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섬에까지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사 42:10).
이사야서에는 놀랍게도 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에서 그리고 있는 섬의 이미지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 소외된 대표적인 지역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말로 끝을 깨츠라고 하는데 그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평평한 쟁반 같은 것이 지구이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 놓은것처럼 하늘이 있고 거기에 별들이 매달려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끝이라고 하는 것은 바다가 있는데 그것이 계속 흘러가다가 끝에서는 물이 폭포수처럼 아래로 떨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물들이 계속 흘러 가는데 그 많은 물들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은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끝 땅끝 그렇게 이야기 할때에는 그런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생각하면 됩니다. 맨 끝에서 벼랑같이 땅 끝에 떨어지면 한 없는 무저갱 같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마지막 끝자락이 바로 그 끝입니다. 그런데 그 바다 끝에 땅끝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오는 세 대상이 있는데 하나가 항해하는 사람입니다. 항해하는 사람은 바다 한 가운데를 배를 저어 지나가니까 육지에서 일어나는 기쁜 소식을 전파 받을일이 없는 가장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근대 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통신 시설이 발달이 되어서 적도 위에서도 핸드폰을 하면 다 터지는 위성폰 시대가 되었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지만 옛날에는 연락이 두절되는 곳이 바로 바다를 항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많은 만물들 바다솏에서 살고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수 많은 생물들 거기에까지도 기쁜 소식이 전파되고 그리고 거기에 섬 이곳은 완전히 외딴곳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24장에도 보면 여호와의 위엄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동방에서부터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마지막 끝자락이 섬이라고 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 10장에 보면 어떤 말씀이 나오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도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 오는데 그때 돌아 오는 백성들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될 것인데 그렇게 완전히 소외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섬, 바다 끝에 있는 섬에서까지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돌아 오는 영광스러운 날이 있을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세상에 이루어지는 그때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사야서는 여러곳에서 또한 노래 합니다. 그래서 49장에서는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우리라 여호와께서 나를 태에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온 힘을 다해서 세상 끝까지 전달될 때 그 마지막 전달되는 지점들이 섬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들까지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며 경배하는 그 때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속에서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상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우리가 이렇게 먼 섬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 바쁜 직장생활, 가정생활속에서 일주일씩 일주일은 아니지만 4박5일씩 시간을 내어서 배를 타고 그것도 2시간, 3시간씩 심지어는 3시간 반씩 그렇게 배를 타고 들어가서 그래서 거기 위도에 170가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더니 50명의 사람들이 복음잔치에 초대 되어서 나왔습니다. 모두 100% 노인들입니다. 그리고 그중에 12명이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작년에도 갔었는데 9명이 등록을 하고 4명이 계속 출석을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12명이 등록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몇십명이 가서 헌신하는 것에 비하면 열매는 매우 적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이 매우 가치있는 일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기 때문에 섬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복음에 많이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교회에 나갈 수도 있고 이 교회 저 교회에서 꽂아 주는 전도지도 있고 텔레비전을 틀면 설교 방송도 꽤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식으로 우리들이 전파를 하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먼 섬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도는 우리나라에 있는 섬들중에 그래도 큰 섬입니다. 심지어 작은 섬은 15가구 20가구 미만이 사는 섬들도 있습니다. 그곳에 누군가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없을 경우에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복음에 대하여 들을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속에서 누군가가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으로 사람들을 일깨운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에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면 언젠가 은퇴를 하고 나면 물위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한 대 구해서, 우리 나라에도 그런 항공 선교회가 있습니다.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아직까지 우리나에서 그런 비행기 한 대를 돌리는데 유지바가 외국에 비해서 외국은 자가용 수준으로 굴리는데 비싸서 잘 못하는데... 그런데 그런 것이 있다고 해서 모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며 그 비행기가 한 없이 날라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라 갈 수 있는 지점까지만 가는 것이지 더 먼곳에 있는 섬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가서 누군가가 복음을 전하고 오늘도 뉴스를 보면서 우리 모두 기도해서 안전하게 복음을 잘 전하고 왔는데 마음이 짜릿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가서 신학생도 좋고 신학생이 아니면 성도들도 좋고 일년만 가서 그 동네에 살아 볼 요량을 하고 가서 휴양할겸 가서 일년동안 가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곤궁한 처지가 아니라면 가서 일년동안 선교사로 파송이 되어서 위도 지역에 가서 목사님을 도와 열심히 주보도 만들어 주고 같이 굴도 따주고 하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일년만 완전히 전도자의 삶을 살다가 온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저 안에서 일어날까? 우리 이렇게 볼 때 복음을 전하러 우리들이 아웃리치를 가면 부지깽이를 집어 던지고 빗자루를 집어 던지고 욕을 하고 그럽니다. 시골 사람만 강팍한 것이 아니라 시골 사람은 시골사람들대로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도 멀리 떠나고 외롭고 본체 안하고 생활이 곤궁하고 이런 경우에는 도시 사람이나 시골 사람이나 같이 타락한 인간인데 마음이 강팍해 집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면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알아 들을까 하는 회의 같은 것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연세도 많고 귀도 잘 안들리고 젊은 사람들처럼 따박따박 글자를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해도 잘 못 알아 듣는데 그 노인네에게 이야기 해서 알아 들을까? 또 그렇게 했을 때 반응은 제대로 보일까?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결국은 복음은 우리가 전하지만 그것을 마음에 실어 날라 그 사람을 하나님 만나 회심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까 그 할머니 말이 어눌해서 다 안 나왔지만 그랬습니다. 예수님 말씀만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나와... 그것은 하나님이 그 영혼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증거입니다. 그런 익은 곡식들이 어떻게 도시에만 있겠습니까? 얼마나 많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자면 먼 섬에가서 그렇게 복음을 전파하고 물질을 쓰고 그렇게 일주일 동안을 귀한 휴가 기간을 거기에 반납하고 그리고 왔을 때 열린교회의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런 계산은 모두 자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처음에 제가 25살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사실 그때는 세상에 있는 모든 꿈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냥 시골에 내려가서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하고 같이 살면서 농사를 지어보지 않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큰 교회도 말고 왠만한 동네에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하고 너무 고생스러워 시골 오겠다는 사람 없으면 말고... 그랬습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면 그 생활이 나에게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회지에만 계속 있게 하시고 그래서 저는 스스로 농어촌 목회자들 만나면 나는 실격된 농촌 목회자다... 하나님이 더 큰 사명을 주셔서 나를 귀하게 사용하셨지만 하나님이 내 분량을 알아 보시고 그리고 나를 여기에 남겨 주셨다. 그래서 마움속에는 항상 그런 빚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만 세워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정말 타는 듯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보내고 기도하고 오늘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타 오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저렇게 섬 사람들을 사랑하는 교인들이 10배쯤 된다면 더 많은 섬에 사람들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정말 저렇게 170가구씩 사는 뿐만 아니라 15가구, 20가구 이렇게 모여 살아서 정기 여객선 조차 거의 없는 곳에 1년이라도 한번 육지에 나오기 쉽지 않은 그런 도서 지역이 지금 많이 있습니다. 그런 지역에 우리들이 주님의 마음으로 가서 온힘을 다해 복음을 전한다면 그들 모두가 예수를 믿지 않겠지만 주님이 예비하신 영혼들이 산골짜기 바다 끝에 섬에 그렇게 굴이나 따고 하는 그런 섬 사람들에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까도 보면 나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화면에 보면 예수를 믿으시라고 자꾸 흔들면서 이야기를 하니까 깊은 고민에 잠겨 계신 시골 아줌마가 화면에 나오지 않습니까? 한번에 주님을 영접했는지는 모르지만 떨쳐 버릴 수 없는 강한 인상과 자극을 경험하면서 누군가가 복음을 전하니까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부지깽이를 집어 던지고 예수 못 전하게 하다가 결국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주님을 영접한 후에 임실에 있는 그 할머니 너희는 그렇게 좋은 그 예수님을 왜 이제야 와서 전해 주느냐 좀 진작 전해 주지...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어느 빛 아래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빛깔은 훨씬 달라 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일 같은 것들도 또 영혼구원이라는 빛에서 보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고 본질적인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번에 총신에 가서 강의를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너희들 이렇게 신학교 다녀서는 안된다. 그러지 말고 올 여름에 시간이 있지 건강이 있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열정과 젊음이 있을 때 그렇게 하라. 일년 이년씩 휴학을 하고 목적도 없이 방황을 하고 부패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하고 그런 섬에 가서 물건도 날라 주고 밭도 갈아 주고 열심히 살면서 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해 보십시오. 신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시골교회에 가서 섬에가서 그렇게 열심히 4일만 성경학교 해 주고 와도 떠나 올때는 아이들이 눈물로 선생님을 배웅 하는데 하물며 지금같이 외로운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와서 예수의 참다운 사랑으로 그 영혼 하나하나를 끌어 안고 복음을 전한다면 얼마나 많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날까? 도시에는 교회들이 넘쳐나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주님이 우리를 파송하기를 원하는 곳이 너무나 많은데 가야할 일꾼들은 너무나 적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당시에 아버지께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많이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사도들에게 분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우리들이 아웃리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가야 합니다. 우리 내년 아웃리치를 놓고도 수석 부목사 수련회에 가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한쪽에서는 의견이 너무 기간이 짧아서 좀더 많이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러면 많이 여러날을 가서 복음을 전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못합니다. 물론 그렇게 가서 4-5일 죽든지 살든지 가서 전하면 정말 더 큰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백명 갈 것을 열명 밖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작년에도 고민을 한 것입니다. 보니까 6월6일인가 무슨 날이 주일하고 딱 끼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일날 1부예배 드리고 가라 가서 주일부터 열심히 복음 전하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전하고 그리고 밤 11쯤 끝내고 그 다음에 올라 오자 그렇게 하더라도 온 교인들이 그렇게 헌신하도록 만들자 그래서 돌아 와서 자기가 본 그 농촌과 어촌 그리고 낙도 선교 가는 사람들은 낙도 선교 현장에서 본 것을 기억하면서 천명 이천명이 일년을 기도하면서 헌신하는 것이 낮지 100명만 가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지고 못하는 그런 아웃리치가 돼서 되겠느냐? 그렇게 저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먼곳에 있는 사람들은 주일날 출발해서 안 됩니다. 그러면 6시에 예배 드리고 가자. 0부 예배를 만들어서 6시나 7시에 예배를 드리고 6시 예배는 너무 빠르겠지만 7시에 예배 드리고 8시에 마쳐서 아니면 6시반 아니면 6시 예배 드리고 갈 사람들은 토요일에 와서 자고 주일날 새벽에 일어나서 예배 드리고 7시에 마치고 출발하면 남해 땅끝까지도 저녁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고속도로 좋아서 차도 막히기 전에... 그럼 가서 열심히 전하고 그렇게 오자 그래서 100명 갈 때 500명 가고 300명 갈 때 1000명이 갈수 있도록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우리가 이렇게 편안한 환경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면서 그 섬에 소외된 모든 영혼들도 사실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그들의 영혼을 품고 우리가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이 도시에 살면서도 그렇게 주님을 믿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이 눈물로 기도한다면 그것이 3-4일 아웃리치 하는 것 보다 얼마나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것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이르기를 일인 백보는 불여 백인 일보라 한 사람이 백 발자국을 혼자 달리는 것은 백 사람이 한 발자국만 뛰는 것만 못합니다. 그렇게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한 마음을 가지고 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 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헌신이 없이 그냥 시골교회에 돈이나 몇푼 보내 주는 것으로 선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태도 때문에 시골교회들이 자꾸 망가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느곳에 있든지 올바르게 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에 불타는 간절한 소원이 내 생애에 천개의 교회만이라도 이렇게 임실에 있는 교회 아웃리치에서 우리들이 다시 부흥을 보았던 교회들처럼 쓰러져 가고 문 닫을 것 같은 교회들이 다시 일어나서 그래서 교회가 다시 주님을 믿는 사람들도 가득차고 목회자가 사명자로 회복되어서 전도자로 열심히 살면서 자기 고을의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본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 하실까 이 일들에 우리 모두가 참여 할 때 이것은 역사를 이루는 소명입니다. 정말 소명입니다. 지금도 나는 앞으로 선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CBS텔레비젼에 선교를 꿈꾸며 인터뷰했던 군산해양경찰서와의 자매결연식때 그 마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환경을 허락하셔서 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분부하시기만 한다면 우리들이 선교선을 건조해서 거기에 사람들을 태우고 선교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너무 뒤떨어지면 비행기를 띄어서라도 아무도 가지 않는 그곳에 가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고 거기에 머무를 사람들을 선정하고 그래서 우리의 생애 전체중 일년 일년이 길면 육개월만이라도 그 동네에 같이 살면서 온전히 복음 전하는 것 하나로 그렇게 해서 주님께 빚진 이 사랑의 놀라운 빚을 갚으면서 갚을수는 없겠지만 그런 마음으로 내가 그런 선교사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그래서 노년에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실버콘도 어디가서 노후를 잘 지내고 그래도 똥 귀저기라도 갈아 줄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열심히 돈 벌겠다 그런 생각만 하지 말고 노년까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서 나의 생애중 단 일년만이라도 아무 소원도 없이 생활의 염려도 없이 오직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내가 이 시골사람들 그들을 겸손히 섬기면서 그들의 마음을 보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주는 그런 선교적인 삶을 살다가 눈을 감고 싶다 선교지에서 눈을 감고 싶다는 그런 소망을 가진 노년의 성도들이 열린교회에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백발을 하고 요양원에 들어가지 말고 파송을 받아서 가서 다 노인들이니까 친구들 아닙니까? 또 젊은 학생들도 방황하고 휴학하는 학생들 거기에 가서 목사님 일년동안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노인들도 가르치고 하면서 저는 몇 번 아웃리치 가 보면서 신대원 다닐 때 농촌봉사도 하면서 느낀것이 정말 시골사람들 외롭습니다. 서울 사람들하고 또 다른 종류의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끌어 안으면 무엇이든지 가르쳐 주는것 믿을 수 있는 준비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그 교회를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옛날에는 시골교회에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곳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목사들이 생산이 되어서 갈데가 없으니까 지금은 시골에 교인들이 10명만 모이면 이력서가 10통이 들어 온다고 합니다. 조목사를 보내 주려고 수소문을 하다가 기겁을 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그러면 이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목회자 없이 빈 교회가 도시 교회의 후원을 받으면서 목회를 하고 있으니까 하나만 일어나면 됩니다. 그 목회자들의 가슴속에 불이 떨어지기만 하면 됩니다. 누가 그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혼자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불러 모아 그래서 이번에도 50교회 였는데 저는 50교회 어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난한 교회들이 영적으로 가난한 그 교회 목회자들이 크게 도전을 받고 그래서 내가 몇 년전부터 나의 꿈을 보였던 것이 농촌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농촌과 어촌의 교회들 먼섬에 있는 교회들을 돌아 보면서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연결해 주고 지역에 있는 농촌 목회자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극을 주고 그 다음에 우리 교회에서 경험을 했던 방법들 가운데 좋은 전도의 방법이라든가 새신자를 길러 내는 방법들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적용시켜 주고 해서 어떻게든지 그 교회들을 유익하게 해 주는 그런 농촌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내 생명 농촌 목회를 위해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 정말 그렇게 부부가 그렇게 꺼져 가는 등불 같은 이 시골교회에 하나님이 다시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은혜의 불을 부치시도록 마치 그 모든 교회들을 자기가 목회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 가면서 한알의 밀알이 되어서 선교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아 갈 사람이 너무너무 그리워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여름이 오면 다른 사람들은 전교인의 절반이 가셨다니 놀랍습니다 하는데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추수할 곳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이 선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갈 것인가 주님이 우리에게 영혼의 회복을 주시는 이 모든 은혜는 그 속에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다 합니다. 그리고 결국 갖고 싶은 것은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손에 넣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마음의 사모함이 그것을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속에 그런 소망이 꽂혀 있다면 결국은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면서 자기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박탈이 싫어서 한알의 밀알이 되기 싫기 때문에 자기를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온 땅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고 항해 하는 자들까지도 하나님께로 돌아 오고 심지어는 만물과 그 섬들 그 섬에 사는 거민들까지도 하나님께 돌아 오지 아니 하면 전파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요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가 이땅에 오게 하실 때 우리를 사용하셔서 이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타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들이 이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주님의 큰 사랑으로 이 일들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 우리들에에 주신 소명입니다. 우리가 안 하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들이 사라져도 이렇게 시골교회를 끌어 안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시골의 가장 낡은 지붕을 가지고 있는 교회 조차도 나의 교회라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의 우리의 자손들에게 물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무조건 공부하라고 아이들에게 하지 말고 그렇게 한다고 안 하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도록 선교지에도 보내고 그런 시골에 보내고 이렇게 하면서 10대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꿈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교의 역사를 보면 선교의 큰 꿈을 품었던 사람들은 10대 초반 중반 혹은 후반에 그런 비젼을 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일생동안 지니면서 살아서 선교사의 획을 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이렇게 전율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도 놀라운 방법으로 이 병들어 가는 시골교회를 다시 살리 시려는 놀라운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가 15년 전만 해도 이렇게 시골교회 모든 목회자가 이렇게 꽉 차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5년 20년 전만 하면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20년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면 도시 교회도 가난해서 시골교회를 도와줄 그런 여유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있습니다. 아마 도시에 있는 교회들 중에 시골교회를 돕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달에 몇십만원씩이라도 도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마어마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헌금을 거의 안해도 그것가지고 생활하면서 교역자들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교육 이런 수 많은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목사들을 많이 만들어지게 하셔서 그래서 시골교회 단 10명만 모이는 곳 모두 채우셨습니다. 조목사 어디 목회지 구하느라 제가 샅샅이 알아 보았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요즘 어느 시대인데 빈 교회를 찿습니까? 10명만 모이면 이력서가 10통이 들어오는데 그 중에 한명은 박사입니다. 그렇게 된 것이 가만히 그때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율할 것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나아가서 그렇게해서 목회자들이 깨어 나고 성도들이 그 시골교회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전도해 주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목회자들을 도와서 섬길 교회 한곳에 네명씩만 일어나도 반드시 변화가 일어 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나님이 끼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일은 모든 일을 준비하고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 같아도 흐지부지 꺼지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부싯돌로 두드려 불꽃을 일으키는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이 횃불처럼 타 오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에는 여기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어디로 흘려 보내고 섬기게 하시려고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셨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민하게 순종하면서 아낌없이 자신을 흘려 보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0%의 교인밖에 가지 않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주일하고 6일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못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당직이나 서면... 당직이면 당직 바꾸면 되지... 그래서 모두 참여해서 그 교회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그 먼섬에 있는 티끌같이 작은 교회 교회에서 거의 섬길 기력도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맞지도 않는 곡조로 찬송을 부르는 것일지라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사신 그의 아름다운 몸이고 우리가 모두 그 몸의 일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을 부모들이 그렇게 할 때 자녀들에게 그런 교회관이 심겨져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중에서 여러분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시골에 가서 섬기고 봉사하는것에 대한 강한 비젼을 품은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귀농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 이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시골 목회자가 이야기 하는데 귀농 때문에 교회에 새로운 기운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인들만 살았는데 자기들 지역에 7가정이 귀농을 해서 새가족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6명의 젊음 부부가 나오니까 교인 30-40명 모였다가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도시에서 예수 믿다가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머리가 트였습니다. 목사님이 이야기를 하면 말귀를 알아 듣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 더 많이 일어 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젊은 사람들이 대학 졸업하고 귀농해서 귀촌이라고 하는데 귀촌해서 거기에서 자기 나름대로 사업구상을 가지고 사업을 잘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그런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선진국이 되면 농촌과 도시의 격차가 줄어 듭니다. 그렇게 하면서 도시에서 소득 수준이 높아 지니까 다양한 식품의 욕구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비등한 예가 임실의 치즈산업입니다. 그 치즈를 만드신 분이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이 그곳에 가서 그 치즈 기술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너무 너무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치즈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임실 치즈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유명한 치즈입니다. 그것으로 만든 피자는 비쌉니다. 그리고 양심적으로 돈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양심적으로 해서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업을 하는 경이적인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이 귀촌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해서 많은 사람들을 그 농촌속에서 전도하고 살아가게 하는 새로운 꿈들을 꿀 때 가슴이 벅차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 나겠구나? 많은 사람들은 십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시골은 이렇게 되다가 결국 피패해서 망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 치열한 경쟁속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런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도시 생활에 싫증이 난 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사는 것을 싫어 하는 사람들이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 가는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삶의 가치를 나름대로 도시 사람들과는 다르게 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선교의 새로운 꿈들을 펼칠 수 있는 대상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시골의 가난하고 연약한 교회들을 위해서 아웃리치를 할 때 결국 우리들이 열심히 아웃리치를 하지만 한사람 한사람 늙은 사람들이 죽어 가면 이 교회는 텅 비겠지 우리의 그런 기대는 빗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오늘날의 먼섬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이런 수고와 헌신은 앞으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일은 무엇으로도 중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 타는 듯한 마음으로 그래서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도 없고 또 은혜를 받았어도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정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불쌍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서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시골에 있는 교회들 먼 섬에 있는 교회들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동안에 정말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와 기적들을 일으키시는 그런 일들을 우리들에게 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여름에도 기도하면서 그런 꿈을 꿉니다. 언제쯤이면 우리들이 타는 가슴으로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교회를 가득 매워서 그래서 오늘도 우리 청년들에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전부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30%, 40%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너희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빈 곳은 언제 채우겠느냐? 교회가 가득차면 보기 좋아서 그런 것이냐? 우리는 지금 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도시 안에도 이런 마음속에 섬 속에 살아가는 사람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섬과 같은 고립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도 청년들에게 그랬습니다. 이렇게 예배 드리는 시간에 네가 아는 청년은 어두운 방에서 면도칼을 들고 동맥을 끊을까 말까 하는 사람이 있단다.
(찬송)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두워진 세상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 온다
제가 청소년 사역할 때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는데 그 집회에서 정확하게 두명의 자매가 똑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받고 나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을 때마다 둘이 서로 짠 것도 아닌데 똑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곳이 도시이든지 촌이든지 먼 섬이든지 그렇게 핍절한 영혼들을 보면서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넘쳐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살아 있게 하시는 동안 똥 오줌 받아내고 기동할 수 없는 그 날이 아니라 이렇게 움직이고 내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말하고 사람들의 발이라도 씻겨 줄 수 있는 이 날에 가슴에 깊이 이 조국의 교회를 끌어 안고 먼 섬에까지 저 깊은 산 골짜기에까지 그리고 저 먼 바닷가 마을에 까지 그리스도의 이 복음을 전하며 살기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서 티끌만큼이라도 이바지 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