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신 4:29)
Ⅰ. 들어가는 말
A. 진귀한 교훈을 담고있는 신명기설교
(기도)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 4장 29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밤의 시간에도 우리에게 오시옵소서 우리를 긍휼하게 여기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불순종하며 주님을 거스리는 것을 쉽게 생각했던 우리들을 하나님 용서해주시고, 온전히 하나님의 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나님 저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영원의 회복을 주시고 회복된 영혼을 간직하며 더 큰 능력과 은혜를 덧입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 대목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유언하는 설교입니다. 우리는 이 신명기설교를 잘 들어야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도 엄청나게 많은 설교를 이 신명기에다가 쏟아부었습니다. 이 신명기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잘 들으면 그러면 그들의 삶이 정말 하나님께 축복받는 삶으로 나아가게끔 만들어주는 아주 진귀한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Ⅱ. 모세의 유언설교
A.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일어날 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
그런데 이제 이 모세가 다시 한번 자기가 이미 설교했던 내용들을 회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신’자가 거듭 ‘신’입니다. 신신당부한다 그러잖아요, 그죠? 거듭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는 그 기록입니다. 거기서 이제 모세는 아주 놀랍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지않고있지만 들어가고나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손바닥보듯이 알고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특별한 감동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오랜 세월동안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는지 모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때 가장 우려했던 경고는 무엇이었는고하니 우상을 섬기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고 절하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고 금하시는 그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우상에게 숭배하는 때가 올텐데 그러나 모세는 또한 어울려서 말하기를 ‘그러나 너희가 거기서 여호와를 구하리니’ 말합니다. ‘찾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너희는 반드시 여호와를 찾게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면 끝까지 따라가보고나면 결국은 그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때문입니다. 히브리말로 우상을 ‘페세르’라고 말하는데 헛것이라 그런 뜻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온갖 축복이 약속된 것 같고 그리고 주님을 버리고 그 우상을 쫓아가면 결국은 커다란 복락이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아직 여호와를 향한 사랑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고 일단 실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그 품을 떠나서 우상을 쫓아가보고나면 그러면 결국은 이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알고나면, 우상도 사실은 거기 쫓아온 사람들을 버리는 것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섬겨서 복을 받았습니까? 그래서 농사에 풍년이 들었습니까? 그래서 포도주를 먹게되었고, 그래서 좋은 옷을 입게되었고, 그래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게되었습니까? 호세아가 눈물로 가르치고있는 그 장면이 무엇입니까? 너희의 포도도 내가 준 것이고 너희의 포도주도 내가 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이방에 가서 제사하고 그리고 우상들을 섬기는데 쓰고 그렇게하면 그 우상이 다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풍부하게 공급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버리는 그 비참한 인생들을 함께 경고하고있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온전하게하지못하게하는 가장 커다란 적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응? 우리 안에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도 마음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순전하고 생사간에 주님만 의지하며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걸어가야겠다라고 하는 사람을 마귀도 어찌할 수 없어요. 응? 그들은 항상 준비된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이에요. 응? 준비된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이에요. 준비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에요. 결국 그리스도인의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싸움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와의 싸움, 부패한 자신과의 싸움이란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죽어라고 우상을 섬겼던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습니까? 사명감을 가지고 우상을 그렇게 섬기는 것처럼, 미친 듯이 그렇게 우상을 섬긴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건 간단한 겁니다. 이 세상에서 번영해보자 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번영해보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번영해보는 것보다는, 우상을 의지하면서 번영하는 것을 훨씬 지름길처럼 느꼈던 것이에요.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의 참된 번영은 하나님이 그 영혼을 축복하시면서 맛보는 진정한 번영이 아니면 그것은 번영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그걸 알기를 원하셨어요. 이 세상에 살면서 그들에게는 땅도 필요하고 그리고 곡식도 필요했습니다. 물도 필요하고 포도주도 필요하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함은 돈 없어도 됩니까? 은혜충만하면 배부릅니까? 한 끼나 두 끼, 세 끼 정도는 그럴지도 모르죠. 삼일만 굶어보십시오. 은혜받은 사람도 밥 먹어야 삽니다.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 고통적인 것이에요. 그럴 때 이러한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와 맺은 관계의 참된 기쁨을 알고 세상을 위해서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믿음으로, 당신을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당신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그런 백성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죠.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떠나서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그리고 부귀를 누리는 것을,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사도바울의 언어로 풀어서 이 모세의 말을 전해주자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린 것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이거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이미 간파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냐면은 계속해서 십계명을 쭈욱 모세가 말했는데 마지막에 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나, 쭈욱~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말라고 말하면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했냐면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 그러면서 다시 첫 번째 계명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국은 우상을 섬기지말라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탐심을 갖지말라고까지 내려왔는데 그렇게 첫 번째 계명을 범하는 이유는 그 탐심 때문에 범하는 거에요. 이 계명은 서로 어, 꼬리를 물고 함께 돌아가는 계명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번영하고자하는 그 열망과 욕구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배반을 가져다는 것이죠.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환란을 당할 것이다, 주님, 명백하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들이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그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는데 잃어버린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요, 얻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고통과 배신이란거죠. 그러니까 세상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마음을 바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 세상이 우리를 아주 현란한 말과 논리와 눈에 보이는 축복을 가지고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마치 이 손을 붙잡았기 때문에 손을 뻗어도 이 걸 붙잡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에 닿지를 못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을 붙든 이 손을 놓으면 얼마든지 가서 많~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어리석은 허영을 넣어주는거에요. 그래서 실제로 믿는 사람들을 유혹한다구요, 응? 시련에 지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라면 유혹에 지는 그리스도인은 열이 넘어요. 응? 그렇단말이죠. 그래서 결국은 언제까지 세상이 그렇게 유혹을 하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철저하게 파괴되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저희를 돌아보시지않으신다 라는 느낌이 들때까지 그렇게 유혹한 후에는 막상 주님을 배반하고 세상의 품으로 달려와서 안기면은 그땐 발로 차버리는 거에요. 왜? 우린 세상을 향해서 과거를 지닌 사람이에요. 그 과거가 무엇이에요? 여러분들이 이전에 한 순간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에 그러면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에 그 때 사실은 그 전까진 여러분은 세상과 짝하고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함께 사이좋게 늘 끌어안고 동침하며살다가 어느 순간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이르고 신랑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부르시자 여러분들은 그 세상의 가슴팎에 칼을 꽂고 예수그리스도께로 도망친 사람들이에요. 응? 그래서 사도바울의 고백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현재적인 성화의 고백이기도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자기가 못박히는 사건이 있었단말이죠. 세상이 자기를 대하여 못박히는 사건이 있었단 말이죠. 그것을 우리는 잊었죠~, 우리는 잊었죠.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리석은 인생이에요. 예?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광야로 오게되었습니다. 430년만에 거기를 떠날 때에 얼~마나 지긋지긋했겠습니까? ‘다시 내가 여기 오나봐라’ 돌아서서 침을 뱉으며 뛰어나갔을겁니다. 왜? 다시오나봐라 그랬어요. 몇일 못가서 그리워하고있는 것입니다. 뭘 그리워하고있는겁니까? 그렇게 애굽에서 고통당한 날은 수없이 많았고 고깃국 먹은 날은 아주 적었는데, 그 고통받은 것은 생각이 안나고 죄악 속에서 맛보았던 작은 기쁨들만이 기억에 남는 거에요. 세상이 그런식으로 신자들을 유혹하는거에요. 여러분들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이렇게 생각합니까?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상실한 것이 너무 많다,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래 생각하고있습니까? 그리 생각하고있다면은 여러분들은 세상을 향해 가까이 가고있는 사람들입니다. 얻은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은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습니까?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모세가 이 이스라엘백성들을 말한 것 같이 이 세상에 어느 민족이 기도할 때에 그렇게 가까이서 여호와께서 들어주신 민족이 있느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을 누리게되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도 주님의 은혜로 헤치고 지나갈 수 있도록 위기가 없는, 인생에 있어서 절망할만치 커다란 위기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동행하는 삶을 살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런 사람으로 데려오신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결국은 세상도 얻지못하고, 주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거기서 많은 좋은 것들이 있어도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즐거움대신 하늘의 즐거움을 택한 사람들이에요. 잠시 있는 땅의 번영 대신 영원한 하나님의 무궁한 나라에 번영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제 떨리는 마음으로 모세를 통해 들려오는 자신들의 미래를 듣고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이제 그들이, 그 최고의 믿음을 가지고 조상들은 이제 다 죽고, 그리고 이제는 ‘돌격 앞으로’ 해서 요단을 건너서 이제 삽시간에 이 요단강 건너편 땅들을 모두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정복해야되겠다 생각하지않았겠습니까? 점령하기위해서 여기 나와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오래전에 자기의 조상과 함께 거기까지왔다가 결국은 정탐꾼들의 거짓된 보고 속에서 절망으로 몸부림치던 그 죄 때문에 결국은 그 주님께로부터 징벌을 받아서 광야를 유리하다가 온 사람들도 있었을 거에요. 왜냐하면 20세 미만은 하나님이 살려두셨기 때문에. 그들이 이제 자라서 그 종족들 가운데 나와 나이 많은 어른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감회가 얼마나 무량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들은 아마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 시점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긴 세월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었으니 이제는 오직 믿음으로 이 길을 가자 주께서 주신 땅을 우리가 희망으로 정복하자’ 결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근데 모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비관적인 이야기들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땅에서 번영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길 것이다. 그러나 환란을 당하다가 너희가 돌아올것이다.’ 아멘.
B. 배반하였을지라도 변화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을 때 다시 만남의 약속을 주심
그러므로 우리는 힘이 있을 때 아끼고 신앙이 있다, 생각할 때에 조심해야합니다. 섰다, 생각할 때에 넘어질까 조심해야하고 주님만 사랑하고있다라고 생각될 때 거짓된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있지않은지 깊이 돌아보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주님을 배반하였을지라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변화되기를 원하고계십니다. 마음의 변화는 나라를 움직이고 역사를 바꾸어놓습니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는 이 역사가 바뀌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먼저 하나님을 믿는 이 남쪽의 이 백성들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변화된 마음으로 비록 이전에는 우리가 음란하게 우상을 좇는 것과 같이 세상을 사랑하며 살았다할지라도 이제는 마음을 하나님께 모두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할 때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찾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만나주실 것이라고 하는 회복과 다시만남의 약속을 우리에게 주고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지울 수 없는 사랑을 자비를 발견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오늘 이시간에도 우리의 마음을 정갈하게하고, 정말 우리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 시간에 우리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