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에서 주를 찾으라 3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1-5)
어제 새벽에 시인은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시인이 주의 인자가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고 하는 것을 경험했는고 하니, 커다란 위기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받고 커다란 어려움에 떨어졌을 때에 과연 이 세상에 내가 의지하던 사람들이나 내가 의지하던 마병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가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사는 사람들이요, 주님의 인자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아름다운 믿음 때문에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찬송할 수 있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세상에 여건이나 환경 때문에 신앙생활을 옳게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는 무지의 소치인 것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말이죠, 사람의 믿음 속에서 그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주님이 아니면 내가 살 수가 없다고 하는 절대 의존적인 신앙고백이 있기만 하면, 어떤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요동치 않고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주의 인자가 우리의 생명보다 소중하고, 주의 인자가 우리의 모든 목숨보다도 귀하다고 하는 고백이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는 시인이 자신의 일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 지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도 주님을 송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손을 드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마는, 그러나 특별히 오늘 주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반기를 들고, 자기가 아꼈던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칼을 높이 치켜드는 그 지경에서 다시 한 번 이 시인은 자기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의지할 분이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며 그리고, 하나님만이 자기를 변함없이 자비하게 대해 주시고, 인자하게 대해 주신다는 사실을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지금의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이런 커다란 시련과는 상관이 없이 일평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 지가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개 오늘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신앙적인 혼란이나, 분명하게 푯대를 향해 걸어가지 못하는,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불안정한 신앙생활은 앞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겠다, 라고 하는 그런 푯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평생에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분명한 방향이 없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마는, 가다가 가다가 너무 힘에 붙이고 기운이 없어서 잠시 주저앉는 것과, 돌이켜서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다운 은혜와 사랑을 입고 그렇게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우리가 한 길을 걸어가면서 잠시 우리들의 연약함과 우리들의 죄성 때문에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기운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그런 놀라운 은혜를 입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풀어 주신 한없이 놀라운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하고, 크게 실패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오늘 잠시 범죄 하였지만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분명한, 자신이 가야할 그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인가 하니,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고백을 합니다. 이러므로...... 어떠므로?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고, 내가 사는 것은 이제 주님의 인자와 자비를 힘입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듭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헌신의 표시이기도 하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표시이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간구와 감사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그곳에서 시인은 언제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그곳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곳에서는 환영하는 손을 들었습니다. 기쁨의 손을 들고 찬송의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그곳에서는 간구의 손을 들고 주님이 다시 당신 자신의 이름의 높일 수 있는 것을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은 것을 시련 속에서 깊이 경험하고 나니 그의 신앙은 더 정결해졌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체험 후 그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될 지 분명해졌습니다. 현재의 불분명한 신앙생활은 미래의 푯대가 없기 때문이고, 미래의 푯대가 없는 것은 과거의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으면서, 그 은혜의 계획을 모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참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 시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러므로.....그는 하나님의 인자를 체험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은혜가 인생의 가장 쓴물을 머금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기에 오히려 일평생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고, 일평생 주님의 이름을 향해 손을 드는 그런 인생을 살겠노라고 고백하는, 그런 결단을 이 시인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랑과 참된 은혜가 이 시인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시련과 환란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대신에 그 어려움과 환란 때문에 순결해지고, 그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주님을 송축하며 살아야 겠다는 일생의 좌표가 보다 더 견고해 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주님께로 받았던 그 자비와 그 인자하심을 생각합시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예수를 주셨던 그 십자가 앞에 나타난 그 자비와 사랑을 한번 새겨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에 빚진 자로, 일평생 주님을 찬송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경배하는 것 외에 은혜 받은 우리에게 또 어떤 삶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새벽의 시간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도록 주님 앞에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찬송하나 하겠습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오늘 이 아침에 각자 주님의 자비를 힘입어, 사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고 일평생 변함없이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을 향해 손을 드는 우리가 되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