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3
녹취자: 백지영
이제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것을 토대로 조나단 에드워즈와 한국교회에 대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조나단 에드워즈와의 만남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에 소개된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 사람이 어떤 사상가로서의 총체적으로 소개된 것이 아닙니다. 소위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흥운동 특히 부흥을 일으켰던 도구가 된 그의 설교, 여러분도 아마 '진노하시는 하나님 손 앞에 붙들린 죄인'이라고 하는 1740년도 8월 달에 엔 필드에서 행해졌던 설교를 보셨거나 아마 이야기는 들으셨을 것입니다. 설교 원문이 지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설교와 각성운동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 사실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모든 관심사들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아주 유력한 부흥운동가 그리고 설교자로만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보다 훨씬 더 방대한 학문을 갖춘 사람이었고, 아주 다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들을 우리들이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드리지 못하면 내일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결국은 그가 받은 교육과 학문들이 그렇게 총체적인 접근으로서 기독교선교사역을 감당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것들은 오늘날과 같이 파편화된 시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는 것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2012년 4월 현재로, 우리나라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작품이 그의 소책자를 포함해서 41편이 한글로 번역이 되었고 그리고 11권의 전기 및 평전이 한글로 번역되었거나 혹은 한국 사람에 의해 저술되어서 작은 소책자 형태부터 시작해서 좀 두꺼운 책들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평전은 조지 M. 마즈던 교수가 쓴 평전을 능가할 책은 없습니다. 조지 마즈던 교수는 특별히 19세기의 복음주의와 18세기의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최고의 학자 중 한분입니다. 이미 노틀람 대학에서 은퇴를 하셨고, 제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만나 뵈었을 때는 말도 약간 어눌하실 정도로 연로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친절하셨고 그리고 특별히 아까 말씀드린 조나단 에드워즈의 ‘프리덤 오브 윌’(Freedom of Will)의 문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제가 질문을 했는데, 즉답은 피하셨지만 저희가 강가에서 두세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그분의 책들을 모두 구입하셔서 읽는 것이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갖는 길이라고 여겨집니다. 특별히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1차적인 자료들은 예일대학의 바이네키 도서관에 가면 조나단 에드워즈가 육필로 쓴 원고들이 아직 충분히 책으로 다 안 나온 것까지 원고 뭉치가 있습니다. 이 조지 마즈던의 작품이나 케네스 밍케마의 작품이나 이런 작품들은 대개 바이네키 도서관에서 육필로 쓴 그 원고에 접근한 상태에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논거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의 책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는 것이 조나단 에드워즈 사상에 대해서 눈을 뜨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소위 ‘아드 폰테스’(ad fontes), 이것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많이 쓰던 구호였습니다. 라틴어 ‘폰스’가 파운틴(fountain)입니다. ‘아드’는 투, 투 스프링(to spring) 그런 뜻입니다. 혹은 웰(well). 그래서 “원천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저는 항상 2차, 3차 자료 말고 원 자료를 읽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칼빈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하는 데, 칼빈이 쓴 글을 직접 읽은 것이 아니라 칼빈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맞는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고, 해석을 잘못 했을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원전을 읽기 전에는 말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도 만약에 여러분들이 연구하려고 한다면, 나는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나는 20년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어왔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사실은 이것을 이렇게 읽어야하나 할 정도로 지루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목사님 읽으셨다는 ‘프리덤 오브 윌’(Freedom of Will) 같은 것은 제가 거의 1년을 읽었는데 진짜 머리에 쥐가 납니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이 그것을 읽다가 집어던지면서 미치광이가 쓴 책이라고 욕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프리덤 오브 윌’(Freedom of Will), 그 책 1권에 대한 철학적인 해석들은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많은 논란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주장했던 ‘의지의 프리덤’에 관한 그 견해가 정말 우리 개혁주의를 대변하는 견해일 수가 있느냐, 아니면 그것이 소위 이야기하는 데터미니즘(determinism)이라고 해서 결정론으로 흐른 것이 아니냐 하는 논쟁들이 아직까지도 학계에 많이 있습니다.
2011년도에 칼빈 신학교의 리차드 먼로 교수가, 그분이 지금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에서는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저는 그분이 쓴 책 4권을 읽고, 4권 다 읽기도 전이었지만, 생애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을 만나려고 제가 화란 도트레이트까지 날아가서 결국은 만났는데, 만나서 질문도 하고 교제도 하고 그러면서 그것이 벌써 4, 5 년 전 일인데 그 후에 계속 교분을 갖고 지금은 아주 친밀하게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시카고에 있는 트리니티 신학교에 가서 한 3년 전인가 조나단 에드워즈 센터를 오픈을 했습니다. 아까 제가 포스트 나오고 거기서 미국 학생들 상대로 강의했을 때 옆에 서 있는 키 큰 교수가 더글러스 스윈이라고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의 소장파 학자입니다. 요새의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연구는, 예전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공부할 때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실은 철학자로서의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사실 그 철학자로서의 조나단 에드워즈를 이해해야지만 신학도 올바로 이해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철학자로서의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루었고, 신학 안에서도 특별히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론, 이것이 과연 동방교회의 모델을 따른 것이냐 서방교회의 모델을 따른 것이냐,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oneness에서 시작을 해서 threeness로 가는 것이고, 이것은 일성이고, 이것은 삼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 '에센띠아'에 관한 것이고, 이것은 위격, '페르소나'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신학은 threness로 시작을 해서 oneness로 가고, 서방신학은 oneness로 시작해서 threeness로 갑니다. 그래서 이것이 접근자체가 다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삼위일체에서 동방신학의 전통을 따랐느냐, 서방신학의 전통을 따랐느냐 학설이 많은데, 나는 동방신학의 전통을 따랐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것에 대한 신학이, 삼위일체가 과연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관점에서의 중세부터 내려오는 삼위일체와 정통적인 진술과 맞는 것이냐 라고 하는 치열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로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에 커다란 물줄기가 움직이게 됩니다. 움직인 것이 무엇이냐 하면, ‘뉴 디렉션 무브먼트’(New direction movement)라고 하는 ‘새로운 방향 운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기에 기수처럼 움직였던 몇몇 학자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도날드 밍케마, 안드레아 레일러, 특별히 지금 화면에서 보신 더글러스 스윈이라든지 이런 학자들에 의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연구의 방향이 커다란 선회를 하게 됩니다. 그 선회가 무엇이냐 하면, 조나단 에드워즈가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계몽주의 사상하고 싸우면서, 그 사람이 ‘나는 논쟁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면서 엄청난 논쟁을 시작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당시에 맞서야 했던 것들은 알미니우스주의, 그 다음에 계몽주의, 그 다음에 유니테리안주의 이런 사상들과 맞서면서 자기 신학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영향력이 워낙 전통적으로 미국에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 탄생 300주년이 되던 해에 어느 신문에서 카피를 보니까, 미국 역사상 조나단 에드워즈는 “더 그레이트”(The Great)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학자이다 라고까지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유럽을 가보면 재미있는 게, 18세기에 사실은 유럽 사람들이 미국을 보는 것은 저 촌구석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가 이미 18세기에 영국 그리고 대륙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헤르만 바빙크 같은 학자가 19세기말서부터 20세기 초에 살았는데, 긍정적으로는 아니지만 자기의 ‘헤르포르미에르 도그매틱스’(Gereformeerde dogmatiek)라고 하는 개혁교의학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에 대해서 상당부분을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을 보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미국 사람으로서의 영향력이 유럽에까지 얼마나 크게 미쳤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당시에 스코틀랜드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새로운 상식철학운동, 소위 ‘컴먼 필로소피’(common philosophy)라고 하는데, 이 상식철학이 나중에 구(舊) 프린스톤으로 들어오게 되고 구(舊) 프린스톤에서 상식철학을 기초로 기독교 변증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컴먼 필로소피(common philosophy)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변증의 장점도 가져다주었지만 많은 한계도 노출하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때에 유럽과 영국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거대한 사조 하나가 강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로크, 홉즈 이런 사람들로 이어지는 영국의 '엠피리시즘'(empiricism)이라고 하는 경험론입니다. 존 로크의 유명한 ‘휴먼 언더스탠딩'(Human Understanding)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 지성론‘이라고도 번역을 많이 했는데, 사실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아니라 ‘인간 오성(悟性)에 관하여’라는 책입니다.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이 이해가 아니라 철학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오성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인간의 지성에는, 이것을 맨스(manse)라고 하는데, 오성과 이성이 있습니다. ‘오성’을 인뗄리겐띠아라고 하고, ‘이성’을 라치오라고 합니다. ‘오성’은 소위 이야기하는 직관지(直觀知)인데 논리적이 아니라, ‘아! 하나님이 계시구나.’ 아니면 ‘인간은 선하구나.’ ‘악하구나.’ 하는 논리를 초월하는 직관적인 지식을 얻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변증적 지식, '디아렉트케'라고 합니다. 이것은 변증적 작용입니다. 그래서 어떤 하나를 모든 것을 초월해서 탁하고 초월적인 사실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가 없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직관(直觀), 인투이션(intuition)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에 비해서 ‘라치오’는 소위 이야기하는 인간의 리즌(reason)입니다. 이성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기에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결과는 다시 다음 것의 원인이 되고, 이것의 상관관계를 모두 묶은 것을 우리들이 커즈엘리티(causality), 소위 인과관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과율, 이 인과율을 이해하는 능력이 이성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우리들이 ‘지성’, 맨스(manse)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 인간을 이야기할 때 ‘래셔널 크리쳐’(rational creator)라고 하는데, 대개 ‘이성적 피조물’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이성적 피조물이라고 번역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지성적 피조물’이라고 번역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 ‘래셔널’(rational)이 영어 자체가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요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까지 다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만약에 이성적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믿음이나 직관이나 이런 것들은 못하는 인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글번역서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들을. 그래서 공부할 때에는 항상 터미널로지(terminology)가 매우 중요합니다. 용어가 나오면 그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그 다음에 책을 읽어야지만 책이 정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간에 인과율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아이큐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 잘하는 사람이 모두 지성이 뛰어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잘 하는데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지요. 그러면 그냥 남이 해 놓은 것 가지고 공부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모범생처럼 그렇게 하겠지요. 그러나 이제 이것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그런데서 아까 온 휴먼 언더스탠딩 레이 할 때 여기 이 오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성이라는 말 이 자체를 주의하셔야 될 것은, 오성이라는 것이 클래시칼 한 의미로 사용되면 데카르트 이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의미는 초월지에 대한 습득이 이루어지는 지적인 능력이나 방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에 와서는 이미 이런 초월적 사실 같은 것들이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줄을 그어버렸기 때문에, 이런 것은 철학에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성이라는 말이 클래시칼 의미가 아니라 모던한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아주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보고 크기, 모양, 색깔 이런 것들을 탁탁탁탁 파악하는 것, 마음속에 박히게 되는 사물에 대한 인상 이런 것들을 오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어쨌든 로크가 ‘온 휴먼 언더스탠딩’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것은 오성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여기서 나오는 유명한 견해가 소위 이야기하는 ‘따귤라 라사’라고 하는 주의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번역하느냐 하면, ‘따귤라’는 판대기를 가리킵니다. 백지. ‘라사’는 하얀 것. 그래서 이것을 소위 이야기하는 ‘백색 서판’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판단과 지적인 모든 활동들은 경험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경험이 중요하다.” 그것이 경험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점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아까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상계에 거대한 격변이 일어났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칼티시아니즘’(Cartesianism), 곧 데카르트주의입니다. 데카르트주의는 근본적으로, 철학적으로 이제껏 기독교 역사 이래 계속 되어오던 존재론 중심의 사고방식을 인식론 중심을 전환을 했는데, 이것은 ‘신’이라고 하는 객관적 존재가 모든 사물의 판단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기 밖의 사물들, 심지어는 신까지도 포함해서 인식하는 ‘내’가 주체가 되었다는 인간중심의 대단한 선언인 것입니다. 그것을 기초로 엠피리시즘(empiricism), 경험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 로크 같은 사람은 주석도 쓰고 신학적인 책도 많이 저술하였는데, 그런데 기본적인 입장 자체는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런 신학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이 존재하지만, 그 신은 어떤 식으로든지 인간의 자율성을 해치는 신이 아니고, 신에 의해서 미리 결정된 것 같은 것들은 없으며,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지 프리한 존재, 자유로운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험주의가 태동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논리적으로 딱 맞지 않습니까? 인간중심의 데카르트주의가 들어오고 그 다음에 인간이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뭘 가지고 태어난다든지, 선천적으로 인간이 악하다든지 그 다음에 어떤 신의식을 가지고 태어난다든지 원죄라든지 이런 개념들이 아니라, 인간은 백색서판의 상태에서 태어나고 인간의 경험에 의해서 수없이 여기에 기록이 되고 이 기록된 것들에 의해서 인간은 사물을 볼 수 있는 렌즈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한 사람의 사상과 가치와 판단 이런 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경험이라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이고, 그러니까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토노미(autonomy), 자율을 존중하면서, 신율(神律)보다는 자율(自律)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거기에 가치를 둔 사상의 체계들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장 자크 루소가 쓴 ‘에밀’이라는 책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장 자크 루소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자살했습니다. 우리들이 그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런데 루소가 ‘에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 선과 악에 대해서 하루 종일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 아이를 숲속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게 하는 것이 선과 악에 대한 보다 확실한 관념을 아이에게 심어줄 수 있다.” 소위 이야기하는 루소의 ‘자연주의’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인간의 자율, 자연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은 스스로 작동력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선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복원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경험들이 강조가 되는데, 여기에서도 이제 경험주의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흄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극단적인 소위 이야기하는 아그노스티시즘(agnosticism), 불가지론(不可知論)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회의(懷疑)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에 피론학파 사람들처럼,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로티누스의 제자였던 포르피리 같은 사람들의 소위 이야기하는 회의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회의론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을 때 아카데미아 학파 사람들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회의를 품기 때문에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다고 보고, 만일 그렇게 되면 인간은 도덕적인 결정이나 종교적인 결정이나 무엇이든지 간에 자기는 결정을 하지만 그 결정이 합당하고 올바르다고 하는 어떤 근거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불가지론에 빠지게 되는데, 그런 불가지론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답변이 ‘아카데미아 학파를 반박함’이라는 ‘꼰뜨라 아카데미 코스’라는 작품 속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뿌리들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험주의가 18세기에 그런 주류를 이루는데,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경험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자신이 체험의 신학자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원래 아까 말씀드린 대로 천재적인 두뇌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렇게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버드에 사촌들이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아주 자유롭게 빌려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더군다나 좋은 책들은 유럽에서 나오기 때문에 유럽에 있는 책을 그 당시에 배편으로 싣고 와서 이렇게 한다는 것은, 우리 지금 온 라인 통신하면 오고 그런 시대가 아니었거든요, 하여튼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재성을 알아보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을 격려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책을 부지런히 보내주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노 셈턴 교회에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찬논쟁으로 쫓겨나게 되었을 때 스코틀랜드에서 정식으로 스코틀랜드에 와서 담임목사가 되어 달라는 청빙이 들어옵니다만 거절을 합니다. 거절한 이유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자기가 미국에서 태어나서 여태까지 자랐는데 자기의 설교나 목회 방식이 영국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지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고, 어쨌든 인연이 안 닿고 안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인디안 선교사로 파송이 되었다가 뉴저지 대학의 총장으로 추대를 받아서 가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그 당시에 나온 지 얼마 안됐던 천연두 예방 주사를 시험 접종을 하고 그 부작용으로 죽게 됩니다. 같은 해인가 그 이듬해인가, 같은 해일 것입니다. 부인 사라 피에르 폰트도 죽고, 이렇게 해서 생애를 마치게 되는데,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러한 자기 경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 오성론이라고 하는 존 로크의 책을 읽었을 때 굉장히 커다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1960, 70년대까지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 휴먼 언더스탠딩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마어마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가 이후의 모든 철학적 사색과 신학적인 사고가 존 로크의 사상에 의해서 지배받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가설이었습니다. 그러나 60, 70년대 이후부터 새로운 연구들의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였습니다. 특별히 20세기 최대의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가인 존 러스너, 이 사람이 아주 중요한 책을 한 권 씁니다. 그것이 ‘The rational biblical theology'라는 세 권으로 된 책인데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존 로크 내지는 경험주의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느냐 하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경험주의를 받아 들였다기보다는 경험주의 철학의 틀을 사용해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이 기독교의 복음을 계몽주의에 항거하고 이신론(理神論)에 맞서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며, 그래서 경험주의의 렌즈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그것을 가지고 체계화하는 데 경험주의 철학들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는데, 이것들이 지금 현재 까지로는 가장 지지받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사상사적으로 어떻게 되느냐 하면, 경험주의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경험주의가 빠져나가면서 17세기 후반부터 로맨티시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것이 낭만주의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뭐냐 하면 중요한 전환이 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처음에는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겨온다고 할 때 신에서 인간 중심의 무엇이 오게 되었느냐 하면 지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식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계시를 통해서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를 받아들여서 얻는 지식보다는, 인간이 인식의 주체가 되어서 파악하는 이 지식이 더 참다운 지식을 얻는 믿을만한 수단이라는 것이 데카르트의 이야기였다면, 로크에 와서는 그 지식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경험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나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이 있고 그것과 내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일어나는 것이 경험인데, 그 경험에 의해서 쌓여진, 경험이 가져다 준 지식의 축적들이 어떤 사물에 대한 판단과 모든 것들을 좌우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데카르트가 이야기한 인식론을 방법론적으로 구체화시킨 것입니다. 그러다가 경험주의가 발전을 하면서 로맨티시즘이 들어왔을 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변화가 무엇이냐 하면 미학(美學)이 도입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 언제인가 하면 18세기입니다. 그런데 이 미학이 처음 시작된 것이 어떤 것에서 시작이 되느냐 하면,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숭고하고 장엄한 것 그것에 대한 관심이 미학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장엄함, 경외심, 신비함 이런 것들을 불러오는 그 근거가 무엇인가? 예를 들자면, 파도가 엄청나게 치는 그 바닷가에 서 있을 때에 그 파도의 장엄함, 노을이 지는 것, 그 다음에 커다란 폭풍과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 자연현상, 이런 것들을 보면서 웅장한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숭고미(崇高美)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대체 기원이 무엇이고,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가? 그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아름다움의 해석의 역사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미학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있어서는 이 미학이 너무 중요합니다. 왜 중요하느냐 하면, 이 사람이 뭐라고 표현하는 하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에센스는 성경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더 에센스 오브 더 뷰티’(The essence of beauty). 그런데 사실 이 개념이 나중에 설명을 드리겠지만,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가 보기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훌륭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만 읽을 때에 아주 탁월했던 신비감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감손되는 것입니다.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한 10년 읽어가다가, 아우구스티누스를 10년 읽으면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같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엄청난 세계를 보면서 무척 궁금했던 것이 이것의 원천이 무엇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아우구스티누스였습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느 정도냐 하면, 예를 들자면 그가 쓴 ‘History of redemption’, 구속사인데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명한 저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를 하다가 결국은 자료만 작성하고 죽습니다. 그 ‘History of redemption’을 한번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굉장히 장엄합니다. 그런데 물론 그 ‘History of redemption’에 나오는 그 이야기를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도 많이 받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그러니까 대부분 교회에 대한 역사, 구속의 역사를 진술할 때는 대부분 성경까지 진술하는데 그래서 성경적 구속사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경 이후부터 계속해서 역사를 해석을 해서 자기 시대 직전까지 해석을 합니다. 그런 식의 시도를 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적인 해석 방법이 영향을 누구에게 받느냐 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그 다음에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학자들은 공감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의 관계는 눈여겨 볼 만합니다. 그 구도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차이점도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그 큰 구도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고전과 현대의 신학 책들을 균형 있게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고전을 안 읽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현대고, 고전이고 절대 안 읽는 사람도 많지만 그러나 소위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도 이 균형을 맞추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신학이 절름발이가 되는 것입니다. digression이지만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것이 소위 이야기하는 신학에서 보편성과 개별성의 추구의 조화입니다. 신학에 있어서,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보편성과 개별성의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이냐? 소위 이야기하는 universality, 신학의 보편성 입니다. 나는 이것과 함께 신학의 particularity, 개별성도 같이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두 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신학의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렇게 위대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보편성의 신학과 개별성의 신학을 조화 있게 탐구했기 때문에 이런 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원래 신학을 공부하는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이 18세기 이후로 다 파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의 어느 신학교에서도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제가 소개해 드릴 텐데, 우선 첫째 슐라이허 마허의 ‘신학연구방법’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페어리의 ‘The fragmentation of theology', 원래는 ‘The fragmentation of theology'라는 책입니다. ‘신학의 파편화에 관하여’라는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신학교육방법론에 있어서 슐라이허 마허의 이것이 중요한 역사적인 분기점이 됩니다. 원래 이 신학의 전통은 모든 인간이 해야 하는 학문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자기가 해야 하는 두 가지 학문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반드시 해야 하는 학문이 있는데, 영혼을 위해서는 신학을, 육체를 위해서는 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슐라이허 마허의 'The study of theology'라는 ‘신학연구방법론이라는 이 책을 기점으로 신학은 목회할 사람만 하는 학문으로 탁 벽을 쌓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목회할 사람도 신학을 잘 안하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설교를 해도, 설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사상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사상, 기독교사상을 설교해서 그래서 그 사람을, 조나단 에드워즈가 반복해서 쓰던 용어인데, “모든 삶을 지식의 기반 위에, 모든 지식을 삶의 열매로” 이것이 그가 항상 부르짖던 구호였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네가 왜 그렇게 사는지를 신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지를 신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런 신학이 있기 때문에 나는 먹고 논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이 된다고 보니까,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신학공부라고 이야기할 때는 'divine knowledge'라는 표현을 쓰는데, 직역을 하면 거룩한 지식이고 혹은 하나님의 지식이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말로 번역하면 신학적 지식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신학적 지식을 섭취하는 것은 어린 아이부터 숨을 막 거두려고 하는 모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의무인 것입니다. 그것을 탐구하다가 죽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신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기독교 개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직신학 책이 몇 권이 있는데, 그 중에서 17세기에 나왔던 황금 같은 소중한 조직신학 책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튜레틴의 ‘변증신학강요’, 이 튜레틴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학장을 하던 말하자면 칼빈 이후의 계승자였습니다. 그 다음에 데이든의 사인방이 쓴 ‘순수신학공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 말씀드렸던 보에티우스의 제자인 마스트리어트가 쓴 ‘떼오레티코 프락티카 떼오로기 아이’라고 하는 ‘이론실천신학’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 제 1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독뜨리나’ 이것은 우리말로 말하자면 교리입니다. 그러나 당시 문맥으로 보면 신학입니다. '독뜨리나 에스디 비벤디 데오', ‘비벤디’라고 하는 것은 당위분사로, ‘살기 위한’, ‘사는 것’ 그런 뜻입니다. ‘데오’는 투 갓(To God). 곧, 신학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것이다.” 혹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훼르 크리스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이것이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학의 본질입니다.
가끔 사람들은 신학이 학문이냐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학을 오해하기를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옳은 견해가 아닙니다. 반대편 사람들은 신학이 어떻게 학문이냐고, 학문은 물리학이나 생물학이나 이런 것이 학문이지, 이 신학은 감히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학문이냐고 하는 데, 둘 다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신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학문이 아닌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라고 할 때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학문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것은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위해서 발견된 지식들이 반드시 계몽주의의 논리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는 점에서는 학문이 아니지만,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체득된 지식들이 저장되고 유통될 때에는 계몽주의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전달되는 것도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도대체 너희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는 삶을 살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예수를 믿는데 목숨을 걸으며 살아야 되느냐고 물을 때, 우리의 소망은 이것 때문이라고 말할 준비를 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그 말은 우리만 알아듣는 말이 되면 안 되고 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서 우리의 소망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런 시도 자체를 세속적이라고 보거나 아니면 성령의 은혜로운 사역에 반하는 행동으로 보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견해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소위 이야기하는 ‘fragmentation', 신학의 파편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 기독교가 그 모든 지식 위에 뛰어난 지식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지에 대한 적절한 견해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는 사람들한테만 설교를 잘 하고, 설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자로 꽉 채워놓고 설교해 보라고 하면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도 설교하는데 사람들에게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을 설교하고 내려가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학의, 신학에 대한 이 정의가 17세기의 화란의 신학자인 마스트리우트의 정의입니다. 그 사람이 쓴 그 책은 정말 대단한 책입니다. ‘테오레티코’, 이것은 이론적인 그런 뜻입니다. ‘프락티카’, 실천적인. 떼올로기 아이, 신학의. 그래서 ‘이론실천신학’입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의 볼륨 크기가 한 300페이지 정도 됩니다. 제가 그 두 권을 360만원에 샀습니다. 17세기 책이니까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2년을 기다려서 샀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최고의 책입니다. 그 책이 지금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안 되어 있고 될 계획도 없기 때문에 애석합니다만, 영어로는 지금 일부가 번역이 되었는데 출판은 안 됐습니다. 출판사에 물어보니까 2년 정도 걸려야지 삼분의 일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주 탁월한 책입니다. 패투르스 반 마스트리우트, 영어로 피터 판 마스트리우트라고 하는 데 이 사람이 쓴 책입니다. 이 사람이 쓴 책을 여러분이 읽기 힘들면 네일러라는 사람이 쓴 ‘마스트리우트’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제이 브릴에서 아마 2009년도에 나왔을 것입니다. 이것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책 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고, 이 책 중에서 신론 부분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 드리자면, 마스트리우트가 쓴 ‘테오레티고 프락티카 떼올로기 아이’ 중에서 중생부분이 있는데 그 중생부분이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아마존에 들어가서 ‘마스트리우트’를, 그 다음에 ‘리제너레이션’(regeneration)으로 검색을 하면 얇은 빨간 책이 나옵니다. 그것을 한번 읽어보시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마스트리우트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하느냐, 다음 시간에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