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그대에게
(1997년 설교모음)
설교기간|1997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영적 변화에 이르는 길(마 13:1-9) 1997.8.3 중고등부 수련회 1
2.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창 1:1-4) 1997.8.4 중고등부 수련회 9
3. 한 사람의 죄(롬 5:12) 1997.8.4 중고등부 수련회 18
4. 구원의 길(요 19:30) 1997.8.5 중고등부 수련회 26
5.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눅 23:27) 1997.8.5 중고등부 수련회 35
1. 영적 변화에 이르는 길
“그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13:1-9)
오늘 저녁에 여러분의 신앙생활 전체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겠는지, 왜 교회를 오래도록 다녀도 도무지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내가 거듭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동네가 우리 아버님이 태어나신 동네예요. 그리고 할머니 그 위에 증조할아버지 해서 400여년을 넘게 우리 조상들이 바로 이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수동면 이라고 그러는데 ‘물 수’자에 ‘고을 동’자에요. 그래서 이쪽은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옛날에는 물로써 아주 유명한 동네였습니다. 저 위로 올라가면 물막골이라고 나오는데 그게 원래는 물막골입니다. 물이 아주 맑은 동네다. 수동도 역시 물 동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깨끗한 물이 흐르는 동네에요.
그렇게 산이 깊고 물이 깨끗하면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2-3년에 한번씩 이 동네에 산소도 돌아보고 하기 위해서 오는데 한번은 조상들이 모셔져 있는 선영에 올라가 보니까 나무가 말이죠, 이만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어쩌면 그렇게 멋있게 쭉 뻗어서 보기에 최소한 400년은 넘어 보이는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서 쭉 뻗어 있습니다. ‘야, 나무가 어쩌면 이렇게 멋있을까?’ 참 이상하죠. 동물이나 사람이나 나이를 점점 먹고 세월이 흘러가면 점점 아름다워져요? 점점 추해져요? 점점 추해지죠. 그렇죠? 호랑이도 젊었을 때는 산을 휘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수많은 짐승들을 벌벌 떨게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이제 사냥조차 할 수 없어서 동물원에서는 포수들이 와서 고통 받는 사자를 쏴서 죽이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한데 나무는 전혀 달라요. 어렸을 때는 별로 볼품도 없고 별로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10년, 100년, 150년 미국에 가면 1200년씩 된 나무들이 있다고 하니까 어마어마하겠죠? 높이가 120미터 되고 둘레가 3-4미터 정도 되어서 둘이 팔을 맞잡아도 껴안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20층 이상 높이로 높이 솟아 있는 그런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앞에 설 때마다 뭘 느끼나 하면 ‘아, 참 크다. 우리는 참 작다.’ 그런 것을 느끼죠.
그런데 그렇게 커다란 나무가 어떻게 자라나 그랬더니 산에 가서 이렇게 보면 특별히 묘지 위 같은 데는 나무 씨가 많이 떨어져요. 엊그제도 한번 우리 할머니 산소에 가서 보니까 몇 달 전에 와서 깨끗이 잡초를 뽑고 갔는데 세상에 거기서 소나무 가지가 올라 온 것입니다. 소나무 씨가 후~후~후 바람에 날려서 묘지 위에 뚝 떨어졌더니 그 씨 하나가 떨어져서 몇 달 사이에 손가락만한 소나무가 된 것입니다. 우리보기에 아무리 커다란 소나무도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작고 작은 씨 하나, 그리고 씨가 터지고 거기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내리면서 손가락만한 나무가 팔뚝만 해지고 그 나무가 사람만 해지고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드리가 되고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커다란 나무로 변해서 이제는 바람이 불고 그리고 비가와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습니다. 그렇게 높이 솟아있는 그 나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나무가 아닙니다. 그 나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렇게 자라온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나무가 자라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앙이 처음에는 씨앗과 같았는데 그것이 점점 자라서 수많은 새들이 깃들고, 사람이 그 앞에 섰을 때 아주 자기가 왜소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행이나 시련이나 유혹이나 어려움이 와서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나무로 자란 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만 그런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자랄 수 있을까?
여러분 초등학교 때 교회 다니는 것은 교회에서 뭘 준다고 그러면 참새 떼처럼 후루루 몰려 다녀요. 그리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 만나고 선생님 만나는 재미로 다닙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라지 않으면 고둥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함께 모두들 교회를 떠납니다. 고등부가 100명 쯤 되면 몇 명쯤 대학부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 30명도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처럼 어렸을 때에 마음속에 확실하게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마음속에 굳게 서는 일들이 있어야지만 평생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이거죠. 여러분 찰스 스펄전이라고 하는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는 16살 때 주님을 영접하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무디 선교사도 마찬가지 나이에…… 역사를 보면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10대 중반 아니면 늦어도 10대 후반에 주님을 깊이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는 변화를 경험해서 일평생 그 10대에 받아들인 믿음을 간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그렇게 신앙이 자랄 수 있느냐? 오늘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천국이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씨앗을 농부가 뿌리니까 후 바람이 부니까 어떤 것은 옥토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나무 떨기 사이에,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졌단 말입니다. 그런데 떨어진 그 씨앗은 모두 완전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다르게 자랐는지 보십시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후’ 하고 바람이 불어버리고, 혹은 새가 와서 먹어버리니까 안 뿌려진 것과 다름이 없이 똑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가시나무 떨기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나나 하다가 가시나무 떨기가 누르니까 그만 자라지 못했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것은 처음엔 자라는 줄 알았는데 돌멩이가 있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까 더 이상 믿음이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도 여전히 생각이 세상에 가 있고, 세상에 있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똑같이 좋아하고 싶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을 좋아하는 대신에, 세상에 나아가서 죄를 짓더라도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이러한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면 교회 나와도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원망,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통 하는 마음에 대한 불평, 이런 것들이 돌멩이와 같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있으면 잠시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 것 같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곧 식어버리고 그 뿌리는 자라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 볕에 잠시 나온 줄기와 이파리도 모두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작년에 있던 친구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고, 기도하고, 열심히 교회 나오던 친구들이 1년 뒤에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지요? 뿌려진 그 씨앗이 자라야 될 텐데 그 밭이 되는 마음이 깨끗하고 올바른 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옥토에 뿌려졌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름기가 많은 흙입니다. 여러분들이 산에 가서 흙을 파보면 까만 흙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파리가 떨어져서 낙엽이 되고, 낙엽이 썩어서 부엽토가 되고 해서 차곡차곡 수십 년 동안 쌓일 때 고도의 영양분을 가진 아주 새까만 흙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촉촉한 물기까지 있으면 거기에 뿌려지기만 하면 씨앗이 싹이 트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 속에 있는 영양분을 빨아 먹으면서 뿌리가 쭉쭉 뻗어나간다 말입니다. 잠시 동안에 그 나무는 쑥쑥 자랍니다. 그래서 바람이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가 된단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옥토와 같은 밭에 떨어진다고 그랬는데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은 어떤 마음 밭이냐?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은 우선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 오늘 큰 나무가 되어서 결실하는 그런 나무가 되기 전에 먼저 무슨 말씀이 나오느냐하면 듣고, 그 다음에 깨닫고, 그 다음에 결실하여 이렇게 되죠? 그러니까 첫 번째 신앙이 자라는 비결은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도 불과 1시간 안에 설교가 마칠 텐데 눈을 들어서 목사님을 쳐다보라고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고개를 숙여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세요? 듣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듣고 있을 마음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TV에서 나오는 프로는 1시간, 2시간, 3시간을 시청을 해도 피곤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노래는 수없이 따라 불러도 가사조차 잘 외워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우리의 마음이 집중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다고 그랬는데 이 듣는다는 말은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는 것이거든요. 그 듣는 일들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안자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여러분과 같은 학생들도 데리고 목회를 해봤는데 아주 철칙이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이 뭔가 했더니 책상에 오래 안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놀이를 해도 놀이에 미치듯이 오랫동안 빠지질 못합니다. 금방 싫증을 내고 책을 읽어도 늘 집중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해도 단 10분을 집중하지 못하니까 10분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생각이 체계적이지 않고 사고가 정리가 안돼요. 그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뭐냐 하면 늘 생각하고 깨닫는 일보다는 눈에 보고 감각적인 일들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독서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하고, 만화보다는 영화를 좋아하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사고의 진전이 없으니까 평생 감각적인 것만 쫓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슨 감각적인 것이 있어요? 교회가 만약 감각적인 것으로 흘러가면 그건 신앙을 아주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와서 매일 두들겨 부수고 찬송만 하고 그리고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고 매일 와서 드라마나 보고 연극이나 하고 돌아가면 신앙이 자라겠느냐 이거죠.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을 때에는 정말 그러할까 판단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깨달아지고, 그 말씀이 마음속에 내려가서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소원이 생기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만할 때 공부를 그렇게 아주 잘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못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랜 세월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하면서 이렇게 본걸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집중력이 뛰어나요. 오래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한번을 앉으면 한권을 뗄 때까지 혹은 한 단원을 마칠 때까지 집중해서 뭔가 하나를 완수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이 안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듣지를 않아요. 들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예배드리는 시간도 왜 예배에 오나하면 빨리 끝나고 갈려고 오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를 해도 성경공부를 통해서 한 자 한 자 무엇을 깨달으려고 하는 노력이 거의 없고 들리면 듣고 안 들리면 그만이다, 이런 태도입니다. 그런 속에서 신앙이 자라겠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학교에 선생님이 열심히 강의를 하는데 여러분이 안 들으면 그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것은 공부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 들려오는 말씀이 사람의 말이나 학교의 공부가 아니라 너희들이 어디서 왔고, 너희들이 누구이고, 하나님인 내가 누구시고, 그리고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믿고, 나를 섬기고,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주님의 손으로 지은바 된 우리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가르쳐 주시는데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반항입니다.
부모가 다른 것은 다 용서해줘도 자기를 향해 반항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걸 용서해 주면 그건 부모가 바보에요. 그건 사람의 장래를 망치는 것입니다. 반항하면 두들겨 패서라도 복종을 시켜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 관철하는 방법이 대들고 반항을 하고 심지어 폭력으로 부모를 꺾으려고 해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잖아요? 인간의 부모에 대해서도 그래요. 구약 같았으면 그런 사람들은 모두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아버지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얘야, 창조주인 내가 너를 지었다. 그리고 너는 내 손에 지은바 되었고 너는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나를 공경하며 살아야 된다.” 기껏 하나님 말씀 하시니까 딴 짓 하고 있다가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하나님이 지금 살아서 여러분 앞에 계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하시겠는지 생각해 봐요. 이런 태도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깊은 불순종이 깔려 있다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기뻐하지 않으셔요.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태도가 계속 쌓이면 그 사람의 죄가 쌓여요.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하신다는 거죠.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교회를 떠나면 되지,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올발라야지.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창조하셨나,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데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깨닫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아름답게 자라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여러분과 같은 어린 학생들과 만날 때에는 제가 제일 먼저 이 말을 합니다. 제가 작년에도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지 못하죠. 믿음이 안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둥학교 졸업하기 전에 교회를 떠납니다. 두고 보십시오. 남아 있으면 교회에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친구 따라서 나오게 된 사람도 있고, 또 이성 친구를 보기 위해서 나온 사람도 있고, 혹은 친구에게 속아서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고등학교 다니는 형제 하나는 매일 전도하라고 교회에서 그러는데 도저히 전도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가자고 전도해 봤자 안 될게 뻔하니까 자기 친한 친구한테 “너 오늘 내가 굉장히 좋은데 데리고 갈 테니까 나랑 가자.” “어딘데?” “거기 가면 먹을 것도 사주고 탈 것도 태워주고 내가 다 해줄게.” “너 돈 있어?” “우리 엄마한테 돈 받은 것 있어. 와라. 8시 50분에 파출소 앞에서 만나자.” 파출소 앞에서 만났는데 자꾸 가는 것입니다. “어디 가? 롯데월드 갈려면 여기서 차타야 하는데?” “아냐.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러면서 동네 가운데로 들어가자고 그러는 거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있다니까. 내가 너에게 거짓말 하겠냐?” 그러면서 한 발짝 한 발짝 간곳이 어디냐 하면 “에이, 교회잖아” “야, 여기까지 왔는데 제발 30분만 들어갔다 가자.” 그러면서 허리를 꽉 붙들고 지하실로 밀어 던졌습니다. 새 친구 소개하는데 어떻게 교회를 나오게 되었느냐 물으니까 “저는요 속아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웃었지. “왜 속아서 왔냐?” “제 친구가 속여서 잘 왔는데요, 저는요 이름은 말하겠지만 자꾸 붙지 마세요. 저 어차피 다음 주부터 안 나올 테니까요 우리 집은 아주 독실한 불교 집안이라 나 교회 나왔단 맞아 죽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얘기 하지 마세요.” 그런데 그 학생이 그 다음 주에 또 교회 나왔습니다. 주님 영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요? 들을 때, 오랫동안 불교 집안에서 자라고 전혀 예수님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는 설교시간에 여러분 저는 눈을 이식수술한 사람을 봤거든요. 눈을 이식수술을 해놓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냐 그랬더니 3일 동안에 이렇게만 움직여도 그 수술이 헛수고로 돌아간대요. 그러니까 기계로 묶어놓고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그 아이의 머리를 붙들고 3일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붙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여러분 설교, 성경공부, 길어야 1시간씩 정도밖에 안 할 겁니다. 그때 마음을 기울이세요.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쫓아내고 내가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갖고 먼저 잘 듣는 수련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그것과 함께 이제껏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죄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돼요.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먼저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길에는 다양한 신호 표지판이 있습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멈추라는 것입니다. 파란불이 들어오면 가라는 것입니다. 좌회전 신호가 들어오면 좌회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다가 구부러진 표지판이 나오면 길이 굽었다는 표시이고, 낭떠러지 표시가 나오면 잘못하면 강으로 추락한다는 뜻입니다. 그 표지판을 보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게끔 행동을 해야 되지 마구 달리면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교훈과 책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신호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막 무시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하나님께 아픔을 드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내 귀에 하나님 말씀 들려주셔서 좋은 예수 믿는 사람, 나무와 같이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셨는데 내가 10분, 5분, 혹은 1분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 먼저 오늘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그것 먼저 회개해야 돼요. 다른 것 다 회개해도 그것 고치지 않으면 여러분 안에 믿음 절대 안 들어가요. 오늘 눈물 펑펑 흘리고 이번 수련회 돌아가도 눈물 마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렇게 하나님 말씀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이 마음 아파 하셨는지 새기면서 주님 마음 아프게 해 드린 것을 회개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듣고 깨닫는 자니” 그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집중을 해서 들은 다음에 그 들은 바를 생각을 해서 ‘아, 그렇구나.’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을 통해서만 신앙은 자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은혜, 우리 주위에 보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적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사람, 혹은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서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런 놀라운 변화, 그런 것들이 무엇을 통해서 오냐 하면 이해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닫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다 들었는데, 정성껏 들었는데 깨달을 수 없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신호등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면서도 빨간불인데 달려가는 사람하고 똑같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들을 뿐만 아니라 듣는데서 더 지나가서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때에 우리의 믿음이 매우 깊은 뿌리를 내리면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교회에 나왔을 때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지고 1년 전에 내 신앙의 모습을 보고 일기책을 보면 내가 얼마나 어린아이와 같았는지 생각하면서 부끄러워지는 그런 신앙의 발전, 신앙의 성장은 깨닫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깨닫는 일을 위해서는 성경공부를 하거나 말씀을 들을 때 계속 그 말씀을 추적하면서 아까 말씀한 것과 지금 말씀한 것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그것을 깨닫고 따라 가려고 애를 써야 된단 말입니다.
여러분 가끔 여러분 집에서 비디오나 드라마 보지요. 혹은 영화 보지요. 왜 사람들이 영화관에 빨리 들어가서 보지 왜 안 들어가고 끝날 때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지요? 어디부터 보려고? 처음부터 보려고. 왜? 중간에 들어가면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 더군다나 첩보영화나, 미스테리, 추리영화 이런 것들은 들락날락 하고, 전화 받고, 가서 물 먹고 오고, 화장실 갔다 오고 몇 번만 하면 한 시간 반 봤는데도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몰라요. 옆에 사람보고 물어봐야 안다고. 그런데 여러분 설교 듣다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 수 있어요? 성경공부 하다가 “야, 여태까지 선생님이 뭐라고 그랬냐?” 물어볼 수 있어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똑같단 말입니다. 왜 우리가 드라마를 보거나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줄거리가 어떻게 됐을까? 아까 이랬었지, 아까 이 사람이 이랬었는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생각을 계속 하면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데 왜 말씀을 들을 때는 그런 노력을 안 해요? 왜 안 하냔 말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자라겠어요? 교회 매일 드나들어서 이제 유치부를 지나서 유년부를 지나서 초등부까지 올라왔는데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요? 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고, 왜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못 박히셨는지 아느냐 말입니다. 죽음이 어떻게 찾아오고 죽은 후에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느냐 말입니다.
그런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기를 즐거워하는 것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죄라고 보시는 것입니다. 깨닫지 않는 마음, 안 깨달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 시키실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흘려보내고 떠내려 버린 죄,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린 핑계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너를 목메는 사랑으로 널 찾았다.” “언제 찾았습니까? 주님, 난 주님 본적도 없었습니다. 가끔 나타나 주셨으면 내가 억울하지 않지요.” “너희 선생님이 너의 영혼을 위해서 늘 공부 가르칠 때마다 눈물 흘리며 기도했지. 사실 그 눈물은 내 눈물이었다. 그리나 넌 깨닫지 않았다. 넌 듣지 아니하였노라. 그러므로 넌 핑계할 수 없다.” 그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보따리 싸고 내일 아침에라도 내려가요. 몸만 앉아서 뭘 해요? 가서 수학이라도 한 문제 더 풀고 단어라도 하나 더 외워야 학교를 가든지 어딜 가든지 할 것 아닙니다. 뭐 하러 여기와 3일씩 4일씩 고생하고 회비내고 이 불편한데서 먹고 자고 이 고생을 해요? 상관없습니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에요. 보따리 싸서 속히 내려가라고요. 그것을 회개해야 돼요.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는 추적을 하고 일간 스포츠 만화를 읽으면서도 어제 무엇이 나왔는지 기억하면서 읽죠? 설교는 그렇게 듣느냐고요? 왜 노력을 안 해요? 그러니까 신앙이 안자라는 거죠. 거기에 대해서 깊이 회개해야 돼요. 왜 그러느냐 하면 그것도 하나님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그렇게 깊이 깨닫기를 사모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세 번째, 결실인데 이 결실은 나무가 “열매 맺어야 될 텐데, 둥지가 가지한테 넌 도대체 뭘 하냐? 열매도 못 맺고.” 그런다고 해서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뿌리를 깊이 박고 물과 양분이 공급되면 열매는 저절로 맺혀요. 뿌리를 박고 나무가 살아있으면 꽃이 피죠. 꽃이 피면 그 꽃에 벌, 나비가 날아들죠. 암술과 수술을 오가면서 그 나무에 씨받이를 해 주죠. 그리고 그 나무에 꽃이 스러지기 시작하면서 열매가 맺히죠. 열매가 점점 무르익고 탐스러워집니다. 가을이 되는 것과 함께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감나무에는 주홍색 감이 헤아릴 수 없이 빨갛게 매달립니다. 밤나무에는 아름드리 벌어진 밤들이 누렇게 매달립니다.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어요? 소리 지르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외치면 막을 수 있겠습니까? 두들겨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나무보고 애원을 해도 열매 맺지 않을 능력이 나무에겐 없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닫고 그것대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미국에 몇 대 대통령인지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두 어린이가 빈민가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빈민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을 올라가는데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뗑그렁 뗑그렁 그중에 한 아이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야, 오늘은 주일이야. 우리 어머님, 아버님이 주일에는 교회 가야한다고 가르쳐 주셨어. 나 교회 갈래.” “아니야, 난 안 갈 거야. 나는 먹을 것 구하러 갈 거야.” “우리 교회 가자.” “아니야.”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이후에 그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종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40여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만났는데 그때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있었고 한 사람은 범죄 단체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언도를 받은 죄수로 갇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이 자라나는 십대의 나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장 세상 적이고 하나님을 반항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그 갈림길에 서서 신앙을 택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이 두 가지요. 잘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을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뉘우치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4)
어젯밤에 무슨 설교를 들었죠? 씨 뿌리는 비유를 들었죠. 그중에서 첫 번째가 뭐였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리고 두 번째는 깨닫고, 그 다음에는 결실하는 것. 자 오늘 이 시간에 어제 제목은 씨 뿌리는 비유, 오늘 제목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한번 따라 해보겠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여러분들은 이제 차를 타고 이 거울을 들어오면서 야 서울 가까운 곳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실 겁니다. 여기가 불과 한 십년, 십년까지 안 가요. 한 칠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가 더 이상 가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서울과 칠십 리 거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발전이 안 됐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길이 뚫리고 나니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들어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여러분은 누구를 생각했습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자연계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커다란 우주를 보아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게 되고 아주 우주의 생물체의 작은 생활을 봐도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났습니다. 태양이 늘 폭발을 하고 있죠? 그죠? 그 오랜 세월동안 과학자들은 우주가 창조된 것이 약 백오십억 년 정도 됐을 것이다 그렇게 보는데 뭐 과학자들이 분명하겠어요? 그러나 하튼 장구한 세월동안 태양은 끊임없이 폭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 폭발 때문에 빛을 내고 또 그 폭발 때문에 열을 내어서 그래서 이제 이 지구상에 있는 그 빛과 열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 생물들을 살아가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그러한 에너지를 태양을 통해서 공급을 해주고 있습니다. 근데 그 폭발이 갑자기 매우 커다란 폭발이 태양을 관측하는 과학자들 눈에 띄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나타났는데 펑 하고 폭발을 하는데 폭발과 함께 불기둥이 태양 위로 치솟는데 그 태양 위로 치솟는 불길의 속도가 시속 3백만 킬로미터에요. 계산을 해보니까 똑딱하는 동안에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속도가 1614킬로미터에요. 그러니까 똑딱하는 동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번을 왕복하고 똑딱하는 동안에 불길이 치솟는 속도가 여기에서 일본을 갈 정도로 그런 엄청난 속도로 불길이 치솟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세계를 보면서 한없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인공위성을 쏴서 달 탐사선을 보내는데 이어서 이번에는 다시 화성에 비록 무인탐사선이기는 하지만 화성에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부지런히 화성의 한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이 지구로 전송해오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우주선이 내려서 불과 며칠동안 조사를 했는데 기존에 화성을 관측하면서 상상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세웠던 모든 이론들이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평소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화성 위에 언젠가는 대서양과 맞먹는 커다란 물이 홍수가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우주에 어떻게 홍수가 있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엄청난 홍수가 있었으며 지금은 왜 그 홍수가 모두 사라졌는가? 그 물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의문의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그래도 누구도 신통한 해답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로켓이 7개월 동안을 날아갔는데 그 거리가 2억 킬로미터 정도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초속14 킬로미터로 우주선이 날아가는 거리입니다. 똑딱하는 동안에 14 킬로미터씩 그렇게 날아가는 우주선을 타고 7개월 넘게 달려갔지만 그러나 그 무한히 넓은 우주 가운데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태양을 중심으로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그렇게 되잖아요. 태양이 있고 그 다음에 수성 있고 금성 있고 지구가 있고 화성이 있으니까 바로 지구 옆에 있는 별에 갔다 온 것입니다. 그런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이것이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 그 수를 감히 헤아릴 수가 없고 1천억 개의 별들이 모여 있는 그 무리가 약 1천억 개 정도 된다고 보는 그 어마어마한 그 우주 가운데 가장 작은 한별 중에 하나를 다녀 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 다음 세상에 그 다음 별들에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흥미를 끄는 것은 UFO가 정말 있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작년 가을에 문화일보에 있는 어느 기자에 가을에 풍경을 담기위해서 이제 도리개질을 하고 있는 이제 깨를 털고 있는 그 시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마당에서 그저 무심코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 카메라는 아주 좋은 카메라였던 모양입니다. 1초에 3방인가 10방이 찍히는 그런 카메라였습니다. 자꾸 누르니까 철컥철컥하면서 1초에 1장씩인가 찍혀서 나왔습니다. 사진을 다 찍어가지고 와서 현상소에서 빼가지고 들여다보니까 10장 가까이 찍었는데 그중에 딱 한 장에 비행접시하고 똑같은 물체가 찍혔습니다.
그래서 그게 하도 신기해서 이것 혹시 잘못된 게 아닐 까 해서 그 필름을 만들어낸 코닥 필름을 비롯해서 저명한 전문적인 필름 연구기관들이 있는 외국으로 그 필름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조작에 의한 것입니까? 실수입니까? 혹은 날아가는 비행기나 이런 게 아닙니까? 2개월이 넘게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그것은 가짜가 아니고 진짜 날아가는 비행 물체가 찍혔다는 거죠. 그러면서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내면서 그 비행체의 높이와 속도까지 모두 계산을 해냈습니다. 3천 4백 미터 상공에 떠있는 물체로서 그 물체의 이동 속도는 무려 초속 108 킬로미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카메라에 셔터가 눌러졌는데도 나머지 장에는 전혀 안나오고 딱 한 장에만 그 비행물체가 찍힌 것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UFO가 있다고 말고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인간이라고 하는 이 존재에 지혜에 비해서 이 온 우주는 너무나 넓고 그리고 온 우주는 참 끝없이 광대하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칸트 같은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느껴진다고 그랬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 하늘에 반짝이는 별, 그것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증거 한다고 했죠.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비가 오지 아니하면 산천에 있는 모든 나무와 풀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누렇게 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번 비가 오고 나면 온 산에 생기가 돕니다.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던 풀이 여름에는 이렇게 무성한 녹음이 우거지고 잠시 몇 달이 지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산에 이파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소나무를 비롯한 사철나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무들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흰 눈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산은 온통 벌거벗은 나무로 가득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이제 파릇파릇 싹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지구는 이런 변화를 몇 년이나 계속 했을까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날 동안 계속 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개울에 나가보면 개울이 흘러가고 그 개울에 돌멩이들이 반질반질하게 닿아서 놓여있습니다. 누가 와서 간적도 없고 물이 돌멩이를 굴리면서 그 돌멩이가 닿고 닿아서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흙이었던 것이 눌리면서 바위가 되고 그 바위가 다시 깨뜨려지고 깨뜨려진 바위들이 물살에 떠내려가면서 이리 깎이고 저리 다듬어지면서 동글한 돌멩이가 되었습니다. 그 돌멩이 하나하나에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 아니라 수만 년, 수십만 년의 사연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알겁니다. 서울 근교에도 지석묘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돌 같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돌멩이였던 것들이 있어서 그런 돌멩이들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5천년씩, 6천년씩 흘렀는데도 그 돌멩이는 6천년, 5천년 전에 세워 논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다 닿아서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우주에 있어서 1만년, 2만년 혹은 1천만년, 2천만년 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순식간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커다랗고 위대한 우주를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게 됐으며 우주는 어디서 왔으며 우주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안에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인간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을 가지고 탐구하는 학문이 철학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사 이래로 이렇게 우주의 근원과 그리고 생명의 신비와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밝히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만족한 대답을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모든 인간의 질문을 비웃듯이 간단하게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이 온 세상을 창조하고 하나님이 이 온 우주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져있는 이런 자연의 세계, 우주의 세계를 보면서 신비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과학이 발달해서 잠수함들을 만들고 했지만 물속으로 5백 미터만 들어가면 영원이 햇빛이 도달하지 않는 캄캄한 어두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잠수함은 이미 5백 미터 이상을 내려가는 잠수함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밑으로 내려가면 수압이 어마어마해서 쇳덩어리라도 모두 박살이 날 정도로 그렇게 엄청난 수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밑에는 아무 생물이 살 수 없을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언젠가 인간들은 해저 탐사 선을 만들어서 마리아나 해구라고 하는 11킬로미터를 물속으로 내려가는 곳에 특수하게 건조한 그 탐사선을 사람을 태워서 내려 보냈습니다. 과학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저히 쇳덩어리도 감당할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햇빛도 전혀 들지 않는 그 엄청난 그 수중 해구 밑바닥에 거기에도 생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상에서는 볼 수도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생물이 그 캄캄한 어두운 바다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이 얘기에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우주는 너무 신비합니다. 크기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신기할 뿐만 아니라 작게 들여다봐도 매우 신기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주 놀라운 법칙과 정교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주를 영어로 코스모스라고 하는데 그 코스모스라는 말은 희랍어에서 왔습니다. 질서라고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산에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낮에는 이 산에 있는 나무들이 동화작용을 하고 남는 노폐물을 바깥으로 내어버리는데 이것이 산소입니다. 산소는 산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그리고 산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그리고 인간들이 필요 없어서 내어뱉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아주 놀라운 질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면서 그러면서 이 거대한 우주가 말하자면 돌아가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지상에 있는 물들이 많이 증발하고 나면 말하자면 물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이제 구름이 떠오르면서 비가 내립니다. 대기수를 지상으로 내려 보내서 흐르게 하십니다. 흐른 그 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고 지표면이 마르면 산이 그 물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런 조화롭고 질서 있는 하나님의 운행 속에서 인간들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하나님의 뜻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말씀하신 것이 매일매일 창조하시고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좋았더라는 말은 아름다웠더라는 것이 아니라 선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목적을 이루어갈 수 있는 그러한 모양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이 없는 모든 물체들도 그렇게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은 그 모든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들을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그 만들어 놓은 인간을 통해서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두 가지에요. 첫째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는 당신이 만들어 놓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인간들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과 뜻을 잘 이해하면서 그 계획과 뜻에 합당하게 온 세상을 다스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시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과 지혜를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과 같이 애정 어린 마음으로 다스리고 통치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잘 보전하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자연의 세계를 파괴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이러한 인간의 모든 파괴 행위들은 바로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신 것과 또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인지를 알면 인간들은 하나님이 다스린 이 세상을 지배하고 빼앗는 것만 아니라 통치하고 다스립니다. 임금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선한 임금이라면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면서 통치하듯이 인간들도 그렇게 이기심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그 자연을 가꾸고 문명을 일구어가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창조가 되었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람으로 만들어놓으셨으니까 이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에 어떻게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어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들을 행할 까?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진정한 본분이고 참된 목적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만드신 목적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해야 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간다고 하는 그런 의식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는 동물과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개울물이 흘러가는 이 골짜기에 맑은 물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짐승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거기에는 가재도 있고 작은 물고기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도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또 수많은 생물들이 죽어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풀 한포기가 피어났다 사라지는 것, 그리고 나무 한그루가 태어났다가 병들어서 죽는 것, 가재나 혹은 미꾸라지 같은 작은 생물들이 개울가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것, 사람에게 잡혀가거나 혹은 더 큰 물고기에게 먹혀서 죽은 것, 아주 작은 미생물, 눈에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 봐야지 관측될 수 있는 작은 미생물들이 생겨났다가 죽어가는 것, 그런 것과 인간이 죽어가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 소수입니다.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가슴에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어났지만 그러나 곧 사라지고 또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르코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던 거와 같이 너를 떠메고 간 그 상여꾼들이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상여꾼들에 의해서 떠메어서 나가요.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십년, 혹은 이십년, 삼십년이나 오십년, 아니 넉넉히 잡아서 이백년을 사람이 살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누리는 수는 겨우 거북이에 나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세월을 우리들이 잠깐이면 지나가는 이런 인생들을 보면서 그가 만약에 이 세상에 잠깐 동안 살다가도 하나님이 원래 자기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살아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아니 짐승만도 못하거나 혹은 곤충이나 풀포기만도 못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끊임없이 물어야 되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것은 어떤 가치 있는 일들을 위해서 지음 받은 것이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죠, 그러나 1학년 때부터인데 하튼 고민을 많이 하다가 3학년 때쯤 되서 하나 발견한 게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가치라는 말입니다.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 사는 길은 가치 있게 사는 길입니다. 어떡하면 가치 있게 사는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어주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만들었다고 할 때 최고의 가치는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면 그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마이크가 공장에서 만들어질 때.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설교하거나 노래를 불러서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들리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게 비록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이 자기 기능을 발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화) 마이크가 이러면 싸구려입니다. 좋은 것이 이 마이크 하나에 2백만 원짜리까지 있습니다. 비싸죠? 나는 2백만 원짜리까지는 못 써봤지만 그러나 교회에서 쓰고 있는 게 하나에 한 37만 원쯤 되는 것입니다. 소리가 잘 나오죠. 고거 쓰기 전에 내가 늘 집회도 많이 다니고 하니까 교회 집사님이 17만 원짜리를 하나 사주셨습니다. 그것만 해도 그때 굉장히 큰 거야. 21만 원짜리 하나 사주셨습니다. 24만 원정도 되는 걸. 그런데 그게 굉장히 좋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매 2만 원짜리나 쓰고 그러다가 24만 원짜리라고 그러니까 그거를 늘 가방에다 넣어가지고 설교하러 다닐 때도 가져가고 강의하러 다닐 때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근데 어느 집회를 갔다가 그 집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다른 사람이 쓰면 닳잖아요. 나는 떼어가지고 오는 길에 걸어 나오다가 똑 떨어뜨렸습니다. 근데 그 다음부터 소리가 안나요.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러 보냈는데 공장으로 보내야 되는데 공장에 가니까 공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중요한 게 망가져서 껍데기만 다시 쓸 수 있고 속 알맹이는 다 바꿔야 하는데 다 바꿀 바에야 새로 사는 것이 났대요.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것이 더 이상 내가 가방에다 넣고 다닐 만큼 애지중지하지 않아요. 왜? 더 이상 그 목적에 기여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목적에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비싼 거지만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한때고 이제는 버렸습니다.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그 목적에 부합하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아끼셔요. 그래서 매우 귀하게 여기셔요. 사랑하시되 아주 특별하게 사랑하셔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게 살았던 것을 칭찬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사귀면서 영원히 살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창조주의 뜻을 거스렸던 사람들은 잠시 이 세상에 살게 내버려두셨다가 하나님이 폐기처분하세요. 죽고 나면 어디로 가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쓰고 쓸 때는 귀한 물건이었고 꼭 가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사요. 사거나 혹은 얻어오거나 혹은 만들었습니다. 사용이 끝나고 나면 모두 쓰레기장으로 내어버리고 쓰레기장에서는 그것 모두 긁어모아서 소각장에 갔다가 태워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잠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지만 그러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생은 폐기처분합니다. 죽음과 함께 하나님께서 폐기처분해서 모두 끌어 모아서 지옥의 불에 태우는 땔감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장난치듯이 농담하듯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느 날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폭주족들이 있잖아요? 오토바이를 사가지고 그 소음기를 떼어 내버리고 굉음을 내면서 막 백 킬로. 백이십 킬로를 막 달리는 사람들 있죠? 그게 엄청 위험합니다. 목사님도 오토바이를 몇 년 타봐서 아는데 엄청 위험합니다. 자동차와는 달라서 오토바이는 잘 쓰러지고 쓰러지면 십중팔구는 머리를 다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입니다. 백 킬로는 그만두고 팔십 킬로로 달리다가 뒤집어져도 중상을 입거나 절명한다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헬멧도 안 쓰고 그 밤거리를 질주하는 것입니다. 여학생들이 그거를 태워달라고 막 손을 흔드는 것입니다. 뒤에다 타고 달리는데 무시무시한 거죠. 그래서 기자가 물어봤습니다. “야, 무섭지 않냐?” 무섭지 않고 재미있대요. “어떻게 이 밤중에 여기에 나왔냐?” 도서관 간다고 거짓말 하고 나왔대. 매일 나온대. “무섭지 않냐? 그러다 사고 나면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이 여학생이 하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아저씨, 이런 말 알아요?” 기자가 “뭔데?” “잘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잖아요.” “그거하고 이거하고 뭔 상관이냐?” “그와 마찬가지로 신나게 놀다가 죽으면 죽는 순간에도 기분 좋게 죽을 수 있지 않냐.” 무슨 후회가 있느냐 이거죠.
이것은 뭔가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다가 허무를 느꼈다든지 아니면 인생을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인생을 실망을 하게 됐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거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고 무슨 깊은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오늘 신나면 내일은 그만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만드셨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니까 인생 그 자체가 커다란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커다란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사람들 속에서는 그런 다양들을 혹은 그러한 장난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런 인생들에 대해서 동정도 보내고 박수도 보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견해는 틀려요. 왜냐하면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살아있게 했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대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장난하듯이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잃어버리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허무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여기 태어나게 하셨을까? 그 수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엄마의 몸속에서 내가 잉태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왜 나인가? 그리고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계획하고 있는 것,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꿈꾸고 있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무엇을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계실까? 이러한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 이 얘기에요.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아서 멸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짐승과 같아서 동물적인 본성에 의해서 꿈틀거리다가 마지막에 죽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젯밤에도 내려다보니까 등이 있고 거기에 크고 작은 나방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방은 빛을 좋아합니다. 빛으로 날라듭니다. 대부분의 기도원에는 그런 환한 등불 바로 앞에는 살충기를 달았습니다. 거기에는 만천볼트정도의 강력한 고압이 흐릅니다. 그래서 거기에 빛을 바라보고 갔던 나방이 부딪치면 ‘찌지지직’하는 소리를 내면서 타 죽습니다. 모기는 조그만 소리를 내면서 죽지만 손바닥만한 커다란 나방이 날아가면 한참동안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탑니다. 그렇게 날아가서 수많은 동료들이 살충기에 부딪쳐서 냄새를 내면서 요란한 음을 내면서 전기에 지저져서 그렇게 죽는 것을 모두 듣고 보면서도 또 날아가고 또 날아갑니다. 자신이 파멸로 날아가면서도 그 살충기를 향해서 날아드는 나방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상관이 없이 자신의 육신의 쾌락, 자기의 마음에 원하는 좋은 것, 욕망대로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모두 폐기처분될 사람들이라 이거죠. 하나님이 싹 쓸어버리십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삶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지 그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에 목적이 없으니까 우리는 자기가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그릇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 세상에 만드셨을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 하나님
우리를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을 주 하나님을 찬양해
나는 하나님 형상 따라 지은 받은 몸이
영원이 영원히 주님을 섬기면서 살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한 주님의 형상과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창조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피조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닮게끔 창조하시고 또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아주 특별한 피조물로 이 세상에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인간은 말이죠,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놓으신 형상과 모양, 이 형상과 모양이라는 거는 이런 외모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그런 특성들이 하나님을 많이 닮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우리 집에 아이들이 둘이 있거든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그 참 한 부모에게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그게 뭐냐 하면 잠을 잘 때, 이렇게 엎드리면 대개 이렇게 엎드려서 자면 손을 이손도 이렇게 하고 이쪽 손도 이렇게 하고 자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집사람이 이렇게 보니까 아들놈이 손을 이렇게 하고 자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부러 이렇게 하고 자려고 해도 힘들잖아요. 팔을 비꼬는 것인데, 그래서 똑바로 해주면 자다가 다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딸을 낳았는데 딸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가면서 잘 때 똑같이 이러고 자는 것입니다. 이러구. 이렇게 놓아주면 조금 있으면 또 이렇게 자. 일부러 흉내를 내보아도 불편한데 왜 이렇게 잘까? 나중에 어느 날 아빠인 제가 자는 걸 보니까 내가 이렇게 자더라는 것입니다. 그거는 속에서 타고 나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닮는 것입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특성들을 하나님을 닮아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늘 사귀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과 아주 흡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아주 유사하고 그리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아주 유사하고 그리고 계획하는 것이 하나님과 아주 유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래 우리를 만드신 목적과 잘 부합하는 아주 뛰어난 인생을 살 수 있는 가하면 이런 것들이 모두 끓어져 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말이죠, 인간이 한 없이 동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들이 함께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이러한 일들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말씀은 이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셔서 이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계획을 생각하고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번째,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을 때, 생산과정이 틀려요. 생산 공정이 뭐냐 하면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만드셨냐하면 그냥 만드시려고 애를 쓰시다가 만드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빛이 있어라.” 그러니까 빛이 환하게 비췄습니다. 하늘에는 별들, 그리고 태양이 있어라. 그러니까 금방 생겨나는 것입니다. 땅에는 식물들이 돋아나고 그리고 공중에는 새가 날고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다녀라. 그러니까 그대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그대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근데 인간은 하나님이 “사람, 남자, 여자, 한 쌍 있어라.” 그렇게 하니까 사람이 생겨난 게 아닙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어린 아이처럼 흙으로 사람을 빚으셔서 얼마나 놀라워요. 당신이 만들어 놓은 이 세계에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당신의 그 거룩한 손으로 빚으신 것입니다. 당신의 손으로 빚으신 것입니다. 있으라. 그것도 싫으시면 흙이 모여서 사람 모양이 되라 그러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안 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빚으신 것입니다. 벌써 만들어질 때부터 틀리다고 하는 사실이 입증이 된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이 아니라 수제품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놓고 그 다음에는 다른 생물들을 창조하실 때에는 전혀 하시지 않았던 어떤 행동을 하세요. 그게 뭐냐 하면 후…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에게 영혼을 주입시키시는 과정입니다. 이 세상에는 못난 인간보다 똑똑한 동물들이 참 많아요.
언제가 해외토픽에서 피아노 치는 돼지를 본적이 있습니다. 돼지가 피아노를 잘 친대요. 어떻게 훈련을 시켰는지 돼지가 피아노를 잘 쳐요. 그것뿐만 아니죠. 돌고래 같은 것들은 아이큐가 30이 넘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아이큐가 두 자리 라는 말입니다. 돌고래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죠? 거의 글자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합니다. 더 영리한 짐승은 고릴라죠. 먹을 것을 가져다 놓으면 도구를 이용해서 층계를 놓고 올라가서 그것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합니다. 그런 탁월하게 뛰어난 짐승들에게도 하나님과 교재 할 수 있는 특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 사귀면서 살기위해서 사람의 속에 영혼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하나님이 불어넣으셨죠. 또 만들어질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졌죠.
그러니까 그렇게 태어난 첫 인간 아담은 하나님과 늘 사귀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귀면서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어서 즐겁고 하나님과 더불어 늘 사귀고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이 알고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함께 사귀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예수 믿고 나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잘 안 믿기 때문이었죠. 예수를 또 같이 믿는 다고 하더라도 너무 바쁘게 살다가 보니까 이제 교회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간관계들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화) 고등학교 다닐 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로 인해서 지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치 못할 일로. 그래서 한 시간 늦게 가고 둘째 시간 공부할 때 간신히 들어갔는데 공부는 안 하고 노트 한 장 가득히 내 이름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무슨 일이 있어서 안 올까? 그래서 내 이름을 김남준, 김남준, 노트에가 공부는 안 하고 가득 써 놨습니다.
그런 것이 뭐냐 하면 사귐입니다. 안 만나면 보고 싶고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싶고 무엇인가를 도와주고 싶고 자기의 것을 내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사귐을 하나님과 인간이 나누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후… 영혼의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은 원래 그러한 목적, 그러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딱 믿고 나면 전에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분이셨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내 가까이에 계셔서 내 생활을 돌보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교제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을 주셨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과의 교제를 잊어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다음 시간에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요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이 있으셔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사귀시려고 우리에게 영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함으로 그런 하나님과의 교제를 잊어버려서 이제는 이 세상에서 피조물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피조물들이 되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계획, 하나님과의 교제,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3. 한 사람의 죄
“이러므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것은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에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두 가지 계획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온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리게 하시려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 오늘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하면 한 사람으로 에덴동산 가운데 두신 다음에 하나님이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그 나무는 아주 신기하고 이상한 나무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나무였습니다. 거기에다 아담을 향해서, 하와를 향해서 ‘너희는 이것을 따먹지 말아라 먹으면 정녕 죽는다.’ 그런데 사실 아담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까,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못보고 죽는 것도 못 보았으니까 사실 죽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없었죠. 하여튼 주님이 말씀하시는 분위기로 보아서 하여튼 큰일 난다는 것, 그것 하나는 알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죠?
우리는 많이 심심치 않게 예수 믿기 싫은 사람들이 그거 왜 선악과는 하나님이 만드셔서 왜 그것을 따먹게 하셨을까, 왜 그러셨을까, 안 만들어 놓으셨으면 되었지 않았을까, 또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따먹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손을 탁 치시면서 ‘떼끼 이놈’ 하시면 설마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따먹었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사실 모두 핑계거리입니다. 오늘 이제 목사님 설명을 잘 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기계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로버트 그래서 하늘에서 리모컨으로 조정을 하면 찬양을 하고 그다음에 ‘밥 먹어 누르면 밥 먹고 그러는 로버트로 인간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것이 바로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언가 이 세상에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할 때 누군가 의논하셔요? 아닙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독립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그 일을 하셔요. 그런 똑같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 할 수 있는 주권적인 의지를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순결하고 깨끗하게 창조되었지만 그러나 인간은 두 가지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늘 하나님께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노력을 하면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끔 하나님의 창조하신 계획에 합당하게끔 그렇게 인생을 살수도 있었고 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길을 가면은 죄를 짓고 범죄하고 마음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불순종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항하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인간에게 하나님이 함께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못 막으셨기 때문에 안 막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으로 할 수 있게끔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신분이 누구에요. 하나님이시죠.
그런데 높은 절벽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면 죽어요? 살아요? 아니 밑에 스펀지가 깔려있는 것이 아니고 바위가 있는데 수십 미터 높은 벼랑에서 떨어지면 죽나요? 사나요?. 죽어요! 내가 죽고 싶어서 몸을 던지면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서 떨어지지 못하게 하시거나 떨어지다가도 소나무에 옷이 걸려서 살거나 굴러 떨어지다가 물속으로 들어가서 살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알프스에 오르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수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었는데 쾅하는 소리가 나더래요. 자는데. ‘이게 뭐요? 이게 뭐요?’ 하고 까무러쳤습니다. 그 다음에 정신을 차린 다음에 고도계를 재보니까 어제 올라갔던 데는 4,700m이고 잘 때는 4,700m를 보고 잤는데 눈을 뜨고 보니까 4,400m이었습니다. 300m를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고도계가 망가졌나보다. 그러고 밖에 나와서 햇볕이 난 다음에 이렇게 쳐다보니까 자기네가 있던 데는 저 산꼭대기에요. 300m를 굴러 떨어졌는데 기절만하고 모두 산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들 때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 일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자기가 결정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선악과는 말입니다. 그 자체가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나무가 선악과만 있었으면 그것만 자꾸 쳐다보는데 신기했을지 모르지만 이것보다도 생명나무 실과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따먹고 한없이 먹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실과들이 온 동산에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와의 눈에 자꾸 이 선악과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오직 하나에요. 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는 뱀에 유혹을 받았기 때문에 뱀은 사단의 단순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 도구인 뱀이 와서 사단의 뜻을 전해 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이 선악과에 눈이 자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악과를 어기고 따 먹은 것입니다. 자 여러분 선악과를 따 먹은 게 무슨 그렇게 큰 문제가 됩니다. 뭐 하나님 나무가 그것밖에 없습니다. 필요하시면 하나님이 ‘야, 하나 더 생겨라’ 그러고 만들어버리면 되잖아요.
근데 왜 이것이 천국의 국보도 아닌데 뭐 그거 하나 따 먹었으면 따 먹었지 그것 가지고 하나님이 그것 가지고 인간을 벌하시고 죽게 하시느냐, 이게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인간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데 인간이 자기에게 반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공부 못하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얼굴 못 생긴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왜? 부모인 자기네가 그렇게 낳았으니까!. 나는 어떤 그 나이 많은 노처녀가 자기 어머니한테 막 대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마는 왜 나를 못생기게 낳았느냐고, 말에요. 뭐 어떻게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봐줄 수 있습니다. 대드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작대기로 때려서도 대드는 것은 징벌 받아도 부모에게 대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그릇된 자기의 고집을 관철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모에게 대드는 것을 인간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만들어놓으신 그 하나님이 대드는 인간, 하나님은 참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근데 이게 바로 그거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다 명령을 부여하셨습니다. ‘따 먹지 말아라’ 이것을 따 먹는가 따 먹지 않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면서 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가 안하는가를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이것을 따 먹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커다란 대 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명령을 어긴 사람들을 갖다가 하나님은 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요.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불순종하고 범죄 하는 사람들을 징벌해야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 한 인간들에게 큰 벌을 내리는데 두 가지 벌을 내렸습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즉시 죽는 것입니다. 어떻게 즉시 죽냐 하면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교제를 누렸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사귀려고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까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에 그 교제가 모두 무너지고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한없이 낯설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만들어 놓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자기의 아버지이신데도 인간은 그 하나님을 마주보고 교제하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그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무섭고 두렵고 도망하고 싶고 피하고 싶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 않은 그런 영혼의 사망의 찾아온 것입니다. 얼마 만에? 아주 즉시 범죄 하자마자 즉시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담이 그렇게 죽은 다음에 태어나는 모든 후손들도 태어날 때 그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도할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죽을 수 밖에가 아니라 이미 죽었던 죄인들입니다. 이미 완전히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죄인들 .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는 육체적인 죽음에요. 그것은 하나님이 다소 유예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죽음을 보지 않을 그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얼마정도 산 다음에는 죽도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제품이 생산될 때에 흙으로 빚으신 몸과 불어넣으신 영혼이 만났듯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서 육체는 다시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오라. 이게 바로 죽는다는 말의 의미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죽음이 오늘 우리와 왜 관계가 있느냐 하였더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예) (예화) 몇 년 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저 일산 쪽에 강이 팍 내려오다가 물이 점점점 불어나니까 강둑이 물을 이기지 못해가지고 우르릉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흙더미가 무너져 나가고 그리고는 막 졸지에 그 물이 농경지와 주택지를 덮쳤습니다. 많은 사람의 인명을 앗아가고 잘 길러놓은 곡식이 모두 물에 잠기는 커다란 피해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죄가 들어왔다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에요. 살금살금 알게 모르게 하나 둘 셋 이렇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는 그 순간에 콱 닫혔던 수문이 쾅하고 터지면서 수많은 물이 한꺼번에 확 쏟아져 들어와서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된 것처럼 죄가 졸지에 들어와서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그 세계는 그 죄로 말미암아 처참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어놓으실 때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조화가 있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간은 동창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사자한테 사람이 잡아 먹혔던지 사람이 걸어가다가 바위에 머리통에 깨졌다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완전한 조화를 이룬 그런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하고 또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그런 아주 축복된 그런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애써서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이 없던지 아니면 농사를 애써서 지었는데 벌레가 와서 다 먹고 가서 농부를 한숨을 짓는다던지 아니면 비가 예고도 없이 이상한 때에 억수로 와가지고 농경지가 침수되어서 모든 농사를 망치게 된다던지, 벼락이 떨어져서 나무가 부러져서 거기에 사람이 맞아서 죽는다던지 그런 자연과의 부조화는 없었습니다.
근데 인간이 범죄 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땅까지 저주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왜 땅이 저주받지 않으면 땅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반영할거란 말입니다. 범죄 한 인간이 그런 좋은 데서 사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요.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아주 끔찍한 범죄를 지은 사람을 잡아다가 인류 호텔에다가 종들을 붙여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여러분은 당장 분노하고 말 것입니다. 나쁜 짓 많이 한 사람은 철창에 갇혀서 겨울에는 후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뜨거워서 쭐쭐 흐르는 곳에서 거기에서 모기하고도 싸우고 가끔은 쥐하고도 싸우면서 콩밥을 먹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공의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연과의 조화가 깨졌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커다란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보잖아요. 충청도 지방에는 내일 모래까지 그야말로 비가 억수로 온대요. 한 시간에 40mm 하루 동안에 40cm, 50cm 온 고장도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봐요 50cm가 오면 그게 높은데서 낮은 데로 모이면 그 낮은 덴 어떻게 되겠습니다. 물바다가 되는 거 아닙니다. 이렇게 되서 사람이 목숨을 잃고 하는 일들이 창조 하나님 앞에 범죄 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근데 이런 것들은 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죄가 물밀 듯이 들어와서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모양을 좇아서 만들어진 인간이 세상을 다스렸는데 죄가 들어오게 되니까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다스리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졌네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죄가 있는 곳을 싫어해서 하나님이 버리신 것입니다.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정결한 곳 깨끗한 곳 거기에 계시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오실 때도 우리의 마음이 불결하고 더러우면 하나님 안 오세요.
(예화) 언젠가 한번 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갔는데 자라고 그랬는데 얘들이 안보여요. 점오를 해보니까 없어졌습니다. 무엇을 하나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은 은혜를 받겠다고 찬양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는데 저 학교 뒤편에 가가지고 둘러앉아가지고 담배를 피우고 앉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은혜를 받겠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죄가 많은 사람에게도 찾아오세요. 어떻게 찾아오세요. 오시기전에 먼저 그 사람 마음에 청소를 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세탁기에 버리시고 깨끗이 씻어서 깨끗이 하신다음에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죄 많은 사람도 소망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청결하게 하면. 그래서 성경이 뭐하고.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뵈올 것이요’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군다나 마귀의 손에는 사망이 있습니다.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인다!’ 그러면 꼼짝도 못하고 거기에 종노릇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국은 점점 견고해져서 강력한 왕국을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 세계 속에 태어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귀의 조종을 받으면서 악한 일을 행하고 그리고 우상을 섬기고 범죄하고 점점 마음에 어둠을 쌓아가고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외면하는 일들을 되풀이해서 행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상은 하나님이 원래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계획하셨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대신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고 또 우상을 높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께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인간들이 오히려 자기의 욕심과 마귀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대가가 무엇이냐 하면 지옥형벌입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지만 하나님은 그 한사람의 범죄를 아담 것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하나님 앞에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담 개인의 것이 아니라 태어날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 죄지은 사람은 자기가 죄 값을 치러야 됩니다. 죄 값을 치르면 우리 모두 십자가를 비참하게 죽고 영혼이 뭐고 전부다 파멸로 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지만 스스로 그 죄를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학생이 밤마다 전화를 많이 하더래요. 그래서 엄마가 걱정이 되서 야, 전화 좀 그만하고 얼른 자라, 어느 날 고지서가 날라 왔는데 3,000,000원이 나왔더래요. 국제전화 말하자면 전화방 을 몇 십 시간을 해 댄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어요? 무엇이 있어요? 아침에 갈 때마다 천 원씩 타가지고 가는 놈이 오히려 3000,000원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 잘하는데 자기 힘으로는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힘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못 박히신 것은 주님이신데 용서는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대표의 원리에요. 아담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여기 보니까 죄 가운데서 태어나고 이제는 죄의 지배를 받는 비참함 생활을 계속해 나아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에 그런 경험이 있죠. 한 가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종이 되는 경험들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렇죠. 한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들통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죄를 짖습니다. 그 죄를 짓는 과정이 누군가에게 들켰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또 종노릇을 해야 됩니다. 왜, 까불면 내가 다 불어버린다. 이렇게 나가니까. 또 종노릇을 해야 돼요. 이런 고통스런 일들이 계속되었던 것처럼 인간의 모습이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제하고 세상을 지배하도록 만드신 그 인간이 이제는 지배하기는커녕 마귀의 철저한 지배를 받으며 종노릇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해야할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는 비참하게 파괴되고 그리고 마귀의 조종을 받는 그런 불쌍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저는 지난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창조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바로 이렇게 온 세상을 다스리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귀게 하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타락하고 죄 가운데 빠져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인간을 들여다보아도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저절로 예수 믿게 된 사람이 있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찾을 때 찾을 수도 없고 믿을 래야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래야 빌 능력도 없는 그렇게 죄로 말미암아서 철저하게 비참하게 멸망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이 그런 모습을 톨스토이인가,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비유) 인간이 높은 벼랑에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다가 그만 몸부림치면서 무언가를 붙들었습니다. 나무뿌리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그것을 붙들고 누군가에게 구조해달고 외치고 소리를 질러요. 그러나 아무도 구원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쥐가 와서 그 나무뿌리를 갉아 먹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얀 낮이라고 하는 쥐고 하나는 까만 밤이라고 하는 쥐에요. 와서 갉아먹으면서 점점 그 뿌리가 말하자면 이제 깎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끝나고 나면 누구도 구원할 수 없게끔 인간은 깊은 지옥의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지옥에 그게 바로 인간이란 말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하죠. 목사님, 그래도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래도 그렇게 비참하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중에는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사람들이라든지, 무언가 인류 문명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기 위해서 땀 흘리는 사람들이라든지, 아니면 뭔가 예술 작품들을 만들어서 불후에 기리 남는 어떤 명작을 남기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도 모두 멸망당할 사람들입니까? 대답을 하자면 예, 그렇습니다. 멸망당할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지상에서 아주 극악하게 살인과 강도와 흉악한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고상하게 예술과 과학과 철학과 사상과 학문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소 세상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하면 ‘이 세상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 그리고 이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영원히 있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한한 세상이 아니라 무한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함께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우리들이 아주 오래도록 살고 의학이 아주 발달된다고 그래도 120년 정도 까지 밖에 살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의학이 아무리 발달된다고 그래도 120년 중에 40년 정도는 목숨이 붙어있는 정도이지 인간의 생활을 이어가는 생존은 아니란 말입니다. 넉넉잡게 120년 정도만 있으면 모두 사라져 갑니다. 여기서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은 가다가 보면 구름다리 하나를 지나왔을 것입니다. 구름다리 이쪽편이 수동초등학교입니다. 거기를 저희 아버님이 칠순이 되어 가는데 우리 아버님이 그 초등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우리 아버님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어디계실까요? 모두 죽었습니다. 가르치실 때 나이가 25세만 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95세가 넘으셨으니까 거의 살아계실 확률이 없죠. 그런데 사람은 갔으나 그리고 거기 졸업한 수많은 학생들 중에 생존하고 있는 학생들은 남아있는 학생들보다 오히려 적을 줄 몰라요. 왜, 그 세대가 바로 육이오 세대거든요. 엄청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는 여전히 있어서 그 학생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가르치고 가르치던 그 사람들이 있을 때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 분들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어가지만 학교는 남을 겁니다. 그렇죠. 이렇게 사람들의 생명은 속히 스쳐져 지나가요. 목사님이 처음 하나님의 사랑을 안게 스무 살 때였습니다. 그 후로부터 5년 전에는 15살이었는데 그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지금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은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아물아물하게 느껴져요. 제가 15살 때 이 길을 아버님하고 걸어서 선영에 온 적이 있습니다. 죽 걸어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추운 겨울에 까만 교복을 입고 그리고 아버님과 함께 약 12km 되는 긴 길을 장갑을 끼고 걸어온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30년이란 세월이 속히 지났습니다. 우리 인생은 곧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인생을 곧 사라지는 동안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금방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육체적으로 죽고 그리고 잠시 후에 영혼도 범죄 했기 때문에 영혼도 지옥에 떨어져야 되는 그 끔찍한 형벌을 하나님이 보시다 못해서 죽어가는 그 인간들을 구해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우리에게 펼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계획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마자 즉시 그 씨가 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씨가 점점 자라요. 죄가 온통 가득 차고 마귀가 철저히 지배하는 그 세상 속에서도 뭔가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 비참한 죄 가운데서 구원해내셔서 원래 우리를 창조하셨던 그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하나님과 복된 교제를 다시 가질 수 잇도록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캄캄한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가족, 한 나라, 한 민족 선택되어지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역사가 흘러가고 그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드디어 이제는 한 백성, 한 민족이 아니라 온 인류 그 온 인류를 하나님 앞에 죽지 않고 다시 살게 하실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비록 범죄 하였으나 다시 이 세상이 창조의 원래 목적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사망에 눌려서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아가던 불행하고 비참한 인생들이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위대한 십자가의 일들을 행하심으로 우리들이 이제 범죄 하였고 철저한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지만 이제 그 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다시 생명을 주시고 잃어버렸던 교제를 다시 회복시키시고 인생을 고쳐주셔서 창조의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생을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고 그리고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를 내일 아침 시간에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요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전한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교제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순종했고 범죄 했습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사망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고 자연과의 모든 조화도 깨트려지고 이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어서 죄 가운데 몸부림치다 죽어가야 하는 그러한 비참한 인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이런 비참한 일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생명을 사랑하는 자들이면 죄 때문에 우리 인류가 망했으니 이제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셨고 애타게 교제하기를 원하셨지만 우리가 타락했고 우리가 하나님을 버려서 죄와 사망아래 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우리의 지난 죄 그리스도 밖에 지은 죄 신앙생활하면서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셔서 주님 오실만한 정결한 사람들로 우리를 불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4. 구원의 길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도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30
자, 우리 첫째 시간에는 ‘씨 뿌리는 비유’였고 둘째 시간에는 ‘창조’, 그래서 하나님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그랬죠, 하나는 온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또 하나는 교제하게 하시려고, 그러고 두 번째 어젯밤에는 ‘타락’이였죠, 타락,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명령을 어기고 타락했다. 그래서 그 사망 때문에 죄가 들어왔고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이제 희망이 없는 아주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제 이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속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제 어제 밤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비참한 절망을 인간들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본받아서 창조되어서 하나님이 창조한 이 큰 세계를 다스리고 그리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야 할 그 인간이 이제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래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유를 하나 하자면 여러분도 이런 시골에 오게 되면 저수지나 호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맑은 호수가 있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그 호수를 이렇게 들여다 보면 호수에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드리워져서 호수를 보고 숲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그 호수가 말입니다. 큰 풍랑이 일거나 바람이 불어서 물결이 흔들리게 되면 그 다음에 그 호수 물을 보고는 주변에 있는 아무 경치도 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로 말미암아 범죄 하게 되니까 이 지성이 하나님을 찾는, 알 수도 없게끔 그렇데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과 바르게 맺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그렇게 범죄 하지 않고 살아가야지만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주님이 주신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신앙이 깨트려지니까 그런 것도 함께 깨트려져 버린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물을 인식하고 모든 것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두개를 주셨는데 하나는 신앙이고 또 하나는 이성입니다. 근데 신앙이 범죄 하게 되니까 깨트려져버렸거든요. 깨트려져 버리니까 이 두 가지가 함께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는데 하나가 깨트려져버리니까 그 파괴된 영향이 그 다음에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쪽 눈 잃어버린 사람들은 되게 잘못하면 이쪽 눈까지 실명이 되죠. 똑같은 원리에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트려지고 신앙이 망가지니까 이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서 이제는 무언가 옳게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인간에게는 무언가가 남아있습니다. 뭔가가 남아 있냐 면요 예전에 하나님이 자기를 만드셨다는 거. 그리고 또 그 인간이 어렴풋이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시고 자기와 교제하신 적이 있다고 하는 희미한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뚜렷하지는 않아요. 매우 희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말입니다. 필연적으로 종교적인 동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엇 때문이냐 하면 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한 적이 있고 하나님이 자기를 만들어서 또 이 온 피조물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희미하긴 하지만은 무언가 볼 적마다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근데 그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예배하고 있는 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하나님이 혹시 그 산신령이 아닐까? 그 하나님이 혹시 부처가 아닐까? 그 하나님이 혹시 귀신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섬기게 되는 것이 이게 바로 종교이고 이게 바로 우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성적으로만 혼동이 될 수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는 또 우리 인격의 두 번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정, 느끼는 것 있죠, 이런 것들도 모두 파괴되었어요, 불쌍한 것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기쁜 것을 보고 기쁜 할 줄을 몰라요. 인간의 감정은 심히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 기뻐하고 박수를 치는 일 같은 것들은 죄가 없을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뭔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고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기뻐하는 것 이런 것 죄가 없던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감정은 왜곡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참 사랑을 느끼고 그것을 깨달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지도 왜곡되게 되었지요. 뭘 하겠다고 결심하는 그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라 늘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께 덤벼드는 그 일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죄가 들어오게 되면서 인간은 단지 죄에 의해서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모두 부패해서 이제는 구원을 바랄수도 없고 또 구원해 줄 사람도 없고 죄 가운데서 그렇게 지배를 받으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진노아래에서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농부들이 와서 잡초를 베어 버리면 말라버리고 마른 그 풀이 아궁이에 던져지는 것처럼 그렇게 태어났다가는 모두 지옥에 심판의 받으면서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제 마음 아파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모두 형벌을 하세요. 그런데 사실은 인간이 범죄를 했지만은 인간 자신이 자기의 죄를 위해서 갚을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또 한편에 그렇게 인간들이 자기의 형상과 모양을 본받아서 이 세상에 만들어졌는데 그 만들어진 인간들이 철저하게 창조의 원래의 목적대로 살지를 못하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결국은 죄 가운데서 심판을 받고 죽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자기를.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죄 값을 치러야 되는데 죽으면 죄 값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죽는다고 죄 값이라는 것은 죽으면 그 죄가 사라져야 되는데 근데 그 죄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왜, 죽어도 심판을 받고 죽었지만은 그 사람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럴 리 없지만 다시 살아나도 여전히 죄인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 자신의 힘으로 죄 값을 치를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는 우리 죄 값을 담당해야 할 한 분을 이 세상에 보내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 아브라함 링컨이 16살 때 노예시장에서 비참하게 팔리는 노예들을 봅니다. 어느 날 노예 시장에 나갔는데 흑인들이 이렇게 서있는데 물론 그도 어렸을 적부터 노예들을 보았겠지요. 근데 아주 극적인 장면을 보는 것입니다. 노예들이 서 있는데 노예 일가족입니다. 근데 주인이 그것을 돈이 없으니까 모두 팔아버렸습니다. 노예상인이 사갔습니다. 그래서 엄마 노예, 아빠 노예, 그 다음에 언니, 그 다음에 아들, 이렇게 어린아이들까지 노예가 몇 명 있어서요. 근데 말하자면 이 노예를 한꺼번에 사갈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것들을 막 팔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엄마, 아빠가 팔라져 나가고 아이들이 팔려져 나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짐승처럼 팔려져 나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어린 소년 아브라함 링컨이 큰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제 노예 해방에 앞장을 서면서 인류 역사에 기리 남을만한 그런 아주 위대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비유를 하자면 이렇게 들 수 있습니다.
비유) 돈 많은 어떤 부자가 이제 어느 날 시장을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노예가 있었습니다. 엄마 노예, 아빠 노예, 그 다음에 어린아이들 노예, 아기노예까지 대 여섯 명의 노예가 한 가족인데 팔려나왔습니다. 근데 노예 상인들이 팔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예들은 애원을 하면서 팔려가도 좋으니까 우리가족이 같이만 팔려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 상인들은 그럴 수는 없죠. 누구든지 먼저 사가겠다는 사람에게 하나씩 팔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근데 그 어느 영화에서 한번 보니까 말입니다. 노예를 세워놓고 노예 상인이 그 노예를 파는데 사려는 사람이 와서 툭툭 치면서 ‘이 어디 힘을 쓰겠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그러고 안 사려고 그러니까 이 노예 상인이 몽둥이로 막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노예를. 그러면 때리면 노예는 자기가 아직도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맞으면 맞을수록 더 힘껏 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보십시오. 아직 중고가 아닙니다. 아직 생생합니다!’. 팔려나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 돈 많은 부자가 너무 비참한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어느 사람이 와서 남자 노예 사가고 여자 노예를 사가려고 하니까 막 울부짖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우리 두고 가지 마!’, 그걸 보면서 이 돈 많은 부자가 너무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이 노예 전부다 얼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얼마에 사가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그 갑절을 줄 테니까 나한테 파시오. 그러니까 어, 이 노예 상인이야 돈만주면 팔죠. 그래서 돈을 받고 이 노예를 팔았습니다. 그래서 이 노예들을 모두 사가지고 갔습니다. 이 노예들은 말입니다. 이제 비록 노예로 팔렸지만은 이제 맘씨 좋은 주인이 이제 우리를 사갔으니까 참 감사하다, 우리가 같이 있게 된 것만 해도 우리가 참 감사하자, 그러면서 인제 팔려간 것입니다. 집에까지 갔는데 과연 그 집이 저택입니다. 커다란 집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우리가 해야 되겠는가! 우리가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갔는데 뜻밖에 주인은 자기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뭔가 종이 짝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씩 다 나눠주면서 ‘내가 이제 너희를 샀는데 이제 내가 너희에게 이 증서를 준다. 이것은 이제 해방 증서다. 너희들은 어디가든지 내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너희를 해방시켜주었으니까 그러니까 혹시 너희를 다시 노예 삼으려고 하면 나에게는 돈 주고 나를 산분이 계시고 그 분이 나를 이렇게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여라, 그러니까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자 이제 떠나라’.
말하자면 노예 상인을 마귀라고 예를 든다면 그 맘씨 좋은 사람은 하나님이시고 노예는 우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맘씨 좋은 사람이 노예 상인에게 지불했던 돈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속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속전이다. 혹은 화목제물이다 이런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마지막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의 십자가 처형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은 죄인을 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근데 이것은 그냥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가장 흉악하고 악독한 사형 방법입니다. 인간을 먼저 나무에다 박아요. 나무에다가, 기찻길에 있는 나무 같은 그런 나무에다 박고 못은 기차레일에 있는 그런 못을 박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박았는데 하늘높이 매다니까 인간이 무거워서 이게 자꾸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귀찮으니까 그 다음에 손목에다 박았다고 합니다. 손목에다가, 손목에다가 박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을 도르래 같은 것을 이용해가지고 일으켜 세워놓은 나무에다가 끼우는 것입니다. 그러고 매달아놓으니까 밑에 나무 같은 것을 바치는 경우도 있지만 하여튼 그렇게 매달아놓고 발도 못을 박으니까 이 무거운 인간의 몸이 나무에 매달려서 밑으로 쳐지는 것입니다. 쳐질 때에 그걸 버티는 것이 뭐냐 하면은 손에 박힌 그 못입니다. 그러니 몸이 밑으로 쳐지면서 그 못이 몸에 박혀있으니 그 고통이라는 것은 말할 수도 없죠. 그리고 못이 박히게 되면 거기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출혈이 많아 지면은 인체에 어떤 증상이 오는데 그 증상은 뭐냐 하면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은 두통입니다. 그리고 핏줄이 터져서 피가 나오면서 그리고 인간은 한없는 갈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때에 이제 신포도주를 갈대에 꿰어서 스펀지같이 된 해융이라는 것에 적셔서 이렇게 높이 올려주면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이것을 빨아먹으면 갈증을 좀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제 그렇게 해서 이렇게 올려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뭔가 하고 맛을 보신다음에 포도주인 것을 알자 예수님이 포도주를 거절하셨습니다. 이 포도주 속에는 무슨 성분이 있었느냐하면 그 죽어가는 사람의 통증을 경감시켜 주는 마취제, 진통제 같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것을 거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러면서 남기신 말이 뭐냐 하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뭘 다 이루셨다는 것인가, 첫째는 말입니다. 율법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그 죄 때문에 인간들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내려오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분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에 요한은 즉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는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범죄 한 인간을 향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심판을 하셔야 할 텐데 인간을 심판하면 인간은 도저히 다시 생명을 얻을 길이 없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두 옮아가게 하시고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당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구약에 제사에서 이미 입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이 비참하게 범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 가운데 특별히 선택된 백성들을 남겨두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완전한 용서는 아니지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께 찾아갔는지 보십시오.
레위기는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찾아가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교과서입니다. 그들은 먼저 짐승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제사장이 기도할 때 죄인이 자기의 그 손을 짐승위에 얹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로 옮아가는 것을 보고 인간을 향한 그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죄에 대한 분노를 짐승을 죽이는데 푸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인간을 회개케 하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잠시 열어주셨습니다. 범죄 하면 그 교통은 다시 닫히고 또 다른 제사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범죄 한 인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려고 했던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러한 모든 역사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영원히 우리의 죄를 대속하셔서 그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여실 계획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아 돌아가시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을 위해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일들이 있어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도 신비적인 방법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이 세상에 아주 가난한 집의 한 아이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슈퍼맨이나 혹은 아주 우리 만화 영화 같은 것에서 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 신비한 외계인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지 않으시고 성인도 아니고 아주 갓난아이인 어린아이, 그것도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어린아이나 산에서 태어난 어린아이가 아니라 인간의 평범한 그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배려하신 이유는 무엇에요.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 사람이 겪는 모든 아픔, 사람이 겪는 모든 쓰라림을 경험하게 하셔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비록 고향이 하늘이시지만 이 세상에 구원받아야 할 인간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지를 온전히 느끼고 알도록 만들어주셔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인간을 넘치도록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간의 죄를 위해서 자기를 바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노래) “내 주님 쓰라린 고통을 다 채워놓으셨네, 주 지신 십자가 대할 때 나 눈물만 흘리네, 사나와 (?) 같이 아름다움 저 천성 떠나서 이 천한 세상 오신 주 참 내 주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왕이나 혹은 큰 신기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으시고 아주 평범한 인간 지금으로 말하자면 달동네에 사는 가난한 집안의 한 어린아이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그리고 더 갓난아이 적에는 기저귀도 차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는 자연적인 생애를 사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점점 자라서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청년이 장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화려한 학벌을 가진 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은 집안에 태어나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왕궁으로 오신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특별한 신앙의 눈으로 그분을 뵙지 않는 한 그분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그 분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말구유간에서 아기로 오신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과 한 분이신 그분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천지를 아버지와 함께 창조하신 분이었고 세상 끝 날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실 바로 그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인간 예수를 보면서 저 분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 모든 인류를 그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경험했던 절망적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 실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인간 예수를 보면서 그 분이 바로 온 인류를 죄 가운데 구원해 내실 그런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을 그 초라한 인간 예수의 모습 속에서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 그 분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그 예수를 믿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 분이 이 세상에 태어났던 4대 성인중의 한 분이라는 사실까지는 인정할 수도 있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 지가 2000년이 되는 데 오늘을 살아가는 내 인생과 관계가 있고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을 내가 깊이 믿고 받아들이면 내가 영혼이 다시 태어나고 내가 하나님의 진노 받는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 바뀌게 된다 고 하는 것, 영원한 세계에서 내가 지옥으로 가는 대신 그 형벌대신 천국의 복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믿음이 그 분을 보면서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그 형벌은 예수님의 개인적인 죄나 개인적인 허물이나 혹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구유에 태어나시자 즉시 그 분이 뭔가를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았습니다. 그리고 뭔가 이 분이 자기가 이제 죄 가운데 팔린 이 세상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는 이 거대한 왕국에 뭔가 커다난 위험을 가져 다 주실 지도 모르는 분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집요하게 이 예수를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결국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격동시켰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에 그 올라가시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예수님의 진실한 사랑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굶주린 그들을 보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해주시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물고기와 떡을 먹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양식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능력을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들 속에 믿음을 심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손으로 고쳐 주셔서 용서함을 받고 치료함을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모두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마귀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만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였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으로써 하나님은 예수님, 인간의 죄를 향한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가 비참하게 못 박혀 죽으시는 그 십자가의 고난을 향해서 푸시고 이제는 인간을 향해 화해의 손을 내미시고 그리고 그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그 많은 세월이 흘러가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가르치고 싶었던 다 가르치셨습니다. 행하고 싶으셨던 긍휼을 다 행하시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주님과 인간 사이에 그 비참한 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창조의 원래 목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들 되게 하시려고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날 예수님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어느 하나도 주님이 사랑하시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우리를 섬기시던 그 손에 사람들은 우악스럽게 못을 박았습니다. 우리를 고쳐주시고 먹여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고통 하는 자들의 이마에 땀을 씻어주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섬기시던 그 손에 그 섬김을 받은 사람들이 못 박았습니다. 죄인들을 섬기시기 위해서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고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소식을 알려주셨던 그 복된 주님의 발에 사람들은 커다란 대못을 박았습니다. 잠을 자나 잠을 깨나 주님의 생각 속에는 너무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는데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들의 대한 불쌍히 여기는 그 영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머리에도 사람들은 우악스럽게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살짝 얹어 놓은 것이 아니라 깊이 눌러서 그 가시가 주님의 눈과 이마를 찢어서 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사셨던 그 몸에 사람들은 아주 심한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쓰이던 그 채찍은 지금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채찍은 아홉 가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채찍은 낚시 바늘과 같은 갈고리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벗은 몸에 후려치면 살점들이 후드득 떨어지는 무서운 채찍이었습니다. 그 채찍을 온 몸에 맞으시고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주님께 잘못이 있다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죄인들이 살고 있는 이 낮고 천한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같이 비참한 죄인들을 사랑하신 것 밖에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가족들조차도 버린 사람들을 용납하셔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시면서 그들의 영혼을 싸매셨습니다. 이게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그렇게 못 박았습니까?
노래)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 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님은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이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는 것을 차마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몸부림치며 부르짖을 때에 하늘도 햇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그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 순결한 그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화목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를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그 십자가에서 죄도 없으신 그 분이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아버지의 그 진노를 한 몸에 받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날아오는 하나님의 그 진노의 폭탄을 십자가에서 주님이 막아서시면서 ‘아버지, 심판하시려거든 저를 심판하시고 내 뒤에 있는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우리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에 우리가 바로 그 십자가에 앞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시작을 해서 중학교 2학년 때 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교회로 돌아왔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던 그 사건이 믿어졌습니다. 어느 날 주님 앞에 이제 은혜를 많이 받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함께 교회에 모여서 밤에 기도회를 하고 있었던 때에요.
노래)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전에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 못 박히신 그 모습이 떠올라요. 그리고 그 마음속에 깊은 확신이 왔습니다. 그게 무슨 확신이냐 하면 주님이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떠오르고 그 다음에는 주님이 당하시고 있는 그 아픔이 내 마음속에 깊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죄는 내가졌는데 왜 주님이 고난을 당하셔야 합니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는데 왜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시고 채찍에 온 몸이 찢어지시고 못 박혀 피 흘려 죽어 가신 것은 바로 나 때문입니다.
노래)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손들고 옵니다.
그러면서 그 날 밤에 한 없이 울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그 존귀하신 하나님 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사랑을 생각하니까 이제까지 하나님께 죄 지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온 나의 모든 날들이 뼈저리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좀더 일찍이 내가 그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더라면! 나 같은 죄인이 무엇이 관대 하늘의 영광을 마다하시고 죄와 고통밖에는 없는 이 천한 세상에 내려오셔서 죽으셔야 했는가! 그 때 그 마음속에 불붙는 확신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은 만약에 내가 이 세상에 죄인이 나 하나 밖에 없어도 그리고 나 하나 밖에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어도 아마 주님은 나 한 사람을 건져내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나 한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한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사실 찬송가에는 벌레라고 그랬는데 사실은 나는 그때 내가 벌레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레는 어떻게 하나님께 대항할 수 있겠습니다. 벌레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할 수 있겠습니다. 벌레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불명예를 돌려 드릴 수 있겠습니다. 벌레는 할 수 없었던 그 큰 죄를 저지르고 그리고 마음속에는 더러운 죄악의 찌끼들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반항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시는 죄들을 저지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께 모욕을 안겨드리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눈물을 흘릴 때에 주님이 내 마음속에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내가 양털같이 희게 하리라’
여러분! 오늘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도다!’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끊겼던 그 사이가 다시 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길을 누구든지 주님이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의 공로를 내가 믿습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좋으신 아버지 앞에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면서 흘리신 그 피로 아버지 앞에 이르는 길을, 붉은 피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찢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휘장을 위로부터 아래로 찢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길을 걸어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축복 받았습니다. 오직 이제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못 박히시고 내가 바로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이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아직까지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습니다. 오늘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늘 마음속에 기도하십시오. 오! 예수님 이제 제가 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내가 나아오니 주님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옵소서. 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5.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23:27
오늘 아침에는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한 인간이 타락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의 형벌 아래 있고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 그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착하게 사는 사람이든지 악하게 사는 사람이든지 그 사람이 원래 마음속에 있는 본 뿌리가 더럽게 타락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그 불순종의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환경이 적당히 맞으면 그 죄는 점점 크게 자라서 그래서 죄가 원래 있던 죄에다 살아가면서 죄까지 모두 합쳐져서 그 사람의 인생을 점점 죄의 종이 되게끔 만들어버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태, 그래서 이미 영혼이 이미 죄 때문에 죽어있고 그리고 몸도 잠시 후면 하나님이 죽여 버리실 것이고 그리고 또 영혼도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차마 보고 계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신 거에요.
그리고 그 아들에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 분노하시는 마음을 그것을 모두 쏟으셔서 아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다 감당하면서 그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풀어드린 다음에 그 다음에 자기가 못 박혀 죽은 그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고 창조의 원래 계획과 모양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만드시려고 하는 아버지의 그 참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무리 주홍과 같이 붉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양털과 같이 희게 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기로 그렇게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게 된 것죠. 그래서 오늘 아침에 굉장히 많은 형제자매들이 거듭났어요. 그리고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이 예전에는 믿어지지 않는데 오늘 아침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믿어졌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이제 손들고 내가 이제 이전에 지은 모든 죄들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받아주세요.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받아 주지 않으세요.
그리고 그 사람은 교회에 있던지 엄마, 아빠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든지,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지,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든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진실하게 회개하고 그리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가 여전히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에요. 그가 아무리 살아도 하나님이 원래 그를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던 그 목적을 좇아서 살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그렇게 우리를 교제하시기 위해서 만들어 놓으셨는데 그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회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에요. 회개는....
목사님도 여러분과 같이 어렸을 때 유치부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지만 나는 거듭나지 못했어요. 나는 예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는지도 몰랐고 누가 와서 이렇게 간절히 가르쳐 준 적도 없었어요. 이런 집회도 참석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저 주일날 집에서 교회 가라, 그리고 동전하나 주면은 교회에 가서 헌금하고 오고, 가끔 선생님이 재미나게 동화 얘기 같이 다윗 얘기,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그냥 재미있다는 느낌만 받고 끝났지 뭔가 그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아,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하는 그런 사실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은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었고 하나님이 나를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왜 예수님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왜 나와 그렇게 교제하고 싶어 하셨는지 그런 거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리다가 나중에 다시 6년 쥐에 교회에 돌아와서 그때는 청년이 되었을 때죠. 그 때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었어요. 밤늦도록 집에서 공부를 하는 데 그런데 새벽시간까지 밤을 새면서 집에서 공부를 하는 데 새벽이 되면은 저 멀리 들판에 서 있는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종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땡그랑, 땡그랑, 새벽 종소리가 들리는데 그 종소리가 그렇게 목사님 마음에 어렸을 때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러면서
노래)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는 것이 그 종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거에요. 그 종소리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신다. 그것이 내 마음속에 막 느껴지는 거에요. 그리고 아무도 인도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 집에서 30분 이상 떨어져 있는 거리에 있는 아주 조그만 교회, 이 교회당에 6/1이나 8/1 정도나 될까한 교인 한 30-40명 모이는 조그만 교회에 나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그런데 그걸 알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이 먼저 있었어요. 누가 회개를 어떻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어요. 근데 교회당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어느 날 이제 예배도 물론 드렸죠.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점점 점점 내가 이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나를 정말 죄 가운데 살다온 나를 기쁨으로 받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거기서 나는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시고 용납해주시는 그 하나님의 참 큰 사랑을 많이 느꼈어요.
목사님은 여러분 만할 때 인생에 대해서 너무 너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찾지 않았지만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하고 괴로웠어요. 그리고 죄는 죄대로 많이 지었어요.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오니까 하나님은 내가 돌아온 것을 그렇게 기뻐하셨어요. 그런 것을 내가 보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하면 내가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이전에는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목사님은 여태껏 자라오면서 거의 부모님 속을 썩여드린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님이 뭐라 그랬냐하면 얘야 나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너 때문에 속 썩은 적은 없었단다. 동생들이 말했어요. 그렇다고 학교에서 말썽을 부렸나하면 학교에서도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얌전한 학생이었어요. 평범하게 그렇게 자랐어요. 나는 아무것도 그렇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주님이 죄도 없고 흠도 없으신 그 분이 왜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을까 하늘나라에서는 천군 천사들의 찬송이 있고 성도들의 경배가 있는데 왜 하나님의 아들인 그 예수님은 그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싫어 버린바 되셨으며 누구도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는데도 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까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향해서 얼마나 진노하고 계신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의 그 진노의 심판을 지옥의 형벌 가운데서 나를 건져내기 위해서 예수님이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2000년 전이잖아요. 2000년, 가끔 아버님 손을 붙잡고 저는 산소에를 잘 다녔거든요. 아버님이 그런 것을 참 잘 좋아했어요. 얘야, 엎드려서 절 드려라, 누군데요. 너희 17대 할아버지시다. 17대 할아버지를 내가 봤어요. 나는 기껏해야 생각나는 게 우리 증조할아버지 그러니까 3대 할아버지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17대는 도대체 누군지, 나는 한번도 그 산소 앞에 절 앞에 절할 때 눈물 흘리면서 절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얼굴도 모르고 그 분이 뭐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 분이 또 뭐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절하라고 하니까 절했어요. 나는 예수님 본 적이 없어요. 예수님 얼굴의 그림은 보았지만 그게 뭐 진짜겠어요. 예수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만난적도 없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주님이 2000년 전에 못 박히셨는데 지금 내 앞에서 바로 나를 위해서 하늘 높이 달리셔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그리고 그게 다 상상이 되요. 그리고 이마를 찢은 그 가시 면류관이 수많은 피를 얼굴 아래로 흘려보내시고 땀과 피가 범벅이 된 주님의 고개 숙인 얼굴 그리고 섬기시던 손에 박히시던 깊은 못 그 못을 통해서 찢어진 살과 하얗게 드러난 뼈가 보이고 거기서 다시 피가 흐르는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돌팔매에 맞고 채찍에 맞아서 모두 갈기갈기 찢어진 주님의 그 몸 아무것도 없고 그저 천 조각 한 조각 걸치진 채에 나무에 매달려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것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 예수님의 못 박히시는 그 아픔이 지금 나의 아픔으로 내 마음속에 막 밀려왔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나는 그 분이 나를 구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고 나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무 희망이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다음에 강물과 같이 예수님의 그 고통, 주님의 그 고난이 밀려왔어요. 그리고 나는 그때 결심했어요.
노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영어로 하심)
나는 그 찬송을 부르면서 내가 정말 이전에는 눈이 멀었었구나 하나님의 이런 참 사랑을 모르고 내가 살았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게 된 거에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은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는 사람인데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인데 내가 주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고 그래서 거듭나지도 않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수 없이 주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알려 주시고 가슴 저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과 그 분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알려 주시는데도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깊이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용서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 까지 모두 흘려주셨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무엇을 보탤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보탤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그것을 믿는 것 그렇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저는 인제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러는 사람 오늘도 이런 모든 사람들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제 이렇게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에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좇아 왔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좇아 왔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많이 좇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좇아오고 있는 사람들이 오직 두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백성들이란 사람들이고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백성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었는지 우리 성경을 한 번 봅시다. 34절, 같이 읽으십시다. 시작 ‘주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누어 제비뽑을새’ 백성은 서서 무엇을 했다고요 네, 47절을 읽읍시다. 시작 ”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였다’ 하고” 이를 무엇하려고 모인 무리가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그 주위에는 먼저 백성들이라는 사람들이 따라왔는데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어떻게 죽으시는지 구경하려고 예수님의 뒤를 좇아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갈 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냐 하면 예수님이 벳새다 광야에서 이 백성들이 너무나 배고파할 때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며 물고기와 보리떡을 먹여 주신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들은 도시락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주님이 기도하고 나니까 먹어도 먹어도 계속해서 남아 있는 광주리를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을 까요. 그러면서 그들은 그런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고 배부른 다음에는 예수님을 우리 임금 되게 해야 된다며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또 이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병을 고쳐주신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놀라운 기적을 보았습니다. 자기 친구, 자기 동료, 자기 이웃이 앉은뱅이였다가 일어나는 것도 보았고, 눈이 멀었었는데 눈을 뜨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으로 걸려 누운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기적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놀라운 기적 본 적이 있어요?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여 본 적이 있어요? 주님의 설교를 직접 들어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예수님이 사랑하셨는데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때 구경하는 사람들로 변하는 거에요. 이게 무엇이냐 하면 교회를 많이 다니고 많은 것을 체험했어도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구주로 믿고 진실로 참회하고 깊이 회개한 다음에 매일 매일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예수님의 뒤를 좇아가지 않으면 결코 참 신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상당히 많은 지체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놀라운 사랑을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제 오! 정말 이전에는 남의 얘기처럼 들렸는데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어요.
노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이런 고백을 하나님이 주신 거에요. 그러니까 영혼이 거듭나면 팍 생겨나는 것이 뭐냐면 주님이 사랑스러워요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 그러니까 거듭나기 전에는 교회에 나오는 것도 맨날 부모님한테 욕먹을 까봐 전도사님이 하도 귀찮케 하니까, 친구들 만나려고, 교회에 나오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면 이제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는 거에요. 제가 알고 있는 여러분과 어린 학생인데 한참 은혜를 받으니까 그런 말을 해요, “목사님 ! 왜 저 어제 밤에 무서운 꿈을 꿨어요. 귀신이라도 나왔냐? 아뇨?
제가 어제밤 꿈을 꾸었는데요. 어떤 사람들이 나한테 오더니 너 이제 교회에 오지 마 그러더래요. 그래서 내가 교회 앞에서 막 울었어요. 깨고 보니까 꿈인데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그런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일어나는 거에요.
그러면 이런 백성들은 그런 마음이 없었어요. 그러면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구경하며 좇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 주님이 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야 되요? 왜 죄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야 되요? 바로 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자기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아직까지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주님이 자기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진다는 것도 모르고 희희낙락하며 장난치면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거에요. 이게 바로 오늘날 거듭나지도 않았으면서 자기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내가 올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 되는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의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 생각하지 않고 장난치듯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여기 구경하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나 이 사람들이 구경하며 주님 뒤를 좇아가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들이었어요. 그 여자들은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언도를 받으시고 브라이도리온에서 모욕을 당하신 다음에 골고다 가는 길에 쓰러지듯이 밀쳐 나오셨을 때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그리고 홍포를 두르시고 그리고 갈대를 드시고 그 모습은 마치 코메디언 모습 같았습니다. 임금을 흉내 낸 조롱하는 차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을 여인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나타나시자 눈물짓기 시작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이 가까오면 가까울수록 그들은 이제 그들의 흐느낌은 울부짖음으로 변했고 울부짖음은 피어린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무엇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했을 까요.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 없으신데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이에요. 무엇이 그렇게 예수님이 그렇게 자기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데도 웃고 구경하고 까불고 떠드는 그 무지몽매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한 진정한 힘이 무엇이에요
노래) 사랑이 구주를 죽게 했네, 왜 나를 사랑하나 죄 용서하실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주님의 참 사랑을 알고 나니까 주님이 날 사랑하신 것이 당연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왜 나를 사랑하셨을까? 벌레만도 못한 죄인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그렇게 좋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주님을 못 박기 위해 이 손으로 돌 던지고 망치를 들었던 나를 왜 용서하셨을까 우리 주님이 죽으신 것은 너무나 억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나를 용서하신 거에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거에요. 말도 안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어요. 만약에 안하셨더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왜, 그 사랑을 감당할 수밖에 없어서 그냥 눈물만 흘릴 뿐이에요. 한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 같은 죄인 건지신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하고 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 감격이 사라지지 말도록 늘 기도에 힘쓰면서 날마다 예수님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에요. 이 여인들이 바로 그런 여인들이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장면을 보면서 예수님이 자기네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훨씬 복 된 사람들이죠. 그러나 이 여인들은 하나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어요. 그게 뭡니까? 여러분, 우리 주님을 왜 죽입니까, 우리 주님이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갈릴리로, 유다로, 그리고 데가볼리로 여기 저기 다니시면서 병들고 고통 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이 치료하시고 먹이시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것 밖에 아무런 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여인들이었기 때문에 그 여인들에게는 주님의 고난이 아픔이 되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진정한 사랑은, 참된 사랑은 주님의 기쁨과 주님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 이게 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이에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 구원을 얻었다면은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에요. 이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서는 안되요. 오직 나에게 그렇게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 그것을 알았으면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니까 이제는 그 사랑을 나의 사랑으로 받아주셔야 해요.
그리고 이제는 내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고 또 우리는 그 사랑을 알아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 그게 바로 교제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으실 때에 인간과 함께 누리셨던 거에요. 그것을 모르고 산 거에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막 고통하는 일이 생겨나면 어떻게 하죠? 그러면은 청소년들은 부탄가스를 흡입하거나 확 자살해버려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자살해 버렸죠 엄마가 공부하라고 꾸지람하니까 자살을 해 버렸어요. 야단을 치니까 자살을 해 버리고 가출하고 그러면서 죄 가운데로 빠져 들어가면서 불행한 가운데서 사는 거에요. 그런데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주님 앞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거에요. “주님! 제가 처해 있는 처지를 아시죠, 하나님 나는 이렇게 괴롭습니다”.
목사님은, 주님을 만날 때까지 나는 참 외롭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얘기가 안 통해요. 통하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은 있었기 때문에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죠, 그런데 주님을 알고 은혜를 받고 나니까 외로워지지를 않아요. 왜, 언제든지 자다가도 예수님 나왔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에게 내가 기도할 때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세요. 내가 갈 길을 모를 때 주님께 물어보면 주님이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내 마음이 고통 받을 때 주 앞에 기도하면 주님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세요. 용기가 필요할 땐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능력이 필요할 땐 능력을 주세요. 이게 바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같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것을 많이 경험했어요. 하나님이 떨어지는 대학을 붙게 해 주시지는 않으세요. 그렇지만은 나는 보니까 말이죠 두 케이스가 아주 기억에 또렷이 남는데. 자맨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겨울 수련회 때, 고등학교 1학년 올라오는 해 중3이죠 겨울 수련회 와가지고 주님을 영접하고 큰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 그가 뭘 깨달았느냐하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쓰실 때에 아주 소용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내가 공부를 해야 된다. 그리고 그 때서부터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반에서 중 3때 30등이었대요. 그러니까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죠. 근데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지혜를 주시고 공부의 열심과 재미를 주시는데.. 아주 시골에서 자란 학생이에요. 그 고을에서 수재가 났다고 했어요. 서울대 독문과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1학년 들어갈 때 30등 밖에 못하던 학생이 서울대 독문과 들어갔어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기도할 때 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는 말이죠. 왜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에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것은 주신단 말이죠.
또 한 형제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떨어졌어요. 다른 사람들은 대학에 떨어졌다고 실망하고 교회도 안 나오고 막 방탕한 삶을 살고 술 먹고 몰려다니고 하는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편지를 보냈는데 지금은 비록 잠시 슬프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 기간들을 통해서 나를 불로 연단하는 금과 같이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오직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를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재수 1년 동안에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학교 다닐 때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온갖 사랑을 다 경험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학에 들어갔어요.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산 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거에요. 주님과 교제하기 때문에 나의 삶에 매일 매일 영향을 미치면서 그러면서 매일 매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삶, 주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면서 우리는 주님을 기뻐하고 그렇게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 이게 바로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말이죠.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만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그대에게 1