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과 시련을 이기는 은혜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1-2)
녹취자 : 조원정
예루살렘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고 성도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이일을 사용하셨어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아주 소중한 기회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어느 정도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나왔고 그랬기 때문에 많은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이방의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하여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방에 큰 흉년이 들게 하셔서 기근이 미치게 하시고 이때에 이방인들의 교회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액의 연보를 해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부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교회의 일치를 가져오는 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참여했던 많은 교회들이 있었는데 그때에 사도바울은 각 교회마다 그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매우 부자 교회였고 도시 자체가 항구 도시였고 무역항이었고 번창한 도시였고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이미 희랍 시대 때에도 아주 유명한 무역 항구였습니다. 돈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헌금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도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물질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모든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인색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마게도니아 교회는 그렇게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교회에 대하여 말하기를 환란에 많은 시련을 받은 교회다 뿐만 아니라 극심하게 가난했던 교회였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이 이들이 보내준 연보를 받고 깊이 감격할 정도로 큰 헌금을 이 마게도니아 교회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했습니다.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했습니까? 극심하게 가난한 교회였고 환란에 많은 시련이 그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넘치는 연보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넘치는 기쁨이라 했습니다. 가난해도 하나님 앞에 넘치는 기쁨의 삶 환희의 생활 이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극심한 가난 연속되는 환란의 시련 속에서도 거액의 연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종종 교회에 큰 목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헌금을 하는 겁니다. 물론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돈이 있다는 사실이 기본적으로 헌금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예화) 부산에 집회를 갔을 때 어느 목사님이 젊은 목사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고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해운대를 한번 같이 한번 산책하자고 해서 산책하면서 처음만난 나에게 자기의 마음에 맺힌 것을 털어놓는 겁니다. 장로들이 헌금을 안 한다는 겁니다. 주일날 헌금 이천원을 하고 추수감사절 헌금을 이만원 한다는 겁니다. 장로가 그러면 안되지만 워낙 가난하면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그분이 부산에 빌딩이 두챕니다. 결국은 돈이 있어도 마음속에 교회를 향한 기쁨이 없으면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없으면 헌금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기쁨의 삶을 사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넘치는 기쁨 환희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치 못할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도 즐겁게 지고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마게도니아 교회에 있었기 때문에 환란의 많은 시련 연속되는 고난 극심한 가난 그 속에서도 다른 부자인 교회들이 할 수 없었던 큰 사랑의 연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 돈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닙니다. 기쁨이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즐겁게 섬기게 됩니다.
환란의 많은 시련 극심한 가난 이 어려움에 에워 쌓여있던 마게도니아 교회를 그렇게 기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기쁨은 사물의 일반적인 질서의 변화에서 오는 기쁨이 있고 신령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선물을 받았을 때, 내가 꼭 갖고 싶은 것을 가졌을 때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그 원동력은 되지 못합니다. 오늘 마게도니아 교회가 받았던 큰 기쁨은 그 원인이 은혜였습니다. 1절에서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주신 은혜를 너희에게 알리노니 예전에 성경에는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주신 은혜를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니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주신 그 기쁨 그 은혜가 사도바울에게는 모든 교회들이 그 비밀을 알고 마게도니아 교회와 같이 그런 은혜를 자신들에게도 부어 주시도록 사모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 은혜가 기쁨의 비결이었습니다. 큰 은혜가 마게도니아 교회에 주어지자 마게도니아 교회는 아주 기뻐하게 되었고 그 기쁨 하나로 고난도 시련도 슬픔도 환난도 가난함도 이기고 모든 교회의 부자들이 본받아야 할 만큼 하나님 앞에 넘치는 헌신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 일들을 은혜롭게 잘하는데 예전에 당회 들어가면 종종 얘기를 했습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마라 여러분들에게 손해다 왜? 결국은 교회를 위한 사역은 기쁨 속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가치도 없는 일 때문에 상하게 하고 해서는 안된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젠 단순히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배려되고 보호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속에 부어져서 이것이 우리 속에서 기쁨으로 샘솟아야 됩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기쁨이 우리에게 샘솟듯이 솟을 때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의무라는 게 없습니다. 마음속에서기쁨이 솟아나니까 이 기쁨이 너무 커서 고난도 이기고 슬픔도 이기고 고통도 견디면서 하나님 앞에 사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속성이 끝이 납니다. 그때 히랍어 동사가 히포메네이라는 건데 히포는 위에 이런 뜻이고 메네는 메노. 리메인 머물다라는 동사의 활용입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문헌으로 돌아가면 원래 군대 용어입니다. 고지를 사수하라 그런 얘기 많이 들리는데 고지가 엄청난 광산이라던지 평야가 있어서 어마어마한 곡식을 생산해내서 미래의 국가의 부를 창조해줄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지를 사수하라는 게 아니라 고지를 지켜야지만 다음 전투에서 승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겁니다.
(예화) 나당 연합군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 백제가 버티는 건데 이미 백제는 의자왕이 정권을 기울게 했고 국운이 벌써 쇠했습니다. 이때 왕이 부패하고 리더십이 흔들리며 수많은 간신배들과 모리배들이 생겨나고 당파싸움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에 충수로 기억이 되는데 굉장히 충직한 그러나 감옥에 갇힌 신하가 있었습니다. 탁월한 전략가였습니다. 이 사람이 두 군데를 이야기 하는데 한 지명은 잊어버렸습니다. 경기도 쪽에 탄현이란 지명이 있었습니다. 탄현에 진을 치십시오. 물론 백제는 그 위에까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개성 있는 곳까지 미쳤는데 거기는 내어 주되 탄현은 내어주지 마십시오. 탄현에 진을 치십시오. 백 명을 한명이 맞설 수 있는 탁월한 지형입니다. 그런데 당파 싸움을 하느라고 그 사람의 말을 따르는 조정의 무리들이 있으니까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이 따라갔다가는 국정의 주도권을 뺏기게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되고 거기를 내어 주고 평야에서 싸워야 됩니다 라고 주장을 하고 저쪽 신라군들이 쳐들어오는 거기는 지명이 있었는데 그 지명을 내어주고 황산벌에서 싸워야 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한 겁니다. 결국은 파죽지세로 깨끗이 멸망을 당한 겁니다. 그게 바로 히포메네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사역을 하다 힘들고 어렵다 할 때가 있는데 거기가 제일 쉬운 데입니다. 내어 주고 평지로 내려오면 거기에서 싸울 때보다 네배 다섯배의 힘을 내야 됩니다. 거기에서 한배의 힘을 못낸 사람이 내려와서 다섯배의 힘을 낼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파죽지세로 떠밀리면서 멸망을 당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모진 적군의 공격을 견뎌내면서 히포메네이 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결국은 솟아나는 기쁨입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할 때는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아도 기도하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찬양)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거기에서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이 뭘 주어서 기쁘고 행복한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게 은혜의 특성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드리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봄이 완연히 온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기쁨의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