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강의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출18:21)
녹취자: 김경애
참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우선 당시의 문명의 최고 중심지인 애굽 그것도 수도에서 철저하게 모든 학문을 연마했고,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철저하게 학문을 연마한 탁월한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모세가 썼습니다. 그게 함무라비 법전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주전 18세기의 것이고 이것은 주전 19세기의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말하자면 유사성이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거니와’ 하면서 흘러가는 이런 법의 문구들이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 당시에 함무라비 법전은 애굽과는 상관없고 저 위의 바벨로니아의 법전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고학에서 보면 저 위의 바벨론은 쐐기문자이고 아래 애굽은 Hieroglyph라고 그래서 사자나 사람 그림이 있는 상형문자입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바벨론의 자료들이 애굽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 당시의 쐐기글자가 외교문서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모세가 그쪽 언어를 다 습득한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정치, 군사, 경제, 민법, 형법, 상법, 모든 교육과 의학까지 방대한 공부를 하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뜻이 계셔서 왕궁 한가운데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데 들어가게 하셔서 학문적으로 완전히 무장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십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짐승을 치면서 지냈지만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학문과 지리 특히 지리, 정치, 경제, 군사, 병법 이런 방대한 지식을 그렇게 입체적으로 섭렵한 사람이 흔치 않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놀랍게 학문을 소유하고 지식을 소유한 이 사람에게 오늘 누가 훈수를 두느냐하면 장인 이드로가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장인은 시골에서 요즘말로 무지렁이 같이 짐승이나 치던 시골 아저씨였습니다. 그런데 딱 와서 보더니 문제는 뭐냐 하면 사람들이 자꾸 소송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올바로 판단해주는 것이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 질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과 행정 모든 것들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해주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성인이 그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가장 단순한 생각을 이드로 라는 시골 무지렁이 아저씨가 와서 ‘어떻게 그렇게 하고 있느냐? 당신도 죽고 그 다음에 당신의 백성들은 재판 하나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는데 행군하랴, 멈추고 진을 치면 그 다음에는 전부다 줄을 서서 아침부터 그것을 기다리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내려오는 말하자면 계선조직적인 업무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지혜 하나가 진짜 모세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드로를 보내주셨는데 이드로는 계속 따라온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방문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드로가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에 이스라엘 공동체 삼백만 명이 모이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엄청나게 효율적인 공동체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사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여기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두고두고 계속해서 에스라에서 두령, 혹은 두목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바로 지도층이 되어서 행정 실무를 익혀서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에 포로 시대에 들어가기까지 전부다 그렇게 되고, 그 다음에 장로제도 이런 것들이 생겨나면서 이 사람들이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여기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세도 몰랐었는데 하나님께서 하도 모세의 상식선에서 이것이 깨뜨려지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애굽에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애굽의 정치, 군사, 경제제도라는 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앞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먼저 문명이 배태된 것이 바벨론 지역과 이 애굽지역이라고 봅니다. 애굽의 이집트 문명이 결국은 에게해 쪽으로 가고 그것이 크레타문명, 그리스문명으로 이어지면서 구라파 사회를 꽃피우는 문명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정도로 발달된 곳에서 그렇게 엄청나게 학문을 한 사람이 왜 그것을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나는 ‘왜 그랬을까?’ 하고 추리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뭐냐 하면 애굽에서 그런 조직을 못 봤을 리가 없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이것은 기본적인 조직입니다. 그랬는데 왜 그랬느냐하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모세만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가서 해라.’ 그러면 가서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라고 그러셨다.’그러고 하나님께 ‘말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론을 붙여주기는 했지만 계속 모세가 기도하면 재앙이 내리고, 모세가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나오고, 그냥 홍해가 막혀서 막 그러면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면 열리고 말입니다. 물이 없다고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면 또 열리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계속 오는 사이에 모세는 그렇게 오는 사이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만 이 일을 계속 하시는 것에 익숙해져오면서 이 일을 Share하고 나누어야하겠다는 생각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경직성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경직성이라는 것이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지 우리들이 하면 계속 경직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의성이 안 생깁니다. 지난번에 우리 왔을 때 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복사기를 갖다놓고 사람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까? 그런데 밖에 내놓으니까 복사지 쓰는 양도 아마 반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40포씩 썼습니다. 그런데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낱장하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낱장 하나만 쓰려고 해도 30원입니다. 그러니까 딱 맞게 복사해서 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되는데 안 되는 것입니다. 업무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항상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느냐하면 창의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창의성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자꾸 고통스럽게 생각할 때에 창의성이 생깁니다. 잘하려고 안하면서 고통스러워하면 불만만 생기지만 잘하려고 생각하고 이것은 왜 이렇게 밖에 안 되느냐고 계속 괴로워할 때 창의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업무가 그런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도 일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쭉 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고 이드로를 보내주셔서 깨뜨려버린 것입니다. 그때에 그것이 가져다준 파급효과가 모세가 어느 한순간에 모세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보다도 더 큰 효율성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너무나 모든 것을 신령한 쪽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희는 너무 춥고 어둡습니다.’ 그러지 말고 불 때고 불을 키란 말입니다. ‘오늘 너무 춥고 어둡습니다. 밝고 따뜻한 곳으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불을 키고 그리고 불을 때면 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영적으로도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당연히 이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이 선물은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터뜨려서 물이 나오고 한 것, 어떻게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이것을 해결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신 이 선물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 하면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우리가 업무를 해나갈 때 교회에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는데 상부구조는 Spiritual 한 것입니다. 영혼들이 변화되고 회심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효율성을 기한다고 그래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래는 아래의 이 하부구조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지혜롭게 해결해나가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경로와 과정을 내가 봤습니다. 이런 성경구절을 볼 때 내가 깊이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아직 감사가 들어오기 전에 월요일이면 내가 하루에 거의 다섯 시간씩 회의를 했습니다. 조 목사도 없을 때니까 의논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입니다. 그런데 내버려두면 뒤죽박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임이라는 것을 누구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두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모세와 같은 경직성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그것을 맡기라고 그러시지 않고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눈먼 7년, 8년, 10년 동안을 이렇게 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중심적으로 사용하시는 사람은 항상 있습니다. 리더는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로 그 한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막을 움직이고 하는 모든 것들은 레위자손의 소관이었는데 그런데 그것도 다 나누어 줍니다. 성막 가장자리의 이것을 텐트를 걷어서 메는 지파가 있고 법궤를 메는 지파가 있고 지파 안에서 각 족속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다 나누어서 움직이니까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결국은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모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교회를 이렇게 보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역자들 중에서도 ‘주일학교 교사도 모자랍니다.’ ‘중고등부 교사도 모자랍니다.’ 그리고 투덜대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교회는 더 심각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성가대를 하니까 더 심각한 것입니다. 성가대에서 신앙 좋은 사람을 한 250명 정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1부 성가대, 2부 성가대, 호산나 성가대, 시온 성가대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가서 심방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일찍 나오고, 수시로 회의로 부르고 이런 교회학교를 섬기려고 합니까? 아니면 성가대를 하려고 합니까? 성가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가대가 권한이 강합니다. 그러니까 성가대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여지니까 다른 것은 모두 쪼가리인데 나중에는 성가대원들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성가대 회장하고 교역자들하고 싸우고, 부장하고도 싸웁니다. 그러니까 두 일을 겸직하다가 Tension이 와서 어려워지면 성가대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항상 교회학교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모 교회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성가대에 대해서 마음속에 원한이 맺혀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렇게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그래도 훨씬 나은 것입니다. 부분적인 문제는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 와서 다 풀어보려고 합니다. 교구에서 좋은 사람이 나오면 자기네 교구에서 먼저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새 가족들이 들어오는데 써야합니다. 나는 이해가 갑니다. 양쪽 다 당해보았기 때문에 내가 압니다. 내수동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 때 만날 내가 투덜거렸습니다. 내가 다 압니다. 청년부도 해보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 압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청년부만 또 욕하면 안 됩니다. 청년부는 제대로 된 사람을 안세우면 청년들을 붙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똘똘하고 신앙이 좋은 사람이 내려와야 하는데 잘 안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렵습니다. 이것도 풀어야합니다. 어쨌든 그래도 우리는 낫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지체들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어제도 더빙한 것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정말 잘합니다. 그런 똘똘한 청년들이 여러 군데 너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니까 기쁨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그것을 교회는 잘 조직화해서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절대로 아무나 리더가 되어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대표해서 일을 해나가는 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기준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드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것입니다. 그 기준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재덕이 겸전한자 그러면서 그것은 커라단 항목이고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가를 세 가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히브리말로 ‘야레’라는 단어인데 구약에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곧 신앙이었습니다. 동일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신앙정도는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경건한 두려움의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두려움은 노예적인 공포가 아니라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느냐 하면 이사람들이 하는 일이 재판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뒤에 나오는데 뇌물을 먹는다든지 이 사람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냥 무조건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부자는 무조건 죄악시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잘못된 방법으로 가난한 자를 두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난한 자와 부자가 재판한다고 해서 가난한 자를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 보호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재판을 자기의 그런 편견으로 재판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 정확하게 사리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가려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세워지는 소위 이야기하는 중간 리더의 아주 중요한 자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뭐냐 하면 우리가 업무적으로만 리더가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 리더가 되어야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의 영적상태를 전부다 세 통로로 다 파악했습니다. 우선 조 목사님을 통해서 파악하고, 교구의 교역자들을 통해서 파악하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쓴 편지를 가지고 파악을 했는데 작년이나 재작년 같은 경우에는 교회를 지으면서 그렇게 밀도 높게 여러분들을 살핀 적이 솔직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을 지내오면서 내가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직원들의 영혼의 상태를 염려하면서 잘 돌보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생각하니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조목사도 그렇고 교구도 그렇습니다. 자꾸 일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전부다 파악해보니까 작년이나 재작년보다는 훨씬 더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열 명이 교회의 직원으로 들어오면 그 일을 통해서 어떻게 그것을 신앙화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성숙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를 터득한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교역자들은 그래도 덜합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너무 소수입니다. 그게 그만큼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을 하면서 오히려 신앙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면서 항상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내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아닙니다. 그래서 리더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일을 하면서 무엇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리더다. 내 이름은 하나님 앞에서 리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몫이다.’ 이런 생각들이 사라져가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이야기합니다. 그 대상을 위해서 기도하느냐? 책을 발간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느냐? 열린 공간의 운영을 위해서 기도하느냐? 새로운 동영상을 만드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느냐? 공사를 앞에 두고 기도하느냐? 내가 수시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업무는 업무대로 돌고, 기도생활은 기도생활대로 가고, 그 다음에 자기의 살아가는 삶은 살아가는 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나도 초점이 안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신앙과 업무의 이탈현상들이 생겨납니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문서선교부에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너희들 이번에 사경회를 하는데 이 테이프가 많이 보급되기 위해서 기도를 하느냐?’ 안한다고 그럽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 그러면 굉장히 추상적인 것입니다. ‘내가 인내하게 해주시고 또 누구한테 스트레스를 받는데 내가 좀 그 사람의 마음을 좀 풀어주시고’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응답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잘되면 잘되었나보다. 못되면 못되었나보다. 그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세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면 리더로서 본을 보였던 모세는 어땠는가?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당하는 모든 상황과 형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 한사람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핏줄처럼 교회의 모든 기관들이 연결됩니다. 얼마나 웃깁니까? 웃긴다면 이상하지만 교회의 재정이 바닥이 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가장 Exciting하게 경험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구나!’ 그것을 가장 Exciting하게 경험하는 사람이 자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최고의 리더와 함께 Helper로서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리더가 가면 시켜서 한다는 그런 식의 급사정신을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나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런 모든 문제에 위해서 내가 최전선에서 가장 많이 기도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자면 교회의 공사가 있습니다.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이 삼천만원짜리, 오천만원짜리, 공사는 업자를 좋은 사람을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에 따라서 일이천만 원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한국통신에서 전화요금을 25% 깎아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들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지으면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업자를 만나게 해주시든지 말입니다. 이번에 산소공급기 들어올 때도 1억4500만원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간절히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700만원에 끝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같이 디자인을 거들던 형제도 다들 그러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그것을 임시로 연결하느냐? 설치비를 들여서 연결을 하냐?’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딱 걸어놓으니까 업자는 황당하다는 것입니다. 1억 2천만 원짜리 그것을 팔줄 알았는데 산소통을 달고 끝났다고 하니까 공사하고 나서 황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하면 일을 해나갈수록 ‘하나님이 정말 신기하구나!’ 이렇게 짐을 주시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구나! 해결해주시는구나! 도와주시는구나!’ 이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하면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진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이 리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물론 그래야지 더 많이 기도하려고 애를 쓰고 요새도 기도하면서 느끼는 것이 구석구석 기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항상 마음속에 아쉬움과 눌림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몇 시간씩 엎드려도 항상 모자랍니다. 물론 나도 기도해야합니다. 그런데 새가족 동영상을 하나 만든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책을 만들다가도 기도하고, 동영상을 만들다가도 손을 잡고 기도하고 그래야합니다. 그러니까 리더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항상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든 바뀌는 상황들을 업무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건 속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하는데 잘 안 된다면 ‘우리 기도한번 하고 하자.’ 간절히 기도하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모본을 저희들이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에 성공하지 않고는 여러분들은 절대로 신앙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일과 신앙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가야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어야하느냐 하면 그렇게 신앙이 일치되면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데 일치가 안 되니까 어려우면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이렇게 안 해주는 거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로 소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자기의 마음을 굳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기도만 하면 안 된다 것입니다. 회의를 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면 되는 것인데 그냥 무엇을 달라고 아침에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재판을 계속하는데 능력을 달라고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일군을 세워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뭐냐 하면 리더로서 항상 신앙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믿음이 굉장히 빨리 강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숙명처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복음의 비밀들을 터득하면서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나느냐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을 한번 보십시오. 거기서 그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만물의 찌끼와 같이 여김을 받았을 때 ‘우리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그 일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가 복음을 깨달아가고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놀랍도록 하나님 앞에 정결해지고 훌륭해져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솔직히 이야기해서 여러분이 볼 때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솔직히 이야기해서 교회 안에서 누가 나에게 와서 ‘목사님 교회를 왜 그따위로 합니까?’ 대들거나 그런 사람도 없고 인터넷을 올려도 큰 교회에서 그 인터넷을 한 시간에 한 번씩 관리를 합니다. 욕지거리부터 시작해서 별 쓰레기들이 다 올라오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우리는 몇 달에 한 번씩 이상하게 이렇게 된 사람들이 가끔 올리지만 몇 만 명이 되는 교회에서는 그것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시간단위로 청소를 해야 합니다. 별 욕지거리들이 다 올라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착하고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도 이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 왜? 작은 것이지만 그런 것입니다. 미친 듯이 애를 쓰는데 어느 한군데서는 항상 하나님이 너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엊그제는 심방을 갔는데 그러는 것입니다. 그 주간에는 감사한 일이 참 많았는데도 그런 것입니다. ‘뒤에서 예배를 드리면 진짜 예배드리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그 이야기를 듣고 걸어 나오는데 하여튼 정말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이게 72미터이니까 그 뒤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당이 되어 있을 때는 그래도 덜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게 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바꾸는 것도 당장 못하는 것이고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더 많이 기도해서 정결해지고 성령께서 저 구석까지 어루만지시면 작년 9월에 회심과 거듭남을 설교할 때처럼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몸이 너무 약합니다. 전도사 때는 그래도 토요일마다 가서 엎드리면서 온밤을 지새우면서 기도하고 설교했는데 체력이 그렇게 안 됩니다. 그렇게 하고 340분씩 설교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어느 사람 때문에 그것이 안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정말 밤중이면 우리 집사람이 옆에 누워있지만 내 마음속에 느끼는 이것이 여기도 전해질까? 그러면서 진짜 지금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래서 그 낙원에서 쉬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그때에는 마음이 막 물같이 녹고 그 아픔이라는 것은 이루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뭐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며 아파할 일이 생겨났느냐고 그러는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됩니다. 교회가 싫다고 뛰쳐나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소송을 하고 피켓을 들고 뭐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김 목사 보기 싫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예배시간에 졸고 예배드리기 싫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도 유두고가 있었는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생각하면 그게 결국은 그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낮아져서 그래서 새벽시간마다 나가고 간절히 기도하면 먹기도 싫고, 어디 가기도 싫고, 공부하는 것도 손에 안 잡힙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을 그냥 괴로움 속에서 보내고 ‘나는 안 되지, 나는 안 되지!’ 그런데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자! 의지하자!’ 그러면서 일주일을 살면 그 다음 주에 조금 낫습니다. 그것도 많이도 아닙니다. 그것도 교만해질까봐 조금 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거의 포기할 지경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조금 위로해주십니다. ‘내가 너를 사용한다. 그리고 네가 더 정결해지고 나를 더 의지하면 내가 너에게 길을 열어주마.’ 그러나 계속 그것의 연속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결론은 뭐냐 하면 이번 주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때 하나님은 너무 완벽을 추구하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뭐냐 하면 내 마음에 항상 눈물이 고여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 눈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지, 그때 어떻게 되느냐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면 이 속에서 비웃음 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내가 얼마나 쓰레기인데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네가 그렇게 생각하느냐?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해야하느냐 하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목사님이 나를 세워주셨는데, 교회가 나를 세워주셨는데, 나를 이렇게 대우해주었는데 그것은 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워주셨다.’ 그리고 그런 목사님이 교회 구석구석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목사님 혼자서 다 짊어지고 살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거기에 동참하도록 나누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가 거기서 그렇게 간절히 매달리면서 그러면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고, 은혜를 구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영성 자체라는 것은 삶 전체를 포괄하는 전 포괄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이고, 죄로부터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죄의 결과인 고통으로부터 우리의 구출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 생활 자체도 전 포괄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기독교의 영성과 신앙과 구원의 포괄성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까 그냥 어떻게 되느냐하면 항상 기도하는 것이 자기 개인의 기도생활, 경건생활, 너무 소아적이고 펼쳐나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열린 공간에서 새로운 계절이오면서 준비해야하는데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하게 흘러가던 모든 일들이 기도라는 물에 담겨진 채 진행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이 구석구석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하면 어떤 일 같은 것들이 잘 이루어져야 할 때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온전히 의뢰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말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안한 사람은 재수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일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일을 하면서 계속해서 그 일이 자기가 가장 중심적으로 하는 그 일이 기도의 가장 중심에 서야하는 것입니다. 사경회를 인도하면 사경회를 위해서 가장 많이 기도하고 지금 사경회가 잠시 없고 책을 쓰는 일에 몰두하면 책을 쓰는 일을 가장 많이 기도합니다. 교회를 옮기려고 하면 교회를 옮기는 그 일이 가장 큰 기도제목이고 그래서 일의 크기와 분량에 따라서 기도제목도 함께 움직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때에 우리의 하는 모든 일들이 기도 속에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과 그 부서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가 말하자면 교회에서 그 일에 있어서는 최전선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고 그것은 그 일이 잘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야하는데 그것을 또 미루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우스갯소리로 헌금이 많이 들어오면 ‘네가 기도 많이 한 것이다.’ 그러는 것입니다. 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면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목사인 내가 모든 것을 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동의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이 목사님은 일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해야한다면 일을 위해서 목사님이 집중해야한다고 맡길 때 돈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목사가 사업가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영적인 통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에 계속적인 은혜를 주실 것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눔이라는 것입니다. 책이 잘 나오면 승희가 기도를 많이 한 것입니다. 열린 공간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만족을 얻으면 좋은 이야기가 계속 돌아가면 그것은 기도를 많이 한 것입니다. 동영상과 인터넷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면 기도 많이 한 것입니다. 좋은 업자가 와서 계속 공사를 깔끔하게 해주고가고 그 다음에 예산도 많이 절약되면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말입니다. 그 다음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일체된 것을 가져갑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컴퍼미티투크라이트 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통을 당할 때 예수의 죽으심이 내 삶 안에서 Actualization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고 나면 다시 주님을 위해서 사신 부활이 다시 실제화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굉장히 놀랍도록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릅니다. 한번 그렇게 나 자신을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물같이 녹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눈물이 가득 고인 가운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하면 녹는 과정을 통해서 너무 아픕니다. 그 속에서 정욕과 허영과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더도 그만두고 6개월만 안 일어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10년을 살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말하자면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나는 10년 동안을 교회에서 직원들을 보아왔고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선교단체와 학교, 교회에서 일하면서 직원들 중에서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을 거의 못 만났습니다.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신학교에서 같이 일을 하다가 일이 잘 안 돌아가면 신학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인간들 때문에 무엇이 안 됩니다. 정말 이것이 신앙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아멘을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순서는 중요도의 차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번째로 택하신 것이, 첫 번째의 자격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전 방위적인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백만 명이었습니다. 남자만 육십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중에서 육십만 명 중에서 택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경험한 정도가 다르고 신앙과 모든 것이 다 다릅니다. 그것은 학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내건 조건이 무엇입니까? 대졸자? 대학원졸업자? 학위소유자? 그런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첫 번째 자격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자격이 되어야합니다. 아무나 리더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뭐냐 하면 사슴 한 마리에 의해서 영도되는 천 마리의 사자의 집단보다는 한명의 사자에 의해서 영도되는 천 마리의 사슴의 집단이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제대로 된 리더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절대로 아무나 안 쓰십니다. 첫 번째 자격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격에 충분히 부응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생각하고 이제부터라도 그런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인격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진실무망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이 겉과 속이 똑같고 그리고 망령되이 행하지 않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리더가 되고나면 더더욱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떤 경향이 있느냐하면 자신의 입장에서 공정성을 잃고 자기를 변호하고 감싸야할 그런 위치, 그 다음에 또 자기가 맡고 있는 부서나 자기 일을 중심으로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감싸야할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사람이 자꾸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약간의 편의를 위해서 진실로부터 멀어져서 편의 중심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일을 하다보면 이게 하나님 앞에 정말 옳은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잘 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옮길 때에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의견이 나뉩니다.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론이 자꾸 나옵니다. ‘현실적으로 돈이 없지 않느냐? 그 부담까지 어떻게 우리가 지겠느냐?’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다가보면 항상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진실해지기 어려운 부분들이 항상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자격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진실 무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정하고 진실해야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이렇게 생각해야합니다. ‘나 자신도 잘못할 수 있다!’ 그래서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도 내가 잘못한 것은 그것은 내가 정말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다. 이렇게 솔직하고 진실하게 고백을 할 때 사람들이 그 리더를 하찮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리더를 보면서 정직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정확하게 시인할 줄 아는 그 리더를 통해서 용기를 배웁니다. 절대로 잘 하려고하는 마음을 안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자기의 실패 앞에서 정직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정직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자격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진실하고 무망한 사람입니다. 진실해서 그래서 겉과 속이 항상 같아야합니다. 물론 리더로서 말해야할 것과 아직 말하지 말고 간직하고 있어야할 것 사이의 차이는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트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말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우회해서 이야기해주거나 완곡하게 표현해야할 경우는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항상 겉과 속이 투명해야합니다. 트릭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리더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트릭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앞과 뒤에서 이야기가 다른 사람, 이런 사람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그렇게 진실해져야합니다. 그래서 겉과 속이 항상 똑같아야합니다. 보는 앞에서 칭찬하고 돌아서서 욕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내가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 이야기는 금방 잊어버려지고 이렇게 해서 이렇게 돌아가는 이야기가 저 사람의 가슴에 더 진실하게 와 닿습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약간 칭찬을 해줍니다. 이렇게, 이렇게 돌아서 갑니다. 그러면 며칠 있다 보면 항상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는데 얼굴이 확 풀립니다. 그것이 벌써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는데 단점은 묻어두고 장점을 발견했을 때 이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 나는 누가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나를 거들어주었는데 정말 잘하더라.’ 그래서 2년 전에만 왔었다면 훨씬 더 잘 썼을 텐데 이렇게 됩니다.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해줍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들어갑니다. 그러면 눈빛이 달라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진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앞과 뒤가 다르지 않고 물론 아까 이야기했듯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안 드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묻어두고 어떤 것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항상 다른 것이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한두 번은 속는데 다음에는 즉시 신뢰를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나는 여러분들을 전폭적으로 믿으면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부정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정직속에는 감추는 것도 들어갑니다. 나는 그런 것이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했으면 정직하게 실수를 했다고 해야 합니다. 내가 전에 무엇 때문에 그랬습니까? 나에게 뭐가 잘못되었다고 보고를 안했다고 해서 지난번에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까? 교역자들 때문에 그랬습니까? 예배 때문에 그랬습니까? 아하 차량 때문에 그랬습니다. 마당에 앉아있는데 외부에서 손님이 와서 긴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느 성도가 오더니 ‘목사님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창피해서 죽겠습니다.’ 뭐냐고 그러니까 아니 수요일에 차가 오는데 못 오면 못 온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전도할 사람까지 데려와서 실컷 기다렸는데 차가 안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열 받았겠습니까? 교회의 체면과 관련이 되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있으면 교회버스가 오거든!’ 그렇게 해서 데리고 갔는데 안 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창피해서 못 견디겠다고 그러니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알았다고 그러고 해결해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직원을 보고 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게 그럴 수 있는 일입니까? ‘버스 운행인데 어떻게 그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뭐라고 심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이니까 ‘전도사님 이번 주 수요일 가능합니까?’ 그랬는데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인데 어떻게 안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보다 더한 것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직하게 교역자회의로 매주 모이니까 ‘목사님 저 죄송합니다. 사실 목사님이 월요일에 새벽기도를 부탁하셨는데 늦잠 자느라고 못나왔습니다. 교인들이 모였다가 흩어졌습니다.’ 그러던지 아니면 ‘그래서 조 목사님이 부랴부랴 하셨는데 너무 죄송합니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량운행이 안되었으면 정직하게 ‘관리실장입니다. 제 책임 하에 차량이 운행되어야 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어서 이번 주 수요일에 펑크 났습니다.’ 그러면 내가 수요일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죄송합니다. 오늘 미스가 있어서 차량 운행이 안 되었는데 미안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앞에서 이 교회가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게 누구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교역자들에게 몇 번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고 창피하다고 그랬는데 개선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펑크를 내는 것입니다. 몇 번을 그랬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주일예배에 올라가서 내가 백배사죄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교회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한번은 장호일 목사가 있을 때 부장을 시키려면 전화를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장을 시키려는데 괜찮겠느냐?’ 심방은 못하더라고 전화는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독특한 성격을 가진 분이 많은데 이분이 그럽니다. ‘나는 부장을 한다고 그런 적도 없는데 왜 나를 거기에 올렸습니까?’ 그래서 내가 얘기를 안했느냐고 그랬더니 안했다고 그럽니다. 그 다음 주에 올라가서 백배사죄했습니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죄했습니다. 다 찢어버리고 다시 프린트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거의 칼같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감추어두고 있는 것 자체도 부정직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잘못하고 감춰두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부정직하고 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이야기를 하든지, 조목사가 이야기를 하든지, 관리실장이 이야기를 하든지 누군가는 이야기를 했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담임목사 모르게 그렇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도 한번 이야기했습니다. 내 친구가 전도사인데 설교준비를 하다가 늦잠을 잤는데 중고등부가 9시였는데 일어나니까 9시였습니다. 차를 타고 막 가니까 목사님이 설교를 끝내고 씩씩거리면서 내려오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나중에 다 끝난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면 되는데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야?’ 뭐라고 그랬겠습니까? 둘러대면 되는데 ‘몸이 아파서 좀 늦었습니다.’ 또 사실 몸이 안 좋았으니까 늦게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죄송합니다. 늦잠자다가 못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말 못합니다. 더군다나 담임목사님의 성격이 칼 같은 분인 경우에는 말 못합니다. 그러니까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칼같이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못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후암교회에 있을 때 목사님이 교역자들하고 전부다 강원도를 내려왔습니다. 그때 나에게 수요예배를 설교하라고 그래서 나는 빨리 올라왔는데 목요일에 새벽기도를 하라고 그랬는데 수요일에 기운을 다 빼고 목요일에 자명종이 시계가 신통치 않아서 안 울린 것입니다. 그래서 ‘따르릉’ 하고 전화가 오는데 딱 깨니까 5시가 새벽기도인데 5시 5분에 전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하다가 목사님이 서울에 오셨을 때 제일 먼저 가서 ‘잘못했습니다.’ 가서 ‘목사님께서 이번에 새벽기도를 부탁하셨는데 자느라고 못나왔습니다.’ ‘아휴 그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용서해주십시오.’ 목사님은 그게 좋은 것입니다. 장로나 집사를 통해서 ‘목사님 이번 새벽기도에 교역자가 아무도 안 나온 것을 아십니까?’ 성도들은 내가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교역자들 아무도 안 나온 것을 아십니까?’ 그러니 목사님의 불명예입니다.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이야기하면 ‘아 압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체면이 서지만 ‘나도 모르는데!’ 그러면 똑같은 인간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보를 감추는 것은 아주 나쁜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나한테는 감추는 것이 없어야합니다.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말입니다. 나는 또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감추는 것이 없이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티끌만큼 적은 부분에 있어서도 정직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회심도 못하고 중학교 2학년까지 교회를 다녔는데 2학년까지 다니다가 마지막 3학년에 교회를 집어치운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형들을 보고 그런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에 일을 시켰습니다. 그때 페인트를 사러갔습니다. 그때 백 원을 받아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호떡을 사서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형이 사서 나누어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더니 페인트를 50원짜리를 사가지고 가고 가서 100원 주고 샀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거기에 실족해서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는가? 아니 금방 100원을 받아서 금방 50원어치 호떡의 단맛도 안 지워졌는데 100원짜리 통과 50원짜리 통 두 개가 있었는데 50원짜리 사고 어떻게 교회에 나오는가? 그것이 여러분들은 무심해보여도 밑에서 다 보고 있고 여러분들이 실수했는데도 밑에 있는 팀원들은 부정직하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리더는 꼼꼼해야합니다. 그리고 칼 같아야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예 우영은하고 일을 하면서 아예 돈을 줍니다. 우영은 에게 내 돈을 줍니다. 내가 주는 돈이 이십오만 원정도 됩니다. 그것은 비서실 운영비하고는 다릅니다. 이십오만 원 내지 삼십만 원을 딱 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느냐하면 내가 신신당부를 합니다. 뭐냐 하면 내가 일일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교회에 공적으로 연관된다고 하는 것이 분명할 때만 교회 돈을 지출하지, 조금이라도 목사님을 생각해서 네가 목사님 개인용도에 쓰는 것을 교회 돈을 지출하면 너의 목사님을 향한 배려 때문에 목사님의 목회사역에 누가된다. 그러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 판단이 안서면 나에게 물어보아라. 그리고 내가 항상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교회에 청구하지 마라. 이것은 절대로 교회에 청구하면 안 된다. 항상 규정을 해줍니다. 그리고 줍니다. 항상 넉넉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모자라면 이야기해라. 그리고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딱 나누어서 관리를 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절대로 무슨 조그만 물건 하나라도 이 컵이 공적인 용도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이것이 개인적인 것인가 하는 것을 칼같이 갈라서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네가 돈을 쓰다가 모자라서 ‘목사님 십만 원만 다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너를 보고 ‘아유 돈도 없는데 비서가 돈도 헤프게 쓰네!’ 내가 설마 그러겠느냐? 그렇지만 네가 목사님을 생각하고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은 네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목사님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싫다. 나는 절대로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칼같이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부탁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그렇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 리더는 그런 면에 있어서 특히 돈의 문제에 있어서는 칼같이 정확해야합니다.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교회에서 쓰는 것 전부다 인터넷에 게시해서 올릴 용의가 잇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비밀번호를 가지고 들어와서 다 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유리 상자에 넣은 것처럼 정직하게 움직이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매번 내가 할 수 없으니까 내가 딱 주고 심지어는 내 옷가지도 세탁소에서 와서 가져가고 우리 집사람은 막 돌아다니니까 그래도 네가 칼같이 움직이면서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가 맡고 있는 조직전체가 그렇게 투명하고 아주 명징하게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삶이 그렇게 모든 면에 있어서 깨끗하고 진실하고 정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무엇이냐 하면 복제프로그램은 쓰지 마라. 담임목사가 한번 이야기했으면 그것을 불편하더라도 시행을 해야 합니다. 물론 한 번에 ‘그래요? 오천만원 내놓으십시오.’ 그것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조화를 이루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서 다 이루어내야 합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이 그것입니다. 동영상을 만들어서 배경음악이 나가면 작곡을 해서 집어넣던지 아니면 저작료를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전부가 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정직하게 목회를 한다고 생각할 때 여태까지 설교하고 가르친 모든 것들이 빛을 바래면서 모두 휴지조각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이번에도 목사님 한분이 사례금 문제 때문에 굉장히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 목사님보다 많이 받는 사람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이 말입니다. 진짜 몇 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는 그것보다 많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희생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목사님 해명하는 이야기를 다 들으니까 자동차 새로 구입한 것까지 전부다 집어넣어서 한꺼번에 묶은 액수를 그 집사가 터뜨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12로 나누어서 계산하니까 천만 원이 넘으니까 나자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확인했습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런 것을 보면서 그런 것 하나 때문에 엄청나게 파문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아니고 저 이름도 없는 시골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없지만 일어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문에서 그것이 무슨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우리가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정말 우리가 옆에다가 주차박스도 안 만들었는데 차를 세워놓고 이런 것까지는 우리가 지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지키면서 그렇게 진실 되게 해나가야지만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고 나를 돕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어떤 것도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진짜 투명하게 그렇게 여러분들이 해나갈 때 그때에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불의한 일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이냐 하면 뒤에 가면 나중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굉장히 중한 형벌에 처할 사람들로 분류하실 죄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통치가 사회 속에서 실현되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라버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불의한 일 때문에 잘못되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나님께서 엄격하게 금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뇌물을 주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생각해야합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 교회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는데 그 문제를 깊이 들어가 보니까 무슨 문제냐 하면 업자의 문제입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개혁을 했는데 그 개혁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기존의 교회하고 거래하던 업자들이 너무 부당하게 거래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다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게 인맥으로 Connection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자면 교회가 예산이 600억 원쯤 된다면 선교하고 돈으로 지출되는 것 빼고 나면 어쨌든 400억의 예산은 그냥 돈이 그냥 물건을 구매하든지 용역을 사든지 인건비를 지출하든지 어쨌든 나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것을 전부다 거래하는 상인들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중에서 어떤 사람은 현수막을 납품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문구류만 납품해서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를 보다시피 우리가 일 년의 식비가 거의 8천만 원, 일억 원 가까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교회가 우리교회의 20배라고 그러면 우리처럼 점심을 해먹으면 20억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연간 매출 20억이면 큰 회사입니다. 엄청나게 큰 회사입니다. 주식회사를 설립하고도 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을 와서 한꺼번에 정리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밥줄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교회 내부적으로 다 Connection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에 교수생활을 할 때 총 학생 아이들이 데모하면서 개혁해야한다고 나옵니다. 10%의 리베이트는 기본입니다. 졸업앨범이 1억 원 하면 천만 원은 학생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선거를 하면 선거자금을 업자들이 다 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정치하고 똑같습니다. 당선이 될 만한 애는 200만원 갖다 주고 좀 될까 말까한 애들은 100만원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 그 업자에게 그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전부다 사슬처럼 연결되어있는 것입니다. 학생이 한 만 명쯤 모이면 총학생회에서 쓰는 돈이 장난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웬만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이 되면 차가 나옵니다. 바쁘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것들이 다 연결이 되어서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교회에 갔더니 그 목사님이 그러시는 것입니다.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교회 건축위원장을 맡았는데 공사를 따기 위해서 업자가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닌데 금 거북이를 만들어 가지고 왔답니다. 금 거북이 큰놈으로 30돈 이상 되는 놈으로 만들어 왔답니다. 내가 아는 목사님께 갔더니 그분은 그러는 것입니다. 자기네 교회에서 서점을 하는 집사가 있어서 거기는 교인이 한 삼천 명이 되니까 두란노에서 나오는 생명의 삶을 가지고 QT를 한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든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답니다. 그런데 결제 올라온 것을 보니 가관이었답니다. 100%로 집어넣었답니다. 3000원짜리를 3000원으로 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장을 찍으면서 ‘도둑놈들!’ 이라고 그랬답니다. 자기가 두란노에 전화만 하면 70%에 가지고 올수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이 언제까지 팀장으로 섬길지 모르지만 두고 보십시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교회가 커지면 여러분들의 힘은 막강합니다. 나는 직접적으로 지휘를 했으니까 공사를 할 때 발 벗고 뛴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매하고 유관식하고 관리간사하고 더 있었습니까? 네 명이 있었습니다. 네 명이서 30억이 넘게 집행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업자들은 금방압니다. 누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압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는 것입니다. 막강한 사람들입니다. 내년에 한다고 7, 8억 예산을 다 짭니다. 아마 빵빵하게 예산을 올렸을 것입니다. 내가 다 압니다. 엄청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하느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지극히 작은 일에 옳은 사람은 큰일에도 옳고,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그래서 작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모든 것을 공정하고 무사하게 처리하는, 특별히 물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칼 같은 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야지만 흠잡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보면 알지만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금전적인 것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어떤 경우에는 진짜로 그것이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정확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 문제가 됩니다. 그 목회자가 양심에 화인을 맞지 않는 한 교회 돈 통에 손을 넣어서 몇 천만 원을 끄집어내서 자기 마음대로 쓰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봅니다. 대부분 무엇이냐 하면 그런 스캔들에 휘말린 목사님들을 이렇게 보면 항상 부주의합니다. 그리고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나에게도 무엇을 빌려가 놓고는 안주는 것입니다. 이런 뭔가 깨끗하지 않은 그런 것들이 항상 얽혀서 문제를 남기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교회에서도 실제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왜? 목사님보고 교회를 나가라고 그랬는데 왜 그랬느냐하면 선교비 이천만원이 증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사람들이 가서 조사를 해보니까 이천만원이 증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 그랬더니 목사님이 ‘그것이 무슨 이야기냐 교회에서 쓰자고 내가 이야기하니까 그러자고 제직회에서 얘기해서 그 돈을 가지고 중국에 선교를 가서 아무개 선교사도 오백만원을 주고 아무개 선교사도 주고 내 숙박비하고 썼는데 말이야!’ 선교사에게 왜 목사님이 갖다 주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위원장도 있고 다 있는데 여기서 청구서 하나만 써서 통장에 넣으면 국제환으로 전부 들어가는데 왜 목사님이 그 돈을 바꿔가지고 들고 들어가서 달러로 그것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영수증도 안 받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나는 지금도 그분이 교회의 돈 이천만원, 삼천만 원씩 가지고가서 자기가 유흥비로 썼다고 그러는데 그것은 교회가 분란이 생기니까 뒤집어씌우느라고 하는 이야기지 절대로 나는 목사님이 그것을 이천만원씩 갖다가 유흥비로 쓰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뭐냐 하면 부정확합니다. 항상 부정확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절대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야합니다. 뭐냐 하면 그런 면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공정하고 무사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사랑의 수양관에 가서 감동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수련회로 가서 은혜를 받는다고 사흘 동안 난리를 쳤습니다. 직원들이 있습니다. 나는 쑥스러워서 삼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서 저녁이나 사먹으라고 주었습니다. 절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두 번이나 주었는데 장로님의 안색이 변하면서 ‘우리는 그런 것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너무 사무적으로 이야기하니까 무안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입니다. 그런 마음이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적용을 하자면 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느냐 하면 우리들은 이해를 초월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그 팀과 조직의 일이 훌륭하게 돌아가서 하나님이 교회 전체의 유익이 되도록 만드셨으니까 우리들은 리더가 된 입장에서는 항상 이해를 초월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왜? 내가 어렸을 때에 아이들이 굉장히 많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홉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이들 아홉이 있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찢어지게 가난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제비를 끊이면 9개의 그릇에 아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아이들이 한방에서 먹을 형편이 안 되었는지 아이들이 이방에서도 먹고 저 방에서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그것을 퍼먹으려고 국자를 집어넣으려고 그러면 다 먹었다고 그러고 또 오는 것입니다. 이 녀석들이 갖다가 너무 배가 고프니까 그릇을 부엌에서 갖다가 타다가 건넌방에 가서 국물만 먹고 건더기는 쏟아놓고 빈 그릇만 들고 또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그것을 계속 떠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다가 그 엄마가 아사해서 죽었습니다. 굶주림이 원인이 되어서 나중에 결국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직접적인 원인이 영양결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엄마가 정말 가시고기처럼 산 것입니다. 엄마까지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항상 그런 생각을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아무리 지혜롭게 해도 퍼즐을 맞추듯이 아무리 지혜롭게 기가 막히게 과학적으로 맞추어도 마지막은 안 맞는 부분이 항상 있습니다. 그것은 깎아내야 합니다. 누가 깎일 것이냐는 것입니다. 항상 리더가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리더가 깎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젊은 나이에 개척을 해서 내가 보기에는 무모할 정도로 교회에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신 분이었습니다. 교회를 큰 교회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IMF처럼 어려움을 만나서 교회가 계속 빚에 시달리면서 헌금을 다 걷어도 이자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활비 없이는 안 되지 않습니까? 제일 먼저 직원들 월급부터 주고, 두 번째로 전도사들 주고, 그 다음 부목사를 주고, 마지막에 자기가 갖는 것입니다. 몇 달치씩 사례금을 못 받는 것입니다. 내가 두 살, 세 살 때 다니던 교회가 있었는데 목사님이 공부는 많이 못하셨지만 신앙이 아주 훌륭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독립투사였는데 그 독립투사의 환갑을 해드리겠다고 하니까 그 돈을 가지고 저 아들에게 교회를 개척해주라고 그랬는데 그 목사님 사진이 나 어렸을 때 집에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대꼬챙이 같았습니다. 7년 동안 밥을 굶은 것입니다. 그것을 온 교인이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가 잊히지 않는 목사님이 계신데 그분이 김 예진이라는 목사님이신데 순교하셨습니다. 여기 경기도 광주에서 순교하셨는데 그 목사님이 직접 뵌 분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있던 교회가 내가 있었던 후암교회 초대목사님이셨습니다. 해방촌이라는 동네가 지금도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남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촌이었습니다. 부흥회를 다녀오면 사례금을 받아서 그때 사례금을 얼마를 받았겠습니까? 그 목사님도 그렇게 가난한데 오면서 달동네를 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면 사는 것이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쌀을 팔아주고, 연탄을 팔아주고 그러니 사모님은 부흥회 다녀와서 사례금도 많이 못 받는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가지고 오면 쌀이라도 팔아야지 그러는데 항상 빈 봉투를 들고 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6.25때 순교하셨습니다. 그런 훌륭한 스승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뇌물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것이 아니라 이해를 초월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섬기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 마지막 깎이는 사람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공이 있으면 그것은 칭찬이 있으면 자기 팀원들에게, 공이 있으면 윗사람에게, 자기는 마지막으로 깎이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정신입니다. 발을 씻기던 그런 정신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속에 주님이 우리를 일군으로 세우실 때 우리가 늘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에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맡기시는 법은 없습니다. 작은 일을 인정하시면서 하나님이 다음 일을 맡기시고 ,또 거기에 인정받을 때 큰일을 주시고, 거기에 또 인정을 받을 때 큰일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라운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고 그럴 때 그 중간의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야,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하찮던 사람이 저렇게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시고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히브리의 끌려온 노예에 불과했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의 총리로 만드실 때에 그때는 과정이 없이 한 번에 노예를 발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노예로 인정받고, 보디발의 집에 집사가 되고, 총무가 되고, 투옥되고 거기서 인정받아서 또 집사가 되고, 총무가 되고, 그러면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인정받으면서 밟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놀랍게 높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셨을 때에 그때 미끄러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너무 불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예전에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일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실 일들에 비하면 이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자신이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팀원들의 발을 씻기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이 살아갈 때 그 리더십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난 리더십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리더로서 존경을 받고, 내가 리더로서 존재함으로서 나를 기대고, 그 안에서 삶의 보람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이 사실은 여러분들이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너무 너무 보람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 새들이 쭉 모여들고 생태계가 형성되듯이 그렇게 하면서 숲을 이루어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정말 한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죽했으면 그랬습니다. 옛날에 간사들이 있을 때 여기에 와서 그랬습니다. ‘3년만 목사님과 같이 있어라. 그러면 시장에 나가서 장사를 해도 되고, 남의 회사에 들어가서 따까리를 해도 되고, 사업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해도 될 것이다.’ ‘왜?’ ‘모든 인간사회의 살아가는 기본이 바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완성되고 실현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경영해 나아가면서 항상 그렇게 하나님이 내가 너무 참된 신자로서 살아갈 가능성이 적으니까 때로는 하나님이 불속에 넣었다가 물속에 넣었다가 기름에 튀겼다가 하면서 나를 조금씩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또 튀기시는구나!’ 네가 기름이다. 그래 나는 튀김이다. 저 기름이 뜨거우면 내가 노릇노릇하게 튀겨지겠구나! 그러면서 매일 매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세 가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고 그리고 세 번째는 이해를 떠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리더들이 된다면 당장은 사람들이 몰라줘도 반드시 여러분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