로 돌아오고 주님을 아는 지식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속에서 자라가도록 하나님이 많은 축복을 하나님이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더 많이 자발적으로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했더라면 여러분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신앙의 진보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훨씬 더 많이 자라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밖에 힘쓰지 않았는데도 더 많이 주님을 알아가도록 만들어주셨다면 만약에 여러분들이 더 많이 주님을 알기를 원했더라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말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더 많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을 추구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그 생명의 비밀을 더 많이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에 들어가도록 예비하신 수많은 은혜의 방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더 많이 여러분들이 분투하고 노력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많은 신앙의 성장,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성장을 여러분들에게 허락해주셨을까요? 그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한번 깊이 반성하면서 한편으로는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이 베풀어주신 그 은혜 앞에서 더 많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기를 힘쓰고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갈망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뉘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더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주님이 누구인지를 배워가고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 가는 그런 참된 사랑들을 여러분들이 깊이 소유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 몇 주 째 지금 주일날 구역 예배를 하는 것을 돌아보기 위해서 내려오고 있는데 쭉 돌면서 보면 몇 구역은 그저 책도 없고 이미 다 외우고 온 것 같습니다. 책도 없고 교제도 어디에 갔는지 없고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데 글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썩 공부하는 분위기가 영적인 분위기가 안 느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구역들을 이렇게 보면 어쩜 그렇게 지금 젊은이들이든지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든지 직장에 다니는 남성들이든지 얼마나 바쁩니까? 그런데 어쩜 그렇게 교제를 새카맣게 글씨를 써서 그렇게 예습을 해옵니다. 신문 읽을 시간도 없는데 그렇게 예습을 해 가지고 오고 그리고 그것을 놓고 4-5명 많으면 10-11명이 둘러앉아서 열심히 자기가 발견한 진리들을 이야기하고 또 그것을 배우면서 지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고 묻고 질문하고 그런 광경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뿌듯한지 모릅니다. 지금 세상 적으로 저 나이에 교회의 예배에 나와서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도장찍고 가는 것만 해도 할아버지 할 그 연세에 저렇게 열심히 주님을 알기를 원하고 또 주님에 대해서 깨달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하고 하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론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고집을 세면서 그런 막된 신자들이 우리 교회에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이 늘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드는 그런 훌륭한 은혜의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 말에 너무 격려를 받지 마십시오. 그런데 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지체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애쓰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자매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남편이 변화 받고 나니까 제일먼저 변화된 게 있는데 자동차라고 합니다. 그 자동차가 뭐가 변했는가 했더니 옛날에는 팝송 테이프를 오만가지를 갖고 다니더니 이제 다 없애버리고 차만 타면 자동으로 테이프를 듣고 다니는데 먼 거리를 차를 타고 다니면서 영업을 하고 그러니까 틀면 듣는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말씀에 은혜를 받고 울고 은혜 받고 그런 지체들의 간증을 이렇게 들을 때 야! 정말 감사하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저렇게 자라 가는가.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조금도 일년 동안 말씀을 통해서 내가 주님을 많이 알았다고 해서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잘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고 우리에게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셨을지라도 우리들이 깊이 겸손해져서 그 지식을 가지고 주님을 더 많이 섬기고 그리고 더 많이 안타까워하면서 내년에는 지금과 비교되지 않은 주님을 아는 지식을 우리의 마음속에 넣어주십시오. 금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도록 제가 마음을 다스리면서 주님을 알기를 원하고 그리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주님을 찾고 주님을 배우고 주님이 누구인지를 깨닫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결심하는 착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을 때,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만났을 때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던 것은 다름이 아닌 그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명이었습니다. 다메섹 가는 길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를 만나고 엎드려진 다음에 갈 길을 묻는 사울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가운데 나타나신 모습으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내게 네게 나타난 것과 장차 네게 나타날 일들에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곧 어두움의 권세에서 빛의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게 하고 그리고 그들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는 이 일을 위해서 내가 너를 사환과 그리고 증인으로 너를 불렀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의 삶의 모든 목표는 이제 한가지를 향해 고정되었으니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으며 그 섬기는 목표는 구체적이었으니 그것은 이방인들과 많은 임금들에게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증거 하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신 미션, 주님이 주신 그 사명에 자신의 전 존재는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그리고 고난받을 때나, 형통할 때나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빚진 바 된 사람이라고 그렇게 자처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그는 복음에 빚진 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는 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마치 부채를 갚지 못하고 쫓기는 채무자와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이방인들이 그에게 예수를 알려주었습니까? 유대인들이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까? 이 사람은 전도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사실 빚을 졌다면 주님께 빚을 졌는데 그런데 그 부채의식은 유대인과 헬라인에 대해서 느끼는 부채의식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용서하시는 큰사랑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감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자기 같은 사람을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33세 해 동안 죽기까지 복종하신 생애를 사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화목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깨달아 알았을 때 그는 예수님의 구원하신 희생적인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 빚진 자가 되었을 때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향해서 유대인들을 향해서 아직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가지고 있는 그 구원하신 사랑의 마음이 자기와의 만남을 통해서 생생하게 경험이 되었고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서 가지고 있는 불붙는 예수의 그 마음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이 세상에 있는 주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 예수님의 마음을 물려받은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그는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으로 이방인과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빚진 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을 타고 무엇인가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복음을 전파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을 때 받은 그 사랑, 그 사랑에 깊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내가 이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는 그 부채의식이 그로 하여금 주님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전파하는 삶을 살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히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과 많은 임금들에게 전파하라는 미션을 받은 후로 그는 즉각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핍박을 받으면서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라비아에 다녀온 이후로 그는 더더욱 본격적으로 이제 이방인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옥에 갇혀서 이제 순교의 순간을 기다리기까지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은 그런 복음전파의 길이었습니다. 심혈을 다해서 그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 예수를 전하는 일에 신명을 드렸습니다. 그는 휴일도 없고 안식년도 없이 일생을 복음 하나를 위해서 소진했습니다. 건강도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의 시간도 잃어버린 사람들의 것이었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모든 지식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데 사용되기 위해서 주님이 맡겨주신 것에 불과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갔습니다. 죄수의 몸이 되어서 끌려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일주일동안 어두움 가운데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많은 헌신으로 점철된 삶이 주님께 사로잡힌 이후로 살아온 사도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분투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이 사람을 축복하셔서 많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도저히 복음이 들어갈 것 같지 않았던 이방의 땅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고 유대인 형제들의 편견도 깨트려주셨습니다. 성령의 부어주시는 역사가 이방인에게도 나타나게 해주셔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아는 은혜의 지식 속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대부분 사도 바울을 사용하셔서 이 일을 이루어나가셨습니다.
이 사람의 헌신, 그리고 이 사람의 받은 그 사역의 축복 이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적지만 지난 한해동안에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사역의 축복도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작년 이맘때에 비해서 약 70%내지 80%의 교인이 늘었습니다. 숫자적으로 말입니다. 그들 중에는 제 발로 걸어와서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지체들의 눈물어린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형제요, 자매들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어머니, 혹은 아버지, 혹은 아내나 남편에, 혹은 자녀의 신앙에 변화를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던 지체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주님 앞에 나오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사랑에 비하면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많은 지체들이 지난 한해동안도 어느 개척교회 못지 않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썼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화요일과 토요일은 물론이고 삶 속에서도 전도했고, 그리고 전도 학교를 통해서 터미널에서 캠퍼스에서 공항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손을 붙잡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려주고자 힘썼습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영혼들을 위해서 섬긴 그 섬김에 하나님이 축복해주셨기 때문에 지난 한해동안 약 70%가 넘는 교인, 80%로 육박하는 교인들이 더 많이 모여서 하나님의 교회를 함께 섬겨나가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제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어떤 때는 솔직히 말해서 이것이 기쁨이 안 되고 어떤 때는 마음의 고통이 되는 적도 있습니다. 나는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걸리는 일이 많고 사방을 돌아봐도 왜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까? 마음에 어떤 때는 갑갑한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그런 갑갑한 생각을 들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일, 그리고 일년동안 여기서 버티면서 영혼들을 돌보는 일, 금년 말에 모일 성도들의 숫자를 예산위원회에서 대충 계산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모이면 도저히 여기 살 수가 없는 지경이 될텐데 어떻게 모인다고 그렇게 써놓았는지 몰라서 산 넘어 산이고 어떻게 하는가. 그런데 계속 산 넘어 산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넘을 산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매일 교회만 오면 모자란다고 합니다. 방도 모자랍니다. 밥솥도 모자랍니다. 숟가락도 더 사야지 됩니다. 아니 사면되지 왜 그것을 나에게까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정말 힘이 듭니다. 내가 무슨 회사 사장인가, 목사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또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역에 복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어디에 있겠으며 우리들이 뭐 근심하고 염려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장 사경회 하기 전에 강대부터 허물어야 될 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배 시간에 한참동안 뒤에 와서 자리를 찾는 지체들을 보면서 마음도 아프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일년동안 수를 추구하면서 섬겨온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래서 복음을 전했고 그리고 그렇게 전도되고 어두운 가운데서 미끄러진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많은 성도들이 헌신했습니다.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없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역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는 말할 필요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 교역자들 곁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힘겨운 일들을 함께 감당해온 많은 지체들, 그리고 각자 자기가 맡은 곳에서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고마워서 그 부채의식을 가지고 무릎을 꿇고 자기보다 연약한 지체들의 발을 씻기면서 섬겨온 많은 지체들의 헌신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함에 목이 매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아름다운 신앙으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조국교회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한 이 민족이 희망이 있고 언젠가는 이 세상에 이 민족에 많은 어두움을 여러분들 안에 있는 그 복음의 빛이 이길 수 있으리라고 저는 굳게 확신하고 여러분들은 부족하고 나는 모자라도 저와 여러분들을 붙잡고 계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완전하신 분이시니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측량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은혜로 우리들과 그리고 이 교회를 끝까지 어거해 나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많은 지체들이 자기의 사역에 있어서 사명을 감당해나감에 있어서 많은 열매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의 신앙의 키가 일년동안에 훌쩍 컸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전파하는 화요 전도 때문에 신앙이 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연약한 몸에 한나절을 전도하고 한나절을 드러누워야 되는 그런 건강이 어려운 지체들도 열심히 헌신했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금요일 밤에 와서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이 많은 간증들을 남겨주신 그런 섬긴 지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섬기는 동안에 여러분들의 신앙이 훌쩍 자랐고 더 자라졌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깨트려지지 않은 이기심을 가지고 자기만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함으로서 주님의 마음에 근심이 되고 여전히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을 뿐 섬길 줄 모르는 지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지상에 있는 교회 어디에 간들 그런 신자가 없겠습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리스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붙잡힌 바 되었던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부단히 많이 노력하고 근심하면서 자기의 사명을 감당해왔습니다. 더욱이 교회가 갑자기 커지면서 이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늘어나고 헌신된 일군들을 부를 때 늘 언제나 사람들이 모자라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 그 자리에 서서 주님을 섬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붙들어오신 것입니다. 교회가 급히 거의 수직 상승을 하면서 성장을 하는데 그렇게 성장을 할 때 교회가 빠지는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인가 하면 급성장 하면 항상 부실해지기 쉽습니다. 정말 부실해지기 쉽습니다. 급히 지은 집이 쉽게 무너지듯이 급히 성장한 교회들이 정말 부실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급히 성장한 교회치고는 그래도 흐트러지는 곡식들이 별로 없이 최대한 끌어안고, 물론 다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언제나 마음이 아픕니다. 교회가 좀더 작았더라면 따뜻하게 돌보고 챙길 수 있던 지체들을 돌보지 못해서 미끄러진 사람들을 볼 때에 언제나 마음이 아프고 하나님 앞에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하여튼 힘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도 최대한 사용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도 최대한 사용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라면 하여튼 밤이나 낮이나 짜내어서 하여튼 흐트러지는 지체들이 없도록 돌보려고 애를 쓰면서 일년을 왔기에 등록한 사람들의 거의 90%가 넘는 사람들이 정착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이 이룬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각자 각자가 자기가 맡은 자리를 사명으로 여기고 목사 때문에, 교인 때문에, 자기 직분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만나주실 때 자기를 붙잡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붙잡으심 때문에 감사해서 잘 섬기면서 산 그 결과가 하나님의 이런 축복들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만 입이 있어도 다 감사할 수 없고 어디에 가서 헌신된 교인들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다 이루었다함도 아니요 또 내가 이미 붙잡았다함도 아니라는 고백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지난 한해동안 베풀어주신 사역의 은혜가 참 귀하고 감사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더 크고 놀랍지만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더 많이 깨트려졌더라면, 주님이 우리들을 더 많이 변화시켜주시려고 할 때에 순종했더라면, 우리가 주님 앞에 더 깨트려지고 정말 처절한 마음으로 더 많은 영혼들을 주시고 사역에 더 깊은 영향력을 하나님이 주셔서 영혼들이 더 깊이 변화되고 그리고 더 멀리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우리들이 더 피 흘리게 매달리고 그리고 아버지 앞에 몸부림쳤더라면 주님이 얼마나 더 많은 축복을 주셨을까요?
많은 사람이 복음 안에 들어왔고 빛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한발 밖으로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면 아직까지도 주님을 모르고 어두운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참된 주님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도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서 섬기고 도울 일이 우리에게 없을 리가 없건만 지난 한해동안 주님 앞에 헌신하고 애쓴 적도 많지만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명백한 주님의 명령을 우리들이 온전히 준행 하지 못한 것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분골쇄신하도록 자기를 드려서 더 섬기면서 자기의 자리를 지켰더라면 하나님이 더 많이 베풀어주실 축복들을 잃어버릴 때가 없다고 우리가 어떻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구역 장으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교역자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사명에 자리에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정말 펑펑 우는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준 그 영혼들의 이름을 우리의 기도의 눈물로 흠뻑 적셨더라면 지금은 이미 미끄러진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건져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빛 가운데 돌아오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은 마음이 딱딱해져서 아버지를 떠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한해동안도 주님을 열심히 섬겼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커서 한없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도 오늘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이미 잡았다. 나는 이미 완성했다. 나는 이제 도달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피 뿌리며 주님을 위해 살아도 우리의 수고하는 삶보다는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훨씬 더 크기에 우리는 늘 울어도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이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으면서 여러분들이 금년에도 주님이 여러분들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많이 복 주셨고 그리고 애썼습니다.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우리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우리를 사로잡으실 때에 붙잡혔던 그 사명,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해서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죽었고 내가 너를 만나주었으니 이제 너도 내가 너를 위해 산 것처럼 영혼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그 분부를 잘 받들어서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면서 더 충성스럽게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니까 “내가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여기서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기에 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각하면 지난 한해동안은 후회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좀더 잘했더라면, 내가 잘 믿었더라면, 내가 좀더 희생하고 헌신했더라면, 내가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우리에게 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충성스러운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이게 많습니다. 대충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 후회가 늘 있습니다.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있고 그래서 한해를 넘기면서 제 일생에 단 한번도 ‘내년에도 오래 만큼만 살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왜 너무 죄송합니다. 후회가 됩니다. 내년에는 더 잘살아야지. 그것을 보고 가지고 한해를 한번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잘못한 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만 그것을 가지고 거울을 삼고 교훈을 삼아, 그러나 거기에 매이지는 말아야 합니다. 일년동안에 못한 것, 일년동안에 주님 앞에 실수한 것, 잘못한 것, 그리고 온전하게 살지 못한 것 이런 것을 금년과 함께 다 쓸어버려야 합니다. 기억은 하나 그러나 과거의 잘못 때문에 내가 발목이 잡혀서 다가오는 한 한해도 살려한다면 하나님 앞에 더 죄송한 일이니까 그건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교훈은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서 가르침을 발견하나 그러나 결코 거기에 매여서 갈 길을 못 가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반대로 지난 일년동안에 하나님 앞에 정말 잘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하고 그리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들어서 더 열심히 영혼들을 섬기고 그래서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신 것, 잊어버려서 되겠습니까?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때 그 감격을 가슴에 간직해야지 됩니다. 어떻게 내가 헌신하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셨다 라고 하는 그것을 언제나 기억해야지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붙잡혀서도 안 됩니다. 그래도 내가 그래도 금년 한해에 이렇게 크게 일을 많이 했는데, 금년 한해도 내가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었고 이 사역에 있어서 나만큼 많이 큰일을 행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이런 자만심에 발목이 잡혀서 다가오는 한해를 더럽히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많이 사용하셨지만 하나님은 경험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의뢰하기를 더 원하시고 우리가 그 일에 몰두하면서 살았지만 하나님은 일보다도 당신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지난 한해동안에 한 일, 즉 잘한 것이든지 못한 것이든지 모두 잊어버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향해서 뛰어가며 우리의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고 완전한 자유인으로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부르고 계신 그 부름의 상을 기억하면서 그러면서 처음 예수께 사로잡혔을 때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그 두 가지 붙잡힘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서 진실한 신자로서 완성되어가고 주님을 섬기는 훌륭한 일군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그런 최고의 복된 해를 우리들이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년이 여러분들의 생애에 최고의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푯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下-14上)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을 때 주님이 자기에게 주셨던 그 붙잡힌 바 된 목표들, 하나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면서 자기가 주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또 하나는 자기에게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서 일평생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그 사람의 평소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의 서신을 들 중, 경주자의 비유라든지 희랍에서 로마시대 때 행하던 씨름에 관해 한 것은 자신의 문화 속에서 본 것이기도 하지만 그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전력하면서 질주해 온 자신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사도가 그 목표를 위해 일평생 전력질주로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는 다시 사도의 앞에 있습니다. 몸부림치면서 추구하며 나아가면 목표는 또 사도의 앞에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고, 이제 이루었다, 성취하였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는 이제 내가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말할 수 없는 목표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앞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도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인간이라면 한번 가진 의식들은 특별한 자극이 없는 한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의식 속에서 흐려지는 것은 분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에서 아무리 극적으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한번의 경험이 일생동안을 주님이 자신을 붙잡았을 때 자신도 붙잡혔던 목표를 따라서 살기에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오다가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고 변화되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 한번의 경험을 했을 때 그 한번의 경험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지속적인 은혜의 효과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실제로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그 은혜의 영향력이 짧은 것도 우리는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깨트려지고 눈물도 많이 흘리고 변화된 것도 같은데 일평생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력한 소원이 마음속에 생겨나도 그렇게 그것이 오래가는 것 같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리스도인의 삶이 간헐적인 은혜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은혜를 가로막는 강한 요소들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도 진실되지만 또 육체를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집요한 욕망, 눈에 보이는 것들로부터 받는 강한 자극들을 추구하고 따라 갈려고 하는 강한 유혹을 느끼는 것 등이 우리 안에서 지속적인 은혜 안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이 되는 것입니다.
신년 사경회 때 주님을 만나고 지난해 부끄러움을 모두 굴려버리고 이 새해에는 주님의 뜻대로 섬기면서 나는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그런 해가 돼야지 주님이 내게 맡겨진 지체들은 사랑으로 잘 감당해서 주님께 열매 맺어서 돌려드려야지 진실한 다짐을 합니다. 이런 기대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십자가 사경회가 있는 봄에는 그리스도의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삶을 새 다시 새롭게 하여서 자신의 삶이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지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할 삶이라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이미 흐려진 신년 사경회의 결심을 다시 되새깁니다. 또 여름수련회 가면 깊이 뉘우치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을 합니다. 또 가을 기도학교 사경회에서 기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기도로 다시 새롭게 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것이 하나사람 한사람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신은혜가 있을 때마나 다 우리 눈에 눈물이 흐르고 나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우리의 중심을 드리면서 살아야 할지 항상 결론은 한가지입니다. 언제나 결심도 같은 결심입니다. 그런데도 그 결심을 따라서 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아서 새롭게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이런 경험을 사도 바울도 하였을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나눈 사람으로 그 다메섹의 경험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다라고 주님이 주신 인생의 명료한 목표와 부르심이 얼마든지 희미해 질 수 있었는데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께 자신이 붙잡힌 목표를 따라서 살고자 할 때 많은 유혹과 인간적인 약한 속에서도 항상 떠오르는 명료한 목표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주님 자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관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완전합니까? 우리가 주님을 다 압니까? 우리에게 완전하게 그리스도가 파악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위해서 살지만 그리스도만을 위해 삽니까? 우리가 다 잘하고 다 옳습니까?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부족합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주님을 위해서 섬기며 나아가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에 주님을 찾고 추구하면서 나아가야 할 유리의 삶이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도께 붙잡힌 사람, 주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잠시 그 삶의 목표가 흐려지는 것 같아도 다시 세워지는 명료한 목표가 있어서 그것이 다시 떠오르는 것입니다. 잠시 엎드려지기도 하고 잠시 주저하기도 하지만 다시 그 목표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의 손에 붙잡히고 주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자기를 잡은 신앙의 목표,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생의 의미, 주님이 누구신지 알아가면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신자가 되고 그래서 친밀한 하나님과의 친교 속에서 사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주님이 자신을 붙잡았을 때 주님이 주신 삶의 목표를 따라서 살게 하는 섬기는 삶, 이 두 가지 분명한 목표가 그 사람에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정말 행복한 때는 그렇게 주님이 누구신지 매일매일 알아가면서 주님과의 은혜의 교감 속에서 관계가 돈독해져가고 그리고 주님을 더 닮아가며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서 자신의 섬김을 통해서 주님의 이름이 인정받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그 때 그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진실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풍성한 삶이 있고 그 안에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헌신과 사랑이 그 속에 녹아 있습니다. 잠시 그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아도 눈을 다시 뜨면 자신이 가야할 길이 명료하게 보이고 하나님의 이 자신에게 주신 목표를 따라서 살지 못했던 어떤 삶도 후회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늘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그 지점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삶이 주님을 추구하며 사는 자의 특징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일평생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께서 자신을 붙잡았을 때 붙잡힌 목표를 따라 살려고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영원히 도달될 수 없지만 성취할 수 있을 것같이 살았고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그 삶이 교만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더욱 겸비했졌고 사랑으로 가득 차고 연민에 의해서 채워진 그런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서 살수록 거칠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온유해져갔고 거룩한 강인함 속에서도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목표를 좇아갔지만 온전해지기 위해 몸부림치면 칠수록 자기 자신이 얼마나 온전하지 못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알수록 그의 마음속의 주님을 향한 사랑, 십자가의 구속의 감격은 그로 하여금 더욱 간절하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붙잡을 때 주셨던 그 목표를 좇아서 살도록 그를 격려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삶의 목표가 항상 분명합니다. 반대로 신앙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목표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바를 따라 살면 살수록 그 목표가 명료하게 떠올랐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자신의 삶의 목표가 불분명해진 분은 없습니까? 이미 주님을 만났음에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목표가 명료하지 않는 분은 없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그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주님이 주신 목표를 따라 살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들은 붙잡았을 때 여러분이 붙잡힌 그 목표가 여러분의 시야 속에서 흐려지는 것입니다. 회개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없는 것과 그 목표를 좇아서 살아온 삶이 아니었음을 진실하게 고백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소원을 새롭게 해 보십시오. 회개의 눈물은 여러분들의 마음까지 씻어서 흐려진 목표는 명료하고 분명해질 것이고 여러분들의 눈을 가렸던 육적이고 세상적인 목표들은 그 눈물 속에서 씻겨가고 참된 목표, 참된 푯대가 무엇인지 여러분들에게 분명하게 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좇아서 일생동안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일생동안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에게 주셨던 삶과 섬김의 목표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인생 길을 방향이 없는 자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걷지 않습니다. 한 길을 향해서 곧게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잠시 멈추고 잠시 주저앉는 때가 있을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푯대를 향해서 걸어갈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주님을 더 많이 배우고 주님의 심정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신이 변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섬김의 목표를 따라서 일생동안 전력하며 살면서 주의 사랑에 대한 깊은 충성을 표하면서 일생을 살고 그 목표 때문에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그런 삶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경험처럼 우리 속에 다시 한 번 우리 신앙의 목표,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다시 한번 새롭게 해 주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답은 이미 나왔고 다만 여러분 속에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시고 어둠으로 가득 찬 여러분의 마음에 복음의 빛을 충만하게 비춰주셨을 때 그래서 여러분의 옛 자아가 깨트려지고 그 자아 속으로 주님의 사랑이 밀려와서 주님과 생명적인 교제를 누리며서 살 때,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오래 된 껍질을 깨트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던 때 여러분들의 목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심령이 깨어지고 변화되고 회심을 경험했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의 목표가 깊은 그리스도의 만남 속에서 흐릿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분명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랫동안 무지와 죄악과 불순종 속에서 소망이 없는 여러분들을 만나서 영혼을 만지시며 새 사람을 만들어주실 때 여러분들에게 명료하게 떠오르던 여러분들을 향한 주님의 기대가 무엇이었습니까?
신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까, 천천의 수양과 많은 기름일까 이 몸의 열매를 주께 드릴까 우리는 고민했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항상 아주 명료합니다. 그것은 너는 내 것이라 그리고 나는 너의 몸의 열매나 천천의 수양, 강수와 같은 기름이 아니라 너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참된 신자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최고의 목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왜 그렇게 많이 회개하였습니까? 어둠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위한 자기의 사랑을 보이셨을 때 우리들이 왜 그렇게 많이 회개하였습니까? 그렇게 서러웠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것인데 나는 나를 내 것인 양 생각하고 살아온 모습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십자가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입고 구원을 받아서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주 인생의 목표인데 그 동안 어둠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나의 배가 나의 신이었고 나의 인생 전체는 주님의 손에 붙들린 것이 아니라 내 욕망에 사로 잡혀서 살아왔지만 나 자신을 만족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깨트려진 모습이었고 그 속에서 우리가 눈물 흘리며 가슴아파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깊이 감화 받고 진흙과 같은 인간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속하신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화를 받을 때 우리 인생의 목표는 사는 날 동안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 그것이 나를 유명하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많은 명예를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서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나라의 한 모퉁이를 거드는 한 일꾼으로서 주님 섬기면서 종처럼, 노예처럼 살고 싶은 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료한 목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졌지만 어느 날 깊이 회개하고 그 눈물에 우리의 욕망의 그림자들이 씻겨질 때면 다시 그대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인생의 목표이고 삶의 푯대였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떤 사람들은 충성스럽게 일년 내내 살았습니다.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난 고통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자신만의 비밀이지만 그들은 맡은 자리에게 굳건하게 서서 힘차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항상 자기자신을 드리되 물질과 자신의 시간까지 심지어는 자신의 건강까지 드리면서 주님을 섬기려고 애 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그 목표들이 다시금 새로운 푯대가 되어서 또 다른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갈 현장으로 큰 기대감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금년에만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내년에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님의 주신 분명한 신앙의 푯대가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와 부정직과 신실하지 못함으로 흐려졌으면 그는 정말 주님 앞에 새로운 만져주심을 경험하고 그런 푯대들이 새로워져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오는 한 해에는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명료한 푯대를 지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진실한 신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삶은 마치 광야에 펼쳐진 성막과 같습니다. 물돼지 가죽으로 덮여진 성막의 지붕을 생각해 보십시오. 휘장으로 둘려진 장막을 기억해 보십시오. 멀리서 보면 화려한 건물도 아니고 텐트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그 가죽은 칙칙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들어가면 정말 아름다운 성소와 지성소가 화려하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이런 인생의 목표가 얼마나 재미없습니까? 예수를 더 알기 원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고 노예처럼 종처럼 천하게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 이외에는 목표가 없는 사람들의 삶은 세상적으로 볼 때 얼마나 시시한 것입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놀라운 인생의 기쁨이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것이고 주님을 새롭게 알아 가는 기쁨, 자기 같이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찬미로 그 가슴은 미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눈앞에 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맛보게 하시고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맛보게 하신 것은 죄 많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런 푯대를 좇아서 살아가는 삶은 이미 세상에서 충분한 보상과 위로를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 하늘의 신령한 기쁨과 축복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면서 사는 놀라운 특권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 세계에 들어와 보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기쁨과 친교가 그 안에서 있어서 그들은 무명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으로도 만족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천하게 노예처럼 살아가는 삶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치 열매가 여물어 가듯이 하늘나라에서 추수될 수 있는 훌륭한 알곡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예수께 붙잡혔을 때 자기가 붙잡았던 삶의 목표이고 주님을 만난 우리들이 주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획득하게 되는 목표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목표를 이 시기에 새롭게 하여서 방황함이 없이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또 오늘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구절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좇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삶의 푯대가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힘으로 말미암아 획득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 안에서 붙잡혔을 때 이 삶의 목표는 단지 목표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계속 유지하며 살게 만드는 것도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거듭난 후에 주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있고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어도 그 사람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분명히 구원받고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있지만 거의 기도하지 않고 거의 말씀의 은혜가 없이, 거의 성화의 생활에서 진보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붙잡았을 때 자기가 붙잡았던 삶의 푯대를 느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멀어졌는데도 인생의 목표는 분명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장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면서도 주님을 섬기며 거룩한 삶이 가능하고 가장 거룩한 일에 종사하면서 도 세속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람의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붙잡았을 때 붙잡힌 그 푯대를 위해 살기 위해서는 그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누리며 살아가는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경회 때 한번 받는 은혜, 수련회 때 한번 받는 은혜가 다시금 우리를 일어나게 하는 훌륭한 계기는 될 수 있고 다시 식어진 우리 마음에 은혜의 불을 지르는 훌륭한 도구는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불씨를 간직하고 매일매일 자기를 하나님 앞에 복종시켜서 원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재적인 삶에 있어서 주님이 내 안에 있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서 주님은 나를 통해서 생각하시고 나는 주님을 통해 생각하고 주님의 마음이 내 안에 부어져졌고 내 마음은 기도 속에서 주님의 마음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온전한 합일의 삶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 속에 명료하게 삶의 목표가 분명해지고 휘청거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쉽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입니다. 매일매일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의 사람되심과 주님의 낮아지심과 그분의 죽으심과 그 죽은 아들을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과 성결의 영, 살아나신 그리스도예수의 영광을 보셔 면서 그 은혜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하면서 사라질 목표와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목표를 구별해 잰 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건강도 필요하고 인간다운 환경도 필요합니다. 옷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이런 것들이 영원하고 완전한 목표는 아닙니다. 보다 더 분명하고 불멸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을 때 깨트려지면서 발견한 그 목표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그것을 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은 그리스도 예수를 끊임없이 경험하고 감격하는 현재적인 경험이 없이는 주객이 자꾸 전도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해변에서 폭풍을 만난 배가 파산한 가운데 간신히 생명을 건진 사람들이 그 살아남이 매우 하나님 앞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생애를 자기처럼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여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서 구조되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구조되고 그 구조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좀더 구조적으로 편하게 하고 싶어서 좋은 건물도 짓고 효과적인 구조를 위해 좋은 음식을 실컷 먹고, 낮에 잘 구조하기 위해 밤에는 잘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알기 위해 교제하기 위해 춤을 추면서 연회를 베푸는 일이 밤마다 일어났고 밖에서는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울부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주객이 얼마든지 전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평생 누가 이런 점에서 자유롭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재적인 경험을 하는 길, 원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재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 주님의 십자가 앞에 늘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스펄전은 ‘여러분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려고 할 때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많은 짐들이 어떤 방법으로 처치하려고 해고 그 무거운 짐들은 너무 집요해서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그 짐을 멸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못된 성질이 이끌고 십자가 앞에 가십시오. 여러분들의 그 성질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아마 당신은 그 십자가의 감격을 느끼는 그 순간에 당신의 성질이 더럽다고 느낄 것입니다. 세상의 사치품들이 갖고 싶습니까? 그 때 그리스도의 벌거벗은 십자가에 가 보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사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안달복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에 스며드는 그 순간 여러분들은 그 욕망을 모두 땅에 내려놓을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십자가 앞에서 죽이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번 두 번 있어야 될 일이 아니라 일평생 계속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신자라도, 아무리 인품과 성품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날마다 날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자기의 죄, 자기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으며,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셨다고 감격하고 하루에 한번씩 펑펑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뛰어난 성도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는 부족하지만 그를 만지고 계신 주님의 손이 전능하시고 그는 부족하지만 그를 붙들고 계신 그리스도의 손길이 계속해서 그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절한 바람이 제게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내년 한해에는 금년처럼 기복이 많은 신앙생활을 버리고 1년 내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월 신년 사경회의 마음을 깨트린 성도들이 봄, 여름, 가을이 지고 나고 겨울이 와서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 깨트려진 마음을 유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돌보는 영혼을 끌어안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그 영혼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그 마음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서도 간직하고 그 영혼들을 위해 눈물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회를 사랑하고 이 교회에서 섬기고 이 교회를 위해 주님의 사랑을 좇아서 섬기고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은혜의 감격이 계절이 지나도록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주님이 주신목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신자이겠습니까? 지속적인 영적인 성장이 있을 것이며 불변하는 신앙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을 섬김을 주님이 어찌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흔들리기를 잘하는 기복이 심한 신앙 생활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해가 지나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생애 가운데 주님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세워주신 자리에서 우리의 자아, 욕망 그리고 우리의 무지와 강팍한 마음과 모난 성품과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예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주님을 잘 섬기지 못한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시십시오. 그래서 내년 한해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의 소중한 것을 한번도 아끼지 않으시며 언제나 가치 없는 인간을 향해 목숨을 건 사랑으로 다가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내년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구세주의 은혜에 어울리는 그런 섬김, 충성을 잘 드려서 끊임없이 우리는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있는 삶을 성취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다가오는 새해가 여러분들의 생애에 빛줄기처럼 쏟아지는 은총의 햇살을 받으며 주님의 정원에서 아름답게 자라나는 한 그루의 포도나무가 되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부르심의 상을 바라며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上)
사도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라고 말합니다. 오늘 설교는 지난주일 오후 설교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즉 하나님이 자기를 불러주신 그 부르심을 향해 좇아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좇아간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앞에서도 나오는 바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 바 된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러니까 위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부름의 상과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 바 되었을 때 붙잡으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인생의 목표는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두 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하나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면서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과, 주님을 만날 때 자기에게 주셨던 복음 전도를 통해서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삶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바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화두였고 그리고 그 삶의 목표가 성취되는 정도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이 성패가 달린 것으로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 앞에 무엇인가 분명한 푯대가 없는 것은 우리 주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뒤에 있는 푯대가 분명한 사람들만이 앞에 있는 푯대를 분명히 할 수가 있는 법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분의 사랑, 그분의 은혜로운 인격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지어질 수 없는 인생에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따라 살기 전에는 그들이 결코 이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으로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할 분명한 푯대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 처음 불러주셨을 때 그에게 주셨던 그 삶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에 그에게 가르쳐주셨던 삶의 목표, 그에게 주셨던 사명의 푯대를 그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분명한 돌이킴이 필요합니다. 처음 주님을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미 주님을 믿었던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깊이 돌이켜야 할 때가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새롭게 세우고 나면 흐려졌던 자신의 삶의 목표가 명료해지고 그리고 주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을 때에 커 보이던 자신의 삶의 목표가 하찮은 것이고 불 신앙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무감각해졌던 삶에 또 다른 목표가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예전에 자기가 주님을 만났을 때 받았던 삶의 목표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 중에 결정적인 차이점 하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행복보다 더 고상한 목표가 있으니 그것은 주님을 만날 때 자기에게 주신 인생의 목표를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삶의 분명한 목표보다는 주님을 믿는 신앙을 빌미로 하여 자신들의 행복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세한 법입니다.
바울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장 훌륭한 한 모델이었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리고 일생동안을 주님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 속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분투하며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고 지금 옥 속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도 그런 분투가 가져다 준 결과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주 분명한 목표가 그에게 있었으니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 주님께서 자기의 가슴에 아로새겨주셨던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한 가슴 조이는 부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돌에 새긴 글자처럼 깊이 깊이 아로새겨졌고 날마다 주님을 경험하는 현재적인 체험 속에서 이 삶의 목표는 세월이 지나도 구태의연해지지 아니하고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눈물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기와 같이 쓸모 없는 죄인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며 살수 있는 일군으로 불러주신 것과 또한 자기와 같이 쓸모 없는 인간을 예수 본받으며 살수 있게 만들어주신 그 놀라운 소명의 은혜에 대해서 감격하는 기쁨의 눈물과 또 하나는 늘 울어도 늘 분투해도 주님의 모습을 온전히 닮지 못하는 자신의 무한한 부족과 그리고 죽기까지 자기를 바치면서 순결을 불사하는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성취되지 않고 있는 미완의 사명, 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그 일 때문에 눈물이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분투하면서도 자만할 수가 없었고 자신의 살과 뼈를 깎기까지 예수를 닮으면서도 교만해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바라본 것이 태만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교만해질 수 있었을 것이고, 그가 자신을 비교하려고 들었던 대상이 실패한 목회자, 게으른 전도자였다고 할 것 같으면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한없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본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붙잡으셨을 때에 자기가 붙잡혔던 그 사명, 나아가서 그 사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을 거두면서도 늘 깨어진 마음을 유지하고 그리고 주님을 많이 닮아가면서 늘 상한 심령을 유지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밤에도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인생을 회고할 시기까지 안 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전도사 시절에 사역이 뭔지 성도들을 위해서 목양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떤 의미에서 한참 목양을 받아야 될 나이에 교역의 길이라고 들어서서 그래서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아보면 뭘 하면서 살아왔는지 아득합니다. 한가지 아는 것은 주님을 만난 이후로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는 것밖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한해를 지나고 새해를 맞으면서 마음속에 눈물이 가득 고여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우리들을 비교하고 또 교회를 다른 교회와 비교하면 우리에게는 많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핏 그런 생각이 접어들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만나주시고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이 세상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나를 소명하셔서 이 길을 20년 동안 걷게 하셨는데 그런데 내가 유익을 줄 수 있었던 영혼들이 얼마나 소수인가.
지금도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와서 주님의 양이 되어서 주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일년을 기대하지만 여러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복음을 듣지 못해서 이 세상에서 이 순간 먹고 마시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리고 제가 이 복음 사역의 길에 접어들면서 티끌만큼이나 섬기게 된 영혼의 유익들은 너무나 소수이고 그리고 아직까지도 버려져 있는 수많은 영혼들과 그 어마어마한 미완의 사명들을 보면 이제까지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온 것이 광야와 같은 길에 실오라기 하나 떨어트려서 지나온 것 같은 그런 발자국밖에는 느껴지지 않아서 정말 마음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깊이는 달라도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기를 다 드려서 섬기고 특별히 나는 알게 된 예수님의 사랑,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면서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와 소원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길도 걸어보았던 사람들이고 빛 가운데로 걸어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주님 없는 삶에 비천함도 맛본 사람들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두 세계를 모두 지나온 우리들은 양쪽 세계에 사는 삶의 차이가 얼마나 질적으로 큰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은 주님을 모르는 사람과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 때문에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이 주님을 만나고 그 사명에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왜 우리를 또 한해 이 땅에 살게 하셨습니까? 때로는 우리의 마음속에 육체를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를 거절하시고 여전히 이 문제가 많은 세상에 살게 하시고 사랑하는 우리의 가족들과 지체들과 얼굴을 맞대고 잠시 더 이 세상에 머물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만약에 그리스도 예수께 받은 바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이 일을 위해서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가 이 땅에서 무병하며 장수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 결의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서 이 땅에 살게 하시는 날 동안에 우리의 혈관에 피가 흐르고 그리고 우리의 혀를 아직 움직일 수 있고 우리의 손과 발을 아직까지도 놀려서 섬길 수 있는 이 때에 우리들은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마음, 그리고 우리의 온 지체를 동원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이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은 이 사랑, 그리고 이 좋으신 주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이 일에 우리의 신명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오늘도 찾고 계시고 주님께 붙잡힌 바 된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2002년의 목표가 아니고 우리의 일생 전체의 목표이고 우리의 인생에 남은 모든 우리가 세운 목표들은 이 큰 목표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목표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주님이 우리를 굳게 사로잡으셨을 때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앎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죄악 된 세상을 제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 드려야 할 경배를 세상에 바치고 그리고 주님께 무릎을 꿇고 섬겨야 할 자신의 인생을 자기의 배를 만족시키는데 모두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우리 스스로 짜놓은 계획표 속에는 없는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우리는 주님을 알게 되자 우리의 인생은 격변했습니다.
죄악 된 세상을 방황하다가 천국과 지옥도 나는 몰랐네
고집대로 영 죽을 험한 세상이 왜이리 더러운지 이제야 아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전하리 주의 사랑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커다란 신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매일 주님을 알아갔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신앙의 추억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수없이 예배드렸고 지금은 얼굴도 잊혀진 수많은 지체들과 만났고 수없이 교제했으며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위로에 대해서 주고받았고 넘어질 때 그들을 일으켜주기도 하고 내가 쓰러졌을 때 다른 지체들에 의해서 일으킴을 받기도 했습니다. 함께 식탁의 즐거움을 나누기도 하고 사랑하는 목자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했으며 교훈을 받기도 했고 혹은 책망을 받기도 했고 어그러진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많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 동안 우리는 교회가 전부인 것처럼 그리고 신앙과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누구인지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왔습니다. 거미줄 같은 믿음이나마 붙들고 여러분 앞에 펼쳐있는 새해를 정말 금이나 은이나 없어질 것이 아니라 금보다 귀하고 은보다 소중하신 주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것이 금년 내 인생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변화된 것도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아는 그 지식이 여러분의 마음에 한복판에서 여러분의 삶을 움직여왔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을 때 여러분들을 이끌어 끌어내렸고 나태해 주저앉을 때 여러분들을 격려하며 그리고 유혹 앞에 직면할 때 하나님의 성품에 눈을 뜨도록 만들어주어서 여러분들 인생 전체를 움직이는 심장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처음 만나고 그분의 사랑에 붙잡혀서 그분의 성품의 오묘함과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 그리고 그 교제의 친밀함과 달콤함을 맛보면서 그분의 성품에 매료되어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그분을 더 많이 알고 싶었던 주님에 대한 앎의 열정을 얼마나 자주 잃어버렸습니까? 마치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더듬이가 잘려버린 귀뚜라미처럼 갈 바를 모르고 향방 없이 우리의 인생의 길을 걸어올 때가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런 기억들도 모두 한해가 지나가는 것과 함께 역사의 뒷장에 묻어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의 눈물이 흐르고 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같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고 나면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지 너무나 명백합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그 은혜와 교제에서 멀어져서 세상을 향해 걸어가도 거기에 참다운 만족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인생에 최고의 가치가 우리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 가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에 주님을 알아가면서 큰 행복을 느끼고 그 주님과 동행하면서 고난도 헤치고 시련도 이기면서 인생을 살았던 것처럼 올 한해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금년 한해에도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시련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위로를 받는 자들이 있고 시련 속에서 믿음의 큰 담력을 얻게 되는 지체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내년에, 일년 올 한해동안에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은 미답의 들판과 같지만 그러나 예전에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같은 직장에 다니고 그리고 같은 사업을 하고 같은 가정에서 같은 교회를 섬기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 붙잡혀서 사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 사이에 차이는 이루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미답의 들판처럼 한해가 여러분들에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들판을 마음껏 경주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하기를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을 때에 자기가 붙잡았던 그 원래의 사명을 따라서 살아가는 그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 있다라는 사실을 오늘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급은 이 세상에서도 주어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인생이 모두 끝난 후에 주님 앞에서 결산하고 받을 상입니다. 사실 자기를 위해서 산 삶은 얼마나 쉽습니까? 고달프고 힘들기는 하지만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삶을 위해서 특별히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불 신앙을 따라 이기적인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기만 하면 그는 자기를 위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 같은 사람을 구원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와 구원을 기억하며 그 손에 붙잡혀서 사는 사람들의 그 삶은 얼마나 안타까운 삶입니까? 남들이 안락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끝없이 그런 유혹을 이기며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자기를 바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기록한 사도 행전 20장을 보십시오. “내가 우리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노라”고 하는 그 고백을 보십시오. 누가 그를 예루살렘으로 올려보냈습니까? 누가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협박한 사람이 있습니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하나님이 바울을 보통 진한 형벌을 그에게 내리라고 하나님이 그에게 협박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새롭게 주신 사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을 때 하나님이 그의 가슴에 아로새겨준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명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그는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신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이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주님의 손에 의해서 고귀하게 사용되고 하나님의 나라 한 모퉁이를 거드는데 정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그 도구로서 주님의 손에 사용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최고의 행복이고 영광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여 그 나라를 거들면서 사는 그 삶은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자기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분투하는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러나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상을 잃지 않겠다고 하신 그 하나님, 일평생 마음을 지키며 주님을 향한 사랑을 오로지 하며 그분을 위해서 분투하면서 불철주야 눈물과 땀을 흘리며 섬기는 삶을 살아온 그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얼마나 큰상을 그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셨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사는 삶은 주님의 나라에서 살 적금을 붓기 위해서 사는 삶과 같습니다. 우리 앞에 보이는 이 세상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라 여기는 모두 잠시 지나는 초로와 같은 세상이고 우리는 영원한 그 나라에서 일생동안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그 사명을 따라서 이 은혜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을 위해서 살아온 그 분투하는 삶으로 하나님 앞에 마지막 판단을 받고 그 삶에 어울리는 상급을 받는 기회가 바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깊이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늘어나는 우리의 재산이나 우리의 부, 높아진 우리의 지위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여기에 있는 동안 주님을 섬기면서 더 잘살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지난 한해동안도 여러분들 모두가 그런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다수의 많은 성도들이 눈물겹게 분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일년동안 교회를 찾았고 그리고 그 지체들이 교회 안에서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불평이나 원망 없이 성도들이 교회에서 그렇게 자라가고 복음을 듣고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해주신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그 베푸시는 은혜는 많은 경우에 여러분들의 헌신을 통해서 왔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힘에 넘치도록 헌금해주었고 그리고 많은 지체들이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를 썼습니다. 육신이 연약한 지체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열심히 분투하며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년동안 자기의 마음을 지키면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처음 주님을 믿기 시작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좋을지 모르는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리면서 영혼들을 섬겼으니 그것은 사람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신들에게 보내주신 주님을 섬긴 것이었습니다.
많은 교역자들이 이 섬김에 있어서 모범이 되었으니 저희들은 불철주야 일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마치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계수 하여야 할 자신의 영혼인 것처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분골쇄신하며 섬기고자 애를 쓰면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름을 낱낱이 알 수 없는 많은 지체들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생활의 수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몸을 드려 섬김으로서 성도들이 이곳에서 안정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신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유익을 초월해서 넘치도록 헌신하며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지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려서 드러나지 않는 구석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없어도 노예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종처럼 무릎을 꿇고 교회의 아픈 곳을 보듬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목회자 그리고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수고와 모든 분투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많은 헌신과 노고는 누구에 의해서도 파악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불러주신 하나님 위에서 여러분들이 달려갈 길을 모두 달려가고 의로운 싸움을 마치고 승리하는 용사로서 당신의 나라에 귀환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그 모든 이들의 섬김 하나 하나를 빼놓지 않고 모두 기억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바쳤던 티끌 만한 희생까지도 주님께서 모두 자기의 마음에 기록하시고 그의 합당한 상급을 내리시리라는 확신이 저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한해에만 그런 섬김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내년 한해에는 하나님이 더 많은 영혼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보내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 어두움 속에서 예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지체들,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철없이 어려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딱딱한 껍질 속에 남아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보듬고 더 많이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들을 깨트리고 변화시키셔서 그들 속에도 예수의 생명을 심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실 때까지 우리의 마음에는 끊임없이 그들을 위한 기도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눈에는 그들을 염려하는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섬겨도, 섬겨도 우리를 이 세상에서 모두 완수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우리 자신을 다 드려도 완수될 없는 사명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성취될 수 없는 사명이기에 그 사명을 위해서 살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완성은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숨질 때 되도록 그 영혼들을 일하고 그 영혼들을 보내주시기를 갈망하며 기어다닐 힘만 있어도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도울 힘만 있어도 그 지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섬기며 우리의 일생을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 많은 지체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주님이 더 많은 지체들을 여기서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려고 한다면 작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많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헌신,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감화되어서 목회자의 인정이나 성도들의 칭찬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만지고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사무쳐서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드려서 영혼들을 섬기고 헌신하고자 하는 많은 희생적인 헌신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주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소망도 없이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던 여러분들에게 복음의 빛을 주셔서 이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작고 그리고 아주 연약한 소자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하든지 무엇이라도 주님의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불어 넣어주시지 않았습니까? 내년도에도 더 많은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눈이 빨개서 동역 자를 찾습니다. 주님을 섬기고자 하면서 눈을 뜨며 섬겨야 할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하나님이 직접 하시지 않으시고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헌신된 성도의 희생을 통해서 이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한해 마음과 물질을 넘치도록 드리고 시간을 바쳐서 교회와 영혼들을 섬기셨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수고한 여러분들의 모든 수고를 주님은 모두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지상에서의 삶에도 나는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마음과 뜻을 드려 주님을 섬기며 산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복 주시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간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삶이 복되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올 한해에도 아멘 이시오 충성된 증인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님이 주시는 사명에 ‘아멘’할 뿐 아니라 여러분들의 별명이 ‘충성’이 되도록 주님을 마음을 다해서 섬기고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에게 예수를 심는 이 일에 자기를 모두 드려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주의 종들이 되어서 아버지께 큰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든지 여러분들이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 가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상급을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주님이 누구인지를 몰랐더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까도 사 층으로 올라가니까 푹신푹신한 담요를 쭉 펴놓고 귤을 몇 개씩 놓고 일년동안 은혜 받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보니까 아줌마들이 뺑 둘러앉아서 담요를 가운데 깔고 있으니 예수님 몰랐더라면 거기서 틀림없이 화투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스톱이니 광이니 하면서 아마 한참 떠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요만큼 알았는데도 우리의 인생이 이만큼 바뀌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술주정뱅이가 변해서 주님의 나라에 아주 필요한 단정한 사람이 되고 매일 사고 치고 부모의 마음에 고통을 주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요긴한 일군이 되어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방탕하던 사람들이 변해서 경건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이 주님을 알아 가면 미래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기름질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금이나 은보다도 더 간절히 갈망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를 아는 고상한 그 지식, 그것을 알아가기 위해서 분투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 전 삶에서 예수님 닮기를 원하는 그 삶이 얼마나 어려운 삶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가 누구인지를 더 많이 알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왜 극기해야지 됩니까?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놀고자 할 때 놀고 우리 육신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면 되지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주님을 알아갈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자기를 살피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 속에 비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르침을 받고 흐트러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여미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그리고 그 앞에서 회개하고 그러면서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조금씩 알아 가며 그런 사람들의 삶은 정말 고통 하는 삶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상급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의 삶의 질을 놀랍도록 따르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 그 곡의 가사를 쓴 사람이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주님을 몰랐으면 노예나 팔아먹다가 어느 날 죽을 사람인데 주님을 만나고 경건한 신자가 되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놀랍게 보상해주시지만 우리의 인생이 모두 끝난 후에도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살아왔던 그 몸부림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면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면서 산 삶으로 기억이 되어서 주님이 그들에게 많은 상급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소명 가운데 첫째도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이고, 둘째도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이고, 셋째도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 한해도 여러분들이 주님이 누구인지를 부지런히 알아가고 그리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 가는 지식의 성장의 기쁨 속에서 여러분들이 한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면서 사는 복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그 은혜를 따라서 이렇게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서 전진하면서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 너무나 기뻐하셔서 여러분들과 바로 곁에 함께 계실 것입니다. 시련이 오면 막아주시거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며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더 깊이 피해서 어려운 풍랑을 인해서 오히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의 품을 감격스럽게 느끼는 그런 기회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가슴에 품으실 때 누가 여러분들을 해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가는 그 길에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바다가 나오면 그분이 가르실 것이며, 물 없는 마른땅이 나오면 그분이 샘을 내실 것이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그분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여러분들을 안위하실 것입니다. 그분과 그렇게 동행하면서 우리 앞에 펼쳐진 이 미완의 일 년 동안의 경주를 잘 감당해서 내년에 영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 지난 한해는 제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온 한해였으며 내 일생 주님을 아는 것보다 지난 한해동안에 주님을 아는 것이 훨씬 많은 복된 한해였습니다. 올해도 지난 해 같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나지 않은 경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