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영원성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자, 이제 이런 강좌를 하는 이유는 설교시간에 다루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이제 좀더 깊은 지식을 탐구하는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건데요, 여러분 손에 들려진 이 책은 최근 한 길며 는 3년 짧으면 한 2년 동안에 일어난 길며 는 더 거슬러 올라가지마는 본격적으로는 길며 는 한 3~4년 정도 짧으면 2년 정도에 일어난 저의 어떤 변화라 그럴까, 변화라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한권씩을 주면서 이 책을 다 읽기까지는 나를 안다고 말하지 하지마라. 그래서 그렇습니다. 오늘 이 책을 받으신 분들은, 오늘 이 강의를 들으시고 그다음에 지난번 수요일에 했던 첫 번째 “도덕적 통치” 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 했던 “하나님의 창조와 경향성”의 2개의 tape를 열심히 들으시고 오늘 들으시며 는, 이 어려운 책의 고비를 다 넘어 간 것입니다. 그래서 2~3장이 가장 어렵다고 그러는데 2~3장은 넘어가면 그 다음서부터 4장서부터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고, 뒤편에 6~7장 들어가며 는 뭐 늘 듣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 같이 한번 잠깐 기도하고 그리고 오늘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처럼 좋은날에 우리를 부르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처럼 복된 기회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제 이 성경에 나온 시간성과 영원에 관해서 저희들이 살펴 볼 때에 우리의 지성을 밝혀주시고, 그래서 오늘 배우는 이 지식들을 통해서 주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그 크고 광대하심을 인하여 기뻐 할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오늘도 이 시간에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지식의 모든 빛이 주님을 사랑하는데 소용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 하실 때에는 창조의 목적이 있으시겠지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사물들 가운데는 목적이 없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반드시 제작자의 의도와 목적이 그 물건을 만들게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우주를 만드시고 거기에 아무런 목적도 갖지 않으셨다 며는 우리는 참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피조물들을 다 창조하시고, 그리고 그 피조물들을 서로 법칙과 법칙으로 잘 연결해서 피조물들이 이 자연세계 속에서 함께 존재하므로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움의 본질은 결국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질서의 아름다움을 가리켜서 자연적 질서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피조물들은 자연적인 질서를 세우셔서 만드시고, 이것은 눈에 보이는 질서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이 자연적인 질서 이외에 또 하나의 질서에 속해있는데 여기에 속한 인간뿐 아니라 천사들까지를 가리켜서 우리들이 도덕적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세상안에는 자연적인 질서와 함께 도덕적인 질서가 존재해요. “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경험 너머에 있는 선악의 판단기준이고, “덕”은 거기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의 움직임, 작용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도덕이라고 함은 인간이 살아야 할 도리가 있고, 거기에 부합하면서 사는 인간의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이 도덕적이라고 함은 분명한 인생관이 있고, 선악에 대한 기준이 있고, 거기에 자기를 합치시키면서 사는 삶이 되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게 될 때, 그것을 가리켜서 도덕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주셔서, 그 지성을 향하여 하나님이 전달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거기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하나님의 큰 영광을 가득하게 하는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도덕적인 통치,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목적대로 인간을 살도록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그렇게 사는지 검사하시고, 잘사는 사람은 상을 주시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벌을 주셔서, 인간들이 결국은 창조의 목적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라고 부르는 거죠, 이런 하나님의 도덕적인 통치를 우리들이 생각함에 있어서 우리들이 빼 먹을 수 없는 것이 영원과 시간성의 문제에요. 영원과 시간성의 문제라 이거죠, 왜냐하면, 이 세상이 창조되는 것과 함께 시간이 도입이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는 모든 세계는 결국 시간이 있기 때문에 존재 하는 거죠.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므로 써 비로서 그 모든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이러한 시간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영원, 영원과 시간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이해해야지 만 천지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거라고 하는 거죠. 즉.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 하신 것인데, 하나님이 이렇게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도 이 시간과 공간의 세계가 필요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이 시간세계는 하나님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들이 이 문제를 살펴보기위에서 우리는 흔히 성경 같은데서 시편 같은데서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라는 고백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자비” 등등 이야기 합니다.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사실 이표현은 틀린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영원하신”이라고 하는 의미는 시간세계 속에서 기다란 선적인 연결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영원히 계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선적으로 시간이 길게 연결되는 영원 속에 계신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인간의 사상사에서 영원라고 하는 것은 크게 (녹음이 안되었음)사유를 했어요. 그것이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선적 영원이에요. 선적영원, 이 선적 영원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영원을 개념 할 때 순간순간의 이시간의 길이를 쭉 연결을 하는데 때 이게 무한대로 가는 거죠. 이것이 흔히 생각하는 선적 영원관이에요. 두 번째는 영원은 원적 영원관이에요, 이 원적 영원은 무엇이나 하면, 계속 가긴 가는데 이렇게 휘도는 개념이에요.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계속 도니까 끝이 있을 수가 없겠죠? 그렇죠. 이런 것들이 여러분 절 같은데 가보면 이런 문양 여러분 이렇게 보신적있죠. 이런 것이 옛날 문양에 많이 나오죠, 이런 것들도 결국 영원을 뜻하는 기호에요. 말하자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그런 기호란 말이죠. 이렇게 크게 인간 역사에서 영원에 대한 견해는 선적인 영원과 원적인 영원으로 나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러한 선적인 영원, 원적인 영원할 때, 그러면, 하나님의 영원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여기에서 하나로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돼요. 이런 것들은 인제 그 불교에서 가지고 있는 순환이나 아니며 는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윤회 적이고 반복적인 영원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러면 성경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들이 이 영원의 문제를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느냐? 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서 영원을 어떻게 둘로 나누나 하면, 우선 첫째는 본체적인 영원, 그리고 그다음에 두 번째가 효과적인 영원이에요. 본체적인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거죠, 하나님이 자신을,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영원이신데, 이 하나님은 선적인 ( )영원, 원적인 영원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선이던지 원이던지 그것은 시간의 길이를 나타내는 거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고 그랬잖아아죠, 그죠,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선적 영원도 아니고 그다음에 효과적인 영원도 아니시다 이야기에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하신 분이시더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그 하나님은 시간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물질이 도입되므로 말미암아서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거죠. 그래서 시간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존재 하냐하면, 어떤 물체가 있으면, 그 물체가 지금은 있어요. 있는데 이 물체는 없는 것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이런 개 여기 있어요. 지금 있거든요. 이것도 여기다 내버려 둬서 한 50년쯤 지나면 거의 다 썩어서 없어지겠죠. 그죠, 매일 매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부패 하면서 없어져 가는 거죠. 그렇게 없다가 생겨남으로써 시간이 시작이 되고 그다음에 있는 것에서 일정기간 동안만 이렇게, 여기에는 없었어요. 무야, 그러다가 그 다음에 탁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어쨌든 생겨나요. 생겨나서 간단 말이에요. 가는데 이게 이런 게 똑같이 있다가 수명이 30년으로 30년 만에 요술처럼 싹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수명이 30년이라고 하면 이것이 만들어 지자 마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있음을 상실하면서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죠, 10년 된 수건과 20년 된 수건이 틀리 단 말이죠, 색깔도 틀리고, 그 다음에 부피도 틀려요. 이렇게 이것이 없음을 향해서 가는 동안에만 시간이 측정이 되는 거죠. 그러다가 30년이 딱 되면 이것은 아예 없어져 버리고 다시 무가 되는 거죠. 그게 시간이란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시간에 매이시는 분이 아니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시간에 매이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이 시간에 대한 대 개념에 시간과 맞서는 반대편에 있는 개념이 영원인데, 이 영원에 대한 개념은 필연적으로 존재와 관련이 되는 거죠. 만약에 하나님이 시간에 묶이시는 존재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그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있다가 서서히 없어지시는 분이어야 지만, 시간이 하나님을 통해서 관측이 될 것 아니에요. 이해할 수 있죠? 어렵지 않죠, 아무 반응이 없네, 여태까지 수건을 가지고 설명을 했잖아, 그러니깐 하나님도 만약에 시간에 묶이시는 분이라면, 없었다가 하나님이 생겨나시고,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의 수명이 1억년이든 100억년이든 좋으니까, 하나님이 어쨌든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달아서 없어지는 가운데, 시간이 계측이 될 것 아니에요. 그리고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야 되는 것이어야 되잖아요. 그런 하나님이, 하나님이 실수 있어요. 그럼 그런 하나님은 누가 있게 했으며, 또 하나님을 없어지게 하는 것은 뭐고,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완전히 없어지면 그 하나님은 어디로 가느냐 이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시간의 속박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거죠.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하는데, 그 창조가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되어있는데, 그러면 그렇게 창조하셨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하고는 아주 뚜렷한 차이를 갖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은 무에서 모든 물건들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자신이 가지고 계신 “있음” 있음, 좀 어려운 단어에요. 우리말이에요. 있음, 없음은 없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은 있음으로 가득 찬 존재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시면서 당신의 있음을 나누어 주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도 계세요. 우리가 지금 지은 건물인데, 여기도 하나님이 계세요.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인데, 우리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다 이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 자신이 있음을 나누어 주신 거예요, 근데 나누어 주실 때 하나님이 아무렇게나 나누어 주시질 않고, 한계를 정하셨어요. 있음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 핸드폰으로 존재 하거라, 있음을 나누어 주신 거죠, 여러 가지 있음을 합쳐서 인간이 이렇게 만든 거죠. 또 하나님이 이런 나무를 창조하실 때, 당신의 있음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나무로 있거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한계를 지정하신 거에요. 이 나무는 나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내일 아침에 자고나면 여기서 황소가 뛰어나오지 않는다 이거에요. 이것은 존재하는 동안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무로 존재하게 한계를 정하신 것은 나무로 존재했다가 죽는 거예요. 인간으로 존재 하게끔 한계를 정해놓으신 것은 인간으로 있다가 소멸되는 거죠. 그래서 일단 이렇게 모든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사물들은 한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나무는 나무로, 사람은 사람으로, 토끼는 토끼로, 돌은 돌로 존재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그러는데, 거기에 히브리말로 보며는 ( )이게 뭐냐 하면 종류, 그것의 종류를 따라서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것의 종류를 따라서 그랬으니까, 고유하게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신 거죠. ( )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 하셨어요. 그러니까 짐승이 존재하다가 시대가 지나면서 몸집이 커지고 뼈다귀가 늘어나고 이럴 수는 있지만, 돼지에서 코끼리로 넘어가고, 코끼리에서 무슨 토끼가 되고, 토끼에서 땅강아지로 넘어가고 그런 것 없다 이거에요. 그 종을 넘어 설수 없게끔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모든 이세상의 존재가 한정된 가운데에 창조하신 거죠, 그런데, 이런 한정이 없으신 분이 있어요. 하나님 한분이에요. 하나님 한분이 그런 한정이 없는거지요. 하나님은 무엇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데, 그것은 한계를 정할 수 없는 거죠, 한계를 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계실 뿐만 아니라, 여기계시고, 여기 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 지하실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계신 거에요.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도 계시고, 온 우주 어디든지 안계신곳이 없는 분이에요. 그게 무한정, 한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계서 그런 존재의 양식을 가지는 것이거든요. 근데, 이제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은 이제 이게 시간 안에 묶이게 되는거죠. 시간 안에 묶인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하면, 자 여기 이렇게 ( )자기 존재가 자기존재를 인간이라고 칩시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누리는데, 문제는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가 현재라고 합시다. 그러면, 이쪽은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가 되겠죠, 그렇죠, 과거가 될 것 아닙니까? 그럼 이쪽은 아직 오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는 미래가 될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생겨나지요.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를 누릴 수가 없죠. 그러면, 과거는 흘러( ) 자기를 누릴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존재를 누릴 수 없는데, 그러면, 현재 누린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자신의 전 존재 안에서 아주 박막과 같은 두께와 길이를 잴 수 없는 아주 얇은 박막과 같은 시간이 현재에요. 그것은 두께가 무한대 분의 1이에요. 정말 무한대분의 1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금 말하는 동안에 그래서 ( ) 있냐. 이것을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현... 재” 하는 동안에 짝 지나가 버렸는데요. 어디 있냐 이거에요. 지나가는 거죠 그러면, 자신의 이존재속에서, 시간 속에 묶이게 되니깐, 이 박막과 같은 현재 ( ) 여러분들이 한 5년 전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젊었어요. 이렇게 밤늦게까지 강의 듣고, 집에 가서 자도 새벽에는 벌떡 벌떡 일어났어요. 근데 이제는 누릴 수가 없어요. 왜 ( ) 인생을 나이를 먹고, 이제 원숙해지게 되며 는 이 세상을 보는 눈과 이런 모든 것들이 달라지는 원숙한 인생관을 가질 수 있어요. 그것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근데, 그건 아직 오지 않았어요. 나중에 올 텐데, 근데, 아직 내가 못 누려요. 이게 바로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라 이거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존재를 누리시는 방식은 어떠냐. ( ) 시간을 초월하신 거죠. 한번에 하나님이 다 보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현재 밖에는 없어요. 뭐, 하나님은 추리하고, 생각하시고, 뭐 논리를 따지고 이럴 필요가 없어요. 한번에 다 보이니깐, 그러면, 하나님이 한번에 다아신다는 게 도대체 뭐냐, 자,( ) 많은 기억들이 이속에 있어요. 좋은 기억 나쁜 기억들이 많이 있는데, 그 기억들은 30년 전에 것도 있고 20년 전에 것도 있고, 10년 전에 것도 있고, 조금 아까 바베큐 먹은 기억도 있다 이거죠. 그러면, 그 모든 기억들이 우리 속에 시간순서대로 존재해요, 아니면, 시간과 상관없이 평면에 존재해요. 차례대로 존재해, 그러면 30년 그 기억 더듬으려면 한참 돌려야 되겠네, 하루하루 시작을 할려니깐, 그게 아니고, 한꺼번에 존재해요. 그래서 비유를 하자 며는, 여기 이렇게 ( ) 원판이 있는데, 여기서 사건이 많이 일어났어! 이것이 시간의 흐름이야, time 30년 전, 20년 전에 이사건, 10년 전의 이사건, 5년 전의 이사건 이렇게 일어났단 말이에요. 이게 과거가 되어버리면, 이게 다 일루 으로 들어가요. 평면으로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런 모양이 되어버리는 거애요. 이해돼요. 30년, 20년, 10년 5년 1년 전, 평면으로 딱 들어가 버린 거애요. 그래서 우리가 떠오를 때에는 반드시 99년 것 생각을 하면, 그 다음에 반듯이 2000년 것이 떠오르는 게 아니에요. 30년 전 생각이 떠오르고, 30년 전 했다가, 그다음에 휙 넘어서 다시 10분전에 일어난 일이 떠오르고, 그러다가 휙 넘어가서 40년 전 일이 떠오르는 거예요 시간이 안 걸려, 막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신기하지 않아요. 안신기해. 신기하잖아,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우리는 겨우 과거를 알고 그것도, 기억력이 희미해서 다 잊어버리고 엉키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으로써, 그렇게 우리가 과거를 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다 더 무한히 완전하게 하나님은 창조세계 시작부터 마지막의 영원까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한번에 아신다 이거에요,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생겨나게 되죠, 무슨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다 아신다, 그러면 하나님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여러분 영화구경 갈 때에 극장가면서, 자가가 그거 봤다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 되게 뵈기 싫죠? 끝에는, 그리고 끝에까지 이야기하고, 다 이야기를 해요. 다 알고 보면 재미 하나도 없지 않아요? 없죠? 그러면,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어떨 가요? 이제 고정도 해놓고요. 본체적 영원이 그런 거애요 나중에 더 설명 드릴게요.
그러면, 그다음에 영원이 효과적 영원이라고 그랬죠, 효과적 영원은 뭐냐 하며는 영원 자체이신 하나님이 어떤 사물들을 당신 자신의 영원하게 하시는 덕을 입히시므로 써 소멸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그것을 붙들고 계시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에 이 세계와 사물은 영원성을 갖게 되는 거죠. 이것을 가리켜서 효과적 영원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 대표적인 게 하늘나라죠, 하늘나라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을 이야기 하는 거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우리의 관심은 지상밖에 없지마는 하나님이 하늘나라와 이 땅을 함께 창조 하신 거죠. 그래서 천국은 하나님 자신이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며 직접 통치하시고, 천상나라는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시고, 지상나라는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당신이 우리를 종 삼아서 다스리지 않고, 우리를 당신의 대리자로 창조하셔서 이 땅을 다스리게 하신 거죠. 인간의 지위가 높아? 천사의 지위가 높아요? 그렇죠. 인간의 지위가 탁월하게 높은 거죠,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자체가 정말 굉장한 사건이에요. 그리고 이 지위는 정말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중에는 인간 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존재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 닮은 것을 많이 주셨어요. 많이 주셨어요.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영혼이에요 요한복음 4장은 뭐라고 말하죠?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본질이 영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영을 우리 인간들에게 부여하셔서, 영이신 하나님과 그 영을 부여받은 우리 인간들의 영혼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거애요. 그리고 그 인간에게 주신 영혼의 기능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성이에요. 그리고 사랑하는 애성,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의지, 이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에게만 원래 있었던 것들인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누어주셔서 지성으로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을 잘 이해하고, 애성으로는 그런 목적을 주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의성으로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실천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탁월한 영혼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누구에게 있느냐?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안 믿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너무 불쌍한 사람들이죠. 왜냐하면, 주님을 믿고 거듭나기만 하면,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이 깨어나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이 주신 창조목적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시 깨어날 수 있는데, 그런 훌륭한 하나님 닮은 존재가 되었으면서도, 짐승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의 영혼이 가장 순수 할 때가 언제나 하면,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면서 눈물을 흘릴 때, 그때 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찬 마음인 것이에요. 그런데, 인제, 천국에는 인간의 영혼만 동동 떠다니는 게 아니거든요. 천국에는 사물들도 있단 말이죠, 인제 이 낙원이 아니라, 우리들이 마지막에 부활 후에 들어가게 될 그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으로서의 그 천국에는 우선 우리의 육체가 들어가잖아요. 거기에, 영광스럽게 변화된 우리의 몸이 영혼과 만나서 들어가요. 그 육체가 바로 이런 육체라 이거죠, 물론 이렇게 시간성에 의해서 부패하고 있음에서 없음으로 사라지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몸이 들어가는 나라거든요. 당연히 거기는 생명시내 물도 있고, 뭐 거기도 사람의 몸을 입고 사는 세상이니까, 우리처럼 이렇게 먹고 마시고 자고 이러는 것은 아니지마는, 사물들이 거기에 나오죠, 그런데 계시록에 보며는 그걸 모두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마는, 유리 바다가 보이고, 거룩한 성이 보이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영혼이외에도 육신은 물론, 다른 사물들도 거기에 존재 한다고 봐야 하거든요. 그러면, 그것들은 영원한 것이냐 영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거죠, 영원한 것 인데,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과는 틀려요.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이세요. 그래서 무시무종한 존재로서 영원하세요. 그러나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그것들은 무시무종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무종해요. 시작은 있어, 근데 끝이 없이 계속 불멸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죠.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영원자체인 당신자신의 영원의 덕을 입게 하시므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부패하지 않고 영원히 계속 존재하게 하신 것이죠.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이 무슨 질문을 하게 되냐 하면 말이죠. 이런 천국에 있는 영원한 것들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냐? 초월하지 않는 것이냐? 하는 거죠? 그래, 여러분은 어떨 것 같아요. 시간을 초월 할 것 같아요 안 초월할 것 같아요. 어, 박수한번 쳐주세요. 초월하지 않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삼위일체교리에 관해서 설명한 기억이 날거에요. 그죠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한 하나님이시죠, 이 삼위는 각각 독자적으로 완전한 인격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세요, 그런데 성부 하나님밖에 없으셨어요. 그런데 성부하나님에게서 성자하나님이 낳으셨어요. 그리고 성부 와 성자하나님으로부터 성령하나님이 발출하셔요.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되신 것이죠. 그래서 성부, 그리고 성자,( ) 이렇게 해서 이 하나님이 각각 인격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은 성자하나님하고 성령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고, 성자하나님은 성부와 성령의 덕을 입어서 겨우 성자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그러하신단 말이죠. 그래서 이 삼위하나님이 계신데, 우리들이 얼듯 생각 할 때에는 처음에 성부밖에 없으셨다고 하니까, 시간적으로 성부 하나님이 계셨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성부와 성자가 생겨나셨고, 그다음에 시간이 더 지나고 나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시게 됐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게 될 것 아닙니까? 논리적으로 그렇죠, 그런데 이것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애요. 근데, 성부, 성자, 성령 모두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에요.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여기에는 앞뒤의 순서가 없는 거예요. 아까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이야기 하면서 30년 전에 일어난 일 10년 전에 일어난 일 이속에 순서가 없다고 이야기 했듯이, 영원세계 속에서는 순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순서라고 하는 것 성부 하나님이 혼자 계셨을 때, 그런 이야기를 못한다 이거죠. 왜 때라는 것 자체가 시간이니까, 시간이 계측되려면 소멸하는 사물이 들어와야 되요. ( ) 그러면, 어떻게 되냐하면 이렇게 되는거죠 ( ) 이렇게 본다면,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부 하나님에게서 성자 하나님이 낳으시는데, 시간하고 상관없이 영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시는 거애요. 성령하나님도 같이 빨려 들어가고, 그러니까 어떤 결론이 나냐 하면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낳으셨는데, 성부는 성자와 성령 없이 혼자 계시던 때가 없으셨다, 그리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낳으셨지만, 성부보다 나중에 낳으신 것은 아니다, 왜 ( ) 여기가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세계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해진 거라 이거에요. 만약에, 만약에 천국에 있는 것들이 정말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한다고 말해버리면, 이 성부 성자 성령처럼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같은 그 영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거죠. 그러면, 뭐냐하면 하나님이 계실 때부터 천국은 있었다는 결론이 되는 거죠. 그러면, 천국은 누구를 의지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겨난 것이 되는 거죠. 왜 하나님과 시간을 따질 수가 없으니까. 그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어떤 부주의 한 사람들은 제가 실제로 책을 봤어요. 이렇게 설명을 해요 이렇게 시간이 이렇게 되고, 이렇게 여기가 영원세계 여기도 영원세계인데, 하나님이 여기에 첫째 날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고 이렇게, 그리고, 인간역사 계속되어서 여기서는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끝나고, 여기는 예수님이 오셨겠죠. 그리고 여기에다 무엇이라고 하냐하면, 여기는 알파의 영원, 그리고 여기는 오메가의 영원해놓고 여기다 이 영계의 창조, 영적 세계의 창조, 천사들 밑에서, 천국을 비롯해서 이런 모든 것들을 창조하시고 그다음에 마귀에 어쩌고저쩌고 타락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다 여기의 영원세계 속에서 일어났다 이거죠, 이거 바보 같은 이야기라 이거애요. 그러면, 여기는 시간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다 영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여기에서 그 하나님과 모두 다 기원을 같이 하는 것들이 된다 이거죠 ( ) 많이 틀린 이야기라 이거죠,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첫째 날 이후에 창조 된 것이에요. 모든 것은 첫째 날 이후에 창조 된 것이에요. 그리고 세계 자체가 영적인 세계니까, 그 무슨 하나님이 뭐 건설하셔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그 순간이라도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이잖아요. 이렇게 ( ) 관계를 이해를 해야 된다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여기서 우리들이 존재와 시간의 문제로 들어가게 돼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 거기에는 창조하신 세계에는 사물들이 2 가지로 나누어져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가시적 사물과 가지적 사물로 나뉘어져요. 가시적 사물은 육체의 감관을 통해서 보는 거죠. 이런 것들이 모두 가시적인 사물이에요. 여러분도 가시적인 사물이에요, 눈을 가지고 보니까, 그러나 가지적, 육신의 육안으로나 혹은 감촉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분명히 그 존재가 있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성을 직접 사용 하여야지 만 파악이 되는 사물들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인간의 영혼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아니면, 우리의 육신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늘나라라든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런 가지적 사물이에요. 근데 이제 가시적 사물의 경우에는 육신의 감관을 통해서 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육신의 감관을 통해서 보니까 결국 어떻게 되죠, 우리의 눈을 통해서 이것들을 빛을 통해서 전달되어서 보고, 보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그것들을 판단을 하는 거죠. 그러면 시간이 각각 다른 의미와 양상을 지니게 된다 라고 하는거죠. 그래서 이제 사물들이 아까 설명한 것처럼 이렇게 ( ) 없었는데 여기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에요. 무에요. 무였는데, 이 무에서 생겨나 뭐가 하나 탁 생겨나, 그리고 시간 속을 계속 달려가, 여기에서 존재가 다 사라져서 다시 무로 돌아갔다 이거에요. 그러면 만약에 여기에다 밑에서 그래프를 그리면 이렇게 될 것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되지 않을까, 무슨 뜻 이냐하면 이 만큼이 이만큼이 이것의 원래 존재야, 이게 이만큼의 존재에요. 이게 예를 들어서 나무라고 하는 물건이라고 치면, 그러면 나무토막이 하나있다고 하면, 여기에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게 나무가 조금씩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없어지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아예 아무것도 안 남고 없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죠? 물론 그것들은 에너지로 변한다든지 뭘로 변한다던지 어떻게 되겠죠. 그런데, 그러면,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게 만약에 불변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영원한 것이라면 변함이 없어야 되거든 그러니까 똑같이 가져야 될 것 아니에요. 이렇게 그럼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여기가 있음이라고 치고, 그다음에 그리고 여기가 없음이라고 말한다면, 그러면 여기를 보면 여기에 이렇게 있음으로 가득 찬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없음에 의해서 잠식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뭐라고 하냐 하면 부패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부패, 부패하는 모든 것은 다 선한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한정은 정해져 있지마는 하나님의 있음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 있음은 선한 거예요. 선한 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는 모든 것은 다 좋은 거라 이거예요. 좋은 것을 하나님이 창조 하신거에요.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이렇게 원래의 있음을 상실하고, 점점 없음을 향해 달려감으로써 시간이라는 것이 관측이 돼. 그러며는 이쪽 편에서 보며는 없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돼지않는냐 이거죠. 그래서 이것을 부패라고 하는데, 그래서 나는 이 부패를 “존재에 대한 비존재의 침투다.” 이렇게 정의를 하는 거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침투되어 들어와서 그래서 존재하는 것을 잠식해 가는 현상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부패라고 부르는 거죠. 이것에 의해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의해서 시간이 관측되는 거죠. 왜냐하면, 존재하는 사물이라는 것은 어느 시간에도 그게 그대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계속해서 변한다 이거죠, 어디를 자르든지 간에 그 직전 것과 그 후에 것은 틀려요. 그래서 결국은 시간이라는 것이 관측이 된다 이거죠. 이게 바로 이 지상에서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사물들의 존재가 시간과 맺고 있는 관계의 ( ) 그런데 이제 또 하는 뭐냐 하면 이렇게 ( ) 않음에 의해서 잠식되어서 이렇게 사라져 가는데, 근데 이것도 사실 어떻게 보며는 영원히 있음을 역설적으로 영원의 세계를 입증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이렇게 없어진 다음에 이 없어지는 것 그 자체가 결국은 이 사물이 있다가 사라지면서 결국은 가는 곳은 마지막에 영원이라 이거죠. 영원, 있는 것들이 이 있음을 상실하고 부패하다가 마지막에 사라지는 것 그자체도 영원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거죠.
그러며는 이제 아까는 가시적 사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면 이제 두 번째는 가지적 사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가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이렇게 지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거, 가시는 무엇일까요. 눈으로 본다. 그런 뜻이에요. 이렇게 가시, 가지, 지성의 활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거 이런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육체의 활동으로는 알 수 없는 것 여러분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마는 누가 영혼을 본 사람이 어디 있어요. 너 요새 영혼이 참 많이 맑아졌다. 괜히 한번 넘겨짚어 보는 거지, 자기가 무슨 도사라고, 보이겠어요. 그게 그런 것들이 가지에요. 그러면 천국에 있는 사물들은 이 세상에서 육신의 눈으로 안목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하늘나라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 세상에서 바라보는 육신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 그런 방식하고는 현저하게 틀린 방식으로 물체를 바라 볼거라는 거죠, 하늘나라에도 물론 빛이 있죠, 그러나 ( ) 이렇게 태양 빛 아니면 이런 빛에 의해서 여기에 비쳐서, 그래서 우리 눈에 들어옴으로써, 아, 이게 컵이구나, 그리고 이게 마이크구나 수건이구나. 판단을 하지만, 하늘나라의 빛은 이런 전기 불빛이나 태양 빛이 아닐 거 아니에요. 뭔가 모종의 영광의 빛 일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빛은 광속이 얼마인데, 그렇게 말하면 굉장히 우스꽝스럽지 않아요. 영적인 세계에서, 그렇지 않아요. 우리 태양 빛의 그 광속은 얼마인데, 30 만km/sec 1초에 30만 km를 가는 거에요. 달까지 1.2초 걸려요. 그렇게 되는 거라이거죠 그러며는 이것들 속에서는 시간이라는 것이 그러면, 존재한다는 거냐? 안한다는거냐? 하는 의문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죠? 자 그러며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이 천국에 있는 사물들이 인간이든지 천사든지 포함해서 영혼이든지 무엇이든 간에 시간을 초월해 버린다고 그러며는 아까 이야기한 것같이 영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하나님과 기원을 같이하는 문제가 생겨나게 되고, 시간에 의해서 속박을 받는다라고 말을 하면 그러면 하늘나라에 있는 것들은 마모되거나 혹은 소멸되거나 하는 것이 없다고 봐야 되거든요. 뭐 거기에 예수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함께 우리도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입고 갔는데, 갔는데, 한 백년 지나니까 다 지팡이 들고 다니더라, 그러면, 그 뭐 영광스러운 부활일수가 없잖아. 그렇죠? 거기에는 그런 늙음 같은거, 늙음이라는 것 자체가 죽음의 기운이 파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게, 결국은 생명있는 것에 대한 죽음의 기운의 침투가 그게 결국은 젊음을 앗아가는 거거든요. 늙음이 들어오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사람은 소멸되어 가는 거죠. 젊었을 때는 축구하며 는 막 진짜 날쌘 돌이 같았는데, 나이 들어서 거기하니깐 헛발질만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발목이나 삐고 말이죠. 공은 안차고 남의 정강이나 차다 오고 말이죠. 그런 사람으로 바뀌는 거죠. 그러다가 죽음의 기운이 스며 들어와서 그러게 되는 거죠. 정신에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오게 되며는 고장이 나는 거죠. 뇌세포가 다 늙었는데, 뭐 이제는 뭐 입력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진퇴양난의 문제에 빠지는 거죠. 시간을 초월한다고 말을 하자니 하나님과 기원을 같이 하는 것으로 빨려 들어 가버리고, 또 시간의 속박을 받는다고 하다 보니까 거 말이 안되는 게 거기에서는 부패하거나 존재가 소멸되거나 뭐 이러지 않는다고 늙거나 뭐 이러지 않는다 이거에요.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되냐이거에요. 근데 시간이 없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왜 없다고 말을 할 수 없냐하면 말이죠, 제가 언젠가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 드린 적이 있죠.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대로 있겠느냐? 점점 더 증가 하겠느냐? 그렇죠? 만약에 그렇지가 않다며는 그 싫증이라는 것이 들어오게 될 거에요. 그렇죠? 여러분 예를 들어서 봅시다,
[예화] 굉장히 좋은 일이, 좋은 일이 어떤 게 뭐 좋은 일있까, 친구가 와서 야 너 정말 잘됐다 축하한다, 뭔데? 너 이력서 냈는데 그 회사에서 연락 왔어 너 합격됐데. 그럼 처음에는 뭐 백수로 3 년을 지냈는데, 뭐 강중강중 뛰면서 막 좋아라하고, 눈물이 글썽글썽 할 거야. 주님 감사합니다. 그럴 거야 그러고 조금 있다가 친구가 야 너 또 합격됐어 같은 이야기 두 번하면 응 아까 했잖아, 세 번, 네 번 하면 그다음에 짜증이 나겠죠. 그리고, 그가 첫 출근할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가겠지마는, 3 년 후에도 그렇게 할렐루야 아멘 하겠느냐 이야기에요. 왜, 아무리 기쁘고 엄청난 일이 생겨도 그것이 증대되지 않으면, 기쁨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에요.
그래서 왕년에 하나님 많이 만나도 소용없어요. 금년에, 금월에, 금일에 계속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야 되는 거예요. 자기는 뭐 성경을 배울 만큼 배웠다고 그러는데, 뭘 배웠는데,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조금씩, 조금씩 더 배워가는 가운데, 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러면 이제 답이 나오지 않아요. 그죠 변화 한다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시간을 끌고 들어오게 되죠. 그 시간의 종류가 무어냐라고 하는 것은 이야기 할 필요가 없고, 어쨌든 끌고 들오온다는 것 아니에요.우리 애국가에 보면 이런 가사 나오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난 그거 부를 때 마다 좀 썰렁해요 언젠가 백두산도 개발되고 생태계가 변화가 와서 동해물도 마를 텐데 그럼 그때는 하나님이 이젠 하나님이 안 보호하시겠네. 그죠? 제가 확인은 안해봤습니다. 누구한테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일본 사람국가는 이런 가사가 나온대요. “모래알이 모이고 뭉쳐 바위가 될 때까지” 응, 그러며는 모래알이 뭉치고 뭉쳐서 바위가 되는 것은 형성의 영원이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영원은 마모의 영원이야.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좀 처연해. 아주 좀 처량하고 그래요. 그 진달래꽃, 김소월 시,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뭐라고 하느냐 하며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오히려, 가면 발모가지를 부러트릴래요. 그래야지 맞지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를 버리고 가며는 발모가지를 꺾어 버릴 거야 이래야 맞는 건데, 가십시오. 그냥가지 마시고, 내가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을 따라가 쫘아악 뿌려서 분홍색 길을 만들어 줄 테니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근데 사실은 그게, 우리나라 사람의 이 멘탈리트(mentality)를 이해하며는, 그게 가면 죽여버린다는 것 보다 더 무서 운거에요. 그리고 사뿐히 즈려 밟고 진짜 가면 그 여자는 어떻게 되는거에요. 피토하고 죽는 거지, 진달래 꽃 위에서, 발목 분질러버릴거야 그러다가 차마 발목을 분지르려고 하는 자기의 그 시도가 좌절된 그 여자는 계속 씩씩하게 살고 다시 시집갈 수 있어도 그 사랑하는 사람을 이 진달래꽃 밟아서 보내고 혼자 남은 그 사람은 거기서 피를 토하고 죽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가면 죽여버리겠다는거 보다는 더 무서운 이야기죠. 그래 우리한국사람 멘탈리트가 그래요. 어떻게 보며는 굉장히 멋있는 거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걸 보면서, 마를 때 닳을 때 까지만 하나님이 보우하시냐? 이렇게 나처럼 묻는 건 바보 같은 질문이라 이거에요. 근데 성경적으로 보며는 천국에서 시간이 있지만, 여기에서 측정되는 것은 마모를 통해서 측정되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야. 그럼 무얼까요. 그렇죠! 형성과 증진을 통해서 측정되는 시간이죠. 그래서 천국에는 매일매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새로운 지식이 주어져요. 새로운 지식이 주어지고, 그 빛이 비칠 때 마다 그 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느낀 모든 기쁨과는 비교되지 않는 새로운 기쁨이 전율하듯이 밀려오는거게요. 그런데 그게 매순간 매순간 되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이런 걱정하죠, 아니 그렇게 하나님이 자꾸 보여주시면, 어느 때까지 가며는 인제는 없을 텐데, 그런데 그것은 한정이 정해진 사물만 그래요. 그렇죠. 우리도 이렇게 강의하는 거 참 좋지만, 매일 5년만 하라고 그러면 무엇을 할 게 있겠어요. 매일 5 년까지도 안갈 거야 아마, 매일 1 년은 버틸까, 매일 하자고 그러면 1년은 버틸지 모르겠지 365개의 강의니까 그러면, 한 2 년쯤 하자고 그러면, 버틸 수 있겠어요. 매일 저녁 와서 돼지고기 먹고 여기서 계속 하라고 하면, 뭐 밑천이 있어야지 할 거 아니에요. 그러지 않아요. 근데 하나님은 그럴 걱정을 할 게 없어요. 왜냐하면, 충격적인 새로운 하나님의 관한 성품이 존재에 관한 비밀들이 우리에게 알려져도 하나님은 무한대한 무한하신 존재자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알려져도 끝이 없이 알려 줄 것이 남아있는 존재에요. 그래서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거죠. 그런데, 지옥은 정 반대에요. 하나님의 공의와 두려움 성품을 보여주시므로 말미암아 매순간 전율하듯이 공포와 두려움 속에 새롭게 떨어서, 지옥의 형벌과 그 두려움의 공포에 결코 면역되는 법이 없다 이거에요.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계를 죄로 망가트린 그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도전이에요. 그러니까 죄질을 말하자면, 그 무한한 죄의 크기야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선 무한한 형벌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고, 또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주신 그 구속의 은혜는, 구속의 공로는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죄를 용서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무한한 기쁨과 그리고 영광을 베풀어주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하다이거에요.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제 천국에서의 시간은 어떤 식으로 계측이 될 것인가. 그죠. 그러면 우선 성도들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계속 자라갈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시간이 흘렀음을 알게 되는 거죠. 우리 자신이 그렇지 않아요. 아유, 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옛날에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부끄러워. 그땐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 자신 깐에는 꽤 안다고 그랬는데,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고, 그래서 결국은 교만하게 행했는데, 아 정말 부끄럽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벌써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 사람 속에서 자랐다는 것이죠. 그걸 뜻하는 것이죠. 그러면, 천국에서는 똑같이 그런 식으로 시간은 존재하고 있고, 사물들은 그 시간과 관련을 맺고 있다라고 봐야 된다 이거죠. 맺고 있다라고 봐야 된다 이거죠. 그리고 거기서 영광도 증진해요. 처음 거기에 갔을 때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있지만, 그러나 그 영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시되어지는 하나님 자신의 대한 계시로 말미암아서 그 영광은 더 찬란하게 증진되는 거죠. 그거에 따라서 성도의 기쁨도 증진되는 거죠. 그러니까 천국은 싫증이 날수가 없는 거죠 매일 매일 새로운 하나남의 놀라운 은혜 속에서 접어들게되는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맛보는 그 놀라운 기쁨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며는 지적 희락이에요. 지적 희락, 왜 그 모든 기쁨과 영광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당신 자신 존재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시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거죠. 이 땅에서 우리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등 따뜻하고 밥 많이 먹는 나라가 아니에요. 그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에요 그래,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들이 새롭게 깨닫고 거기에서 놀라운 하나님 자신의 지식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때 우리가, 죄에 묶였던 우리의 영혼에는 자유가 주어져요. 그래서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거죠 그 시간이 흐름 속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듯이 하늘나라에서는 죄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점점점 증진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성도들은 한없는 기쁨 속에서 일생을 살게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아 하나님이 그런 분이셨구나, 내가 정말 그런 줄 모르고 이렇게 무지하게 살았구나! 그리고 막 회개할 때, 그리고 나서 밀려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쁨이 있죠. 그 다음주에 와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니까 더 무지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또 다른 은혜의 빛이 들어와, 이러면서 계속해서 증진되는 기쁨이 하늘나라에서 맛보는 그런 것들이 그것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다고 생각을하면 되는거에요 그게 하늘나라에서 맛보는 기쁨이에요. 그런데 그러며는 우리들이 이것을 천국에 있는 사물이 시간에 묶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해야되냐하며는, 천국에 있는 사물이 시간을 초월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거기에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러나 지상에 있는 사물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상성을 벗어나지 못해요. 무상성 무슨 뜻이에요.”덧없다“ 이거에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덧없는 거죠. ( )영화배우들이 한때에 너무너무 예쁜 배우였는데, 잠깐 시간이 흐른거 같거든 어느 날 나왔는데 할머니 역할로만 나온다 이거에요. 그러면 그 예쁜 얼굴도 무상하잖아요. 무상성을 지니고 있는거에요. 시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무상성을 가지고 있는거에요. 왜 이게 존재하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치달으니까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그렇지 않죠. 천국에 가서는 그래프 ( ) 있다가 이렇게 되는 거죠. 영원이 점점 증진하는 거죠. 이렇게 근데 무상성이 아니지, 무상성은 이게 없는 것을 향해 달려서 덧없다는 거거든. 그런데 이렇게 증진한다 이거죠. 증진함으로써 시간이 파악이 되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증진함으로써 시간이 파악이 되고 이것은 마모됨으로써 시간이 파악이 되는거죠. 그러니까 똑같이 시간 안에 있지만, 이것은 무상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과 관련하고 이것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지만, 시간이 주는 무상성으로부터는 벗어난 존재라 이거에요. 이게 하늘나라라 이거에요. 그러나 시간을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는 거죠. 그것은 인제 중요한 교리적 사실이에요. 근데 이제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하늘나라에서는 이 시간의 개념이 이 땅에서의 시간의 개념하고 좀 틀릴거라는거죠.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는 지금 보다는 훨씬 더 광범위한 지식을 소유한다고 봐야돼요. 왜냐하면, 하늘나라에서는 성경이 필요가 없어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아는 것을 아니죠. 그래서 이 땅에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의 마지막 때가 언제인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니까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 이거죠. 그렇지만, 지상에서 보다는 훨씬 더 폭 넓은 지식들을 소유하게 되고, 어떤 면에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 중의 일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시간이 있긴 있지만 그 시간이 이 땅에서 존재하는 그런 물리적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기에서 우리들이 존재와 시간에 대해서 이제 것까지 두 번째로 살펴봤어요. 그러면 세 번 째로는 하나님과 시간성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느냐? 그 이야기죠. 자 그러면 이제 여기서 우리들이 아주 심각한 질문을 하나 하게 되는 거죠.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미 과거와 미래가 없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번에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것이 이제 시간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 발생하거나 인간의 어떤 행동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어디 그런 일이 일어났단 말이냐, 그리고, 천사들을 향해서 새삼스럽게 물으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란 거죠. 그렇다며는 하나님은 이세상이 뭐가 재미있으실까? 이미 영화 다본 영화 다시 한번 돌려보는 것처럼, 그렇게 시시하지 않으실까? 그러면, 그렇게 시시한 영화처럼 돌아가는 이 프로그램에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시간 세계 속에서 살아야 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좀 엉뚱한 질문인 것 같지만, 그런 질문도 나올 수 있지 않아요. 그런 의문을 가져보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이거죠. 모든 지식은 의문에서 생겨나게 되니까, 이제 여기에 그림을 제가 그렸는데, 보세요. ( ) 이렇게 하나님의 초시간적 아심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삼위일체 안에서 이미 경험 된거든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시는데, 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아셔요. 그리고 사랑하시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되는거죠.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성자는 성부를 알고, 이렇게 서로를 아신다 이거죠. 이것이 시간이 없는 초 시간의 세계니까 이렇게 뭐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을 아시고 하는 모든 것 들이 이렇게 평면적으로 아시는 거라 봐야 되지 않겠어요. 그죠, 이렇게 모두 아시는데 이렇게 아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이 시간 세계 속에서 존재하게 될 모든 사물들에 대해서 아신다는 거죠. 그러며는 이것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 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없이 존재하게 되니까 시간이 없이 존재하게 되니까, 비유를 하자면, 시간 세계 속에서 이렇게, 이렇게 겹쳐지는 것을 시간을 초월해 버리면 확 눌러 버리며 는 여기에 이런 그림처럼 될 거 아니냐 이거에요. 그러면, 하나님 안에는 이미 시간이라는 것이 상관없이 인과관계, 아주 이해하기 쉽게 잘 이야기를 할게요. 예를 들면 뭐 ( )이렇게 있다고 쳐요. 근데, 이렇게 해서 이것을 툭 쳤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게 땅에 뚝 떨어졌어요. 못 찾았어요. 그런데 어떤 형제가 주웠어요. 주워서 열어보니까 여기 돈이 뭐 별로 없네, 몇 장 있네. 그래 이것을 가지고 가서 친구랑 만나서 무엇을 사먹었어. 사먹고 돈이 남아서 그다음에 또 썼어. 이러면서 일주일동안 시간이 흘렀어요. 그런데 시간을 싹 빼버리고 딱 연결을 하면 어떻게 되죠? 이런 식으로 될 것 아니에요 ( ) 지갑을 툭 쳤다, 땅에 떨어뜨렸다. 떨어뜨린 것이 저 형제의 수입이 되었다. 수입을 올린형제가 친구와 같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싸우다가 경찰한테 잡혀갔다. 그래서 3일 동안 구류살고 나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뭐 이런 식으로 될 것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알죠. 그러니까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만이 쫙 연결되어서 평면 속으로 딱 들어오게 된다 이거에요. 이해되죠. 이거 더 쉽게 설명 못해요. 이거 제가 고안해 낸 것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는데, 그러면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만물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에 대해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것은 시간을 넘어설 수 없고, 시간 안에서 원인과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무슨 이야기인지 알죠. 시간을 초월하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은 없지 않아요. 그렇죠? 맞지 않아요. 시간 안에서 그런데 그것은 시간의 개념을 빼버리고 하나님이 한번에 아신다고 하니깐 결국은 확하고 쭈그러트려 버리면, 인과 관계만 남게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 아시는 거죠. 그리고 딱 보시면서 열린 교회 ( ) 여러분이 와서 은혜 받을 것도 아시고 또 미끄러져서 헤맬 것도 아시고, 교사 직분 주었는데 열심히 할 것도 아시고, 집어치울 것도 아시고, 미끄러질 것도 아시고, 그리고 죽을 것도 아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거죠. 아는 것들이 이 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지식이 이런 식으로 평면 안에 하나님 안에 한눈 안에 팍 보이느거죠 그러면,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니까, 이 세상이 창조되기전에도 이미 벌써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거죠. 창조자체가 이러한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지성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계획들이 시간 속에서 구체화된것 뿐이라 이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까? 그러며는 목사님 여기에 이게 영원 전부터 존재하던 거라면 이거는 뭐 하나님하고 시간의 기원전부터 같이 하겠네요. 그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왜냐하면 머릿속에 있는 것이니까. 그렇죠. 그러면 여러분 경우 머릿속에 있는 거 그러면 여러분 자신의 일부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거. 그러면 언제부터 생각했는지, 그러며는 만약에 이런 게 없었다고 그러며는 하나님은 영원 전에 상당히 많은 기간 생각을 안하면서 계신던 때가 있었다고 말해야 되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그러니까 더 이상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같이 있었다고 해야 말이 되는 거지요. 기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 소속에 대한 문제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데, 이게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게, 얼마나 하나님께 시시하겠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여기에서 인제 중요한 시간성의 문제, temporality의 문제가 들어오는 거예요.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그렇지가 않다 이거에요.
이제 설명 할 테니까 잘 들어요. 자 ( ) 이 계획들이 시간 속에서 실타래처럼 펼쳐져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펼쳐져 나오는 거예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게 나타나는 것에요. 이렇게 그러면 이 안에 있는 것이 이 시간이라고 하는 세계 속에 당연히 공간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에, 나타나게 될 때에 새로운 것일 수는 없겠죠. 새로운 것일 수는 없겠죠. 그래서 하나님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나가는 것은 없겠지마는 여기에 나타나는 이것이 영원세계 속에 있을 때와 시간과 공간세계 속에 나타났을 때에 그것은 상당히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는 이거죠. 다르다는 건 무엇이냐 하면, 틀리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며는 예를 들어 봅시다. 천지를 창조하시잖아요. 빛이 있으라. 하시매 있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게 6일을 계속되다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셨더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냐. 그러면 우리는 마음속에 뭐가 있어도 실제로 해놓고 보며는 야 진짜 내가 만들어 놓고 보니까 너무 좋네.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는데,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형체나 빛깔 모양 이런 것들이 단일체로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데 그것이 조합을 이루었을 때 어떻게 될지는 육신의 감각의 눈으로 직접보기 전에는 이 머리 속에서 연상이 잘 안되는 거죠. 그래서 저 옷을 입으면 너무 이쁠 줄 알고 입었는데, 입어놓고 보니까 아니야. 배나온걸 생각을 안하고 옷을 산거야. 이런 착각이 인간에게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거 있을 수 없다 이거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면 더더욱 시간세계 속에서 이것들이 그 나타나는 게 하나님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이제 시간 세계 속에서 이것들이 펼쳐져 나오게 될 때에 이것들이 아주 놀라운 의미를 가진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거죠. 자 그러면 여기에서 조금만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며는 ( ) 여기 이렇게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당신 밖의 세계를 창조하셔요. 이렇게 세계에 있는 사물들이야 이게. 이렇게 세계에 있는 사물들이야, 그러면 우리들이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여기 이렇게 계시고, 그리고 이 하나님이 자기 밖아 테다가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래서 이 세계를 통해서 이렇게 해서 당신 자신과 다시 교통하시는 것이 바로 이게 창조구나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근데 이런 그림자체가 틀린 것이라 이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밖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어요. 밖이 있을려며는 어떻게 되죠. 아까 이야기한대로 한정이 되어 있어야 되거든요 존재가. 존재가 구역을 지어서 딱 한정이 되어 있어야 돼요. 여기까지는 나무인데 여기부터는 공기야 나문데 여기 공기라 이거죠. 그러니까 한정이 이렇게 되어 있는 거죠. 그러면 여기는 나무 안이고, 여기는 나무 밖이잖아요 근데,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이거에요. 왜 이런 경계가 없이 무한정이신 분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결국은 무슨 이야기냐 하며는 이것이 계속해서 무한대로 이 외곽의 선이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은 뭐냐하며는 잘 들으세요.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이 안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거죠. 하나님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까 하나님은 아니잖아요. 잘못하면 이것도 범신론이 된다 말이죠.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까 하나님은 아니야 ( )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존재론적인 격차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벗어나지 못해요. 왜, 하나님이 무한정 하신 분이시니까. 그래서 시인이 뭐래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내가 주의 낯을 피하여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무한정이신 분이시니까 그러니까 이런 그림이 안맞는 거다이거죠 그런데 뭐 어떻게 그릴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그리지마는, 그게 아니라 이거죠 이렇게 ( ) 계속 뻗어서 결국은 이 경계선을 그릴수가 없이 하나님은 무한정하신 분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안에 있지만, 또한 하나님 자신은 아니야. 그래서 하나님과 피조물은 뚜렷이 구별돼요.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은 있음을 상실하지 않은 시는 분이신데,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이것들은 있음을 상실하면서 소멸되어서 시간을 계측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이거에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이 창조는 성자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창조하신 거예요. 이 성령 안에서 창조되었다라고 하는 이것이 바고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이거에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된다이거죠.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죠. 이제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재미있는 시사점을 주는 그게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하며는 창세기 1장에 보며는 1절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절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되있거든요.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게 하나님의 신. 그것은 간단해요 르와프 거든요 이게 영이란 말이에요. 성령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두 번째 단어가 문제인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운행하시니라, 운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셔틀버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운행이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그래서 이렇게 떠나가고 나면, 여기는 비어있어 공이에요. 여기에 유대면 여기는 공이에요. 이게 다시 돌아와 이렇게, 그렇게 되면 여기는 유지만 여기는 공이에요. 이게 운행의 개념이지 않아요. 운행의 개념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운행하시니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가 메라헤페트라고 하는 히브리 단어에요. 좀 어려운 말인데, 이거는 원래는 이런 뜻이 아니에요. 번역하기 좀 어려운 뜻인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너풀거리다” 뭐 그런 뜻이에요. 이것은 분사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2장에 가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독수리가 있는데, 새가 있는데, 이렇게 새 둥지가 있고, 등지위에 여기 새끼들이 이렇게 있겠죠, 어미가 이렇게 보호하면서 펄럭거리는 거예요 새가 이렇게, 그러니까 이 새가 이 둥지보다 더 큰 개념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여기에 나온거죠.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세계가 이렇게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 모든 우주를 우주보다 더 크게 이렇게 덥고 계신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이 성령 하나님 그 안이라고 하는 in-sprit 성령 안에서라고 하는 이것을 벗어날 수가 없는거에요. 회피할 수가 없는거라 이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나오는 게 무엇이냐 하며는,
그러면 이게 하나님은 과연 정동하시는가? 라는 문제에요. 정동이라는 것은 무엇이냐하며는 제가 설교시간에 변정이라고도 몇 번 이야기 했는데, 이제 여기서 눈을 가지고 이렇게 사물을 이렇게 봐, 무슨 사물인가를 봤어요, 육신의 눈으로 그러면 이렇게 정보가 들어오지 않아요. 여기는 정신세계야. 눈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뭐 귀로 들을 수도 있고, 어째든지 간에 외부의 사물과 접촉을 통해서 정보가 들어오게 되면 이것이 어떤 커다란, 이것이 여기에 들어오게 되면, 이게 어떤 지각이 되는거에요. 지각이라고 그래요. 이 지각이 된 것은 하나의 정보의 덩어리에요. 느낌과 정보의 덩어리에요. 이것들이 지각이 될 때, 여기에서 이 마음속에서 출렁하는 정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거에요. 그것과 함께 이 물건이 무엇인지가 이 지성에 맺히게 되는거에요. 그런데 잘 들으세요. 요게 요렇게 어떤 사물을 보고, 이 본 것이 지성으로 이렇게 간여할 때에는 이 존재가 무엇인가 라는 것에 관계가 많아요. 여긴 지성이에요. 근데 출렁거릴 때에는 이것이 호불호의 느낌이에요. 호불호 좋으냐. 나쁘냐? 이렇게 지성이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인간이 이것을 느끼는 호불호의 감정을 통해서 이 사물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되는 거야, 그런데, 이 호불호의 감정이 출렁거림으로 나오게 된다이거에요. 출렁하고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게 자기가 좋아하는 거며는 마음이 호하는 쪽으로 기울겠고 사랑의 감정이 되겠죠. 출렁하면서, 불호의 감정은 협오나 미움 뭐 이런 게 되겠죠. 그렇죠.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해서 출렁거리며 일어나는 것은 어디에 관계가 되느냐하며는 의지에 관계 되는거에요. 이렇게 해서 존재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은 지성에 관계되고, 여기서는 의지에 관계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머리, 가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머리, 지성을 이야기 하는 거죠, 그 다음에 감정 뭐 이런 것들이죠. 이렇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정신작용, mind 인간의 이 마음 안에서, 정신 안에서 이 2 개가 통합을 이루어서 결국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행동하게 하는 원리가 되는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며는, 그러면 아까 설명한 것처럼 이러한 하나님의 지성 안에 사물들의 인과관계가 이렇게 얽히고 설 켰는데 이것들이 시간 속에서 이렇게 드러나게 된다 이거죠.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렇게 드러나게 된다, 그때에 이 모든 것을 다 한꺼번에 보시는 하나님이 이것을 보시면서 하나님도 사물을 이렇게 보고, 하나님이 이렇게 보실 때에 이건 시간 세계 속에 들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세계 속에 계시니까 여기에 있는 어떤 계획들이 사물로서 이렇게 나타났어. 나타난 것이 다시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지성 속으로 들어갈 때 그러며는 하나님도 출렁하는 이런 감동을 받으시는 분이냐라는 문제가 나오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yes no, yes, 그러면 이제 중요한 문제가 생겨나죠. 논리적으로 그러면 출렁하고 무엇인가 일어나, 아까 yes라고 그런 사람 잘 들어봐요. 출렁하고 무언가가 일어나요. 난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안 일어나던 때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있죠. 그러면 안일어날때가 하나님 마음에 있다고 치자 이거에요. 그러면 일어날 때와 안일어날때를 이야기를 하니까 거기 무슨 개념이 들어가요. 시간이 들어간다 이거에요. 그러며는 하나님이 어떻게 시간을 초월하신분이 되냐라는 문제가 나오는 거죠.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을 죽어도 생각해 본적이 없을거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어떤 형제가 목사님 복음이 왜 이렇게 어려워요 그러는데 복음은요. 뭘 모르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 복음은 넓은 의미의 복음과 좁은 의미의 복음으로 나누이는데 좁은 의미의 복음은 한 줄이야, Jesus died for us,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한 줄이에요. 한 줄이에요. 그건 안 어려요. 그러면 내가 내일서부터 계속해서 설교시간에 그거 한마디만하고 내려올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Jesus died for us 다같이 축도합시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복음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복음교리야 복음교리. 그건 어려워요. 공부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적이 있어요. 이해가 안돼서 이해가 안돼서. 여러분 이 한 시간 털어놓으니까 뭐 간단한 것 같지만 몇 년 공부한거에요. 그러면 이제 다 그만두고 Jesus died for us, 그것만 할까요? 그러면 성자가 없어요. 로마서도 복음 아니야, 복음교리에요. 복음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뭐 16장씩이나 나가요. Jesus died for us. 그러면 끝나는 거지 예수님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멘. 그리고 끝나는 면 되는 거지, 그런데 16장까지 있어요. 그걸 또 풀어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며는 무한정이죠. 그게 끝이 없는거에요. 몇 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하며는 로마서 6장 14절 죄와 은혜의 지배를 설교할 때거든요. 우리는 항상 교회에 오며는 교인들이 꼭 물어보잖아요. 오늘 예배 어땠어요. 그러게 물어보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교인이 그러더래요. 아 어떻게 6장 14절을 가지고 90분을 설교하실 수 있습니까? 옆에 있는 교인이 오늘이 16번째입니다. 복음 교리는 그래요. 거기 봐요.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할지니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음이라.” 그것만 계속 내가 읽어주었으면, 그런 은혜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겠어요. 머리털이 빠지도록 그것 쓰는데 만 2년 걸렸어요. 원고지 3,000매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볼 때, 아 그 성경이 열리면서 거 빛들이 막 들어오는 거죠. 예수님께서도 엠마오로 올라가서 그 예수님이 죽으신 것, 부활한 것 말귀 못 알아듣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올라가시면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것만 읽어주셨어요. 그게 아니라 선지서부터 시편까지 쫙 해설을 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해석을 해주신 게요. 그랬더니 막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서 이들이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보게 되지 않아요. 그렇게 된 거란 이거죠. 그러니까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아야지. 사람들이 굉장히 무식하다 그런단 말이죠. 그래서 그렇게 복음교리를 공부함으로 말미암아 성경 속에 있는 진리들의 빛들이 새롭게 다가오게 되는 거죠. 생전 이런 생각해본 적 없을 거예요. 근데 결론은 뭐야, 하나님이 무엇을 볼 때 출렁거린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그럼 안그러신때가 있을 테니까, 그러면 시간의 개념이 들어오게 되느거죠. 그리고 하나님의 불변하심이 또 문제가 되죠. 하나님이 불변하신다고 그랬는데, 출렁거리신다 이거죠. 나도 맨날 기도해도 어떤 때에는 출렁거리시고 어떤 때에는 별로 기분이 안 좋으셔서 안 출렁거리시지 그러며는 이것도 일관성이 없지않아요. 그래서 책 펴봐요, 42page 마지막 단락, 거 바로 위에 중간에 “인간은 자기 밖의 환경에 의하여 겪음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제 환경으로부터 겪음이라고 그래요. 겪음, 겪음은 인간에게 감흥을 가져와, 겪으니까 인간이 반응을 해야될것아니에요. 반응하는 것에 계속 반복하다가 보며는 인간이 이 자신의 양태가 바뀌는 걸 경험해요. 이것을 변양이라고 그래요. 예를 들자면, 전혀 덜렁덜렁되던 사람 이였는데, 꼼꼼한 회사의 일에 종사를 하게 되는거에요. 그래가지고 매일 시말서를 쓰는 거야 계산 틀렸다고, 그래가지고 눈에다가 안티프라민을 바르면서 졸음을 쫓아가면서 주판을 두드리고, 계산기를 두드려서 정확하게 하는 것을 계속 훈련을 받는거에요. 그게 뭐죠 바로 “겪음”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이 사람이 매사에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변해가는거에요. 그게 바로 변양이란 말이죠. 인간은 그렇게 변화되는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종류의 겪음이 없으신 분이에요. 뭐 하나님을 괴롭혀가지고 하나님을 변동시키고 그럴 수 없는 분이라 이거죠. 무한하신 분이시니까. 그래 잘 들어봐요. “겪음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감흥하고 이를 통하여 영혼과 마음의 자질과 성향들이 변해갑니다.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창조목적의 실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정동, 이런 출렁거림을 경험하는 분으로 인간에게 이해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출렁거리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경험하게 되는 효과가 하나님 존재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 안셀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진실로 당신은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자비로우시지만, 당신 자신의 경험을 따르면 자비로우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우리가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실 때에 우리는 당신의 자비를 느끼지만, 당신은 어떠한 정동도 느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야지 만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며는 이제, 영원을 마무리가 되어가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여기그림보세요 ( ) 생각할거냐 이야기죠 이렇게 시간 세계 안에서 드러나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현 실태, 현실적으로 어떻게 존재하시는 분일뿐 아니라 영원한 영원이시다 영원한 경향성이시다 이거에요. 그래서 잘 보세요. 하나님은 영원히 현재적이시면서 동시에 영원히 현재화되시는 분이시다. 영원히 현재적이시면서 또 계속해서 현재화되시는 분이시다. 이야기에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지성 속에 있는 것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펼쳐져요. 이 펼쳐지는 것들을 보시면서, 펼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실 때, 그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한 그것은 무엇이냐 하며는 하나님 자신 안에 출렁거리는 정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그런 효과를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효과를 느끼게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거에요. 만들어 주신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에 얽매이시지 않고 영원히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되신 거죠. 그럼 어떤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해요. 아니, 그러면 뭐 하나님이 계신데 그러면 우리가 착한 일을 해도 하나님 안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데, 하나님은 돌멩이 같은 존재란 말입니까. 그게 아니죠,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것까지 영혼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밖에는 접해본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들이 일어나는 정신작용과 모든 것들이 인간에 익숙해져 있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수준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초월하시는 존재에요.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작품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출렁거리시지 않아도, 이렇게 출렁거리시지 않아도 인간으로 하여금 충분히 선한 일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 자신은 출렁거리시지 않아도 하나님이 정말 자기를 인정해 주시고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시는 거죠. 그런데 그 느끼는 그 자체가 인간이 아무것도 없는데, 인간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을 행하고 창조목적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놀라운 사랑, 위로 이런 것들을 충분히 느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당신자신 존재의 효과를 경험하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 우리는 그것 때문에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나타나게 되는 효과 그 자체도 하나님의 자신에게로부터 오는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참 놀라운 거예요. 하나님의 존재자체가. 그래서 결국은 들어보세요. 하나님 안에 이런 것들이 영원한 계획이 있어서 시간세계 속에 펼쳐질 때에 이것은 새로운 건 아니에요.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펼쳐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하나님의 영원한 지성 속에만 있을 때에는 여기에 사는 인간들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인간이 어떻게 알겠느냐 이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모른다. 이야기에요.
[예화] 저 자매가 3 개월 후에 아주 굉장히 뛰어난 형제를 만나서 ( ) 그다음에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많고, 인간성도 좋고, 집안도 훌륭하고, 키도 크고 발도 크고, 턱도 길고, 이런 형제를 만나서 시집을 가게 되어있다 이거에요.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여기 다 있어요. 저 자매가 시간을 초월해서 기뻐할 수 있겠어요. 일어나지를 않았는데, 턱긴 형제 커녕은 코 긴 형제도 안 나타났는데, 기뻐할 수 없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이 시간 속에서 전개가 되는 거예요. 짠하고 나타났어요. 딴다단, 그때 비로소 확 기쁨이 펼쳐지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의 선하심을 찬송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남은 날들도 주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살면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하는 선 하실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고난과 슬픔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는 새로울 것이 없지마는 인간의 입장에는 하나님의 지성 안에 있는 이 영원한 계획이 시간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 인간에게는 엄청나게 놀라운 기쁨이고 그런 기쁨을 얻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에 복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아주 큰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시간 세계 속에서 다가오게 되는 거예요. ( ) 문제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 균형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며는 이런 시간성 이것을 temporality라고 하는데 temporlitas라고 그래요. 시간성을 무시해 버리면, 신앙이 초월적 신앙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 끝난 다음에 그렇게 은혜 받고도 갈 때에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이 죄 많은 이 세상 속히 떠나야 되는데 오늘도 또 살아야 하는가? 지겹다. 그리고 가는 게에요. 그러면 직장에 가서는 맨날 신우회하는 것이 외에는 일도 안해.이거 잘못됐죠. 반대로 이것을 무시하게 되며는 그다음에 뭐냐하며는 이런 신앙의 초월적인 성격은 무시해버리고, 시간세계 안에서 어떻게 먹고 살고, 어떻게 기쁠 것이냐 이것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에요. 결국은 이것도 시간의 무상성을 벗어나지 못해요. 없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죠. 근데 이런 공정한 생각을 놓쳐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 영원한 나라를 향해 지금 이 현실세계 넘어 ( ) 영원의 전망에 비쳐볼때, 내가 하는 이 행동이 의미가 있는 행동이냐 정말 지혜로운 행동이냐 이런 것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못 갖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렇게 시간 세계 속에 살면서도 그 의미의 영원한 가치를 묻는 것 이것이 바로 sophia 지혜란 말이죠. 지혜, 그런 지혜를 가질 때 인간은 오늘 하루하루 시간세계 속에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살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거든요.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숙제가 되는 거라 이거에요.
그러며는 영원을 우리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인식을 하겠느냐, 조금만 더하면 끝날 것 같아요. 영원한 대한 인식의 문제에요. 어떻게 영원에 대해서 인식할 것이냐. 자 우선 이 영원에 인식하는 것 말고, 시간세계를 생각할 때에는 시간세계에서는 이게 시간이 문제가 되고 영원세계에서는 영원을 생각하는데 시간세계 속에서 시간을 관측하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매개물이 없으면, 시간이 파악이 안 되는 거죠. 매개물이 없이는 시간이 파악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무엇을 보며는 증거가 되냐하며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은 다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것을 한시성이라고 그래요. 시간성하고 비슷한 말이지만,한시성이에요. 이 한시성을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데 이 한시성 으로부터 먼 존재가 있고 가까운 존재가 있는 거죠 예를 들어봅시다.
[예화] 하루살이한테 한 시간하고, 그 다음에 1300 년쯤 사는 거북이의 한 시간하고 의미가 갖겠느냐 말이에요. 우리가 지금 양치질 안하고 한참동안 있었죠. 입에서 구취가 나요. 거 불과 한 2 시간 동안에 수많은 미생물들이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새끼치고 하는거에요. 순식간에 번져서 입안에 꽉 찬거에요. 가그렛 집어넣고 한번 훅 뱉으면 다 주고 사라져, 그렇게 사라지는 미생물에 있어서 한 시간의 의미가 같을 수 있겠느냐 이거에요. 틀린 거거든요 의미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간의 의미는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자보세요. 날아다니는 벌이나 나비를 보면서 영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여, 그런데 내가 지난번에 미국에 갔을 때 3,200 년 된 나무 앞에서 사진하나 찍었어요, 3,200년 거기 서니까 갑자기 내가 초라해지는 거예요. 3200년이면 언제냐, 우리나라가 무슨시대냐 뭐 계산해 보니까 답이 안나와 2300년 뭐 그것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도 없는 거고, 뭐 한사군때도 아니고, 뭐 어휴, 우리나라 한반도에서 역사가 시작되었을 까라고 생각할 정도까지 새카만 시대라 이거에요. 그때부터 나무가 있었는데,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몰라, 그 옆에 내가 서있는데, 제일 큰게 직경이 14meter 뚝 짤랐을때, 제일 가느다란게 8meter, 그게 120meter정도 뻗어있는데, 어마어마한 나무죠. 그런거 섰을 때에는 나라는 존재자체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구나, 이런걸. 느끼지 않아요. 하늘을 보면는 더하죠, 별이 있는데, 어, 이렇게 이렇게 별이 이동하는데 20 억년이 지났습니다. 20억년은, 분명히 그것도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인데. 이게 길이가 워낙 길면 이것이 영원에 대해서 생각을 낳게 해주는 거죠. 그래서 시간세계 속에서 ( ) 사물들을 통해서 측정이 되고 영원세계 속에서의 이 영원은 영원히 있는 사물들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영원을 생각하게 되는거죠. 이 영원에는 세 가지 속성이 있어요. 무한성, 완전성 불변성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불변성이에요. 불변, 변하지 말아야지 영원한 것이니까, 불변성 무한성 완전성인데, 근데 이것들을 영원 자체이신 하나님이 어떤 사물을 붙들어 주시면 상대적이긴 하지만 이 사물이 불변성 무한성 완전성을 부분적으로 소유하게 되는거에요. 그 사물에 부착된 세 가지 속성을 보면서 우리는 영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 나무를 보며는 영원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는 없지만, 천사들을 생각한다던지, 하늘에 있는 영원한 거룩한 성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보좌에서 비치는 그 찬란한 빛같은 것들을 영광의 빛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영원을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 이야기죠. 그렇게해서 인간은 영원에 대해서 사유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인간이 영원에 대해서 사유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다 보며는 한번 펴봐요 44 page 2번째 단락,”그러므로 영원한 사물, 영원한 세계 같은 존재는 하나님안에 있는 영원자체의 효과를 덕 입은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한시적인 사물 안에 계심으로써, 창조세계를 통하여 스스로 교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 옆 페이지에 보며는 영원한 것들을 통하여 의식하게 된다라고 되는 것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 뒤페이지를 넘겨보세요. 46페이지를 넘기면, 자 잘 보세요. 앞에는 제가 다 설명한 것입니다. ”천상의 있는 존재들도 시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천상세계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자금의 지상세계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지상에서 시간은 빛에 의하여 측정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천상에서 비추는 빛은 여기서의 빛과는 다를 것입니다. 지상세계에서는 빛을 능가하는 물체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에 그러한 물체가 존재하게 된다면, 인간들이 이제껏 인식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허물어집니다. 시간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를 증명한 것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입니다. 그는 시공간이 중력의 영향으로 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질랑은 시공간이 얼마나 굽을지 알려주고 시공의 곡룰은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알려줍니다. 빛은 직선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휘어진 공간의 곡률 때문에 휘어져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각주 18번에 일반상대성 이론의 이야기가 쭉나와요. 우리들이 이런 이야기를하지않아요. 만화영화 같은데서 보며는 ( ) 여기 거리가 일 광년이야, 이게 일 광년을 LY(light year) 여기에서 우주선을 하나 타고 가 그런데 이게 광속 3이에요. 광속 3이면, 그러면 이게 몇 달 만에 도착할 수 있을까, 광속 3이면, 1/3년 그러니까 몇 달이냐고, 4달 우리 그렇게 만화영화 같은데서 많이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죠 스타워즈 같은데서 그런데 이게 거짓말이라는거에요. 이렇게 되며는 어떻게 되냐하며는 빛보다 빠른 물체가 나오게 되며는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부피, 크기 거리 이 개념이 다 무너지는 거예요. 어떻게 무너질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에요. 그래서 인제, 그 이런 이야기에요. 잘 보세요. 여기에 태양이 있지않아요, 그러면 태양이 있고, 수금지 세 번째 이렇게 지구가 돌지않아요. 그 밖에 수금지화 화성이 돌지않아요. 이렇게 있다이거에요 정반대 그러며는 여기에서 지구로 전파를 보내요. 이렇게 그러며는 여기에서 여기 시계로 1초를 재어서, 1초에 한번씩 땡땡 땡땡 그리고 보내는 거죠 그러며는 당연히 이쪽에서도 여기 오는 거리는 있을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거리가 있으니까 pathfinder같은 게 43분이나 걸린다고 그러더라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째든지간에 수신되고 뭐하는 것까지 그러는 모양이에요. 이렇게 온다고 합시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뭐 1분후에 온다고 그러며는 1분후에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건 이해가 되는데, 도착한 다음에는 여기에서 1분서 부터는 똑같이 땡땡땡땡,이렇게 떨어져야 될 것 아니에요. 1초에 하나씩 근데 이게 안 떨어지고, 늦게 떨어지는거에요.늦게 왜그러냐고하며는 이제 보여줄게요. 왜그러냐하며는 그림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꺼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며는 여기서 1초에 1cm씩 개미가 계속 걸어가 띡띡띡띡 걸어가요, 그러면 여기서 잰다말이에요. 이게 개미는 분명히 1cm씩 갔어. 근데 이게 가니까 푹 꺼졌어 이게. 1초에 분명히 갔는데, 이쪽에서 재보니까 개미가 1초에 1cm씩 가더니 이상하게 여기서는 개미는 1cm를 갔는데, 여기서 재보니까 0,5cm밖에 안되는거에요. 이렇게 분명히 개미는 계속 꾸준히 1cm씩 갔는데, 이 지점에 와서는 이게 이렇게 꺾어져서 걸어가야 되니까 이게 0.5cm 0.3cm 밖에는 못가는거에요. 이러한 결과가, 여기에서 잘 봐요. 여기에서 쏜거에요. 쏘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가는데, 시간이 이렇게 휘는거에요. 왜냐하며는 여기에는 강력한 태양이 있는 거예요 태양이 있어서 이것을 잡아끄는거에요. 그래서 끌리면서 휘어져서 이렇게 해서 이쪽으로 들어가게 되는거에요. 지구로 와요 지구 쪽으로 오늘거에요. 그러니까 시간이 걸리는거에요. 이게 실험으로도 입증이 되는 게 지구가 이렇게 있지않아요. 중력이 근데 높이 떠 아주 몇 천 Km쯤 뗘야 되겠지, 몇 만 km쯤 떠야 되겠지, 여기에 지점이 있어 중력이 강하게 작용하겠지 여기에는 중력이 약하게 작용할거를 아니에요. 여기에서 1초 한번씩 띡띡띡띡 그리고 신호를 보내요 그러면 여기서는 0.9999쯤에 접수가 되는거에요. 빨리 떨어지는거에요. 띡띡띡띡 떨어지는거에요. 그런데 만약에 이게 이런 정도 태양의 질량이 아니라, 뭐 블랙홀을 들어가면 안돼, 블랙홀이 여기에 있으면, 이것도 다 빨아들어버려서 이리로 건너가지를 않아. 근데 블랙홀과 방불한 어마어마한 질량의 것이 있어서 이것을 빨아들인다며 는 어떻게 되느냐하며는, 이게 이렇게 이렇게 내려와서 가야되는거지요. 그러면 이것은 분명히 한 시간에 한번씩 시간을 보내도, 여기서는 천년에 한번씩 도착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시간도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하는거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보며는 Lorentz Transformation의 공식까지 나와요. 공식에 다 대입을 시켜보며는 만약에 C 광속이 만약에 계의 속도보다 빠르게 되며는 C가 V보다 크게 되며는 이 수식 전체가 허수가 되어 버리는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이 지금 갖고 있는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공간과 거리의 이런 모든 개념들이 다 무너져 버리는거에요. 크기와 부피, 거리 이 모든 개념들이 다 무너져 버리는거에요. 그래서 임마누엘 칸트가 이런 이야기를 한거죠 물 자체, ( ) 사물 그자체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거죠. 눈을 이러고 보며는 사람얼굴이 다 이렇게 옆으로 찌그러져 보이듯이, 일정한 조건 하에서 볼 수 있도록 인간이 이렇게 만들어진 거죠. 이렇게만 놓게 봐도 사람이 전부다 옆으로 퍼져보인다이거죠. 이렇게만 봐도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거죠. 눈을 이렇게 쩔러보며는 두 겹으로 사람이 막 보인다 이거죠. 그러면 도대체 원래에는 뭐냐 이거에요. 그것을 모른다고 말해야 된다고 칸트가이야기 하는거죠. 그러며는 그렇게 해서 결국은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적이 개념이 되는데, 그래서 영원을 인식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이성만을 가지고는 영원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거죠.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그러며는 영원을 어떻게 알게되는냐, 결론이에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며는 사랑을 통해서 알게 되요. 사랑을 통해서 알게 되요. 근데,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영원자체이세요.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아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는 그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막연히 출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효과적 영원까지 출원하는 것이지 그 영원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알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는 그 영원자체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거죠. 근데 문제는 뭐냐하며는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죠. 설명할 수 있다고 그러며는 안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설명할 수 없는데, 오늘 낮에도 누구하고 이야기 하다가 비유가 하나 떠올랐는데 이것만 하고는 이제 마치겠어요.
[예화] 남녀가 둘이 서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둘이 뜨겁게 사랑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그것을 고백을 하며는 저 사람이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때에 자기가 받을 상처는 얼마나 클까. 차라리 말 안하고 있으면, 가끔 이렇게라도 보는데, 내가 이렇게 고백했을 때 저 사람이 부담 느껴서 돌아서며는 어떻게 할까? 그래 서로 염려 하다가 말보따리를 못 풀어놓은 거예요. 그러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 형제가 저 드릴말씀이 있는데요. 쿵광쿵광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랬는데, 자매가 손을 꼭 잡으면서 저는 당신보다 더 오래전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마음이 합치를 이루면서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그때에 서로의 정신세계 속에 자기가 스며들어가는 것 같은 이 사랑의 합의를 경험하지 않아요. 왜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빨리 못가지, 그런 사랑의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다 하나님의 사랑의 모상이에요.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거든, 근데 그렇게 아주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제 끝났어. 그런 고백의 순간이 끝났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물어보는 거예요. 어이, 자매님 예. 그 형제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뜨겁게 좋아하시게 되었다 메요 예,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적인 합치를 경험하고, 그리고 정말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가 당신을 사랑하던가요. 예, 그의 마음속에는 나를 향한 사랑이 가득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땠는데요. 그러면 설명을 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기껏 해봐야,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한 마음이 되었을 때, 나뭇잎은 나부끼고 있었고, 하늘의 태양도 우리를 축복하고 있었습니다. 날아가는 새들과 풀벌레들이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자체가 아니잖아. 그것은 주변의 분위기잖아 분위기, 근데 우리도 영원 자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그 영원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나며는 우리도 사실 그렇게 밖에는 말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기껏 하는 이야기가
[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
거기까지만 말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다른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거예요. 이제. 아까 그 자매처럼, 그렇게 영원이신 주님을 만나고 나니깐 요. 제 마음속에 기쁨이 막 밀려와서 오랫동안 미워했던 나의 가족들을 용서할 수 있었어요. 매일매일 나의 삶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넣어졌고 이 세상에 미운사람들이 없었어요. 이건 모두 아까 그 자매가 그렇게 그 뜨거운 사랑을 나눌 때에 그 사랑이 어떠했냐. 그랬더니, 나뭇잎은 나부끼고, 태양은 우리를 축복하고 새들도 뭐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새가 뭐 자기가 사랑을 나누었는지 뭘 했는지 알아, 벌레 잡을려고 날아가면서 짖어대는 거지, 해석을 하는 거지 그렇게, 그래서 결국은 영원에 대해서 아는 비결은 뭐냐하며는 사랑하는 것 그래서 결국은 사랑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가 뭐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유행가에도 나오고 시에도 나오고 다 나오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의 모상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참다운 행복은 뭐냐하며는 내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될 때에 우리는 영원 자체와의 합의를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그 영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그것을 그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것들을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은 그 영원에 대한 지식을 이 시간 속에 안에 끌고 들어와서 비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시간 세계 속에 안에서 그 영원의 빛을 비추게 되니까 이 시간 세계 속에 안에 있는 모든 사물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게 되는 거죠. 어떻게 새롭게 다가 오냐, 우리는 매일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데 시간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 때문에 시달리다가 돈 많은 사람을 보면 아 돈이 최고구나, 그리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면서 그것이 우리의 인식 속에 폭력을 가하는 거예요. 꽉 찍어주는 거예요 봐라, 돈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 제일 중요한 가치는 돈이야, 그리고 꽉 찍어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뭐 그렇게 힘도 없고 그래서 너무 비실거리고 사는데, 권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니까 그 앞에서 너무나 비참하게 자존감이 상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때로는 짓밟히는 거죠. 봐라 권력이 없이 네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수가 있느냐? 권력이 최고다, 꽝 찍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보니까 자기는 기쁨도 없이 사는데 이 세상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괘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화려해 보이는 거예요. 봐라 이 세상의 사랑을, 이런 사랑을 세상으로부터 받지 못하면서 사는 사람은 진짜 인간사는 재미가 없는 거다 꽝 찍어주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살면서 수시로 쿵쿵쿵 다가오면서 찍히는 거예요. 그리면서 우리의 이 지성에 상처를 주는 거예요. 눈 같은데 쿵하고 상처가 나며는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없지 않아요. 인식 속에서 꽝하고 찍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들이 뭐예요. 그건 뭐예요.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승의 자랑 이예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수시로 다가와서 꽝꽝 찍히면서 그런 것들이 제일이니까 그것을 따라서 살아야지 너는 행복해 질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러면요. 근데 그래서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따라서 살아. 그런데 마지막에 돌아오는 결과는 뭐냐하며는 비참한 허무, 왜냐하며는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결국은 악을 쫓는 것이고 악을 쫓는 영혼에는 곤고함이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비참한 삶이 되는 거죠. 그리고 나서 비로서 아 이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을 깨닫는 거죠. 그런데 이미 벌써 인간이라는 존재는 시간 안에서 있음에서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 아니에요. 그런데 그 시간을 벌써 낭비하고 흘려보낸 거예요. 그때에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 그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영원에 대해서 알고, 영원을 경험하게 되고, 영원에 대해서 아주 분명한 경험을 갖게 되는 거죠. 거기에서 우리들은 그 영원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 안에서 선을 발견하고, 선 안에서 영광을 발견하고, 영광 안에서 하나님의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그때에 그 영원의 빛을 이 시간 세계 안에 끌고 들어오는 거죠. 돈이야 꽉 찍어 줄때, 영원의 빛을 쫙 비쳐보는 거예요. 결국은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예요. 돈이라고 하는 것도, 명예라고 하는 것도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예요. 잠시 풀잎에 붙은 이슬 같은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렇게 이 세상에 우리의 감각이 가져다주는 이 인식을 향한 폭력의 상처들을 지져내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잠시 머물 이 세상은]
그것을 깨닫는 것이에요. 아 헛된 것이구나, 중요한 것은 부하냐. 권력을 자기고 있느냐 이것이 아니라 이 시간 세계 속에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서 우리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느냐? 아 여기에 그 모든 인생의 의미가 달렸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거죠. 그 영원의 빛을 끌고 들어와서 확 비추게 될 때에 어떤 것이 무상하고 사라져 가는 것이며, 어느 것이 영원이 있는 가치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영원이 있는 것들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 불쌍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이렇게 하면서 살수가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삶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매일 매일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 자녀의 삶이에요. 그러면서 우리의 존재도 우리의 육신은 이렇게 있음에서 없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또 마찬가지죠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무엇을 사랑한다고, 자기, 둘 중에 하나라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 사랑의 한 방법이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 자신도 영원이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자기 자신도 이렇게 소멸 되어가는 존재에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계속 사랑하게 되면, 그러며는 마지막에 결국은 소멸되는 존재가 될 것 아니에요. 자 여기서 ( ) 있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도 시간 흐름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존재에요 이렇게 그러며는 이 사람이 자기를 사랑했다고 칩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국 마지막에는 없는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허무잖아요. 허무, ( ) 사라져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뭐라고 이야기 했냐 하며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변함없는 진리의 빛 가운데 있지 않으면 그 진리의 빛은 영원의 빛이기도 하다” 이거에요. 그 진리의 빛 아래 있지 않으면, 결국은 자기 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 다 이거에요. 그 진리의 빛 아래에 있지 않으면, 자기 밖에 사랑할줄 모르는 존재이다 이거예요. 그것도 자기의 모든 것을 전 포괄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 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다 이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돼야 하느냐? 매일 매일 영원 자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성화됨으로써, 그 영원 자체이신 하나님께 합치되는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야 우리가 우리의 육신은 날마다 부패하고 죽어 가는데, 죽음의 기운에 의해서 삼키어져 가는데, 이 자체가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있음에서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육신의 이 허무를 다 벗긴 후에 결국은 그 과정 자체가 우리의 영혼이 바로 그 고향인 영원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아주 훌륭한 껍질 벗음이 되는 거예요.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성안에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안에 있는 창조의 계획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온전히 현실 세계 속에서 드러나게 될 때에 이것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시간 세계 속에서 당신의 뜻을 펼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인하여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사실에 우리들이 큰 소망을 가지면서 우리가 육체가 날마다 소멸되어 가도 그것을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이 시간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이 위대한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 그리고 자기 몸 안에 있는 이 무한한 이 미세한 세계, 그 사이에 인간이 존재하는 거죠. 두 개의 영원 사이에 끼인 존재에요. 무한 사이에 끼인 존재에요. 그러면서도 박막과 같은 순간을 지나가지만, 그 박막과 같은 순간을 지날 때 그때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그 박막과 같은 순간에 우리에게 시간성 안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흘러가는 과거를 슬퍼하거나 다가오지 못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영원이신 주님께 합일하는 삶을 살면서 그 시간성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헌신하면서 살게 되는 거죠. 인생의 행복입니다. 강의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