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생명과 운명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딤후 1:1)
녹취자: 박지성
사도가 되기 전에 사울은 목적 없이 허무하게 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열정이 있었고 열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로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신념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령한 꿈이 아니었고 종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사울이 스스로 취한 꿈이며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경멸하던 이단의 괴수인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 ‘대리자’,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뒤 잇는 것’을 말하며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던 진리의 선포 내용을 그대로 전하여 예수 살아계실 때에 예수로부터 들었던 메시지를 그대로 듣게 하는 것이 사도의 소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원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자기 소명을 확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소명을 이루어 가는 양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목회의 소명을 받고 총각 때는 혼자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위해서 봉사하지만 때가 되면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으며, 오늘은 선교사역을 위해 쓰였던 사람이 내일은 국내에 들어와서 한 교회를 목회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 소명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편의에 따른 인도의 다양한 방법일 뿐이며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의 고유한 소명, 일생동안 붙들고 살아야할 소명을 누구에게나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창조의 목적에 이바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토대 위에서 개별자인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생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꽉 붙들고 있어야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뒤바뀐 채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삶의 다양한 상황이 주가 되고 나머지는 종이 되어 그것에 의해서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것은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안정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물질로써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위한 소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직업은 바뀔 수 있습니다. 사업의 종류는 다양할 수 있고 국내에서 장사를 하다가 해외에 나가서 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양상은 변하더라도 목표는 뚜렷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문제는 자기의 소명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너는 왜 사니?’,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그게 뭔데?’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주재권이 전혀 없는 삶은 추상적인 삶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고백하는 것은 설교자나 부모한테 배운 것이지 자신의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 아닙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개별적인 소명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How?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했는데 너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느냐?’,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나님이 너를 지정하셨느냐?’, ‘저 사람은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데 넌 무엇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느냐?’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해외에 나가고 국내에 있고 이런 양상 말고 ‘그 모든 것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궁극적인 하나의 목표가 무엇이냐?’ 자신의 내면에 이런 것이 있고 이런 것을 향하여 전심전력하는 삶을 살 때 자신의 내면에 진정한 열정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속이 시끄럽습니다. 그 속에서 온갖 것들이 얽히면서 혼란의 먹구름 같은 것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무엇하나에도 거기에 생명을 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뛰어난 성인 같은 사람들만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태어나서 일평생 교회 마당을 쓸다가 죽어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며 믿음생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만 무성한 채 늘 바람결에 흔들리고 나부끼는 갈대와 같이 마음에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개별적인 소명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오늘 행하는 모든 삶이 그 개별적인 소명을 이루는데 어떻게 이바지합니까?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개별적인 소명을 뚜렷하게 깨달아 그것을 꽉 붙들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1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의지가 있습니다.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작정하셔서 만세전에 사울을 바울로 바꾸어 당신의 이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쓰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그로 하여금 사도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예수 안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될 때 끊어졌던 삼위 하나님과의 교통이 다시 이루어지게 되고 참된 영적인 생명과 관계없이 살아가던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통이며 생명입니다. 바로 이 생명이 약속을 가진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약속이라는 말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사도에게 주겠다는 약속도 되지만 그것보다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생명인데 인간이 그 생명을 누리게 될 때 생명은 그것을 누리는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목적을 향하게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예수의 생명과 상관없이 살 때는 사울이 자신 스스로가 발견한 꿈을 향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되자 이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울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발견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힘은 사도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누리게 한 생명이 충만하게 당신 자신을 향하는데 그 생명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나를 이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나에게 하나님이 어떤 재능을 주셔서 내가 무엇을 위해 일생을 보내야하는가?’라는 분명한 인식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충분히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히 누리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곧 생명의 역사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반드시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 자체가 이미 소명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치 없는 인간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었을 때 그것은 거저 주는 것이지만 계획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계획이 있으니 그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약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닌데, 받은바 은혜는 자기의 죄성 가운데서 부패하고 모든 것이 희미하여 불명료할 때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분명하지 않고 애매합니다. 때로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이런저런 결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 결단 내린 바를 지탱하는 힘은 자기 자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약속을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를 할 때도 있었고 선생이 되어서 토론을 할 때도 있었고 장막을 깁는 기술자일 때도 있었으며 한 곳에서 목회하는 목회자일 때도 있었고 배를 따라 수 없는 길을 여행하는 선교사의 인생을 살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양상이었고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그리스도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도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지만 그는 사도라는 삶의 방식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떤 소명으로 부르셨습니까? 그런 것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든지 간에 ‘이것은 거쳐 가는 것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충만한 소명감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충만한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고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어느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분명히 깨닫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