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퇴보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2-33)
녹취자: 장미연
여러분 혹시 ‘무민이즘’이라는 신조어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무민이즘’ ‘무’는 ‘없다’라는 뜻이고 ‘민’운 ‘의미(mean)’입니다. 거기에 ‘-이즘’이 붙었습니다. ‘의미 없는 삶을 산다.’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왜 이런 게 생겨난 것 같습니까? 그것은 바로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강박관념이 되어서 인간의 행복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무민이즘’을 추구하느냐? 드라마를 보면서 1편이 모여서 2편이 모였고 이러는 거 안 하고 그냥 아무 의미가 없지만 싫지 않은 비디오를 보는 것입니다. 겟티비를 본다든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2년 전에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인터넷에서 한 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에 젊은 네티즌들이 한때 수백만이 열광하던 시고 지금도 읽힙니다. 유명한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의 이름이 “허도광년”입니다. ‘허’는 ‘헛되다’라는 의미이고 ‘도’는 그냥 ‘보낸다’라는 거고 ‘광년’은 광음, 세월입니다. 시의 내용이 “나는 세월을 헛되게 보내고 싶다. 그대와 함께 연못에 노니는 물고기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싶다.” 뭐 그런 등등의 이야기 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어디서 왔을까?’ 한 번 곰곰이 추적해 보면 산업화 되면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경쟁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국한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많이 누리려고 뺏어 가면 같은 크기의 모자를 이리로 쓰면 여기가 삐져나오고 앞으로 쓰면 뒤가 보여야 되듯이 일정한 양의 자본이 돌면서 많이 가진 사람들이 나오면 못 누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삽니다. 재미있는 게 작년 한 해 자동차 중 제일 많이 차가 ‘그랜저’입니다. 예전에는 소나타였는데 이제는 국민차가 한 단계 올라가서 그랜저가 가장 많이 팔린 차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20, 30세대의 절망감이라고 합니다. 절망감이 경제학적으로 자동차 산업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놀라운 관계가 있습니다. 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집을 포기한 절망감이 허도광년의 의식으로 번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허리띠를 졸라매도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살까?’ ‘차라리 집에 대한 적금을 부을 돈으로 자동차 할부금을 내고 차라도 좀 편안하고 좋은 것을 타고 다니자.’ 그렇게 하면서 만족을 얻기 위해 좋은 승용차를 선택하고 젊은이들 가운데 집 한 칸 없고 살면서도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라도 가면 벤츠, BMW 이런 차들이 즐비합니다. 그게 730이나 S600이나 500 이런 차가 아닙니다. 자잘한 거 벤츠 한 2000cc, BMW2000cc 이런 차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입니다.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잖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세태입니다.
제가 오늘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우리가 ‘무민이즘’이라고 하는 것도 이렇게 많이 기울여보면 현대인의 애환이 담긴 것입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들은 낙담하지 않습니다. 돈 많이 벌고 승리한 사람들은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패배한 사람들은 포기에서 여유가 있을 수 있지 모르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이 자리도 못 지키고 더 노력하지 않으면 있는 것도 빼앗기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칩니다.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는 ‘무민이즘’이라는 이야기들을 우리들은 가슴이 아프게 들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질문을 해 봅니다. “허도광년”이라는 시를 읽으면서도 ‘그래, 너무 경쟁 속에 지치니까 잠깐은 허도광년을 하고 싶다. 모든 시름을 잊고 한 번 그렇게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다.’ 생각 되었습니다. ‘무민이즘’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좀 쉬면 마음에 안식이 찾아오고 힘을 얻을 거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묻고 싶은 것은 그렇게 힘이 채워진다면 그 힘으로 그 다음에 뭘 할 것인가? 그 힘으로 얻어서 또 다른 허도광년을 위해서 힘을 축적할 것이냐? 그건 아니잖습니까? 일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넓은 저택의 연못가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걸 하루 종일 쳐다보고 돈도 안 벌려면 상당히 돈을 모아 놨어야 됩니다. 그것도 점심을 먹어야 들여다 볼 거 아닙니까? 배가 고픈데. 무민이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우리들이 치열한 산업사회와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지치고 외로운가 하는 걸 눈물겹게 이해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이야기들이 있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인생은 의미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준 중요한 명제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살아있는 한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고 먹고 짐승처럼 자연에서 발가벗고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를 찾아서 생활을 한다는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결국 생활해야 하는 존재 입니다. 생활 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 의미를 찾아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은 제가 늘 이야기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이재용씨 감옥에 있잖습니까? 누가 그렇게 하고 싶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천억을 갖다 주면 보석으로 풀어준다고 하면 천억을 안 내놓겠습니까? 돈이 아깝겠습니까? 아버지 재산이 20조나 되는데 뭐가 아깝겠습니까? 그게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차피 우리 인생은 마음대로 안 되는 거고 그런 일이 있으니까 그런 일들을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너무 번영하고 승승장구 할 때 도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그 상황에 묻어서 까불고 붕 뜨고 그러면 요즘에 감옥 가는 사람들처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물으면서 살아가는 게 그게 사람입니다. 의미를 물으면서 찾아간다는 것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가만히 있고 무수한 일을 겪으면서 거기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가 이렇게 비유하면 배를 타고 망망한 바다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이제 생각을 합니다. ‘배가 똑바로 가고 있는 거야?’ 질문을 하고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거 아니야? 이 물결대로 우리가 배를 맡겨도 되는 거야?’ 이런 질문들은 무엇을 암시 합니까?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의미라고 하는 것은 목표가 있을 때 의미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의미가 없을 때 안 떠오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커다란 실수는 목적지를 잘못 정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 대한 질문들이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박진영이 26살 될 때 20억 모으는 게 목표였다고 하는데 “20억 모으는 게 목표다.”라고 목표가 정해지면 삶에 있어서 부딪히는 모든 의미는 그 돈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또 살 힘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20억을 26세 되기 전에 손에 넣었는데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런 목표는 우리의 인생에 목표일 수가 없습니다. 목표를 놓고 우리의 인생을 항해를 합니다. 의미를 찾는다고 하는 것은 목표가 설정되지 않고는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목적이 있지 않고는 반성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삶에 열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제가 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똑 같은 말의 반복입니다.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풀면 어리석은 자는 미련한자이며 그의 퇴보는 안일하기 때문이며 결국 “그는 자신을 죽여 스스로 멸망하는 자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병행적 표현으로 이 속에 응축시켜서 담았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 다 같은 말입니다. 굳이 차이를 이야기한다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판단과 관련되고 미련한 것은 행하는 것과 많이 관련이 됩니다. “야, 너 왜 이렇게 미련하게 행하냐?” 이 말입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어리석나?” 무슨 뜻입니까?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쭉 이야기를 듣고 “너 왜 어리석어?” “무엇을 하는데 바보같이 너 왜 미련하냐? 왜 그렇게 하냐?” 이렇게 합니다.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의 공통점은 지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자연적인 지혜로부터 자연적인 지혜도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지혜로부터 소외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퇴보를 하찮게 생각하고 안일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모든 사람에게 무가치하게 여김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가면 연봉을 많이 주면 좋아하는 이유는 돈을 더 받아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입니다. ‘내 친구는 연봉을 7천 밖에 못 받는데 나는 만2천을 줄 테니까 오라고 제안을 했다.’ ‘내가 멈칫 멈칫 하니까 만 5천으로 올라갔다.’라고 할 때는 그게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가치가 평가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람을 그렇게 많은 연봉을 주고 데려갈 때 그 회사는 그 사람을 데려와서 그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데려 가는 것입니다.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그럴 때는 곧바로 짐 싸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가 대단한 게 직원이 정말 일을 잘하면 비행기를 일등석을 쿠폰으로 주고 그런 쿠폰을 한 권씩 줍니다.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뉴욕을 오가는 항공 우편이 천 50만원 입니다. 대한항공. 그거를 쿠폰을 20장씩 묶여 있는 거 한 권을 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실적을 못 낸다면 딱 한 번 정도 봐주고 그 다음에 아웃 입니다. 재빨리 아웃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이라는 것은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하다 보면 쉽습니다. 거기서 멈춥니다. 자기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지금 주어진 일은 꾸려갈 수 있지만 그 다음에 더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진보하기를 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끊임없이 퇴보하는 것입니다. 퇴보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 능력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주변에 사람들의 능력이 전진하면 자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준비하고 연마하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의 세계에서도 사실입니다.
교회는 이념적으로는 진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고 싶습니다. 능력이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신앙이 거짓된 사람은 교회는 뽑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런 사람인지 모릅니다. 판단할 때는 얼마나 열정이 있는가? 능력이 있는가? 그걸로 뽑는 것입니다. 뽑았다가 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버립니다. 혹은 그 사람이 다행히 그 교회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새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건 까 봐야 아는 거지 사람 쓸 때는 모릅니다. 그냥 확률을 가지고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목회인데도 얼마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보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의 세계에서 이렇다면 우리의 이 세상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끊임없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더 좋은 기회가 안 올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왔을 때 그 사람을 붙들 수 있습니다. 저는 폴 포츠(Paul Potts)가 그렇게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 나 왔기 저는 그 사람 CD 하나도 안 샀습니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 나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 마음을 쿵 하고 울렸던 것은 “상금을 받아서 뭘 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레슨 받느라고 빌린 돈을 갚아야지요.” 핸드폰을 팔면서 언제 사용할지도 모르는 그 오페라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자기 실력을 길러왔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거기에서 그랑프리를 얻고 나서 단번에 음반사와 7억 8천만 원짜리 계약을 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끊임없이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기회가 와도 그것은 그 사람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지혜자는 그 얘기를 합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는 끊임없이 퇴보하고 퇴보하는 것은 안일함 때문이라 그러나 내 말을 듣는 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 없이 전진하리라” 어리석은 자는 안위를 추구하여 뒤로 물러가지만 그는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하고 삶 속에서 수많은 재앙들을 만납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내 말을 듣는 자” ‘내 말’은 무엇일까요? 이 시인이 지금 풀어헤치려고 하는 풀어서 보여주려고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의 귀를 기울이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 입니까?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적어도 어리석지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미련하지 않고 결코 안일하게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정반대로 하나님이 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혜로우며 그래서 전진하며 미련하지 않고 슬기로우며 인생의 한 순간 하루도 안일하게 살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에 거룩한 목표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를 살게 하십니다. 그게 가슴이 뛰는 사람들이 됩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안 태어난 것 보다 행복한 이유는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하나님을 위한 선한 목표를 가지고 사람들과 만나고 교제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배우고 이렇게 하면서 의미를 찾아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난 것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고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목표를 가지고 분투하고 분발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