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2
녹취자:이경순
미국이 1850년대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산업혁명은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들이 오늘날 받아들이고 있는 기독교의 다양한 현실들의 틀들이 사실은 산업혁명 이후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할 때 항상 여러분들이 신학만 공부하면 안 되고 인접된 학문들을 항상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공부해 가면서 신학을 공부할 때에 독단에 빠지지 않고 선교적인 이해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권하는 것은 산업혁명이후에 현대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할지 안할지 모르지만 책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어서 한 6개월에 한 키 정도씩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우선 여러분들에게 데이비드 웰즈 박사 책에 4부작이 있는데 신학실종, 윤리실종, 위대하신 하나님 ,탁월하신 그리스도 그 이외 용기 있는 기독교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이 있는데 일단 4부작만이라도 읽으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제가 데이비드 웰즈 박사님을 미국에 가서 만났는데 그분이 호주출신입니다. 학문도 깊으시고 훌륭한 분이십니다. 이분의 관심사는 기독교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쭉 전달되어 내려올 때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이 기독교가 어떻게 변했는가, 또 어떻게 사회를 바꾸었는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 든 지간에 성립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교회라고 하는 것이 공중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 존재하므로 사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들이 와서 교회를 바꾸기도 하는 교회가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이런 말하자면 소통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데이비드 웰즈 박사는 그런데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많이 하신분이고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책은 제가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의 책과 함께 여러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은 프란시스쉐퍼의 하우시드위드엔 리브라는 책이 있습니다. 번역하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성으로부터의 도피, 창세기의 시공간성, 거기 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런 책들입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낸시피어시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박사의 스쿨의 후계자 인데 이 사람이 쓴 책 중에서 토털 투루스란 책으로서 완전한 진리라고 번역이 된 책등 그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이런 책들을 여러분들이 읽으면서 같이 토론하고 읽으면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면 여러분들이 역사지식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미국역사, 영국역사, 캐나다역사, 등을 읽으면서 여기서 나오는 무대들이 대게 유럽과 미국역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우선 서양사를 여러분들이 읽으면서 같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강의와 관련지어서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산업혁명이 일어나 기전 까지는 사회가 자급자족 사회였고 가내수공업 사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부다 지역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면 먼 곳을 여행할 수는 있겠지만 일단 교통수단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고 세 번째는 가야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요즘은 아버지가 거기 살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그 시대에 거기서 왜 살겠습니까? 여기서 태어나서 증조할아버지, 그 지역사회에 태어나서 씨족사회에서 자라나서 친척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같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회가 아주 도덕적으로 교육이 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어나면 바깥에 나가면 동네사람들이 모두다 할아버지 ,큰아버지, 친척 삼촌, 사촌 오촌당숙 다 그럽니다. 그러면 위로는 누가 있고 아래는 누구 이고 옆에 동료는 누가 이고 어른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하고 아래 사람은 내가 어떻게 보호하고 돌봐야 하고 이런 의무의 개념들이 명료해 지는 겁니다. 거기서 어떤 녀석이 나와서 술 마시고 삼촌이고 사촌이고 패고 그러면 쫓겨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데서 어려서부터 도덕이 무엇이고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학문적으로는 몰라도 인간의 사는 도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에 대한 아주 명료한 이해를 가지고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윤리교육이나 이런 것들이 저절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옛날에 우리사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산업화사회가 되면서 이런 것들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물건을 생산해도 자기가 쓸려고 생산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드는 길에 식구는 다섯 명인데 10켤레정도 만드는 겁니다. 호박농사를 잘 지어요. 호박이 먹고 싶습니다. 그러면 구두 한 켤레주고 호박 10개쯤 가져오는 겁니다. 또 저쪽에서 낫이나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있으면 가서 주고 바꾸고 이렇게 하면서 살기 때문에 생산부터 소비가 전부다 실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의가 있고 인간사회에 정이 있는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의 발발은 획기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증기기관입니다. 동력을 예전에는 물 옆에서 물이 떨어지면 물레방아나 돌려서 쓰고 이렇게 하던 것인데 이젠 어디든지 불만 때서 수증기만 나오면 그것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장이 가능해지게 되는 겁니다. 물론 로마시대에도 공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장은 물 같은 것을 이용해서공업단지를 만든 것입니다. 산위에 물길을 만들어 놓고 거대한 물을 산 아래쪽 통로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흘려보내는 거기에 계단식으로 공장을 만들어서 그 물길 바로 옆에 물레방아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 하나가 내려오면서 물레방아를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력이 나오니까 그것으로 제품도 만들고 군수품도 생산하고 하는 그 시설들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장소가 고정되었었는데 지금은 장소를 어디든지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면서 여기에서 어떤 온도에서 어떻게 수증기가 만들어 질 때에 가장 폭발적인 힘이 효율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게 되면서 물 분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 물 분자이하의 원자 양자 역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양자역학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원자이하의 단위에서의 역학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이 발달되기 때문에 자기부상열차라든지 바코드 스캐너라든지 아니면 탄소섬유를 이용하면 엘리베이터를 같은 것을 우주 바깥으로도 엘리베이터를 올려 보낼 수 있는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게 된 것 들입니다. 이것이 혁명적으로 빨리 일어났고 그 사회에 가져다준 변화가 가히 혁명이라고 할 정도였기 때문에 혁명이란 기존에 있는 질서를 다 뚜드려 엎고 새것이 나오는 것이 혁명입니다.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는 혁명이 아닙니다. 어제 왕이었는데 왕을 뚜드려 눕히고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하나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고 생산과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산업혁명으로서의 전환 이 뒤에는 커다란 철학적인 혁명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어렸을 때 배운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거기서 등장을 합니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질서들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완전히 바꾸어놓아서 예전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에서 인간이 아는 것은 지극히 부분이고 인간이 무엇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는 유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지식의 태도들을 바꾸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온 유명한 명제가 바로 꼬기도 에루구숨 꼬기또라는 것은 꼬기타로에서 나오는 일인칭으로 나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회의한다는 뜻입니다. 의심을 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르고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다 부정하라 그렇게 모든 것을 회의하고 부정해도 마지막에 한 가지 사실은 회의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의심을 하고 있다는 내가 있다는 사실 이것은 부정할 수없는 것이다. 꼬기도 에르구숭이라고 하는 데 이 사람이 이것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벌써 4세기 5세기경에 기독교 위대한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만약 오류에 빠진다면 그러면 나는 존재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에 회의를 품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오류에 빠진다면 내가 오류에 빠진 존재로서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가 없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서 꼬기또 에르구숨의 논리를 세웁니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격언처럼 들리지만 근대와 중세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적인 선언이 여기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전에는 이 모든 만물들을 아시는 분이 한분 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게 신입니다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사물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항상 이것이 절대적이 아니다 라는 유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카르트에 의해서 데카르트 주의자들에 의해서 이전 까지는 이 철학의 중심이 존재였는데 데카르트에 오면서 거대한 사회의 전환이 일어나는데 존재가 중심이 아니라 인식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비유를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강강술래가 있습니다. 중간에 서있는 사람이 술래인데 중간에 서 있는 분이 하나님 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계와 모든 만물 인간까지도 함께 돌아가는 강강술래입니다. 신이 무어라고 지정하는가에 따라서 각각 위치를 갖고 의미를 부여받는 것입니다. 나는 이속에서 강강술래 하고 돌아가지만 내가 무슨 의미를 가진 인간인지는 나 자신에게서는 모르고 신에게 물어봐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데카르트에 와서 신이 술래가 되어서 모든 강강술래 하는 사물들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이것은 무슨 의미다고 지정해주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자기가 그 가운데로 들어가고 하나님을 강강술래의 요소가운데 하나로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도 같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은 내가 그 신을 무어라고 말하느냐에 의해서 신의 존재의 의미는 과장을 해서 이야기 하자면 그렇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이슈타인과 인도의 시성이라고 일컬어지는 타고르라는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이 모든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이 당신이 인정하든 안하든 당신이 몰라도 우주는 존재하고 우주의 세계가 있다. 그러니까 타고르가 아니 내가 모르는데 그게 존재하든 말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게 데카르트의 철학하고 통하는 겁니다. 물론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도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흰두사상 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상은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그런 고대희랍의 사상들이 다시 재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인본주의 인본주의 이야기 하는데 그 인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을 본위로 하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있어야할 자리에 인간을 둔 사상이 인본주의이고 그것이 세속주의입니다. 그럼 이런 사상은 데카르트에 의해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런 데카르트의 사상이 생겨나게 된 것은 르네상스를 통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르네상스에 대한 공부는 필수입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르네상스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토론도 하고 역사공부를 해야 합니다. 르네상스에 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서 그 다양하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루어지는 르네상스의 해석만 읽지 말고 약북쿠르아트라든지 옛날사람들의 예전 역사가들의 해석부터 현대의 해석 가들을 망라하면서 어떻게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왔는가를 읽어야 합니다. 원래르네상스라는 말은 리 라는 단어와 라스지멘토 이테리어인데 탄생 출생 그런 뜻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중세로 말미암아 죽어있던 것을 다시 탄생시키는 것이다 중세에 인간이 죽어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누구이고 이 세계와 모든 우주의 진정한 의미가 인간에게 있다 라고하는 인간중심의 사상들이 재탄생하는 시기가 리 라스끼멘또 르네상스 시대하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살아있었느가 하는 향수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펠트라고 하는 독일학자가 있는데 지중해 철학여행인가라는 책에 보면 지금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시대 때에 인간이 그리스시대라고 해서 마케도니아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도를 모두 통일해서 페르시아를 모두 꺾고 우리들이 아는 헬레니즘 시대를 건설 할 때는 이미 이런 가치들이 거의 다 무너진 때 입니다.그 이전에 그리스가 폴리스 인구 만 명에서 10만 명 정도 되는 작은 부락단위로 모여서 도시국가를 이루면서 살던 시대의인물인데 소크라테스라든지 플라톤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폴리스 시대 때에 살던 사람들 여기서는 인간이 진정한 존중의 대상이 되고 물론 신들을 믿지만 신 앞에 인간이 무자비하게 종속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런 개념은 사실은 그리스에서 생겨 날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의 모든 신들은 짐승모양이나 알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리스의 신들은 다 미남이고 미녀입니다. 신들끼리 서로 간통도 하고 복수도 하고 도망도 다니고 죽이기도 하고 미워도 하고 사랑에도 빠지고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똑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급한 신들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어떻게 하든지 인간을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놓아서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던 시기가 폴리스 시대라고 사람들은 보았던 것입니다. 그때에 있었던 인간성에 있던 발견을 재탄생시킨다는 의미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것이 역사적으로는 기독교의 폭압적인 인간성 압제교회의 직제에 의한 로마카토릭에 대한 부패 이런 것들에 대한 반동으로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르네상스에서 인문주의가 나오게 되고 르네상스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남부이태리 잘 아는 미켈란젤로라든지 레오나르드 다빈치라든지 보카치오라든지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피렌체로 중심으로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피렌체 역사하나만 공부해도 어떻게 기독교에 의해서 박해받던 인간들이 어떻게 다시 신을 거절하고 인간을 중심자리에 끌어 올리는가 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어느 한순간에 기독교에 대한 정면적인 대결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문화의 바람을 타고 서서히 바람이 불면서 종교와 인간성의 회복이 양립하는 가운데 예술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이태리 남부에서 일어났고 북부에서는 이것들이 하나의 학문적인 운동으로 지적인 운동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기독교 인문주의라고 합니다. 인문주의가 세속적 인문주의 기독교 인문주의 둘로 나뉘는데 세속적 인문주의는 오늘날 현대사상의 뿌리들이 되었고 기독교 인문주의는 그것을 통해서 기독교를 깨워가지고 거기서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벌떼처럼 일으켜서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당시의 모두 기독교 인문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데카르트에 의해서 인간이 모르는 것은 끝까지 확장하지 말자 그러나 인간이 모든 의심을 다 동원해서 의심하고 의심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이것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믿을 만 한 것이다 신의 보증이 없어도 이것은 믿을만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러한 사상을 토대로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발견된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되므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뉴턴이라는 중요한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뉴턴이 쁘링삐삐아라는 책을 씁니다. 이것은 원리 라고 하는 책인데 이 책의 원래이름은 뉴턴이 쓴 책인데 자연과학에 관한 수학적 원리들 이라는 긴 제목의 첫 번째 헤드타이틀이 프린삐삐아입니다. 무슨뜻이냐면 예전에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족으로 지는구나 물건을 위에서 떨어뜨리면 아래로 떨어지는 구나 이런 식으로 철저한 규칙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모든 자연운동들이 철저한 규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는 주장을 쁘링케피아세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미분, 적분 이런 것들을 이미 벌서 뉴턴이 만들어 냅니다. 뉴턴이 만들어 냈는데 라이프니찌가 먼저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 것을 베꼈다고 화를 냈는데 알고 보니까 거의 같은 시기에 따로따로 연구를 했는데 이 사람이 먼저 찾아냈지만 발표를 늦추는 바람에 라이프니찌가 먼저 발표를 한 것입니다. 어째든 그런 것들을 발견을 하고 이 뉴터니즘이 이 뉴턴이 1900년대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전권을 휘두르는 그래서 산업혁명의 엄청난 기폭제가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학문적인 헌신이 산업혁명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인데 여러분 알다시피 도시화가 이루어진 것은 생산 활동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벌어먹고 살려면 도시로 와야 합니다. 이미 도시가 형성이 되고 사람들이 소비수준이 높아지니까 시골에서 호롱불 켜고 쟁기 갈고 밭일하면서 살고 싶지 않고 도시에 가서 안락한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일자리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인구의 95%이상이 현재 5만이상의 도시에 삽니다. 그러니까 그 도시에 가면 그 도시에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전에는 생산 활동을 한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장악을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 되고 구두하나를 만들려도 소 키우는 사람 가죽 납품하는 사람 염색하는 사람 무두질하는 사람 꿰매는 사람 디자인 , 설계하는 사람 색칠하는 사람 포장하는 사람 마케팅 하는 사람 다 다른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합쳐야만 구두생산과 판매가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한 사람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물건의 생산을 위해서 가각 역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릴레이티니즘이라고 해서 소위 상대주의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누구도 자기가 자기 없으면 안된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두 만드는데 작은 장식하나 다는것도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이 제때 물건을 주어야만 완제품이 되는 것입니다 상대주의가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진리가 절대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도시의 정신에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전에는 문만 열고 나가면 다 친척 이었는데 이제는 문을 열고 나가도 자기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생산 활동을 위해서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면 옆에 누가 사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옆집에서 이상하게 냄새가나서 찾아갔는데 6년 전에 사람이 죽었는데 옆에서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또 어느 여학생하나가 시골에서 취업하기위해서 올라왔는데 몇 달 동안 연락이 없는 겁니다. 엄마아빠가 딸을 찾으러 와서 문을 두드렸는데 문이 잠근 겁니다. 그래서 외출 했나보다 하고 못 만나고 돌아갔는데 그리고 다시 6개월 후에 와서 똑같이 문이 잠겨있으니까 이번에는 경찰에 연락해서 문을 뜯으니까 딸이 말라죽어있는 겁니다. 컴퓨터를 하다가책 상에 엎드려 죽었는데 미라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1년 동안 말라서 완전한 인간관계의 실종현상들이 생겨나게 되고 관계를 맺어도 그 관계는 모두 이익을 위한 관계만 맺습니다. 그런 속에서 인간은 소위 군중 속에서 고독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850년대에 미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런 문제들이 벌써 야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성직에 대한 관점 기독교의 진리는 이런 것이고 우리는 무조건 복종해야 된다는 이런 정신들이 이제 그런 정신에 항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우리보고 무조건 믿어라 복종하라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철저한 죄인들뿐이다 라고 하는 이런 식의 인간에 대한 이해들이 현대 그 당시의 사회에 흐름과는 너무 맞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면서 거대한 사상들이 유럽에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상들이 무슨 사상이냐면 지금 대륙에서 지금현재는 무신론이나 이런 것들도 각광을 받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사회는 기독교의 역사를 장구하게 가지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회의 시스템이나 인간의 사고방식 같은 것들이 기독교적인 가치위에 수립이 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라는 존재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뿌리 깊은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강타하고 들어오는 것은 세속주의입니다. 세속주의라고해서 타락하고 죄짓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인간을 둔 그런 가치 체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데카르트를 비롯해서 근대에 문을 여는 사상가들이 나오고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서 사상가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니체 같은 사람이 등장하게 되고 그리고 특히 칸트라는 사람이 등장을 해서 이 사람이 삼대 비판서를 씁니다. 순수이상 비판 판단력비판 이런 책들을 실천이상비판 등 이런 책들을 쓰면서 확고하게 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대전환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상을 이루면서 인간들이 이러한 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가지고 있는데 이미 이런 사상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들은 이미 매력을 잃어버리고 접촉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풍조가 생겨나게 된 것이 이신론이라는 새로운 풍조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신론에서 이는 철학내지는 원리입니다. 신은 신, 철학이 신을 대치하는 유신론입니다. 이 사상의 핵심은 하나님은 있다. 존재한다. 그러나 저 높은 하늘에 관념적으로 계시는 분이다. 이 세계에 간섭하시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테트리본 헤퍼라는 사람인데 신학자 인데 나치에 저항하다가 나치가 항복하기 며칠 전에 사형을 당합니다. 이 사람이 남긴 유명한 이야기가 형제들하고 모여서 성찬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총 들고 나가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고 나치에 저항한 운동을 하고 그날 저녁에 다시 성찬을 하면 온 사람도 있고 안온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남긴 유명한 이야기가 만약에 미치광이가 버스를 몬다면 그 승객이 위험하게 되었다면 그 미치광이를 죽여서라도 핸들을 뺏어서 승객의 안전을 도모해야지 내버려두고 기도만 하면 되겠느냐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미성숙한 시대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의 일에 낫낫이 간섭을 하셨지만 이제 이 신약시대는 성숙한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너희들에게 알아서 잘 해보라 그런 능력을 주셨다고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그럼 신의 존재는 형식적으로 인정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움직이는 가치의 모든 체계들은 이런 세속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 이신론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미국을 청교도 신앙아래 세워진 국가라고 하지만 미국의 건국의 주체들이 대부분 이런 이신론의 사상을 유럽으로부터 강력하게 물려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조나단 에즈워드는 1706년생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는18세기 중반인데 산업혁명이 딱 맞아 떨어지는 시기에 이미 바깥에서 소위 얘기하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라고 하는데 우리들이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은 14세기 15세기에 일어나지만 이것들이 열매를 거두는 것이 지적인 형태로 나타날 때 이것을 우리들이 계몽주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디 엔 라이트먼트라고 이야기 는데 이게 계몽주의입니다. 그러면 계몽이라는 것은 계몽주의이전의 인간은 무지몽매했다라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지몽매했는가 하면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뉴턴의 이론 법칙에 의해서 모든 자연의 현상들이 수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성으로서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사건만 옛날에 일어난 것이지 지금 재연 될 수 없는 것은 옛날에도 일어난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과학이나 이성으로 입증할 수없는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예를 들면 신이 존재한다. 아니면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전생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을 믿고 말고 하는 것은 인간 각자 자유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지지되어야 하는 확신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서 그러한 사실들을 모르고 예전에 있는 미몽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에라이트먼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이 퍼져 들어오게 되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동정녀로 태어나셨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 이런 것들은 전부다 기독교의 중요한 기초들은 다 이성으로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성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고 믿음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없이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받아야할 인간들에게 남겨주신 이 신학적인 명제들이 대부분 비이성적이라기보다는 초이성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데카르트주의 맥락에 놓고 보면 모두인간의 지적인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인간이 학문의 세계에서 지식적으로 논쟁할 수 없는 밖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터뜨려버리고 나니까 그러면서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신학의 결합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이 데이즘이 이 계몽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그나마 하나의 타협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1850년대에 미국은 가난 했습니다.유럽은 미국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1620년에 메이플라호를 타고 온 다음에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끊임없이 유럽에 사람들을 보내서 한 것은 이민자들을 모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다란 포스터를 써가지고 다니면서 미국 오면 수 만평의 땅을 그냥 준다. 자금도 준다.그러면서 이민 정책을 피게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오게 되는데 오게 될 때 그 이민자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겁니다. 청교도사상을 가지고 있는 영국 사람들만 오는 게 아니라 청교도 주의자 그담에 캐톨릭교도 심지어 몰몬교도 심지어 벱피티스트 심지어는 유대교 신자까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 미국을 세계 최고의 다원주의 사회로 만든 하나의 역사적인 배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1800년대에 미국에서 이민법이 한번 통과되고 그 담에 1962년에 두 번째 이민법이 통과되는데 두 번째 이민법이 통과 될 때에는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전에는 첫 번째 이민자들이 그래도 유럽에서 왔기 때문에 기독교 내지는 캐톨릭 내지는 유대교 어째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번에 두 번째 이민법이 통과 될 때에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남미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문을 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소수인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밀려들어올 때 이 사람들이 이스랄엠이니 뭐니 수많은 종교들을 가지고 들어가게 되면서 미국에서 종교다원주의가 꽃피게 된 이유가 국가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원주의 사회를 다 받아들이고 호주도 받아들이고 우리나라도 받아들이고 다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글로벌 사회가 되는 하나의 커다란 대가를 치루도 있는 것입니다. 생산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 한국 같은 경우에도 150만 명 정도의 동남아사람들 서남아사람들이 와서 3D 생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국가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산업이 무너집니다.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의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째든 조나단 에드워드가 활동하던 시기가 이런 시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이 안에서 미국사회가 이미 청교도의 그런 경건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기울어져가고 있던 때였고 바깥에서는 엄청난 세력을 형성한 어마어마한 계몽주의 운동과 데카르트주의 같은 사조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면서 인본주의 사상이 학문과 신학의 전 방향에서 이미 밀려들고 있었고 이미 구라파에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는 학교들이 존립을 위협받을 상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논문을 써서 통과될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정도까지 그런 속에서 예전에 우리들이 해왔던 전통적인 목회와 선교의 방식 가지고는 노도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사조 들에 대해서 막아낼 수가 없던 것입니다. 그때에 18세기에 진짜 하나님이 천재 같은 사람 하나를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드입니다. 얼마나 천재였냐면 3대 가문이 신학자 집안 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별로였고 아버지도 유명한 목사였고 아버지가 한 교회에서 65년을 목회를 합니다. 가서 유아세례를 준 아이가 환갑 진갑이 지나도 여전히 그 할아버지가 목회를 한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조나단 에드워드입니다. 아들도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나단 에드워즈가 어느 정도 천재였냐면 3살부터 자기사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철저한 훈련,
생애 최초의 논문을 6살 때 씁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논문을, 여덟 살 때 유물론에 관한 논문을 씁니다. 그리고 13살 때에 히브리어 헬라어 특히 라틴어는 거의 도사였습니다. 이 언어를 모두 섭렵하고 예일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합니다. 4년 후에 그 대학에서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졸업할 때 라틴어로 졸업생 대표로 인사를 합니다. 2년 후에 그 대학에 교수가 되었는데 약관 19살입니다. 그리고 신학을 전공을 했는데 16살 때에는 거미에 관하여 라는 자연과학에 대한 논문을 유럽의 유명한 학술지에 기고를 할 정도로 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의전집이 28권으로 되어있는데 그중에서 필라서피오브사이언스라는 책이 한권 있는데그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학이야기가 아니라 물리학과 과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둥이 칠 때 그 각도, 개미가 운동할 때 그 각도, 물건이 깨뜨릴 때 그게 어떻게 깨지는가. 그것을 가지고 전부 설명을 하면서 거기에서 신학적인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지루합니다. 그래도 다 읽었습니다. 어떤 해석은 오늘날 과학이 그 당시보다 훨씬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황당한 설명도 있지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런 작업을 했던 이유가 뉴턴이즘이 신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뉴턴이즘의 핵심은 모든 자연운동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그 모든 법칙은 수식화 할 수 있다. 그것을 토대로 해서 사실 이 어마어마한 과학기술의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있을 여지가 없는 겁니다. 병에 걸리면 옛날 같으면 야 너 뭐 잘못했냐? 회개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랬는데 네가 추운날씨에 밖에 있어서 감기 걸린 것이고 거기에는 감기 균이 많은 동네이므로 네가 걸렸다 이런 식이니까 이젠 모든 자연법칙은 다 이성적으로 설명되니까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신앙을 의도적으로 버릴 수 있는 근거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게 아니다 라고 설명하는 겁니다. 그것중의 하나가 파워- 힘, 이것을 정의내리기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것을 힘이란 전권과 후권의 관계이다 여기에 에이가 있고 예전에는 이렇게 있었는데 이동해 오는 것입니다. 이동시키는 원인이 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힘들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법칙이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힘이 아무렇게나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놓으면 아문제가 없는데 힘이 작용하는 법칙이 있어서 법칙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힘이 한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은 법칙이 있어서 이루어 진 것이다. 봐라 하나님 없지 않느냐 라고 하니까 조나단 에드워즈가 나서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힘이 곧 하나님의 힘이다 이 법칙은 하나님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힘을 인간이 예측할 수 있도록 사용하시는데 그 예측할 수 있도록 사용하시는 규칙들은 하나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힘이 작용하고 법칙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법칙이 법칙대로 움직이는 자체가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증거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계몽주의와 맞서 싸우는 겁니다. 이 사람이 관련 했던 학문은 어마어마하게 넓습니다. 단순히 성경, 신학 그것만이 아닙니다. 성경 신학 이것은 가장 기본 이었습니다. 철학, 미학 자연과학, 천문학, 기상학 ,그리고 법학 그리고 미술, 사회 ,경제, 윤리 모든 영역에 통합적으로 관여를 하면서 자기사상을 풀어 놓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이십년 동안 읽어왔습니다. 나는 조다난 에드워즈를 우리나라사람으로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면 항상 그 사람하고 만나서 토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몇 주 전에는 화란사람도 만났습니다. 그 사람도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박사논문을 쓴 사람입니다. 우리교회에서 만나서 식사하면서 대화를 한참 했는데 이것을 삼십 권 가까이 되는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못 만났습니다. 이 30권정 도를 읽는대만 부지런히 읽는대도 10년은 걸립니다. 우리 실력으로는 영어를 한다고 해도 현대영어입니다. 이것은 300년 전의 영어이므로 문법을 공부해도 따로 해야 합니다.한권의 책의 두께가 보통 700페이지입니다. 30권이면 2만 페이지입니다. 매일 두 페이지씩 읽어도 일만 일을 읽어야 합니다. 일만 일이면 30년을 읽어야 될 분량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한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소개할 때 한계가 한국 사람의 관심은 처음부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관심은 에드워드의 신학 전부가 아닙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알고 조나단 에드워드를 아는 입장에서는 내가 아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모든 신학을 오케이하고 받아들일 리다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 자신은 평생 그런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구심이 남고 나는 로이드 존슨 목사님이 무한한 자기스승이요 위대한 분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30권의 저작 전체를 숙독하고 공감했느냐에 대해서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책이 우리나라에 80권 가까이 되는데 항상 인용되는 것은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로이드 존슨 목사님도 크지만 내가 이야기를 예일대학 조나난 에드워즈 센터에서 소장하고 만나서 이야기 하는데 막 웃습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데 대화가 끝난 다음에 내가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조나단 에드워즈와 열린 교회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프레젠테이션으로 만들어 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여줬더니 그제야 동의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처음 만난 것이 신대원을 졸업 하고 지금으로부터 27~8년 전에 만나게 되었는데 제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 22년 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고 2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거의 모든 책에 조나단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인용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팔린 책이 200만권입니다. 만권의 분량은 8톤 트럭 하나입니다. 그게 한국 사람들한테 깔렸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래서 내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파플라이제이션 하는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를 위대한 사상가라고 보는 이유는 역사상 이렇게 신학 하나의 방면에서 나는 이 개혁신학이다 청교도다 복음주의라고 하나만 쫙 판사람 들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모든 방면 정치 사회 문화 학술 교육 교수법, 심지어는 영문학사에 있어서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저작들은 명문으로 꼽혀서 꼭 읽고 넘어가야 하는 문학적인 자료입니다. 이런 포괄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의 거대한 산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신학으로만 쭉 올라간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없고 설교만 쭉 읽고 올라간 다음에 조다난 에드워즈를 말할 수 없고 특별히 일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날 때 조나단 에드워즈가 썼던 글 설교, 서프라이즈 작품이 있는데 놀라운 회심에 관한 이야기들 그 담에 부흥에 대한 기록들 이런 것들을 다 읽었다고 해서 조다난 에드워즈의 사상을 다 이해 했다고 보면 안 됩니다. 책들만 읽어보면 오순절 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할 작품입니다. 곳곳에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하는 거니까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는 은사 철저 중지론자 이었습니다. 뭐냐면 은사는 사도시절에 있었고 이제는 영적인 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철저 종결론 자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우리들이 어느 하나를 읽고 그 자료에 심취해서 그것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를 전부다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말이 닥일, 닥치고 읽어라 닥치고 한 5년 읽어라 그 다음에 말하라 그래도 늦지 않다. 우선 읽고 이야기를 해라 그것도 에드워즈는 관한해서 쓴 전기나 에드워즈는 이런 사람이라고 써 논 그것을 보고 그걸 앵무새처럼 옮기는 것 말고 원전 속으로 들어가서 에드워즈의 원작품을 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으로 이해를 한 다음에 에드워즈가 누군가에 대해서 말할 때 까지는 닥치고 읽어라 한 5년 정도는 읽고 그리고 나서 그 담에 에드워즈가 누구인지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말할 때 비로소 에드워즈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