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①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이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을 기다리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말씀을 좀 더 하고 그리고 5절에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이야기는 왜 예루살렘이어야만 되느냐 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온 그 중심적인 그 장소, 그 예루살렘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 죽으시고 또 다시 살아나시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던 일들을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시는 장소로소 예루살렘이 적합했다는 언약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두 번째는 아버지의 약속을 따라서 오신 것이다. 그러니 성령은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성령을 구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말씀을 드렸고 또 하나는 내게 들은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셨을 때 끊임없이 내가 가면 너희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리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증거하셨고 그리고 그 약속은 신실한 것이었다 라는 것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기다리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좀더 말씀을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바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에 대해서는 믿지는 않았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지만은 많은 사람들 말고 예수님이 다시 또 한번 이 땅의 살아 계셨을 때에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고치시고 말씀을 전하시고 하던 사역을 다시 한번 계속 하셨더라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증거해야 할 일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증거해야 할 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단순히 기이한 일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라고 하는 이 소식이 사람들에게 증거되고 전파될 때에 그것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그리고 40일 동안을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이제는 승천하실 때가 되었는데 주님이 부활하셨다고는 말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끔 내어주고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핍박의 위협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두려움에 싸인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있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자들이 다 흩어졌잖아요? 그러고 다시 모였지만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이 당신이 살아나셨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거 어떻하란 말이에요. 살아나셨는데 살아나신 것은 사실인데 살아나셨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요. 그러니까 요한복음 21장에 보면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기잡으로 가는 장면이 나타나죠. 그것을 가지고 비난을 많이 하는데 비난할게 없어요. 할일이 없어요. 주님이 부활하셨는데도 할일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들이 여기에서 왜 그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부활하자마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얘야, 내가 부활했다 여기 가서 빨리 가서 내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해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아니하고 이렇게 40일 동안이나 나타났다 사라지셨다 하시면서 40일을 지내시고 그리고 지금 마지막 승천할 때 쯤 되어서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지만 그 제자들과 사도들의 여건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지만 그 살아나신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보여주시고 아니면은 빌라도에게 나타나시고 헤롯에게도 나타나시고 예루살렘에서 여기 저기 나타나셔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흔들어 놓은 것도 아니시고 어떻게 보면 부활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시는 것처럼 이렇게 이리 나타났다 저리 나타났다 하시는데 제자들을 중심으로 나타나셨어요. 그러니까 사도들로서는 어떻게 보면 해야 할 일이 없고 어떻게 보면 또 할일이 많고 뭔가 신앙에 있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라’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남을 보았던 제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진실로 두 눈으로 똑똑이 예수의 살아남을 보았고 그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았고 그리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련해준 식탁에서 떡과 물고기를 떼면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그 아침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고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는 예수의 증인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신앙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변론이 아니라 증언이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여건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본 것처럼 생생하게 신앙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생생하게 증언해 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인격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장 생생하게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주님과의 교제가 긴밀하고 그 주님과의 사귐이 뛰어났고 주님을 많이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이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상의 생애 동안에 충분히 인격적으로 가까이 대했던,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중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 무릎 앞에 앉아서 그 분이 가르쳐주는 복음을 직접 들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씀을 배웠어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포도주를 따라주고 떡을 떼어주면서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쳐주셨어요. 누가 이렇게 생생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를 소유했던 사람들이 우리들 가운데 어디에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들은 것이 아니라 단지 믿은 것이 아니라 두 눈으로 똑똑이 보았습니다. 그의 손을 만져보았고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렇게 생생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나심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복음 전파의 증인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사도 요한을 하나 예로 들어봅시다. 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셨을 뿐만 아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기대어서 그 품속에 있었어요. 귀를 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의 박동 소리까지 들었어요. 그러나 그가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말함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그 마음속에 믿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없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경험과 성경의 지식을 자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겸비해져야 되요. 수많은 믿음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세상에 있는 영혼을 하나님께로 구원하고 우리의 믿음의 싸움을 승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지가 않다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 때문이었어요. 이제 무엇을 더 기다립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살아나신 것을 이제는 보았고 이제는 의심하는 자가 조금도 없고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겠노라고 다짐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결핍 됬다고. 그것이 없이는 안된다. 기다리라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성령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5절에 보니까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세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물, 하나는 성령,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이 땅에 나타나서 예수 오심의 앞길을 예비했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설교를 여러분 기억하시죠? 광야에서 그는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그 소리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소리와 같지 아니하였고 그 시대의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많은 사람들의 설교와 같지 않았어요. 그 설교는 번뜩이는 빛을 가지고 있었어요. 세례 요한이 죽은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고 이적을 행하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으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났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세례 요한의 상징은 권세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증거하는 설교가 얼마나 힘 있는지 죄인의 마음을 찔렀어요. 그리고 그 완악한 죄인들의 마음에 회개를 가져다주었어요. 전에는 슬퍼하지 않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자 자기가 비참한 죄인이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자기의 머리위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자기가 나무라면 하나님의 심판은 날선 도끼가 되어서 자기의 뿌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는 순간에 눈을 버쩍 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하신 것이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러자 그 사람들은 바리새인이요 서기관이라고 하는 유대인이라고 하는 그 모든 지위와 자랑을 다 팽개치고 그리고 여기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했어요.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 사변으로부터 전부 다 광야로 나아와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세례 요한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세례 요한이 이처럼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세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랬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뉘우치며 회개하며 요단 강변으로 나아와서 세례를 받고 구원의 길에 이르기에 소망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어디에 교회가 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주시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부흥이 아니면 사람이 모은 부흥은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사람들을 보내시는 거에요. 세례 요한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에 그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말하자면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하고자 원하셨던 그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목소리였어요. 그리고 그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회개를 불러일으켰어요. 그리고 그들은 회개하면서 우리가 어찌해야 할꼬? 세례 요한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강포를 행하던 강포를 그치고 우리가 어찌해야 될꼬?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외식하던 서기관들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걷고 그 세금으로 배불리 살던 착취자였던 세리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변화하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서 회개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증거 되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고 그 사람들이 뉘우치며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크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그들에게 일어나게 되었는데 얼마나 영광스러운 역사가 일어났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오늘도 마찬가지잖아요. 회개를 똑 부러지게 하고 엄청난 회개의 역사가 모일 때마다 일어나고 부흥회 때마다 일어난다면 그러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놀랍게 변화되게 될 것이에요. 회개를 그렇게 확실하게 하나님 앞에 하게 될 때에 그 때에 진리로 말미암는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으로 말미암는 올바른 회개를 하나님 앞에 하게 될 때에 아까 말씀드렸듯이 정결함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을 뵈옵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그러나 오늘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될 것은 세례요한이 비록 그렇게 말씀을 잘 증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끔 하였다고 할지라도 아직 성령이 강림하지지 않은 구약의 시대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이 사역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회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세례 요한은 일찍이 자기의 한계를 알았어요. 그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예수 그가 오시면 물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 있는 앞길을 내어드리는 이 역할을 위해서 세례 요한은 말씀을 증거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바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그랬습니다. 요한이 베풀어주는 세례는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주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도록 만들어 준 회개의 세례였지마는 나는 너희에게 약속한 대로 성령을 세례로 주리라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요한이 엄청난 회개와 사죄의 은혜를 받게끔 하였지마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복음 전파의 놀라운 역사를 위해서는 단지 죄 사함을 경험하고 회개를 하는 것으로만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 이외에 성령을 세례를 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새로운 장을 약속하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보십시오.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고 그리하여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그렇게 회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성령을 임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기까지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은 오늘 우리는 굉장히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에요. 왜 그래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회개했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면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이 반드시 성령은 주신 것이죠. 왜? 오늘 이 시대는 이미 오순절이 지나고 성령이 강림해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다스리고 우리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죠. 그 시대의 개막이 몇 날 못가서 있으리라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예언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약속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하고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함을 받는데서 나아가서 그 용서함을 받는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성령은 부으셔서 그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그렇게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가 받기 위해서 죄 사함을 받고 그리고 정결한 마음이 되고 그 위에 나아가서 그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 것이 회개였어요. 깊이 회개하는 사람이 물로 세례를 받게 되었어요. 세례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죠? 지금은 약식의 세례를 줍니다만 처음에 세례는 물에 깊이 잠그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교회사에 보면은 부인이 세례를 받을 때는 남편의 동의를 받아갔고 왔어야 되었어요. 목회자가 안고 물속에 같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완전히 물속으로 잠겨서 그래서 잠김으로 말미암아 죽는 거에요. 그리고 수면으로 다시 떠오르면서 살아나는 거죠. 그러면서 또 그 물로 씻기움을 받았어요. 정결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성령의 세례가 이와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세례로 받으리라 약속하셨는데 이것은 성령이 이 예루살렘에 임하실 때에 얼마나 엄청난 능력으로 충만하게 임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조금씩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니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 성령의 흡족한 부으심에 완전히 잠기게 되어서 푹 가라앉아서 성령과 함께 옛날에 모든 성품과 연약함들과 죄악들이 죽고 그리고 다시 물위에 떠오르는 것처럼 그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런 놀라운 역사가 바로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오순절의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주어질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이 사도들이 받게 되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성령을 세례로 받으리라 말씀하신 것,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기다리라고 한 말씀의 요지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죠, 그렇게 성령이 오셔서 너희를 완전히 물에 잠그는 것처럼 잠그고 물속에서 너를 떠올려 살아나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놀랍게 변화시킬 그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를 통하여 나를 증거함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할 그러한 도구들로 너희들이 비로소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으로 주게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아주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몇 날이 못 된다. 몇일 안에 반드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령이 그렇게 부어질 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서 제자들이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법이에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자기가 한번깊이 체험하고 나면 아, 이거다 하는데 체험하지 않으면 자기가 알 수 없는 것이에요. 제자들이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약속을 분명하게 마지막 승천하는 이 마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가운데 120명 정도가 여기에 있었고 그리고 마지막에 2장에서 2장까지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500여형제가 한꺼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것을 봤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할 때가 120명 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할 때에 열흘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세례로 받으리라 할 때에 이 약속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리고 얼마나 이 약속이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데 필연적이고 중요한가 하는 것들을 깊이 인식했다라고 한다면은 제자들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으리라고 한 이 약속이 자기들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기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 때에도 주님이 이렇게 심각하게 말씀하셨는데도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다워지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승리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얼마나 필연적이고 절대적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느끼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되는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전심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함께 하여 주시는 그 놀라운 신앙의 기쁨과 그 충만함이 주는 그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세례로 받으리라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에 늘 이런 식으로 말씀을 잘하셨어요. ‘너희 중에, 이 중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이 모든 일들이 곧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루어지리라’ 금방 이루어질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몇 날이 못되어 곧 열흘이 되지 못하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하나님 앞에 전혀 기도에 힘썼던 무리들 위에 성령이 내리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증거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와 그 성령의 오신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야 성령을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와 방불하고 그렇게 고통하고 연약한 가운데서 익숙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아침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을 뵈올 것이요, 하나님을 뵙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고 얼마나 이 세상에서 말하자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인줄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정결한 사람이 되기 위한 사모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그 성령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때 얼마나 크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죄인들이 변화되고 그리고 세상이 새로워지는 역사를 이렇게 연약한 인생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를 깊이 깨닫고 경험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기까지 실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성령주시기를 전심으로 기도하고 간구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떠나가 버린 교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교회의 모습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에요. 예배 시간에는 차가운 냉기가 감돕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경건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예배는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무디 선교사가 말하기를 얼음 같은 시원한 것을 원하십니까? “장로교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을 가보십시오. 시원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사람들은 나무토막같이 꼿꼿이 앉아서 입을 벌리며 찬송 몇 장 부르다가 그리고 듬성듬성 들려오는 설교 소리를 듣고 정해진 시간이 딱 되자 사람들은 서로 악수를 하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 속에 생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성령이 임해서 충만하게 임하지 아니하시니까 예배시간에 조는 거에요. 성령이 오셔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느끼게 해 주시고 그리고 그 말씀을 내 마음속에 체험하고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진리의 빛을 발견하고 하는 역사가 일어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마음속에서 떠나니까 그러니까 예배에 아무런 감동이 있을 수 없어요. 험악한 세상을 이기고 그 죄악 된 세상을 이기면서 내가 살아가야겠다고 하는 결심으로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결단으로 예배가 끝마치고 일어날 때 있어야 되는 거에요. 와서 이렇게 저렇게 살았던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먹고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도 주일을 떼었다고 하며 돌아가니까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리고 누가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겠느냐, 그러므로 늘 말씀을 드립니다만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준비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고 그리고 일주일 동안에 이 예배의 정신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아야 해요.
성령이 임하시지 않는 교회에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우선 죄인들이 회개하고 거듭나는 역사가 그칩니다. 수 없이 많은 돈을 들이고 예배당을 치장하고 수없이 많은 순서를 가지고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교회의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람이 진심으로 진리의 말씀 앞에 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찔리고 참회하고 그래서 완악한 죄인들이 그 말씀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결심하고 성령의 거듭남을 인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것이 구원이에요. 겨우 그렇게 해 가지고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거죠. 이런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런 일들이 그친다고 하는 말씀이에요. 찬양을 불러도 아무런 힘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적막이 감돕니다. 성령의 역사하시지 않는 교회는 교회 대문에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쓰여 있지만은 일주일이 지나가도 교회를 찾지 않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각기 날카로운 이기심들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메마른 교회에 성령이 단비를 내리시고 그리고 죄인들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녹는 역사가 일어날 때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까? 사람들은 예배를 사모하며 그리고 그 사람들은 예배를 그리워하고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은혜받기를 사모하면서 마치 주일을 기다렸던 것처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미국에서 18c에 대 부흥이 일어났을 때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노스햄스턴에서 각성을 만났을 때 그때일입니다.
(예화) 여섯 살 밖에 안 되는 아이가 놀랍게도 변화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말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 물었어요. 엄마, 엄마, 나 구원받았어? 그럼 너 같은 애가 천당을 못 가면 누가 천당을 가니? 그러더니 그 다음날 다시 물었어요. 엄마, 엄마, 나는 아무래도 지옥 갈 것 같애, 그러니까 엄마가 설명을 해 주었어요. 엄마 아빠가 예수를 잘 믿는데도 네가 왜 지옥을 가냐, 너 같은 사람이 구원을 못 받으면 한 사람도 구원을 얻을 사람이 없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이 아이 속에 기쁨이 사라지고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요즘으로 말하자면 딱지치고 공놀이하고 구슬치기 하는 일들이 전부 다 사라져 버렸어요. 그리고는 이 아이가 하루에 다섯 번씩 없어지는 거에요. 어디로 가냐 하면 헛간에서 기도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하나님, 나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지옥으로 갈 것 같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시옵소서. 그러면서 기도하는 거에요. 매일 같은 기도를... 어머니가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얘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고함치는 통성소리가 들여왔어요. 그러면서 태어난 이래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격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어요. 이 어머니가 놀래서 뛰어가 보았는데 애는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기도가 끝난 다음에 그 어머니 가슴에 묻고 이 아이가 하는 말 어머니, 나는 하나님을 발견했어요. 그분이 내 기도를 들으셨어요. 하나님이 나를 구원했어요. 노라운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 후로부터 변화가 일어났는데 주일을 기다리는 거에요. 세상에 딱지치기, 구슬치기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러면서 월요일밖에 안 됬는데 엄마, 주일날 되려면 몇 밤 남았어? 여섯 밤 남았다. 또 물어요. 다섯 밤, 몇일 남았어? 네 밤, 아직도 네 밤이나 남았어? 왜 그러니? 주일날 교회가면은 맛있는 것을 주기라도 한다는 약속이 있니? 아니? 그럼 왜 그렇게 주일을 기다리니? 에드워즈 목사님 설교가 듣고 싶어서... 그리고 그 여섯 살짜리가 앉아서 그 예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는 거에요.
누구든지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예배의 태도가 변할 수 없어요. 아침에 말씀드렸듯이 엄하게 교육을 시키고 그리고 교회에서 심하게 교육을 시키면은 사람들로 와서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에 참여하도록 만들 수는 있어요. 껌을 씹지 못하게 한다던가, 너무 짧은 치마를 안 입는다든가, 너무 야한 화장은 안하고 온다든가.... 이건 교육으로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그 예배의 감격은 교육으로 안 되는 거에요. 그게 어떻게 교육으로 되겠어요? 아무리 까만 치마에다 하얀 저고리를 입고 쪽을 찌고 경건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치더라도 마음속에 오가는 생각이 세속적이고 세상에 있는 생각이면 그 예배는 끝난 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성령이 오시면 그 문제는 해결이 된다니깐요? 성령이 오시면 문제가 해결이 되요. 성령이 오시면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러니까 정결케 되어지고 그리고 하나님을 뵈옵고 그 다음에 무슨 복음 전파에 모든 역사, 이런 모든 일들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늘 말씀드리죠, 교회는 늘 이렇게 복잡하게 자꾸 행사를 벌리고 지지고 볶는 데가 아니에요. 그것은 세상의 친목 단체가 하는 거에요. 교회는 고요하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가 얼마나 비참하게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인생인지를 깨닫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가 깨닫고 낮아지는 마음이 되어서 결핍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들을 교회를 통해 들어내고 우리의 살아있음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는 세상, 요동하지 않는 죄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이 하나님께로 부어져서 이 험악한 세상에 도전하고 죄인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그리고 뉘우치게 만드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 그래서 주님이 능력을 주시면 이 세상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인생을 복음으로 바꿔놓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에요. 끊임없이 세상으로 나아가서 살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되어지고 새롭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영적인 전진 기지로 교회가 있는 것이에요.
교회는 영원히 세속의 단체와 같이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되요. 그러니까 뭘 자꾸 할까를 생각하지 말아요. 누가 그래요. 교회에 좀 나오세요. 교회에 제가 필요합니까? 아니?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 교회를 필요로 하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너무 많은 착각에 사로잡혀있어요. 원하는 것 없어요. 와서 변화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예배뿐만이 아니라 모든 삶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여러분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은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그것은 서로 속이는 그냥 참고 그냥 봐주면서 살아가는 것이지.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을 하겠느냐고요.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은사를 얘기하다가 더 큰 은사를 너희에게 보이는 것은 사랑이에요.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그리스도의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불현듯 잠자는 교회는 변화됩니다. 죽은 자들이 중얼대는 것 같은 기도 시간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으로 가득 찬 그런 기도의 교회가 되어집니다. 언제나 기도하기 위해서 나아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회의 문은 닫혔지만 언제나 그 안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을 쏟아 부으며 기도하고 간구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성도들이 되어지는 거에요.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의 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사람들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일에 위해 자기의 귀한 것을 아낌없이 버리는 것을 조금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이는 일은 부담이 아니라 즐겁고 기쁜 일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헌신한 그 일은 언제나 신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없으면 교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이런 일뿐입니다. 교회의 장식을 예쁘게 만들고 그리고 조직을 짜고 그리고 사람들을 이런 저런 행사로 동원하고... 이런 일들은 성령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 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참으로 회개케 하는 역사를 불러일으키는 구원의 놀라운 역사는 오직 성령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만 보지 말고 여러분 가정을 한 번 보십시오. 가족들이 그렇게 쉽게 예수를 믿어줘요. 애원을 하고 매달리는데도 안 믿어주잖아요. 우리들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에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한마디의 말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지혜로 말하는 수천마디의 말보다 죄인의 마음을 더 흔들어 놓아요.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참회케 하는 놀라운 역사를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그 세례로 충분치 않음을 보여주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당신이 직접 베풀어주실 하늘로부터 내리는 그 놀라운 성령을 세례로 받아서 그래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변화가 되어지고 그리하여 교회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소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