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고 준행하여 가르치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7:10)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이 사람들이 귀환을 하게 됩니다. 모두 다 귀환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 일부가 70여 년 전에 떠나온 그 고국을 향해서 아직도 여전히 해방되지는 않았는데 그 이방인의 집에 가운데 있으면서도 특별히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고토로 돌아가게 하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돌아갈 뿐만 아니라 돌아간 곳에서 성전을 짓고 성을 쌓는 그러한 축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어드린 에스라서 10절이 있는 7장을 전 후해서 에스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장과 6장에서는 첫 번째 포로귀환을 다루고 있습니다. 7장 이후에서는 2차 포로귀환을 다루고 있고 느헤미야서에서는 세 번째 포로귀환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 번에 걸쳐서 귀환하게 되는 것이죠.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는 일들은 스룹바벨 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환을 하게 되고 6장과 7장 사이에는 약 5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다음에 7장에서 다시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이셔서 에스라가 바벨론으로부터 포로 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고토로 돌아오게 된 사건이 오늘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알다시피 많은 사람을 이끌고 에스라가 지도자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토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고토로 돌아오게는 하였지만은 나중에 느헤미야서에도 나오지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상 바벨론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따라서 본토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의 상황이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많은 이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특별한 총애를 입어서 지도자들이 그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와서 다시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다가 성전을 짓거나 성을 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투서와 실제로 거기서 성전을 짓고 성을 쌓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다시 거주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잔인하고도 집요한 모략들이 처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오늘 1차 포로귀환에 이어서 2차에 에스라가 율법을 잘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특별한 신앙가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고토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나서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하니까 이들의 길이 그렇게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그래서 8절에 보 면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하며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모두 소유를 위해서 평탄한 길을 주시도록 온 족속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설 때에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많은 이방 족속들이 이스라엘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외교적으로 많은 해결이 필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후에 느헤미야 같은 데 보 면은 한 손에 망치를 들고 한손에 무기를 들고 성을 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군사적으로도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어려움 속에서 여러 가지 많은 도전과 미묘하고 복잡한 정치적인상황과 복잡한 상황과 외교적인 상황이 주는 그 모든 부담을 안고 에스라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막상 돌아왔지만은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유롭게 국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던 때에 예루살렘은 이미 아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왔으나 고향이 아니었다는 말처럼 고토로 돌아왔으나 정말 옛날에 고토가 아닌 현실을 깊이 발견하고 그렇게 고통 중에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감격만이 아니라 커다란 어려움들이 미묘한 정치와 외교적 상황들이 귀환한 이스라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그렇게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그런 정치적이고 군사적이고 경제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둘러싸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와서 제일 먼저 결심한 일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 인고하니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깊이 결심한 것입니다. 왜 에스라가 이 에스라를 보면 상당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공부하는 선비와 같은 학자가 아니라 대단히 신앙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아닥사스다 왕과 매우 가까운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왕에게 구하는 것은 그 왕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왕과 가까운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아닥사스다 왕 최고의 권력자라고하는 권력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 교분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에스라로서 이 아사 나라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에스라같이 적합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왕과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실력자와 가까이할 수 있고 대면할 수 있는 사이인데 무슨 다른 게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사람이 한 것은 이스라엘백성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제일먼저 아닥사스다 왕에게 전화를 하거나 서찰을 보내거나 아닥사스다 왕의 정치적인 후원을 입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처해있는 일에 마음을 쏟았던 것이 아니라 그가 제일먼저 결심한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로 깊이 결심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예루살렘 뿐 만아니라 시온 뿐 만아니라 유대 온 지역이 어디에 가든지 율법을 경외하고 그 율법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고 그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득 있는 그런 곳 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다시 도달했을 때에는 옛날에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 드리던 이런 종교적인 아름답던 모습들 신앙적인 아름다운 덕행들이 그친 이미 130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을 때에 이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달하자 거기는 옛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는 그곳에 이스라엘 백성을 들어오게 한 이후에 즉시 결심한 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서 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예루살렘과 그 지역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백성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우리자신과 우리 자녀들을 위한 가장 최고의 투자가 무엇인가 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이 다 그런데 ,세상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데 말합니다. 오늘 이 에스라를 보십시오.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감화를 입어서 궁전을 짓고 하나님의 고토로 돌아가는 일들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결심을 굳게 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모두 한가지로 올라오게 되었을 때에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그 세상의 풍조는 전혀 신앙적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율법을 경외하고 여호와의도에 행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방의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는 그들과 어떻게 정치적인 타협을 하고 이 백성들을 정치적인수완으로 도울 것인가를 결심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 것은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와서 살아남느냐 죽느냐하는 모든 문제가 오직 신앙에 달렸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힘입어야지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수 있다는 사실을 이 에스라가 깊이 생각했던 것입니다. 에스라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정치적인 수완을 발휘하고 경제적인 수완을 발휘하고 외교적인 수완을 동원하면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기의 위치를 지키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죠. 그러나 여러분, 에스라가 생각할 때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단지 외교적이고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도움만을 가지고 거기에서 생존해서 사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땅에도 먹고 입을 것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난관과 대적 들이 있는 이스라엘로 굳이 돌아오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 하지 않는 모든 세계가운데 여호와를 경외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감화를 받아야지만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그 예루살렘에서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원래 이 가르치는 일은 가정에 위탁된 일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교훈으로 양육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가르쳐야할 신성한 의무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 시대를 보 면은 교회에 무슨 교사라든지 이런 것이 잘 안 나와요. 왜? 원래 가르치는 사명이 가정에 위탁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에 부모들이 아이를 유아세례를 줄 때 하나님 앞에 서약을 합니다. 뭐라고? 주의 교훈과 교양으로 양육하겠다는 서약을 하나님 앞에 한 후에 어린아이에게 그 부모의 믿음을 보고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은 부모인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들의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고 하나님의 교훈과 법도로 양육하여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도록 여러분에게 위탁하신 교육의 권리를, 교육의 사명을 얼마나 진지하게 감당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자기의 자녀를 이 세상에서 공부를 잘 시키고 가르쳐서 훌륭하게 기르는 일에 온갖 마음을 다 쏟고 있습니다. 부모도 보면 참 불쌍합니다.
(예화) 한 번은 제 동생을 만났는데 도대체 자기 부인이 자기한테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직장 갔다 오자마자 가방 팽개치고 밥 대충 먹고 나가지고는 애를 붙들고 밤12시까지 공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하면 바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매달려서 가르치는지 자기가 너무 심하다고 말할 정도로 매일 밤12시까지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 아이는 학교 갔다와가지고는 학원을 몇 개를 끊어서 차례대로 다니는 것입니다. 아이도 죽을 맛일 것입니다. 끝나고 돌아와서는 밀린 숙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원 숙제해야지, 끝나고 나면 그다음엔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뼈저리게 경험하지 못 했습니다만 자식이 똑같은 밥 먹고 공부를 시키는데 학교 가서 맨 날 바닥에서 헤매고 학년 올라 갈 때마다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가지고 낙제를 해야 되겠느니 진급을 못 하겠냐느니, 이래서 대학을 갈 수 있겠느냐 느니,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그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고 이 세상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잘 교육을 받는 것일 것입니다. 교육을 잘 시켜놓으면 이 아이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성이 있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모습을 신앙에 연관을 지어 보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약에 자녀란 선물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바르게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고 공부를 잘하는 관심 못지않게 신앙적으로 이아이가 바르게 자라고 있는 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들이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 지 생각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구단을 외우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죠. 3학년 4학년이 되어서도 구구단을 못 외우면 부모가 스트레스 엄청 받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사도신경은 정확히 외우는지 검사는 해보셨습니까? 십계명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지 점검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그를 위해서 베풀어 줄 수 있는 그 모든 투자보다도 값지고 귀한 투자인 것입니다. 유능하게 되고 유능하게 되지 못하고 또 어떤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일평생을 살아가는 것인지는 자기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가 어디 있든지 그가 하나님관의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 가면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신앙으로 바르게 자라지 못한다면 그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슬프게 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을 모아놓고 신명기 가운데 유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배우게 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에 세우셨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가르침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간직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러운 사람가운데하나가 개근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6년을 개근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각도안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정확히 6년 동안을 학교에서 공부를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아이도 대단하고 부모도 참 대단한 것입니다. 요즘은 학교를 대단하게 생각 안 합니다. 심지어 외국 여행 다녀오고 나서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휴학까지 데리고 가는 부모들이 있는 그런 시대니까 요즘에 와서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 학교도 그렇게 잘 다녀야지만 교회도 잘 다녀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왜 교회에 안 나오고 있습니까? 나이가 먹고 커서 자녀들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부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손에 집어넣을 수 초등학교 중학교 된 나이에 부모가 야단을 치고 혼을 낸 나이에 왜 여러분의 자녀가 교회를 찾지 않고 있습니까? 이것은 모두 우리들이 자녀를 가르치는 일에 얼마나 태만한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족케 하는 이가 없을 수 없으나 소자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무슨 차라리 연자 맷돌에 매어서 바다에 빠뜨리는 것만큼 심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웃 집 애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는 더 잘 해당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사들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라고 맡기어주신 자녀들을 가르치고 돌보기위해서 세우신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부모들은 교회에서 영혼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이 일이 어떨 때는 매우 힘드니까 교회가 나누어 짐 지는 것입니다.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라도 가르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이 교사를 세우신 것은 가르치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고의 덕목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에스라는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과 법도대로 바르게 양육되지 못하고 있는 자녀들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교사들이 가르치기로 깊이 결심하는 일이야말로 교회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부모와 함께 이번주일을 계기로 하여서 가르치는 일을 결심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사기 사건입니다. 분명히 여호수아서까지는 이스라엘백성까지는 하나의 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유일 신앙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입니다. 그들이 가끔 신앙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쫓아가거나 이방신들에게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마지막 장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한 번 일어나서 간절히 외치면서 “너희가 그렇게 믿으려면 집어치워라.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 결단하고 분명하게 하라 한번외치니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화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잘못 믿다가도 누군가가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외치 면은 회개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는 다릅니다. 구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연구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정말 성경이 나와 있는 순서대로 여호수아 다음 세대의 기록인지 모세 이전 시대의 기록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사사기로 들어가면 사사기 속에는 하나님을 믿는 분위기가 무시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사시기 마지막 장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입니다. 통일성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사이에는 하나의 통일성이 있어야 하잖습니까? 사람의 성격도 틀리고 배우는 수준도 틀리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하잖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사회가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신을 섬기는 사회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호수아 신앙이 후퇴하게 되었습니까? 그래서 사사기 2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와 하나님의 큰일을 본 사람들이 살아있는 시대에는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 1세대들이 다 죽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들을 백성들이 모두 버리자 이스라엘 백성이요 율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법한 백성들처럼 하나님 없는 백성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문제를 어디서 푸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데서 풉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역사를 언제나 보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그 부모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어른들이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양육하고 바르게 잘 가르치면 그 아이들을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자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거듭났는가? 구원 받았는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유치부보다 더 어렸을 때에 교회에 다녔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깨달아 알았을 때가 21살 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 한 사람 내게 다가와서 그리스도께서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화를 받고 보니까 되돌아 볼 때에 그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났던 모든 선생님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감사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깡통을 만들어서 오랜 세월을 교회에 묶어 둘 수 있었을까? 중학교 2학년이 교회를 떠날 때까지 나는 결코 회심하지 못했습니다. 끊어질듯 이어질듯했지만 꾸준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누구 한사람도 회개의 필요성, 왜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야했는지, 물어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들을 위해 부름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일들은 이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들에게 깊이 감화를 주고 가르치는 일들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일이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로서 가르치는 일들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직분을 기억해야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천사도 흠모하는 직분이라고 그랬습니다. 천사들에게도 맡기지 않은 이 직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영혼의 운명을 우리에게 붙여주셨습니다. 그 영혼을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양육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어주는 일 이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들을 잘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어떤 섬김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급과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12장에 분명히 말하기를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사람들을 별과같이 빛나리라고 하십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처럼 하나님께서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에 기여하고 그 일들을 위해서 수고와 노고를 세상을 잊어버릴 수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어야 됩니다. 학교선생님께는 뭐든지 갖다 드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데, 교회에서 누가 담임인지 아십니까? 요즘 뭘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여러분 마음깊이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계십니까? 지혜와 올바른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올바른 삶의 모본을 보여주도록 교사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깊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로 부름 받은 자들은 안수 받지 않은 목사입니다. 목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심방하고, 가르치고, 꾸중하고, 또 돌봐주고, 상담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교사들은 이 가르치는 일들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더욱 유능하게 영혼들을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 전문가적인 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학사 에스라는 뭐라고 했느냐 면은 6절에서 보십시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이 전은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서 익숙했다는 이야기니까 모세의 율법을 평생연구해서 공부해서 율법하면 에스라 하는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10절에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다름에 뭘 또 결심을 했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어떻게 하기로? 연구하기로. 공부를 해야 됩니다. 진리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혼을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모하고 그 진리를 깨달아 아는 그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뭐를 집어넣든지 집어넣은 것만큼 나옵니다.
(예화) 여러분, 가을철이 되어서 시골에서 한 번 보셨습니까? 다 추수를 해가지고서 볍쌀을 부대에다 꽉꽉 눌러가지고 담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가마니를 끌고 옵니다. 지금은 가마니보기도 힘든데 옛날에는 가마니에든 쌀을 보면 왜 그렇게 마음이 부유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네 집에 들어가도 가마니가 있으면 아주 부유한 집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쌀을 검사원들이 검사하지 않습니까? 갈고리 같은 걸로 쿡 찔러보면 쌀이 나옵니다. 쌀이 거기에 가득 담아있으면 쿡 찌르기만 하면 쌀이 동그랗게 생긴 홈으로 좌르르 쏟아져요. 그래서 금방 쌀과 볍씨가 어떠하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언제나 가득 들어서 그 진리의 말씀을 아이들과 영혼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들이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속에 그 영혼들을 가르치는 일들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생각은 그것입니다. 뭐냐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면 좋지만 준비가 안 된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진리를 가르치는 이일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가르칠 것이 있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이 일이 훨씬 더 좋은 교육적인 성과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나왔으니까 하나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예화) 춘천에 가면 소양 댐이 있습니다. 가끔 그 문이 만들어진 다음에 두 번 그 문을 열었습니다. 작년에 한 번 그 문을 열었죠. 문을 탁 열면 그 문이 여러 개도 아닙니다. 문을 탁 열면 그 어마어마한 물들이 거기서 확 쏟아져 나와요. 나이가라 폭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70미터~-200미터 되는 낙폭을 떨어뜨리면서 하늘로 치솟아 오릅니다. 전체가 갑자기 솟아오른 물과 물보라로 가득 차요. 장관입니다. 왜 그렇게 물이 수문을 열자마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지 아십니까? 가득 들어있으니까 그러니까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영혼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돌봐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진리의 말씀을 자신 속에 집어넣어야 됩니다. 그것도 똑바르고 순수한 것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개천에서 나는 잘못 기른 농작물들 먹으면 큰 일 납니다. 그래서 하천에 내려가 보면 말뚝을 박았습니다. 여기는 중금속으로 오염된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에다 농작물을 길러서 먹으면 각종 질병이 생길 수 있으니까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서 농작물을 먹은 사람이 젖을 아이에게 먹이면 그 아이에게까지 오염이 되는 것입니다. 중금속 같은 것으로 오염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연구해서 영혼들을 가르치는 이 일들을 위해서 열심히 자신을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을 하고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됩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채찍질 하며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고 영혼들을 가르치고 이스라엘백성들을 교훈할 수 있는 것이 있도록 가득이 가득히 진리의 말씀으로 자기를 새롭게 채우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들을 사모하고 그 일들을 열심 내는 삶을 살 때 그 때 비로소 가르칠 것이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가르치는 것이 만족이 되지 않아서 언제다시 하나님의말씀을가르치는일들이오겠는가하며 염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열린 교회에서 만큼은 자녀를 맡겼을 때 자녀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옳게 잘 교훈하고 그 영혼 속에 진리의 말씀으로 감화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 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신앙의 모습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또 하나 결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준행하며” 다시 말해서 에스라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 율법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는데 그것은 동시에 자기가 지키면서 율법을 살기 위함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가르치는 놀라운 능력은 단지 지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살아갈 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가장 커다란 책망이 무엇이었습니까? 저희는 말만하고 가르치기 만하고 자기는 그것을 행치 않는 것입니다. 마치 천국 문에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학사 에스라는 이 같은 점을 알았습니다. 그는 율법을 연구하는 전문가였지만 연구하는 일에서만 전문가가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면 사는 일에서도 전문가였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고뇌가 있고 그리고 말하자면 고민이 있고 그 말씀을 가르치려고 애를 쓸 때에 우리가 그 삶을 통해서 배워 나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화) 주일 학교 와서 제가 축도를 해줍니다. 그런데 저는 몰랐습니다. 눈을 감고 손을 들고서 축도를 해주려고 하는데 어느 날 하도 이상해서 기도를하다가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너 댓 명이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목사님이 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주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광고 했습니다. “그렇게 손을 들고 하는 거는 목사님만 하는 거니까 너희는 하지 말아라.”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어떤 아이가 교회 와서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게 성경 어디에나오지?” “요한복음 삼환 십 육전이요.” 아버지가 장사 꾼입니다. 맨날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본을 보이려고 신앙생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얼마나 아이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대로 따라서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그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을 가르치는 일에서 있어서 유능한사람들이 될 뿐 만 아니라 그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에서도 유능한 교사들 유능한 부모들이 되도록 새롭게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좋은 믿음으로 살아가서 최소한도 우리보다 신앙이 나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최소한도 우리 다음세대는 우리보다 더 악한 세대니까 최소한도 우리보다는 신앙이 나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영혼들을 가르치는 일 들을 귀하게 여기고 가르치는 일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