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리바이벌
녹취자 : 김세나
교사의 사명이 누구나 다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죠. 그런데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왜 그렇게 교사의 사명이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여러분들에게 한번 납득을 시켜 보려고 해요.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을 위해서 섬긴다고 하는 일은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리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다른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균형이 안 잡혀 있었던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균형을 잡도록 서로 분배하거나 장소 이동을 함으로써 그 질서를 하나님 마음에 들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예요, 대부분.
무슨 뜻이냐 하면, 자 예를 들어 봅시다.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잖아요. 그런데 사실 모두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떠한 사람은 돈이 많은데 어떠한 사람은 돈이 없어요. 어느 교회는 넉넉한데 어느 교회는 가난해. 누구는 좋은 학원에도 다니고 고액으로 과외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데, 또 어느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의 자녀는 그렇게 못해. 이러한 것들을 서로 이것을 눌러서 여기 남는 것을 저기로 보내고 저기에 모자라는 사람은 있는데서 받아서 이게 균형을 이루게 될 때에 물질이 흘러가면서 물질이 없어서 구겨 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피어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물질 자체가 사람을 피게 한다는 게 아니라 잘 교육을 받고 여건이 갖추어 지면 쭉쭉쭉쭉 성장해서 보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그러한 식으로 하는 거죠. 또 보세요. 어떤 사람은 재능이 아주 많은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재능이 없어요. 그러면 이 사람 재능 때문에 저 사람에게 유익이 돌아가도록 이러한 식으로 무형유형의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재배치해서 모든 사람들이 유익을 얻게 함으로써 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거든요. 그런데 영혼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그게 아니란 말이요. 왜냐하면 예를 들면, 내가 영혼을 전도하고 잘 돌봐서 영혼을 많이 모아서 그래서 영혼을 어디로 보내주고 그러는 것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영혼은 하나님이 재배치하고 질서를 만들어서 누구에게 없는 것을 있는 사람에게 꿔 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영혼만큼은 직접 수확해서 직접 하나님께 갖다 드리는 것이란 말이에요. 이게 직접 수확해서 하나님께 직접 갖다 드리는 것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영혼 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오죽 했으면 시편에서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내가 무엇이 부족할지라도 너희에게 원하겠느냐. 산천이 다 여호와의 것이고, 세계가 다 여호와의 것인데 여호와가 짐승의 피에 주렸겠느냐. 그렇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데 그렇잖아요. 그러나 영혼은 틀려요. 영혼은 우리가 추수해서 누구에게 나누어 주어서 형평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품에 직접 돌려 드리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뭐냐 하면 영혼을 추수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 그것이에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목회를 하면서 목회를 한 3년, 4년 5년 하고 나면 사람이 대게 간사해진다고 그래요. 뭐냐 하면 목회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대접도 해주니까 그러니까 나 혼자라면 도저히 먹어보지도 못하던 자리에 가서 먹어보기도 하고 대접도 받고 그래요. 그런데 그것이 나쁠 것도 없지만 사실 뭐 별로 좋을 것도 없어요. 그렇게 살아가잖아요. 그렇게 목회하면 사람이 그러한 식으로 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잖아요. 이게 가만히 보면 그러한 것들이 어느 정도까지이지, 어느 정도 지나가게 되면 마음에 기쁨이 안 되는 거죠.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 돈을 못 벌고 가난하던 사람이 어디에 가게를 차렸는데 돈이 막 벌린다 그러면 몇 달이야 기분이 좋지만, 나중에 계속 돈이 잘 벌려요. 그러면 그것 또 짜증이 난데. 짜증이 난데. 왜냐하면 처음에는 여러분, 노동 공급 곡선 배웠잖아. 그래서 먹고 살기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노동을 제공할 때 힘쓰고 애쓰는 수고에 대한 댓가를 돈으로만 계산해서 주는 돈이 노동의 고통보다 훨씬 크다고 하면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먹고 살기가 원만해 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계산을 하는게 아니고 한 시간에 만원 줄게 일할래 그러면 한 시간에 저 일을 하는데 고통이 만원 어치가 될까 그렇게 생각 하는게 아니라 한 시간 동안 놀면 만원보다 더 재미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 공급 곡선이 임금이 올라가면 노동 공급이 올라가다가 아주 올라가 버리면 확 휘어 버려서 임금은 올라가는데 노동 공급은 줄어들어 버리는 거예요. 안하려고 하는 거예요. 임금을 많이 줘도. 그러한 거거든요. 그래서 모든 게 다 그런 거야. 그렇게 잠깐은 신나고 재밌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항상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시시하고 그리고 재미없고 그리고 일 하다가 보면 너무 피곤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목회에 있어서 힘을 주는게 뭐냐 하면 무슨 교인들이 갖다 주는 김, 김 좋아한단 말을 한번 했어요. 집에 김만 계속 통에 든 김, 싼 김, 봉투에 든 김, 박스에 든 김, 그것도 너무 먹으면 요오드 과다래 또. 하여튼 김으로 떡을 쳐요. 뭐 말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그게 그러한 것들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이야기가 목회자의 마음에 힘을 주냐 하면 감동적인 회심의 이야기, 이러한 것들이 말할 수 없는 전율하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거죠. 그러한 기쁨들이 말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영혼을 섬기면서 살게 하는 거예요. 다른 것으로는 섬겨서는 그러한 짜릿한 그러한 짜릿한 기쁨을 경험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는 일들도 부지런히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지는 못해요. 그렇죠. 이번에도 우리가 시골에서 목회하는 자녀들,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들 골라서 대학 입학 장학금을 대 주겠다고 몇몇 장학생을 선발을 했어요. 우리 목회자 농어촌 목회 세미나 할 때, 그리고 우리 임직식 할 때에도 또 할 거예요. 힘들어도 계속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그 사람들의 길을 열어 주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뀌도록 근본적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해요. 그것은 오직 무엇만이 할 수 있느냐 하면 말씀으로 영혼을 다루는 목양 사역만이 그것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때에 거기에서 큰 기쁨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저는 회심하고 나서부터 회심하고 난 이듬해부터 교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뚜렷한 증거를 어디서 발견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때 제가 회심하고 나서 2년 정도 그렇죠. 75년도 회심하고 77년도에, 3년쯤 되었네요. 2년 됐네요. 2년 됐는데 성경도 한번 제대로 못 읽었어요. 우리 교회처럼 교사대학이라고 해서 체계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요. 교회에서도 문답도 거의 못 외운 채로 세례를 받고 그랬으니까요. 그랬는데 그러니 내게 무슨 내용이 있겠어요. 신학교 나온 사람도 아니고 신앙이 깊은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그 애들이 5-6학년 애들을 가르쳤는데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애들이 전도를 하고 해서 우리 반 애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우리 반 애들이 5-6명밖에 안되었는데 열 댓명 모였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교회당은 이거 1/4, 1/6 밖에 안 되는데 거기 방이 오글오글 하니까 여기에서 얘기를 하면 안 들리니까 소리를 높이는 거죠. 소리를 높이니까 또 그 소리 때문에 안 들려서 여기에서는 또 소리를 높이는 거야. 저쪽에서는 더, 그래서 나중에는 선생님들이 악을, 악을 쓰면서 가르치는 거야.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죠. 안 들리니까. 그런 시끄러운 것 속에서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참 신기하게 거기에 뭔 내용이 있겠어. 공과 책 공부해가지고 와가지고 그것 메모해서 여기에 펼쳐놓고 그것을 들고 아이들 가르치는데 그 내용이라는 게 사실 조잡하기 그지없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회심한지 2년 밖에 안 되는 나 같은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도 내가 또 방위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머리도 빡빡 깎고 와가지고 주일날 가르치는데 참 신기한 게 그것을 들으면서 공과 공부하기 전에 그렇게 싸우고 까불던 애들이 그 시끄러운 속에서 그렇게 악을 박박 쓰면서 가르쳐 주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 아이들이 그것을 듣는 거예요. 집중하고 나면 주변이 시끄러워도 문제가 안돼요, 딱 집중하고 나면. 애들이 눈물이 주루룩, 난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내가 예수 믿은 것도 신기했지만,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그렇게 어눌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애들이 거기에서 입에다가 욕을 달고 살던 애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회심하는 거예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예수님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고 하니까 헉헉헉헉 흐느껴 우는 거예요. 자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교회 나온 지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아이들이 그러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끔 만드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나의 체험으로 끝났다면 사실 그러한 체험이 내 속에서 리바이벌되기는 쉽지 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곤고하고 힘들어서 그래서 나도 간신히 주일날 나갔는데, 애들 펼쳐 놓고 그렇게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회심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말이죠. 야, 이것은 정말 놀랍구나. 그것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게 바로 그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놀라운 증거고, 하나님이 정말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사용하셔서 그 일을 이루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사람이 너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금이나 은, 짐승의 피나 모든 재물보다도 가장 기뻐하는 재물이 바로 영혼 그 자체를 수확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찬양)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주 크고 놀라운 하늘 뜻을 이루시는 거예요.
이번에도 총신에 갔는데 어느 전도사님이 덜렁덜렁 걸어오더니 목사님, 저 기억하세요? 내가 널 어떻게 아냐. 제가 옛날에 목사님이 전도사였을 때 가르쳤던 아무 아무개입니다. 이름이 기억이 나. 그때는 걔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런데 그때에도 그때 우리 어린이 사역에 은혜를 받고 얘가 회심을 해서 목사가 되겠다고 거기에 신학생으로 들어와서 전도사로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영혼 자체를 획득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거라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제 당연히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그 영혼들을 가르쳐야 되겠죠. 진리의 말씀으로, 순수한 진리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되겠죠. 또 그 영혼을 위해서 우리가 늘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기도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뭐냐 하면 영혼을 마음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이번에도 우리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하면 심방을 했는데, 어느 부부가 목사님 오신다고 하니까 이제 음식을 차려 놓고 기다렸어요. 식당을 하는 집인데, 그래서 가서 이제 그 집 간증을 듣는데 목사님 우리가 결혼 한지 29년이 된 부부입니다. 그래. 남편은 나하고 결혼할 때에 틀림없이 결혼해 주면 교회 나가겠다고 그랬는데 일보러 들어갈 때 틀리고 나올 때 틀리듯이 결혼하고 나니까 말을 안 들었습니다. 29년 동안 교회를 딱 세 번 나왔대요. 야, 그분도 참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이지. 석 달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는데, 세 번 나왔대요. 그런데 어느날 부인이 남편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뜬금없이 그러더래요. 여보, 열린 교회에서 사경회를 한다고 하는데 거기나 한번 가볼까? 그러더래요. 그리고 덜렁덜렁 찾아온 거예요. 그때가 사경회 역사상 제일 어려운 주제였어요. 만물의 상호교통과 세계 완성. 그런데 오는 첫날 29년 만에 네 번째로 온 교회 출석 그 저녁에 회심을 한 거예요. 그래서 그 어렵지 않더냐, 우리 교회 10년씩 다니던 분들도 머리가 터진다고 그러는데 어렵지 않더냐. 이해 못할게 없고 다 이해가 된다 하는 거예요. 한 번도 안 빠지고 월, 화, 수, 목, 금요일까지 나와서 요새는 새벽기도까지 나와요. 더 재밌는 것은 뭐냐 하면 거기에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이 세계의 놀라운 비밀들을 자기가 터득을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만이 참 살길이다. 회심을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더 재밌는 얘기는 29년 동안 남편이 은혜 받기 위해서 기도하던 그 아내는 무슨 소리를 사경회때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거예요. 참 신기하죠. 그죠. 참 신기해요.
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책을 제가 몇 권을 썼는지 몰라요. 40권 썼을 거예요. 하여튼 교인들이 써낸 책을 다 읽었는데 거의 안 읽었으리라고 확신하는 책이 있는데 그게 도덕적 통치에요. 머리가 아프다 이거죠. 그런데 뭐 아픈 이유는 따로 있겠지만, 어쨌든 그 책을 써서 신학생을 줬는데도 읽다가 우묵에 집어 던지는 책이 그 책이에요. 그러다가 며칠 있다가 다시 기어가서 읽는 책도 그 책이에요. 그렇게 책을 어렵다고 하고 그랬는데, 우리 교회에 있는 형제 하나가 있는데, 교인의 자녀가 있는데 예배당에 나오라고 해도 그렇게 안 나오고 맨 날 주일이면 헛일만 하던 사람인데, 집안에 굴러다니던 도덕적 통치를 혼자 읽기 시작하는데, 거의 불신자죠. 이것을 읽다가 회심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 금요예배까지 열심히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요.
그러니까 이것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혼을 위해 애쓰면 하나님이 그 도구를 사용해서 그 영혼을 바꿔 놓으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과 같은 역사 뒤에는 항상 기도가 있어요. 그래서 아까 내가 기도를 하면 상상하지 못했던 너무너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그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그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 기도는 또 왜 안 중요하겠어요. 그뿐만이 아니죠. 사실 영혼들은 영혼들에게 종이를 펴놓고 칠판을 걸어놓고 하나님에 관해서 설명을 하는 것은 항상 한계가 있어요. 그것도 필요하지만, 영혼들은 실제로 그것이 누군가의 몸에 체화된 것을 볼 때에 가장 이해가 빨리 되는 거예요.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칠판에다가 수없이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목 메이는 교사의 눈물을 보면서 아까 내가 이야기 했듯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사 자신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자신의 전 삶과 영적 생활을 통해서 그 영혼들에게 보여주는 그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어요. 그것이 없으면 참다운 교회 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이렇게 많아요. 이렇게 다양하고 많아. 그런데 이 일을 잘 하면 그러면 기도 많이 하면 교회 안 나오는 영혼들도 하나님이 어떻게 기적적으로 움직여서 나오게 하셔요.
제가 중등부 전도사 했을 때 있었던 일인데, 부장 집사님이 열심이 있으셨어요. 그런데 애들이 회심을 안 하니까 아침 9시 예배인데 가서 깨우지 않으면 애들이 안 일어나는 거예요. 왜, 토요일까지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다가 일요일 날도 한번 퍼질러 자는데 그 부모가 집사님이니까 두들겨 깨워서 보내면 되는데 엄마 말은 안 듣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7시 40분 쯤 나와서 8시부터 돌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회심을 안 하면 사역이 하여튼 수 십배 고달파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사님이 하나씩 하나씩 애들을 깨워서 데리고 들어오니까 9시 30분 되야지만 예배가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하루 이틀이지 그 중에 한 녀석은 하여튼 일 년이면 50주를 찾아 가야지만, 겨우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나중엔 은혜가 되는게 아니라 이 집사님이 화가 너무 났어요. 그래가지고 야 좀 나와 봐라 그러는데 저요, 저 오늘 교회 못가요. 교회 못 가도 좋으니까 한번 좀 나와 봐. 그러니까 이제 부스스하고 나왔어요. 저 교회 못 가거든요. 야, 나 너 교회 가자고 온 것 아니거든. 예? 너 이제 교회 오지마. 그리고 출석부를 쫙 펴서 내가 너를 매번 데리러 2년 이상 다녔는데 하나님도 나보고는 할만큼 했다고 그러셨을 거다. 빨간 펜을 꺼내서 줄을 그어서 나 이제 보는 앞에서, 웃으면서 한 게 아니라 진지하게 줄을 쫙 그면서 너는 이제 잘렸어. 나는 이제 너한테 할 만큼 했으니까 하나님 앞에 가도 할 말있다 이거야. 너는 너 스스로 예수를 안 믿으려는 놈이니까 너는 믿든지 안 믿든지 마음대로 해. 나는 이제 니네 집에 다시는 찾아오지도 않을거야. 전화도 안하고. 너도 더 이상 이제는 부담 갖지 말고 예수 믿지 마 그러면서 가버렸어요. 다시 오는 사람이 아니다 하면서 갔어요. 걔가 그 다음 주에 왔겠어요, 안 왔겠어요? 왔어요. 이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지. 얘가 얘기 하는 게 무섭더래는 거예요. 빨간 줄을 쭉 긋는 순간에 무섭더래는 거예요. 이것을 늘 쓰지마. 다 지워지면 어떻게 하려고 해. 무섭더래는 거야. 그러면서 나왔어요.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영혼들을 그렇게 건져내시는 거죠. 그러니까 기도하면 그러한 놀라운 일들이 생겨나요. 말씀을 잘 가르치면 놀라운 일이 생겨.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영혼은 심방가지 않으면 결코 돌아올 수 있는 영혼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심방이 여기에서 대두가 되는 거예요.
오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이 이제 세리하고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 가까이 왔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들 하고 같이 이제 말씀으로 교제를 하시고 또 예수님이 꼭 그러한 죄인들은 불러서 늘 먹이셨어요. 먹여주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이렇게 먹여주면서 그들을 형제처럼 따뜻하게 하면서 그러면서 말씀을 가르쳤거든요. 그 사람들이 죄인이고 세리이거든요. 예수님 당신은 벼락 맞을 죄인입니다. 동의하면 내가 교제할 수 있고 1번 문제의 대답에 회피하면 난 당신하고 상종할 일이 없어요. 이것이 복음에 이르는 길이요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오셔서 같이 식탁을 나누면서 식사의 교제를 하면서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절대로 당신이 전하셔야 할 진리를 감하거나 변경시키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거예요. 영혼이 획득되는 거죠.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와서 와 어떻게 명세기 선지자 혹은 랍비라는 사람이 저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저렇게 퍼먹고 같이 지내나 이렇게 원망을 할 때에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비유가 오늘 읽은 본문이에요. 100마리의 양떼가 있는데 집에 와 보니까 한 마리가 없더라. 만약에 니가 목자라면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다 이야기에요.
그런데 놀랍게 말이죠. 짐승들은 자기 집에 대한 말하자면 귀소 본능이 있어요. 그래서 개 같은 것은 길 잃어버리는 예가 별로 없어요. 진짜 아주 심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동네에서는 개는 기억력을 가지고 자기 집을 정확히 찾아와요. 진도인가 한번 갔더니 진돗개가 있잖아요. 진돗개가 팔려간 거야. 팔려서 저 도시 어디 강릉인가 춘천인가 어디로 팔려간 거예요. 그런데 이 녀석이 그 700리 길을 걸어서 마지막에는 배를 타고 바다가 있잖아. 배를 타고 개가 표를 끊었겠어요? 표를 끊었겠냐고요. 찾아서 집에 돌아온 거죠. 신문에도 나오고 영화인가 만화로도 나왔었잖아. 실화에요. 그게. 700리를 그렇게 해서 온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막 동네에서 그 개는 동네에 와서 완전히 말하자면 관광 상품 취급을 당해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냈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이야기 한번 들었더니 가슴이 섬짓 해지러다고요. 그것을 다 외운 거예요. 그것을 다 외웠어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개가 이 그 거기까지 와서 그 배가 여러 군대를 가는 배가 있잖아요. 며칠을 부두에 나와서 그 배 떠나가는 것을 보드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자기네 동네에 가는 배를 딱 탄 거예요. 내 추측에는 뭐냐 하면 얘기 글씨를 읽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수많은 냄새 그지, 이것을 얘가 250만개까지 기억을 해요. 냄새를. 어마어마한 거죠. 그게 오래토록 남는 거예요. 얘는 어렸을 때의 그 동네에 있었던 사람들의 냄새가 입력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것을 찾은 거야. 그래서 그것을 딱 탄 거야. 그랬는데 그렇게 해가지고 돌아온 거예요. 팔려간 지가 5년이 되었는데 이게 몇 년 만에 돌아오니까 막 그 동네에서 발칵 뒤집힌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돼지를 돼지라고 그러는데 사실 돼지처럼 영리한 짐승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돼지 길 잃어버리는 법 거의 없어요. 돼지가 혹시 우리를 뛰쳐나와도요, 자기 집 찾아와요. 안 믿어지죠? 찾아옵니다. 얘를 장소 이동을 해서 차나 트럭을 태워다가 먼 데 갔다놓으면 못 찾아오지만, 개처럼은 못 찾아 오지만 동네에서 지 발로 나갔을 경우에는 반드시 마실 다니다가 지 발로 들어옵니다. 뭘 보면 알 수 있느냐 하면 개 사촌이 맷 돼지잖아. 맷 돼지가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살겠어요. 우리 시골에는 겨울에 먹을 게 없으면 바로 그 뒤에 창문까지 내려와서 그 저 무 꽁다리 배추 꼬랑지 캐 먹고 가거든요. 자기 집에 항상 가요. 실종 신고 난거 본적 한 번도 없어요. 개도 그래요. 돼지도 그래요. 얼마나 똑똑하냐 하면 돼지를 돼지 우리에 뱀이 들어가면 이 돼지가 물릴 것 같아요? 뱀이 죽을 것 같아요? 뱀이 죽어요. 꽤 큰 뱀을 집어넣어도 절대 돼지는 뱀한테 죽지 않아요. 들어오는 것을 보는 그 순간에 여러 명이 거기에서 온통 댄스파티를 하는 거예요. 밟혀 죽어 버려요. 뱀이 정신을 못 차리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소리를 지르면서. 혼을 쑥 빼놓고 머리를 밟아서 죽여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간단한 짐승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양은 절대 자기 집을 못 찾아요. 이유는 뭐가 하면 머리도 나쁘지만, 그래서 그 중동 지방에서 멍청한 사람을 가리켜서 양 같은 놈이라고 그런데요. 양 같은 놈이 닭 대가리다 그러한 뜻이에요.
그렇게, 그런데 또 하나는 뭐냐 하면 머리도 나쁜데 지독한 근시에요. 멀리 못 봐요. 그러니까 길 잃어버린 양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거예요. 혼자서 돌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영적으로도 이미 예수를 믿었는데도 주님을 영접했는데도 이렇게 스스로 좀처럼 돌아가지 못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어요. 뭘 보면 알 수 있는가 하면 여러분들이 사람이 각자가 얼굴이 다 다르고 지문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도 참 여러 가지이잖아요. 보면 일을 하다가 뭘 좀 보다가 실수를 했어도 더플 더플 하면서 아이씨 미안하다 야, 어깨한번 툭툭 치고 차 한번 마시고 다시 그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번 그렇게 하고 나면 도저히 그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그러다가 아주 사소한 것들 때문에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다가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영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이다 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인격에 담그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여러분 중에도, 지금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 중에도 아마 어떠한 사람은 뭔가 친구와 틀어졌을 때 친구가 미안하다고 그러면 아니야 내가 죽일 놈이야 하고 펑펑 울 용의는 있지만, 절대 먼저 찾아가서 내가 잘못했거든 이라고 말 못하는 사람 오늘 이 중에도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영혼도 그런 영혼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뭐냐 하면 반드시 심방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교사 리바이벌이란 책속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한 영혼은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도 당신이 찾아오지 않는 한 돌아오지 않습니다. 찾아가야 한단 이야기에요. 찾아가야 한단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이렇게 심방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면, 어떻게 심방을 해야 할지 굉장히 궁금해 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어렸을 때에 신앙생활 하면서 우선 심방 오는 선생님들은 많이 만났어요. 그러니까 그게 이미 벌써 심방을 받아 보면서 어떻게 심방하는지 대충 알잖아요. 그리고 교사가 된 다음에는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전도사님 같이 따라 다니면서 심방해 보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알죠. 지금들은 잘 안 해요. 열심이 식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옛날처럼 자신의 삶을 잘 개방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러한 완고한 도시생활에도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러나 결국은 사랑으로 다가가게 되면 기회는 주어진다 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어떤 식으로 심방을 하느냐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심방을 할 때에는 심방을 할 때에는 제일 먼저 목표가 확실해야 되요.
예를 들자면, 그냥 새로 올라온 아이니까 교회 잘 출석하는데 얘가 어떤 아이인지 한번 알아보기 위해서 심방을 해야겠다 이러한 것 있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거기에서 잘 하고 오고, 그 다음에 얘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찾아오면 성공한 거예요. 두 번째 또 심방을 하는데 이러한 경우 있잖아요. 예를 들자면, 출석이 매우 불규칙해서 이 아이가 예배당에 잘 나오게 했으면 좋겠는데 방해 요인이 뭔지 알아보고 적절하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한 목표를 세운다든지, 아니면 집안에 매우 불행하고 어려운 일이 닥쳤는데 그 문제 속에서 신앙적으로 버티면서 교회에 올 수 있을까 그러면 그 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 그러면 이 아이에게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교회 잘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등등 여러 가지 목표들이 있잖아요. 그 목표를 뚜렷하게 정한 다음에 그 다음에는 기도를 해야 해요. 이 기도가 심방에 있어서 준비 기도가 이 심방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커요. 맨 처음에 제가 중등부 교사로 갔을 때, 전도사로 갔을 때 보니까 그 교회의 교사들이 열심은 있었는데 그런 심방 같은 것 해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자마자 대심방을 만들어서 이제 일년에 두 번씩 심방을 했어요. 한 네 주 정도 시간을 내서 샅샅이 100여 명 정도 확 훑어서 심방을 하는 거예요. 한 두 주 정도는 거의 아침에 일찍 나가서 밤 11시까지 심방을 해야 해요. 그것을 두 번을 해서 겨울에 하나 털어서 2월에 열리는 봄방학 사경회때 거기에다가 참석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 7월달에 한번 털어서 심방을 해서 8월달에 수련회 따라오게 만들고 이러한 식으로 이제 심방을 했거든요. 그 때 이제 선생님과 같이 가는데 뭐냐 하면 그때는 뭐 내가 운전하고 뒤에 선생님들 두 사람, 대게 두 사람 정도 같이 다녔어요. 그렇게 셋이 가는데, 어떠한 때는 세 사람도 가요. 왜냐 하면 도는 코스에 따라 사람들이 틀려 지니까. 그런데 뭐 가면서 재잘재잘재잘 뭐 그냥 뭐 시간 있고 하니까, 주일날 교회 끝나고 심방 가는데 뭐 얘기, 웃고 떠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자 이제 내리자 그러면 벌써 다왔네, 마음에는 영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거죠. 온 갖 수다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심방이 되겠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심방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들을 다 모아놓고 프린트물 한 장을 놓고 심방하는 요령을 가르쳤어요. 예의부터 시작을 해서 옷차림, 그 다음에 차에 승차했을 때 쭉 가르쳤어요. 그 다음서 부터는 뒤에 앉아서 필요한 얘기만 몇 마디 나누고 그 다음에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만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죠. 왜냐하면 어른 심방처럼 걔네들이 무슨 상차려놓고 기다리는 것 아니거든. 있다는 보장도 없이 찾아가는 거예요. 간다고 하면 걔네들이 오히려 도망가요. 그러니까 몰래 가는 거죠. 그러니까 기도가 저절로 나오죠. 그렇게 찾아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첫 번째는 목표를 탁 정하고 두 번째는 간절히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심방을 갈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에 대한 사랑, 그것을 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은 금방 알아요.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자기가 출석을 안 해서 데리러 나왔는지 자기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사랑해서 데리러 나왔는지 애들은 안다 이거죠. 아이들은 안다 이야기에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하고 가면 영혼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요. 처음에는 이 자식 말야. 그렇게 돌보아 주었는데도 교회도 안 나오고 말이지. 아이 정말 못됐어. 신앙도 없고 말이지. 머리도 나쁘고, 이러한 생각이 들다가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 이런 마음이 쏙 사라지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해요. 그리고 어느 덧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눈물이 나오고 마지막에 가서는 이 아이의 결점이 안 나오고 하나님의 필요한 은혜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루에도 그렇게 마음을 바꾸어 주실 수도 있고 평소에 기도했다면 그 마음이 평소에 있을수도 있고 3일만에 생길 수도 있겠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면 심방하는 날짜를 딱 정하는 거죠. 그래서 뭐냐 하면 기꺼이 선생님들 오시라고 기다리는 아이는 그저 뭐 선생님이 원하는대로 날짜 잡고 가면 되지만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심방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교회에 나오는 자발성들이 떨어지는 애들 한 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믿음이 식어져서 미끄러지는 아이들, 그러한 아이들을 심방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심방을 하는 거예요. 갈 때는 약속을 하고 갈수도 있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어디쯤 있을 거라고 잘 수소문을 해서 갈수도 있죠. 그래서 학교 앞에 기다리거나 도서관을 찾아가거나 학원을 가거나 PC방으로 찾아가거나 그러면 대부분 만나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 빼놓고 걔네들이 정기적으로 갈 만한 데가 없으니까. 나머지는 다 부정기적이잖아요, 그렇죠? 학원, 그 다음에 도서관, 그 다음에 학교, 그 다음에 PC방. PC방은 늘 고정적으로 다니는 것 아시죠? 네. 고정적으로 다녀요. 고정적으로 늘 그 시간이면 다니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딱 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찾아가는 거죠. 그래서 목사님이 집안에 심방 갔을 때처럼 상 펴놓고 책상다리 하고 나서 그리고 예배드릴 생각을 하면 심방이 안되는 거죠. 그게 아니라 그러한 장소가 제공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감사하죠. 그렇지만, 대부분 그러한 장소가 제공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 심방하는 장소는 아무데라도 상관이 없어요. 조금 조용하면 괜찮아요. 그래서 심방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이제 기도를 하면서 찾아가요. 그러면 이제 만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만나게 되면 그 다음에 심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통된 관심사로 먼저 말을 거는 거예요. 농구 선수를 심방을 하러 가서 UDT얘기 실컷 하면 자기는 알아서 떠들지만, 저 사람은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제일 좋은 것은 저 사람이 지금 관심 있어 하고 좋아하고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을 가지고 말을 거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리 준비하면 더 좋겠죠. 제가 탁구 선수다 그러면 탁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는 거예요. 그래서 탁구 선수는 어떤 사람이 되나 한국에 유명한 선수는 어떻게 되어 있나. 졸업하면 진로가 어떻게 되나 대충 찾아서 가는 거예요. 가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자발성이 있지 않으면 웬만큼 말을 걸어도 반응을 보이고 이야기를 잘 안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실컷 떠들어도 애들은 가만히 있어요. 그때에 걔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말을 거는 거예요. 야, 이번에 아무개 선수가 외국으로 스카웃 되었다고 그러더라. 너네도 탁구 잘 하면 그렇게 되는 거냐? 그러면 말을 하기 시작해요. 이번에는 어느 학교가 우승할 것 같다고 그러던데 그 세 학교 중에 니네 학교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 너도 이번에 그 선수로 나가는 거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야, 탁구 선수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뭐 뒤에 발뒤꿈치 인대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하던데 넌 괜찮냐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가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래서 그러면 그렇게 되는 거야? 물어보는 거예요. 말을 한마디 한마디씩 하면서 경계를 풀어 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말을 하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천천히 급할 것 없잖아요. 천천히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절대 심방할 때 너 지난주 왜 교회 안 나왔니? 그런 것 묻는 거 아니에요. 이유가 있으면 심방하는 사람이 할 말이 없고, 이유가 없으면 심방 받는 사람이 할 말이 없는 거야. 그렇죠. 그것은 묻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말하게 놔두는 거야. 만나자 마자 취조하듯이 야, 너 어제 교회 안 나왔지? 그건 또 나아. 너 내가 들어보니까 어떤 애가 그러는데 영화관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 시간에. 그 이야기는 애들을 굉장히 짜증나게 만드는 거죠. 내 사생활이 이런 식으로 폭로가 되나 그러는 거죠. 그렇게 하면 안돼요. 그래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너무 힘들면 한번 쯤 교회를 빠질 수도 있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아이에게 다가가야 되요. 그래서 여운을 줘야 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다음 주에는 꼭 교회에 나와라 얘기 안하고 올 때도 있어요. 안 나올 때도 있어요. 그것이 오히려 끌리는 거예요. 아까 그 사람 봐. 꼭 나와야 한다. 꼭 나와야 한다. 손잡고 기도 했으면 걔는 그 다음 주에 안 나왔을 거야. 빨간 줄로 확 그어 버리고 그리고 너는 지옥 가든지 말든지 나는 할 만큼 했다 이거야. 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 이야기 할꺼야. 일년 반을 따라다녔는데도 너는 끝까지 안 나왔다고 내가 이야기 할거야.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러니까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 아이에게 여유를 주는 거예요. 그 대신 항상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요. 그래서 심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이렇게 몇 가지 유형을 마음을 말씀을 가서 설교를 하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권면할, 말씀에 입각한 권면할 말씀들을 몇 가지를 준비해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아요.
예를 들자면, 교회 출석을 잘 안하는 아이들, 가정의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아이들 그 다음에 학교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하는 아이들, 건강이 안 좋은 아이들, 오락에 자꾸 빠지는 아이들, 이런 것들이 몇 개 유형이 있잖아요. 그러한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고 요즘에는 인터넷도 있지만, 옛날에는 없었잖아요. 인터넷 같은 것 뒤져보면 벌써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거리들이 생겨나게 돼요. 몇 번 같이 심방하면 그것들이 잘 눈덩이처럼 뭉쳐져서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그것을 여기에다가 몇 개씩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만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쭉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얘가 그렇게 교회에 안 나오고 자기가 거듭나서 교회 나오다가 교회도 안 나오고 그렇게 집에서 부모님들에게 거짓말 하고 저기 도서관 간다고 하고 PC방에서나 두드리고 있고 하는 애들이 곤고하지 않을 리가 없거든요. 그러면 결국 마지막에는 자기 이야기를 털어 놓게 돼요.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이 필요하죠. 그래서 심방을 할 때 또 아주 좋은 방법이 뭐냐 하면 엽서를 쓰는 거예요. 엽서를.
저는 사역 할 때 엽서사역을 많이 했어요. 제가 목회하고 나서 우리 교인들에게 편지 쓴 게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요. 그런데 걔네들한테는 많이 썼어요. 어떻게 했느냐 하면 절대 편지지 큰 것 하나 펼쳐놓고 아무개 받아 보아라. 이건 아니에요. 무슨 유언장처럼 그렇게 쓰면 안돼요. 그래서 연령과 상관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 책상에는 예쁜 편지지 엽서 20-30매 정도는 항상 비치가 되어야 해요. 항상 가방에다가 넣어 가지고 다녔어요. 내가 잘 쓰는 방법은 뭐냐 하면 그것도 이상하잖아. 봉투에 딱 써서 딱 붙여 가지고 그것도 여학생들한테 보내고 그러면 엄마가 보면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그러니까 항상 나는 오픈된 오픈된 하얀 관제엽서를 많이 썼어요. 제가 컷을 좀 그리거든요. 앞에다가 색연필 갔다가 컷을 좀 쭉 그리고 그 다음에 언제 하냐 하면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예요. 이제 수련회 답사를 갔는데 기차역 앞에 커피숍에서 기다리는데 기차 올려니까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산책을 할 수도 있는데 거기 앉는 거예요. 앉아서 절대 큼직큼직하게 쭉 써가지고 한 페이지 뻑뻑하게 쓰는 것 그것은 아이들에게 꽝이야. 그리고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은 별로 안 좋은 거죠. 할 이야기도 없지만 엿 가락처럼 길게 늘려서 두 장도 그래요. 난 그렇게 안 해요. 난 어떻게 했는가 하면 작은 요 관제엽서에다가 돋보기로 안 보면 거의 못 볼 정도로 플러스 펜을 가지고 조그맣게 쓰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 가득 채우려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요. 무지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쓸 수 있어요. 거기에다가 무지하게 많은 이야기를 썼어요. 원고지 50매 정도는 들어 갈거야. 앞뒤로 빽빽하게 쓰면. 그래서 천천히 쓰는 거예요. 마음을 실어서 쓰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아이와 대화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받아 보는데 얘는 무슨 꽃 편지 같은 것은 맨날 받는 거야. 그런데 이 엽서를 딱 받아 보고 이 생전 받아 본 적이 없는 거야. 이렇게 작은 엽서에 이렇게 돋보기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쓰는 내용을 위에서부터 안 읽어 볼 수가 없는 거야. 큼직큼직하게 쓰면 휙 보면서 아이고 교회 빠지니까 20줄 써가지고 붙였구나. 그러나 천천히 쓴 거죠. 그러면 70%는 답장이 와요. 교회는 안 와도. 심지어 그 답장 보내기 위해서 일부러 신비감을 주려고 출석을 안 하는 수도 있어요. 그 다음 주에 답장을 보냈는데, 그 다음 주에 와봐. 얼마나 재미없어요. 그래서 뻐기고 안 나오는 거예요. 답장 탁 보내고. 그러면 똑같이 빽빽하게 써서 와요. 대화가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그러한 일이 한번 있고 심방을 딱 가면 아이들이 마음을 훨씬 여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내 이야기는 뭐냐 하면 편지지, 값비싼 편지지로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은 상업주의야. 이제 애들이 너무 이쁜 게 많아서 그런 것 감동 안 받고요. 우리 나라는 아직도 수준이 떨어져요. 이태리 같은 데 가보면요. 너무너무 이뻐요. 애들이 그런 것 가지고 다닌다고. 초등학교 중학교 애들이 그래서 선생님들이 가서 그 나이에 그 연세에 가서 골라봤자 패션이 이게 무슨 그렇게 안 통하지. 그것을 천천히 쓰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보내는 거예요. 그러면 말이죠. 아이들이 마음이 쏵 열려요. 그때 딱 심방을 가는 거예요. 쭉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수 없이 심방을 해봤거든요. 제가 어떤 때는 한번 시범도 보여주고 그랬어요. 선생님들 데리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게 뭐냐 하면 그렇게 하면 어디서든지 심방이 되거든요. 어 그러면 뭐 어디서나 돼요. 아주 추운 겨울이 아니면 공원 벤치 같은 곳 기가 막히죠. 그래서 심방 갈 때는 이 녀석이 따라 나오면 어디로 데리고 가서 이야기를 하면 가장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장소를 먼저 봐 놓고 가는 거예요. 그리고 나오면 슬슬 그쪽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때로는 벤치에, 때로는 학교 교정에 혹은 그 학교가 후지면 그 학교 건너편 여자 대학교 그런 데, 아니면 운동장에, 아니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저녁때 어스름 하고 조용하거든요. 거기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어떤 때는 보안 등이 비치는 거기에서 서서 이야기 하기도 해요. 그러면 짧은 시간인데도 성령님이 감동하시면 얘들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듣거나 해요. 그래서 뭐 아주 편안한 그러한 차도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으면 더 좋지만, 한 두 번 아니고 매번 가면 또 돈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쭉 들어요. 놀라운게 마음을 열면 곤고해졌었기 때문에 자기를 정말로 생각하고 사랑한다 생각하면 이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선생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쭉 들어요. 그러면 내가 그 때 심방 할 때에는 걔네들하고 나하고 연령 차이가, 내가 빨리 장가갔으면 그만한 아들 딸이 다 있었지.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렇지 뭐 제가 중등부 전도사 할 때가 33, 34 이었는데 그 애들은 14살 15살, 16살, 이런 애들이니까 그럼 나도 걔네들 나이 먹으면 나도 나이 먹으니까 마찬가지로 간격은 벌어지잖아요. 그런데 별로 그렇게 큰 문제 안돼요. 조금 불편할 때가 있지만 그렇게 큰 문제가 안돼요. 그렇게 해서 잘 말씀을 가르치면 이 아이가 그 저녁때 그러니까 심방이 말이죠. 저녁때 심방이 참 좋아요. 저녁때는 이게 사람이 굉장히 정서적이게 되거든. 감동을 굉장히 빨리 받아. 특히 불빛이 있을 때. 그럴 때 여러분 선보면 안 돼. 이게 콩꺼풀이 빨리 씌우거든. 그런데 오전 시간은 이성적인 시간이야. 밤 시간이 그러거든. 그렇게 해가지고 이야기 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하이라이트가 언제냐 하면 기도하는 시간이에요. 그것은 자기가 오픈을 해야 돼.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가로등 불빛 밑이든지 아니면 걔네집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았던지 아니면 왜 동네 같은 곳 가면 걸터앉을 수 있는 곳 있잖아요. 길거리에. 그런 데 앉아서든지 상관없어. 지혜로운 선생님은 항상 깔고 앉을 것 같은 것 몇 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수건 같은 것. 휴지는 기본이고. 그렇게 놓고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권면을 하고 마음이 다 열려서 내가 선생님이 기도해주는 거야. 손 꽉 잡고. 그런 정도로 준비해서 기도할 정도로 되면 얘는 감동을 안 받아도 심방을 하는 자기 자신이 감동을 받는 거예요. 선생님이 먼저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목 매여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걔네들이 이 어린 아이들은요. 특히 중고등부, 초등학교 이 아이들은요. 자기가 감동 주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감동 안 주는 사람은 모두 다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걔네들 이상하다는 말 잘 쓰잖아요. 엄마 나 이상한 아저씨 만났어. 교회 갔는데, 그 전도사님 대게 이상해. 그 목사님 대게 이상해. 걔네들이 이상하다라고 하는 것은 나쁘다라는 뜻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아요? 진짜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나쁘다는 뜻이에요. 감동받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이야기 안 해요. 그러면 모든지 아끼는 게 없어요. 애들이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이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얘네들이 기도를 받으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얘가 반응할 기회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기가막힌 일이 생겨나는 거예요. 선생님이 기도했으니까 이번에는 니가 한번 기도해라 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자기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면서 스스로 자기 치유가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 제가 교회에도 잘 나갈 수 있게 해 주시고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교회 빠지는 것이 나쁜 짓이었다라고 하는 고백을 그러한 식으로 하는 거거든요. 선생님 가는 밤길에도 보호해 주시고, 관심이 생겼다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리고 이제 티슈나 이러한 것은 기본이지. 애가 막 울어. 걔가 심방 받을 때 그렇게 울 거라고 몰래 준비해 올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딱 꺼내서 티슈도 좋고 더 좋으면 깨끗한 수건을 몇 개 준비해 가서 눈물을 씻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뭐라 그러냐 하면 좋은 손수건 그것 해 봤자 5천원 밖에 더 하겠어. 이거 너 가져가 쓰고 다음 주에 빨아 가져와. 그것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와야 하잖아. 방법은 무궁무진한 거예요. 그러면 이제 그것을 빨아 가지고 다리미로 쫙 다려 가지고 그래가지고 편지까지 써서 가져 온다고요. 걔네들이 원하는 게 그러한 관계야. 바로 그거란 말이야.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그리고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항상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 가는 거예요. 포장을 예쁘게 해서 리본을 딱 붙이고 그런 것은 안돼요.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안돼요. 그러면 무엇이냐 하면 마침 내가 너 주려고 올라오다가 하나 샀어. 오렌지 큰 것 하나. 요즘이냐 오렌지가 너무 흔하지만, 그때는 귀했어요. 하나 주는 거예요. 얘가 집에 가서 확 까먹을 것 같지, 그것 아니고 책상위에다가 썩을 때까지 올려놔요. 선생님이 주고 간 오렌지라고. 아니면 팬시 같은 데서 팔던 요만한 초 같은 것 있잖아요. 그런 것 하나 가져가는 거예요. 이것 있지 밤에 책 보거나 기도할 때 한번 너 써봐 그러면서 주는 거죠. 아니면 더 좋은 것은 말이지. 미리 거기에다가 더 애뜻한 사연을 적어가지고 갔으면 더 좋지. 그러면 뭐냐 하면 귤 하나하고 그것 하나하고 주면서, 선생님이 너 생각하며 쓴 거거든. 더 감동적인 것은 뭐냐 하면 일주일동안 매번 하나씩 쓰는 거예요. 너를 생각하면서 7일 동안 쓴거거든 한번 읽어봐. 한 번에 쓸 때 요만큼씩 해서 아니면 몇 주에 걸쳐서 2월 27일 일요일, 오늘은 아무개가 안 나왔다. 3월 4일 오래간만에 얘가 나왔다. 그렇게 사연을 적어서 옴니버스 식으로 쫙 적어서 병풍처럼 만들어서 하나 둘 셋 넷, 일곱 개 해서 쫙 접혀 지겠죠. 많이 하면 거기에 직업적으로 해야 하니까, 애들이 한 두 명 아니면 못 하니까 하나가 성냥갑처럼 작게, 그러나 글씨는 아주 작게 예쁘게 써서 그래서 병풍처럼 첫 번째, 한 잎 두 잎 세 잎 넷, 다섯, 여섯, 일곱 개 이파리 접어서 요만한 봉투에 넣어서 주는 거예요. 야, 내가 없는 시간에도 선생님이 계속 나를 생각하면서 매주 썼구나. 그러면 막 어떤 때는 읽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일대기를 써서 붙여 와요. 이만큼을 써서. 왜냐하면 얘네들은 쏟아 내고 싶은 거예요.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하고 그것이 열려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뭐를 얘기해도 받아들이는 거예요. 새벽에 나오거라. 예. 새벽에 머리 감고 나와요. 다 얼어붙었는데도 나오는 거예요. 실화에요. 지나가는 이야기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단 말이에요. 그런 심방을 하는 거예요. 한번 그런 식으로 심방을 쫙 하고 나면 이 아이 속에 이렇게 스쳐 지나가듯 눈이 딱 마주치면 벌써 오고 가는 눈빛 자체가 틀린 거예요. 얘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지금 나와 선생님과는 특별한 관계에요. 나와는 매우 특별한 관계야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른 애들과도 다 그렇거든요. 그렇다고 얘기를 해서 바람을 뺄 필요는 없지. 그렇게 관계를 갖게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그러면 수시로 위로의 편지도 날라오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그 자체가 다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자체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그러면 어떤 때는 그렇게 거기에도 썼잖아요. 가로등 불 밑에서 붙들고 기도하는데, 설교를 그렇게 할 때는 회심 안 하던 애가 거기에서 회심을 한다고. 심방을 가서 그래서 얘가 오락가락 하는 것 같으면 다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이거에요. 그러면 그 아이도 울고 옆에 있는 선생님은 옆에 있다가 저쪽에 가서 계속 우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가 너무 너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전도사님이 대신 해주는 거예요. 나중에 붙들고 와서 같이 심방하면 막 우는 거예요. 내가 너를 열심히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사실은 너를 사랑했는데 표현할 줄을 몰랐어. 이러면서 교감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한번 그것을 경험해 보고 나서 그 다음에 아이들을 심방할 때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목표가 떠오르는 거야. 아 그런 게 있다. 그러면서 이 영혼들을 위해서 심방을 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아주 영혼의 사랑에 대한 놀라운 기쁨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아이들은 다음에 심방 할 기회가 생기면 굳이 찾아 갈 필요가 없어요. 어디어디로 나오거라. 그러면 총알같이 달려와요. 문제가 뭐냐 이야기 해요. 그 다음에 누구를 도우러 가자. 따라 나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찾아내는 거예요. 애들은 애들이 있는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 걔를 끄나풀로 사용을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다 찾아내서 안 오겠다고 하는 놈을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해 가지고 탁 부딪히게 해서 그렇게 해서 접선을 하면서 늘려가는 거예요. 그 심방에 한번 맛을 들이고 나면요, 너무너무 심방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거예요. 일주일에 주일날 오후에 한 서너명 심방하는데 그렇게 기다리는 거예요. 더 감동 주는 방법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한 곳에서 네 시간 이를 악물고 기다리는 거예요. 안 들어오는 놈이 들어온다고 하는 확신이 있으면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분명히 도저히 있을 시간이 아닌데 11시 45분 쯤 딩동 하고 누르는데, 아무개야 하고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왠일이세요? 우리 4시간 전에 와서 입구에서 계속 기다렸어. 거기에서부터 마음이 확 꺾이는 거예요. 시간 없지? 아니요. 말씀 나눌 시간 있어요. 그리고 쫄래쫄래 따라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 하면 저는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은 모든 창의력의 원천이에요. 사랑은 모든 창의력의 원천이에요. 길이 열려요.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심방을 통해서 큰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꼭 해보세요. 여기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가이드를 해 줄 거예요. 꼭 해보세요.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일주일에 네 명만 계속 심방을 한다고 한다면, 1년에 2백 명을 심방을 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맡은 영혼들이 20명이라고 하면 걔네들을 열 번 씩 만나는 거예요. 그 중에 절반은 불신자들에게 간다고 쳐도 일 년에 다섯 번을 그렇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들이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헌신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