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성도의 거룩한 삶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16:15)
Ⅰ. 들어가는 말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하고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되는 일들은 이상하게 우리의 본성에 거슬리는 일들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데, 꼭 필요한데 잘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사랑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 꼭 필요한데 쉽게 되어 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그 사람의 신앙과 그리고 신앙적인 인품, 나아가서는 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한 거룩함의 진보의 정도 이런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눈에 보이신다고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증거를 출애굽기 같은데서 혹은 민수기 같은데서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들이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 앞에서 못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을 인도하셔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셔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의 불기둥과 하나님의 임재의 기적의 떡을 먹고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비추이는 불기둥 앞에서 범죄 했고 또 하나님이 내려주신 그 메추라기가 아직 이 사이에 끼어있을 때 범죄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뭔가 두려움에 대한 자극이라든지 혹은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자극 같은 것들을 통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Ⅱ. 본문
A. 깨어있는 삶
오늘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우리를 권고하시는 음성을 우리는 본문에서 만납니다. 그것은 바로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기적이 없고 놀라운 흥분 우리가 흥분할 만한 놀라운 어떤 외부로부터의 두려움이나 어떤 흥분할 만한 자극이 없어도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그리고 그 진리를 통해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은혜 앞에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어있는 삶이라는 것은 별다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앞에 시선을 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표리가 부동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모여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기도할 때나 살아갈 때나 삶의 내용이 다르고 기도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삶이 곧 기도의 연장이고 기도가 삶의 연장이 되는 그런 것,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고 실천하는 속에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그러한 표리가 일치된 삶, 이런 깨어있는 신앙 속에는 외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깨어있는 신앙 속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자와 같은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럴싸하게 보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속속들이 썩어있는 그런 모습으로 실패한 신앙으로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위선과 거짓 그리고 모든 독선 그리고 표리가 부동한 이 모든 형식주의적인 삶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 깨어있지 않은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깨어있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계십니다. 깨어있습니까? 모여서 신앙생활 할 때와 홀로 신앙생활 할 때 함께 모여서 신앙 생활할 때 여러분의 인격과 말이나 혹은 간증을 보고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홀로 있는 여러분들의 삶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여러분들이 증거 했던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많은 증거들이 혹시 거짓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표리가 부동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높은 신앙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신앙의 첫발을 디딜 때부터 투명한 신앙생활을 해야 돼요. 하나님 앞에 정직한 신앙생활 자기가 다다른 그 이상의 자신으로 보이려고 흉내 내거나 위장하는 가식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와 같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삶을 뻐기고 자랑하고 수치를 영광으로 아는 그러한 어리석은 고집스러움도 없는 언제든지 주와 같이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고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식하면서 주 앞에서 살아가는 깨어있는 삶,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지녀야할 영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깨어있는 삶을 살지 못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부끄러운 삶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시골의 여름날에 장마가 지고 눅눅할 때 햇빛이 광으로 듭니다. 그러면 광이나 곳간에 햇빛이 들면 햇빛이 바닥에 깔려있는 거적때기를 보송보송하게 마릅니다. 겉에는 잘 말랐지만 그러나 어느 날 이제 집게로 거적때기를 들춰보면 기름지고 미생물도 많은 그 바닥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벌레들이 가득 진을 치고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투명하고 깨끗한 정직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표리가 부동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물론 때로는 마음은 원하지만 우리의 육신이 우리의 마음의 원하는 바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할 힘이 부족해서 못 행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겉 경건의 모습을 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우리의 삶이 감춰져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그런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B. 하나님 앞에 깨어 살아가야할 필연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정직하고 투명한 영적인 삶, 그런 삶을 살지 못할 때 필연적으로 거기에는 벌거벗은 것과 같은 삶, 여기에서 얘기하는 이 옷이라고 하는 것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생활이요 삶입니다. 그런데 ‘벌거벗어 부끄러움을 당치않게 하라.’ 무슨 뜻이냐 하면 만약에 우리들이 매일 매일 깨어서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공급받는 그러한 영적인 삶이 토대가 되어서 그 하나님의 눈빛 앞에 정직해지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살아가는 그런 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는 저절로 벌거벗은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옷을 입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정결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정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성도요,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또한 그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깨어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으면 성도는 특별히 행실을 악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거짓되고 망령되고 허탄한 행실에 빠져서 성도로서의 거룩한 옷을 모둔 내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써는 옷 입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의 의로 옷 입고 성도의 거룩한 행실로 우리의 옷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라져버리고 나면 벌거벗은 자처럼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매우 주의하고 유의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될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일 오후에 대속의 비밀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날마다 깨닫고 그리고 우리가 이제는 우리의 육체의 욕심과 마음의 원하는 바를 따라서 마음대로 우리의 몸을 쓰고 사용할 수 없는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됩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많은 헛된 영화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많은 속된 즐거움과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방하는 그 모든 불의한 기쁨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우리에게 요구되는 다른 한 삶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행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체험하고 배우는 기쁨이 없는 사람들은 몸은 구원의 은혜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지만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두고 온 고향도 아닌 고향을 그리워하던, 애굽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워해봐야 하필이면 왜 애굽을 그리워해야 했습니까? 사실은 그들이 애굽에서도 나그네가 아니었습니까?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품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품이었고 이미 조상들에게 약속하고 조상들로 하여금 이미 밟게 하였던 가나안 땅이 그들이 그리워해야할 진정한 고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도움 없이는 그 참된 고향을 그리워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이 사라지고 말 때에는 육신의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영혼의 고향에는 인생들이 모두 탐하고 그리워하고 그리고 탐닉하는 것들이 거기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고향에는 즐겁고 탐닉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봐야 단지 귀에 들릴 뿐이지 그들은 들리는 그 소리대로 자신의 삶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가장 큰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허탄한 것들을 쫓아다니는 피곤한 삶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즐거움과 기쁨이 얼마나 크고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고 준비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를 향해 마련하신 그 즐거움과 기쁨이 그 모든 원수들의 탈취 물을 나누는 기쁨보다 더 크고 전쟁에서 승리하여서 전리품을 나누는 즐거움보다 더 큰 것을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늘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거룩한 행실로 덧입을 수 없고 깨어서 신앙생활 할 수는 물론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깨어 살아가야할 또 하나의 필연은 이런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도적과 같이 오리라.’ 말씀하십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적과 같이 예기치도 않았던 때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간에 나타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기치도 못한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그분이 오실 리가 없다고 하는 그 순간에 나타나시는 것이에요. 역시 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 앞에 살았던 사람들은 주님을 직접 뵈옵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늘 어두움을 좋아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찬란한 빛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숨을 수 없게끔 나타나시고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살아계신 놀라운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늘 살던 사람들은 그분의 빛 앞에서 자신의 삶이 드러나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주님이 만져주셔서 자신의 삶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살아왔고, 그 은혜를 힘입어서 이제껏 살아왔고, 또 그 주님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를 아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도적과 같이 오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께로 더 가까이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주님께 더 온전한 삶을 살아서 거룩한 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성도의 거룩한 행실을 따라 이렇게 깨어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따라서 이 세상을 지나치게 이 세상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주께서 생명의 분깃을 허락해주시는 날 동안에 찬송하고 감사하면서 살지요. 경배하고 기뻐하며 삽니다.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이 곧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주님을 뵈옵기 위해서는 어차피 이 세상에 휘장이 거두어져야하고 그리고 밝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뵈옵는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한 이 세상은 지나가고 얼굴을 대하고 마주보는 그런 참된 기쁨이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이 세상을 경멸하면서 살아갑니다. 신자가 이 세상을 적당히 경멸하고 적당히 이 세상을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태도 없이는 이 세상을 향한 사랑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기의 소중한 것을 쌓아둔다든지 영원한 미래에 뵈옵게 될 그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실 칭찬받을 날을 위해서 오늘 우리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다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거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Ⅲ. 맺음말
믿음을 따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지혜를 배웠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헛된 것이고 곧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짧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곧 지나가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인생은 영원으로 건너가기 위한 한 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인생이 끝나도 중지되지 않을 수 있는, 인생이 끝나도 종식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의 비결을 하나님 앞에서 사는데서 찾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알고, 내가 주를 알고, 그분 앞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주님이 인정해주시고, 내가 내 삶에 개입하셔서 나를 목자와 같이 인도하시는 주님을 인정하는 삶, 그래서 나는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주님은 내가 거기서 주님을 기뻐하는 것을 보심으로 행복한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러한 삶 그것이 성도들의 종말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은 예고 없이 오실 것이며 그날은 매우 가까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합니다. 적당히 세상을 멸시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태도를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보다 더 영원한 것 그리고 불같은 심판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사랑과 칭찬을 획득할 수 있는 그러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