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3
내 집을 채우라(눅14:15-24)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룰 용서하도록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위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구제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행한 자들마다 모두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고 마시게 되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이 한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고 먹는 것을 빌미로 위대한 비유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고 또 하나님의 교회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지 우리들도 또 어떻게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영광스러운 비유의 말씀을 하나씩 풀어가서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그 주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그런 시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잔치는 대게 저녁때 벌어집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든 일과를 끝낸 후에 그 저녁 시간이야말로 가장 잔치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큰 잔치가 베풀어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잔치에 참여할 사람을 두 번에 걸쳐서 초청을 합니다. 한번은 미리 앞두고 몇 년 몇 월 며칠에 잔치를 하니 그때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초청을 하고 그 다음에 다 잔치를 준비해놓고 임박해서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니 빨리 오십시오. 이렇게 두 번을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놓은 것과 같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잔치를 베풀어놓은 것, 잔치에는 풍성한 것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먹어보지도 못하고 마셔보지도 못한 음식과 음료들이 많이 펼쳐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기 위해서 펼쳐진 잔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이북사람들이 너무나 먹고 살기가 고달프니까 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갑니다. 중국으로 가보니까 북한 사람들에게는 이 중국이 천국입니다. 왜 천국이냐고 하니까 먹을 게 너무너무 많다고 합니다. 중국은 인구가 엄청나게 많지만 땅이 워낙 기름지고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리고 소련과 같이 한 대 지방에 있지 않으니까 어디에 곡식을 심어도 기름지게 곡식이 많이 나옵니다. 그 12억의 인구가 곡식이 모자라서 굶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진짜 전 세계의 문제꺼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없어서 외교관조차도 리셉션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파티가 끝날 때쯤이면 봉지를 가지고 먹을 것을 주워 담아가는 그렇게 어려운 나라에서 중국 땅에 들어가 보니까 이것은 완전히 천국이라고 합니다. 왜 문제가 그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천국으로 여겨집니다.
한국 사람이 중국에 가보니까 길거리에서 고기를 파는데 소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잘라서 파는데 팔다가 남으면 버립니다. 그게 북한 사람의 눈에는 천국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또 환경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캐나다 같은 나라를 천국이라고 그럴 것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나왔습니다. 공해에 찌들게 살던 사람들은 오다가다가 숲속에 집 하나씩 있는 그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 속에 사는 캐나다를 보면서 천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고민거리가 많은 사람들은 고민거리가 없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이 하나님이 다스려주시는 곳이 천국이라고 간단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바로 우리의 생과 사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과 삶의 주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다스리고 나의 자아와 나의 삶을 모두 통치해주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여기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이렇게 마음속에서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 나라는 마치 천국과 방불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고 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리고 복종하면서 살지 않을 때 의와 희락과 평강이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과 갈등이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또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래에 있습니다. 어째든 미래에 있든 현재에 있든 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은 큰 잔치를 베풀어놓고 잔치할 시간에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준비해놓으시고 이렇게 천국에 들어와서 천국에 복락을 누릴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주님이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잔치할 시간에 종들을 보낸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도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방법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리고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건설하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은 바로 이 모든 일들을 사람들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서도 하지 않으시고 누구를 통해서도 하지 않는 이 일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도를 통해서 이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을 때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이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때까지 거기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초청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종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미 초청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기를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와 예수를 믿는 것은 관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급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문제이고 갈등의 문제이고 결핍의 문제이고 인간관계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 모든 것의 답이 다 예비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은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한 주인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모두 우리가 근심하고 질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모든 평강과 희락과 의와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들을 신앙의 세계 속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만들어놓으신 하나님의 나라에 와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을 누리고 맛보고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를 보십시오. 종들을 통해서 이렇게 거저 잔치에 와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도록 불렀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일치하게 사양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일치하게 사양하여” 그랬습니다. 사양했지만 사실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사양했다기보다는 거절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세 사람이 나옵니다. 한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을 많이 사놨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잔치 같은 것에 참여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한 대로 이 사람은 집에 집을 연하고 밭에 밭을 연하여 그렇게 부동산을 늘리는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밭을 보러 지금 갑니까? 그러면 땅을 살 때 땅을 보지도 않고 문서만 보고 땅을 샀다는 말입니까? 핑계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즐거워하기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면 한 사람은 또 소를 시험해봐야 하기 때문에 잔치에 갈수 없다고 말합니다. 소를 샀는데 이제 시험해보면 뭘 합니까. 무를 것도 아닌데 소를 시험해본다는 이야기는 아마 힘을 시험해보거나 혹은 소가 얼마나 튼튼하게 번식을 잘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시험해보는 것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즐거움 때문이었다면 이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습니다. 또 한사람의 변명은 그럴 듯, 합니다. 나는 장가들었기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그래도 말이 될법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보면 장가를 들면 일 년 동안 군대도 안 보내고 집에서 자기 아내를 즐겁게 하도록 정해져있습니다. 한사람이 걱정 때문에, 또 한사람이 즐거움 때문에 잔치에 못 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사람 때문에 매어서 잔치에 갈수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아직까지도 거듭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고 마시는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를 3년, 4년, 5년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을 해야지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변명은 너무나 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 알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것은 복잡한 게 아닙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나는 한 번도 어떻게 해서 팔당에 있는 물이 우리 수도꼭지까지 나오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틀면 나옵니다. 리모컨이 있습니다. 이것을 누르면 어떻게 전선도 연결되지 않았는데 누르면 이렇게 에어컨이 들어오는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는 사실은 더워서 누르면 켜지고 또 추워서 누르면 꺼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못된 사람이 많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디든지 가짜가 있다는 것은 진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 중에 예수 안 믿는 사람들보다 못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못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안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 중에는 택시를 타고 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신문을 보셨을 것입니다. 거의 매일 빠짐없이 신문에 나는 기사가 무엇입니까? 택시를 훔친 강도가 택시를 탄 사람을 협박해서 돈을 빼앗았느니, 성폭행했느니, 아니면 인신매매를 했느니, 산에 데리고 가서 밧줄로 묶어놓고 죽였다느니 그런 소식을 매일 들으면서도 여러분들도 타고 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내버스가 늘 돌아다니다가 잘 부딪히고 사고를 냅니다. 지하철에 가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서서 몇 시간 동안 캄캄한 굴속에 갇혀서 아수라장을 이루는 일을 우리는 매일 신문지상을 통해서 TV를 통해서 보도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지하철을 타고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죄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아직은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병원에 갈 때 병이 너무나 중하기 때문에 의사에게 미안해서 갈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바빠서 예수를 믿을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바쁩니까? 바빠도 여러분, 인간들이 자기 할 일은 다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잠을 줄이는 사람은 있어도 잠을 자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한두 끼 건너뛰는 사람은 있어도 안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자기의 할 일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하게 변명을 늘어놓고 여러 가지 변명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천국잔치를 베풀어놓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쓸데없는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모든 사람들이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천국을 예비해놓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새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답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고 핑계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는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주인이 베풀어놓은 잔치를 사양하는 이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복음을 거절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저희를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믿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또한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우리를 값없이 불러주시고 초청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들을 게을리 하고 또 핑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게 하는 많은 요인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이 비유에 등장하는 초대받은 사람들처럼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갈 필요를 못 느낍니다. 밭을 샀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밭을 많이 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곡식을 심었습니다. 풍요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곡식을 너무나 많이 추수하게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쌓아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머리에 지혜를 짜내고 큰 창고를 짓고 이 곡식을 저장해두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아 즐거워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면 그리하면 너의 소유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세상에서 있는 즐거움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느끼는 즐거움 이것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있는 모든 즐거움과 기쁨들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잠시 후에는 그 즐거움이 끝나고 인생의 진실 앞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밭을 사서 즐거움 때문에 이 사람은 너무나 소중한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 잔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잔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 때문에 소를 시험해보고 시험해봐야 이미 산 소인데 무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많은 걱정이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기쁨과 사람 때문에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구원의 기회를 주신 이유에는 오늘 주인을 통해서 주님이 어떻게 하실지 보여주십니다. 주인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서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와서 잔치에 참여하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못 간다고 하더이다. 정직하게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분노하였습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호의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주인의 호의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 주인은 분노하였습니다. 음식 하나를 장만하고 짐승 하나를 잡고 음료하나를 준비하고 잔치 상에 수저를 놓으면서 이 주인은 거기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즐거워할 그 순간을 고대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 그 사람들이 와서 자기의 잔치자리에 와서 즐거워해줄 그 일을 보면서 기뻐하고 그리고 즐거워하면서 그 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거절했습니다.
확실히 잔치 집에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결혼식에 가서 사람들이 썰렁하면 그 결혼이 꼭 무슨 사연이 있는 결혼식 같습니다. 집안에서 아마 엄청나게 반대를 하더니 결국은 집안 식구들이 꼴도 안 보겠다고 안 온 모양이다. 아니면 이게 형식적으로는 한번 가는 장가지만 아마 서 너 번 갔나보다. 그러니까 부조도 한번이지 네 번씩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안 나오나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연이 있은 결혼식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잔치 집에 많이 가보았지만 주인이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불평하는 집은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 이유는 왜 그렇습니까? 손님들이 들고 오는 그 봉투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밥값이 많이 나오고 떡값이 많이 나와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즐겁게 먹어주면 신나는 것입니다.
어느 잔치 집에서 큰 통돼지를 하나 잡았습니다. 그래서 바비큐를 해났습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서 접시를 들고 사람들이 한 바퀴씩 도는데 반이 먹었는데 통돼지가 다 떨어졌습니다. 주인집에서 너무 즐거워했습니다. 오늘 잔치 음식 모자라겠다. 그러는데 전혀 걱정하는 빛이 아닙니다. 그렇게 잔치 집에는 사람이 와서 함께 먹어주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잘 준비해서 왔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있으면 왜 그런지 신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기왕에 만들어놓은 것 한사람씩 와서 더 먹어봤자 표도 안 나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와서 먹으면 신이 납니다. 숟가락을 놓고 만들 자리를 마련하면서 이 주인은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온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붙잡고 아! 우리를 이렇게 초대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잔치를 준비하시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잔치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오래전부터 잔치를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죽으셔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사람들을 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뒤에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속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짐승을 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언젠가는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구세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고 우리가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때를 미리 바라보며 환영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 나라에 잔치 자리를 즐거워하고 그 나라에 잔치 자리에 우리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해야 할 구원의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앞에 그 잔치 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호의를 거절하자 주인의 그 간절한 호의는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랬는데 바로 그런 구원을 약속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오래도록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모든 초청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내가 초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초청하였는데도 이들이 거절하였으니 하면서 이 주인은 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진노한 가운데서도 이 주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 거절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서 꽃피우게 된 신약시대의 장면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종들을 불러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가라. 가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에 가지 말고 길거리나 산울가로 가서 길거리에는 거렁뱅이가 많고 산울 가에는 노동자들이 많은 곳입니다. 거기에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가난한 자와 병신과 소경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강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권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강요가 아닙니다. 가서 오랏줄로 묶어서 끌고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이고 간절한 권면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 이 잔치에 와야 하는지 그리고 이 잔치가 얼마나 훌륭하고 축복된 자리인지 인격적으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그들의 지성을 깨우치고, 그들의 인격에 호소해서 그들로 하여금 감화 받고 그들 스스로 잔치자리에 나오도록 만들어주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에 있어서도 이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주인이 부른 자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경되고 저는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과 저는 자들을 불렀습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잔치에 나올 사람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배고프기 때문에 그 잔치 상을 원합니다. 병신들은 자기와 같이 병신들을 잔치에 초대해주는 그 주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소경은 원래 하늘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생각되었습니다만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호의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인은 고관대작들이 먹는 아름다운 잔치 상을 예비하고 여기에 오도록 이 소경들을 불렀기 때문에 이 소경들은 올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자들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부축해서 데려갈 종들까지 보내주었기 때문에 사람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였고 어떻게 살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도와주심 속에서 인생을 영위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자기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고통을 하나님께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런 가난한 사람들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부르시는 것입니다. 일찍이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모두 준비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르시기룰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 천국이 그대들의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병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병신과 다름없고 세상에서 이렇게 쳐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든 것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병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마음이 없는 사람들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잔치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에서 잔치에 참여할만한 사람이 전혀 그 잔치에 초대석에 앉지 못하고 세상에서 지위와 그리고 부귀를 따지는 그런 잔치에 있을 수 없는 버려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잔치 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소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일 일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 그리고 자기야말로 어리석고 우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소경과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자들과 같은 사람들도 주님의 나라에서는 대접받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일어날 때마다 손을 벌리고 누군가의 복음을 원하는 사람들, 의지할 사람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주님이 가장 좋은 잔치자리에 앉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늘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생각하지도 않고 성경을 읽지도 않고 예배에 출석하지도 않은 세리와 창녀와 기생과 거지들과 병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죄인이었기 때문에, 불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로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보다 더 간절하게 마음에 가난함으로 뭔가 잔치자리와 같은 그런 영혼의 진정한 기쁨을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었지만 늘 그들은 그 죄로부터 해방되어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해를 누리고 살고 싶어 하는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서 우리가 교회 속에서도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려고 하지도 않고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지도 않는다면 오히려 세상에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면서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하나님 앞에는 천국에 가까이 와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우리는 혹은 우리가 부유하기 때문에, 혹은 지식 때문에, 혹은 건강 때문에, 우리가 믿는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를 연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하는 부유나 우리가 자랑하는 지식이나 우리가 자랑하는 건강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훼방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스스로 가난하고 병들고 그리고 소경되고 저는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에서 “오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종들이 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주인은 직접 가지 않고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오소서 라고 말할 수 있는 종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 종들을 보십시오. 열심히 가서 전했지만 한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주인에게 그대로 정직하게 고했습니다. 전도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누가 추수할 자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전도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보고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해보면 그들 가운데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추수하도록 예비하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승패의 의무가 아니라 오소서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한 자나, 천한 자나, 병든 자나, 병신이나, 그리고 저는 자나, 소경이나, 가난한 자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맛보고 우리가 경험하여야 할 하나님의 잔칫상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준비되어있다고 소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잔치자리에 모두 들어가자고 권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사랑을 예비하고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고 주홍과 같이 붉은 죄로 얼룩진 사람들을 눈과 같이 희게 하여 당신과 사귀는 자로 만들어주시는 것이 그분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은 오늘도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잔치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담장 너머에서 잔치자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흘깃흘깃 쳐다보며 군침을 삼키던 사람들이 이제 그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 잔치 상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게는 즐거움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시고 아직까지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에게 내가 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나온 것을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믿습니까?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예비해놓으신 이 천국에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나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오래도록 교회에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고 회개하지 못하신 분,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남들은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주지만 그러나 왠지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고백이 없는 사람들,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 불신앙의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우리가 대답해봐야 합니다. 한 주일학교 어린아이가 불치의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늘 기도하던 소원이 있었는데 아빠가 예수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이 아이는 병상에서 계속해서 아빠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완악한 아버지는 불쌍한 아들의 병을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복음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도 아빠, 예수를 믿어요. 간곡히 부탁하는 이 아들 앞에 그래. 나도 주님을 믿을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빠에게서 어린 아이는 숨을 거두면서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이제 내가 죽을 텐데 내가 주님 앞에 가면 아빠가 왜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말씀드릴까요.
하나님을 아직도 주님으로 믿지 않는 여러분들이 여기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들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집을 나간 자식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의 곁을 떠난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