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3.10 주일오후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되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 14:32-35)
오늘 이 시간에는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되자’ 이 문제로 오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와 같이’ ‘그런데’ ‘그러므로’ ‘그때에’ 이런 구절이 나오면 우리는 조심스럽게 봐야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언제나 앞뒤를 조심스럽게 읽어봐야지 됩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모두 버리지 아니하면 이미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런데 ‘이와 같이’라는 말이 무슨 말씀인가? 그 앞에 보면 공사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싸움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공사하는 이야기는 망대를 세우려고 하는데 집을 지을 때는 비용을 계산하고 집을 진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데 한 천만 원쯤 들어가겠구나.’ 이렇게 계산을 하고 요량을 잰 다음에 ‘천만 원이 내 주머니에 있는가.’ 그리고 재보고 모자라면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돈이 모자라는데 공사를 시작하면 여러 사람을 고통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집회에 가서 어느 집사님을 만났는데 자기는 절대로 교회 봉사를 안 한다고 재미를 하나도 못 누렸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갖지 않은 채 큰 공사를 시작합니다. 낭패를 만납니다. 그래서 공사를 하려면 공사에 들어갈 비용이 있는가 보고 공사를 시작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일만 명을 가지고 싸우러 나가려고 하는데 저쪽은 이만명입니다. 1만 명으로 이만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을 먼저 생각을 하고 전쟁을 해야지 질 전쟁을 하면 뭐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질 전쟁을 해봐야 수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리는 것 밖에 남는 것이 없는데 왜 그 일을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다가 이와 같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를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주님의 제자가 되든지 아니면 관두든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믿으려면 분명하게 예수를 믿든지 아니면 그만 두든지 그러면 그만두어도 좋을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바로 무슨 사람인가 하면 돈은 삼십 만원 밖에 없으면서 천만 원짜리 집을 시작하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터를 닦고 기초 공사도 놓은 다음에 돈이 없어서 더 이상공사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기초공사 해놓은 것도 겨울바람에 다 꽁꽁 업니다. 그리고 자기 집 팔아서 집을 지었으니 자기는 오갈 데가 없는 사람과 똑같고 군대는 1만 명, 사기도 없는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기라성 같은 최신무기로 무장한 이만명의 병력과 더불어 싸우려고 하는 그 어리석은 장수와 똑같은 것입니다.
몇 해 전 사담 후세인하고 미국하고 대판 싸우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큰 소리를 쳐서 사람들은 뒤에 믿는 것이 있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미국이 한없이 폭격을 해대니까 폭격을 맞아서 고속도로에서 죽은 사람만 15만 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 십 만 명이 죽고 미국 사람도 90여명이 죽고 전쟁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게 바로 어리석은 사람의 전쟁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우리에게 주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정말 이기고 승리하고 그래서 그 사람이 거기서 예수 믿고 있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그런 예수 믿는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결단해야지 됩니다. 믿을 것인지 관둘 것인지, 관둘 것처럼 믿으면 자기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우선 교회에 고통을 줍니다. 가족들에게 고통이 됩니다.
자, 가장인 내가 예수를 믿는데 예수를 분명히 안 믿고 세상바람에 휩쓸리고 세상에 한발을 들여놓고 한발을 교회에 들여놓고 오락가락 하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이 아닌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그러면 가정이 평탄할 수가 있겠습니까? 환난이 닥치면 가족들을 어거하고 하나님 앞에 환난의 비바람이 와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 기도하자.’ 이렇게 해야지 가장의 영적인 권위가 서는데 어려움이 닥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려고 해도 ‘아마 하나님이 안 도와주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이 있는 그 가족들이 얼마나 불쌍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거꾸로 되어서 아내에게 은혜를 주어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구원하시도록 사명을 주셨는데 그래서 가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주셨는데 이 부인의 신앙생활이 분명치 않습니다. 분명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그 신앙가지고 세상 속에서 버티려고 하는 것은 마치 돈도 한 푼 없이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순간에 가서는 우리는 한번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원에 올 때마다 이야기하는 것인데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일만 명이 이 만 명을 대적한다면 거기에는 뭔가 특별히 대적해서 이길 수 있을만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병기가 뛰어나든지 아니면 그 일만 명의 병사가 다른 나라의 이만 명 병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투철한 애국심과 뛰어난 용기를 소유한 사람이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서 이 세상에서 정말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이 ‘제자’라는 말이 오늘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제자. 그게 뭐 월사금 내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다 제자가 아닙니다. 이 제자라는 것은 옛날 시대 때 ‘도제’입니다. 거기서 온 말입니다. 도제가 무엇입니까? 지금도 그 기술을 익히면서 살아가는 세계는 다 그렇습니다. 내게 예를 들어서 공사장에 가서 벽돌 쌓는 일을 해서 미장일을 한다고 하면 처음에 들어가서 어떻게 합니까? 학원에서 배우고 몇 등급 자격증 받아서 들어가는 그런 것은 다 후대에 생겨난 제도고 일단 들어가면 “야, 인마! 물 떠와. 비벼.” “네” “가서 망치 가져와.” “네”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들면 두들겨 맞으면서 그렇게 종처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차근차근 늘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세계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한번 요리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전문대를 졸업한 학생인데 그것도 참 천직인지 공과계통의 공전을 나왔으니 어디 취직하면 밥은 벌어먹을 텐데 그렇게 요리하는 게 재미있어 하고 싶어서 미치겠다고 그래서 좋은데 취직했다고 아침마다 정장을 입고 나가니까 엄마 아빠가 알 수가 없었는데 그리고 나서 간 곳이 음식점에 갔는데 어떻게나 피눈물이 나는 세월을 보냈는데 가니까 숫돌에다 칼을 갈고 양파나 다듬고 그런 건만 시키면서 위에 사람들이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왜 그런가 하면 쉽게 가르쳐주면 부려먹는 시간이 짧으니까 우려먹을 대로 잔뜩 우려먹고 그 다음부터 채 써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주는데 그 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고기를 써는 데는 6개월의 훈련을 받아야지만 고기를 썰 수 있는 순서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냥 잘라서 먹으면 되는 것인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10-11년 근무했는데 월급 45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수 두 배를 받는구나.’ 그리고 중형승용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때까지 피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들어오는 길이 없겠습니까? 높은 사람의 낙하산을 타고 중간에 들어와서 이만한 모자를 쓰는 것, 그런 것은 기술자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들어오면 호텔 손님 다 돌아갑니다. 거기서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밑바닥생활을 하면서 착실하게 올라왔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그 사람들의 군기라고 하는 것은 군대 저리가라입니다. 가면 주방에서 모자의 높이가 다릅니다. 이게 제일 높은 사람이 이것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볼 때는 우스울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러다가 대기업 호텔의 이사까지 올라갑니다. 조리담당 이사입니다. 그 정도 되면 모자의 높이가 6-70센티 이상이 됩니다. 이렇게 큽니다. 하얀 모자를 빳빳하게 세워서 쓰고 그 사람들은 칼도 안 만지고 돌아다니면서 수백 명의 종업원들을 이렇게 저렇게 지시하면서 다닙니다. 그렇게까지 중간부터 올라간 것이 아니라 바닥부터 확실하게 절대 복종의 계율을 배우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그렇게 배워야 합니까? 산에 왔으니 대답 좀 해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 그렇게 철저히 완전한 복종 속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인생 말년에 쪽박 차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뒷감당도 못하면서 배짱 내미는 사람들 수틀리면 집어치우고 집어치우는 사람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인생 말년이 고달파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날 이렇게 대접할 수 있어. 수틀린다고 그만두면 10- 15년 지난 다음에 손들고 제 자리로 또 옵니다. 또 가면 하나님은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또 원 위치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원 위치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인생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꽃피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꽃피는 것은 성공하고 부자 되는 것이 꽃피는 것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것은 예수님 닮아서 예수님처럼 하나님 잘 믿으면서 잘 섬기면서 사는 것이 한번 꽃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기도원에서는 좀 크게 아멘 하십시오. 믿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오늘 자기 소유를 다 버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교회도 이전하는데 헌금 내라는 이야기인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자기소유를 다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하나님 이외에 애착을 갖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말씀 듣고 생각해보면 이렇게 살아야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몸이 안 움직이는 것은 애착 때문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중국에 아편이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아편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담배처럼 말아서 피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양귀비나 대마초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쭉 피면 지금 기분이 감미로워지는데 도둑이 칼을 들고 담장을 넘으려고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른해지면서 황홀경 속으로 들어가는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도둑이 들어오니까 저 놈이 담을 넘으려고 기웃거립니다. ‘담에 올라오기만 해봐라.’ 담에 올라오니까 그것을 떨쳐버리고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야 대는데 너무나 황홀한 순간입니다. 담에 올라왔습니다. ‘우리 봉담에 내리기만 해봐라.’ 그러니까 탁! 내려왔는데도 이것을 떨치고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너무너무 황홀경 속에 들어가서, 그 다음에 ‘저놈! 우리 방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런데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뭘 가져가기만 해봐라.’ 그러니까 가져가면서 마약 피우다가 ‘저거 갔구먼.’ 그러면서 잔뜩 챙겨가니까 마지막에 하는 말이 ‘또 오기만 해봐라.’ 애착에 빠져서 못 일어납니다. 뭘 망설입니까?
그러니까 이리저리 요량을 많이 피는 사람치고 신앙생활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험의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어두운 세상을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기 위해서 뭔가를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결단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뭐라고 기도해야지 되는가 하면 “주님, 책임져주시옵소서.” 그렇게 해야지 “주님이 그래 이번에는 주님이 아멘 하실 차례지. 아멘, 내가 네 인생을 책임져주마.” “주님, 내 인생을 책임져주시옵소서.” “내가 왜 네 인생을 책임 지냐? 네 마음대로 다 살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 여러분 인생을 돌아보면서 한번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세상을 떠나서 주님만을 위해서 한번 멋지게 내 인생을 결단했다. 그런 때가 있으면 한번 말해보십시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이 늘 힘도 없는 일 만 명의 군사를 가지고 게임도 안 되는 이만명의 군사들과 싸우다가 숙명처럼 패배하는 것입니다. 공사비도 쥐뿔도 없으면서 큰 공사를 하려다가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니까 교회를 짓다가 돈이 모자라니까 목사님들 고난당하는 것을 보니까 나는 그때 깊이 결심했습니다. 나는 절대 돈이 없으면 교회를 짓지 말아야겠다. 처음에 공사하는 사람이 와서는 목사님께 예의가 바르게 구십도 각도로 인사를 하면서 목사님, 목사님 저도 옛날에는 주일학교 때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안 나오니까 건축 위원장은 장로님인데 찾지도 않고 “야, 박목사 나와.” 망치를 들고 와서 자기가 지어놓은 짓다가 만 교회를 두들겨 부수면서 목사를 나오라고 그러는데 무서웠습니다. 술까지 먹고, 공사비 모자라면 이런 낭패를 당합니다.
여러분, 세상과 더불어서 싸우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그럴 때 뒷돈 딸리는 것 느끼지 않습니까? 켕기는 것 느껴지지 않습니까? 한번 잘 싸워보려고 결심을 했는데 딸리는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결국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신앙생활 해나감에 있어서 우리 앞에 펼쳐진 어려움보다 우리의 신앙에서 나오는 모든 승리의 자원들이 더욱더 풍부하고 풍성해지도록 뒷돈을 계속 대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떨쳐버리지 못하니까 그것을 떨쳐버리면 시험거리가 안 될 것들이 정말 시험거리가 되면서 우리의 영혼을 옭아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 길에 한없는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고신대 신대원의 집회에 가서 집회를 다 마치고 내려오는데 거기에 학교 신문사 기자가 왔습니다. “교수님. 인터뷰를 합시다.” “보다시피 내가 8시 반에 진주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지 되는데 지금 여기서 끝나고 바로 가도 비행기 시간이 간신히 되는데 언제 인터뷰를 하겠소. 그러니까 그럼 차를 타고 가면서 해도 되겠는가?” 해서 그러라고 해서 같이 가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가 워낙 책을 안 사는 사람인데 도서관에 사서를 보는 아가씨가 “전도사님, 이 책이 이번에 우리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는데 내가 다 읽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책은 꼭 보시라.”고 주기에 펼쳐서 60페이지를 봤는데 줄을 쳐야지 안 되겠어서 자기 같은 짠돌이가 책을 7천원을 주고 사서 줄을 치면서 감동을 받으며 읽는데 아들이 7살인데 한글을 아는데 아빠 책상에 이상한 책이 있는데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된다』는 책을 보고 하루는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가는데 옆에 부인이 있고 전도사님이 운전하고 뒤에 아들이 있는데 애가 “아빠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그래서 깜짝 놀라서 “그럼 타올라야지.” “아빠는 타올라?” 그런데 그 말이 콱! 찔리더랍니다. 아빠는 지금 선지자처럼 펄펄 타오른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되는데 “아빠 설교자는 타올라야지. 그럼 아빠 타올라.” 마치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엄마, 나 고양이 맞아. 그런데 왜 쥐새끼가 싫지 그러는 것처럼 “아빠 설교자 맞아?” “맞지.” “아빠 타올라?” 할 말이 없더랍니다. 자기가 안 타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래. 아빠는 계속 타오르려고 그러는데 왜 이 여자가 매일 바가지로 물을 붓는단다.” 자기 부인이 바가지를 긁는 것을 빗대서 하니까 아이가 아주 근심어린 표정이 되어서 “누가 물을 자꾸 붓지. 아빠 타오르게 내버려두지. 왜 물을 붓지.” 그래서 둘이서 배를 잡고 웃으면서 “사실은 그 물을 붓는 여자가 내 옆에 있는 네 엄마란다.” 그러니까 애가 엄마에게 “엄마, 아빠는 타오르게 내버려두고 나에게 물을 부어” 그러더랍니다.
정말 자기의 애착을 갖는 것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니까 모두 버리면 시험거리가 안 될 것이 그게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별의별 오물, 잡동사니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다 걸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원망하고 자기의 팔자를 원망해봐야 죽을 때까지 그것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누구든지 제자가 되어야지만 이 세상과 겨루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불신앙의 세력과 더불어 싸워서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애착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기대와 소망이 예수님의 그것과 한가지로 결탁되어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을 이기고 어려움을 이기고 신앙으로 승리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없이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결국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덥든지 차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든지 아니면 신앙을 포기하고 불신자와 같이 살든지 그런데 두 번째 선택을 불가능한 선택입니다. 그러기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두 가지를 제시하고 계시지만 결국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애착을 포기하고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서 그때에 비로소 우리가 일만으로 이만을 이기고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공사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능히 뒷돈을 감당할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그 유명한 소금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이 만약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가정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정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좋은 것입니다. 당시에 이 소금은 아주 매우 귀한 산물이었습니다. 이 귀한 소금이 매우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을 보면서 세상에! 어쩜 입자가 이렇게 예술적으로 생겼을까! 그러면서 소금을 사는 사람 없습니다. 돼지를 살 때 뭘 보고 삽니까? 인물을 보고 근수가 좀 덜 나가도 이놈은 어쩜 이목구비가 수려할까? 나는 이 돼지로 주십시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돼지는 달아봐서 킬로대로 값이 나갑니다. 소금은 짠맛으로 값이 나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은 무슨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시고 싶으신 것인가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정말 무가치한 인생들입니다. 예수가 아니면 들풀과 같이 살다가 사라질 그런 아무런 가치 없는 인생들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10세에서 20세, 30세 40세가 넘어서 흰머리가 희끗희끗 하게 50세가 넘어서 백발이 된 60-70세로 넘어가는 것이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기에게는 대단한 일이지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의미 없이 사라질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인생들이 되는 비결은 하나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맛을 간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세상에서 정말 의미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인생이 되고 이 세상에서 참 하나님이 귀하게 여겨주시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모두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각자 얼마나 깊이 느끼는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동일하지 않습니다. 짠맛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독특한 크리스천의 맛과 향기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자기가 살아있는 저력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더 충만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남이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고 남이 감격할 수 없을 때 감격합니다. 남이 노래할 수 없을 그때에 찬송하고 남이 한숨 쉴 그때에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소금이 만약에 참된 맛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소금을 다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내어버리는데 그것이 모래만 같으면 하다못해 미장일 할 때 집어넣고 발라서 씁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니까 모래만도 못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래가 때로는 건축자제가 비쌀 때는 꽤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모래를 펴다가 부대에 퍼서 부엌에 차곡차곡 쌓아서 문을 닫아 놓는 사람을 봤습니까? 없습니다. 한 트럭 두 트럭을 실고와도 운동장에 부어놓고 봉당에도 부어놓습니다. 소금은 단지에 담아서 먼지 들어 갈까봐 뚜껑을 덮고 해서 깊이 넣어둡니다. 그런데 그 맛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흙만도 못한 처지가 되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도에 쓰심에 합당할 때만 그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쓰시는 인생은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대신대학에 전임교수로 갔습니다. 아주 행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가서 이렇게 않아 있는데 어느 날 누가 똑똑 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보니까 신학교를 같이 졸업한 동창입니다. 반갑다고, 그 친구는 이미 목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어와서 앉아서 방을 들러보기에 내가 “목사님 요즘 뭘 하십니까?” “어느 교회를 섬기다가 지금은 그만두고 지금은 봉고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진실하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게 마음에 깊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더니 어느 교회에 들어가기는 가야지 되는데 마지막에 자기도 모르는 말이 나왔습니다. “전도사님, 출세했네.”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인생은 너무 비참합니다. 주님이 쓰실 때 우리의 인생이 윤기가 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때 우리의 인생이 빛나고 고달파도 우리의 인생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와 하나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에 대한 간증이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때, 더군다나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이 입증될 때 그때 우리는 마음속에 감사와 찬송이 한없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안 쓰시면 세상은 우리의 인생을 써주는 줄 아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에 나간 사람들은 잘 나갑니까? 잘 뜹니까? 어림없습니다.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세상에 있는 세상 것들도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소유라고 생각하면 자기들도 우리들을 안 쓰려고 합니다.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해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몰랐습니다. 어느 날 문서 창고에 들어가 보니까 서류가 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이상하게 어떤 사람은 발령이 요직으로 안 나고 계속 한직으로 돕니다. 알고 보니까 가족 중에 북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핵심부로 어림없습니다. 비밀취급인 것 같지만 어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비밀도 취급하지 못하는 사람이 핵심부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한직으로 계속 도는 것입니다. 꼭 승진을 심사하거나 아니면 전근을 심사할 때 거기에 걸리는 것입니다. 본인은 전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6촌인가 8촌이 넘어갔는데 그들의 얼굴도 모르는데 자기도 모르는데 그것이 정보부를 통해 다 들어가서 써주지를 않습니다. 사용해주지를 않습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비참하고 소외되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유능했던 사람도 직장에 들어가서 계속 써주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은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사용해주실 때 우리는 성장이 있고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 신앙의 성장이 있는 것 같습니까? 없습니다. 무슨 신앙의 성장이 있습니까? 우리가 변화고 성장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사명과 우리의 성장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해나가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서 뭔가 하나님의 일에 우리를 요긴히 써주실 때 그때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거기서 변화를 받으면서 거기서 더 큰 하나님을 알아가고 이전에 몰랐던 믿음의 비밀들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그 교회에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것이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길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귀하게 사용하실 때 그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소금의 사명은 짠 상태로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간을 맞추기 위해서 집어넣을 때 온전히 다 풀어져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죽어도 자기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자기는 사라져도 자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자기가 살아있었던 효과를 남겨서 부패하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식물들을 썩어짐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바로 그런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소금으로서 독특한 맛,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독특한 맛을 우리가 유지하면서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소금이 그 맛을 잃지 않고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제일 커다란 숙제가 아니겠습니까? 결국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라고 불러주신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의미인가 하면 믿고 하나님 안에 바르게 살아가면 그는 필연적으로 소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칩니다. 오늘 주일날에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참 거룩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심각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참 나는 비록 죄가 많지만 그러나 정말 빛답게 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죄를 미워하고 거룩한 삶을 찾아가면서 살고 싶어 하는 갈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욕심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라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일반적인 삶의 풍조 속에서 그는 이미 독특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세계가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이 문제가 더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그 말씀은 바로 그 앞에 팔복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심령이 가난하고, 의를 위해 죄를 위해 애통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르고 핍박을 받고, 이렇게 팔복의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절로 빛의 사람, 소금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변화를 받을 때 그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독특한 맛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의 맛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그래서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이 이제는 길거리에 내어버릴 지경에 있는 그 사람도 하나님이 변화시키시면 다시금 거룩한 삶을 살고 싶어 하고 소금의 맛을 간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우리들이 기억하면서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두 가지를 명심해야지 되는데 그것은 첫째는 주님이 우리를 소금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삶에 잘못된 애착들을 포기해야지 됩니다. 내 인생을 안일하게 살려고 하는 것, 이 세상에 다른 것들에 대한 애착, 이런 것들을 담대하게 버리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살려고 하는 이 신앙의 길을 가야지 되겠다는 결단을 해야지 됩니다.
여러분, 젊은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황혼에 오신 분도 여기 많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이제 더 이상 실험하면서 살아볼 인생이 없습니다. 그만큼 실험해보고 안 된다는 것들을 알았으면 이제는 우리가 생각을 돌리고 마음을 바꾸어서 이제는 주님을 붙들고 주님 중심으로 삶을 살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 순간순간 결단을 해야지 됩니다. 그런 계기 앞에 놓이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을 살려고 하려고 그렇게 원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우리에게 최고의 목표는 맛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려워도 인생을 하나님 앞에 의미 있게 살고 싶고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 원하는 사람은 그 맛을 지키며 살고 그 짠맛을 유지하면서 사는 이것을 가장 커다란 의무요, 책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지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 “믿음에서 떠난 자요, 너는 쭉정이라.” 그렇게 주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면 우리의 살아온 인생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일날 어디에 가서 한번 실컷 놀아봤습니까? 별로 우리 주제에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은밀히 우리들이 돈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팔면서 돈을 벌고 그렇게 신앙의 양심을 완전히 속이고 배반하면서 한번 뭉텅이 돈을 만져봤습니까? 그럴 배짱을 가진 위인들도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하고 그렇게 완전히 세상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서 살아온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믿음이라는 것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앙심이 없이 살아간다고 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가 어느 한순간에 아니야. 이 선은 넘을 수 없어.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온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의미 있고 칭찬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분명하게 신앙을 향해서 돌이켜 설 수 있는 그런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최고의 가치는 짠맛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그 자리에서 내가 너희를 사용하는 간증들을 보게 할 것이다. 여러분, 주님이 사람을 사용하시고 쓰시는 것만큼 정직한 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준비되기만 하면 하나님은 꼭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필연적으로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십니다.
내가 가끔 올라가는 청평의 기도원에 가면 아주 가끔 용모도 단정하신 팔순 된 노인분이 오셔서 꼭 밥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인분이 그런데 와서 밥이나 하고 더부살이나 할 그런 노인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연을 물었더니 아들딸이 부유하게 사는 부잣집 마나님이셨습니다. 75세에 불치의 병에 걸렸는데 다른 사람들 같으면 살만큼 살았으니까 포기하면서 편하게 살다 가실 텐데 그 할머니는 하나님, 한번만 고쳐주십시오. 그러면서 그 기도원에 와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모든 사람이 다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75세에 병이 났으니 이제 기계가 다 낡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기도를 했으면서 하나님도 참 이상하시다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 인생 말년에 고쳐서 뭐 하시려고 고치셨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뭘 하겠는가 하면서 자기에게 힘이 남았을 때 일주일이나 이주일 한번 자기돈 들여서 고기 생선을 사가지고 올라와서 그것을 요리해서 기도원에 있는 사람들 먹이고 감사헌금 하고 밭도 매주고 그리고 한 일주일 있다 내려가서 또 한달 정도 있다 올라와서 그렇게 봉사하면서 살아가십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는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년에도 인생이 참 빛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신 것은 이렇게라도 사용하시려고 고쳐주셨다. 거기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아들보고 태워달라고 해서 거기까지 올라와서 자기가 사온 음식으로 요리를 해서 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쓰시는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감사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들어서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나님이 이렇게 고쳐주셨으니 하는 일이야 하찮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래도 내 인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는 것에 증거를 보여주시니까 할렐루야 감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에 있어서 준비된 사람을 꼭 쓰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진정으로 빛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쓰실 때 그때 정말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일주일 동안에 세 군데나 돌아다녀서 목이 갔습니다. 고단해서 열차를 타고 오는데 온 몸이 쑤십니다. 자지도 못하고 또 순복음 기도원에 갑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열린교회를 섬기게 하신 것만도 감사한데 하나님께서 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서 또 가게 하시고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주에 내려갔는데 한 6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데 그냥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 같은 사람을, 죽은 개만도 못한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날 가서 3시간 동안 15분 쉬고 그냥 쉬지 않고 토해냈는데 지붕이 내려앉는 것처럼 신학생들이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어거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울부짖는데 누가 그 기도를 그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매달리며 기도합니다. 고신 측 사람들 점잖은 사람들인데 통성기도를 웬만하면 안 하는데 기도를 막 하는데 내가 한없이 울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종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나는 하나님 마른 뼈와 같고 죽은 개만도 못한 인생을 들어서 하나님 이 귀한 목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 성령의 흔들어놓는 도구로 사용하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피로가 무슨 피로고 사례금을 얼마나 주는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지쳐서 파 짠지가 되어서 내려갔는데 말씀을 듣고 사니까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 온 몸에 전기가 온 것처럼 힘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그 날은 특별히 열린 교회 누군가가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지는 찾아낼 수 없지만 확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강력하게 나옵니다. 영혼들이 막 뒤집어집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온 몸이 부서지도록 하나님 사용해주시옵소서. 어른들 하는 말씀대로 썩으면 죽을 몸 아끼면 뭐해. 주님을 위해 마음껏 사용되다가 영광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할 일이 없어서 내가 왔다 갔다 하고 열린 교회 식구들도 아니 요즘 호랑이는 뭐 먹고 사나. 왜 안 잡아가나. 다른 교회로 안 가나. 그러면 얼마나 그렇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그 맛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질이 바뀌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그를 기필코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쓰시지 않으시면 주님이 손해이십니다. 하나님의 손해입니다. 하나님의 인사는 세상의 인사와 다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가끔 뛰어난 인재를 바로 보지 못해서 썩히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지하실 열린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면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도 빛나는 인생이 아닐 수 있지만 그를 준비하셔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놀랍게 사용하기를 원하고 그리고 소금과 같이 된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우리 할머니 살림하시는 것 봐도 소금을 버리는 것을 못 봤습니다. 밀가루는 벌레가 나니까 버리고, 고춧가루도 벌레가 나니까 아끼던 것이라도 버립니다. 심지어는 쌀 한 톨만 버려도 벌 받는다고 야단하시던 분이 쌀이 벌레 먹으니까 그것도 휴지통에 버립니다. 소금은 한 번도 버리신 것을 못 봤습니다. 왜? 언제든지 짠맛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소금이 지저분해지거나 다른 것이 많이 들어가면 모아두었다가 김장철에 사용할지언정 반드시 사용합니다. 믿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먼 곳까지 주일날 올라와서 은혜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정말 우리가 그렇게 짠맛으로 변화되어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님이 원하시는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독특한 맛을 가질 수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매일 변화되어도 더욱 변화되기를 원하며 보다 순도 높은 소금이 되기 위하여 우리를 정제하시고, 더 다듬으시고, 더 불로 녹이고, 더 물로 끓여서 우리를 그렇게 순도 높은 소금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나온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를 쓸데없어서 밖에 내어버리고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거리에 나가서 밟히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모두 소금처럼 만들어서 소량의 소금, 가장 적은 무리의 우리를 가지고 적다고 여기지 아나하시고 이 많은 부패해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파송해 쓰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완전히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은혜로 변화되고 또 변화되어서 순도 높은 신앙을 소유하여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