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강좌 (2010. 6. 19)
한국교회의 성장과 미래의 역할 1
Ⅰ. 서론
9p 두 번째 단락부터 양목사가 읽으세요........
-교과 읽음(9p~10p)
Ⅱ. 한국교회의 성장과 유산들
A. 한국교회성장의 요인
-교과 읽음(13p~14p)
B. 한국교회 성장의 배경
-교과 읽음(15p~16p)
사실 평양대부흥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담론들은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들이 평양대부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박영규 교수가 연구한 것처럼 우리들이 굉장히 보기 드문 순수한 부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인정을 하는데 다만 그것들이 그 이후에 그것들의 결과들을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마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그 종교개혁을 자신 속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서 아주 토마스 뮨조의 극단적인 농민전쟁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가톨릭 안에 있는 그런 어떤 개혁에 이르기까지 그런 다양한 적용들이 존재했던 것처럼 평양대부흥도 그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이런 부흥의 본질적인 면들을 무시하고 저쪽 극단적으로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보다는 성령의 역사만을 앞세우는 그런 극단적인 신비주의도 사실은 평양대부흥을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표준적인 교회의 부흥운동들,
지금은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는데 박봉남 박사라고 하버드에서 공부하신 조직신학자인데 그분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90이 훨씬 넘으셨겠지요. 그런데 1930년대에 평양에서 신앙생활을 하셨어요. 그래서 여쭈어봤거든요. 1930년대 초기에 어땠는지 여쭈어봤어요. 그때 당신은 그 당시 중학생이었다고 그랬는데 그분 하는 말씀이 굉장히 순수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교회에서 설교가들이 객소리를 한다는 느낌은 못 받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다고 생각했고 교회가 열정적이고 그랬느냐고 여쭈어보니까 그렇지 않고 예배시간이 아주 순수하고 심지어는 그 당시 설교의 길이까지 내가 물어보았어요. 어느 정도로 설교했느냐고 물어보니까 주일 낮 시간이면 그저 한 35분에서 40분정도를 설교하고 그렇게 긴 설교는 아니었는데……. 그분을 만난 것이 1990년대 초였는데 그렇게 40,50,60,70,80,90년대까지 거치면서 느낌은 굉장히 그때의 교회가 순수했구나! 어느 교회를 가든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려고 설교자들이 애를 썼다는 것이에요. 그런 분위기를 전해주셨어요. 그런 것들도 사실은 평양대부흥 후에 일어났던 것이에요.
특히 이후에 일어난 사경회 운동 그 자체가 결국은 사경사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핀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펴서 사람들에게 해석을 해주고 가르쳐줌으로써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 중심적인 신앙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거기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극단적으로는 여러분들이 평양대부흥의 사건들의 기록들을 보면 부흥이 일어나고 나서 곧바로 사회개혁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해 전에도 그것을 가지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읽었던 자료들을 보면 쌀집이 있잖아요. 그때는 저울에 달아서 파는 것은 사실 훨씬 후에 나온 것이고 왜냐하면 쌀이 많이 마른 쌀도 있고 그 다음에 갓 지은 쌀은 습기가 많기 때문에 저울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저울에다 쌀을 달아서 파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옛날 사람들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곡물에 대한 ㎏제가 도입된 것은 1970년대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부미가 나오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 되요. 그전까지는 전부 다 용량제였어요. 표준원에서 말을 만들어주면 그 말하고 똑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서 재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방망이로 이렇게 쫙 밀어요. 밀다가 마지막에 조금 남겨두는데 그게 말하자면 개평이랄까 어쨌든 조금 더 주는 것이죠. 인심이 사나운집은 싹 밀어버리고 조금 단골이면 끝에다가 요만큼이라도 더 남겨두어서 그렇게 하고 그랬죠. 그리고 친척들이 쌀을 사고 팔 때는 그냥 아예 방망이로 밀지 않고 그냥 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평양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후의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도 보면 항상 쌀을 사다가 쌀독에 넣는데 할머니가 그러시기를 ‘참 이상하다 저 집에서 쌀을 사면 이렇게 항상 쌀독이 조금 떨어지냐?’ 그러셨어요. 알고 보니까 말밑에 판때기 하나를 더 까는 것이에요. 그래서 한말을 팔면 요만큼씩이라고 떨어지니까 그게 여러 말을 파니까 그것을 모아도 꽤 많은 것이 되죠. 그것이 걸리면 커다란 죄요. 굉장히 크게 걸립니다. 크게 걸려도 뇌물을 주고 다 풀려나던 시대였지요. 아마 평양에서도 그랬던 모양이에요. 쌀집 주인이 회심을 한 것이에요. 쌀집에 걸고 나는 몇 년 몇 월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 말밑에 판때기를 깔아서 속였다. 그러니까 나는 다 기억을 못하니까 우리 집에서 쌀을 산 사람들은 와라. 그러면 내가 그 과거를 소급해서 다 보상을 해주겠다. 사실은 그 얘기가 지금 우리가 들으면 우습지만 그 당시로써는 그게 한두 달 속인 것이 아닌데 그것을 거꾸로 해서 그것을 배상한다는 것은 마치 삭개오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해주는 그런 사건이었단 말이죠. 그런 것뿐만 아니라 길선주장로의 100불을 사취한 사건에 대한 고백은 그 당시에 100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큰돈이었거든요. 우리 초등학교 때 기와집 한 채가 15만 원 정도밖에 안했어요. 그러니 100불이 60년대보다 더 거꾸로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죠. 그런 식의 개혁운동들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술집이 문을 닫는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아마 술, 노름 이런 것들을 강력하게 죄악시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은 평양대부흥을 기점으로 해서 일어난 운동들이었어요. 술, 화투, 노름하는 것, 담배 피는 것, 이런 것들을 죄악시하기 시작한 것, 그 다음에 축첩제에 대한 강력한 반대운동, 그 다음에 조혼제에 대한 반대운동, 이런 것들도 사실은 평양대부흥 이후의 평양 부흥이 이런 것을 가르쳐주었다가 보다는 그런 사회적인 악습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그 평양대부흥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에요. 초창기에는 어떤 식으로 타협을 했느냐하면 이미 들어온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추가로 얻으면 안 된다. 추가로 얻으면 치리하겠다고 해서 1920년대에 와서는 교회가 상당히 기틀이 잡힙니다.
1920년대에 새문안교회의 당회록을 조사한 어느 교수가 책에다가 그 증거들을 쭉 썼는데 거의 매주일 치리가 있었더라고요. 거의 매주일…….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나타냈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있지만 치리가 있고 그래서 사건도 다양해요. 돈을 빌리고 아주 악성으로 그 돈을 갚지 않는 악덕 채권자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축첩, 그 다음에 바람피우는 것, 아내를 폭행하는 것, 그런 것에 대해 계속 출교,……. 해서 계속 징계가 주어진 것을 보았어요. 그런 것들도 사실은 평양대부흥 이후에 일어난 일이거든요. 그렇게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게 일어나게 되요.
지금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에 아직까지 나름대로 1980년대 90년대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이냐 하면 1960년대에 아주 강력한 부흥이 거기에서 일어납니다. 코흐라는 사람이 타오르는 부흥의 불길이라는 책을 썼는데 인도네시아 부흥에 대한 역사인데 1960년대 말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회자로 헌신합니다. 그 사람들이 1970년 1980년대 1990년대에 그 사람들이 거의 사위어져가는 것이에요. 그 후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가 어렵다고 그러는 것인데 어쨌든 그런 부흥은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들어내고 평양 대부흥도 부흥이 있고나서 수많은 전도자들 특히 목회자들을 하나님이 복음이 팽창되는 시기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해서 그 당시에 아주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배출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리고 부흥이 일어날 때에 생겨난 교역자의 질과 그런 것이 없이 생겨난 교역자들의 수적 증가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이 현저하게 달라요. 그래서 오늘날은 목회자가 되었는데도 개인적으로 거의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고 그것이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기는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이에요. 완전히 종류가 다릅니다. 별종이에요.
지금 중국과 미국에서 차세대 사업으로 중요하게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수박씨가 있잖아요? 이것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여기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우주로 가지고가서 여기에 없는 전혀 다른 광선이나 전파들을 쏘이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기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종류의 변이가 일어나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부흥을 통해서 다루시는 것이에요. 한번 부흥이 확 쓸고 지나가지 않으면 다음세대에 영적인 거목들은 안 생겨요. 절대 생겨나지 않아요. 학교교육이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절대 그렇게 생겨나는 게 아니에요. 계속 나가겠습니다.
-교과 읽음(16p)
이런 요소들은 말이죠. 교회역사에서 아주 특이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분들은 그때 아직 어려서 몰랐겠지만 기도원운동이 아주 절정에 달했던 때가 나는 1970년대라고 봅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기도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 사실 물자도 없고 워낙 가난하고 하니까 기도원이라고 해봐야 산에다가 학꼬방처럼 지어놓고 슬레이트나 얹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면 함석지붕이나 얹고 했지 요즘 우리가 가는 그런 수양관을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런 것들을 세웠어요. 그리고 법도 허술했기 때문에 산에다가 지어도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되었으니까 나중에는 70년대 들어서 특히 유신이후로 굉장히 심해졌어요. 그래서 기도원들을 철수하고 철거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었는데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서 어떤 기현상이 일어나느냐하면 지금 있는 성복교회나 그리고 천마산 기도원을 하던 교회들 그 다음에 오산리의 기도원 같은 큼직한 기도원을 가지고 있던 교회들은 기도원의 수입이 교회의 수입보다 더 많았어요. 그래서 기도원에서 돈을 걷어서 교회에 집어넣어서 교회당도 짓고 교회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이죠. 그리고 교회당에서는 헌금을 안 해도 되는데 기도원에 가서 헌금을 안 한다는 것은 은혜를 못 받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에요. 그런 것들을 막 집어넣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급속하게 타락해요. 사실 돈이 모이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그것을 막는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이냐 하면 투명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탐욕을 없애는 것이에요. 그리고 교회의 재정은 어느 정도 공개가 되지만 기도원의 재정은 기도원에 오는 사람들이 고정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떠도는 사람들인데 무엇이 되겠어요. 그리고 때로는 어마어마한 거액의 헌금도 기도원에 내고 그러잖아요. 왠지 교회에 내는 것보다는 기도원에 내는 것이 하나님이 더 주목하실 것 같은 눈여겨 보아주실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래서 엄청나게 폭발적인 일이 일어나죠. 할렐루야기도원 같은 데는 듣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냥 돈을 셀 수가 없어서 매일 자루로 담았대요. 생각을 해봐요. 이게 아침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까지 하루에도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씩 집회를 여는데 매시간 헌금을 했거든요. 생각을 해봐요.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것이죠.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것이 한국교회를 타락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그런 기도원 운동들이 엄청나게 일어나는데 대부분 보면 서양에서의 수도원운동은 현실에서 피하는 그런 종류의 운동이었잖아요? 그래서 기도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사실은 그야말로 수도적인 기도였는데 이것이야말로 속세의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도원을 택하는 것이에요. 세속의 문제를 끌고 가서 거기에서 쏟아놓고 기도를 하면 거기에서 응답을 받고 와서 현실생활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좋게 말하면 기도의 영역들이 넓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엇인가 기독교의 본질로부터 서서히 기도원 운동과 함께 이탈하고 있는 장면들도 사실은 감지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사실은 한국교회의 불건전한 은사운동과 이런 것들은 사실은 기도원을 중심으로 많이 퍼졌어요. 왜냐하면 기도원의 어떤 신령함은 응답받는 비율과 그 다음에 은사의 강도에 의해서 사실은 그 기도원의 인기순위가 결정되었거든요. 가서 이렇게 쉬고 오는 이런 개념이 그때는 없었지요. 그러니까 불편하고 그런 자체를 하나의 고행적인 수단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한얼산기도원 같은 경우도 초창기에는 밥을 식당에서 안 해주고 들판에다 수없이 개구멍을 만들어놓았어요. 그래서 갈 때에 솥하고 쌀하고 자기가 가지고가서 자기가 알아서 해먹는 것이에요. 나중에 사회가 좀 나아지면서 구내식당도 생기고 그렇게 되었지요. 초창기에는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런 기도원운동들이 사실은 한국교회에 영향을 많이 끼친 것이에요. 그래서 이따가 읽다가도 나오겠지만 좋은 의미에서는 그렇게 기도를 동역화했던 면이 있지만 나쁜 의미에서 보면 그런 것들이 초점이 상당히 빗나간 기도원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감지하게 되는 것이에요.
다음세대는 그것이 어떻게 갈까에 대해서 우리들이 많이 생각하는데 아마 레저와 휴양 이런 것들을 겸비한 쪽으로 더 많이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되고 그런 것을 보면 광림교회 같은 데가 굉장히 뭐랄까 앞을 내다보는 교회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1985년도에 제천 쪽에 있는 광림수도원에 갔는데 아예 골프장을 기도원 속에다가 넣더라고요. 지금도 굉장히 특이하지만 그 당시로써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기도원이라고 그랬나? 수양관이라고 그랬나? 그 속에 아예 골프시설을 넣었어요. 미니 골프장인데 조금마한 것이 아니고 꽤 어느 정도 되는 골프장을 같이 지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내려가서 이미 1988년도쯤 되었는데 Full Auto 세탁 시스템이 다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해놨어요. 레저를 중심으로 간다는 것을 굉장히 많이 읽어낸 것이죠.
그런 기도원의 변천사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를 읽어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에요. 특히 어디야? 오스트레일리아를 갔을 때 특이했던 것은 한참 그런 수양시설로 만들어놓았던 수많은 시설들이 거의 흉물스럽게 방치된 것이었어요. 교회가 쇠퇴하면서 그것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 것이죠. 그 다음에.
-교과 읽음(16p~17p)
이 문제도 사실은 1973년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여러분들이 신복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것인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다음에 엑스폴로, 민족복음화 대성회, 등등으로 이어지는 전개과정들이 굉장히 한국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은 기독교신앙의 본질들을 상당히 잃어버리게 되는 그런 과정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잊지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저의 기억에는 1960년대 교회부터 저는 기억에 명료하게 있거든요. 그런데 진짜 교회를 세우면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분위기가 지금 캄보디아가 똑같아요. 세우면 그냥 몰려오는 것이에요. 특히 애들이 정말 갈 데가 없어서 그런지 우르르 몰려오고 어른들도 그렇게 교회에 많이 나와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전도부인들이 있었어요. 전도부인들은 신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있었고 아닌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를 만나고 은혜를 받은 것을 시장바닥 같은데서 벽돌 몇 개 놓고 올라가서 한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증을 하는 것이에요. 간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복을 입었어요. 나이는 그저 40대에서 60대정도로 골고루 있었고 아주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가 6.25때 남편을 잃어버리고 과부가 되어서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간증을 하면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겠노라고 결신서를 막 썼어요. 제가 뚜렷이 기억이 나요. 지금의 길음 시장이라고 정릉 가는데 있잖아요. 거기서 공부를 했는데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었을 때인데 그리고 옆에 있는 젊은 청년이 그 결신서를 받는 것이에요. 그냥 뭐 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소와 이름을 적는 것이에요. 그 당시에는 전화도 없었으니까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찾아가서 심방을 하기도 하고 어느 교회로 나오라고 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사실은 거기까지는 못 봤어요. 그런데 권사인(?) 운동이라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 기쁜데 농어촌아웃리치를 하고 싶은 것이에요. 그런데 그냥은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권사인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장돌뱅이처럼 보따리에 책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언문으로 된 책들을 보급하고 파는 것이에요. 거기의 상당부분이 쪽 복음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담겨있었고 방물장수들에 대한 기억은 내가 가지고 있어요. 방물장수들은 뒤에 사과궤짝들을 몇 개 메고 다니는데 그것을 열어보면 무슨 참빗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이 거기에 있어요. 종이도 있고 붓도 있고 색경이라고 그랬는데 거울도 있고 칼도 있고 그런 것들을 오밀조밀하게 펼쳐놓으면 동네사람들이 다 모이는데 거기서 예수를 전하는 것이에요. 예수를 전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방물장수만 기억이 나는데 그런 것들로 이제 둔갑을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굉장히 많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그냥 교회만 세우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에요. 초창기에는 찢어지게 가난했거든요. 왜냐하면 모이는 사람들이야 아까 얘기했듯이 돈 많은 사람들은 잘 안 나왔어요. 지금도 기억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항상 돈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가난한 목회자……. 이렇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1970년대에 사람들은 계속 굉장히 오는데 생활수준은 점점 나아지는 것이에요. 교회의 형편이 나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사람들이 목회자의 길도 갈만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1960년대 이화여대에서 앙케트 조사를 했는데 목회자의 순위가 이발사 다음이었대요. 그 당시의 이발사는 가난한 사람의 대명사였거든요. 이발 기구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발을 해주었는데 그 사람 다음이었대요. 그런데 1974년도에 우리가 100억불 수출을 달성하고 1000불 국민소득이 넘었거든요. 그때의 우리 수준이 지금의 북한 수준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리고 나서 급속도로 잘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는 것은 계속된 것이에요. 그것도 사회적인 요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죠. 왜냐하면 잘살게 된다는 것은 결국은 누군가 노동자 계층들이나 노후계층이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죠. 중국의 저임금같이 그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억눌린 것이에요. 그런 억눌린 설움 같은 것들을 교회에 와서 특히 금요기도회 때에 다 쏟아내는 것이에요. 그 당시에 일어났던 금요기도회의 열풍은 우리 모두 100% 영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고 상당히 사회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에요. 거기서 막 울분 같은 것들을 다 쏟아내고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나가서 다시 일하고 그러면서 우리도 그 당시에 정부에서 내걸었던 것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잘살아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잖아요. 굉장히 물질적인 것들이었단 말이죠. 그런 것들을 교회에서 신앙이라는 형식으로 받아들여서 그래서 번영주의 신학이 그때 기가 막히게 그 조류를 탄 교회가 말하자면 순복음교회에요. 철학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죠. 그래서 막 폭발적인 교회의 성장들이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무슨 문제들이 나오느냐하면 교회들이 생겨나는데 그 당시에는 부목사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목사가 그냥 하는 것이죠. 전도사라는 개념도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심방하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교육전도사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어떻게 되죠? 그다음에 이제는 뭐 열심히 공부해서 누구 밑에 들어가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사업체를 하듯이 교회를 세운다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목회자가 필요하니까 군소신학교들이 막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사실 군소신학교가 문제가 주범이 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군소신학교의 출현을 만들었죠. 군소신학교를 만들어내니까 고등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 중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 초등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 은혜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하면서 사람들이 신학교에 몰려오고 반지식(?)주의 같은 것들이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깊어진 것이에요. 신학교에 가서 공부 안 해도 된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대게 신학교 다닐 때 공부 안했던 목사들이에요. 그리고 지금도 안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도 지금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고 있고 신학교 다닐 때에 진지하게 공부했던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가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들이 막 퍼지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군소신학교가 오히려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지금도 통합측 같은 교단은 지방에 내려가잖아요? 그러면 정규코스를 받은 사람들은 마이너리티에요. 저 구석으로 밀려나요. 대세를 전부다 편목한 학생들이나 지방 신학교 출신들이 다 좌지우지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도 이제 총신을 보면서 하나의 거울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무조건 학생 수를 작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성들이 또 나오는 것이에요.
그러면서도 이제 아쉬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교회가 좀 일치를 이루어서 그래서 철저하게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목회자들이어야 한다는 사상들이 좀 강력하고 투철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런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그 시기에 교리교육은 완전히 무시됩니다. 이미 그때부터 무시됩니다. 교리라는 것은 결국은 이단시비가 나올 때나 한 번씩 떠오르는 문제였지 지금 기억에도 거의 교리를 안 가르쳤어요. 그러면서 이런 군소신학교의 출현, 그 다음에 교인들 자신이 교리를 안 가르쳐주니까 올바른 목회자와 잘못된 목회자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Tool 자체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교리교육을 잘 못하게 되면 당장은 유익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그 대가가 교회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에요.
금요철야가 일반화 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어요.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는데 후반이에요. 그리고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안하는 교회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그만두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일까요? 요새? 요새야 거의 금요철야기도회를 안하잖아요. 90년대 중반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때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C. 한국교회의 유산들
1. 기도 중심의 경건
-교과 읽음(17p~18p)
여기에서도 우리들이 양면성을 보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했고 열렬했다는 것은 우리들이 부인할 수 없어요. 그리고 여러분 아마 그 당시를 기억할 것이에요. 11시에 철야기도가 시작되면 4시가 되어야 끝났어요. 그리고 특히 기도원에서는 매일 철야가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 철야가 있거나 아니면 금요일에는 기도원에서 철야를 잘 안하고 이제 목요일이나 화요일에 했어요. 그것은 교회에서는 금요일에 금요기도를 하니까 그 이외의 날에 와서 그렇게 철야기도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 기억에 3시 4시까지 계속되었고 잠깐 30분이나 한 시간을 쉬었다가 새벽기도 하는 것으로 철야기도를 마쳤거든요. 굉장히 뜨겁고 열렬했고 간절했어요. 그런데 방향이나 이런 것들이 정말 올바르게 자리 잡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죠. 그래서 아무리 뜨거운 기도운동이라도 올바르게 방향이 잡혀지지 않은 것들은 결국 처음에는 작은 차이여도 나중에는 굉장히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렇게 보면 결국은 이런 기도운동이 후에 세월이 흐르면서 굉장히 개인주의화 되었어요.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다고 그러지만 대부분 반공주의적인 기도운동들이었고 그래서 북한을 적그리스도의 집단으로 보는 그런 어떤 반공주의적인 기도운동들이었어요. 그런 면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 다음에.
2. 성령 중심의 선교
-교과 읽음(18p~19p)
이것이 사실은 제일 커다란 문제였어요.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평양대부흥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에 굉장히 많이 기초를 하고 있지요. 무슨 뜻이냐 하면 사실 성령에 대한 강조는 역사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렵거든요. 성령에 대한 것들을 강조하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주관주의에 빠지거나 은사 오용주의 그 다음에 성령의 어떤 내적인 광명, 이런 것들에 대한 강조를 가져오게 되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약화를 가져왔어요.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에도 보면 사실은 조명교리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고는 사실 이 균형을 유지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사실 오늘날 조명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이죠.
사실은 지난번 논문 때에도 이야기를 했고 내가 이야기를 했고 자기 깨어짐에서 내 나름대로 개혁주의적인 의견을 개진했는데 다시 한 번 읽고 정리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조명이라는 것 자체는 인간의 지성에 무엇인가 하나님의 빛이 더해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조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신비주의 밖에는 남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게 해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달음과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지에 대한 탐구들이 제대로 강조되어야하고 그 다음에 성령이 어떻게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고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이 신뢰할만하다는 것들을 가르쳐야되는데 그런 것들이 현저히 약해지는 것이죠.
-교과 읽음(19p)
여기에 불행 중 다행인 것이 뭐냐 하면 평양대부흥의 전통들이 살아남아서 확 깨뜨려져야지만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신학적인 인식이 한국교회에서 아주 분명하게 꽤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왔어요. 그래서 결국은 뭐냐 하면 회심에 대한 강조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어요. 제 생각에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회심에 대한 강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현저히 사라졌어요. 70년대 중반정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습니다.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교회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70년대 중반까지는 있었어요.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회개하면 말리는 분위기였지요. 그래서 이게 잘 들어보세요. 재미있는 게 이렇게 강력한 회심을 강조한 것은 좋았는데 그러다보니까 어떤 것이 되느냐하면 회심과 칭의에 대한 강조에 치우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구원을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종교 개혁안에 있었던 이신칭의의 문제를 마틴 루터도 마찬가지고 존 칼빈도 마찬가지고 사실은 초창기의 중생론은 넓은 의미의 중생론이었지 결코 좁은 의미의 중생론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아주 극단적으로 분류화시키는 일들이 우리의 한국교회의 선교과정에서 나타났던 것이죠. 물론 좁은 의미의 중생론들이 발달되기는 했는데 그것은 사실은 어떤 논쟁적인 구분들이었는데 이제 아까 이야기한 식으로 회심과 칭의에 치우쳐버리니까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구원을 보증하신다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부도덕한 삶을 촉진시키고 무율법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던 것이에요. 특히 무율법적인 삶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에요. 그 다음에.
-교과 읽음(10p~20p)
그러니까 1980년대에 일어났던 성경공부, 강해설교, 제자훈련, 이런 것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저쪽에서 일어났던 그런 현세적인 구복운동들과 불건전한 신비주의, 이런 것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측면에서 이런 것들 즉 기독교신앙의 전 포괄적인 측면들을 강조하면서 사실은 나온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뒤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역사를 평가할 때 이러한 80년대에 일어났던 성경공부 운동과 그 다음에 강해설교운동, 교재를 갖다놓고 사실 그때 그런 분위기를 타고 CCC나 네비게이토 등 각양 파라처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런 얘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기존교회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과 반성의 결과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해요. 뭐냐 하면 이런 운동들이 사실은 빗나가고 잘못된 것들에 대한 대안으로써 주어지긴 했지만 그런 대안 자체가 사실은 개혁주의의 뿌리를 둔 대안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오히려 뒤에서도 이야기하지만 경건주의적인 전통에 뿌리를 박은 그런 종류의 대안들이었다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은 경건주의 운동은 교리보다는 삶이라는 것을 제시했지만 여기에서는 사실은 교리보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어요. 교리 자체를 별로 가르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신앙의 본질 자체가 말하자면 실제적인 삶이요, 생활이다. 그런 것들이 되겠지요. 그리고 도슨 트로트만이나 이런 사람들이 1970년대 80년대에 제자훈련이나 이런 것들을 미국에 있는 침례교회 교단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 새로운 운동들이 일어날 때에 그것을 받아들여서 한국에 와서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삶과 인격의 성숙 이런 것들로 제시했을 때 그래도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동원 목사님의 새생활 세미나라든지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훈련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개혁주의적인 전통을 토대로 한 대안이라기보다는 경건주의적인 전통들을 가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잘 들어보세요. 그런 점에서 이제 어떻게 보면 이후의 90년대에 펼쳐지는 급속한 사회성장, 2000년대 오늘날 펼쳐지는 급속한 경제성장,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나름대로 이제는 어떤 예를 들자면 80년대에 강해설교운동 같은 것도 있었지만 그때 사실은 신학이 강조된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하도 성경을 설교를 안 하니까 그래도 성경을 설교하자는 운동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성경신학운동은 아니었어요. 성경을 설교하자는 운동이었지요. 신학은 강조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강해설교운동도 많이 물러났지만 그런 것이니까 사실은 어떤 현실들이 계속 움직일 때 그때 같이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어떤 뚜렷한 신학적인 관점이나 이런 것들이 성경신학운동이나 성경공부운동 같은데서 전개된 것은 아니었거든요. CCC 성경공부를 비롯해서 많은 성경공부교재들이 개혁신학의 구원론이나 아니면 교회론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상당히 심각한 결함들을 내포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부를 하고나면 오히려 개혁신학에 대해서 친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반감을 갖게 하는 그런 하나의 요인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이후 2000년대에 일어난 어떤 탈신학적인 목회를 예고했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올바른 신학운동이 일어나 본적이 없는 것이에요. 그게 문제였던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하고 무슨 강력한 18세기의 경건주의운동처럼 그렇게 강력한 부흥을 동반한 그런 경건운동도 아니었거든요.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에요. 강해설교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지금 그게 무슨 커다란 영향을 한국교회에 미쳤겠어요? 오히려 많은 사회참여운동이나 이런 것들로 넘어가는 한 과정이 되게 되었던 것이죠. 그 다음에.
3. 복음 중심의 신앙
-교과 읽음(20p~21p)
그러니까 뭐냐 하면 복음, 복음 그러는데 복음의 교리에 대한 앎이 없이는 복음 자체에 대한 앎도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러면 하나의 단순한 복음으로부터 복음의 교리들을 전개해가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가장 중요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하면 신학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신학이라는 제조기에 의해서 복음이 들어가고 그 신학이라는 제조기에 의해서 복음의 교리들이 생산되는 것이에요.
4. 성장 중심의 목회
-교과 읽음(22p)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기본적인 심성 자체는 내세적이 아니에요. 낙관적이고 굉장히 현세적이에요. 현세적인데 우리의 신관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뭐냐 하면 이집트의 신관을 보면 오히려 터줏대감도 번영과 관련이 있고 그 다음에 원한 같은 것도 대부분 어디에서 나오느냐하면 현세에서 성공하지 못한,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한 것들이 원한이 되어서 내세로 투영이 되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 내세가 자신을 위해서, 신들이 자신을 위해서 복수를 하는 이런 식의 것들은 결국 내세 자체도 강력한 현세주의의 하나의 투영으로 우리들이 보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 한국인의 심성은 기본적으로 현세중심적인 심성이었는데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런 현세중심적인 심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제 기복신앙 자체를 한국인의 심성과만 연결을 지어서는 안 되고 그런 당시의 미묘한 상황과 관련을 지어서 생각해봐야 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오늘날 일어나는 번영주의와 기복사상 같은 것들은 옛날의 그것과는 훨씬 다른 정신적인 차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오늘날도 바로 그런 이유죠. 계속하세요.
- 교과 읽음(22p~23p)
여러분 시골에서 처녀들이 서울로 막 무작정 상경하던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1960년대 후반이에요. 그리고 그 다음에 아파트들이 생겨난 것이 1960년대 후반에 최초의 아파트가 여기 청계천, 와우, 그런 곳에 생겨나고 김현옥시장 시절에 돌격 앞으로 해서 막 만들기 시작한 것이거든요. 그 아파트의 건설이 사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은 굉장히 커요. 그래서 뭐냐 하면 완전히 공동체 의식들이 단절되는데 한몫을 하게 하는 것이에요. 사회 자체가 이미 그런 것들이 와해되어가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아파트 같은 것들은 더 심화되고 핵가족제도가 되면서 인간 존재라는 자체를 공동체 속에서 규정하고 내려오던 전통들이 남아있었잖아요. 이런 것들이 도시부터 급속히 무너져 내린 것이죠.
여러분 데이비드 윌즈는 공부 안했지요? 각자 여러분이 읽어보시기 바라고 데이비드 윌즈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듯이 도시를 중심으로 생산요소에 다극화 같은 것들이 결국은 상대주의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도시가 산업사회에서 타락하게 되는 요인이 도덕에 대한 가치기준의 질서가 도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한 사람이 전부 다 manufacturing을 해서 제품을 생산해 내었는데 다양한 요소들이 들어오게 되니까 이제는 경제를 통해서 누구하나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없다는 암시들이 도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단절되고 그러는데 데이비드 윌즈의 분석은 기가 막힙니다. 데이비드 윌즈는 그 책을 21세기의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생각한대요. ‘끼드딸스데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인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인식해야하고 한국하고 똑같아요.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런 도덕의 가치들이 농촌은 천천히 무너지고 그런데 대도시가 무너지고 중소도시로 내려가서 이제 시골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잖아요. 우리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겠지요.
그래서 요즘에 아파트보다는 타운하우스가 뜨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사회 심리학적으로 그렇게 단절하고 살아보니까 재미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community를 이루는 주거공동체들이 새로운 눈길을 끄는데 거기에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도입되는 것이죠. 그래서 큰 아파트들 10억, 20억 되는 아파트들을 보면 경비가 철저하지요. 그리고 같은 평수를 가진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컨설트도 하고 원예도 하고 그렇게 노는 것이에요. 그것을 잘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코드가 보인다고요. 그러면 서초동에 있는 15억씩이나 되는 아파트들을 보면 차가 들어오면 경비실에서 감지해서 자기네 집으로 전화벨이 가는 것이에요. 당신 집 차가 주차장에 들어왔다고 그러면서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에요. 외부사람들이 접근을 할 수 없어요. 자기네들끼리 사우나도 하고 테니스도 치고 그러면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그것들에서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에요. 가족들과의 연대관계는 무거운 의무들을 내포하지만 그런 관계없는 사람들끼리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적절히 자신의 사회적 욕구를 채워주고 의무를 최소화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런 타운하우스가 뜨고 있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심해지리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어디에서도 코드가 보이느냐하면 요즘에 옛날에 콘도라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회원권을 사던 시대였잖아요. 지금은 한물 간 것이에요. 그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수련회 갈 때나 쓰는 것이고 지금 저기 평창에 있는 알펜시아나 소노펠리체 이런 고급 프리미엄 리조트들이 개발되는데 상상할 수 없이 비싼 가격이에요. 그 속에서 수준과 신분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커뮤니티를 이루면서 여가생활을 즐기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앞으로는 이머징교회가 확실히 뜨게 될 것이에요.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런 것들은 상당히 많은 것들을 채워주기 때문에 그래요. 교회가 나중에 분화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와 부유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가 될 것 같아요. 교회 자체가 분할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안에서 다시 분화되는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생각 되요. 그런 것들을 벌써 활용하는 교회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교회 안에 골프동호회를 만들면 가난한 사람이 거기에 가입할 수 있겠어요? 수시로 외국으로 골프 치러 나가고 그러는데……. 그런 것들이 상당히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내가 아는 목사님이고 존경하는 목사님이었는데 다 돌아가셨지요. 자기 일생의 마지막사업이라고 그러면서 그 당시에 300억 규모의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다 자연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시대니까 300억을 들여서 다세대주택을 짓고 그 당시에 300억이면 굉장히 큰돈이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 거기에다가 교회당을 짓고 그것을 다 교인들에게 콘도처럼 분양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러 가지 효과가 있는데 교인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고 그 다음에 다음세대에 여가를 즐기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랬어요. 사실 그분이 연세가 많으셔서 내가 실망할까봐 말은 안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목사님 코드를 잘못 읽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에 만족을 안 해요. 지금 양극화현상이 일어나잖아요. 지금 우리가 지난번에 갔던 솔비치 같은 곳에 가면 (교역자들은 간적이 없지만…….) 거기에 있는 펠라지움 한 동에 한 10억 정도 되거든요. 10년 동안에 10억이에요. 10년에 10억이면 정확하게 5억이에요. 5억을 그냥 주는 것이에요. 10억을 맡겨놓는다는 것은 최소한 5억 내지 6억을 그냥 주는 것이에요. 이자를 계산하면 그렇게 되요. 그런데 나중에 10억이 가치가 떨어지는 것까지 계산하면 사실 10억을 맡기면 6억 이상을 그냥 주는 거예요. 그러면 10년 동안 그 사용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6억을 쓰면 일 년에 6천만 원이 나가는 것이에요. 월세 500백만 원짜리를 보증금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관리비를 130만원인가 받잖아요. 그런데 짓자마자 바로 동이 난 것이에요. 프리미엄리조트의 시장은 그래요.
그런데 저 밑에 있는 콘도들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나오잖아요. 600, 900 막 떨이로 팔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안 옵니다. 그러니까 집의 환경이 이번에 우리가 직원수련회 갔다 온 금호리조트보다 훨씬 환경이 좋은 것이에요. 사실은 환경이 집에 있는 환경보다 좋아야지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수리할 능력도 없어서 계속 쇠락해지는 것이에요. 수리는 절대 안합니다. 걷어서 수리비도 안 나오니까……. 양극화가 확 되는 것이에요. 그러다가 세월이 더 흘러가면 개인이 그런 것들을 소장하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레저와 쾌락 이것이 다음세대에는 레저와 쾌락이 예전에는 이단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 이단과 물질주의가 아니라 레저와 쾌락이 차세대에는 교회의 대적이 되는 것이죠. 그 다음에.
-교과 읽음(23p~24p)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