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안에 있는 소명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 3:8)
녹취자: 문미경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어떤 대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여야지만 그게 은혜지 대가를 마땅히 지불해야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그것이 구원과 관련된 의미든지 혹은 우리의 의무를 감당하게 하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로서의 은혜든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거저 주어진다고 해서 아무 계획도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은혜 속에는 이미 소명이 포함되어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소명을 따라서 살게 하실 때에는 은혜를 주셔서 소명을 따라서 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 소명에 따라서 살게 하시는 은혜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무엇을 하게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오늘 사도는 제일 먼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독생하신 성자의 품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말하며 그 독생자를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 곧 사랑과 지혜의 충만함을 그것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겁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각각 조금씩 다른 소명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와 장로로, 또 선지자로, 또 복음전하는 자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의 교회를 세워 가시기 위해서 다양한 직분들이 필요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작은 부르심들이 연합을 이루어서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에는 사실, 전쟁이라는 말과 전투라는 말은 다릅니다. 전쟁은 넓은 국면에서 한나라와 한나라가 적대관계에 있어서 실제로 우열을 다투는 갈등상태에 있는 무력으로 그것이 표현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말해서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투는 실제로 두 나라의 군대가 부딪혀서 죽고 죽이는 무력대결의 상태입니다. 그러면 전투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피 흘리며 죽는 이유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군 상황에서는 이것을 소목표, 대목표,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 작은 하나의 목표를 쟁취하는 것이 더 큰 목표를 성취하는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자 각자가 전투에서 이겨서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는 것이 군대의 목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헌신하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승리해서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은혜의 소명,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 일을 하는데 회의를 하다보면 은혜가 있을 때는 다른데 은혜가 식으면 ‘내가 이렇게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든가. 사람들이 뭐 관심이나 가져주나.’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언젠가 누가 무슨 회의를 하는데 자기가 하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데 와서 들여다보지 않느냐고 하자 그러면 제가 그랬습니다. ‘장로님은 다른 사람이 사역하는데 들여다 본적이 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나쁜 의견은 아니지만 섭섭해 하고 소외감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이 하는 일을 모든 사람이 눈물어린 애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길 원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일 안 할 때도 그 일에 관심 없었잖습니까?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섬긴다는 것을 가지고 나는 여기서 이 일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고 또 때가되면 물러나고 떠나가지만 그러면 하나님이 이것들을 사용하셔서 모든 지혜로 이것들을 묶으셔서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고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섭리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영광을 이 세상에 충만하게 하시고 그 영광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기쁨의 상태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창세기 2장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하는 아담의 고백은 부부사이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인류애적인 고백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부르며 사랑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시는 비밀의 경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고 이 세계를 완성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충만하게 나타내보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계를 향해 감추신 비밀의 경륜, 그 비밀의 경륜은 복음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복음의 비밀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복음의 비밀, 비밀의 경륜이라고 말했던 것은 무슨 이유냐 하면 이방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세계와 인생에 대한 상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주 놀라운 계획입니다. 그래서 비밀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담대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의 선포가 아니라 존재의 울림입니다. 신앙의 떨림이 있을 때 존재의 울림이 있는 것입니다. 나같이 쓸모없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이 세계를 향해 하고자 하시는 위대한 일의 비밀에 참여한다. 내가 기도하고 섬기고 분투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당신의 찬란한 영광을 이 세계에 드러내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제가 2005년도 이후로 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에베소 교회나 골로새 교회나 갈라디아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보편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데 많이 힘이 들고 또 교회의 안에서 다양한 욕구들이 분출이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보편교회의 하나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 전체를 위해 이바지하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개별적인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 둘 사이에 아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나면 보편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피절하게 가르칠 사람도 없습니다. 헤르먼 리더보스(H. Ridderbos)라고 하는 신학자는 자신의 the coming of the kingdom이라는 책에서 ‘교회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썩어 없어질 하나의 밀알이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이상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죽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의 밀알이 되어서 밀알이 썩잖습니까? 쌀이나 곡식이 썩으면 국물이 줄줄 나옵니다. 그것을 먹으면서 쌀에 붙어 있는 씨눈이 양분을 공급받아서 싹이 트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상은 죽는 겁니다. 사라지는 겁니다. 썩어 없어지는 겁니다. 자신은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 그 속에서 장렬하게 사라지는 것이 교회의 이상입니다.
그런 마음을 깊이 품고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동안 어떻게 이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충만할 것을 이 세상에 드러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저도, 사라지고 없어지는 필멸의 존재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영원합니다. 이 교회의 형태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형태로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순간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감사하고 또 감격하는 기억할 뿐만 아니라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자원을 가지고 필멸하는 몸이 그리스도 교회를 위해 죽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또 사라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도구로써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의 밀알이 되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세상에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은혜와 사랑과 진리가 가득한 나라가 성취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이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절대로 일한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보기에 모두 일하는 것 같지만 그 일하는 것이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냐, 아니면 그냥 자기 성취에 사로잡힌 일일뿐이냐에 따라서 의미는 매우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시간에 여러분이 이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들고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의 섬김이 이 일에 보탬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