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훈련을 받으라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잠 15:31-32)
녹취자: 강정아/김향진
본문에서는 세 단어가 나오는데 ‘경계’, ‘훈계’, ‘견책’입니다. 의미는 비슷합니다. 여기서 ‘경계’는 책망, 비난의 의미입니다. 무언가를 잘못해서 임금이나 윗사람들에게 심하게 질책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생명의 경계’를 말합니다. 모든 책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에 대한 책망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지혜자의 책망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생명의 경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책망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책망을 받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옳지 않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망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똑같은 각도로 바라보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공무원 생활 당시 감사관들이 감사를 할 때 2년 치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감사를 하면 똑같은 부분에서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인간은 자기의 가치관, 시각대로 세상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생에는 반드시 결함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고, 책망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경계를 ‘생명의 경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망을 받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책망을 받을 때 대부분 귀를 닫아버립니다.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저 사람 입에서 무슨 선한 말이 나오겠는가?’라며 모든 이야기를 거짓말로 간주하며 귀를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잠언에서는 ‘미련한 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경계를 듣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처럼 행하는 것이라고 잠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성숙도는 자기반성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관 없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휘둘리고 따라하려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의미를 찾아가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비난을 당하거나 죽더라고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최소한의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체성입니다. 이 신념이 사소한 데까지 지나치게 확장되면 외고집 불통으로 타인과 소통을 못하게 되지만 이게 없으면 인간으로서 지조가 없는 존재가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사랑하며 버리고 얻는 주체성과, 의미를 찾아 살 수 있는 힘 이 두 가지가 인간이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것이며 이것을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객관화해서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 의미의 반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훈계를 받기 싫어하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 야단을 맞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태도를 가지고 오래 살게 되면 아무도 그 사람에게 싫다고 얘기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런 얘기를 할 때 그 사람이 힘들어하고 또한 파괴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가치 없는 사람과 관계를 깨뜨리면서 살 필요가 없으므로 그런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지고 소외되게 됩니다. 친구에게 주는 경책은 친구에게 주는 최대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사회생활의 태도는 상사의 입장에서는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 지적했을 때 많이 깨닫고 고마워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주변의 동료,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서로를 의지하면서 장단점을 교환하면서, 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주신 자연적 은사들을 교환하면서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을 좋아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을 향해 당신의 긍휼이 넘치셨습니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교훈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언제나 진리와 연결시키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깨닫고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 위대한 말씀인 산상 수훈도 이 이야기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살면 그 말씀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거나 목회 사역을 통해 다가오거나 주위의 친구, 우리보다 어린 사람을 통해 이 말씀이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자라면 우리가 항상 옳은 사람은 아니므로 진리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꿀과 같이 달 때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를 아프게 찌르고 우리를 괴롭게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자기편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태도로 성경을 읽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진리는 언제나 휘지 않는 법으로 거기 있어서 우리 모두를 판단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을 이해하고 붙들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끊임없는 도전, 발전을 주셔서 우리를 온전케 해가시며 그렇게 온전케 되어 가는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 기쁨이며 이웃에게는 행복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