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의 축복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3).
원래 이 집사라고 하는 말은 히랍 어로 디아콘 니아 라고 하는 단언데 이 단어의 유래는 6장에 보면 말씀과 기도를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합당치 않다 하는 사도들의 반성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공궤를 일삼는 것, 그것이 디아콘 네인 트라패쟈이스 라고 나오는데 나오는 트라페쟈이스 는 식탁이고 디아콘 네인 는 부정사로서 식탁을 섬긴다. 차린다. 그런 뜻입니다. 히브리 파 과부와 헬라 파 과부들이 구제 받는 일에 있어서 불평이 터져 나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거는 두 가지 사실을 합의 하는데 하나는 처음 가지고 있었던 물질의 이해를 초월하는 순수함이 사라졌다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런 것은 헬라 파, 히브리 파 과부들의 탐심만을 탓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질 안았단 말이지요. 정확하게, 제대로 분배가 되지를 안았다는 거지요. 이유는 사도들의 수는 한정 되어 있는데 그 사도들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직접 그 일을 하다가 보니까 공평하게 처리가 안됐다라고 하는 거지요. 인력이 모자라니까. 그때에 과부들을 공궤하는 그 일을 디아콘 네인 트라패쟈이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사라고 하는 바로 여기 디아콘 네인 이라고 하는 말에서 온 거지요. 그래서 디아코니아 하면 식탁에서 지체 높은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거들어 주는 거 그걸 가르쳐서 디아코니아라고 하는 것이에요. 집사라는 말이 바로 거기서 온 거지요.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섬김이 높은 자리에서 가끔 내려와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선심 쓰듯이 섬겨주는 그런 섬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 식탁에서 날라주는 거 에요. 영어로는 바즈보이 라고 하는 데 식당에 가면 밥 같은 것들을 날라 와서 그것들을 펼쳐 놔주고 하는 그런 걸 이야기 하는 거 에요. 웨이터 바로 더 아래 있는 사람 바즈보이 라고 하는데 그런데 완전히 그것은 종의 일이에요. 거기에서 나온 단어에요. 오늘 성경에 보니까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들은 그 대가가 그들에게 주어지는데 하나는 아름다운 지위와 그담에 믿음의 담대함을 얻게 된다. 담력을 얻게 된다. 이거거든요. 이게 어디 집사만을 가르치는 것이겠습니까? 결국은 섬김이라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 단어를 통해서 보면 선심을 쓰듯이 베푸는 그런 섬김이 섬김의 본질이 아니야! 섬기기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그 정체가 뭐냐면 섬기는 자, 종, 노예에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이 사람의 종이나 노예가 될 수 있을까? 섬기다보면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섬겨야 될 때가 있는데 어떤 식으로 보던지 우리가 그들의 종 일수 있을까?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지! 그래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종노릇하는 마음으로 성도와 이웃을 섬기는 것, 그게 바로 디아코니아 에요. 우리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를 때 기분 상해하는 사람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섬기는 과정에서 종처럼 취급받을 때는 파르르 떨면서 자존심이 상할 때 가 많은 거지요. 그게 모두 자신의 혈기가 죽지 않아서 그런 거지요.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온 사람, 그런 생활이 매일 매일 되풀이 되는 사람들은 섬기면서 가끔 종처럼 취급을 받는다고 해서 그렇게 파르르 떨거나 아니면 깊이 자괘감 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건 모두 마음이 종의 위치에서 떠난 사람들의 태도요 모습이에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섬겨도 그 자리에서 섬기는 참된 기쁨이 없어요. 하나님은 비록 모자라는 것이 많아도 섬기면서 그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지요. 여기에 보니까 바로 집사들이 그런 섬김의 단어에서 이루어진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믿음으로 직분을 잘 감당하면 이런 일들이 생긴다는 거지요. 하나님 안에 있는 마음을 드러내 보여 주시는 것 아니에요? 직분을 맡겨주셨으면 하나님의 마음은 그것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잘 감당하는 것, 이거는 양보 할 수 없는 숙제라고 하는 거지요. 물론 어떤 사람은 좋은 조건에서 하나님 섬기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조건이 매우 악하고 나쁜 속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부러 악한 조건을 만들 수는 없지만 형편과 모든 것이 안 돼서 너무 악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섬겨야 되는 때도 있고 모든 것이 여유로 와서 좋은 환경 속에서 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게 사람마다 다 천차만별 이고 자기가 처하는 사역의 현장마다 다 천차만별이에요. 그렇게 천차만별의 위치에 있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 하느냐 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위치에 있지요. 그렇게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있지만 그 상황과 환경이 어땠던 지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잘하기를 원하시는 거 에요. 그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거지요. 그래서 달란트 맡은 비유에서 보면 주인이 돌아와서 제일 먼저 종에게 하는 이야기가 뭐지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도다. 그러니까 주인의 입장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뭐냐면 잘 하는 거 에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맡겨 주셨을 때에 원하시는 거!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셨을 때 바라시는 거, 잘 하는 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였다 라고 하는 것 이지요. 자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게 있는데 잘 한다 는 게 도대체 무어냐? 우리들이 잘한다는 것도 길게 하면 조롱이 되지요. 자~알 한다. 외국 사람은 이해 할 수 없지요? 자~알 한다. 분명히 못하고 있는데 한국사람 들은 자~알 한다. 뭐냐면 조롱하는 거지요. 잘 한다 라 고 하는 것 이 무얼까? 묵상을 해 봤어요. 잘 한다 는 게 뭘까? 이런 거 잘하는 거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1시간 걸려서 하는 일을 30분에 해 내는 거 잘하는 거지요. 그지요? 또 어떤 사람은 3시간을 일을 해도 꼼꼼하게 못하는 데 2시간 밖에 안 걸렸는데 꼼꼼하게 일을 해내! 잘하는 거지요. 다 잘하는 거잖아요. 여기서 이야기 하는 잘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포함이 되지만 그 것은 하위 개념이에요. 그러면 무얼까요? 로마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잖아요? 그 합력한다는 말이 히랍 어로 순 엘가져 마일 순은 함께 고 엘가져 마이는 에네루기가 거기서 왔어요. 그래서 작동한다는 뜻이에요. 그게 뭐냐면 여러 가지 믿는 자 들에게는 선한일, 악한일, 괴로움, 슬픔, 즐거움, 환희,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이 모든 것들이 전부다 함께 합쳐져서 이 시계 부속처럼 돌아가면서 결국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작동한다는 뜻이에요. 그게 뭐냐면 선이에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의 인생을 향한 궁극적인 계획을 향해서 작동한다는 거 에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래서 잘한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개인적으로는 좋은 신자가 되어서 자기를 구원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끔 신앙생활 해 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불러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 자리는 좀더 큰 단위에 소속 되어있고, 좀더 큰 단위는 교회에 소속 되어있고, 교회는 한 조국의 교회에 소속 되어있고, 한나라의 교회는 당 시대의 교회사 속에 있는 모든 세계 교회사속에 소속 되어 있어요. 그때 자기가 보냄 받은 그 유니트 안에서 거기에서 그 하나님이 세우신 그 기관이 가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해서 잘 일하는 거, 이것이 잘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자들에게 남의교회 집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목회하는 교회,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교회의 집사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 에요. 다른 나라 다른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 에요. 특별히 디모데가 목회하는 이 교회에 대해서 교훈을 하면서 집사의 직분들을 잘 감당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이 여기에서 평생 나하고 같이 있을 사람도 물론 있겠지 만은 어떤 사람은 일년 있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6개월 있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고, 또 우리들이 약속한대로 하자면 2년을 있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고, 다시 또 계약을 해서 5년을 있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머무는 기간은 다 달라요. 그렇지만 기간을 마치고 떠날 때 에는 하나님이 보실 때 잘했다 그건 고생을 많이 했다든지. 좋은 여건 이였다든지. 나쁜 여건 이였다든지. 하나님이 모두 고려하시고 말씀 하시는 거 에요. 모두 고려하고 그 사람의 중심을 보면서 말씀하시는 거 에요. 하나님이 호미 한 자루 밖에 주시질 안으셨는데 일 만평의 땅을 왜 김을 매지 못했느냐고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렇지요? 일 만평의 땅을 맡기셨으면 호미 말고, 채마밭은 호미를 주셨겠지만 일 만평이 넘는 땅이면 아마 트랙터를 주셨을 거 에요. 십 만평이 넘는 땅이면 일군도 주고 트랙터도 주셨을 거 에요. 어떠한 여건에서든지 간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이거에요. 그래서 사역을 끝냈을 때 주님이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참 잘했다. 이제 너에게 내가 또 다른 길을 주어서 너를 가게 하지만은 잘했다. 이렇게 주님은 되기를 원하신다 이거지요. 그것이에요. 그럼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잘 섬기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느냐? 첫째는 뭐냐면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하신다는 거지요. 그 아름다운 지위에 첫 번째는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하시는 거 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지요. 명분에 있어서는 한번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에요.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지위는 다 달라요. 그 지위는 장로다, 집사다, 하는 그런 걸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자신은 그런 걸 느끼지 않으세요? 나는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면서 그런 걸 느꼈는데 이렇게 영혼이 한없이 침체 되는 것 같고 낙심되는 것 같을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 하시는 방법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불러서 너는 승진했다. 너는 부목사였는데 이제 담임목사로 나가라 . 아니면 너는 과장 이였는데 이제는 회장이 되라. 하나님이 그렇게 지위를 높여 주셔야지 만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니에요. 낙심하고 고난과 어려움이 가득 차서 한 없이 슬프고 그리고 하늘나라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깊이 끌어안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 에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고난 받는 나를 향해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베풀어지는 거 에요. 그때는 내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사랑을 받는 사람인가? 또 우리의 외관적인 지위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은 하나님이 내가 무언가를 해 나가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정해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복 주시는 것을 경험할 때 그때 우리가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되는 거 아니에요? 아! 내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귀한 사람이구나? 오래 동안 침체 가운데 있던 어느 지체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너무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깨달으면서 영혼의 회복을 경험했다는 거지요. 이게 영적인 아름다운 지위야! 아름다운 지위에요.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이겠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그 분이 우리를 명분에 합당하게 아름다운 지위를 가진 사람처럼 대해 주시는 거 에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요. 주님이 우리를 향해 얼굴빛을 가리고 우리를 모른척하시고 우리를 영혼의 침체 속에서 돌아보지 않고 우리들이 신앙의 흑암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는 신분의 하락이야!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은 그냥 있지만 지위의 하락 이야! 그런데 그 흑암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시련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홀로 있는 외로움 속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그 어두음속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변하여 주님을 향한 찬양이 되게 만들어 주셔! 이건 신분의 상승이야! 하나님 일을 잘 감당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아름다운 지위를 주시는 거 에요. 이런 아름다운 지위만이 아닙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름다운 지위를 주셔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지위는 곧 우리들이 이야기 하는 아름다운 지위 하고도 통하는 거 에요. 통하는 거 에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집에 깊이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들, 이런 평신도들을 하나님께서 정말 복 주십니다.정말 복 주셔요.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께 의지하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정말 높이십니다. 정말 높이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 특별히 주님의 교회를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우리의 모든 거를 바쳐서 전적으로 섬기기로 구별된 사람들이에요. 구약으로 말하면 레위인 같이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직접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이안에서는 세상과 같은 화려한 승진도 없고 세상과 같이 그렇게 엄청난 물질적인 대우도 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면서 그런 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소식을 가끔 듣지요. 작년에는 조선일보사에서 욕 많이 먹지 않습니까? 그렇게 욕을 먹는 가운데서도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전 직원 1200%보너스를 줬대요. 연말에 그러니까 200만원씩 타던 사람들이 2400만원씩 보너스를 타가지고 집에 가는 거지요. 그걸 들을 때 마음은 좀 쓰릿 했어요. 교회에 있는 직원들은 240%도 못주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1200%나 보너스를 주면서 저렇게 호황을 누리나? 잠시마음이 쓰릿 했습니다. 우린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지위를 높이시는 방법은 이 세상의 물질이나 세상의 명예만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아는 교회에 사찰집사님이 한분 계셨는데 교회에서 제일 힘든 게 사찰 집사님들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대우를 해 줍니까? 사찰 집사를! 승진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거기에다가 사찰 집사는 부부잖아. 애 들도 있잖아요. 그러면 월급은 한사람 주면서 일은 온 집안 식구들이 같이 하더라구. 참 너무 마음이 아프게 하나님 섬기는 분들 중에 한분이 바로그분이에요. 할 수 있으면 한국교회에서 이 사찰 집사들을 대우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여튼 그 분이 젊은 나이에 사찰로 들어와서 나이가 들고 결국은 은퇴까지 하셨는데 그 교회에서 담임목사님 못지않게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늘 마당이나 청소하고 유리창이나 닦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온 교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느냐? 교인의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노회의 모든 목사님들에게 그렇게 칭찬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다른 교회 목사님들이 자기 사찰을 그 교회에 보내서 자네 가서 그 교회에 가서 뭐라도 좋으니까 그 사찰 만나고 점심이라도 한 끼 먹으면서 교훈을 좀 받고 오게. 그래서 많은 사찰을 그 교회에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래 왜 그랬느냐? 저는 처음부터 그런걸 알았기 때문에 사찰이 없는 교회로 자리 매김을 했고 아마 앞으로도 제가 은퇴하기 까지는 사찰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로 있을 때, 부목사로 있을 때, 사찰도 경험해 봤지만은 이 분들이 인간적으로 보면 대우도 못 받고 일이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할일 교회 청소하는 일 딱하고 그다음에는 뭘 시켜도 복지부동입니다. 한번은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의자가 칠이다 까져서 망가졌는데 이걸 집사님 좀 칠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왔더니 사찰 집사님 대뜸 하는 이야기가 “왜 주 주시오.” 칠 가게사람 불러다가 돈 주고 칠하라 이거에요. “내가사찰 들어 온건 교회 청소하러 들어 온 거지 의자 칠 까진 거까지 칠하러 온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까지 이야기 하면 더 이상 할 이야기기 없는 거지요. 이해는 돼요. 워낙 일이 많으니까 제가 교회 안 에서 2년 반 가까이 3년간 살아봤습니다. 그런데 우리로 말하자면 여기 식당쯤 있는 곳에 우리 집이 있었거든요. 살수가 없습니다.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안방인데 뛰어와서 문 열고 “전도사님 가위좀 빌려주세요. 실 좀 빌려주세요.” 심지어는 화장실 가야 되는데 휴지 좀 주세요.”그러니까 주일이 지나고 월요인 날은 우리 살림이 어디가 있는지 가위는 본당에, 실패는 마당에, 휴지는 화장실에, 행주는 주방에, 살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찰 집사님들이 힘들긴 힘들지요. 그런데 그 분은 특이해요. 전부 하나하나씩 연구해서 자기 손으로 해내는 거 에요. 겨울에 저렇게 꽃을 해서 강단에 올려놓으니까 사찰집사님이 어느 날 그러더래요. “목사님 이거 교회 돈을 좀 아껴야 될 것 같습니다. 유리 몇 십장만 사 주십시오.” “그래 왜 그러느냐?” “교회 뒤 뜰 쪽에다가 이렇게 온실을 만들고 거기 십구공탄 난로를 피우고 거기서 화분을 하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그거 올려놓으면 돈이 안 드는데 낭비인거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울에 돈 안 들이고 늘 꽃이 피어있는 화분을 올려놓고 주일이 지나면 다시 온실에 집어넣고 용접기를 다 달라고 해서 의자 부서진 거 다 버리던 거 때우고 대패 사달라고 해서 목공실 만들어 놓고 고기서 웬만한 거 만들고 이렇게 하면서 교회를 섬겼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된 건 아니지만 모든 성도들에게 목사님 이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게 잘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지위에요. 마지막 두 번째로는 믿음의 담력을 얻게 된다. 그랬어요. 이게 뭐냐면 담대함이에요. 더 어렵고 큰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담력! 인생에 있어서 큰 파도와 고난이 와도 대담하게 맞설 수 있는 강인한 힘과 용기! 이것들은 어디에서 오느냐. 이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부터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담대한 사람들일까요? 그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사람 하나님을 섬기는 그 일에 있어서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자기를 다 쏟아 부어서 그 일을 위해 헌신하고 그 일을 위해서 자기를 모두 쏟아 부은 사람! 그 사람들이 믿음의 담대함과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는 거지요. 그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하여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잘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내적인 쇄신의 은혜가 있어요.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는 이 은혜가 이 성령의 은혜가 이 안에 있다는 말 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잘 섬기는 것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느냐 이것과 자기의 내적인 충만한 삶은 떼어 놀래야 떼어 놀 수 가없는 삶이에요.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곳에서 울부짖는 그 기도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속삭이는 기도가 능력이 더 커. 그런 담대한 믿음의 담력을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것이지요. 집사라고 하더라도 섬기는 일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그런데 섬기는 일이 무엇이든이간에 정말 하나님 앞에 잘 섬길 때 이런 아름다운 지혜와 담력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것이지요. 한 해 동안 불비한지도자 밑에서 잘 갖춰지지 못한 여건 속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가 갚아주지 못한 많은 것들을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책에 적어 놓으실 것이고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분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 갚아주실 것이고 그렇게 갚아주지 못한 부족한 부분들은 하늘나라에서 더 많이 갚아 주실 것 입니다. 한 해 동안 이렇게 애를 많이 썼는데 내년에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잘 감당해서 더 아름다운 믿음의 지혜와 그리고 믿음의 담력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