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 영혼의 축복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9).
I. 본문의 배경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시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은혜로운 일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 찬송 속에서 이 시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찬송은 자신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시고 채워주시는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II. 영혼의 주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맨 처음 창조하실 때부터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몸인 육체는 흙으로 지어지고 영혼은 하늘나라로부터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육체와 만나게 하여 한 몸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육체를 위해서는 이 땅의 자원이 필요하고 영혼을 위해서는 하늘의 자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땅의 자원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즉,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만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육체를 입기 전에도 육체를 떠난 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멸절되지 않고 계속 영원히 있는 것이므로 이 땅에 있는 자원이 아니라 하늘의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그 하늘나라로부터 부어지는 영혼을 위한 자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육신을 위해서는 편안한 집과 따뜻한 음식, 편안한 잠자리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의복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하늘나라에 속한 진리,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때 영혼은 굶주린 상태가 되고 영혼은 목마른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림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며칠만 밥을 먹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힘을 다해서 영위해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면 영혼으로서 올바른 기능을 다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너무 주시고 싶어 하는 바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원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은혜를 더 많이 부어주시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은혜를 충만히 부어주실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 또 한때는 받았지만 잃어버린 채 영혼이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원인은 무엇일까?
A. 은혜를 가로막는 원인 1 : 세상사랑
세상을 향한 사랑이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서 마음을 모으고 그 은혜를 갈망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갈망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만약에 내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마음이 빼앗기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께 내 마음이 빼앗기게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삶의 질서를 재편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희생하고 자식을 중심으로 집도 정하고 세간을 마련하고, 새집에 들어가도 자식을 중심으로 가족들의 방을 결정합니다. 무엇이든지 사랑하면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의 질서가 재편되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만족을 누리는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만족은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만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들에 의해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이용당하시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온전한 사랑의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올바로 구하는 모든 것들을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이루리라” 그렇게 모든 것을 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므로 구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 앞에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관계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목마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이용하는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은혜의 만족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B. 은혜를 가로막는 원인 2 : 자기 아첨
자기 아첨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편을 드는 것입니다. 자기 아첨의 특징은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나 많은 변화들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편에서 합리화하려는 성격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셔서 우리를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변화받기 전에는 우리가 항상 우리 편이지만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변화되고 나면 우리가 우리에게서 매우 잘못 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나인데도 내가 싫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전체적으로 싫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와 함께 짝하려고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을 예전에는 몰랐는데 하나님 말씀의 빛이 비춰주니까 그것을 통해서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끊임없이 미끄러지지만 하나님께 돌아가고 다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자기 아첨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삶을 돌이키게 하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를 합리화할 수 있는 말씀만을 부분적으로 그 진리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참답게 회개를 한다든지 자신의 잘못된 것들을 깨닫고 돌이킨다든지 하는 일들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내버려두면 누가 그 음식을 부패시키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냥 여름철에 음식을 밖에 내놓으면 하루나 이틀 지나면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듯이 똑같이 인간의 마음도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어 주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죄악 되고 부패한 것들에 물들게 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잘못되고 부패한 것들을 우리 안에서 생겨나면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정확하게 발견하고 인정해야지만 변화가 일어납니다. 병원에 가면 우리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하는 것이 X-Ray를 찍거나 CT, MRI 이런 촬영들을 해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우리의 어느 부위가 아프고 잘못되었는지를 의사들이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야지만 정확한 처방,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첨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못합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회개할 때 보면 우리가 아주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누가 뭐라고 나를 책망해도 항상 내 편을 들었는데 회개 할 때가 되면 우리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아, 내가 정말 잘못되었구나.’ 우리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왜 그랬니? 그건 잘못된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은 옳지 않은데 왜 그랬니?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이 속에서 자기가 인정할 수 없는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아첨의 반대말입니다. 자기를 엄중하고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꾸짖는 것입니다. 꾸짖는데도 그것에 의해서 자기가 사로잡힌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생겨나게 됩니다. 자기 아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III. 은혜의 경험과 사랑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은 반드시 우리에게 은혜의 효과를 가져 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가져오는 효과가 생명과 사랑입니다. 특별히 이 은혜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져다줍니다. 은혜를 많이 받기 전과 후에는 확연하게 사랑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아첨 속에서 살아갈 때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신령하고 영원에 속하고 하나님께 속하는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육체를 위한 것들,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에 대한 사모함, 갈망, 그것을 얻지 못해서 안달하는 마음, 이런 것들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바꾸어 놓고 나면 그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먹고 입고 마시는 것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마시고 더 많이 누려서 얻는 즐거움이라고 해 봐야 그것은 육체의 쾌락일 뿐이지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그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A. 성도의 목마름은 은혜만으로 해결될 수 있음
우리의 영혼이 곤고할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러 가지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육신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것이 영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미쳐서 낙심이 되어 우리를 곤고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먹고 입고 마시는 것들에 대한 근심과 염려가 거의 없는 데도 우리 영혼의 결핍 때문에 깊이 고통하고 목마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만약에 오늘 아침에 나온 여러분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죽어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어도 사는데 별로 지장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없지만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물질만 있으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하다.’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깊은 곤고함이 마음과 영혼 속에 가득해서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예배도 전심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미각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 같고 고립된 것을 경험합니다. 이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제일 뚜렷한 표징이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토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련과 환난이 있고 많은 고난이 있어도 혹은 우리의 양심의 송사와 율법에 정죄를 받으며 끊임없이 고통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다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해도 주님이 그 기도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져도 그 기도할 수 있을 때에는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너를 버려도 나는 네 옆에 있다.’ 이것을 기도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은혜가 사라지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나 행복해 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잃어버린 삶입니다.
B. 은혜 입은 자의 고백, 사랑
은혜가 부어지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은혜의 효과입니다. 육신의 눈을 들어서 삶의 상황을 보니 환난과 어려움이 가득합니다. 물질적으로 곤고하고 시련과 환난이 그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 영혼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육신의 두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서 출렁거립니다. 뭔가 조금 잘 되면 그것 때문에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그것 때문에 무엇이 안 되면 주저앉아서 이 세상 때문에 실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은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입니다. 끊임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게 그 마음속에 가득히 있을 그때에는 육신의 눈과 함께 우리 마음의 눈도 함께 가지게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환난과 시련이 그치지 않고 질병과 괴로움 역경 이 세상에서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들이 눈에 보입니다. 영혼이 살아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영혼의 눈으로는 육신의 삶이 끊임없이 시련과 환난에 봉착해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날 붙들고 계신 것과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 이 가슴속에서 확신이 됩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붙들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꽉 차 있을 때는 영혼의 참된 만족이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만족을 느낄 때는 정말 만족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고장 나고 망가졌기 때문에 목마름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고 잘못되면 식욕이 없습니다. 양분을 공급해 주지 않아서 몸이 아주 수척해지고 핍절해지는데도 먹고 싶은 갈망이 안 생깁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음식을 원하게 됩니다. 조금만 힘들면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IV. 은혜를 향해 갈망하는 자세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갈망이 없기 때문에 신자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만족을 하는 것이지 진짜 하나님 앞에 영혼이 살아있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사는 것이겠습니까?
잠시 머물다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이 지푸라기와 같은 인간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좋은 음식, 좋은 의복, 편안한 집 이것이 과연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이 없어서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만족 시켜 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정말 만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A. 지속적으로 사모해야 함
우리들이 은혜를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받기를 목말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수시로 변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지속적인 성격, 영속적인 성격은 인간 속에서도 그림자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의 부모입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항상 지속됩니다. 속상할 때 있고 힘들 때 있어도 부모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식을 사랑합니다. 문제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시지만 이 세상에서 정말 행복하고 승리하고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전에 회심하기 전에 혹은 회심한 후에라도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 가운데서 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 선택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전부터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인데 여러분들은 곤고하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왜 그래요? 우리들이 진정으로 이 땅에서 행복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변화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신다는 우리도 의식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우리에게 경험될 때 우리의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 생활을 해 가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마음속에서 충만히 경험하며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그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신자에게 충만하게 경험되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중생하고 회심할 때 하나님이 우리 영혼 안에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심으십니다. 이것이 생명과 사랑의 법입니다. 예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이 원리로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죄와 사망의 법, 여기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힘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어떤 힘이 되어서 그것이 원리가 되어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생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골수에서 백혈구 등 피에 필요한 성분들이 계속해서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골수가 망가지고 암에 걸리게 되면 그 사람 죽는 것입니다. 이식 수술도 합니다. 거기에서 끊임없이 피에 필요한 성분들을 만들어 냅니다. 샘처럼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런 원리가 예전에 하나님 알고 회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죄와 사망이 끊임없이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과 모든 생각을 지배하면서 우리의 온 지체가 하나님의 목적을 거슬리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그 죄와 사망의 법을 부셔버리시고 우리에게 거기에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이 그 속에서 샘처럼 솟아나오게 합니다. 이런 샘은 결코 영원히 막힐 수 없지만 죄가 끊임없이 이 샘을 가로막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 방식은 내재적 사랑의 경험입니다. 이런 원리를 하나님이 심어놓으셨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내 안에 있는 죄들을 끊임없이 죽여 나가는 신실하고 성실한 성화의 삶을 살게 될 때 이런 생명과 은혜의 원리가 강화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 속에서 계속 솟아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경험됩니다. 신자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음을 쏟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를 목마르게 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죽이시고 우리 안에 이 생명과 성령의 법을 통해서 우리의 새 생명의 원리를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가득히 채워주십니다. 내재적 사랑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서 이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사랑의 경험을 가져다줍니다.
두 번째는 초월적 사랑의 경험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랑의 경험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심으신 생명과 성령의 법, 은혜의 원리에서 솟아나온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초월적인 방법으로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랑을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심어 놓으신 새 생명의 원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직접적으로 역사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물 붓듯이 부어주시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어떤 회개나 성찰도 없이 초월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법도 없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며 죄를 죽이려는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아주 특별한 방식에 의해서 경험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구별되면서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할 때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살피고 우리 안에 죄를 죽이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 새 생명의 법이 이 속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샘솟도록 우리가 그렇게 애쓰고 기도하는 것과 함께 더 놀라운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이 개인적인 부흥 같은 것들이 어느 한 순간에 물 붓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도 올 수 있다는 기대와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 은혜의 경험은 그것이 곧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B. 인내해야 함
우리가 그런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하고 갈망할 때 어떤 식으로 그 은혜를 구해야 합니까?
첫째는 간절해야 됩니다. 한 사람이 무엇을 향한 갈망이 간절한가, 간절하지 않은가 하는 것은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의 힘이 얼마나 센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계곡을 타고 흐른 물이 개울을 형성하고 그 개울들이 강이 되어 흘러갈 때 그가 어느 지점이든지 간에 막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겉보기에 아무리 열렬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게 하는 어떠한 장애가 생겼을 때에 장애 때문에 즉시 그런 간구하는 바가 그친다면 겉보기에는 엄청난 목마름이 있는 것 같고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것은 현상일 뿐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산 계곡에서 아주 야트막하게 흐르는 그런 산골의 계곡은 돌과 바위에 부딪히면서 흘려 내려오는 물소리는 요란하지만 물의 양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가마니에 모래 담아 몇 개만 얹어 놓으면 계곡의 물은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을 따라서 흐르는 물을 생각해 보세요. 재잘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물의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웬만한 것으로 그 강의 물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밀고 오는 힘이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해야 합니다. 간절하다는 말은 어떤 장애를 물리치고 뻗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정말 곤고하고 목말랐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해야지 마음에 뜻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그 마음이 흩어지고 다시 처음 하나님 앞에 은혜를 간절히 구하던 그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얼마나 그 갈망이 간절하지 않은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갈급하고 주님의 은혜에 목마를 때 버튼을 누르면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나 음료수가 쏟아져 나오듯이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아주 놀라운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잘 되 갈 때에는 교만하고 하나님을 덜 의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해도 쉽게 주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났는지 그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 가운데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아첨에 빠졌을 때에 우리 마음의 모든 것들은 전혀 다릅니다. 아주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도 우리 마음이 깊이 고쳐지지 않으면 잠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곧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바뀌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 마음은 우리가 사용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우리 마음을 바꾸시지만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알게 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아주 귀한 기름을 배급을 받았다고 칩시다. 그릇이 깨어져서 새는 그릇이라면 기름을 많이 받아도 계속 빠져나가겠지요? 만약에 그 그릇을 잘 수리해서 온전히 고장 나지 않은, 망가지지 않은 그릇으로 새로워졌다면 기름을 담을 때 기름이 담겨진 만큼 잘 보관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계속 고쳐나가십니다. 그 과정이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갈망하는데도 방해요인들이 생겨납니다. 마음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야지 하는 갈망이 생겨났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게으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처음 생겨났던, 다른 것 필요 없고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까 하던 간절한 관심사들이 그런 것들에 의해서 씻겨 내려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곤고한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정말 병들고 목말랐다 하는 생각을 하고 ‘이제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 정말 다른 것은 필요 없어 은혜가 필요해’ 할 때에 우리들이 막상 그 은혜를 구할 때 많은 방해 요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해와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정말 참된 갈망인가 하는 것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좋을 텐데’ 누군들 생각하지 않겠어요?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Ⅴ.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우리들이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오고 때가 되면 교회에서 자기의 주어진 임무를 따라서 봉사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모임에 참석하고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저절로 부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모하는 사람, 갈망하는 사람,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런 갈망 없이도 예배에 나올 수 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오래 신앙 생활한 사람이 못 받는 은혜를 이제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빗겨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이제 신앙생활 하려는 사람에게 부어집니다. 교회에서 유력한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빗겨가는 성령님의 은혜가 아무것도 아닌 죄 가운데서 헤매다가 이제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어집니다. 부모가 못 받은 은혜를 어린아이들이 그 은혜를 대신 받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렇게나 이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죠? 은혜 줄만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은혜 줄만하시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는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는 길과 방법이 많은데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삶도 쉬운 삶이 아닙니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물질과 시간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향락하고 즐길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지만 포기하고 주님의 교회를 이름 없이 섬기고 빛도 없이 봉사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렇게 많은 날 동안 마음을 졸이며 말씀을 듣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쌓인 교리적인 지식은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향해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면 하나님이 찾아가십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 저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당신 자신의 은혜입니다. 이 갈망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라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간절히 목마른 사람이면 의를 행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향해 갈망이 없었던 사람보다 더 빨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 여러분들이 예전에 큰 은혜를 받았던 때를 생각해 보세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때에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자기 주위에 있었지만 그것을 의지하는 마음, 그것을 믿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절대적인 목마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있었을 때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해주셔서 다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 부어도 성취되지 않는 섬김의 난관 앞에서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우리에게 부흥을 주셨습니다.
Ⅵ. 결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버리고 우리가 홀로 남은 것 같았어도 이런 목마름이 있을 때에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우리가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무한한 은혜를 하늘에 저장하시고 사면을 두루 살펴서 당신의 은혜에 목마른 사람들, 하나님 자신의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 어린아이처럼 마음에 두 손을 모으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빼앗겨도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늘 문을 열고 그 은혜를 부어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주 오래전이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청년들이 수련회를 갔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겠지만 전혀 은혜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떠나가는 날 너무 억울한 것입니다. 몇 명의 청년들이 강대에 모여서 ‘하나님 우리가 이대로 내려가야 합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안 주시렵니까?’ 기도했습니다. 밖에서는 버스가 빨리 가자고 난리이지만 가거나 말거나 이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거기에서 ‘하나님, 우리를 이대로 보내십니까?’ 사람들이 화내면서 출발했습니다. 놀랍게 그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다음에 이 몇 명의 청년들이 거기에서 ‘하나님 우리를 그냥 보내십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죄가 있길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성령의 강한 은혜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시험하십니다. 진짜 당신을 갈망하는지, 진짜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정말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은혜가 없는데 죽자니 두렵고 살자니 살 힘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나야지만 우리가 섬기는 일도 살아날 수 있겠죠? 내가 있는 가정도 살아나겠죠? 내게 맡겨준 영혼들도 살아날 수 있겠죠?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수가 있겠어요?
이 여름에 마음을 모으세요.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어떤가 보고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