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하듯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24)
녹취자: 박지성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바울이 이 권면을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하기 직전 그는 기독교의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위대한 교리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3장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스러운 지식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될 것인지를 조목조목 말해주는 가운데 그는 드디어 가정의 문제와 직장의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그 시대는 노예제도가 있는 시대였으므로 이것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권면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내들에게 또 남편들에게 자녀들에게 부부들에게 그리고 종들에게. 이렇게 사람들을 권면한 다음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말씀을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한 이 말씀은 사람 속에 일어나는 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사도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말을 사도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는 강조하기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도의 눈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결된 것으로 생각되었고 이것은 성경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 따로 있고 사람에게 속한 일이 따로 있어서 하나님에게 속한 일은 중요하고 사람에게 속한 일은 하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의 생각이요 태도이기도합니다. 이런 일들은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 속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예화) 어느 자매가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교회 일을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때는 제 몸에 힘이 펄펄 나고 그리고 너무 너무 기쁘고 충만한데 세상의 일을 할 때는 왜 그렇게 힘든지 짜증만 나고 일의 능률도 안 오를 뿐만 아니라 불평과 원망만 쌓이니까 저는 역시 하나님의 일만 하면서 살아야 할 체질인가 봐요. 그렇지요?” 목사님에게 대단한 칭찬을 받을 줄 알고 한참 너스레를 떨었는데 목사님이 물어봤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의 일은 뭡니까?” “그거야, 하나님의 일이야. 교회 와서 청소하고 전도하고 열심히 심방하고 교회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지요.” “세상일은 무엇입니까?” “아, 뭐 많잖아요. 목사님. 예를 들자면 빨래를 한다든지 아니면 집안 청소를 한다든지 아니면 설거지를 한다든지 이것이 다 세상일이 아닙니까? 해도 해도 끝도 없고 표도 없고 이런 일은 암만 하다 죽어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 받을 것도 없는데…….”
여러분, 잘못 배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못 배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할 영역들이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오늘 분명히 못 박기를 “무슨 일을 하든지”라고 했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직장에 가서 섬기든지 아니면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집안에서 빨래를 하든지 심지어는 직업이 그래서 똥을 푸든지 마음을 다해야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믿으면서도 이상하게 자기 생업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적응이라는 말은 세상과 타협해서 세상과 하나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까짓 것 한 달에 돈 몇 푼 벌어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신앙을 다 팔아먹고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짝하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의미에서의 적응이 아닙니다. 내가 직장을 다니건 공부를 하건 내가 가사를 돌보건 각자에게 맡겨진 본분이 있습니다. 그 본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 속에는 결코 건전한 영성이 깃들 수 없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8시간을 근무하는데 점심시간을 빼면 9시간을 근무합니다. 9시간을 근무하는데 왔다갔다 출근 시간을 한 시간씩 보태면 11시간이고 특근하고 뭐하는 것까지 치면 14시간 가까이 되는데 13-14시간 되는데서 잠자는 시간을 빼면 실제 남는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삶의 전 부분을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에다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직장이 죽어도 나가기 싫고 월급날 이외에는 보람 있는 날이 하루도 없다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대한 문제입니다.
가정을 돌보는 주부가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하는 이 일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섬기는 이 일을 해나가면서 하나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참, 어디서든지 벌어먹을 것만 있다면 내가 이 짓 안할 텐데.’ 이러면서 가방 들고 심방하고 시간이 돼서 설교하러 올라오고 줄어들지 않는 성도들을 보고 마음 대견해 하면서 살아간다면 여러분들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데 ‘정말 먹고사는 문제만 아니라면 더 공부하고 싶지 않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모든 것들은 잘못 된 것입니다. 결국 성경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뛰어난 영적인 삶, 거룩한 영성 그리고 참 마음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뛰어난 체험 이런 것들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무엇을 하려고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간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그것도 모자라서 철야기도하고 새벽에 기도하고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또 인생을 대충 살아가면 되지 무엇을 또 구태여 이것은 잘못되었고 이것은 잘못되었고 그냥 아무렇게나 믿으면 되었지 그것을 까발려서 이렇게 믿으면 잘못된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잘못된다고 그렇게 골치 아플 정도로 교회에 오기만 하면 따지고 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마지막에 무엇을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지식의 놀음이나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의 지식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기를 원하고 기도하기를 원하고 진리대로 행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살아가는 실천적인 삶의 영역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늘 진리가 무엇인가를 구별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삶인가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고 심방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성도를 섬기는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날마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고 거기서 나를 도우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애굽의 땅에서 날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었던 요셉과 같이 섬기면 섬길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신앙의 경험들을 가져야 합니다.
주부들은 기약도 없고 끝도 없는 가정 일들을 돌보면서도 그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용하셔서 이 섬김을 통해 날마다 내 일생들을 보람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고 감격하고 은혜 받고 새로워 질 수 있어야합니다. 가정의 경제가 곤핍할 때는 곤핍하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 의뢰하는 것을 살림하는 사람들은 배워야 합니다. 풍부할 때는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 달의 우리의 살림을 넉넉하게 해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이웃에게 꾸러 다니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가족들이 연약할 때 연약한 모습을 인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강건할 때는 강건하게 해주신 것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오늘 분명하게 못 박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든지, 마음을 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여”라는 말을 당신에 관하여 이외에는 쓰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우리의 삶을 향한 태도가 일치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라는 것의 뜻은 단순히 주님께 하는 것을 흉내 내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행하는 그 모든 것은 주님께 행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오라고한다고 직장일 다 팽개치고 우르르 달려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직장에서는 손가락질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개판 5분 전이다.” 봉급 받을 때는 교회에서 오라고 한다고 봉급 안 받고 가는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일이 있는데 교회에서 부른다고 이것은 세상일이니까 무가치하다고 다 팽개치고 교회로 달려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화) 대학에서 가르치는데 통탄을 했습니다. 제가 구약을 가르쳤는데 1학년부터 들어와서 펼치는 것이 창세기입니다. 1학년 들어와서 창조론에 대해서 두세 시간 강의를 합니다. 강의가 다 끝나고 나왔더니 인문과학개론 선생님이 들어와서 진화론을 쭉 설명합니다. 답안지를 냈는데 구약교수한테는 천지창조에 대해서 쓰라고 하니까 창조론을 쓰고 과학교수에게는 진화론을 썼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신앙 팔아가지고 학점 받아 졸업을 해서 어디에다 쓸려고 합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이 답안지를 쓰는 순간 이 답안지가 신앙고백이라는 신앙의 인식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학점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왔다 갔다 하느냐 말입니다. 십일조만 정확하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도 정확하게 벌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사도가 오늘 말하고 있는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주께 하듯 하고”라는 말은 우리들의 행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는 것으로 보신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것이 하나님 자신을 향한 거역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남편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이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순종 안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런데 자녀들을 분노하게 하는 이 모든 것, 자녀들의 마음에 아픔을 주고 고통을 주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향한 고통으로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가졌던 잘못된 신앙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소중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효도를 하면서 부모를 섬기기 싫으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바친바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다 바친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 부모에게 섬길 것이 없다. 이것이 말하자면 그들에게 자랑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각자에게 맡겨진 모든 본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배워야합니다. 오히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에서 하나님을 풍부하게 만날 수 있어야합니다. 가정의 주부들은 가정의 일을 하면서 순간순간 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면서 살림을 꾸려갈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책상에서 하나님을 풍부하게 만나고 공부하는 가운데서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본업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시고 어떤 사람들은 주부로 어떤 사람들은 사업가로 또 어떤 사람들은 의사로 또 어떤 사람은 학생으로 또 어떤 사람은 샐러리맨으로 각자 각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는 이 일이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일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아무리 방법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웃으십니다. 도둑질은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열심히 도둑질을 하는데 마음을 다해서 도둑질을 합니다. 그리고 정성껏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사업을 해서 열심히 돈을 법니다. 술집을 차렸습니다. 되겠습니까? 술집을 차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가 여기서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싫어하신다는 말은 안하겠지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 일을 벌려놓고 개업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눈감아주십니까? 그리고 일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데 그 일을 해나가는 방법을 주께 하듯 한다는 것은 우스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열매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는 것은 더 가증하고 우스운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직장이 그런 직장이라면 다니지 말아야합니다. 사업이 그런 사업이면 굶어 죽어도 깃발을 내려야 합니다. 문 닫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새 사업을 구해야 합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끔 보면 학교에서 잘못된 신앙고백을 강요하는 이단이나 이교의 학교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도저히 충돌을 일으켜서 신앙을 지키면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이 중퇴해도 더 좋은 학교 주실 줄을 믿고 자퇴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신다 생각을 하고 결단을 했으면 그 다음엔 거기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배우고 세상일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을 배워나갑니다.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예화) 초기에 직장에 들어가서 얼마나 지겨운지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서 3년 반 동안 사표를 써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혼자 조용히 앉으면 사표 쓰는 연습을 합니다. ‘사직서’ 위 본인은 가사 사정으로 사직하오니 수리해 주시면 고맙겠다는 내용을 써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일어나면 직장 가는 일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무 기쁨이 없고 퇴근 시간만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대게 퇴근시간 되기 전에 가방을 싸놓고 5시 되기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침에 늦게 오는 사람들입니다. 시간 딱 맞춰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일찍 와서 준비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퇴근시간이 되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일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실력이 없이 이 직장에 들어왔고 나는 재수가 없어서 여기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동안에 정말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었습니다. 은혜를 받고나니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5년이 지났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전화냐고 했더니 5년 전에 했던 일을 물어보는 전화였습니다. 기뻤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왜 그랬냐면 그 속에서 내가 직장을 다니지만 적어도 나는 그까짓 월급봉투를 바라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음주하고 흡연하고 하는 것으로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선을 확 그어버리면 몇 달 지나고 나면 어떤 직장에서도 그것이 그렇게 생사를 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기서도 결국 종의 관계에서 무엇을 이야기 하냐면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고용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눈앞에서 얍삽하게 자기의 승진과 자기의 돈벌이를 위해서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지 가마솥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풍미와 같이 그렇게 꾸준하게 이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철학과 보람을 가지고 기쁨으로 직장을 섬기고 있는지 눈빛만 봐도 압니다. 모르겠습니까?
교회에서도 목사가 집사님들이 많고 교사들이 많은데 아침 시간에 교회 오는 모습만 보면 저 분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서 섬기는지 아니면 코 껴서 할 수 없이 섬기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눈빛만 보면 압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성도를 위해서 월급 한 번을 준적 없지만 살점 같은 자기 돈을 주면서 피고용인들을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눈빛만 보면 아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기쁘고 보람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갈 때는 일찍 나가지만 방학 때는 밤 11시, 12시까지 기쁨으로 근무합니다. 찬송을 부르며 선교하고 점심시간에는 복음전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우리는 유능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최소한 성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일에 대해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우리 친구 중에 가만히 보면 목회 하다가 만날 때마다 “못하겠어. 못하겠어.”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만둡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도 “지겨워. 지겨워.” 하면 언젠간 그만둡니다. 그런 일은 다시 구하면 되는데 가정일이나 이런 것을 지겨워하면 평생 지겹게 살다가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화) 어느 가정주부가 편지를 쓴 것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아이를 하나 낳고나면 가정주부들이 대게 영적으로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아이가 처음 난 아이일 경우에는 경험이 없는데다가 이 아이 하나가 너무너무 힘들게 구니까 우리 옆집에 있는 새댁 하나가 대성통곡하며 문을 열어놓고 울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놀라서 뛰어가 봤더니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해서 못 견디겠다고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애도 한번 안 봐준다면서 울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아이고, 애가 애를 키우는구나.”
그렇게 힘듭니다. 그러니까 큐티고 기도고 성경이고 뭐고 다 물 건너갑니다. 눈 뜨고 있을 때는 이놈이 난리치지 이놈이 자고나면 엄마도 고단하니까 엎드러집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안 됩니다. 그 자매가 아이를 둘 키우면서 너무 고통을 받아서 아이를 가지면 기쁨이 없고 두려움이 옵니다. 왜냐면 또 영적으로 내려가는구나 하고. 서너 살 될 때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니 이제는 회복을 하려고하면 또 내려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더니 나중에 뭐라고 하느냐면 자기는 기저귀를 갈면서 큐티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변을 닦아내면서 거기서 큐티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늘 찬송하는 삶.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되어서 성도들이 모였기 때문에 주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 껴서 올라와서 몇 마디하고 내려가야 된다는 의무 때문에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 섬김을 영광스럽고 존귀한 섬김으로 알고 하나님이 여기 내게 세워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을 놀라운 특권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기쁘기 위해서 성도들의 마음속에 감화와 신령한 은혜를 끼쳐서 삶을 변화시키고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려야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설교할 수 있습니다.
집사님들이 돌아가면서 기도하면 자기 순서가 되었기 때문에 “아이고, 오늘 알고 보니 내 순서네.”하고 올라와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해서 이 기도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주일 학교를 가르치고 중고등부를 가르치고 청년부, 구역을 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고, 언제 6월이 끝나나. 6월이면 갈아준다는데. 그 때가면 못한다고 한 발 내밀어야 될 텐데. 언제 6월이 오나. 보너스 타는 6월은 빨리 오는데 교회 구역개편안은 교사개편안인 6월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그러면서 억지 억지로 끌려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한 은혜의 생활을 누렸던 모든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기도하고 무릎을 꿇을 때만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속에서 말하고 행하고 일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부르신 것만 보더라도 놀고 있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불러내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 게으른 사람들 속에 신령한 영성이 깃들 수 없습니다. 물론 부지런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은혜 받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괜히 쓸데없이 부지런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게으른 사람들 속에서는 신령한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도들을 부르신 것을 가만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할 일 없이 손 놓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그 생업에 종사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을 불러내셨습니다. 할 일 많은 열심히 고기 잡는 시몬과 안드레와 같은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열심히 공무원 생활하고 있는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뽕나무를 기르고 가축을 치는 아모스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따라서 범사에 하나님께 하듯이 섬기는 삶. 이것입니다. 의식 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늘 하나님을 뵈옵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신약선경은 우리들에게 거룩한 일과 속된 일이 따로 있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신령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모든 것이 예배입니다.
일주일 동안 불만과 불만족과 고통으로 가득 찬 가운데 인상을 쓰면서 억지 억지로 살았던 사람들이 주일날 나와서 정말 하나님 앞에 감격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삶은 예배에 묶이고 예배는 삶 안에 묶이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행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경배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일주일, 하루 동안에 소모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해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아직까지 의식 없이 그저 장사하는 것이 돈이나 벌고 몇 푼 벌면 거기서 헌금하려고 장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지 거기에서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매일매일 섬기면서 그 섬김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는 것까지 못 박았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것 얼마나 우습습니까? 이번에 집을 고치기 위해서 꽝하고 벽을 부숴보니까 것은 번드르르한데 속은 순 가짜입니다. 분명히 단열재를 두 장 세장 집어넣어 꽉 채워서 시공을 해야 하는데 설렁설렁 집어넣고 안 보이니까 밖에 벽돌을 다 쌓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화) 학생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100번을 써 오십시오.” 했더니 신학교 다닌다는 녀석들이 10번 쓰고 나머지 90번은 복사해서 뒤에다 붙여서 왔습니다. 선생이 복사기가 없어서 복사를 해오라고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 번 쓰고 두 번 쓰고 세 번 쓰고 이렇게 놔야 하는데 23, 24, 25, 79, 80, 81 이렇게 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런 수를 부리면서 사는 사람들 속에 무슨 신령한 영성이 깃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저리가라입니다. 신학교에서도 그러니 일반학교에서는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저리가라입니다.
이상하게 리포트를 냈는데 사람마다 분명히 이름은 다르고 리포트 모양도 다른데 이상하게 내용이 비슷합니다. 놓고 보니까 한 사람이 리포트를 써서 컴퓨터에 집어넣어서 한 사람은 샘물체로 뽑아서 내고 한 사람은 필기체로 뽑아서 내고 한 사람은 명조체 또 한 사람은 고딕체로 뽑아서 냈습니다. 이런 것 모두 누구에게 하듯 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는 것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판단은 정확하지가 않고 사람의 깊은 내면까지 꿰뚫어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것만 번드르르하고 눈가림만 넘어가면 영원히 묻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동기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일을 하는 목표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 동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같이 그렇게 일해 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정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화) 이번에 출판사에 갔더니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세 번째 책 만드는 것을 의논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사실은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여태까지 발행된 책을 놓고 하나님 앞에 쭉 기도를 합니다. 책이 잘 팔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게 해 달라고요. 그런데 사실 목사님의 두 책을 놓고 우리가 집중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새로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만들어 냈으면 끝이지 이제 뭐 더 팔린다고 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파는 데는 또 다른데 입니다. 영업부에서 파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기도를 합니다. 이 책은 돈벌이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니까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하옵소서. 감화를 주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변화를 받게 하옵소서. 궁극적으로는 책이 팔려서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주님 앞에서 주께 하듯 섬기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을 이렇게 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처리하는 일은 왠지 뭔가가 틀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는 일은 왠지 안심할 수 있는 사회의 인정을 받는 일들이 하나님께 하듯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주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사는 날 동안에 여러분이 모두 인정할 수 있게끔 이 일은 정말 세상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하는 일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도대체 몇 시간이나 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양이 하나님의 일이면 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매일 하나님의 임재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이면 세속적인 일을 맡겨 주어도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지 않고 세속적인 사람이면 신령한 일을 맡겨줘도 신령한 일을 가지고 자기의 배를 채우면서 세속적인 일로 만들어 버리고야맙니다.
(예화)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영국에 하원의원이 세비를 많이 받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세비를 많이 받는데 만날 위장병을 앓으면서 아침이면 인상을 쓰며 일어나는 것이 일입니다. 인상을 쓰면서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의 뒤에 타고 자신의 저택의 골목을 떠납니다. 자기는 아침에 항상 인상을 쓰면서 일어나는데 아침마다 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쓸고 있는 너절한 청소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차를 타고 가다가 차를 세우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여보시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아니 나는 국회의원이지만 아침마다 기분이 안 좋아서 출근하는데 당신은 쓰레기나 치우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신나서 노래를 부릅니까?” “의원님, 저는 이 골목의 청소부가 아니올시다.” “아니, 그러면 당신이 청소부가 아니데 왜 만날 빗자루를 들고 쓰는 겁니까?” “저는 의원님 집골목을 쓸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정화하러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니까 지극히 세속적인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장이 되는 것입니다. 쓸고 돌아갈 때는 한 달에 90만원 월급 받으니까 30일로 나누어 오늘 3만원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하듯 하는 사람입니다. 다 청소하고 난 다음에 적어도 나는 주님이 창조하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질서 있게 다시 돌려놓고 간다고 생각을 하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주께 하듯 살아가는 사람의 삶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이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하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은 그 모든 일에 동기와 목표와 그 사람의 하는 일의 과정을 다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부정확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잘못되어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여러 세월동안 이방의 나라에서 섬겼지만 모든 왕들이 공통적으로 다니엘하면 생각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상으로서 생각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본이었습니다. 열심히 국사를 돌보고 틈이 없이 국사를 처리하고 바벨론의 왕들을 섬겼지만 그 사람하면 유능한 정치가요 행정 관료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에게 있어서 제상의 자리에 오르던 말단의 자리에 오르던 장사를 하던 무엇을 하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단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무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훌륭한 무대에 세워주셔서 최고의 지위에 올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우리를 낮추어서 요셉과 같은 때를 지나게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의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령해 지기를 원하고 정말 간절한 신앙생활을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이야기에 덧붙이기를 마음을 다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하듯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청년헌신예배를 드리는데 한 청년을 사회를 시켰는데 달달 떨었습니다. 뭐 그렇게 떨게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마음을 다해서 사회를 보고 싶은데 경험이 없으니까 떨리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구간과 모든 영역 속에서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다해서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께 하듯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해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과 기쁨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어저께도 삼풍백화점 앞을 지나오는데 유족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시체를 못 찾은 사람이 많습니다. 시커먼 휘장을 내걸고 1주기가 지났다는 내용을 거기에 써넣었습니다. 세상에 5, 6층 되는 엄청난 빌딩을 짓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철근을 3층짜리 연립주택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가느다란 것을 썼답니다. 주께 하듯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서 하지 않으니까 그런 부실건축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씻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 슬픔이 당대에는 끝나지 않습니다.
누구를 만났는데 그런 얘기를 합니다. 아버지가 참 비참하게 돌아가신 집안으로 자기가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에게 아버지가 어렸을 때 비참하게 돌아가신 인상이 자기의 자아상을 깨뜨려서 자식에게 지금 잘못된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이 스스로가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렸을 때 아버지가 비참하게 돌아가신 그 상이, 분명히 이 아이는 그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는데도 아이에게 투영되는 느낌이 들어서 자기는 무섭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다음아이에게도 증조할아버지 돌아가신 것이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수백 명, 오백여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수천, 수만 명이고 그 사람들 속에 회복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 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물림을 해가면서 그 상처들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주께 하듯 하지 아니하고 사람에게 하듯 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회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수없이 얘기하고 탁상공론을 하지만 필요 없습니다. 한 가지만 알면 됩니다. “주께 하듯 하라” 세상은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무엇 때문입니까?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주님을 열심히 섬겼습니까? 상 받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섬기면 하나님은 거기서도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거기서도 상을 주십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직장에 일찍 가십시오. 그것이 모든 무능함을 덮어주는 일등의 조건입니다. 일찍 가십시오. 일찌감치 직장에 가서 성경을 읽으십시오. 차도 안 막히고 좀 좋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고요한 상황실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내 책상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사무실이 넓지 않으면 아침 일찍 가서 기분 좋게 바지를 걷어붙이고 한 버킷 물을 퍼서 유리창에 확 끼얹으면서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며 이렇게 정결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그 사람이 거기에 있으므로 말미암아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덕을 보고 기쁨을 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다른 목표를 가지고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해야합니다. 단지 돈이나 벌기위해서 장사하고 돈이나 벌기위해서 사업을 하고 돈이나 벌기위해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상 받을 것이 없습니다. 다 받았습니다. 월급도 받고 보너스도 받고 마지막 연금까지 다 받았는데 뭘 또 받으려고 합니까?
그러나 직장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아직 못 받은 연금이 남아 있습니다.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골로새에서 이 편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목사나 장로나 전도사가 아니었습니다. 개중에는 구두를 꿰매는 사람도 있고 텐트를 깁는 사람도 있고 옷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생선을 파는 사람도 있고 육곡간의 사람도 있었고 샐러리맨도 있었고 사역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학교 선생도 있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합니까?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목숨을 걸고 교회를 섬겼던 목사에게 상을 주시는 이도 주님이시고 직장을 다니면서 그 직장 속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에게 유업의 상을 주시는 이도 그리스도였습니다. 학교를 다녔던 사람 역시 그리스도에게서 받고 선생이었던 사람도 그리스도에게서 받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상 받을 때 그때 우리 같이 상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멘” 해야 할 대목입니다.
(예화) 군 장성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간증을 하는데 일선의 사단장이니까 높습니다. 서울 들어오면 별 것 아니지만 일선에서는 별 둘 그러면 일만 여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얼굴이 시커메서 지휘봉을 들면 위엄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입니다. 어느 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갈 텐데 자다가 갑자기 그런 질문이 떠오르더랍니다. 만약에 올라갔는데 예수님이 “너 뭐하다가 왔냐?” 그때 “예수님, 내가 이래 뵈도 별 둘이었습니다.”라고 하면 예수님이 하나도 신경 안 쓸 것 같더랍니다. 하늘나라에 별이 워낙 많으니까. 그래서 ‘그럼, 참 뭐라고 하나.’ 할 말이 없더랍니다. 자기가 아무리 돌아봐도 너무나 바쁘게 군 생활을 하니까 정말 하나님을 뭐라 섬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고심 고심을 하는데 거기에 군목이 한 분 왔습니다. 군목이 왔는데 중위입니다. 아주 새파란 아이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바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껏해야 대학원을 나와서 가는 것이니 그래봐야 스물일곱, 여덟이고 빠르면 심지어 스물다섯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근지역에 교회가 여러 개 있는데 주일이 되면 군목이 모자라서 이 목사님이 예배를 두 시간 단위로 돌아다니면서 하루 종일 인도를 합니다. 그런데 차가 없어서 80cc의 다 낡은 쓰러지면 일어나지도 못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는 겁니다. ‘그래! 저거다 내가 하나님께 할 일이 하나 있구나.’ 하면서 운전병을 불렀습니다. “운전병! 이리와라. 지프차는 두고 승용차로 이제부터 내가 특별히 부르지 않는 한 너는 내 기사가 아니고 목사님의 기사다. 그러니까 너는 빨리 차 몰고 목사님께 가서 내가 그러더라고 목사님이 예배드리러 다니실 때 어디 가시든지 너는 무조건 목사님을 모시고 다녀야하는데 목사님이 안타시려고 해서 빈차로 돌아오면 넌 영창 간다.”
그러니 이 군인이 승용차를 깨끗이 닦아둔 것을 타고 가서 부대에서 다음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헬멧을 쓰고 나오는 목사님 앞에 세우면서 “목사님! 여기 타십시오. 우리 사단장님이 보내셨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안 된다. 별들이 타는 차를 이파리 두 개밖에 안 되는 내가 어떻게 타냐. 나는 못 탄다.” 그랬더니 싹싹 빌면서 “목사님, 저 영창 좀 가지 말게 해주세요.” 그래서 딱 한 번 타고 즉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장군이 또 보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만나서 사정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너 거기서 사단장 할 때 뭐했냐?” 하시면 “별 둘이었습니다.” 그러면 게임도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그래도 “내 승용차는 우리 목사님을 빌려드렸습니다.”라고 나도 한 마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비록 똥을 푸는 일이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습니다. 없는 일은 없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찾고 그것에 기쁨을 걸고 그것에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우리의 인생이 끝난다면 “너 뭐하다 왔니?” “대학 교수였습니다.” 천국에는 교수보다 유명한 사람 허다하게 많습니다. 그 정도 가지고는 말발이 안섭니다. 교수하고 왔다고 해서 벌떡 일어날 사람이 거기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대통령을 하고 왔다고 해도 놀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입니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의 영광도 이 세상의 임금의 꽃으로 만들어 쓴 황금의 면류관보다도 더 찬란합니다. 그러니까 그 정도 가지고는 말발이 안섭니다. 그러니까 “뭘 하다 왔느냐?” “제가 큰 사업하다가 왔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그것 말고 뭐 하다가 왔니? 어떻게 그 직장에서 그 사업에서 그 가정에서 나를 섬겼느냐?” 하나님은 이것을 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유업의 모든 상을 우리가 주께 받는 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직장 생활 속에서 상급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급을 바라봐야 합니다. 가정을 돌보고 있는 사람은 이 끝도 없는 가정 일을 하면서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한탄한다면 하나님께서 근심하십니다. 직장 생활하고 사업하다가 곤고한 위기를 만났을 때 ‘내가 왜 남자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할까?’하는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슬퍼하십니다. 모든 상급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 상급을 바라보면서 상급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가정을 섬기고 직장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일을 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본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일러줍니다.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로새교인들을 보고 한 말입니다. 무엇을 하며 살든지 그들의 본모습이 아닙니다. 본모습이 뭐냐면 너희는 주 그리스도 예수를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사도가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든 화장실을 청소하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든지 간에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 전체를 돌아보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의 중심으로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눈앞에 섬기는 사람들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 옳은 길이고 무엇이 주님의 뜻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이 옳고 그것을 하는 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것을 하는 방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되면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우리는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기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전 삶의 영역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