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하는 삶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
우리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 태만한 것 같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을려고 노력하는것도 그렇고 실패할때도 많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볼려고 늘 다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그렇게 살려고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생활을 강조하고 건강한 영적인 생활에 대한 필요성을 늘 다짐합니다. 그리고 기도 생활에 힘쓰기도 하고 우리가 가지고있는 물질이나 시간이나 우리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그것들은 결국은 마지막의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 중심에 빠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많이 경고하고 그리고 일하는 재미로 교회에 나오는 것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 우리는 누차지적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자체가 의미 없거나 하찮은 일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러한 위험성에 대해서 자주 지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지 않으시다면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일 중심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 누차 지적을 받고 그런 것들에 대해 우리들이 깊이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예수그리스도와의 감미로운 교제 속에서만 산다면 그것은 건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감미로운 주님과의 교재 안에 산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별히 오늘날 같이 혼탁한 시대에 신비주의 운동이 유행하는 것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그중에 어떤 운동들은 아주 교묘하게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오히려 그러한 잘못된 것이 빠진 사람들이 아주 깊고 감미로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사는 것 같이 그렇게 스스로 착각에 빠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것은 악마적인 것이라고 까지 말 할 수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영성,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주님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속에 녹아들고 우리의 영혼 속에서 우리 안에 계신 주님과 혼연일체가 되는 신비한 영적인 삶 거기에서 오는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과 교제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죠. 그런 것들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분투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그의 삶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충성되지 아니하다면 그의 영성은 이미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어제 19세기에 영국의 캔서 지방에서 목회했던 주목할만한 한 하나님의 종 허러시스 버너가 쓴 영혼을 건지는 자들을 위한 권면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그 시대 어셔 라는 주교의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물론 가톨릭의 사람이 아닌 성공회 사람 이였죠. 그 사람이 마지막 죽으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한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님 내가 일생을 태만하게 산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기도 했습니다. 죽기 전날까지 신방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분의 말에 따르면 그 어써 주교처럼 그렇게 헌신적으로 주님만을 산 사람을 자기는 만나보지 못했다는 거애요. 이른 새벽이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루를 주셨으니 오늘 하루를 남김없이 주님을 위해서 다 써보자, 그러고 하루를 시작했답니다. 죠셉 얼라인의 글에도 같은 각오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불붙는 마음을 가지고 영혼들을 전도하고 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들에 대해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으며 그리스도에 관해서 사석에서나 공개적인 석상에서나 가르치고 권면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는 그 일에 촌음을 아꼈으며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병저 누워서 임종하기 전날, 바로 그 아침까지 신방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 죽을 때 남긴 말이 “하나님 내가 일생을 태만하게 산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의 참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들은 무엇인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표를 위해서 자기를 다 드리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한없이 괴로워하고 가책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여야 합니다.
(찬양)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특별한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저는 이 찬송 특별히 끝 절을 좋아합니다. 남이 못 본 것을 보게 하셨고, 남에게 없는 것들을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남들이 서 있을수 없는 자리에 우리를 세워주셨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아직도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신앙을 갖고 싶지만 그러나 길을 모르기 때문에 어두움 속에서 수많은 인생을 허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지만 그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데 그 수많은 오류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서 우리에게 참된 진리의 빛을 주신 것 특별한 사랑 아닙니까?
제 신앙생활의 가장 큰 괴로움이 있다면 이렇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사는 것은 사는 거죠 제가 놀겠습니까? 남들이 하는 것만큼 설교도 하고 신방도 하고 글도 쓰고 또 의미 있는 일들을 위해 시간을 보낼 때도 많지요. 그렇지만 특별한 사랑을 남보다 비교가 안 되는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더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올해도 지극히 평범한 한해를 살았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주께 영광이 될지 나 하나 죽어서 길을 비켜주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지 한해가 지나가면서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것 중에서 없어도 좋을 것들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계신 것 중에서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이 생명 이 빛 이 은혜 안에 살계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가 진정 변화받고 나면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인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 것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이 충성된 삶을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같이 능력도 없고 이 세상에서 유별나지도 않은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이상의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받게하신 것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큰 은혜와 그런 은혜를 받고 그런 사랑을 받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가치한 우리의 존재 사이에서 깊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주님께 죄송하고 황송한 생각이 들 때 마다 자기를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충성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 같은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허라시스 버너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데 태만하게 가르치는 사람들 밑에서는 나태하고 게으른 그리스도인들 밖에는 자라는 사람들이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그런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분골쇄신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한해를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태만하게 살았던 많은 허물과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제 태만하게 살고 육신에 일에 얽매이고 작은 슬픔에 얽매이며 살았던 그런 나태한 한해는 98년과 함께 세월의 흐름속에 ane어 버리고 하나님 우리에게 1년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들이 힘도 없고 능력 없지만 그렇지만 주님이 한해 한 인생을 살고난 후에 주님이 보실 때에 우리가 무언가 아까워서 주님 앞에 우리를 위해 챙겨두거나 불성실하거나 태만해서 주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도와 달라고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보십시오. 믿음을 지키고 많은 고난을 받았던 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아직도 환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충성된 삶을 살도록 그들에게 격려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태만하고 게으른 삶 충성되지 못한 삶을 산후에 얼마나 자주 우리의 인생이 충성스러운 삶을 살기에 얼마나 어려운 점이 많았는지를 변명과 이유를 구실로 달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환난과 시련이 많았고 앞으로도 환란과 시련은 계속될 터인데 그런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는 길은 그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그런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며 이제 우리들의 남은 인생이 주님 보실 때 정말 충성된 인생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자기를 버린 그런 생애가 되어서 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