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싸움을 싸우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 6: 11-12)
녹취자: 유유희
신약성경이 그려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은 결국 영적인 전쟁입니다. 늘 전투 샹황 속에 있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하늘의 주관자들에 속한 것이다’ 그랬습니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인데 그 본질은 크게 세 가지로서 전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의 전투적인 상황 속에서 싸움하는 군인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것이죠.
우선 제일 먼저 오늘 사도 바울이 그 앞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과 쾌락, 이생의 사랑을 좇는 것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이것을 피하라고 했으니 제일 먼저 우리의 싸움은 결국 우리 자신의 육체와의 싸움이에요. 성경에서 우리의 육‘체, 육신’ (이라고) 하는 것은 살코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사람에게 속한 성품과 그 모든 기질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우리의 옛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없이 자기를 주인삼아 살고자 하는 자기 중심성의 욕망이에요.
그것이 성직에 들어섰다고 해서 한 번에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똑같은 본질을 가진 사람들로서 부패성을 지니고 어떤 사람은 생업을 이으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성직에 종사하게 되죠.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죄악이나 잘못들이 교회 안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우리들이 크게 놀랄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다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른 소명을 가지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소명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놀라고 충격을 받을 수 있지만 인간이라고 하는 면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이죠.
원래 이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적개심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이 분명하게 맞서야 할 적군이 누군가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채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붓고 군대를 길러도 그 군대의 정신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에요. 그러니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러면 처음부터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죠. 어떡하든 화해를 모색하고 그리고 공존하려고하지 싸우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거죠. 모든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는 결국은 제일 처음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죠. 극한 욕망으로 시작을 해서 아주 인간적이고 단순한 먹고, 입고, 마시고, 쉬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수많은 욕망에 시달려요. 그것들을 잘 제어하고 이길 수 있는 전투적인 자세를 갖지 않고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 버리는 거죠. 그래서 제일 먼저 우리는 자신의 육신과 더불어 싸워서 이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바로 자기 부인의 삶이에요. 그렇게 자신의 육신과 더불어 싸우려고 하는 그 토대가 바로 이후에 전개될 모든 영적인 싸움들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비결이에요. 그렇게 자신의 육체와 더불어 싸우려고 하는 몸부림 속에서 영적인 강함과 양심의 깨끗함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정말 신앙이 좋고 하나님 사랑하는 디모데의 신앙에 끔찍한 악들을 열거하면서 ‘너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싸움의 정신을 북돋우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인턴십을 마치고 나가면서 지금 잘 싸워서 자신과 더불어 이겨도 후에는 점점 그 싸움이 힘겨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물며 지금 여러분들이 그런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의 결의가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는 것이에요. 나이가 들면 정신도 부패할 수 있겠지만 정신이 부패하지 아니하고 맑다고 하더라도 육체를 가혹하게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금방 건강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의 건강을 비롯해 그다음에 젊었을 때는 여러분이 이렇게 혼자서 사역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여러분들이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사역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역의 안정성 때문에라도 쉽게 옳은 것을 알면서도 한 번에 돌아서기 어려운 일이 많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만약에 그런 분명한 정신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미래는 어두운 것이에요.
두 번째는 세상과의 싸움이에요. 근본적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대적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우리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평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질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사상에 있어서 서로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본질을 양보하지 않고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때가 오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에 핍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신자의 삶에 고난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신앙으로 살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거죠.
세상은 우리의 섬김의 일터이기도 하고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가 살아가고 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해요.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종종 잠시 하나님과 맞서는 것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불편을 가져오지 않아도 우리가 세상과 맞서는 것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불편을 가져와요.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해도 인내하고 참지만 세상은 우리가 세상의 정신에 굴복하지 않을 때에 금세 보복의 움직임을 취한다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이에요.
전쟁은 냉엄한 것이에요. 문화를 자랑하고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모두 평화로운 시대에 하는 것이고 전쟁의 상황에서는 그런 것은 소용이 없고 군인들이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전쟁에서는 승리보다 존귀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죠. 거기에서는 그동안 평소에 자신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갈고 닦은 그 모든 군대의 실력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세상과 맞서서 영적인 싸움을 이기려고 할 때에 그때에 우리 자신이 준비해 온 자신의 영적인 상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믿음으로 살고 신앙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죠.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에요. 그래서 오늘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은 전쟁이기도 하고 또 미래에 다가올 전쟁에 향하여서는 훈련이기도 한 거죠. 모두 전쟁도 아니고 모두 훈련도 아니에요. 오늘 매일매일 싸워가는 싸움이 한편으로는 전쟁이고 미래에 더 큰 전쟁을 치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은 훈련의 기간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일생동안 잘 전쟁하는 사람이 잘 훈련받는 사람이에요.
(예화) 그래서 군사의 속담가운데 그런 속담이 있대요. 수없이 군인들을 돈을 들여서 모형물을 만들어 놓고 공격을 하게하고 전술을 짜고 작전을 짜고 수없이 기동 훈련을 해도 열 번 훈련한 것은 한 번 전투한 효과에 비할 수가 없다는 거죠. 한 번 실제로 전쟁을 치러 보고 나면 그때는 말로 할 수 없는 아주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되고 이 전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몸소 체득하면 훈련이 효과를 얻게 된다 이거에요. 그럼으로써 군대가 강해지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오늘 믿음의 싸움을 세상과 더불어 잘 싸우지 않고 쉽게 항복하는 사람은 미래에 실패를 담보하는 것이고 미래의 패배를 지금 현재 준비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나 작은 일에 승리하고 이기면서 사는 사람들은 미래에 더 큰 승리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금은 훈련 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한편으론 훈련이지만 한편으론 매일 매일이 삶이에요.
그래서 제가 어느 신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여러분들이 자꾸 준비, 준비 그러는데 신학교 3학년 때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면 그러면 그는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평가를 받겠느냐? 그러면 나가서 교회를 개척해 본 적도 없고 선교지에 가서 매 맞아 본 적도 없고 그리고 목회를 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어쨌든 주님은 그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를 하셔야 될 것 아니에요. 그것이 바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싸움이에요. 사역엔 준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매일매일 이어가는 신앙생활에는 준비라는 것은 없고 매일 전투하는 현실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믿음의 싸움을 세상과 더불어 잘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데, ;세상이 어딨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 세상이 결국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에요.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의 씨름은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이다’ 그랬습니다. 이 씨름이라고 하는 희랍어 ‘필레’는 그리스시대 때에 특별히 로마시대 때에 격투기에요. 사람들이 금속 같은 것들이 달라붙은 가죽 장갑을 얇은 것을 끼고 한쪽이 죽을 때 피 흘리고 죽거나 혹은 항복할 때까지 싸우는 경기에요. 그렇게 피 흘리는 끔찍한 필레 경기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으로 끌고 들어왔는데, 우리들이 그렇게 싸우는 궁극적인 대상은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에요. 그 모든 것들을 조정하고 있는 사단과의 싸움이에요.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모든 힘이 우리의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에서 나와요. 그래서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필요하고 그 교제의 친밀함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능가하는 성령의 능력 부음심이 필요한 거에요. 그 성령에 강하게 사로잡혀서 보이지 않는 악의 영들을 제압할 수 있는 하늘의 권세를 덧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런 주님의 큰 영적인 권세를 덧입었던 위대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간절히 찾던 사람들이었어요. 주님이 부어주시는 그 놀라운 성령의 권능과 친밀함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지만 주님의 그 주권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을 신앙과 기도를 통해서 부어주셔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하늘로부터 비둘기와 같이 성령이 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이 삼위일체적인 공존의 놀라운 경험을 강에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험하셨어요. 당신의 아들도 간절한 기도 속에서 이런 성령의 충만한 교통과 능력을 누리게 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것을 하나님께 요구받고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능력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성령의 충분한 권능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 모으고 삶의 초점을 거기에 합친 사람들이에요. 두 개, 세 개의 초점이 아니라 하나에 맞춰서 자기를 쏟아 부으며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죠.
(예화) 저는 아주 싫어하는 경기이긴 한데 이종격투기 K-뭐, K-2? K-1이라고 그거 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보면 선수들이 체급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때는 두 선수가 체격이 비교가 안 되는 선수가 등장을 해요. 한 선수는 어마어마하고 한 선수는 그 선수의 몸집의 3분의 2정도 밖에 안돼요. 쬐끔해요. 내 생각에는 그 사람 깔아놓고 그 위에 앉아있기만 해도 이길 것 같은데 막상 싸움을 시켜놓고 보면 결과는 전혀 달라요. 오히려 이 덩치가 큰 사람이 움직임이 둔하고 뭘 잘 못해요. 그런데 이 작은 사람은 아주 움직임도 빠를 뿐만 아니라 그 작은 덩치에 비해서 한번 가격하는 것이 자기보다 30%나 몸집이 큰 사람을 휘청거리게 만들어요. 결국은 그런 육체의 크기의 열세를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지독하게 연습을 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그를 승자로 만드는 것이에요. 치열한 열심 속에서 자기를 철저히 준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싸움의 자리에서 자신이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중해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이 그렇게 미래의 언젠가, 지금도 매일 매일 겪고 있지만 미래에 더 크게 겪을 영적인 전투를 위해서 우리 자신들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이 전쟁을 피 흘리는 훈련으로 생각하고, 훈련을 피 흘리지 않는 전투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철저하게 단련하고 희생할 때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싸움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믿음의 싸움을 싸우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말 간절히 매달리고 안수 받기 전까지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연단의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담금질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벌판에서 주님을 간절히 찾는 광야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