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가 견고한 자의 평강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 26:1-3)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의 회복될 때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읽은 1절부터 3절까지를 그림을 그려서 볼 것 같으면 1절은 하나의 큰 성이 나오고 2절에서는 문이 나오고 3절에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이걸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이 자기의 교회에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기의 교회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면 그러면 견고한 성읍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고 주의 백성들의 모임이 그처럼 견고한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뭐라고 말하냐면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두루시리니..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당신이 모인 백성들의 무리인 모임인 교회의 백성들을 지켜주신다 표현을 것을 성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성이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재성이라고 하는 것과 나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도시전체를 에워싸는 성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성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궁궐을 에워싸고 있는 또 다른 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적군들로 하여금 침입해왔을 때 적군들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고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이 높이 세워놓은 건축물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서 성과 곽을 구원으로 성과 곽을 두루신다는 그 말은 문학적인 표현이지만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모든 환란과 모든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지켜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그림처럼 생각해보면, 평평한 땅에 만약 엉성하게 지은 집이 한 채, 위에 는 초가지붕을 지은 집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울타리도 없는 그런 동네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적군들이 말을 타고 수십만명들이 한번만 그곳을 지나가고 나면 그 마을은 모두 쑥대밭이 되고 말 것 입니다. 또 원수들이 화살에 불을 붙여서 멀리서 밤에 쏘면 어디서 화살이 나왔는지도 잘 모르면서 어둠을 뚫고 날아오는 화살에 한 두개의 지붕이 맞으면서 모두 불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마차를 끌고 혹은 우리 고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큰 통나무 같은 것을 앞세우고 뒤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밀고 비탈길로 내려가면서 그 집을 향해 돌진하고 마을을 향해 공격한다면 단숨에 모두 부셔져 버릴 것 입니다. 거기에 아무리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미 그 마을은 요새가 아니므로 전쟁을 감당해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럼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옛날 고대의 성들을 보면 어떤 성들은 높이가 30미터 10층 정도 되고 마차가 몇 대씩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두꺼운 성벽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곽을 두룬 성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점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대 로마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도 몇 달이 걸렸습니다. 왜냐면 성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 입니다. 커다란 통나무 같은 것을 가지고 돌진을 해도 성이 있으면 높은 성위에서 내버려두지 않고 화살을 내어 쏘고 돌을 던지고 뜨거운 물을 내려서 쏟아 붓기 때문에 성벽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살을 쏘아도 거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 성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어서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이 없었더라면 천명의 군사만 가지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탄탄한 성이 두르고 있으면 일만만의 군사를 가져도 그 싸움에 승리한다는 장담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고대에서 이야기하는 성의 말할 수 없는 효과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마다 온 힘을 기울여서 성을 쌓는 일에 국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다 그것 때문 아닙니까. 그렇게 도움이 되는 그 성, 하나님이 그런 성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여러분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여러분들을 향해서 군대를 이끌어 돌격하고 마귀로 여러분들을 공격하게 하고 양심에 송사를 받게 하고 어떤 때는 여러분들의 재물을 앗아가기도 하는 시련과 풍랑 이런 것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 것으로부터 보호하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성과 곽이 되어주실 때 그때 우리는 견고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있어서나 개인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가장 커다란 축복은 주님이 이처럼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교회를 위해서 영원히 우리의 숨이 끊어질 때 까지 쉬지 말아야 할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또 우리 자손들 다주를 기리고 저 성전 돌같이 긴하게 하소서. 주 구원하신 능력을 주 구원하신 능력을 만백성 듣게 하소서.’
얼마나 아름다운 찬송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자손을 향해 거는 기대가 뭡니까. 또 우리자손들 다 주를 기리고, 기린다는 말은 praise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손들을 향한 최고의 기도문은 우리가 주님을 그렇게 사랑했던 것 보다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높이는 자손들이 되게, 그리고 또 어떻게 저 성전 돌같이 긴하게 하소서. 저 성전돌- 성전의 돌, 이것은 어쩌면 보아스와 야긴의 두 기둥을 상징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모퉁잇 돌을 상징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다 양보해서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나하나하나 돌맹이들이 놓여서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해가는 그러한 돌과같이 그렇게 긴하게 하시고 누구에게, 하나님에게 그렇게 긴하게 하시고, 그것이 우리들이 그러면서도 주의 구원하신 능력을 구원하신 능력을 이 세상 끝날 까지 달라고 하는 그런 찬송이라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변치 않고 기도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교회가 그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 언제나 그 교회를 말할 수 없이 사랑하신, 일반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매우 특별히 사랑하신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니잖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듯이.
언젠가 부모님들을 용서해라. 그런 얘기를 어떤 사람이 부모들이 몰라서 그렇지 않느냐. 예수를 믿었더라면 그랬겠느냐, 어떤 이가 목사님 우리아버지는 장로님, 우리 엄마는 권사님이었습니다. 그리고서 옛날부터 교회 다니고 했는데.. 그래서 제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다 예수 믿는 사람이냐.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냐.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이 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냐 했더니 그렇진 않다고 합니다. 그것보아라 너의 부모는 가짜이지 않느냐. 가짜니까 그렇게 너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냐. 이제 네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 가고 있으니 참된 그리스도인이 덜 익은 그리스인들을 용서해야한다.
모든 신자들이 다 신자가 아니듯이 하나님이 특별히 붙잡아주시는 교회, 하나님이 썩어 가고 상해가는 시대를 향해서 소망을 가진 교회,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깃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교회를 해하고자하고 원수들의 공격을 받고 그리고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그 교회를 향한 특별한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역사하시는 그래서 그 백성들을 보호하고 계시는 놀라운 표징들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숨질 때 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할 기도의 제목입니다.
두 번째는 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는 것과 개인이 하나님 앞에 정말 축복을 받는 것은 아주 놀라운 비례와 상승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큰 은혜가 넘칠 때 그 은혜의 흐름에 함께 타지 못 하는 사람들은 마치 비가 많이 올 때 모든 만물들이 그 봄비 때문에 소생하는데 그 봄비를 맞았기 때문에 썩어가는 그런 고목과 같은 신자가 된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교회에 은혜를 주실 때 우리 한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은혜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들이 힘써야 되는 것 입니다.
두 번째 문입니다. 이 문은 고대로서는 권위와 권세의 상징 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여인을 향해 축복할 때 네 자손이 대적의 문을 얻을지어다. 그 성을 공격하기 가장 쉬운 것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 그 문이 적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끝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고성 같은데 보면 성 보셨지요. 성 나무로 짠 다음 그 위에 갑옷을 입혔습니다. 그래서 활을 쏘아도 불이 안 붙게끔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이 떨어졌다면 끝난 것입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적군들이 모두 몰려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문을 통해서 의로운 백성들, 신을 지키는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받는 그 하나님의 백성들, 그 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통치와 그 은혜에 굴복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과 곽을 두루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문을 들어오는 순간에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들처럼 새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어 난다고 할 것 같으면 이 교회가 얼마나 정결하고 신령한 교회가 되겠으며, 신령한 교회라고 하는 것은 신령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신령한 교회이지 무엇을 어떻게 한다고 신령한 교회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올 때 그렇게 신을 지키고 의를 행하는 그 나라에 백성들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우린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기서 사는 백성들은 어떤 백성들이 되어야하는가. 그 백성들은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받는 백성들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서 평강은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진정한 내면의 평화입니다. 그런 평강이 그래서 환란과 시련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사람이 모두 요동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 없이 그저 평탄하다고해서 평탄한 것도 아닙니다. 이 내면이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히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면 온유함도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그런 맘이 됐을 때 말씀이 들어오겠는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정하고 뜻을 정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파고들기 시작하는 것이, 왜냐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입니다. 근데 가정을 해봅시다. 내가 이손으로 물을 부으려고 하는데 주전자 꼭지에 컵을 갖다 대는 게 우리의 본능입니다. 흔들고 하면 물이 부어지겠습니다. 어쩌다 들어가겠지요. 하지만 흔들리는 컵에다 물을 붓는 것은 보통 힘든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마음이 확정되고 뜻이 정해진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죽 부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그 평강은 그야말로 샬롬 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말미암는 진정한 평강입니다. 이것이 오면 환란이 일어나도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큰 풍파와 환란이 일어나도‘ 큰 풍파에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나도 알아요. 그러니까 마귀가 볼 때 얼마나 기가막히겠습니까. 안달복달하라고 자극을 주면 평안해, 평안해, 평안해..풍파가 일어나면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막 유혹하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 일세. 그러니 얘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평정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평강의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를 가져야지만 정말 그 성에서 요긴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열 받을 때 나타나서는 말이나 태도로 평정을 주고 그리고 무엇인가 불평이 일어나는 그곳에 나타나서는 몇 마디의 말이나 행동이나 기도로 불평을 감사로 바꿀 수 있는 그런 핵폭탄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그런 평강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있기를 하나님이 원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거기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냐하면, 심지가 견고한 자들을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확 움직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의 책임 하에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 받고 왜 그런 거냐면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마음을 간수를 못해서 그럽니다. 무엇인가 요동하는 것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뭔가 유혹 받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의 유혹을.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속에 죄의 요소가 물론 살아있지만 우리마음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면 이제 깊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주관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하나님께 속하기 전까지는 마음의 상당한 책임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만약 거짓말이라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벌하신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계명에 복종할 수 있는 힘과 모든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 어길 수 있는 가망성도 그들에게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모릅니다. 이것은 싸움입니다. 싸움 중에서도 처절한 싸움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 이런 싸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주님이 나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고 하나님에 내게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생각하고 그런 만큼 날마다 이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욕망을 이기고 우리의 요동하는 마음이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으로 억제되는 이러한 놀라운 축복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령 속에 더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이 보실 때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다. 그렇게 하나님 얼마나 좋은 번역입니까. 심지-마음의 뜻이 견고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련과 어려움들을 만나지 않습니까. 여기는 정말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 같은 그런 것이 인생 즉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어둠을 지나가면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또 햇빛 나는 맑은 날도 있습니다. 살을 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때가 있는 가하면 폭풍우속을 헤집고 지나가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어두운 때가 있는가 하면 밝은 때가 있고 헤어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만나는 때가 있고, 이렇게 사연과 시련이 많은 이 속을 지나갈 때 만약 우리가 환경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 열어놓고 살아간다면 우린 정신병으로 죽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내가 한심해보이고 비참해 보이는 일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사건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환경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전부 움직인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이겨나가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에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오늘도 나에게 말씀의 은혜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내 영혼을 인도하시옵소서. 오늘 이번 주의 예배가 실패하면 제 영혼은 어떻게 살까요.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키면서 그렇게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믿음 안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희망을 갖고 책망을 받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책망을 받고 주님의 위로를 받아도 사람의 간드러진 말이나 그저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이의 자기를 띄워주는 칭찬 때문에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예배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는 그 말씀의 하나님을 통해서 격려를 받고 책망을 받고 혹은 돌이키고 용서를 받고 하는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우리 속에서 계속 말씀을 토대로 이루어질 때 그러면서 그런 삶을 위해 마음을 잘 지킬 때, 하나님이 그를 심지가 굳은 사람으로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러한 든든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새가 여러 마리의 새들이 날아다니면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번개가 치는데, 그 새가 어디로 도망가겠습니까. 물어보니 자기 집으로 도망간다고 합니다. 집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어디로 도망가겠느냔 말입니다. 나무하나에 서서 바람이 불면 ‘후후’ 이러는데 집을 지었겠습니까, 아니면 바람이 불어도 별로 흔들리지 않는 튼튼하고 견고한 나무위에 집을 지었겠습니까. 어디에 짓겠습니까. 견고한 나무에 짓겠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심지가 견고하지 못해서 평강을 누리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인생이 깊은 요동이 치는 때에 있을 때 어떤 분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평강이 느껴지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건 그 사람의 학식이나 그 사람의 외모나 그 사람의 뚱뚱한 몸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견고한 것은 킬로수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 안에 있는 놀라운 평강 그것이 견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무처럼 울창하게 서있을 때 우린 그런 사람들의 인격적인 가르침 속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만나주신 하나님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어때요, 여러분들은 어떤 쪽의 나무가 됩니까. 방금 심은 묘목입니까, 아니면 많은 새들이 들 만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나무와 같은 신앙으로 자라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중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이 결실의 가을에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