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함과 인격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녹취자: 윤수현
오늘 아침에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소명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고 목회자가 되게 하실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도자 삼으시기 위함인데 이 지도자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 속에서 다듬으시는 인격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세우신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말씀대로 신자가 살아갈 때 어떤 모습이 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그 말씀의 화육으로 오신 것처럼 설교자는 설교하고 동시에 자기의 설교를 따라서 살아감으로써 그 설교를 받아들이고 믿고 생활할 때에 도달하게 되는 인격과 삶을 보여주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신학도 공부이니 머리가 좋고 열심히 공부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우리 설교자의 삶과 인격은 그런 것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장시간에 걸쳐서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난 오늘 아침 아주 간략하게 연단과 관련을 지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욥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하나님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재앙이 임했고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악인을 ‘후’하고 불어버리듯이 욥을 불어버리셨고 욥은 모든 것을 잃었고 자신의 몸도 마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처럼 되어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리고 자신의 이 고난은 정말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욥의 마음이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에게 뚜렷한 양심의 송사가 이루어지는 죄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친구들 앞에 자기의 옳음을 변박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인간에게 의식되지 않고 설명될 수 없는 부패의 찌꺼기들이 있는 것을 이 욥은 발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 이 친구들의 비난에 대하여 답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런 끔찍한 재난과 고난을 당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인지를 주님께 직접 물어보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변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욥은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잘못한 것 없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고 거룩한 우리 주님의 성품을 알았던 이 사람은 자신이 이제껏 생각하고 있었던 의의 개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체가 완성되고 구체적으로 양심을 찌르는 어떤 실행 죄 만이 율법을 어긴 것이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이며 형벌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는 이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안에 형언할 수 없는 많은 부패의 찌꺼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리고 이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 욥기에서 아주 탁월한 중보자의 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 짧은 고백은 최소한 세 개의 중요한 교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섭리는 하나님의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섭리가 아니라 그의 완전한 지식과 그리고 완전한 의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륜적인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자신이 걸어온 길이야 어느 정도 자신이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자신이 이렇게 자기의 죄도 확인할 수 없는 징계를 받으면서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더 몰랐습니다. 믿음을 가져도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미 드러난 뜻이 있고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드러난 뜻은 하나님의 계시이고 숨겨진 뜻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당신에 관한 많은 계시들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나님이 왜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계시처럼 드러나 밝히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그렇게 감추어 우리가 알 수 없게끔 만들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질 때 우리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마치 변하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교화하시고 당신께 붙어있게 하시고 당신을 의지하게끔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섭리가 불변할 것처럼 굳게 믿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가 당신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간절히 주님을 바라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의 마음에 맞게끔 바꾸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실 수 있다고 하는 신앙적 개연성을 가져야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할 수 있고 주님의 은혜를 열렬히 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과 시간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 필연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 우연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없이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교훈하시기 위해 가변적인 하나님인 것처럼 그렇게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펼쳐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데도 믿음이 필요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펼쳐지지 않고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받아들이며 살기 위해서도 더 많은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비록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현실 너머에서 나를 붙들고 계신 거룩한 하나님을 내가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의 손에 나의 인생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신뢰 할만하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욥은 깨끗한 사람이었는진 모르지만 깊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 모든 고난을 통하여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깨달을 수 없었을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그 경륜을 운전하시는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성품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신앙이 바로 이런 신앙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내가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고 나의 인생을 그렇게 불러 주셨을 때 하나님에게는 내 인생을 사용하고자 하는 계획이 계셨고 비록 하나님은 나에게 모두 알려진바 되진 않으셨으나 나는 주님께 모두 알려진바 되셨으니 나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 중에 주님이 모르시는 일이 없고 나에게는 뜻밖에 일이어도 주님의 계획에는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신뢰하면서 그러면서 자기 앞에 있는 고난이 가득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참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모두 정신적인 문제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하는 말이 "이차돈은 순교할 때에 목이 떨어지고도 6m를 걸었다는데 우리가 정신이 강하다면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을 대부분 이기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아픈 사람들에게 참 매정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8시간을 꼬박 앉아서 글을 썼는데 못 일어나겠는 겁니다. 이게 저의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적절하게 얼른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자만심에서 그냥 아픈 허리를 끌고 다니면서 허리 때문에 못하는 일은 없이 모두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런 상태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 놀라운 것은 마음속에서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일평생 이렇게 아픈 것이 너를 따라다닌다면 일평생 그렇게 불평할래? 그렇다면 너의 인생은 믿음으로 산다는 너의 인생은 어디 있니?' 그래서 그 다음부터 나의 약함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프지 않고 허리가 튼튼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며 감사하기 시작했고 아프면 원래 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에 놀라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파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의지하는 마음과 눈물을 주셨습니다.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고단한 목회의 길을 걸어가며 시련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만날 때 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모든 나쁜 것들은 좋은 것으로 변했습니다.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마는 그 아픈 것들이 영혼에는 좋은 것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인간이 끊임없이 정화되어야할 필요 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은 말했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단련한다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광석 같은 것들을 제련하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 집이 강원도였기 때문에 사금을 캐는 광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금이 함유되어있는 광석을 기계로 다 부수어서 물속에 집어넣고 큰 거품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비중이 다른 물질끼리 나뉘어지기 시작하고 금가루가 많이 들어있는 모래들이 따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도가니에 넣고 높은 열로 불을 떼면 녹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녹으면서 다시 금붙이 쇠붙이인 것과 아닌 것들이 나눠지기 시작하고 이렇게 걸러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좋은 금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욥은 평생을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으면 하나님이 사단 앞에서 이 욥의 의로움을 자랑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이 욥은 큰 고난과 시련을 거치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제련되고 단련되어야할 필요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적인 깊이는 죄를 보는 깊이라고 존 오웬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영적인 깊이는 죄를 보는 깊이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영적인 깊이는 거룩함의 깊이이고 거룩한 인격은 죄를 훌륭하게 분별해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 욥은 발견을 했고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고 우리가 아는 것 같은 복음의 빛이 아직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자신 안에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많은 부패한 죄들이 있고 이것은 단련되고 정결케 되어야할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며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하나님 앞에 고요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소위 청교도들의 스크루티니-정사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도 자신에게 얼마든지 속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깊이 보게 하기 위하여 이 모든 경건의 실천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실행했던 스크루티니라는 이 정사의 삶은 청교도 영성의 진수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삶을 모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면밀하게 검사함으로 말미암아 자신 안에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은 흠잡을 무엇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그들의 실천은 자신의 인생과 삶을 객관적으로 봄으로써 아버지의 말씀 앞에 세우려고 했던 경건한 실천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마치 제품을 생산해낸 공장에서 검사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제품 하나하나의 하자를 발견하여 골라내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살았던 삶을 깊이 성찰하며 하나님 앞에 면밀히 검사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한 십 년 전에 루이스 베일리라고 하는 청교도이긴 하지만 침례교도였던 사람이 쓴 "The Practice of Piety"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커더라는 청교도가 쓴 "Daily walk with God"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권중 어느 책을 읽어도 여러분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저는 루이스 베일리의 책을 읽으면서 생에 처음으로 '하나님, 나는 짐승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의 철저한 정사의 삶, 새벽에 일어나서 간밤에 꾼 꿈과 그리고 밤에 있었던 모든 기억까지 성찰하고 오전을 살고는 한 낮에 자신의 삶을 정사하고 저녁에는 오후의 삶을 정사하고 잠들 때에는 자신의 밤 동안의 삶을 정사하는 것입니다. 그걸 보면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성하십니까? 큰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한 후에 어쩔 수 없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말고 의식 없이 흘려보낸 매일 매일 매 순간의 삶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지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에 고통을 드린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삶의 괴적을 보며 자신의 성품과 존재가 어떠한 지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욥은 이 큰 환난과 시련을 당한 후에 비로소 이러한 자세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내가 정금과 같이 나아오리라'라는 것 이였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인생을 섭리 속에서 모두 알고 계신 하나님을 내가 신실하게 의지하면서 내게 일어나는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 찬 날들을 마치 용광로에서 타오르는 불길로 여기며 나 자신을 거기에 던져 제련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을 반드시 나의 이 모든 고난을 목적 있게 사용하셔서 이런 고난과 시련을 당하지 아니하였다면 도달할 수 없는 거룩함의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4K나 18K는 24K에 비하여 그 가격이 현저한 차이가 나고 아무리 예뻐도 팔 때에는 많은 손해를 보고 헐값에 팔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금을 그렇지 않은 동일한 가격을 어디에서나 유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수한 금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젊은 시절에 소명을 받고 젊음을 바쳐 신학을 탐구한 후에 중년에 온갖 시련을 당하며 목회에 헌신하고 후배들을 가르치고 노년에 자신의 사역을 접고 이제는 모든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홀로 있게 될 때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살았어도 그렇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마지막에 재고품처럼 남은 것이 망가진 영혼, 불결한 인격, 그리고 잃어버린 신앙, 깨어진 부부관계 그리고 상처난 성도들과의 관계 이것이 재고품처럼 남았다면 그가 아무리 혁혁하게 일을 하였던들 그의 하나님 섬기는 삶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다 섬기고 난 후에는 주님을 닮은 거룩한 인격, 무엇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큰 평화, 그리고 이 세상의 친구들은 자신을 모두 버렸어도 주님은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이 동행함의 감각, 이것이 있다면 그는 결코 소외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주님은 준비된 것만큼 그 사람을 사용하시고 종종 하나님이 쓰시지 않아도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기회를 얻는 일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본인에게나 공동체에게나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보내신바 뜻을 따라 공부에 전념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또 하나 이 신학교가 아니라 광야의 신학교에 입학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뵈옵고 우리의 인생사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 속에서 혹독한 연단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많은 시련들 그리고 이것들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주님 닮아가게 만드시는 이러한 일들을 십자가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한 지도자를 당신의 교회의 역사위에 떠오르게 하시고 그를 산처럼 삼으실 때 남들은 박수 받고 갈채하는 영광의 시간만 기억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도 알 수 없는 핏빛 인고의 세월이 있었고 남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 금식하고 기도했으며 남들이 모두 평안하다 하는 시대에 역사를 바라보며 가슴을 뜯었습니다. 남들이 모두 쉬고 그리고 즐거움을 취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불결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정결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그 영광의 빛 앞에서 행여나 자신의 불결과 더러움이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옷깃을 여미는 근신함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주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위해서 통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의 빛을 많이 발견한 사람이 그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 간절히 빌며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일들을 이루실 때에 모자람이 없도록 준비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가혹하리만큼 긴 세월동안 연단과 고난을 당하게 하신 후에야 하나님이 그들을 각기 사용하셔서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전하게 하신 것은 들리는 말씀, 말하는 말씀만이 아니라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존재와 성품 그 자체가 주님을 생각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주님을 닮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많은 사람을 목양하기 전 먼저 주님께 목양을 받는 사람이 되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되어야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를 외치기 전 먼저 자신의 불결함과 죄악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날들 중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날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시련을 만날는지 어떤 고난을 만날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인생이 시련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주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련과 기근과 핍박과 그리고 칼과 죽음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가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꼭 붙들고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모든 신뢰를 날마다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그분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했을 때는 용서를 빌고 견딜 수 없을 때는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고난과 시련 속에서 누구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그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를 내어 주셨던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위주로 하여 살지 않고 자신을 마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신 것처럼 사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이 남을 위해 버리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워지고 이 세상에 티끌과 같은 이기심도 없이 자기를 온전히 버려 주님의 도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 주님이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찬양)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교수가 된 두 번째 해에 저는 생에 적으로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정말 깊이 만났고 그때에 저는 이 세상에 신학자들이 쓴 책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언어가 아름다우신 주님을 묘사하기에는 턱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에 지금도 부러운 것은 그때 하나님이 내게 부어주셨던 기도의 영 이었습니다. 하늘 열고 내리시는 충만한 기도의 영속에서 어디서 무릎을 꿇든지 나의 온 영혼은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짧으면 두 시간 길면 네 시간씩 매일 기도하면서도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 있게끔 하나님이 나의 시간에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런 은혜가 가장 넘치던 어느 시기에 여러 달 동안 반복했던 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사랑을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을 뜯으며 여러 달을 기도한 기도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나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발 나 같은 인간의 행복에 마음 쓰지 마시고 당신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증진하기 위해 전념하십시오. 당신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 당신의 이름이 모든 이웃들 가운데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이 나의 인생에 최고의 행복입니다.’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그러면서 매일 매일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난 후에 교회에서 그리고 집에 골방에서 지금도 가만히 생각하면 그 때 하나님이 나를 참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때만큼 기도하지도 못하고 그때만큼 순수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좋으신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훌륭하게 살았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럴 수 없을 때, 그러지 못했을 때, 그래서 주님의 회복의 은혜가 필요할 때에도 꼭 요청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 시련과 고난이 많겠지만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이 세상에 주님밖에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을 깊이 신뢰하며 오래 참으십시오. 그래서 오늘의 이 큰 시련과 고난이 결국은 여러분을 정금과 같이 만들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