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주께 두라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기도라든지, 예배라든지, 섬기는 것이라든지, 모든 우리들의 섬김, 우리들의 삶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모든 섬김, 모든 예배, 모든 기도 나아가서 우리 인생 자체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그런 인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첫 번째 받으시고 싶으셨던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면 그 다음에 성품, 뜻, 우리의 목숨 모두 거기에 다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이 충만한 기도 은혜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 말씀에 큰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많이 섬겨도 왠지 기쁨이 없고 섬김의 열매조차 잘 나타나지 않은 이런 모든 것,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사람들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문제는 어디에 있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데 저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힘, 신앙적인 놀라운 힘은 어디에서 오냐 하면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 때 우리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책망하게 하시면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의 크고 뜨거운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면 감동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들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말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때에 우리들의 삶의 초점이 하나님께로 맞춰지게 된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소망이 주께 있나 이다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소망은 주님 밖에 없다. 이 사실을 확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용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장난이나 농담 같을 수 없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열심히 부르짖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될 것은 이런 소망이 우리에게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서 입을 열때 우리의 기도가 쏟아져 나올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의 영혼의 시선을 좋으신 하나님 한분에게 주고 갈 때 그때 우리의 기도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갈리고 우리의 소망이 쓸데없는 것에 희망과 소망을 가질 때 그때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해 집중된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왜 금식이 좋은지 아십니까? 금식은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힘을 빼앗아 버리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잘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지만 그것도 가능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이 어떻게 하는 가운데 정말 자기의 소망이 오로지 주께만 있다고 고백 했는지 우린 그걸 살펴야 됩니다. 언제 그런 고백을 하게 됐습니까?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가 하는 것을 직시했던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하는 것을 주목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인생 자체를 직시 하면서 그는 너무나 인생 자체가 허무하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생을 살았지만 그러나 주님의 광대한 힘을 생각해 보니까 주 앞에서 자기의 인생은 마치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속히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속히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사람들이 노쇠해 가는 것 하나만 보면서도 우리는 세월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이 허무한 것인가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인이 바로 그러한 것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 사람이 그토록 몸부림치고 애를 쓰면서 때로는 범죄까지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짓밟으면서 까지 강한 집착과 집념을 가지고 모으는 재물, 그리고 그것 하나에 인간의 생명과 행복과 불행이 달린 것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모습, 이런 것이 모두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이 깨닫고 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 시인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이 말하자면은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벽에 7시 반 비행기를 타고 광주에 내려갔다 왔어요. 광주에 내려가니까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봤습니다. 물안개, 물안개가 뭔지 알아요? 강이 이렇게 호수더라고요 잔잔하게 고여 있는데 날이 따뜻하면 말 이죠 안개가 피어오르는데 입자가 굵은 안개입니다. 그래서 아주 신비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람 부는 날은 안 피웁니다. 정말 수면위로 물안개가 쫙 가려져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그 물 위로 걸어오실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 정도로 아주 신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해가 활짝 구름에서 벗어 나오고 태양 빛이 내리쬐게 되면 그 물안개는 간 곳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 비가 쏟아져도 간 곳 없이 사라집니다. 떠날 때는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올랐던 안개가 돌아 올 때는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호수 위에 그저 오가는 빗줄기 들이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무엇을 잡으려고 하는 것, 애쓰려고 하는 것, 모든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시면서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오늘 애쓰고 힘쓴 일이 영혼을 향하여 의미 있는 일이였습니까? 잘 생각 해 보십시오. 그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직업은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공무원 이였다고 말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직업은 정치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소망과 마음을 품고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세상이 헛된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젊음도 헛되고 그리고 육체의 아름다움도 헛됩니다. 재물을 움켜쥐고 있는 것도 헛되고 건강도 헛되고 헛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바르게 바라보아야할 인생이요, 우리들이 바르게 바라보아야 할 인생의 실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이 세상에 참된 소망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야 가득히 세상은 사라지고 주님이 우리의 시야를 채우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면서 말이지요.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잠시 있다가 곧 떠날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영원히 살 사람처럼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살면서도 남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삶, 거기에 사랑을 두지 않는 삶, 언제나 젖은 눈을 들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있을 그 나라를 그리워하고 하나님 이외의 내가 복이 어디에 있으리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고백, 이것이 살아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하자면 항해를 하는 배의 나침반과 같아서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있으면 인생을 어느 길로 걷고 어떻게 걸어가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 집니다. 아주 똑똑해 집니다. 확실해 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내가 가는 길을 알고 있고 그리고 돗대를 높이 올리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갈 바를 알지 못하면 바람이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배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이런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는 소망 속에 살아가는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만 사랑하고 주께만 소망을 두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한참 은혜를 받았을 때 그는 자기의 책에서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는 이름, 그리스도라는 성함,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어떤 단어, 이런 것만 들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그리고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거룩한 은혜를 맛보며 주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눈에 보이는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50, 60, 혹은 80을 어기적거리면서 살다가 흙과 함께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너무 불행하고 슬퍼집니다.
저는 이번 주말에 장인어른을 땅에 묻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가서 무덤의 돌맹이도 건져 내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한 사람을 묻고 땅을 꽉꽉 밟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구나 제가 결혼한 그 이듬해 우리 장인 회갑을 맞으셨습니다. 그때 정말 정정하셨습니다. 안 늙으실 줄 알았습니다. 18년이 흐르고 나서 이제 돌아가시기 직전에 모습은 흙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돌아가시기 6개월 전에 주님을 영접하고 이제 계속 은혜를 받다가 돌아가셨으니 다행인데 그게 참 감사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오늘 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좀 몇 년 먼저 믿고 돈 있고 건강 있으실 때 조금이라도 좋은 일하고 하나님 섬기다 가셨으면 천국 가는 길이 얼마나 더 보람 있고 기뻤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잠시 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호수위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같고 그리고 그것들이 살아나거나 살아지거나 하면 불변하게 떠오르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세상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그 분께 소망을 두고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배신할 지라도 우리는 낙망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소망을 더욱 굳게 하고 정결하게 살다가 주님을 뵈옵는 그런 거룩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