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내 뜻대로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 2장 34~35절)
특별히 이 사무엘서를 보면, 버림받는 사람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여기에서는 이제는 엘리가 하나님께 버림받는 장면이 나오고 또 이어서 홉니와 비느하스 엘리 집안의 자녀들이죠. 버림받는 장면이 나오고, 또 뒤로 넘어 가며는 거기에는 사울이 버림받는 장면이 15장에 나오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원래 버림받을 사람들로 태어났느냐? 그리고 버림받을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체 신앙생활을 해왔느냐, 성경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을 합니다. 우선 말입니다. 이 엘리의 경우 보며는 성경에는 자세히는 안나오지만, 그러나 저는 이 사람이 한때 굉장히 신령한 사람이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추론은 아주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엘리가 나이 많이 먹었고, 그리고 이제 그 앞에서 어린 사무엘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무엘이 자다가 일어나서 자기에게 왔습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나는 널 부른 적 없다, 가서 자라”, 조금 있더니 다시 왔습니다. "저를 부르셨죠?, 아니 너 안 불렀다“ 그때서야 이 엘리가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며는 아 이것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에 하나님이 너를 부르시거든 대답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경험을 해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 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단 말이죠. 그렇다면, 그는 한때 신령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누렸던 그런 탁월한 영적인 지도자였다고 우리는 추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버림받았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것은 그의 교만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처음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지 보십시오. 그는 사무엘 앞에서 자기를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얼마나 낮추었는지 우리 한번 볼까요? 사무엘상 9장부터 보십시다. 20절입니다. 20절 제가 읽겠습니다.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사무엘상 9장 20절),
그뿐만 아니죠, 그 후에 10장 20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 (사무엘상 10장 20~24절).
그뿐만 아니죠, 26절에 보니까 ”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누구요?(사울은) 잠잠하니라.(사무엘상 10장 26~27절),
그러니까 겸손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성품은 뗄 수 없이 붙어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부리는 악신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은 거두어 가셨습니다.
자,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한때 은혜를 받았어도 늘 하나님 앞에 근신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마지막에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으로 육체로 마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이 이 엘리의 가문을 폐하시고, 어린 사무엘을 들어서 새롭게 쓰시려고 하는데, 왜 엘리의 가문을 버리셨는지가 미래의 자기를 섬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시는 속에서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습니까?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보고, 우리는 엘리가 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냐? 할 때에 하나님 마음대로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안 섬겼거나, 안행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마음대로 섬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충성은 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들이요.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살아야지 만 하나님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마음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아버지의 뜻 앞에서 자기의 뜻을 꺾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변함없이 하나님 손에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울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엘리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아사도 한때는 그랬고, 히스기야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샛별같이 빛나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 언제나 가지고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자기의 뜻을 꺾어버리는 그런 삶에 익숙해지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또 확인 하는 그런 일들이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시면서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요. 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다윗을 만나고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히브리 성경에는 “그는 내 마음 뒤따라오는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뒤따라오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이 다윗을 보며 내 마음에 들었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원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그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 헤아리는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 우리 신앙과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확신이 오늘도 갖고 있습니까? 성경은 오늘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헤아리는 교회, 헤아리는 사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되겠지요. 같이 기도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기도 할 때, 우리가 비록 능력은 없고 그리고 힘도 미약하지마는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들 되도록 도와주시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