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앞에서 살자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대하 6:14)
녹취자: 이현정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찬미 가운데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이라는 이 찬사가 참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신 성품이 약속과 관련되어서 언급될 때는 신실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진실함은 하나님 존재 그 안에 내재하는 성품인데 그것이 언약과 관계가 되어서 나타날 때에는 신실하심인 것 입니다. 그래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찬송하고 있는 것을 우리의 가슴에는 그렇게 쉽게 와닿지 않지만 많이 속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정직의 가치를 알고 많이 야바위꾼과 같이 그렇게 모략가들 틈에서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서로를 신실하게 대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은혜인가 하는 것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 시대에 많은 이방의 신들이 있었는데 그 신들은 신실한 신들이 아니었습니다. 거짓말을 밥먹 듯 하고 근친상간하고 도적질 하고 서로 살인하고 인간이 느끼고 있는 이 수많은 정욕적인 삶들의 현장을 신들의 세계에 그대로 투영해서 만든 것들이 이방의 신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성품을 묵상할 때 은혜가 그 마음에 넘칠 때 하나님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약속을 하면 그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약속을 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희망으로 작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 정식하게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고 약속을 지키신다고 하시는 그 신실하신 성품이 여러분에게 희망이 되고 있습니까? “아~정말. 그래 정말 하나님은 약속 지켜주신다고 그랬지.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로 이루어진다고 했지? 하나님이 인자가 아니시니 결코 식언하실 수 없는 분이시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성품에 대한 극도의 찬사가 있었는데 오늘날 여러분들에게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명제가 깊이 가슴에 즐거움으로 와 닿습니까? 그렇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약속에다가 희망을 걸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속에 희망을 걸고 산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냐면 오늘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온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단지 우리의 삶 가운데 한 두개의 자기 나름대로 특별히 잘하는 어떤 것들이 있어서 그것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 마음으로 행하는 것. 범사에.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라 이겁니다.
우리는 각자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자연적으로 타고난 좋은 성품이 있습니다. 그렇죠? 한 두가지는 있을 수 있습니다. 머리가 많이 좋지 못해도 다른 사람을 향해서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운 사람, 또 마음 씀씀이가 너그럽고 넓지는 못해도 특별히 뭔가를 탐구하고 그것을 말을 잘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 정확하고 훌륭하지는 않아도 서로 싸우고 불화한 사람들을 화해 시키는데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한 두가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앞에서 행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앞에 행한다 하는 것은 삶의 전 영역에 잇어서 하나님을 향한 섬김이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그래서 오늘 성경에는 온 마음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고 이런 축복들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광경입니다. 그 기도 속에서 이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품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언약을 지키시고 우리를 향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신데 어떤 사람들에게 자기의 언약을 지키시고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냐면 이 사람은 바로 어떤 사람이냐면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 둘 중 하나를 택하기 전에는 인간이 절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질 수 없고 세상 때문에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세상도 자기에게만 마음 바치는 사람을 좋아하지 마음이 갈라진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당신을 향해서만 마음이 모아진 사람들을 원하지 결코 세상과 마음이 나누어진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내면적인 삶의 질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충만한 교제 속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외면적으로 삶에 있어서는 모든 행하는 것이 신앙이 동기가 되는 삶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내면의 세계가 하나님을 향한 충만한 사랑이 동기가 되었다 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어떠어떠한 일을 매우 잘 해내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교회가 원하는 어떤 기능을 훌륭하게 감당해 내는 것 그래서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비밀은 그리스도인의 신자의 비밀은 신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비밀스러운 교제를 나누면서 사는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입니다. 거기에서 생명을 누리게 되고 거기에서 사랑을 누리게 되고 거기에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통로를 통해서 완전한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 비췸봐 되어서 그 통로를 통해서 우리들이 그 거룩에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님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해서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내면의 세계에 있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그 사귐의 비밀,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불가능 합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 하냐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 면전에서 드러나는 삶입니다. 하나님 등뒤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아직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 앞에서 살아서 자기 속에 있는 그런 즐거운 부분들을 잃어버리겠느냐. 그럴수 없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온 마음의 말이 이 앞부분에서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 잇어서 이 마음은 한 인격속에 있는 마음은 하나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가리킬때는 항상 단수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거기다가 온 마음 hall 전 체적인 마음. 이것이 홀리니스하고 같은 뜻입니다. 한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한 사랑과 그 은혜에 완전히 지배된 상태 이것이 홀리니스 거룩의 상태입니다. 마음이 온전해 지는것과 거룩해 지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모두 바쳐진 그 마음은 거룩한 마음이고 온전한 마음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장면이 이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사람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감격하고 어떤 사람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격하느냐 이겁니다. 타는듯 한 목마름으로 주님의 약속 하나를 붙들고 모든 고난을 견디면서 약속 하나에 희망을 걸고 인생을 사는 사람, 약속 하나에 모든 희망을 걸고 인생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들에게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큰 감격을 느끼게 하시고 은혜Fmf 베푸셔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사랑 받는 것을 체험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온 마음.. 중간에 타협점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사람 내면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 많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 거기에 지배를 받은 사람 외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좋으신 삶이 나도 좋고 하나님이 싫으신 삶이 나도 싫은 삶. 그래서 하나님 앞에 등 뒤에서 뭔가 감출 것이 없는 그런 삶. 실패를 하고 실수를 해도 즉시 이전에 내가 하나님 등 뒤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주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그 주님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그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맛보고 은혜를 맛보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이고 이게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이때는 솔로몬이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전성기를 누기고 있었을 때입니다. 진짜 영성이 뛰어난 상태였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람입니다. 그런 속에서 그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버지를 보면서도 깨달았고 자신이 아버지가 경험한 것을 공유하게 됩니다. 특히 이 성전을 짓는 모든 과정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사람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서는 영광의 상태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대면하면서 주님과 대화하고있는 장면입니다. 이게 신자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자랑거리를 따라서 사는 삶. 순간 순간 충동에 의해서 사는 모든 삶은 모두 이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맛보게 할 수 없는 삶입니다. 거기에 희망을 걸고 기쁨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