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자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느니라”(고후 1:5).
사람들은 누구나 다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위로받고 싶어 하죠. 그것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설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위로를 깊이 느끼는 사람들은 소수예요.
첫째 그 위로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있어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구분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묻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목사님 하나님의 위로는 사람을 통해서 오지 않습니까?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럴 때도 있는데 안 그럴 때도 있어요.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 위로는 두 번 반복 할 테니까 가슴에 새기세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위로만 못해요. 못해요. 다시 한 번 더!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 그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사람을 거치지 않고 오는 위로만 못해요.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사람이 가진 동정심이나 혹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위로에요. 그러나 그렇게 위로해주는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붙잡혀 있고 또 위로를 받는 사람도 하나님께 온전히 붙잡혀 있을 그때에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그 위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위로와 그런 경우에는 사람을 통해 오는 위로도 하나님께서 직접 베풀어주시는 위로만큼이나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그러나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에 이 위로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직접 오는 위로와는 거리가 있는 위로가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봅시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한 순종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를 위로하는 사람이 그러한 사랑에서 어긋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아닌 자기 연민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동정함으로서 위로할 수 있겠죠! 그러면 위로받는 사람에게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될 리가 없겠죠?
두 번째 가능성은 위로해 주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를 위로할 수 있는데 받아들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합치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가 그에게 진심으로 베풀어주는 위로를 그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위로는 사랑의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이에요. 그래서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항상 이러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일시적이에요. 이것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지 못해요. 그래서 사람에게 더 많이 인정받고 싶어 하고 또 사람에게 더 많이 고임을 받고 싶어 하는 거죠.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만족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섬기고 베풀 것을 기대하고 오히려 그로부터 오는 위로가 적거나 없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거나 지장을 받거나 혹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영향을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죠.
두 번째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위로에요. 이 위로는 아주 놀라운 영적인 위로에요. 제가 아직 목회하기 전에 신학교 가기 전에 회심하고 나서 몇 해가 지났을 땐데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을 당했어요. 그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낙심이 되는지 눈물로 며칠을 지내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분노가 같은 것도 좀 있고요. 근데 어느 날 밤에 간절히 교회에 가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하시던 집사님이 계셨는데 저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꿈을 보여 주시더래요. 내가 그렇게 낙심해 있는데 하늘에서 커다란 파이프가 내려오더니 거기에서 아주 맑은 기름이 폭포수처럼 쏟아져서 나의 온 마음, 온 몸을 두루 적시는 것을 경험 했대요. 바로 그날 이었어요. 그날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가 몰려 왔어요. 근거를 알 수 없는 평안 그리고 놀라운 기쁨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그 사실! 그것이 인침과 함께 다가오는... 오래도록 마음을 주장하면서 나의 삶에 그 경험이 영향을 미쳤어요.
오늘 사도 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위로를 어떻게 경험했는지에 대해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고난을 통해서 위로를 경험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일생을 보면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큰 사랑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터치로 우리를 위로해 주실 때에는 항상 다른 때가 아니라 고난을 받던 때였어요. 근데 그 고난은 주님을 위해서 살기 위해 받는 고난일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 때도 있었어요. 그런대도 그 순간에 아주 비상하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하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깊이 집중하는 거예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고난 중에 우리에게 위로를 베푸시는 거예요. 특별히, 특별히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러한 위로가 아주 즉각적이에요. 징계를 당할 때의 위로는 결코 즉각적이 아니에요. 오랜 분투 끝에 위로가 와요 근데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할 때 위로는 즉각적인 위로에요. 순교의 순간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간증이 뭐냐 하면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 순간에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운 담대함을 위로와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맨 정신으로 어떻게 그런 고난을 당할 수가 있겠어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불에 태우고, 그 다음에 커다란 뺀찌로 손톱과 발톱이 파 제쳐 지고, 뼈가 드러나도록 얻어맞는데 맨 정신으로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속에서 놀라운 능력과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찬양: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 만 바라볼지라~) 깊이, 깊이 하나님의 위로가 밀려오는 거~ 근거를 알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평안 그런 것들이 밀려와요. 때로는 음성도 들려주시죠!
그런데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고난을 받는 때가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고생하는 때는 있어요. 그런데 그건 고난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고생이 있는 게 아니죠. 하나님이 맡겨 주신 귀한 사명을 망각하고 그리고 의무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맡겨진 양떼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고생은 있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요나잖아요 주님께 불순종하고 배를 탔는데 고생을 무지하게 많이 했는데 그게 고난입니까? 고생이죠! 그렇게 주님을 맡겨주신 일을 팽개치고 의무에 소홀하며 육신으로 살아갈 때도 고생이 있어요. 우리는 고난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나 예레미아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정말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어요. “ 하나님의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너희들은 조용히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라. 하나님의 너희에게 회복의 때를 주신다.” 저런 나쁜 놈! 저런 매국노가 어디 있나? 분명히 저놈은 바벨론이 보낸 말하자면 내통이다 하며 잡아 팼어요. 너무 가슴이 아프니까 ” 그래 내가 이렇게 진리를 외쳐도 너희들이 안 들어? 그러면 내가 이제 다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속에서 다시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는 거예요.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통을 받는 거예요. 그러면서 깊이 그 말씀에 사무쳐서 포도주에 취한 사람처럼 되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말씀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그거는 고생이 아니라 고난이죠! 고난이죠!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우리들이 고난을 받아 본적 있습니까?
저도 고생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정말 그중에 고난이 얼마나 될까? 고난이 얼마나 될까?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우리들이 끊임없이 장애를 만나고 실망하고 고통을 받고 미끄러져요.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가슴속에 고생을 한 사람들은 고생만 하는 사람들은 섬기면서 마음이 강퍅해져요. 정말 나쁜 사람들은 교회에서 섬기는 사람들이에요. 마음이 돌 같아요. 정말 제가 목사이면서도 목회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으면 순간순간들을 착각할 때가 많아요. 정말 세상의 나쁜 놈들은 교회게 다 모였구나!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어쩌면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파렴치하고 그렇게 잔인해요? 어쩜 그렇게 잔인해요? 이세상의 조폭들도 그렇게 복수 안 해요. 어쩜 한번 맺힌 원한을 죽어도 풀지 않아요. 어쩜 인간이 그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악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정말 더 악해요.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자기의 설교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불에 달궜던 쇠가 식으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은혜를 알았던 성도의 마음이 식으면 무서울 정도로 딱딱해집니다.“ 정말 사실이에요! 정말 사실이에요! 어쩜 인간이 그렇게 악할 수가 있어요? 고생만 하면 굉장히 강퍅해지는 거예요. 고난을 받는 거 항상 중화작용이 있는 거예요. 고난을 많이 받으면 그것도 고생이니까 너무너무 몸과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게 기도하고 나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요!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요!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요! 특히 영혼들을 위해서 깊이 울고 나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요.
저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아요. 전도사 때인데 토요일마다 모여서 선생님들과 같이 기도회를 했어요. 하자! 그래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시작하니까 한 사람 두 사람 나와서 나중에는 삼십 명이 나왔어요. 밤새도록 기도한 거예요.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상하게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보니까 가슴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있어요. 나도 그런 것을 몰랐는데 여선생 하나가 기도할 때 그렇게 가슴을 때리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왜 그러나 했어요? 막 기도하니까 너무너무 숨이 막힐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두드리니까 굉장히 호흡하기가 좋아요. 그래서 막 두드리면서... 선생님들이 집에 가서 웃통을 벗고 거울을 보니까 전부 여기에 멍이 들어 있는 거예요. 파란 멍 자욱 우리가 그렇게 새벽이 맞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내가 너 마음을 안다! 울지 마라! 내가 너의 마음을 안다! 그게 하나님의 위로에요. 그게 사람이 와서 ‘전도사님 울지 마세요. 선생님 하나님이 사랑하세요.’ 그렇게 해서 주는 위로가 아니에요. 성령이 직접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내가 너의 마음을 안다” 그런 기도였어요. 성령의 강한 위로죠! 그 추운 겨울밤에 기도해도 춥지 않아요. 이게 성령의 우리에요.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에게는 이런 위로가 있어요.
정말 놀라운 게 뭐냐 하면 사람들은 교회에서 수건이라도 하나 줄때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닌가? 옛날에 제가 어느 교회에 있을 때 담임 목사님이 항상 야유회 갔다 오면 수건 잘 나눠 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그것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는 것도 봤다구요! 그건 선택 아니에요! 진짜 선택은 뭐냐 하면 쓰라린 고난이 있을 때 그 현장에 있는 것! 왜냐하면 그 쓰라린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하나님이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아주 놀라운 그 위로를 부어주시는 거예요. 심령의 부흥이에요! 밀려오는 거예요! 그러한 위로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가장 주님이 고통을 당하시는 현장에 있을 때 그리고 거기에 참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고통이 다 보여요. 사랑은 감았던 눈을 열게 해주고 닫혔던 코를 열게 해주고 멀었던 귀를 열게 해줘서 언어가 없어도 듣게 하고 형체가 없어도 보게 하고 향취가 없어도 그 냄새를 맡게 해요. 그게 놀라운 힘이에요. 사랑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요.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곳곳에 그런 것이 보이게 해요. 하나님의 아픔이 보이는 거죠.
어제도 어떤 독자가 편지를 보냈어요. 자기는 너무 고통스럽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교회를 그렇게 행복하게 다닌다는데 자기는 교회만 가면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재미있어요. “목사님 그런데 행복해요!” 그게 뭐죠? 위로에요. 하나님의 위로에요. 고난의 깊이만큼 하나님이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고생의 깊이만큼 하나님의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큰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마지막 날에 주님이 부르실 때에 아무것도 주님에게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어요.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면서 미끄러지느라고 인생을 낭비할 때에 어떤 사람은 정말 똑같이 힘이 없고 약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크고 놀라운 위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찬양: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그 손으로 덮으시네 ~ )
그러면서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매일매일 고난을 당하지는 안잖아요! 그런 건 몇 번 겪다보면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는 떠밀리듯이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때 우리들이 고생한 것을 내놓을 열매가 없는 밤송이와 같아 아무리 발로 밟고 지팡이로 짓눌러서 까봐도 쭉정이 밖에 없어요. 그러나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은 사람들은 열매가 있어요. 그래서 그 안에 어린아이같이 순전하고 아주 연하고 부드러운 마음!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 그런 것들이 주님 안에 가득 차있는 것이죠. 그런 위로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